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집보살학론 제1권
진보수학품
내가 듣자니 지옥은 매우 험하고 두려워 맹렬한 고통이 끝없이 오래 타오른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예전부터 마음이 적정하지 않았던 적이 없어 많이 듣는 것[다문]을 좋아하여 위대한 법에 친숙하였다.
듣고 나서는 모든 죄악을 멀리 여의며,
이전에 지은 죄악을 참회하여 남음이 없었으며
나는 선한 이로움 [선이]에 대하여 일찍이 얻지 못한 것을 얻어 그중에서 조금도 감소된 바가 없다.
보살의 미묘한 즐거움은 수승하여 다함이 없으며 오직 부처님만이 빠짐없이 평등한 도리를 증득한다.
생각하기도 어려울 만큼 희유한 법보 중에서 원하건대 찰나 동안이라도 즐거이 내 말을 들어보라.
용과 하늘 여덟 부류[팔부]의 모든 권속이 다 함께 목마르게 우러러보고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켜 환희하며 자세히 살펴 안온한 말을 받아들이라.
여래의 정법이 불자(불자)에게 미쳐 부처님의 계율에 잘 들어가 받은 몸 내가 대선의 말을 모아 해설하려고 하니 두루 즐거워하며 정성스럽게 공경하고 예배하라.
나는 옛적에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여
가르침[교]도 없고 언변[언]도 없으며 능숙하지도 못하였고
또한 함생에게 미치는 이로움도 없었으며
오직 스스로 일심을 법우로 삼았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청정한 법을 좋아하여
모든 선근을 장양 시키기 위하여
나와 같은 무리가 이 글을 보고
의미를 습득하지 못했다면 마땅히 그를 위해 설명하리라.
말하자면 사부의 의미를 성취시키고자 하는 자는 찰나 사이에 구족 하기 어렵다.
만약 이 안온한 처소를 사유하지 않는다면, 이 정 등한 행위[정등행]가 마땅히 어떻게 있겠는가?
화엄경에서 말한 바와 같다.
선재는 승열바라문의 처소에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인간의 몸을 얻는 것이 어렵고, 모든 곤란을 벗어나는 것이 어렵고, 곤란이 없는 것이 어렵고, 찰나에 청정을 구족 하는 구족 하는 것이 어렵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는 것을 만나기 어렵고, 모든 근을 구족 하는 것이 어렵고, 불법을 듣는 것이 어렵고, 선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진실한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이치답게 바른 가르침을 받는 것이 어렵고, 바른 직업[정명]을 얻는 것이 어렵다.
이 몇 가지 바른 행위를 알고 나서 어떤 대사가 이와 같이 관찰한다.
“나는 다른 이를 모든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자기 몸만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찌 수승하고 미묘하지 않겠는가?
오직 시라를 보호하여 유정 세계가 다하도록 모든 고통의 근본을 뽑아버리고, 미묘하고 즐거운 행위를 바라며, 보리의 원인을 세우고, 견고한 의지를
일으켜 신근을 파괴하지 않는다.
보광명다라니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모든 부처님 및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또한 불자가 행하는 도를 믿고,
가장 뛰어난 대보리를 믿으며
보살은 이 처음 발심한 믿음으로써
선도하는 공덕의 어머니로 삼고
일체의 수승하고 선한 법을 길이 배양하며,
의혹의 그물을 끊어 없애고 애욕의 흐름을 다 없애고
믿음은 능히 안온하게 인내하는 행위를 나타내 보인다.
믿음은 더러움이 없어 마음을 청정하게 하며,
아만을 제거하고 공경을 근본으로 한다.
믿음은 청정한 손처럼 원인의
일곱 가지 성스런 법의 재물인 무상행을 거두어 지닌다.
믿음은 능히 일체를 환희하며 베풀게 하고,
믿고 기뻐함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간다.
이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출생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라서 모두 통달한다.
믿음의 근본은 광명이 지극히 청정하고 예민하여
여실하게 번뇌의 근본을 영원히 단절한다.
믿음의 힘은 견고하여 능히 파괴할 수 없다.
오직 부처님의 공덕을 살펴서 믿는다.
믿음은 상응하는 것과 상응하지 않는 것에서
찰나에 모든 오염된 집착을 멀리 여읜다.
믿음은 능히 모든 악마의 경계를 초월하여
가장 뛰어난 해탈도를 나타내 보인다.
믿음은 파괴할 수 없는 공덕의 종자이다.
말하자면 능히 보리의 싹을 증장시킨다.
믿음은 수승한 지혜를 출생하는 문으로서,
응당 시방의 모든 깨달은 자를 나타나게 한다.
만약 항상 불보를 깊이 믿으면,
계를 지키지 않고 배우지 않는 것을 모두 멀리 여읜다.
만약 능히 계를 지키지 않고 배우지 않는 것을 모두 멀리 여읜다면,
이 사람은 깊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만약 항상 법보를 깊이 믿으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싫어함이 없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싫어함이 없다면,
그 가르침에 있어서 부사의한 것을 믿고 이해하게 된다.
만약 항상 승보를 깊이 믿으면,
곧 청정한 대중에게서 게을러 물러나는 일이 없다.
만약 청정한 대중에게서 게을러 물러나는 일이 없다면,
곧 믿음의 힘[신역]에 있어서 능히 동요되는 일이 없다.
만약 믿음의 힘에 있어서 능히 동요되는 일이 없다면,
곧 모든 근이 청정하고 밝고 예리하게 된다.
만약 모든 근이 청정하고 밝고 예리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모든 나쁜 친구를 멀리 여읜다.
만약 사람이 모든 나쁜 친구를 멀리 여의면,
선한 법의 친구와 어울리게 된다.
만약 선한 법의 친구와 어울리게 되면,
곧 항상 광대한 선을 수습한다.
만약 항상 광대한 선을 수습한다면,
곧 큰 원인의 힘[대인역]을 분별하게 된다.
만약 큰 원인의 힘을 분별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믿음과 이해는 가장 수승하게 된다.
만약 믿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수승하게 된다면
곧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염려하여 보호한다.
만약 모든 부처님이 항상 염려하여 보호한다면,
곧 능히 보리심을 일으킨다.
만약 능히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부처님의 공덕에 대하여 부지런히 수습한다.
만약 부처님의 공덕을 부지런히 수습한다면,
곧 여래의 집안에 태어나 머물게 된다.
만약 여래의 집안에 태어나 머물게 된다면,
집착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에서 해탈한다.
집착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에서 해탈하고 나면,
곧 깊은 마음으로 믿음이 청정하게 된다.
만약 깊은 마음으로 믿음이 청정하게 되면,
곧 가장 뛰어나고 가장 수승한 것을 얻는다.
만약 가장 뛰어나고 수승한 것을 얻고 나면,
항상 깊고 미묘한 바라밀을 행한다.
만약 깊고 미묘한 바라밀을 행한다면,
곧 능히 마하연을 깨닫는다.
만약 능히 마하연을 깨닫는다면,
곧 여법하게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을 안다.
만약 여법하게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을 안다면,
곧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요동하지 않게 된다.
만약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요동하지 않게 되면
곧 항상 부처님의 부사의를 관찰한다.
만약 항상 부처님의 부사의를 관찰한다면,
부처님에 대하여 생하는 바도 없고 머무르는 바도 없다.
만약 부처님에 대하여 생하는 바도 없고 머무르는 바도 없다면, 곧 이 법이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것을 안다.
또 모든 유정과 이생으로 태어난 몸 등은, 이와 같은 법에 대하여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기 어렵다.
만약 깊은 마음으로 복의 자량을 청정하게 심는다면, 이 믿음의 원인의 힘[신인역]에 의하여 시방불찰의 미진수의 중생겁에 머무르게 되고, 모든 미묘하고 즐겁고 수승하고 선한 복의 과보를 받는다. 이와 같은 법에 대하여 마땅히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십 법경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믿음은 가장 수승한 승이 되어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는 데에 실어 나른다.
그러므로 믿음 등의 행위에
지혜로운 자는 응당 친근해야 한다.
만약 사람이 신근이 없다면,
모든 백법을 생하지 못한다.
비유하면 불에 타버린 곡식의 종자가
또한 싹과 줄기를 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 대선유경에서 말한다.
그때 여래는 아난에게 경계하여 말씀하셨다. 믿음의 법 중에서 그와 같이 요지 하고, 마땅히 받들어 행하여야 한다.
이 믿음을 행하면 찰나 사이에 신근이 견고하게 된다. 곧 보리심이 견고해져서 능히 일체 복의 과보를 거두어들인다.
사자왕소문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그때 성하나태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여야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태어난 처소에 머물면서 항상 모든 법을 좋아하며 거두어들이게 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들을 해탈시키고자 하는 자는 항상 겸손과 공경을 생하고 보리심을 일으키라. 이것을 곧 항상 모든 법을 좋아하여 거두어들이게 된다고 한다.
또 화엄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선남자야, 보리심은 마치 종자와 같으니, 능히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을 생하기 때문이다.
보리심은 마치 좋은 전답과 같으니, 능히 중생의 백정법을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마치 대지와 같으니, 일체 세간이 의지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보리심은 마치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으니, 모든 보살을 훈계하여 지도하고 수호하기 때문이다.
비사문과 같으니, 능히 일체의 빈궁한 괴로움을 단절하기 때문이다.
