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장 황하(黃河)는 불타고 있다! 수포(水泡)! 아직도 끊임없이 하얀 포말이 황하(黃河)의 수면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부글…… 부글……! 백무린, 그는 그저 무심한 시선으로 부글부글 끓는 강심(江深)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의 입에서 흐르는 듯한 나직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흠……!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내려는 것인가……" 부글부글……! 하얀 포말을 수면(水面)을 더욱 잘게 부숴뜨리고 있었다. 어느 한 순간, 촤 촤 악! 오오! 물기둥! 천공을 찢는 굉음을 토하며 거대한 물기둥이 부글부글 끓던 강심에서 솟구쳐 오른 것이다. 진정 놀라운 일이었다. 헌데, 거대한 물기둥의 꼭대기, 하나의 시커먼 흑영이 평지 위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일순, 백무린의 입가에 어린 조소가 피어 올랐다. "훗……! 드디어 나타나셨군……?" 그는 물기둥 위에 서 있는 흑영에게 시선을 모았다. '물귀신……! 생겼다면 아마도 저렇게 생겼겠지……' 흑영(黑影)의 모습은 실로 기괴(奇怪)한 모습이었다. 전신에는 번들거리는 검은 가죽옷, 발에는 마치 오리발을 닮은 물갈퀴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또한, 머리 부분에는 보기에도 섬뜩한 두 개의 핏빛 뿔이 돋아나 있었다. 이때, 솟구쳤던 물기둥이 가라앉으며 흑영의 입에서 엄청난 광소가 터져나왔다. "크카카카카…… 본좌는 혈천막주 아극탕웅(阿極脫雄)이다! 백무린…… 이곳에서 네놈을 맞이하겠노라!" 동시에, 흑영, 혈천막주 아극탈웅의 신형은 도도히 흐르는 황하의 물 속으로 잠겨들었다. "후후……! 나를 물 속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수작인가……?" 말끝을 흐리는 백무린의 두 눈에 섬칫한 녹광이 스쳤다. "혈천막주……! 너는 나의 상대가 되지 않는가." 성큼! 백무린은 거침없이 황하의 강심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황하의 싯누런 황토가 백무린의 가슴에 잔 물결을 일으키며 흘렀다. 그는 양손에 검(劍)을 수면 위에 비스듬히 눕힌 채 정면을 직시하였다. 문득, 그의 눈에 반작 기광(奇光)이 스쳤다. '왔군……!' 십 장 정면! 거대한 물고기를 연상케 하는 혈천막주의 괴이한 신형이 백무린의 가슴을 향해 빠른 속도로 쇄도해 들고 있었다. 순간, 휙! 휙! 백무린의 쌍검은 건결(乾結)과 곤결(坤結)을 가리켰다. "대해일섬도(大海一閃刀)!" 파 악! 백무린의 쌍검이 천뢰(天雷)를 동반하며 엄청난 광휘를 뿌렸다. 황하(黃河)를 통째로 절단낼 것 같은 검기가 방원 십 장을 혼돈 속으로 밀어붙였다. 촤아아아아아 촤! 그 순간, "크카카카……! 백무린! 황하의 물고기가 네놈의 시체를 기다리고 있다……!" 혈천막주 아극탈웅의 득의에 찬 광소성이 터짐과 동시에, 파츠츠츠츠츠 백옥빛 섬광! 혈천막주의 쌍수를 떠난 벽옥빛 섬광이 백무린의 전신 대혈로 겁나게 짓쳐들었다. '대단한 위력이다……!' 백무린은 적이 감탄하며 낭랑일성을 토했다. "천검쌍무구화환류(天劍雙舞九環流)!" 천검쌍무무결 중에 최강의 방어 초식인 천검쌍무구환류가 전개된 것이다. 찰나, 번 쩍! 촤 촤 악! 파파파팟! 벽옥빛 섬광과 검광이 어우러지며 주위를 암흑으로 바꿔버렸다. '허 억! 과연…… 놈의 명성…… 헛된 것이 아니었다……!' 혈천막주 아극탈웅은 기형이 뒤틀리는 것을 느끼며 짐짓 광소성을 터뜨렸다. "크키카카카카……! 제법이구나! 본좌의 해벽패도(海碧貝刀)를 막아내다니……" 동시, 그의 신형은 물 속으로 사라졌다. "해벽패도……?" 백무린은 떨어져 내리는 조그만 벽옥빛 물체를 잡았다. 벽옥빛 섬광, 그것은 바로 혈천막주가 떨쳐낸 벽옥빛 물체에서 발산된 것이었다. "훗……! 겨우 한낱 조개껍질에 불과한 것에 해벽패도란 거창한 이름을 붙이다니……" 백무린은 아연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때, 혈천막주 아극탈웅의 두 눈은 크게 부릅떠져 있었다. '저…… 저놈은 이미 만독불침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말인가……? 해벽패도……! 그 자체에는 가공할 독(毒)이 들어 있건만……' 그는 물속 깊숙이 잠수해 들며 음사한 살소(殺笑)를 떨올렸다. '크크크… 백무린! 