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평의 가을은 아름답다. 메밀꽃이 장관을 이룬다. 작가 이효석은 봉평의 메밀꽃을 보고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표현했다. 봉평은 이효석 작가의 고향이자,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곳이다. 9월 평창효석문화제가 시작되니 지금이 봉평 여행의 적기다.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메밀 파티는 즐겁다. 평창군 내에 있는 가을 명소와 인접해 있다는 점도 봉평 여행을 더욱 알차게 만든다. 봉평에서 시작한 평창 가을 여행은 눈 호강의 연속이다. 아직 여름 더위가 한창 아니냐고? 모르는 소리, 속는 셈 치고 겉옷부터 챙기시라. 평창의 가을은 이미 시작됐다.
봉평다움 가득 '평창효석문화제'
여름이 막바지에 다다르면 봉평에선 축제가 열린다. 평창효석문화제다. 메밀꽃이 절정을 이루고,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인 이효석을 기리기 위해서다. 올해 평창효석문화재는 9월 8일부터 9월 17일까지 진행된다.
평창효석문화제는 기존 지역 축제와 다르다. 지자체가 아닌 지역 주민 주도로 만들어진 전국 최초 축제다. 지역 주민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봉평에 거주하는 이호순 허브나라농원 대표는 "평창효석문화제는 주민 주도 국내 1호 축제"라며 "수십 년이 흘러 초창기와 모습이 조금은 다르지만, 돈을 주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효석평창문화제는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1998년 봉평 주민 10여 명이 지역 특산품인 메밀을 내세워 쇠락해 가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움직였고, 일본의 도야마현 도가촌에서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도가촌은 매년 2월 '소바 축제'를 여는 일본의 작은 마을이다. 1000여 명의 주민에 불과한 곳이지만 축제가 진행되면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다. 당시 봉평의 인구는 1만 명에서 4000명으로 줄어들고 있던 상황.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인구 확대 방안 노하우를 배우는 게 필요했다. 그런데 도가촌 주민의 반응은 말 그대로 '어리둥절'. 별다른 노하우는 없다고 했단다. 소바 축제는 한 번이라도 마을을 방문한 이들을 위해 일 년에 한 번 감사한 마음을 담아 대접을 하기 위한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산골 오지에서 어떻게 살고, 먹고, 노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마을 잔치라는 것이다. 나눔을 기본으로 하는 만큼 정성 가득 담은 음식의 값도 평소보다 오히려 저렴하게 받고 있다고 했단다. 소박한 마을 잔치에 매료된 이들은 매년 축제를 찾는 단골이 됐고, 사람이 사람을 모았다.
축제 운영 노하우를 배우러 먼 길을 떠난 봉평 마을 주민들은 무릎을 '탁' 쳤다.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보다 메밀국수를 삶고, 전과 떡을 만드는 등 소박하고 촌스럽지만 가장 봉평다움을 보여주자."
지역 주민의 십시일반으로 축제 자금을 마련했고, 축제는 '찐' 봉평의 사는 모습에 초점을 맞춰 시작됐다. 마땅히 보여줄 게 없었지만, 메밀 관련 먹거리를 대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은 대학 풍물패의 공연이 전부였다.
'누가 오기나 할까'라는 걱정도 잠깐, 반응이 좋았다. 축제 첫해인 1999년 5만 명이 찾았고 해를 거듭할수록 15만명, 30만명 등 방문객이 늘었다. 지역 주민이 주도한 축제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지자체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메밀밭뿐이던 곳에는 의미 있는 관광지가 생겼다.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먹고, 마시고, 춤추며 한바탕 즐기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다. 하얀 메밀꽃이 피어있는 동안 봉평은 낮과 밤 모두 눈부시게 아름답다.
