☞癸卯年 정착과 부흥의 해☜
모든 생명의 양식(복음)을 등한히하면,사탄의 표적되어 영생의 기쁨을 빼앗기게 됩니다.
갈2:17-21절) 내 안에 사시는 이
자기 몸 안에 다른 사람이 살아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산모(産母)입니다. 임신(姙娠)한 엄마의 몸 안에는 아기의 몸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가진 엄마는 입덧을 하기도 하고, 배가 불러오게 되고, 또 어떤 때는 태아(胎兒)의 발길질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 아기도 엄마의 상태에 따라서 예민(銳敏)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또 몸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길을 가면서 혼자 웃고, 혼자 이야기해서 정신이 좀 이상한 분인가 생각했더니, 핸즈프리로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첩보(諜報)영화를 보면, 미국의 특수부대(特殊部隊)요원들은 언제나 입과 귀에 무전기(無電機)를 대고 있기 때문에 자기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본부(本部)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고, 작전(作戰)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어떤 어머니가 사고(事故)로 죽은 자기 아들의 심장(心臟)을 다른 사람에게 기증(寄贈)했는데, 언젠가 그 아들의 심장(心臟)을 기증받은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만난 청년에게 한 첫마디가 그의“가슴에 귀를 대봐도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시라”고 하니까 그 어머니는 한참 동안 청년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心臟)이 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 자기“아들의 심장이 아직 뛰고 있어서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뇌(腦)와 심장(心臟)을 동시에 기증을 받아서 살게 되었다면, 아마 기적(奇蹟)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뇌(腦)를 이식받은 사람이 천재 박사의 뇌를 이식받은 후에 그의 머릿속에 천재적인 생각이 계속 살아난다면, 아마 이 사람도 천재적인 삶을 살겠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기적(奇蹟)을 보고,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보고는 완전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전한 복음(福音)은“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즉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죄(罪)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놀랍게도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죄(罪)와 율법(律法)이 얼마나 집요하게 사람을 추적하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예수 믿고 난 후에도 옛날에 지은 죄(罪)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양심(良心)이 괴로워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계시(啓示)를 통해서 십자가가 우리의 죄(罪)를 완전히 해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Ⅰ.죄의 추격자(상)
요즘 도시에서 밤이나 낮에 어떤 사람이 죄(罪)를 짓는다면, 거의 모두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도시나 건물 곳곳에 수많은 CC.TV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추행(醜行)이나, 살인(殺人)을 했다든지, 혹은 자동차(自動車)로 사람을 치고, 뺑소니를 치면, 그 범행 장면이 거의 전부 카메라에 다 찍히기 때문에 결국 범인은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레미제라블>을 보면, 주인공 장발장이 19년 동안 감옥(監獄)에 있다가 나온 후, 정말 회개(悔改)하고, 새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소년의 돈을 빼앗았다는 작은 죄(罪)를 가지고, 끝까지 장발장을 추격하는 자베르 라는 형사가 나옵니다.
장발장은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시장(市長)까지 되었지만, 그 형사가 그를 끝까지 추격하기 때문에 결국 장발장은 양녀(養女)를 데리고, 수도원(修道院)으로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런데 자베르 경감(警監)은 거기까지도 추격합니다. 나중에 자베르가 자신이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살(自殺)함으로 장발장은 그 추격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속에는 형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양심”입니다. 이 양심은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罪)를 다 들춰내어서 우리를 정죄(定罪)합니다.
양심(良心)이 그렇게 하는 근거는“율법”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율법(律法)이 우리의 양심(良心)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나이가 들면,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부끄러운 일이 생각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잊으려고, 술을 많이 마시는지도 모릅니다.
몇 해 전 미국(美國)에서는 여자 체조선수들을 돌보던 한 의사(醫師)가 수십 년 동안 어린 선수들을 많이 성추행(醜行)했다는 행위가 고발되어서 그는 최장 360년의 징역(懲役)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한때의 육체적(肉體的)인 쾌락(快樂)을 위해서 어린 여자 선수들을 희롱했는지 모르지만, 그 기억(記憶)이 피해(被害)자들에게는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피해자가 법정(法庭)에서 전부 다 증언(證言)하고 난후, 그들은 모두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그 한 사람의 악마적(惡魔的)인 행동 때문에 그들의 인생(人生)이 너무나도 많이 고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미투”라고 해서 온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가해자(加害者)들은 이미 지난 일이기 때문에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그 모든 불편했던 일은 피해(被害)자들의 양심(良心)속에 고통으로 남아 있었고, 결국은 이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시49:20절)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죄(罪)중에서 그냥 없어지는 죄(罪)는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사람들은 그것을“남들도 다 한다”든지“술에 취했었다”든지 토개공처럼“불법도 법”이라며,“적법(適法)하게 처리했다.”는 식으로 자기 양심(良心)을 마취(痲醉)시켜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취되었던 양심이 한 번씩 눈을 뜰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피해(被害)자 본인을 만나게 되었다든지, 아니면 비오는 날 자기 자신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든지, 혹은 설교 말씀을 듣는 다든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거나, 죽을 때가 되었을 때입니다. 그렇다가 회개의 기회를 놓치면, 결국 지옥심판을 받게 됩니다.
율법(律法)은 형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어느 곳에 가서 살든지, 율법(律法)은 죄(罪)를 찾아냅니다. 유대인들은 나치 당시 유대인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을 밝혀서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끝까지 찾아낸다고 합니다. 즉 성형(性形)수술을 받고, 이름을 바꾸고, 철저하게 딴 사람으로 살아도 결국 찾아내어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들을 사형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오래 살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는 가혹(苛酷)한 형벌(刑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죄(罪)를 전혀 짓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마음으로 누구를 죽여보지 않았다든지, 음란(淫亂)한 짓을 하지 않았다든지,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았던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律法)이 살아있고, 양심(良心)이 있는 이상 인간은 결국 자기들이 행했던 모든 죄(罪)의 정죄(定罪)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즉 심판대(審判臺)앞에 섰을 때, 그동안 잠자고 있던 양심(良心)이 눈을 뜨면서 자기가 지었던 죄(罪)들을 자기 입으로 모두 다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위로 의(義)로워 지려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기를 속이는 자들입니다.
2:17-18절)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없다고 하며, 그 사이에 있는 담을 허물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할례(割禮)는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그 벽(壁)을 허물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다시 이것을 주장한다면, 그는 자신이 죄인(罪人)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律法)과 양심(良心)의 추격(追擊)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죽은 사람은 감옥(監獄)에 가두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더 이상 가둘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죄(罪)를 짓지도 못하고, 시신(屍身)이 썩어버리기 때문에 빨리 땅에 파묻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죽어도 양심(良心)의 고통은 심판대(審判臺)까지 가지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양심(良心)의 가책이나 죄(罪)의 가책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율법(律法)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2:19절)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율법(律法)이 어떤 사람에 대하여 죽었다고 판단하면, 다 이상 추격(追擊)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방법이 있을까? 양심(良心)의 가책은 죽어도 심판대(審判臺)까지 가지고 간다는데, 율법(律法)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 불가능(不可能)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가능(可能)합니다.아멘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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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림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사명을 받아 개설한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셀(cell)공동체
☞ 자발적인 신청을 수시(隨時)로 받습니다.
▣리더(leader)는 1단계 *필수과목* 자격증을 취득해야 공동체가 안전하고, 직분도 반드시 *필수과목*을 필하고 *세례를 받아야*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천주교인 포함).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3-14)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심방(尋訪) 및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