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hief's Diary : 대재앙-
한참을 걸어가자 멀리서 경찰서 건물이 보였고, 그 근처를 뒤지자 로뎀나무라는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산영은 바깥에서 그 안을 한 차례 두러보았다. 그러던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저, 정말로 여자를 만나고 있잖아?!’
멀뚱히 바라보아야만 했다. 상대는 50대 정도의 여자였으나 형사처럼 여러 가지 변장도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자세히 살펴보면 이 사람이 변장을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실제 나이는 30대 중후반 정도 되려나? 아빠와 나이차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데 말이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들어가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느 순간 여자 쪽이 자신을 돌아보는 바람에 산영은 서둘러 몸을 숨겨야 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힐끔힐끔 안을 쳐다보았다. 영~ 수상하다. 수상해.
‘……누구지?’
영자는 창 바깥벽에 기대어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여자애를 빤히 바라보았다. 옷차림은 자기 아들딸이 있는 학교 교복과 같았다. 목 언저리에서 묶어 내린 긴 머리, 어느새 안경까지 꺼내 쓰는 여자애.
“……뭘 보십니까?”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밖에 이상한 게 있어서요. 지금은 지나갔지만…….”
영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본업에 들어갔다. 그녀가 핸드백에서 꺼낸 건 어제 유와 엘이 훔쳐 온 보고서였다. 강 형사는 보고서를 받아 주욱 훑어보았다. 수십억 원이 오간 보고서. 그 날 있었던 일과 그 날 오간 돈을 기입한 보고서의 액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걸로 비리사건의 증거를 잡았…….
‘……다기보다 이 여자가 정말 유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게 증명되는군.’
하지만 정체를 알 수가 없다. 강 형사 자신도 그녀가 변장한 거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 본 바탕의 얼굴이 짐작가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치밀하게 변장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자기보다 어릴라나. 그렇지만 이거 얼굴형도 짐작하기가 어려우니.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예? 아, 아뇨. 죄송합니다. 흠, 처음이라서 좀 당황했거든요.”
“호호, 의뢰가 처음이신 분들은 가끔 그렇죠. 생각보다 빨라서 놀라셨나요?”
“택배보다 빠른걸요. 하하하.”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둘의 눈동자는 아직 경계심까지 완전하게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강 형사의 입장에서 상대는 도둑 중개인이고, 영자의 입장에서 상대는 도둑 잡는 형사였던 것이다.
“뭐 보고서도 얻었으니, 의뢰비는 얼마를 받고 싶으신 건가요?”
“보통 저희는 20에서 80사이의 돈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국정 감사원 일은 특히 힘들었다 하더군요. 따라서 110 이상으로 해 주셨음 합니다만…….”
“110이라……. 90은 안되나요?”
“110이하는 안 됩니다.”
“으음……. 그럼 102에서 합의 봅시다. 그 이상은 저도 어렵습니다.”
아예 못을 박아 버리는 강 형사의 말에 영자는 슬쩍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상대가 그 이상을 내지 못한다니…….
“알겠어요. 그럼 102에서 마무리를 짓죠.”
동시에 오가는 돈과 보고서. 순간 산영은 또 다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 많은 돈이 어디서 난 거야? 그리고 저 보고서는…….
“아참, 한 가지 더 의뢰할 게 있습니다만…….”
이어 영자에게 재차 말을 꺼내는 강 형사의 모습을 보며 산영은 온갖 망상을 일삼았다. 매춘? 새 엄마? 암흑가의 거래? 물론 지금은 일단 지켜본다지만, 사실을 알고픈 마음은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 이번에도 돈이 오가는 게 아닌가.
“…….”
결국 고민 고민 끝에 그녀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마침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산영이 그것을 쳐다보는 동안 강 형사는 영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선금까지 드렸으니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이르면 오늘 시행되겠군요.”
“그렇습니까? 그럼 나머지 돈을 치루는 건 내일 이 장소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영자는 까딱 인사를 한 뒤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잠시 그 자리에 멈춘 그녀는 강 형사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뒤에 있는 여고생은 딸인가요? 귀엽군요.”
그리고 또각또각 사라지는 영자. 순간 강 형사는 자신의 딸이 와 있다는 듯한 그녀의 말에 카페 입구 반대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산영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산영, 너 왜 학교 안 가고 여기에…….” 강 형사는 산영에게 한 마디 다그치려 했다. 그러나 산영의 얼굴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강 형사는 왜 우냐고 그녀에게 핀잔을 주려 했으나, 산영은 마치 군대 떠나는 애인을 붙잡는 것처럼 그의 품에 안겨들며 강 형사에게 말했다.