마니주와 같으니, 일체의 모든 의로운 이로움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보리심은 마치 현병과 같으니, 일체의 선한 희구를 원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독고저와 같으니, 마침내 능히 번뇌의 원수를 쳐부수기 때문이다.
마치 바른 법과 같으니, 능히 심원한 마음의 모든 작의를 단절하기 때문이다.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으니, 능히 일체 번뇌의 머리를 단절하기 때문이다. 보리심은 마치 예리한 도끼와 같으니, 능히 일체의 모든 괴로움의 나무[고수]를 자르기 때문이다.
마치 병장기와 같으니, 일체의 극심한 괴로움의 곤란함을 방어하기 때문이다.
마치 낚싯대와 같으니, 윤회의 바다에서 중생을 빼내기 때문이다.
거대한 풍륜과 같으니, 능히 빠른 회오리바람이 되어 일체 장애되는 구름과 안개와 잡초를 쓰러뜨리기 때문이다.
보리심은 마치 총림과 같으니, 보살의 모든 행원을 모아 쌓아 두기 때문이다.
부처님 탑묘와 같으니, 일체 세간의 천ㆍ인ㆍ아수라 등이 존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보리심은 이와 같이 한량없이 수승한 공덕을 성취한다.”
어떻게 모든 이생들이 보리심을 발하는 것을 또 아는가? 이 중에서 성언량을 인용하는데, 한두 경전에서 밝히는 바가 아니다.
유마힐소설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비록 신견을 일으키는 것이 수미산과 같다고 하여도 오히려 능히 큰 보리심을 발하여 불법을 생한다.”
또 보협경에서 이 이생의 보살의 의미에 대하여 말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가릉빈가새의 새끼가 아직 알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에 이미 능히 미묘한 음성을 짓는 것과 같다.
비록 아견을 단절하지 못하여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무명의 알에 처하였어도 이미 능히 모든 부처님의 미묘한 음성을 짓는다.
말하자면 공ㆍ무상ㆍ무원의 해탈 등의 음성이다.
또 수설제법경에서 말한다.
“그때 승혜보살은 대지의 감 중에서 열반에 들었을 때, 큰 성읍에서 수생을 획득하였다.
그는 공성(공성)에 대하여 믿고 이해하여 대치하였기 때문이다.”
또 『입정부정인경(입정부정인경)에서 말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 것을 양거행의 보살이라고 하는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다섯 불찰의 미진수의 세계를 지나고자 하여 이 사람이 그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길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 아득히 오래된 세상을 경과하여 백 유선나를 가서 큰 풍륜을 만나고, 이것을 인연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팔만 유선나를 후퇴한다. 나중에 이 사람이 그 세계에서 이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오랜 겁이 지나면 능히 한 세계를 지나갈 수 있겠는가?’
문수사리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대승의 사람이 보리심을 발하고 나면, 응당 성문승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지 말아야 한다.
혹은 여러 성문들과 함께 지내며 성문승을 수습하고, 혹은 스스로 심원한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이와 같은 성문승에 있어서 가르침을 받고, 나아가 깨달아 이해하여 그 지혜를 얻는다면, 이것을 인연으로 위없는 도에서 곧 퇴보한다.
이 보살이 보리심에서 얻게 되는 지혜로운 근기[혜근]와 지혜의 눈[혜안]을 그는 전부 파괴한다.
문수사리여, 나는 이것을 양거행의 보살이라고 한다.
만약 보살이 대승을 좋아하고 공성을 믿고 이해하면, 믿고 [신] 이해하고 [해] 행하는 [행] 데 있어서 원만함을 획득한다.
이 성언량은 오직 믿고 이해하고 행하는 보살[신해행보살]만이 이와 같은 일을 본다.
보운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무수한 총지ㆍ삼마지문ㆍ신통유희ㆍ해탈ㆍ지혜ㆍ명의 무변한 법을 취합함으로써 평등하게 일체의 어리석은 범부의 행위와 과보를 초월하고, 그리하여 후제에 이르기까지 이득의 양성을 꾀하지 않으며, 구지겁에 있어서 세간에서 얻어 수용하는 자재와 도구에 마음이 탐착 하지도 않고 또한 분별하지도 않으며, 연꽃을 펼친 것처럼 구족 하여 장엄한다.
또 한량없는 백천 굳이 나유다겁 동안 대승에 안주하여 수승한 의미를 환히 보고, 복과 지혜의 자량이 감소되지 않는 것을 희구하며, 그 출리에 있어
이전에 수습한 백천 가지 상응하는 행법[행문]을 모두 구족 한다.”
어떠한 것이 요의인가? 말하자면 처음 발한 보리심은 이 지에 머무른다고 말한다.
불료의는 적은 분량의 표상이 의혹이 없는 것을 얻는다.
이 성언량은 신ㆍ해ㆍ행의 법에서 생하는 말의 의미이다.
중간ㆍ자세함 [광]ㆍ대략[약]에서 신ㆍ해ㆍ행을 요지 하기 때문이다.
또 다음 여래비밀경에서 말한다.
“그때 아사세왕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 보리심을 마땅히 어떻게 발하여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말하자면 심원한 마음이 물러나지 않는 것이오.’
왕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여야 심원한 마음이 물러나지 않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말하자면 능히 큰 자비를 일으키는 것이오.’
왕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능히 큰 자비를 일으키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말하자면 모든 중생에 대하여 싫어하여 내버려 두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오.’
왕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모든 중생에 대하여 싫어하여 내버려 두지 않는 마음을 얻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말하자면 만약 자기의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염오 하여 버리지 않는 마음을 얻는 것이오.’”
여기에서 보리심이란, 말하자면 큰 자비를 힘써 발하는 것이다. 환희하여 공경하고 애호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만약 여래의 가르침에 상응하여 의지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출리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보리심을 보는 것은 꾸짖고 싫어해야 한다.
범본의 내용은, ‘여기에서 보리심의 의미를 보게 된다. 그러나 보리심이 그 외의 방법으로 발기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십 법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체성보리심을 발할 때, 여래 및 성문들의 교화를 만나게 되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힘써 발하면 이것을 최초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보리심을 발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만약 보리 및 보리심을 설하는 것을 듣고 나서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면, 이것을 두 번째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보리심을 발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만약 그 중생으로서 귀의함이 없고 구함이 없이 이 두 가지를 보고서 큰 자비심에 머무르고, 그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면, 이것은 세 번째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보리심을 발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만약 여래의 뭇 모습[중상]이 원만한 것을 보고서 곧 공경하고 애호함을 생하여 그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면, 이것을 네 번째의 보리심을 발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보리심이란, 이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리심을 원하는 것이요,
둘째는 보리심에 머무는 것이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선남자여, 또 어떤 중생은 중생의 세계에서 얻기 어려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증득하고자 원한다.
또 어떤 중생은 이 얻기 어려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 머무른다.”
첫째는 성불하기를 원하는 것[원증작불]이고,
둘째는 성불하여 거기에 머무는 것을 원하는 것[원주수생]이다.
또 수능엄경(수릉엄경)에서 말한다.
“아무개 부처님의 처소에서 보리심을 발하는 것으로 인하여, 어떻게 다시 적은 선근을 짓겠는가?”
현겁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옛날 성수왕여래가 시음여래의 처소에서 처음으로 보리심을 발할 때,
소치는 사람[목우인]이 되어 탐보라엽을 가지고 그 부처님께 보시하였기 때문이다.
무량명칭여래가 전광여래의 처소에서 처음으로 보리심을 발할 때,
모직물을 짜는 사람이 되어 가장 미묘한 옷을 가지고 그 부처님에게 보시하였기 때문이다.
염광여래가 무량광여래의 처소에서 처음으로 보리심을 발할 때,
성읍 중에 기거하며 풀로 만든 등불[초등 거]을 가지고 그 부처님에게 보시하였기 때문이다.
난승여래가 견고보여래의 처소에서 처음으로 보리심을 발할 때,
나무꾼이 되어 작은 치목을 가지고 그 부처님에게 보시하였기 때문이다.
공덕당 여래가 묘길상여래의 처소에서 처음으로 보리심을 발할 때,
병 고치는 의사가 되어 암마라 과하나를 가지고 그 부처님에게 보시하였기 때문이다.”
이 처음 발하는 보리심은 만족스러운 행위가 되지는 못하지만, 이 꾸짖고 싫어하는 일이 오히려 능히 윤회하여 도는 것을 해탈하게 하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얻게 한다.
자씨 해탈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보물은 능히 일체의 빈궁한 괴로움을 단절하기 때문에 금강이라고 말한다.
선남자여, 이 일체지의 마음도 역시 그와 같다. 능히 일체의 윤회하는 괴로움을 단절하기 때문이다.”
