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일타강사⑩ 대전 성심당
Q 아래 항목에 해당하는 것을 적으시오
① 대전에 가면 방문하라고 추천하는 곳
② 대전에 가면 꼭 먹고 싶은 음식
③ 대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물
④ 대전 관광객이 제일 많이 방문한 명소
대전시가 조사한 결과라는데, 공교롭게도 네 개 항목의 정답이 같다. 정답은 바로 ‘성심당’. 전국에서 빵을 제일 많이 만들고 제일 많은 빵을 파는 동네 빵집의 지존(프랜차이즈 제과점 제외)이자 ‘대전의 성심당’을 ‘성심당의 대전’으로 바꿔 버린, 대전보다 더 유명하다는 대전 빵집의 이름.
무엇보다 성심당은 믿기지 않는 일화와 전설 같은 무용담을 다수 거느린 제빵계의 ‘핵인싸’다.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빵집이 대전 안에서만 빵을 팔다 보니 사달이 나고 소동이 벌어지는 건데, 매체에 보도된 사례와 SNS에 떠도는 경험담 몇 개를 아래에 열거한다.
📂대전역에는 줄이 세 개 선다. 매표소와 여자 화장실, 그리고 성심당 튀김소보로(튀소) 판매대. 📂대전역에서 기차를 놓친 승객의 팔 할은 튀소 때문이다. 📂부산에서 KTX 타고 올라오는 길, 기차 안에서 빵 냄새가 진동하면 ‘아, 대전에 왔구나’ 하며 잠에서 깬다. 📂‘성심당 거리’ 안쪽 골목에 ‘빵 줄’ 전용 구역이 있다. 이 구역은 차량 진입이 일절 금지된다. 📂성심당 빵을 사서 다른 지역에 갖다주는 구매 대행업이 성행한다. 📂성심당이 튀소 가격을 100원 올렸더니 대전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 조사에서 3년 연속 한화 이글스보다 성심당 순위가 더 높게 나왔다(이글스 팬으로서 이 대목은 아프다).
대전의 동네 빵집 성심당의 시그니처 빵 튀김소보로. 단팥빵과 소보로와 도넛의 세 가지 맛을 내는 빵으로 성심당에서만 만들어 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여행기자에게 성심당은 고맙고도 귀한 문화관광 콘텐트다. 동네 빵집 하나가 광역시의 원도심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어서다. 성심당 거리라 불리는 대전역 앞 으능정이 상권은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이른바 ‘빵세권’ 구역이다. 오전 8시 빵집 문을 열 때부터 오후 9시 닫을 때까지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성심당 거리는 인파로 넘쳐난다. 오죽했으면 경찰이 나서 안쪽 골목의 차량 출입을 막았을까. 사회학자는 성심당이 살려낸 골목상권에서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를 찾고, 부동산 전문가는 성심당 거리의 상가 공실률이 서울 명동보다 낮다는 통계에 주목하고, 대전시는 성심당을 앞세워 전국 유일의 빵 축제를 열고 있다.
오늘 일타강사는 하나의 문화현상이 된 성심당의 성공담과 인기 비결을 들여다본다. 크리스마스 대목에 빵집 한 곳을 작정하고 소개해도 별 거리낌이 없는 건 이미 성심당은 생산량과 판매액 모두 최절정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오랜 단골로서 증언하는데, 성심당 빵 줄은 해가 지날수록 길어지는 중이다. 더욱이 성심당은 크리스마스와 가장 잘 어울리는 빵집이다. 성심당(聖心堂)은 독실한 가톨릭 기업이다. ‘거룩한 마음’이라는 뜻의 이름부터 기독교 정신에서 비롯됐다. 성심당은 2014년 방한한 프란시스코 교황의 8월 15일 아침 빵을 만든 빵집이다.
연매출 1000억의 동네 빵집
지난 15일 오후 대전 성심당 거리 일대. 온종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으나 성심당 거리는 우산 쓴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심당은 1956년 문을 연 대전의 노포다. 현재 매장 4개를 운영하는데, 모두 대전시 안에 있다. 군산 이성당, 대구 삼송빵집, 부산 옵스 베이커리 같은 지방의 명물 빵집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매장을 두고 있지만, 성심당은 대전에서 꼼짝도 안 한다. 그런데도 하루에 빵을 10만 개씩 만들어 판다.