“아빠, 나, 나 아르바이트라도 할 테니까, 아님 고등학교 자퇴해도 되니까, 제발, 제발, 제발 장기 매매만은 하지 마세요! 네?”
“뭐, 뭣? 장기매매?”
지금의 봉급으로는 고등학교 학비에 집세까지 내는 게 빠듯하긴 했다. 그런데 장기매매라니. 혹시 저 중개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착각이라도 한 걸까?
……하지만 착각이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산영이 아바의 가슴팍에서 서럽게 울어대는 까닭이었다.
“으하하하! 장기매매? 강 과장님이?”
“야이 맹꽁아, 착각할 게 따로 있지, 지 애비가 형사인데 딴 소리를 하고 있어.”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는 다른 형사들의 행동에도 산영은 주스를 담은 종이컵만 우물댈 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얼굴에는 불만이 역력했지만 차마 그들의 말에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아빠를 범죄자로 내몰아버린 꼴이니까. 그것도 형사인 아버지를.
“그만 둬, 얘도 얼마나 내가 걱정스러우면 그랬겠어.”
“나 참, 과장님이 그러니까 애가 형사물만 좋아하고 학교도 안 가죠. 뭐 변명거리가 있다지만, 나 같음 다리몽둥이를 그냥…….”
“그러니까 김씨가 무식하단 소리를 듣는 거야.”
“뭐요? 강 과장님은 이 애를 그냥 내버려 둘 심산이십니까?”
“엄마 없이 큰 애인데 내가 자애심까지 발휘해야지.”
강 형사의 말에 일순간 사무실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눈 내리는 밤, 불타는 승용차, 차가운 길거리, 아기의 첫 울음.
쪼르르르
“…….”
사무실 안에는 주전자 뜨거운 물 따르는 소리만 은은했다.
“……저기, 아빠.”
“왜?”
산영이 입을 열자 강 형사가 짤막하게 반문했다. 그녀는 종이컵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장기매매가 아니라면,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에요?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강 형사는 종이컵을 티스푼으로 몇 차례 휘휘 저었다. 커피 특유의 향기가 물씬 풍겨와 코 끝을 간질였다. 그러나 벽시계의 초침은 초조하게 강 형사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룩……. 음, 좀 싱거운데.”
……왠지 딴청을 부리는 그. 결국 산영이 다시 한 번 입을 열려 했지만.
“일전에……. 아니구나, 꽤 오래 전 일이군. 내가 막 형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했을 때 처음 접한 일이 뭐냐면, 한 좀도둑의 수사였어. 단순 2인조에 범행도 초보적인 수준이라서 금방 잡을 수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의외로 뒤처리는 완벽해서 결정적인 증거가 무척 부족했어. 과장인 만큼 여러 가지 일이 겹치기도 해서 이 좀도둑 사건은 딴 사람에게 넘어가고 말았고, 그마저도 이내 미해결 사건이 되고 말았지.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도둑 사건이 빈번하게 올라왔단다. 규모도 점점 커졌고 횟수를 거듭할수록 도둑질에 능숙해지는 일면도 있었지. 꼬투리도 잡지 못한 것은 여전했어.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난 여러 면에서 그들의 행방을 수소문한 결과 간신히 그들의 닉네임을 알아냈단다. 유엘 남매의 시작이랄까. 그게 몇 년이 지나 이제는 내 전담 사건이 되어 버렸어.”
강 형사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다 한 차례 커피를 들이마신 그는 마저 입을 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유엘 남매의 홈페이지를 발견했어. 그 곳을 잘 살펴보면 ‘의뢰’를 하는 곳이 있는데, 오늘 만난 여자는 바로 그 의뢰를 전하는 ‘중개인’이야. 의뢰 하나를 맡겨 보니까 곧바로 매스컴에 뜨더군.”
“그, 그럼 비리 보고서를 훔쳐오게 한 건…….”
“그래, 나야.”
잠시 일동은 모두 경악했다. 강 형사는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그거 범죄조장 아닌가요? 자칫하다간 범인들보다 더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데.”