오직 이 보리심을 발하는 자는 머지않아 그 과보를 얻는다고 응당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또 선간경에서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가 만약 많은 종류의 행위 중에서 능히 많은 종류를 짓는다고 말한다면 그만두라. 이에 나는 일체의 행위 중에서 일체의 행위를 행하고, 일체의 처소 중에서 일체의 처소를 이롭게 한다. 말하자면 보시바라밀다를 배우고, 이와 같이 나아가 반야바라밀다를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그대는 삼먁삼보리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즐거움을 욕망하여 청정한 믿음을 발생하고 의지로 원하여 타인을 이롭게 하라. 가고 [행] 머무르고 [주] 앉고 [좌] 눕고 [와], 혹은 꿈꾸고 깨어날 때, 혹은 음식을 먹고 마실 때에도 항상 구족 하고, 생각에 수순하여 의지를 결정하라. 모든 부처님ㆍ보살ㆍ성문ㆍ연각의 모든 이 생신들이 적집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일체 선근을 관찰하고 헤아리고 화합하고 나서 응당 따라 기뻐해야 할 자에게는 스스로 앞에 나타나 따라서 기뻐하고, 허공계가 두루하고 열반계가 두루 하기까지 또한 스스로 따라서 기뻐한다
. 또다시 일체의 모든 부처님ㆍ보살ㆍ연각 및 성문들을 공양하는 일에 따라서 기뻐하고, 평등하게 일체의 중생에게 회향하고, 나아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지의 지혜를 얻게 한다. 널리 모든 부처님의 선한 법을 원만하게 하고, 날마다 세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
대왕이여, 그대가 이와 같은 바른 행위로써 왕이라는 명칭을 얻으면, 제왕의 자리[보위]를 잃어버리지 않고, 보리행을 구하여도 또한 원만하게 획득한다. 이 과보를 말한다
면, 대왕이여, 그대가 그때 보리심을 발한 것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선근의 업보로서 한량없는 수를 지나도록 항상 천상에 태어나 모든 하늘나라 중에서도 천제석이 되고, 혹은 인간세계에 태어나서도 사람들 중의 왕이 된다.
대왕이여, 오직 보리심 하나만을 발한 선근의 힘 때문이며, 나머지 별다른 업이 없다.
원만하거나 혹은 원만하지 않거나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요약하여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오직 보리심 하나만을 발한 자는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이며, 일체의 중생을 해탈시키기 때문이며, 일체의 중생을 안온하게 하기 때문이며, 구경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며, 한량없고 셀 수 없는 선근들을 생하기 때문이다.
대왕이여, 다시 어찌하여 이 많은 종류의 행위 중에서 능히 많은 종류의 지음을 말하는가?’”
이 보리심의 행상이란 경에서의 과현연기를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이 보리심을 원하는 것이다.
어떠한 지에 들어가 보살은 계를 얻는다고 말하는가?
혹은 9 지라고 말하는가?
허공장경에서 말 한다.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다.”
십지경에서 말한다. 초지중에서 말한다.
그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조금도 친근하여 희구할 것이 없다.
만약 모든 중생이 나의 처소에 찾아온다면, 일체의 필요한 것을 몇 배나 많게 급여할 것이다.”
그 말한 바와 같다면, 곧 극희지의 보살은 동요하지 않는 것에 상응하여 잘 머무른다.
여래의 집안에 태어나 결정코 등정각을 성취하는 것에 취향 한다고 또 말한다.
또 허공장경에서 말한다.
성문승은 능히 이와 같이 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오직 대승을 좋아하는 자만을 제외한다.”
최상수소문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이 인색하고 질투하는 법을 바로 결박이라고 하는데, 자세하게 이것의 배움을 표시한다. 극희지에서 말한다.
‘아상(아상)을 멀리 여의면 아집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찌하여 다시 일체의 필요한 것들에 집착하는가?’
머리와 눈 등을 보시하는 것을 말하는 바와 같다.”
[논] 이와 같이 경전들은 지에 들어가고 나서 바로 이것의 배움을 표시한다.
만약 두루 논하자면, 보살이 그 상응하는 수습 중에서, 혹은 다시 부정하여 그친다거나 별안간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할 때는, 보살이 아직 배움에 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응당 이 두 가지는 모든 배움의 터[학처]에 두루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한 가지 배우는 작용을 성취하는 데에 있어서는 배움이 능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수습하지 않아도 또한 과실이 없다.
무진의경에서 말한다.
“광대하게 보시를 행하는 때는 청정한 시라[정시라]를 버려도 게으르다고 하지 않는다.
먼저 설명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또한 그러한 행위를 행해서는 안 된다. 힘에 따라 친근해야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십지경에서 말한다.
“설사 음욕의 삿된 행위[욕사행]를 범하여도 계의 미혹과 오염이 경미하다. 보리심을 즐겨하기 때문이다.”
사리자가 보살의 별해탈계에서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 보살이 수습하는 중에서 진실한 말[진실어]을 얻는다. 사리자여,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고 나서 의지로써 정진하기를 좋아하여 부지런히 선한 법을 찾고, 모든 논의를 습득하고 금계를 견고하게 지키며, 보살의 배움에 있어서 구족 하여 수습한다.
타인에게 친근하여 이와 같이 계를 배움으로 말미암아 어떤 때는 벗어나서 스승과 존자를 비방하기도 하지만, 지극하게 참회하기 때문에 커다란 두려움을 일으킨다. 그는 다시 수용하고 존중하고 좋아하여 이와 같이 평등한 계법을 원만하게 성취한다.
이 보살은 모든 부처님 여래의 현전에서 계의 배움을 일으키고 바른 행위를 즐겨하고자 하니, 응당 별도로 배움을 주어야 한다.
그에게 혹시 선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방에 현재 하는 부처님과 보살님의 앞에서 전념으로 관찰하여 능력에 따라 헤아리고 나서 이 계를 견고하게 지녀야 한다.
다시는 시방의 일체 부처님과 보살님들 및 그 세상의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속이지 말 것이다.”
정법념처경에서 말한다.
“먼저 생각하고 나서 나중에 다투어 보시하지 않으면 아귀의 세계에 태어나고, 말하고 나서 보시하지 않으면 지옥세계로 떨어진다.
하물며 다시 위없는 보리를 구족 하였음에랴. 남김없이 모든 세간의 모든 중생에게 보시할 것을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법집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선남자야, 보살은 응당 진실한 이치[실체]를 존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를 모집하는 것을 법의 모집[법집]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무엇을 진실한 이치라고 하는가? 만약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고 나서 모든 중생을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에 나아가 신명을
버리고, 이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을 보살의 진실한 이치라고 한다. 만약 보살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고 나서 다시 나중에 이 마음을 버리고 또 모든 중생을 내버려 둔다면, 이 보살은 커다란 망어를 한 것으로 실로 꾸짖고 싫어해야 한다.”
또 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에서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해의여, 비유하면 세간의 왕이나 왕의 신하로서 일체 성읍의 인민에게 식사를 대접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인민이 모이고 나서 약속을 어기고 만약 마실 것이나 먹을 것을 베풀지 않으면, 모든 인민에게 곧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된다.
마시고 먹을 것을 조금도 얻을 수 없으면, 큰 소리로 헐뜯고 책망하고 분노하며 나가 버린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해의여, 이 보살도 역시 그와 같다. 모든 중생에게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시키겠다고 함에 있어서 응당 훌륭하고 이로운 언변을 닦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가 부지런히 닦아 많이 듣고 여러 선한 보리분법을 쌓아 두지 않으면, 그 보살은 곧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지난 세상의 부처님이 말한 바와 같이 이것은 성인이 싫어하는 것이며, 지혜, 큰 지혜, 더없이 수승한 지혜를 갖추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살은 응당 다만 말로써 일체의 하늘과 세상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된다.
또 해의여, 혹은 어떤 사람이 와서 법을 설하고 의롭고 이로운 일을 베풀기를 권하여 요구할 때, 그 보살은 말에 수순하여 설하고, 나아가 자기의 몸을
버리어 보살행을 닦고 다시는 일체중생을 속이지 않는다.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대승집보살학론 제2권
집보수학품
이와 같은 열 가지 선업도 는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과보이다.
만약 진실로 하나의 선업도도 수호하지 않고, 나아가 목숨을 마칠 때 스스로 ‘나는 진실로 대승을 행한 자이고,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한 자이다’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에 대해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헛되고 속이는 것이며, 커다란 망어이다.
시방세계의 부처님ㆍ세존의 면전에 대하여 세상을 속이고, 공은 단멸이라는 견해를 말하여 어리석은 자를 유혹하여 속이는 것이다.
육신이 허물어져 목숨을 끝마치고 나서 모든 나쁜 세상에 떨어진다.”
“만약 보살의 난행과 고행 및 미묘하고 수승한 지혜를 듣고, 나아가 해탈[발심주]에 들어가 큰 용맹을 발하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중생을 구호하며,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여 예배하고 공양하며, 죄 및 따라 기뻐하는 복을 설하고,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물러 법을 설할 것을 권청하고, 나아가 보리에 회향하며, 선지식을 위하여 법을 설할 것을 권청하고, 혹은 좋아하여 스스로 설하는 큰 마음을 소유한 중생을 본다면, 마땅히 이를 도를 나타내 보이는 자[시도자]라고 한다.”
문수사리장엄불찰공덕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세존이시여, 이 묘길상 보살이 옛적에 생존할 때 본래 인연을 행하여 보리심을 발하고, 또 이와 같이 발한 법은 그가 말한 바와 같습니다.
‘최초에 윤회의 테두리를 멀리 여의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행위를 행한다.
나는 존자의 처소에서 보리심을 발하고, 현전에 권청하여 모든 세간으로 하여금 빈궁한 과보를 면하게 하며, 내가 보리를 얻을 때 분한 마음[분심]ㆍ원한의 마음[한심]ㆍ인색ㆍ탐욕ㆍ질투가 전부 일어나지 않았다. 항상 범행을 닦아 모든 죄와 욕망을 벗어나고, 부처님을 따라서 청정한 시라를 배워 애호하고 존중한다. 위대한 보리에 대하여 속히 취하여 증득하지 않고, 나는 나중의 세상에 처하여 모든 중생에게 한 가지 모습으로서 다름이 없다.