돈은 얼마나 벌까. 지난 15일 성심당 본점에서 임영진(69) 대표에게 직접 물었다. “올해 매출이 얼마나 될까요?” 바로 대답이 나왔다. “1000억원은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정확한 계산은 안 나왔지만 1000억원 돌파는 확실하다는 답변이었다.
김경진 기자
연매출 1000억원이라. 의미 있는 숫자다. 성심당에서 공식 발표를 하면 튀소 100원 올랐다고 기사 쓰는 지역 언론은 물론이고 전국의 신문과 방송이 앞다퉈 다룰 뉴스다. 어느 동네 빵집도 다다르지 못한 경지여서다. 성심당을 제외하면 연매출이 500억원 넘는 빵집도 없다. 서울에 진출한 지방의 명물 빵집을 포함해도 그렇다. 눈여겨봐야 할 건 성심당의 가파른 성장세다. 성심당이 연매출 100억원을 처음 넘어선 게 2012년이었다. 불과 11년 만에 열 배, 다시 말해 1000% 성장을 이뤄냈다.
“예전에는 대전 빵집이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전국구 빵집이 됐다는 걸 느낍니다. 다른 도시에서 온 젊은 손님이 부쩍 늘어난 걸 실감합니다. 대전역점은 튀소 전문 계산대를 설치했는데도 튀소 사려고 줄 섰다가 기차를 놓쳤다는 후일담이 계속 들려오고요. 대전 사람이 다른 지역 사람에게 우리 빵을 선물하면 그렇게 대우를 받는다고 합니다. 더 만들고 싶어도 형편이 안 됩니다. 공간도, 인력도 부족합니다. 빵집 주변으로 긴 줄이 선다는 건 그만큼 공급이 달린다는 뜻이겠지요.”
동네 빵집 성심당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건 2012년께부터다. 롯데백화점 대전점이 2011년 12월 개장했고, 대전역점은 이듬해 11월 문을 열었다. 2017년에는 대전시의 요청으로 대전컨벤션센터에서 네 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2010년대 발전과 확장을 거듭하고 2020년대 들어 코로나 위기도 극복한 성심당은 마침내 연매출 1000억원 시대에 진입했다. 이 모든 발전과 확장은 다시 말하지만 대전 안에서만 이뤄진 것이다. 성심당이 대전 바깥으로 외출했던 건 다 합쳐 세 차례 진행했던 팝업스토어가 전부다.
그럼, 가장 본질적인 의문이 남는다. 사람들은 왜 성심당 빵에 열광하는가. 소문 자자한 성심당의 미담과 선행 때문일까. 그러나 성심당이 쌓아 온 남다른 공덕이 성심당의 폭발적인 인기를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착한 빵집과 장사 잘 되는 빵집이 늘 같은 집은 아니어서다. 한바탕 유행 같은 걸까. 글쎄다. 67년을 지켜온 노포에 유행 운운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듯싶다.
사실 답은 의외로 쉽다. 성심당은 싸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싸다. 튀소 같은 성심당의 시그니처 빵은 비교가 어려우니까(튀소도 1700원밖에 안 한다), 어지간한 빵집에 다 있는 소금빵을 보자. 우리 동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도 소금빵은 3000원 가까이 한다. 성심당에선 1500원이다. 싼 게 비지떡일까. 저런, 성심당은 ‘그날 만든 빵은 그날 다 소비한다’는 철학을 1956년 맨 처음 빵을 만들 때부터 고수하는 독한 빵집이다. 임영진 대표의 답변을 아래에 옮긴다.
“싸다기보다는 가성비가 좋은 거지요. 성심당이 좋은 재료 쓰는 건 다들 인정하시는 거고, 다른 빵집보다 빵이 큰 것도 아시는 분은 아십니다. 딸기 케이크에 들어간 엄청난 양의 딸기를 보고 ‘과소광고’라고 후기를 남긴 손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 가격을 유지하는 건 역시 많이 만들기 때문입니다. 빵을 만들자마자 팔려 나가니까 신선한 빵이 계속 제공되는 것이지요. 성심당에는 언제 가도 갓 구운 신선하고 따뜻한 빵이 있습니다. 이게 성심당의 경쟁력입니다.”