네놈이 아무리 만독불침의 경지에도 달했다고는 하나… 네놈은 오늘 반드시 황하의 물고기 밥이 되고 만다… 반드시……' 그의 손에서는 황토물보다 더욱 누런 액체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 "일각… 혈천막주… 그는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조짐도 없다는 것은 보다 악랄한 살수를 전개하려는 계략…" 백무린은 면밀히 사방을 살피며 중얼어거렸다. "혈천막주 아극탈웅! 과연 수공(水功)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쉽사리 나의 공세를 피해 내다니……" 문득,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만심(慢心)…… 만심이 빚어낸 실수였다!' 바로 이 때였다. 확! 화르르르르! 백무린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방원 백여 장에 강렬한 불길이 솟구쳤다. 진정 기이한 일이었다. 물(水)에서 불길이 솟구치니…… "후후… 내 생전에 단 한 번의 실수를 범했구나…… 혈천막주! 그를 너무 얕보았다." 백무린은 입가에 자조의 미소를 흘리며 좁혀져 오는 불길을 주시하였다. 날름대는 불길은 급속도로 백무린과의 거리를 좁혀왔다. 바로 그때, "카카카카… 백무린 만금천화유(萬金千火油)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 백 장 밖, 혈천막주가 득의의 기색으로 광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캇캇캇캇… 모르면 잘 들어 두어라… 만금천화유는 아무리 깊은 물이라 하더라도 뜨겁게 펄펄 끓여 주지… 죽기에 알맞을 정도로…… 크카카카……" 열천막주 아극탈용! 그는 백무린의 죽음을 확신이라도 하고 있는 듯하였다. 만금천화유(萬金千火油)! 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만금천화유(萬金千火油), 팔백 년 전(八百年前), 당시 동해를 주름잡던 부영도(浮影島)가 하룻밤 사이에 한 줌의 잿더미로 화하였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는 부영도의 바위마저 녹아버린 가공할 화마(火魔)였었다. 헌데, 더욱 경악한 사실은 바로 당시 전 중원의 명성을 떨치고 있던 화제(火帝)에 의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만금천화유는 바로 화제가 말년에 만들어낸 고금제일의 화기(火器)였었다. '만금천화유! 들은 적이 있다! 한 번 불이 붙으면 무엇으로도 끌 수 없다는 고금제일의 화기……' 백무린은 냉철한 시선으로 좌우를 살폈다. 무서운 열기를 내뿜는 만금천화유의 불꽃이 백무린의 얼굴을 벌겋게 물들었다. "훗! 혈천막주! 너는 잘못 생각했다. 천하에 나를 가로막을 것은 없다!" 날름! 한 검의 불꽃이 백무린의 머리카락을 살짝 그슬렀다. 바로 그 순간, 백무린의 입에서 천공을 꿰뚫는 엄청난 외침이 터졌다. "천 마 파 천 황" 동시에, 고 오오오오! 사해(四海)를 갈아 엎을 듯한 엄청난 경기가 백무린을 중심으로 일었다. 찰나, 파 파 악! 최 악! 황하가 쫘악 반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불기둥! 화산(火山)의 폭발인가? 태산같은 불기둥의 황하의 중심에서 솟구쳤다. 바로 그 순간, 휘 이 잉! 한 줄기 강풍이 강심에 솟구친 불기둥에 맞닥뜨렸다. 다음 순간, 펑! 확 화르르 솟구쳤던 불기둥이 사그러들며 화려한 불똥이 황하의 하늘에 흩어지고 있었다. 장관(壯觀)! 두 번 다시 못 볼 화려한 불꽃놀이(?)였다. 불똥! 수천… 수만 개의 불똥들은 아름답고 현란한 곡선을 그리며 백 장여 밖에 정박해 있는 수많은 배 위로 떨어져 내렸다. 불똥… 그것은 엉뚱한 곳으로 떨어져 내려 새로운 불씨로 화하고 있었다. 탄다! 활활 화르르륵…… "불이다!" "배가 탄다" 불(火)! 그것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거세게 태우고 있다. 엄청난 불길! 바로 황하(黃河)의 수면(水面) 위에서 화려한 춤을 추고 있었다. 암권(暗卷)! 지금의 암천은 그 본래의 모양을 잃고 있었다. 불길! 암천의 한 부분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 강변 백사장, 백무린이 불어오는 강바람을 음미하며 황하 위의 불야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나직하나 힘있는 백무린의 나직한 음성이 황하의 수면으로 낮게 깔려 나갔다. "혈천막주 아극탈웅…… 너는 나와 똑같은 실수를 범했다! 바로 만심(慢心)과 자만이었다." 홀연, 백무린의 신형은 황하의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쏘아져갔다. 