때로는 시방세계에서 아직 나의 이름을 듣지 못하여도 한량없는 불가사의한 찰토를 모두 장엄하고 청정하게 한다.
몸과 말[어]과 마음[의]의 업이 청정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모든 하는 일에 있어서도 전부 또한 청정하다.
또 언제나 견고하게 청정한 계율을 지키어 나고 죽는 것을 다할 때까지 모든 과오(과오)가 없다.
또 아촉여래본원수결경에서 말한다.
저 아촉여래가 옛적에 보살이었을 때, 이와 같이 말하였다.
‘만약 내가 세세생생에 출가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일체의 모든 부처님ㆍ여래를 속이는 것이다.’
사리자야, 이와 같이 보살은 아촉여래에게서 또한 응당 따라 배워야 한다.
또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세세생생에 출가한다.
혹은 모든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거나 혹은 나오시지 않아도, 필경에 집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사리자야, 만약 보살이 집을 버리고 출가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을 최상으로 친다.
나아가 남자와 여자의 권속에 애착을 생하지 않는다. 나의 다른 생애에서처럼 모든 과오가 없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일단 이 일을 멈추라. 만약 계를 시설함을 말하면, 죄상이 동등하거나 죄상에 상응하는 등의 일에 대해서는 응당 스스로 버려야 한다. 만약 별도의 행상이라도 또한 죄가 있다. 별도의 행상에 있어서도 그러하여 거두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모든 중생이 갖고 있는 미래의 일체 고뇌에서 해탈을 얻게 하고, 일체의 미묘한 즐거움을 부여하여 그것을 증장하게 한다.
만약 몸과 말과 마음으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방편으로서 순일하게 능숙하지 않고, 인연의 집합에 대하여 즐겁게 힘써 교화하지 않고, 혹은 흩어져 소멸하는 처소에서도 살피어 추구하지 않고, 번뇌가 많거나 적거나 그 대치를 하지 않고, 큰 의리나 작은 의리 혹은 의리가 아닌 것에서 손해와 이익을 생하지 않고 찰나에 함께 버린다. 이것을 죄라고 말한다.
간략하게 무죄를 설명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하는 경계의 경우는 과보가 없다.
혹 이와 같이 배움에 대하여 표상과 체성을 집착하면 죄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하는 경계와 상응하는 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동일하게 죄 등을 설하는 양태에서 해탈할 것이다. 이것이 보살이 배우는 평등한 몸이다.
자세하게는 한량없는 겁이 다하여야 말할 수 있다.
또 다음에 간략하게 보살의 이 두 가지 죄에 대하여 말한다.
그 판별하여 성립되는 것과 같이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음과 지을 수 있고 지을 수 없음을 도무지 간택하지 않고 버리기 때문에 이것은 죄이다.
말하는 바가 필경에 헤아려 살피는 범위를 벗어나서 전다라 노예 등과 같이 그 의미를 그릇되게 이해하기 때문에 이것은 죄이다.
그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심심교계경에서 말한다.
“자 씨의 원인 가운데 네 가지 변재 같은 것은 곧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의리가 있는 것을 택하고 의리가 없는 것을 가리는 것이다.
둘째는 이 바른 법을 택하고 저 그릇된 법을 가리는 것이다.
셋째는 번뇌를 부숴버리고 번뇌를 증장시키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즐거이 열반의 공덕을 보고 즐거이 윤회의 공덕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네 가지라고 한다. 요약하여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자씨의 원인 가운데 이 네 가지 변재를 말하는가? 말하자면 믿음 있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생각하고, 논의에 대하여 생각하며, 선한 법을 듣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말하자면 자 씨에게 여러 선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곧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자 씨의 변재에 대하여 비방하고,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악인 무리들은 곧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변재를
비방하고 선한 법을 훼멸 한 것으로 말미암아 죄의 업보를 초래하여 여러 나쁜 세상에 떨어진다.”
또 다음에 선교를 수습하고 애락을 일으키는 것은, 이 행문 가운데 배움을 모으는 가장 수승한 작용이 있으니, 응당 수학하여야 한다.
큰 과보를 바라고 구하기 때문이다.
적정결정신변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또 다음에 문수사리여, 가령 보살이 능가사 수와 같은 부처님들에게 이 모든 부처님께서 소유하는 능가사 수의 불찰 또 이와 같은 능가사수의 겁 동안 자재왕마니보를 가지고 충만하게 지니어 사용하며 보시한다고 하자. 가령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은 법의 특성에 대하여 듣고 나서 한마음으로 사유하며, ‘나는 마땅히 수학하여야 한다’고 하자. 문수사리여, 앞의 수학하지 않은 보살이 소유하는 복의 과보에 비하여 아직 설사 보시하지 않았어도 이 수학하는 자리[학지]를 즐거이 원하는 보살의 복이 훨씬 많다.”
그 보살은 비록 이 공덕을 보아도 아직 말하지 않는다. 그 수습 등과 같이 또한 말한다.
“문수사리여,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미진과 같은 중생을 교화하여 하나하나의 중생이 염부 제의 왕[염부왕]이 되고, 만약 모든 음성으로써 대승경전을
찬탄하고 받아 지니어 읽고 외우고 말한 바와 같이 수행하는 것을 하루 저녁에 신체와 손가락과 발가락이 절단되어 목숨이 끊어지기에 이르기까지 한마음으로 받들어 행한다고 하자. 문수사리여, 이 보살은 보시하는 마음에 겁이 많지 않음으로 인하여 놀라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결국에는 한마음으로 친근한 생각을 내어 후회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또한 분별하지 않으며, 이 최상의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고 상응하여 마음으로 좋아하여 읽고 외우며 말한 바와 같이 수행한다.
문수사리여, 이 보살은 마음이 용맹하기 때문에 곧 보시에 용맹하고, 지계에 용맹하고, 정진에 용맹하고, 선정에 용맹하고, 지혜에 용맹하고, 일체 삼마지에 용맹하다.
문수사리여, 이 보살은 설사 나쁜 사람들이라도 역시 성내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 및 기타의 과실을 생하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이 보살은 제석천과 범천왕 등처럼 동요하는 일이 없다.”
지금이 바로 그때로서 마땅히 한마음으로 수학하여 큰 과보를 바라고 구하여야 한다.
월등삼매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가령 항하사의 많은 억겁 동안
백억나유타 부처님을 공양하고,
청정한 믿음과 마음으로 음식을 베풀고,
또한 등과 만과 당기[당]와 일산[개]을 보시한다고 하자.
만약 바른 법이 쇠퇴하는 말법 세상에서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소멸하려고 할 때,
하루 밤에 이러한 행위를 배우면,
앞과 비교할 때 복의 과보가 그것보다 수승하다.
그러므로 한마음으로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불경가운데 보살이 배우는 의미를 설한 바와 같다.
“선남자야, 보살은 보살의 배움에 있어서 견고하게 청정한 계율을 지키며 다음과 같이 살펴보아야 한다.
보살의 별해탈계 중에서 나는 어찌하여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여래의 모든 대승경전의 법 가운데 시설하는 보살행과 모집한 보살의 배움에 능하지 못하는가?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이 광대하게 수습해야 한다.”
우리들은 아는 것이 없어, 이 보살의 제지를 자세하게 설하는 것에서 잘못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는데, 어찌 이것이 이 이치가 아닌가?
수습하는 자리[수습처]에서 알아차리면 과실이 없을 것이다.
어떠한 것이 수습하는 자리인가? 말하자면 혹은 육신이 소유하는 것과 3세에 수용하는 것에서 청정하게 포기함을 행하고, 모든 중생을 보호하여 청정함이 증장하게 한다.
이 보살계를 받고 나서, 혹은 이 보살이 수습하는 자리에 머물러 그 죄상을 말한다.
보살별해탈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보살도에 있어서 일체의 중생을 거두어들여 괴로운 세상을 다하게 한다.
그 보살도를 거두어들여 편안히 머무르며 굳이 겁을 경과한다. 오직 한 번 안온한 마음과 친근한 마음을 일으킨다.
보살이 이 마음을 일으킨다면 모든 중생에 대하여 전적으로 여러 가지 머무르는 자리를 거두어들임을 응당 알아야 한다.”
문수청정률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그때 문수사리가 적음천자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이 다섯 가지 간단없음 [오무 간]을 구족 하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얻을 것이다.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보살이 깊고 굳게 마음을 먹고 위없는 도[무상도]를 구하여 발심하고, 성문지와 연각지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처음의 간단없는 발심이다.
스스로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인색한 마음에 함께 머무르지 않는다.
이것이 둘째의 간단없음이다.
이것이 셋째의 간단없음이다.
일체의 법이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니며 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음을 알고, 그중에서 여러 견해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넷째의 간단없음이다.
모든 법지에 있어서는 화합하는 한 가지 모습이다.
이와 같이 발심하는 가운데 머무르는 곳이 없고, 머무르는 곳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일체지에 있어서도 얻는 바가 없다.
이것이 다섯째의 간단없음이다.’”
“그 포기하는 것의 의미는 과실을 거두어들이고, 관상문중에서 탐욕을 여의는 상념을 일으킨다.
포기의 공덕을 관하기 때문이다.”
월등삼매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이와 같이 견고하지 않은 육신을
어리석은 자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가 있으나,
어찌 수명 가운데 항상 하겠는가?