밀가루 두 포대의 기적
성심당은 가족 기업이다. 임영진 대표가 창업주 임길순(1911∼97) 전 대표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이다. 임영진 대표는 아버지 임길순씨와 어머니 한순덕(1920∼2012)씨의 2남5녀 중 다섯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빵집 일을 거들었던 임 대표는 1983년 성심당 제2대 대표가 됐다. 현재 임 대표의 아내 김미진(64) 이사와 큰딸 선(41)씨와 아들 대혁(37)씨도 성심당에서 일하고 있다.
창업주 임길순씨는 피란민이다. 함경남도 함흥 인근 함주에서 과수원 농사를 하고 살았는데 한국전쟁이 터졌다. 가톨릭 신자인 임씨 가족은 신도들과 함께 피란길에 오른다. 임씨 가족이 1950년 12월 23일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탔던 피란선이 ‘메러디스 빅토리호’다. 피란민 1만4500여 명을 태워 한 번에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사례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그 배다. 성심당문화원에 당시의 기록이 전시돼 있다.
1967년 촬영한 옛 성심당의 모습. 사진 성심당
대전 성심당문화원에서 촬영한 대흥동 성당. 성심당 창업주 임길순씨는 성당 종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고 싶어 1967년 대전역 앞에서 은행동 153번지 지금의 본점 자리로 매장을 옮겼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남 거제와 진해에서 살던 임씨는 상경을 작정하고 가족과 함께 1956년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런데 운명을 가로막는다. 기차가 대전역에서 멈춰 선다. 변변한 기술도 없던 시절, 기차가 한번 고장나면 하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임씨 가족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전에서 정착해야 했다. 서울이나 대전이나 똑같은 객지였다. 마침 대흥동 성당이 대전역에서 멀지 않았다. 성당에서 임씨 가족은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았다.
그 밀가루 두 포대에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임씨 부부는 밀가루로 찐빵을 만들어 팔았다. 대전역 앞에 천막을 치고 ‘성심당’ 나무 간판을 걸었다. ‘하루라도 지난 빵은 팔지 않는다’는 성심당의 철학도 그때 만들어졌다. 빵이 남으면 다 어려운 사람에게 줬다. 그 전통이 오늘도 이어진다. 팔다 남은 빵을 매일 고아원·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에 보내고 있다. 돈으로 따지면 한 달에 3000만원어치에 이른다.
빵을 나눠주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1987년 시위 때문에 도무지 장사를 할 수 없을 때였다. 빵을 안 구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놓고도 팔지 못한 빵을 시위 중인 학생에게 나눠줬다. 그게 빌미가 돼 임 대표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다행히도 풀려났는데,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시위를 진압하러 나온 전경도 성심당 빵을 받아 먹었다.
성심당은 이제 단순한 빵집을 넘어섰다. 다양한 사회 활동을 벌인다. 사진은 튀김소보로를 만들 때 나오는 기름으로 만든 주방용 비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05년 1월 본관 건물에서 화재 사고가 났을 때는 정말 망할 뻔했다. 망연자실했던 임 대표 부부를 일으켜 세운 건 고맙게도 직원들이었다. 전 직원이 매달려 복구 작업에 나섰고, 불이 난 지 6일 만에 다시 빵을 구울 수 있었다. 화재가 난 뒤 첫 달 매출이 기존 매출보다 30%나 높게 나왔다. 대전 시민이 너도나도 빵을 사준 덕분이었다. 화재 사고 이후로 성심당은 더 똘똘 뭉쳤다. 지금은 1주일에 한 번씩 직원들이 사는 얘기를 모아 자체 신문을 만들고 있다. 김미진 이사의 이야기를 옮긴다.
“우리는 빵을 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빵을 통해서 공동체와 함께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심당다운 것이 무엇일까요. 다시 부활한 대전 원도심 은행동을 지키며 빵장수로서 우리의 몫을 기쁘게 감당하는 것이 아닐까요. 대전에 와야만 맛볼 수 있는 빵집을 만들고 싶습니다. 성심당은 대전의 문화니까요.”
하루 2만2455개 팔리는 빵
성심당의 시그니처 빵 튀김소보로. 하루에 2만2455개씩 팔리는 빵으로 성심당이 레시피 일체에 대해 특허 등록을 마쳤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심당은 400여 개 종류의 빵을 만든다. 이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빵은 단연 튀소, 튀김소보로다. 4시간마다 구워서 나온다는데, 매장에서 보면 정말 내놓기 무섭게 사라진다. 튀소는 하루에 2만2455개씩 팔린다. 튀소 판매량이 궁금하다고 했더니 매장별 판매 현황을 정리한 엑셀 문서를 뽑아서 줬다. 성심당이 하루에 빵을 10만 개씩 만드니까 성심당에서 만드는 빵의 약 22%가 튀소라는 얘기다.