'커피와 쇼팽, 그리고 그' 이효석 문학관
봉평에 왔으면 가산 이효석 작가와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현실적인 만남은 어렵지만,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와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봉평에는 이효석 문학관, 이효석 문학의숲, 효석 달빛언덕이 있다. 이효석 문학관에서는 작품 일대기와 육필원고 유품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생애와 문학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실과 다양한 문학체험을 할 수 있는 문학교실, 학예연구실 등을 둘러보는 게 가능하다. 문학전시실은 그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볼 수 있으며 재현한 창작실, 옛 봉평 장터 모형, 문학과 생애를 다룬 영상물, 어린이용 영상물 등을 관람한다. 학예연구실에는 이효석과 관련된 자료를 준비해 그의 문학세계를 깊이 연구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학정원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학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가산 이효석이 평양에서 살던 집(푸른집)을 재현, 그의 생활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다. 가산 이효석은 생전 커피와 쇼팽의 음악을 즐겨들었다고 하니 관련 소품을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이효석 문학의숲은 '메밀꽃 필 무렵' 소설 배경지인 봉평의 정취를 느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소설 속 장터, 충주집, 물레방아 등이 재현된 곳이다. 숲속 내 넓은 습지에는 각종 희귀 습지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계곡에는 청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가재도 다량 서식하고 있다. 최근 강원도로부터 '효석 산림욕장'으로 지정받았다. 효석 산림욕장은 평창읍 남산산림욕장과 진부면 석두산, 대화면 매봉산, 진부면 오대산 명상 숲 산림욕장에 이어 평창군에서는 5번째 산림욕장이다.
봉평면 창동리에 자리한 '효석 달빛언덕'은 이효석 선생의 생애와 근대문학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문학 테마 관광지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을 모티브로 책 박물관, 근대문학체험관, 이효석문학체험관, 나귀광장&수공간, 테마형 경관, 효석광장 등으로 이뤄졌다.
근대문학체험관은 1920~1930년대 이효석 작가가 활동했던 근대의 시간과 공간, 문학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한국의 근대 문학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꿈꾸는 달은 이효석의 기억과 추억들을 들여다볼 수 있으며 카페, 작은 도서관, 기념품 판매점 등 휴게공간이 함께 마련됐다. 각종 문화행사와 공연이 열릴 예정인 나귀광장&수공간과 효석 달빛언덕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는 있는 달빛나귀 전망대도 있다. 사계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꿈 꾸는 정원과 창밖의 달 모형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연인의 달, 달빛나귀 전망대와 꿈꾸는 달 카페의 옥상을 잇는 하늘다리, 달빛광장 등이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광천선굴·허브나라 등 볼거리 풍성
붕평을 둘러본 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인근에 있는 허브나라공원과 광천선굴 어드벤처 테마파크 등을 둘러보면 된다.
허브나라공원은 1996년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허브 테마 농원이다. 허브와 꽃을 재배하는 농지와 허브를 보며 휴식할 수 있는 관광농원으로 구성됐다. 라벤더, 세이지, 메밀 등 150여 종 허브를 테마별로 나눈 10여 개의 테마정원은 허브에 대한 각각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색색의 허브와 꽃이 피는 팔레트 가든, 셰익스피어 작품에 언급된 허브로 꾸민 셰익스피어 가든, 꿀이 많아 벌과 나비가 좋아하는 밀원식물을 심은 나비가든 등 저마다 특색이 뚜렷하다. 농원 내에는 정원, 유리온실과 건강한 허브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및 카페, 펜션을 비롯해 허브박물관, 터키갤러리, 만화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마련됐다. 허브나라공원 초입에는 붉은색 털여귀가 인상적이다. 털여귀는 메밀과 같은 마디풀과다. 메밀꽃도 원산지인 중앙아시아 고산지대에서는 빨간색이지만 재배 지대가 낮아질수록 색이 흰색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허브나라농원은 사전 예약 등을 통해 이호순 원장이 직접 해설하는 투어프로그램도 운영중이라고 하니, 알찬 여행을 즐기기 위해선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봉평 인근에 있는 광천선굴 어드벤처 테마파크는 이색 관광지다. 평창군에 자연동굴이 많지만, 사람이 둘러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데크 길을 놓아 관람객의 편의성을 높였고, 박쥐 등도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는 천연학습장이 된다.
광천선굴은 전체 규모 850m로 주굴(주요 통로) 330m, 지굴(가지처럼 뻗어진 통로) 520m이다. 입장 전 방문자센터에서 광천선굴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내부에서 무엇을 관람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으니 미리 읽어 본 뒤 관람하는 게 좋다. 손전등을 챙기면 보다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