그것은 찰나로 환상이나 꿈과 같다.
여러 나쁜 업[악업]을 짓기 때문에
죄의 과보가 항상 따라다니고,
이 무명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죽어서는 많이 나쁜 세상[악도]에 떨어진다.
또 무량문다라니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어찌하여 중생은 투쟁하는 원인을 얻는가? 말하자면 재물과 이익을 생각하여 집착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니, 응당 포기하고 버려야 한다.
만약 탐욕과 애욕을 여의면 곧 이 다라니를 얻을 것이다.”
또 보살별해탈경에서 말한다.
또 다음에 사리자여, 보살은 일체 법의 지극히 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취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최상수소문경에서 말한다.
“말하자면, 만약 보시하면 모든 인색함이 없어지고, 집착하면 항상 지킨다.
또 보시는 탐욕과 애욕을 다하게 하고 집착은 탐욕과 애욕을 증장하게 한다.
보시는 여러 변계(편계)가 없고 집착은 여러 변계를 갖는다.
보시는 공포가 없고 집착에는 그 공포가 많다. 보시는 보살도에 머무르고 집착은 마군의
경계에 머무른다. 보시는 다함이 없는 생각[무진상]을 만들고 집착은 다함이 있는 생각을 만든다.
또 보시는 여러 미묘한 즐거움을 얻고 집착은 항상 핍박을 받는다.
보시는 번뇌를 버리어 여의고 집착은 번뇌를 증장하게 한다.
또 보시는 크게 부유함을 얻으며 집착은 크게 곤궁함을 얻는다.
보시는 선한 사람의 행위이고 집착은 나쁜 사람의 행위이다.
보시는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고 집착은 어리석은 자들이 칭찬한다.
보시는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 지나치게 좋아하는 애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나머지 중생에게 연민을 일으키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에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것들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보살은 보살도에 있어서 바르고 고른 것[정 등]에 상응하고 삿되고 잘못된 것[사류]에 상응하지 않는다.
둘째는 보살은 보리도(보제도)에 있어서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고, 귀하거나 천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셋째는 보살은 보리도에 있어서 여러 가지 행위가 없으며 여러 가지 행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세 가지 자신의 마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이익을 위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배움의 힘겨운 짐을 짊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 좋아하는 애정을 생하지 않는다.
그 밖의 중생에게 연민을 일으키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마음을 일으켰음을 응당 알아야 한다.
‘나의 자식에게 자애로운 애정이 발생하는 것처럼, 곧 나는 일체의 중생에게도 수순하여 자애로운 애정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심원한 마음으로 관찰하여 깨닫고 이해한다.
나의 자식이 이미 일체중생과 다름이 없으며, 곧 일체중생이 모두 나의 자식이다.
중생은 혹은 자신이고 혹은 타인이다.
나아가 거사, 재가의 보살은 그 재물의 이익에 의하여 중생을 거두어들이지 말고 출리의 법이 아닌 것을 응당 취착 하지 말아야 한다. 또다시 응당 좋아하여 오염된 욕망을 수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다음에 재가의 보살에게 혹은 구걸하는 걸인이 찾아와서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따라서 용감하고 굳센 마음을 발하여 베풀고는, 또 생각하기를, 내가 이 재산과 이익을 버리거나 버리지 않아도 필경에는 흩어져 소멸한다. 어떻게 베풀고 받는 때에 욕망이 없음을 얻겠는가’라고 한다.
말하자면, 자아[아]와 자아의 소유[아소]에서 필경에 인을 얻고 베풀어 버리는 물건에 의하여 태내에 소장되는 괴로움[태장고]을 여의며, 마음이 바른
생각에 머물러 환희하고 좋아하여 따라서 윤회하며 도는 것을 생하지 않는다.
또 다음에 이와 같이 능히 베푼다. 말하자면, 베풀어 버리는 물건과 구걸하는 자에 대하여 응당 네 가지 생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들이 그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겁이 많기 때문에 선근으로 먼저 지은 업을 순수하게 익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대승 중에서 마음이 자제하지 않다. 취하고 버리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또 혹은 자아와 자아의 소유에 대하여 안온한 인의 힘[안인역]에 머무른다.
스스로 선한 사람에게 베풀어 후회하는 번민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수습하고, 이와 같이 뛸 듯이 좋아하고, 이와 같이 정진한다.
일체중생이 바라고 구하는 바를 원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재가 보살은 저 구걸하는 자에 대하여 응당 이와 같은 생각을 지어야 한다.
혹은 구걸하는 자가 도리어 과실을 증대하면, 이 보살은 마땅히 좋은 말로 위로하여야 한다.
또 구걸하는 자가 은혜를 알지 못한다고 하여도 이 보살 역시 또한 질투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무죄라고 한다. 이것을 세존께서 하층 부류의 보살들이라고 하셨다.
보살별해탈경 중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사리자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없다. 어떤 것들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보살에게는 믿지 않는 마음이 없다.
둘째는 보살에게는 인색한 탐욕이 없다.
셋째는 보살에게는 두 말을 하는 것[양설]과 질투가 없다.
넷째는 보살에게는 게으른 마음이 없으니, 말하자면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증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리자여, 만약 나에게 이 네 가지 법이 있음을 저 지혜로운 자가 이에 알고서 곧 삿된 생활을 함, 아첨을 요구함, 잘못된 법이며 오염된 법임, 세상의
재물과 이익을 중시함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첫째로 믿음과 보시하는 것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또 다음에 사리자여, 보살은 이와 같이 마음이 용맹하기 때문에 머리와 눈, 손과 발, 신체 부분, 남자와 여자, 권속, 마음으로 좋아하는 지극히 미묘하고 즐거운 일, 주택, 나라의 마을, 일체의 소유를 전부 능히 포기하여 보시한다.”
또 나라연소문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만약 재물과 보배에서 이 포기하는 마음을 발한다면, 응당 재물의 이익에 취착을 생하지 말아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래도 포기가 아직 지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거두어들이는 데에서 포기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거두어들이지 않는 데에서도
또한 항상 집착한다. 만약 구걸하는 자의 뜻에 따르면, 거두어들이는 데에서 지혜를 발생하기 때문에, 곧 권속에 대해서도 또한 취착이 없고, 가장 숭고하고 귀한 것에도 또한 취착이 없고, 수용하는 진귀한 보배에도 또한 취착이 없다.
그리하여 보살이 만약 재물과 이익에 대하여 포기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 이에 지극히 미세한 부분에 이른다면 응당 취착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다음에 선남자야, 그래도 보살마하살은 응당 이와 같은 마음을 발해야 한다.
‘나의 이 신체의 부분조차 중생에게 능히 포기하여 베푸는데, 하물며 소유하는 그 밖의 재물과 도구임 이랴. 또 혹은 중생의 자리에서 그 원하는 바와
같은 것을 전부 능히 베풀어 준다. 말하자면 찾아와서 구걸할 때, 손을 요구하면 손으로써, 발을 요구하면 발로써, 눈을 요구하면 눈으로써 베풀어 주고, 나아가 비계[지]ㆍ골수[수]ㆍ혈액[혈]ㆍ살[육]과 나머지 신체의 부분을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각각 베풀어 준다.
무엇을 다시 그 밖의 재물과 도구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혹은 창고에 저장된 것, 자양 하는 데 필요한 곡물, 금과 은, 진귀한 보배, 수승하게 미묘한 장식품, 코끼리와 말, 수레 등의 탈 것, 국토ㆍ궁전ㆍ성읍ㆍ취락, 심부름하는 사람, 노복, 작업하는 사람, 남자ㆍ여자ㆍ권속, 혹은 모든 중생이 소유하는 일에서 그 각 중생이 소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마땅히 베풀어 주고, 후회와 고뇌를 생하지 않고, 또한 퇴보하여 굴복하지 않으며, 과보와 그 밖의 아첨과 사기를 바라고 구하지 않는다. 또 다음에 나의 이 보시는 일체중생에 수순 하기 때문에, 일체중생을 연민하기 때문에,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일체 중생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에, 내가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은 것은 이와 같이 법의 보리[법보제]를 얻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약하여 말한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약이 되는 나무의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ㆍ껍질ㆍ씨앗을, 혹은 전부이든 혹은 일부이든 그 취하는 자에 따라서 분별을 생하지 않고, 또다시 모든 중생의 병고의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는 때에도 또한 상ㆍ중ㆍ하의 성질을 분별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이 보살마하살도 역시 또한 그와 같다. 응당 알아야 한다. 4 대종으로 구성된 신체에 대하여 약이 되는 나무를 생각하고, 그 중생에게서 이로움을 지어야 한다.
손을 요구하면 손으로써 하고, 발을 요구하면 발로써 하며, 그 취하는 자에 따라서 앞의 약이 되는 나무처럼 분별을 생하지 않는다.”
대승집보살학론 제3권
집보시학품
성소설 무진의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보살은 마땅히 자신이 모든 중생에게 응당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관찰해야 한다.
말하자면 4 대종인 지ㆍ수ㆍ화ㆍ풍은 여러 가지 부분, 여러 가지 해야 할 일, 여러 가지 계박되어 속하는 것, 여러 가지 도구, 여러 가지 수용이 있어,
중생을 따라서 전부 혹은 일부로써 행한다.
그리고 나의 신체는 4대가 모인 것으로 또한 그와 같아 여러 가지 부분, 여러 가지 해야 할 일, 여러 가지 계박되어 속하는 것, 여러 가지 도구, 여러 가지 수용이 있다.