그 뒤로 그의 살기어린 음성이 음울하게 뒤따르고 있었다. "아극탈웅… 이제 너의 자만과 만심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오게 되었는지 똑똑하게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죽음(死)이란 경험을……" 죽음의 경험! 이미 그것은 결정된 것이다…… "크으으… 백무린… 그놈이 설마 그런 방법으로 빠져나가다니…" 아극탈웅! 그는 극심한 분노감에 전신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불! 불을 어서 꺼라!" 그의 분노는 영문을 모르는 수하들에게 퍼부어지고 있었다. 마치, 다 잡았던 고기를 놓치는 그런 허탈감과 분노에 이성마저 잃고 있었다. 헌데 바로 이 때였다. "아극탈웅… 아직 나하고의 일이 끝나지 않앗음을 잊지 않았겠지……" 차고 저미한 음성! 싸늘한 살기(殺氣)와 검기(劍氣), 아극탈웅의 안색이 찰나지간에 급변을 일으켰다. '백무린… 놈을 생각했는데도 놈을 잊고 있었다… 실… 실수다!' 철렁! 오장육부가 극심한 충격에 제자리를 이탈한 듯한 공포를 느꼈다. "으…… 백…… 백무린……" 아극찰웅의 뒤,그림자처럼 백무린이 조용히 서 있었다. "물에서는 네가 왕(王)이라면 육지에선 내가 신(神)일 것이다!" "……!" "대답하라! 칠기예전의 인물들은……?" 힘(力)! 항거할 수 없는 강력한 마력이 깃든 것은 음성이 아극탈웅의 뇌리를 강하게 지배했다. "모…… 모른다!" 아극탈웅은 백무린의 말에 저항이라도 하려는 듯 심한 도리질을 하며 쥐어짜듯 말했다. "아극탈웅! 잊었는가… 살삼림의 태상이 누구라는 것을……" "……" "말하라!" 단호한 백무린의 어조가 아극탈웅의 사고(思考)를 완전히 단절시켰다. "그들은… 그들은 천통운하 속에 있소이다……!" 탈진한 아극탈웅의 어조가 공허하게 울렸다. "아극탈웅…! 그대의 진정한 정체는……?" "아찰극…! 그분이 본좌… 나의 배다른 형님이외다……" 일순, 싸늘하게 굳어 있던 백무린의 입가에 신비한 미소가 맺혔다. '짐작했던 바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백무린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일순, 아극탈웅의 안색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살기… 검기…! 사라졌다… 허나… 나는… 나는… 빈껍데기…' 그는 백무린이 나타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끝났다……! 나의 모든 것은 이제 끝났어……' 그는 천천히 돌아서며 백무린을 응시하였다. "크크크…! 백무린…! 네놈은 너무나도 완벽하고 강한 놈이다… 나 혈천막주 아극탈웅…! 천하최고의 살수라고 자부하던 나…! 아극탈웅……!" 비특! 그의 신형이 무엇에 밀리기라도 한듯 휘청거렸다. '없다……! 그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백무린은 아극탈웅의 공허한 눈동자를 통해 그것을 간파하였다. "크크크……! 백……! 살수는 살수다운 죽음을 맞이할 때 가장 아름답고 갑진 죽음이 된다……! 알고 있는가?" 아극탈웅의 입에서는 탁하고 낮은 음성이 끊기듯 흘렀다. '죽음을 원하고 있구나……!' 백무린은 문득 아극탈웅의 몸에서 어떤 연민을 느꼈다. 헌데 바로 이때, "크캇캇캇캇……! 백무린! 나는 혈천막주 아극탈웅이다!" 아극탈웅은 광소를 터뜨리며 무서운 기세로 백무린에게 덮쳐들었다. '간교한 놈……!' 백무린은 내심 다급성을 발하며 검을 중간으로 겨누었다. 푸 욱! 상쾌한 마찰음, 그것은 백무린의 검이 아극탈웅의 심장이 깊숙이 꽂히는 음향이었다. '이…… 이런…… 스스로 검에 뛰어들다니……' 아극탈웅! 그는 스스로 백무린의 검끝을 향하여 자신을 내던진 것이었다. "끄 으! 백무린…! 이것이 바로 살수의 죽음…… 값지고 아름다운 죽음이지……" 풀리고 있었다. 아극탈웅의 눈빛이 무섭게 풀려가고 있었다. "황하…! 황하의 물 속은 마치 어머니의… 품속과도 같았는데…" 아극탈웅은 풀린 시선을 마지막으로 백무린에게 던졌다. "아극탈웅…! 그대의 부탁을 들어 드리겠소… 천하최고의 살수인 그대의 부탁을……" 백무린은 검을 뽐으며 천천히 말했다. "고…… 고맙소이다." 미소(微小)! 만족의 미소가 물결 번지듯 아극탈웅의 입가에 번졌다. 풍 덩! 황하의 수면 위에 또다른 파문이 조용하게 일었다. 바로, 아극탈웅의 시신이 일으킨 조그만 파문이었다. 황하(黃河)!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이 출렁이고 있었다. 불(火)! 아직도 황하의 수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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