“아마 그럴 테지. 형사과장 자리를 잃고 철창에서 썩든지, 심하면 청부살인을 당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난 그들을 내 손아귀에 넣은 거야. 형사인데도 자신들에게 의뢰를 맡겼다는 믿음, 그리고 난 언제든 그들을 체포할 수 있는 순간을. 물론 체포되고 난 뒤에 그들이 날 걸고넘어지면 나 역시 구속될지도 몰라. 하지만 난 이미 시작했다.”
“……시작했다니요? 아빠, 도대체 뭘…….”
산영은 자신의 생각이 들어맞지 않길 바라며 아빠에게 되물어 보았다. 강 형사는 조용히 그녀에게 대답했다.
“시간은 오늘 밤, 장소는 국립 미술관, 목표는 고대인의 눈물이란 석조 조각. 이미 경찰과 군대에 말해 정예병만 뽑도록 협조를 부탁했어. 오늘 밤 다섯 시면 모두 집결할 거야.” “아빠! 아빠는 왜 자기를 내면서까지……!”
다시금 산영이 조금씩 울먹이기 시작했다. 강 형사는 조용히 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속삭이는, 고요한 목소리.
“산영아. 이번에 유와 엘을 잡으면, 우리 오랜만에 유원지로 놀러 가자. 내가 과장이 되 이후로 한 번도 못 가 봤지? 아예 거기서 하루 늘어지게 놀아 보자고. 응?”
“싫어요! 난 그런 데에 가고 싶지 않단 말에요!”
“으음, 그럼 영화를 보러 갈까? 네가 좋아하는 스릴러물. 아니면 어디 멀리 가서 낚시라도 배워 볼래? 이래 뵈도 아빠는 낚시 선수란다.”
“영화도 낚시도 싫다고요! 아빠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에요?”
강 형사는 품에 묻어두었던 딸을 잠시 떼어 지그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롱진 눈물. 문득, 언젠가 엄마의 묘지에 갔을 때의 어린 그녀와, 지금 그녀의 얼굴이 겹치는 듯한 묘한 환상을 느끼며, 그는 딸의 별을 조심스레 훔쳐 주었다.
“너와 내가 이 땅에 남은 유일한 혈육이라는 걸 안다. 난 외아들이고, 엄마는 고아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보다 먼저 돌아가셨으니 이 세상에 남은 건 우리 둘뿐이지. 그런 내가 널 두고 먼저 갈 것 같으니?”
도리질치는 산영.
“그러니 조그만 기다리렴. 내가 이번에 유엘 남매를 잡고 나면, 그 때엔 우리 둘이 어디로든 놀러가자꾸나. 그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수 있지?”
“……응.”
“그래, 그래. 그러고 보니 많이 컸구나. 어릴 때는 귀여워서 품에 안고 자기도 했는데.”
“……아빤 너무 짓궂어요.”
눈물 채 마르지 않은 얼굴을 붉히며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강 형사도 따라서 미소지어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 김씨. 이따 얘 정신 좀 차리면 학교로 돌려보내 줘. 그리고 자네는 날 따라오게.”
“아, 옛.”
사무실 밖으로 나서는 강 형사의 뒤를 신참 형사가 따라왔다. 산영은 아빠가 꼭 돌아올 거란 믿음으로 그의 등을 바라보며 헤실 웃었다.
그러나 강형사는 신참 형사에게 자신의 유언을 남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Tree.Sky.River입니다. 음. 여러모로 기대기대+ㅅ+ 산영의 기억과 이라의 괴상한 취미(?), 은경과 시란의 관계를 좀 더 주목해 주시면 좋을 듯'ㅂ'.
이번 편에는 그다지 특별한 건 없습니다. 다만 다음 편에 대한 예비라고나 할까... 좀 문제가 많아질 듯도 한 다음 편이군요[ㄷㄷㄷ;]
슬슬 강 형사의 끝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
-----다음편 예고-----
#7.유인(誘引)
"입구 근처에 순찰병력. 감시 카메라로 볼 수 있나요?"
"그보다 오빠, 입구보다 다른 길로 가는 게 어때?"
"...됐다. 아무도 없어."
"여기 있는 거 다 안다! 썩 나오지 못해?"
"...갔어?"
"엠, 이 카메라의 범위가 어디에요?"
"...여기 뭔가 이상해. 문 열지 말자."
"당신이 우릴 이 꼴로 내몬 의뢰인인가요?"
"이대로 있으면 어떻게든 빠져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이익, 이 쥐새끼들이...!"
"항복해라!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
"...너 어떻게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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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풍괴도 잔느가 떠오른 건 왜일까..
...그건 보지도 못했...[먼산]
잘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