모든 중생에게 커다란 의지처가 되어 그 관찰한 바와 같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설사 신체에 괴로움이 있어도 피곤하여 싫어함을 내지 않는다.
수용을 보시하는 복 금강당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보살은 여러 가지로써 시방의 한량없는 빈궁한 자와 곤궁한 자에게 보시한다. 보시를 받는 자는 보살의 행위를 믿고, 보살의 소리를 듣고, 보살의 말을 기록하여 전부 가져다가 모집한다. 그래도 보살은 보시하기에 앞서 서원을 발한다.
마음으로 원하는 보살의 말을 듣고 일체를 포기하여 보시하는데 마음이 기쁘고 싫어함이 없어 구걸하는 자로 하여금 마음의 만족을 이루게 한다.
그 찾아오는 자에 따라서 발심(발심)하고 참회의 말을 한다. 그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나는 응당 그에게 찾아가 보시해야 한다.
그대는 얻을 수 없음을 안다.
여러 먼 곳에서 찾아오는데
피로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하여 구걸하는 자에게 머리 숙여 예경하고 참회의 말로써 위로하며, 신체의 더러움을 목욕하고 그를 위하여 베푸는 도구를 설치하고, 그 원하는 바와 같이 일체를 준다.
말하자면 혹은 염부제 가운데 유연하고 선한 여인과 보배들로 원만하게 꾸민 말니거 혹은 시종 드는 노복이 따르고 청정한 여인과 보배들로 원만하게 꾸민 금거가장 뛰어나고 좋아할 만한 노래와 음악과 앞에서처럼 원만하게 꾸민 폐유리거 네 방면에 네 가지 보배와 여인을 나타내고 미묘한 장엄을
지니며 색상이 비교될 것이 없어 역시 원만하게 꾸민 파지가 거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말니거는 여러 가지 보배 그물[보망]을 늘어뜨려 그 위에서 두루 덮고, 흰 코끼리[백상]와 코끼리를 조정하는 자로 한량없이 장엄하게 치장하며, 그 보배 바퀴[보윤]의 모습과 수레의 모습[차상]은 적합하게 어울린다.
또 그 위에는 여러 가지 미묘한 보배의 사자좌를 안치하고, 나아가 많은 보배 덮개[보개]를 설치하여 두루 그 위를 덮는다.
장엄하는 보배 장막[보장]을 둘레에 쳐서 둘러싸고, 네 방면에는 미묘한 당기와 번기 [당번]를 꽂아 갖가지 향을 태우며, 여러 미묘한 견향으로써 닦고,
여러 미묘한 꽃을 뿌려 두루 덮어 장엄한다.
또 그 위에서는 백천의 기녀가 보배 줄[보승]처럼 섞여 얽히고, 그것을 잘 조정하는 자는 바르게 화합하여 행동하는 데 착란이 없게 한다.
나아가 여러 가지 섞은 향으로써 다르게 화합하여 비록 이 향이 마음에 들어 제일 좋다는 말을 들어도 그 남녀로 하여금 성행위를 조절하게 한다.
또 거기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모든 중생을 위하여 마땅히 자기의 몸을 포기하고, 모든 부처님께서 거두어들이는 바를 받든다. 혹은 전륜성왕의 자리ㆍ나라의 성ㆍ궁전ㆍ일체의 수승한 장엄구를 포기하고, 그 구걸하는 자와 같이 모든 권속ㆍ남녀ㆍ처첩ㆍ사택ㆍ인민을 포기한다.
나아가 전부 혹은 일부분을 포기하여 보시한다. 이와 같이 음식이 영양분이 많고 맛이 있어도 보살은 그 갖가지 깨끗하고 미묘한 음식, 쓰고 맵고 짜고 담백한 갖가지 우수한 맛, 두루 맛있는 큰 종류의 부드럽고 윤활하여 광택 있는 것, 몸과 마음을 조절하여 색력에 안주하는 것을 포기한다.
나아가 이르는 모든 곳마다 모든 질병을 치유하여 전부 안락하게 한다.
이와 같이 등명ㆍ말향ㆍ도향ㆍ화만ㆍ의복ㆍ상부ㆍ궤안ㆍ방사ㆍ와구ㆍ병연의약도 보살은 요구에 따라서 그것을 준다.
나아가 갖가지 광대한 도구, 말하자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금ㆍ은ㆍ동의 발우 속을 가득 채우는 진귀한 보배를 부처님ㆍ세존에게 공양하여 불가사의한 존중하는 믿음과 이해하는 마음 등을 일으킨다. 혹은 보살과 선지식 등에게 보시하여 희유한 마음을 일으킨다.
혹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머무는 일체의 성스러운 무리들인 성문과 연각의 보특가라에게 보시하여 청정한 마음을 일으킨다.
혹은 부모와 모든 아사리 및 그 밖의 사존에게 보시하여 존중하고 친근하게 받들며, 배움을 추구하는 등의 마음을 일으킨다. 혹은 모자라고 부족하여
괴로워하는 자에게 보시하여 모든 중생에게서 무애의 눈을 지어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킨다. 요약하여 말한다.
혹은 보살이 기꺼이 상승을 보시한다. 일곱 지주[지]로 안주하고 높이는 60척(척)이며,
여섯 어금니를 구족 하여 면목이 청정한 것이 연꽃색과 같고, 금줄이 서로 섞이어 신체의 모습을 장엄하고, 갖가지 번잡한 보배를 교묘하게 사이에 장식하며, 그 코를 추켜세우면 금색이 수승하여 미묘하고, 천 유선나를 가며, 보는 자가 싫어함이 없다. 혹은 마승을 보시한다.
사방으로 움직여도 그 걸음이 평정하여 몸이 안온함을 얻고, 말을 제어하는 노복이 따르며, 음식을 갖추어 하늘과 같이 장엄한다.
백천 가지 등을 보시한다. 혹은 존중하는 모든 선지식ㆍ부모ㆍ스승과 존장으로부터 나아가 패망하여 곤궁하여 괴로워하는 일체 세간의 보시를 받을
수 있는 자에게 보시하며, 마음으로 인색함이 없고 또한 집착함이 없다. 크게 자비로워 크게 포기하는 것은 보살의 심원한 마음이 청정한 것이며,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을 발생한다.
나아가 보살은 혹은 상좌를 보시한다.
말하자면 현왕좌 및 폐유리의 승족보궤사자상을 안치하고, 금줄과 보배줄을 곳곳에서 아래로 늘어뜨리고, 유연한 요 자리[인욕]를 한량없이 장엄하게 치장하고, 여러 미묘한 향을 태우며, 대마니보로 만든 미묘하고 높은 당기를 세우고, 한량없는 백천 굳이 나유다의 보배를 사용하여 장엄하며, 여러 보배 그물을 늘어뜨리며, 낱낱의 그물 구멍에 많은 보배 방울을 달아서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 부딪치면 화평하고 기쁜 소리를 낸다. 혹은 대좌를 보시한다.
눈을 들어 높이 우러러보아야 하며, 무수한 행렬이 여러 대지를 덮고, 일체의 국왕이 대자재주에 앉아서 관정하며, 이 자리에서 무애의 바퀴를 얻어 모든 작은 왕들에게 명령하여 가르침에 따라 받들어 행하게 한다.
이와 같이 나아가 보살은 대보개를 보시한다.
또한 큰 보배로써 장엄하게 장식하여 보배 줄기ㆍ보배 방울ㆍ보배 줄ㆍ보배 그물을 늘어뜨려 귀와 목을 지나며, 또한 주변 둘레에 폐유리보ㆍ말니주
등의 미묘한 영락을 묶고, 또 모든 그물 가운데서 난치천과 같이 미묘한 음향을 내며, 청정하고 우아하게 장엄한 보배 횃불이 그 수효가 백천의 보배
곳집을 모은 것과 같다. 또 주변 둘레에서는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향인 전단ㆍ침수의 백천 굳이 나유타의 견고하고 미묘한 여러 향을 태운다.
다시 청정한 보개가 있어 염부단금의 광휘를 모은 것과 같으며, 또한 한량없는 백천 굳이 나유타의 장신구로써 장엄하게 치장한다.
이와 같이 무수한 백천 구지 나유타의 보개를 가지고, 마음으로 찾아오는 모든 구걸하는 자에게 보시하고, 사람 앞에 머무르는 것에 따라서 준다.
혹은 진실로 모든 부처님께서 입멸한 후, 탑묘를 장엄하는 것에 보시한다.
혹은 법을 구하는 보살, 선지식들 및 현생 한 보살 법사, 혹은 부모ㆍ승보ㆍ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자, 나아가 일체의 보시를 받을 만한 자에게 보시한다. 모두 이와 같은 선근으로써 회향한다.
그 최초와 같이 여러 선함이 있을 때는 모두 마땅히 친근해야 하며, 이와 같은 서원을 발해야 한다.
‘이 선근을 말하여 모든 세간에서 항상 의지함을 얻고, 청정한 법에서 바른 자제함을 얻으며, 혹은 모든 중생이 이 선근으로써 지옥의 죄보를 서로 없애버리는 것을 얻고, 축생과 염마라 세계의 모든 고통을 그치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가 이와 같은 선근으로써 회향하며, 저도 선근에 대해서 역시 또한 그러하기를 원합니다.
방사에 기거할 때는 모든 중생이 모든 괴로움의 덩어리를 소멸할 것을 원합니다.