김경진 기자
튀소는 본점보다 대전역점에서 더 많이 팔리는 유일한 빵이다. 대전역점에선 하루에 튀소가 1만 개꼴로 나가는데, 본점에선 하루 6000개가 채 안 나간다. 튀소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대전에 들렀으면 기차 타기 전에 성심당 튀소 정도는 사 갖고 가야겠다는 심리가 반영된 듯하다. 대전역점은 튀소 판매대와 계산대를 따로 뒀는데도 튀소 계산대 앞의 줄은 기차가 다니는 시간이면 늘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한다.
튀소 사려다 기차 놓쳤다는 일화가 허풍이 아니라는 건 성심당 대전역점에 방문해보면 알 수 있다. 출근시간 만원 지하철 같은 빵집 풍경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건 빵을 포장하고 계산하는 직원들의 숙련된 동작이다. 손님이 계산대에 도착하기 전에 쟁반 위의 빵만 보고 계산을 끝내고, 손이 보이지 않는 속도와 오차 없는 동작으로 빵을 포장해 담는다. 그래도 줄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대전역점 얘기를 조금 더 하자. 성심당에 각별한 의미가 있는 매장이어서다. 애초의 성심당은 역전 노점이었다. 서럽고 속상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2011년 11월 13일 대전역점을 오픈할 때 성심당은 ‘56년 만에 대전역 입성’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날 임 대표 부부는 돌아간 부모를 생각했다.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성심당 본점의 튀김소보로 판매대. 튀김소보로는 현재 3개 종류가 있다. 튀김소보로, 단팥 대신에 고구마를 넣은 튀소구마, 튀김소보로에 초콜릿 시럽을 입힌 초코 튀소.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튀소는 성심당이 고심 끝에 개발한 메뉴다. 하여 생일이 있다. 1980년 5월 20일. 성심당 사업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임영진 대표가 오용식 공장장과 함께 만들어냈다. 튀소는 치밀한 전략과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혁신의 아이콘이다. 그 시절 성심당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세 종류의 빵, 단팥빵과 소보로와 도넛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빵을 목표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튀소에는 팥앙금의 달콤한 맛과 소보로의 고소한 맛, 도넛의 바삭바삭한 식감이 모두 들어 있다. 성심당은 2011년 튀소 제작 방식 일체에 관한 특허 등록을 마쳤다.
튀소가 소문만큼 맛이 없다는 후기가 의외로 많다. 그건 100% 당신 잘못이다. 너무 늦게 먹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시라. 단팥 앙금으로 속을 채운 소보로를 도넛처럼 튀겨낸 빵이 튀김소보로다. 식어서 눅눅해진 도넛처럼 맛없는 빵도 없다. 성심당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7시간 안에 드시라고. 정히 어려우면 프라이팬에서 살짝 구워 먹으라고. 튀소는 온기로 따뜻할 때 우유와 함께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사실 튀소는 미완성 빵이다. 원래는 완성된 튀소에 초콜릿 시럽을 입히려고 했는데, 튀소가 식기도 전에 팔려 버려 시도도 하기 전에 포기했다. 지금은 초코튀소라는 진화한 모델이 나와 튀소와 세트로 팔리는 중이다.
튀소에 이은 성심당의 효자 종목인 부추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심당에는 튀소 말고도 히트 상품이 많다. 1983년 전국 최초로 출시된 포장빙수는 대전 시민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효자 상품이고, 1985년 전국에서 두 번째로 생산한 생크림 케이크는 지금도 꾸준히 잘 나가는 스테디셀러다. 튀소처럼 특허 등록을 마친 판타롱 부추빵, TV 프로그램에서 이영자가 맛있게 먹은 명란바케트, 페스추리의 종류인 보문산메아리도 마니아 층이 두터운 인기 상품이다.
나 같은 오랜 단골은 기본 빵을 선호한다. 단팥빵·크림빵·크루아상·식빵 같은 흔한 빵을 주워 담는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으면 무조건 딸기 케이크를 고른다. 임 대표가 진즉에 말한 게 있다. 성심당의 최대 강점은 가성비라고. 성심당은 어느 빵집보다 기본에 충실한 빵집이다. 참, 요즘 맛 들인 메뉴가 있긴 하다. 주먹밥이다. 빵집이 밥도 잘한다.
