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언어 / 김남권
부천역 앞 작은 카페에 벙어리 부부가 들어섰다
편지 쓰듯 종이에 마시고 싶은 메뉴를 적고
자리에 앉아 손말을 한다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
손짓 하나에 표정 하나 바쁘게 오고 가며
대화를 한다
분명히 크게 떠들고 있는데 조용하다
어디 가나 말이 넘쳐 나는 시절인데
티비를 틀면 정치인들이 금방 들통날 거짓말
잔치를 벌이는데
말을 저렇게 쉴 새 없이 해도 사방이 고요하다
살아가는 동안 나는 쓸데없는 말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던가
세상 어느 곳에 있더라도 둘만 아는 손말을 한다면
얼마나 깊고 고요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
그런 말을 나누며 은밀한 연애를 한다며
얼마나 좋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손 모양을 보고
입 모양을 보고 그 눈빛까지 그려내는
벙어리 부부가 머물다 간 자리에
에델바이스 한 송이 피어났다
ㅡ 계간 《시와소금》 2024년 봄호
-------------------------
* 김남권 시인(아동문학가)
1961년 경기 가평 출생.
2015년 《시문학》 등단.
시집 『불타는 학의 날개』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 『발신인이 없는 눈물을 받았다』 『나비가 남긴 밥을 먹다』 등.
이어도문학상 대상, 강원아동문학상, KBS창작동요대회 노랫말 우수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