구조함을 당할 때에는, 모든 중생이 모든 번뇌를 해탈할 것을 원합니다. 의호를 만날 때는 모든 중생이 모든 두려움을 떠날 것을 원합니다.
만약 어디를 갈 때에는, 모든 중생이 일체지에 도달할 것을 원합니다. 만약 마주칠 때는 모든 중생이 필경인을 얻기를 원합니다.
광명을 볼 때에는 모든 중생이 어두운 지혜가 없기를 원합니다. 번갯불을 볼 때에는 모든 중생이 무명의 어두움을 깨뜨릴 것을 원합니다.
등거를 얻을 때에는 모든 중생이 필경에 청정함에 머무를 것을 원합니다.
용건을 만날 때는 모든 중생이 부사의한 법에 대하여 깊이 바른 이치에 들어갈 것을 원합니다.
용장을 만날 때는 모든 중생이 걸림 없는 지혜의 쌓임 [지온]을 얻을 것을 원합니다.
나아가하는 말에 헛됨이 없고, 깊이 굳은 마음의 회향, 한 경계에 머무르는 마음의 회향[경심], 환희하는 마음의 회향ㆍ지극히 환희하는 마음의 회향ㆍ
유연한 마음의 회향ㆍ크게 자비로운 마음의 회향ㆍ애호하는 마음의 회향ㆍ거두어들이는 마음의 회향, 수호하는 마음의 회향ㆍ안온한 마음의 회향,
이와 같은 것으로써 회향합니다.
또 나의 이선근으로써 모든 중생이 청정한 소취의 성취를 얻기를, 청정한 소생의 성취를 얻기를, 청정한 복된 모습으로 신체를 장엄하는
성취를 얻기를, 훼손되어 파괴되지 않는 성취를 얻기를, 광대한 보시의 성취를 얻기를, 구원한 마음의 성취를 얻기를, 체념하는 일이 없는 성취를 얻기를, 통달하여 이해하는 성취를 얻기를, 한량없는 깨달음의 성취를 얻기를, 신업과 의업이 일체의 공덕을 장엄하는 원만한 성취를 얻기를 원합니다.
또 한량없는 선근으로써 여러 중생과 함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공양으로 말미암아 감소되지 않고, 부처님ㆍ세존에게 모든 죄악을 참회하고,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에게 친근하고, 법을 설하는 것을 듣고, 듣고 나서 모든 의혹을 여의고, 들은 것과 같이 받아 지니면서 바른 행위를 상속하여 구족 하고, 여래를 공양함으로 말미암아 일을 성취하고, 마음으로 부지런히 수습하여 모든 죄악이 없어질 것을 원합니다.
또 나는 이 선근의 근본을 심어 필경에 모든 곤궁함을 여의고, 일곱 가지 성스런 재보[칠성재]에 대해서도 원만한 것을 얻기를, 모든 부처님을 따라서
수승한 선근을 배워 얻고, 널리 능히 광대한 믿음과 이해를 성취하여 일체지의 지혜에 들어가기를, 모든 세간에서 걸림 없는 눈을 지어 장엄한 신체를
갖추어 청정하게 일체의 공덕을 거두어들이기를, 말[어]을 장엄하여 모든 감각기관을 성취하기를, 여래의 십력에 계박된 마음으로 분별하여 적집한
유행하고 그치는 행위에 있어서 원만하지 않음이 없기를 원합니다.
또 모든 여래가 성취하는 미묘한 즐거움의 자리를 모든 중생도 역시 또한 모두 얻기를 원합니다.
육십 회 향의궤 중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모든 중생이 지혜의 식사를 획득하고, 응당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마음으로 두루 알고는 결정코 음식을 간택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나아가 애욕을 생하지 않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구름이 비를 내리는 것처럼 법이 한 가지 맛[일미] 임을 얻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여러 우수한 맛을 얻어 가장 뛰어난 법의 열락에서 멈추어 그치는 것이 충만하고, 일체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극히 잘 사유하여 집착하는 모습을 생하지 않기를 원한다. 말하자면 불괴승ㆍ최상승ㆍ최승승ㆍ속질승ㆍ대력승등이다.
모든 중생이 즐거이 모든 부처님을 바라보고 싫증 내지 않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선지식을 보는 데에 간단히 없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독이 없는 약을 보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번뇌를 그쳐 소멸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청정한 일륜을 바라보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어두움을 깨뜨리고 나서 좋아하는 바에 따라 설명하여 이와 같은 신체 모습이 자성을 비치어 알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수승한 광명을 바라보고 번뇌를 보지 않으며, 오직 적열ㆍ현선ㆍ애락ㆍ희망ㆍ극희를 보고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 찾아가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계향을 구족 하여 보살이 바라밀다에 있어서 계를 지키어 훼손하지 않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보시를 닦아서 널리 일체를 포기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인욕을 닦아서 마음이 요동하지 않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정진을 닦아서 위대한 정진의 갑옷을 입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선정을 닦아서 현재 하는 부처님 앞에서 삼마지를 얻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보살의 회향을 닦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일체의 깨끗한 법을 닦아서 모든 선하지 않은 법을 벗어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하늘의 자구를 획득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큰 지혜의 행위를 일으켜 성스런 자구를 획득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보리심으로써 모든 이생을 훈습하여 미묘한 즐거움을 갖추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윤회하는 괴로움을 여의고 안온한 자구를 획득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청정한 부처님의 국토에 머물러, 모든 법을 얻기를 원한다.
말하자면 공덕에 머무름, 상응에 머무름, 광대하고 요동하지 않는 최상의 모든 부처님에 머무름이다.
모든 중생이 부처님에게 가까이하여 즐겁게 머물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한량없는 광명을 얻어 모든 부처님의 법을 조명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걸림 없는 광명을 얻어 능히 한 줄기 광명으로써 모든 법계를 비추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안락한 신체를 얻어 여래의 몸을 얻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마치 약왕처럼 필경에 능히 방론을 구별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마치 약나무처럼 손해 끼치는 일이 없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세상의 훌륭한 의사처럼 질병을 없애버리고, 일체지를 얻어 안락한 곳에 이르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세상의 좋은 약이 되어 그 심원한 마음처럼 도사가 화합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모든 병의 고뇌를 없애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큰 세력을 지닌 신체를 얻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모든 윤위산(철위산)을 부수는 힘을 얻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한량없는 분량의 그릇으로 허공계를 다하는 광대한 염근을 얻고,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 설명을 널리 거두어 새겨 잊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선한 청정한 도량을 얻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분별을 깨달아서 청정하여 견고하게 집착하는 일이 없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지향하고자 하는 일체의 처소를 얻어 불지 위로 행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그 밖의 일체중생에게 마음으로 손해 끼치는 일이 없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한 찰나 마음으로 모든 법계를 반연 하고, 일체 세계를 참배하는 데 피로함도 없고 권태로움도 없으며, 싫어함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신통륜을 얻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미묘하고 즐거운 행위를 얻어 함께 모든 보살의 도량에 찾아가 참배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선지식과 한량없는 선근에 대하여 마음으로 여의지 않고,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것을 수호하는 것에 따르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선지식과 함께 동일하게 이롭고 즐겁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깊은 마음으로 환희하며 오직 선함만을 거두어들여 선지식과 함께 안락함에 머무르며 복된 행위를 따라서 닦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선지식이 소유하는 선근과 청정한 업보에 대하여 동일하게 크게 소원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대승행에 머물러 영원히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여의고, 일체지에 대하여 끝이 없이 다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깊이 선근을 비호하여 모든 여래가 수호하는 바가 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지혜와 덕을 비호하여 세간의 일체 미혹과 오염을 해탈시키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밝은 법을 구족 하여 산란함을 야기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파괴되지 않는 행위를 얻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10력의 덮개[십역개]를 펼쳐 일체를 덮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대단히 깊은 마음을 얻어 끝내 깨닫게 되기를 원한다.
모든 중생이 사자좌에 앉아서 부처님의 신통을 얻어 모든 세간에서 이와 같이 관찰하기를 원한다.”
또 허공장경에서 말한다.
“내가 쌓아 모은 선근ㆍ법지ㆍ선교를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 의지하게 되기를 바란다.”
무진의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만약 선한 심법과 심소유법을 자주 생각하며 보리에 회향한다면, 이것을 선교라 한다.
만약 미래의 선근이 보리를 결정하면, 현전의 모든 일에서 일어나는 선한 마음을 모두 사용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
또 마음이 행하는 바와 몸의 방편으로 모든 거두어들이는 것을 포기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거두어들이는 것이란, 곧 3유의 괴로움의 근본을 해탈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갖가지 지은 바는, 응당 세간과 출세간의 한량없는 부귀와 즐거움을 일으킨다.
몸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뜻대로 수용하고, 나는 응당 재물의 이익의 갈고리
로써 모든 중생을 뽑아내어 저 언덕의 자리에 안치할 것이다. 보살은 보살도에 의하여 보시한다.
나머지는 보운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2. 호지정법계품
무엇이 수용이고 어떤 것을 보시라고 하는가? 만약 수용이 없다면 또한 수호함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을 수호하는 자는 응당 수용으로써 중생을 이익되게 해야 한다.
보살별해탈경에서 말한다.
사리자여, 응당 다른 이를 수호하는 것이 곧 자신을 수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리자여, 이와 같은 행상은, 만약 보살이 다른 이를 수호하는 것을 성취한다면, 설사 목숨을 잃는 인연을 만난다 하여도 나는 이 악업에 대하여 전부
응당 짓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또 무외수소문경에서 말한다.