🕵️전국 4대 빵집 순례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는 성심당의 사훈으로, 성경 말씀에서 인용했다. 중앙포토
이른바 ‘3대 빵집’ ‘4대 빵집’이라는 말이 있다. 긴 역사와 독자적인 맛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을 이른다. 주관적인 구분이어서 큰 의미는 없다지만 저마다 여행의 목적이 되기에 충분한 빵집이어서 이들 빵집을 찾아다니는 ‘빵지 순례’가 성행한다.
매출 규모로 보면 전국 4대 빵집은 정해져 있다. 대전 성심당을 비롯해 국내 최초의 빵집으로 알려진 군산 이성당, 옥수수빵이 유명한 대구 삼송빵집, 부산의 신흥 강자인 옵스 베이커리의 매출이 높다. 성심당을 제외한 빵집 세 곳은 서울에도 진출하는 등 프랜차이즈 사업에 열심이다. 동네 빵집도 프랜차이즈가 대세라지만, 전국에는 아직도 지역을 찾아가야만 맛볼 수 있는 동네 빵집이 몇 곳 남아 있다. 이들 순수 동네 빵집 중에서 세 곳을 소개한다. 아래 세 곳과 대전 성심당을 합치면 당대 최고의 4대 동네 빵집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는다. 모두 내가 참 좋아하는 빵집이다.
화월당의 볼카스테라. 손민호 기자
순천 화월당 1928년 문을 열었다. 일제 강점기 화과자 집이 화월당의 모태다. 일본인 가게에서 조천석(1914∼2009)씨가 일을 했었다. 해방 이후 조씨가 물려받은 가게를 그의 아들과 손자가 대를 이어 지키고 있다. 메뉴가 두 개밖에 없다. 볼카스테라와 찹쌀떡. 볼카스테라가 일본식 화과자의 부드러운 맛을 간직하고 있다면, 찹쌀떡은 ‘옛날 모찌’의 맛을 추억하게 한다. 두 메뉴 모두 숙성한 단팥 소가 꽉 차 있다. 가장 단순한 맛을 지켜온 게 화월당의 성공 비결이다. 여느 빵집과 다르게 생겼다. 가게 복판에 박스가 잔뜩 쌓여 있다. 예약 주문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주문이 들어온다. 장담하는데, 전국 최고의 찹쌀떡을 맛볼 수 있다.
안동 맘모스제과. 손민호 기자
안동 맘모스제과 양반의 고장 안동의 전국구 빵집. 1974년 문을 연 이래 구 안동역전 거리의 맹주 노릇을 하고 있다. 요즘의 대표 메뉴는 부드러운 크림치즈빵과 달콤새콤한 유자 파운드. 20년 전에는 단팥빵이, 10년 전에는 크로켓이 인기 메뉴였단다. 꾸준한 메뉴 개발이 50년 가까이 이어온 맘모스제과의 인기 비결이다. 2011년 『미셸린 그린가이드』에서 대전 성심당과 함께 소개되면서 지역 명물이었던 맘모스제과가 일거에 전국구 빵집으로 거듭났다. 주말이면 크림치즈빵만 하루에 5000개씩 나간다. 빵이 나오는 오전 11시가 피크 타임이다. 빵집 밖에도 긴 줄이 선다. 두고두고 기억이 나는 맛은 의외로 밀크 셰이크다.
목포 코롬방제과점의 새우바게트(왼쪽)와 크림치즈바게트. 손민호 기자
목포 코롬방제과점 1949년 문을 열었다. 목포 원도심의 상징 오거리 주변에 있다. 목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건, 이 집에서 미팅을 했다는 뜻이다. 코롬방이라는 이름이 어렵다. ‘비둘기’를 뜻한다고도 하고 ‘크림빵’이 어원이라고도 한다. 가게 앞에 비둘기가 그려져 있으며, 크림빵 종류가 유명하다. 특히 크림치즈바게트와 새우바게트는 빵이 나오는 시간마다 긴 줄이 선다. 한 사람이 2개까지만 살 수 있다. 최근 코롬방제과점 건너편에 문을 연 씨엘비 베이커리가 크림치즈바게트와 새우바케트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