“다시 큰 수레가 극히 무거운 것 등을 실어 나르는 것처럼 오직 모든 지혜로운 자만이 법에 대하여 깨닫는다.”
무진의경에서도 또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중생을 수호하려는 자는 설사 몸에 괴로움이 있어도 피로하여 싫증을 내지 않거니와, 하물며 선지식을 버리겠는가?”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말한다.
“선남자야, 보살은 선지식이 맡아 지킴으로 말미암아 나쁜 세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선지식이 구족함으로 말미암아 보살이 배워야 할 자리를 뛰어넘는다. 선지식이 가르쳐 인도함으로 말미암아 세간을 벗어나는 것을 얻는다.
선지식에 친근함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실망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는다.
선지식이 거두어들임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일체의 희유함을 행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에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바르게 도를 깨닫고, 업의 미혹된 장애를 제거하며 나고 죽는 성을 벗어나 청정한 자리에 도달한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선지식을 친근하여 받드는 것은, 응당 이와 같이 생각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마음은 대지와 같다. 일체를 짊어지고도 피곤함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금강과 같다.
의지와 서원을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윤원산(윤원산:윤위산)과 같다.
설사 모든 괴로움을 겪더라도 기울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노복[복사]과 같다.
모든 작업을 행함에 싫어하거나 천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고용인과 같다. 티끌과 더러움을 닦아 내고 교만함을 여의기 때문이다. 마음은 큰 수레[대거]와 같다.
무거운 것을 실어서 멀리 옮기어도 기울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우량한 말[양마]과 같다. 사납고 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배나 뗏목과 같다. 가고 오는 데에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효자와 같다. 모든 친한 벗에게 순한 얼굴빛으로 받들기 때문이다. 또 선남자야, 응당 자신에게서는 병으로 괴로워하는 생각을 일으키고, 선지식에게서는 의왕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가르치는 바에 따라 좋은 약이라는 생각을 하고, 수행하는 바른 행위에서 병을 제거하는 생각을 한다. 또 선남자야, 응당 자신에게서는 두려워하는 생각을 하고, 선지식에게서는 용감하고 건강한 생각을 하며, 가르치는 바에 따라 기장이라는 생각을 하고, 수행하는 바른 행위에서 원망함 [원]을 깨뜨리는 생각을 한다.”
또 다음에 해탈관우바이에서 말한다.
“선남자야, 보살은 선지식이 가르치는 바에 따라서 응당 모든 부처님ㆍ세존을 공양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보살은 선지식의 말에 어긋남이 없으니,
일체지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선지식의 말에 의혹이 없으며, 모든 선지식과 가까이하여 생각을 떠나지 않고, 모든 현재의 이익을 얻는다.”
또 다음과 같다.
선재가 견고당 비구의 처소에 참배하여 머리를 낮추어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백천 번이나 돌고 물러나 한 면에 머물렀다.
그때 견고당 비구는 관찰하고 예배하며, 또다시 자세히 관찰하고 또다시 예경 하였다. 이와 같이 생각하며 두루 관찰하고 나서 말하였다.
‘어느 곳에서 왔기에 이러한 모습을 지닌 자가 되었는가?’
현전의 이익과 공덕에 대하여 상념의 견고함과 한량없는 행위와 서원을 추구하고, 이 의지를 버리지 않고 그 모습을 보는 것과 음성을 취하는 것을 희망한다.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와 같이 선지식을 참배하여 일체 지를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해운비구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물러났다.”
또 보살별해탈경에서 말한다.
“사리자여, 보살은 선한 법을 좋아하고 바라며 세간의 진귀한 보배를 버리지 않음이 없다. 몸으로써 받들어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주사를 공급하며
그 밖의 어업에 용감하지 않음이 없으며, 화상과 아사리에게서 지극한 존중을 일으킨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계박을 단절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을 구하고, 생ㆍ노ㆍ병ㆍ사ㆍ우ㆍ비ㆍ고ㆍ뇌를 단절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을 구한다.
발심은 모든 중생의 가난한 괴로움을 제거하는 보배와 같으므로 이와 같은 법을 구한다.
발심은 일체중생을 안락하게 하는 약과 같으므로 이와 같은 법을 구한다.”
최상수소문경에서 말한다.
“또 다음에 장자여, 혹은 보살의 처소에서 들은 하나의 4구 게(귀게)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명하며, 보살의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에 상응하는 행위를 쌓아 모은다.
그 아사리의 법에 대하여 응당 존중해야 하며, 나아가 명ㆍ구ㆍ문ㆍ설ㆍ게로써 찬탄한다.
혹은 일 겁 동안 아사리를 가까이하여 받들고 항상 정직하게 행하며, 일체 재물의 이익과 수용을 공양하여도, 장자여, 아사리를 존중하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팔천송반야바라밀다경에서 말한다.
“‘선남자야, 그대는 선지식에게서 응당 존중과 애락을 일으켜야 한다.’
그때 상참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행상하고 존중하며 생각하고는 다음에 한 성(성)을 예방하여 그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법상 보살을 공양하려고 하기 때문에 마땅히 스스로 몸을 팔아서 그 값어치[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오랜 어둠 속에서 욕망의 인연 때문에 나고 죽는 몸을 받으며, 여러 세계를 유전하는데 한량없고 끝이 없으며, 아직 일찍이 법을 위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하였다.’
그때 상참보살은 큰 소리로 외치며 그 소리가 들리게끔 하였다.
‘누가 이 사람을 사겠소?’
그때 마군 파순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모든 바라문과 장자 등으로 하여금 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여 스스로 몸을 팔려고 해도 팔 수가 없었다.
그는 한 번 찾아가 보고는 아무도 듣는 자가 없자, 곧 스스로 슬피 울며 부르짖었다.
‘괴이하도다. 그 재물의 이익을 어찌 이와 같이 얻기가 어렵단 말인가? 나는 스스로 몸을 팔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그럴 수도 없구나.’
그때 삭가라(삭가라:제석천주)라고 하는 천주가 범지의 몸으로 변화하여 상참보살에게 와서 말하였다.
‘선남자야,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에 머무르며 슬피 울고 근심하며 고뇌하는가?’
상참보살이 말하였다.
범죄여, 나는 이제 선한 법을 좋아하여 법을 공양하고자 마땅히 나의 몸을 팔려고 하였으나 끝내 사는 자가 없었소.’
그때 범지는 상참보살에게 말하였다.
‘나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보시를 베풀 곳이 없다.
마땅히 사람 몸의 심혈과 골수가 필요한데, 이런 것을 팔지 않겠는가?’
그때 상참보살이 스스로 생각하였다.
‘크게 선한 이익을 획득하는 것을 나는 이제야 원만하게 하겠구나. 반야바라밀다의 선교방편을 결정코 알겠도다.
나는 몸조차 팔려고 하였는데 어찌 심혈과 골수를 아까워하겠는가?’
기뻐 뛰는 마음[용약심], 잘 분별하는 마음[선분별심], 지극히 환희하는 마음[극환희심]을 발하고는 범지에게 말하였다.
이 몸을 마음대로 하시오.’
나아가 상참보살은 오른손으로 예리한 칼을 잡고 팔을 찔러 피를 뽑아내고, 팔의 살의 도려내고 나서 뼈를 부수어 취하였다.
그때 장자의 여식이 있었는데, 높은 누각에 기거하며 멀리서 이 일을 보고는, 그에게 찾아가서 상참보살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와 같이 몸에 고초를 가합니까?’
나아가 소녀는 사연을 듣고 공양하고 나서 다시 말하였다.
‘선남자여, 거기에는 어떠한 공덕과 선한 이익이 있습니까?’
대답하여 말하였다.
‘소녀야, 그 보살은 나를 위하여 반야바라밀다의 방편과 선교를 설하여 이와 같은 배움을 얻게 하였다.
이와 같이 배우는 자는 모든 중생을 위하여 소귀취가 될 것이다.’
요약하여 말한다. 또 다음에 소녀는 상참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아사리에게서 이와 같이 광대한 법을 구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낱낱의 법의 의미에 대하여 능가사 수의 겁 동안 마땅히 이 몸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광대한 법을 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나는 지금 금ㆍ은ㆍ말니주보ㆍ폐유리 등을 갖추어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그대가 법상보살에게서 널리 선한 이익을 짓게 하고자 합니다.
그때 소녀는 5백의 권속과 함께 법상보살의 처소에 참배하였다.
그때 법상보살마하살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머무르는 거처로 가서 칠 년 동안 이와 같이 미묘한 삼마지에 들어갔다.
상참보살도 또한 칠 년 동안 욕심을 일으키지 않고, 방심을 일으키지 않고, 해심을 일으키지 않고, 자미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만 법상보살이 마땅히
어느 때에 삼마지에서 깨어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하며 법좌앞에 나아가 그 설법에 대하여 땅과 방소를 다하여 갖가지 꽃과 미묘하고 진귀한 보배를 흩뿌렸다.
그때 장자의 여식은 앞에 나타난 5백의 권속과 함께 상참보살의 위의와 나아가고 머무름에 대하여 또한 그와 같이 배웠다.
그때 허공에서 하늘이 울리며 상참보살에게 보고하며 말하였다.
‘이 법상보살은 나중에 7일이 지나서 삼마지에서 깨어나 그 성 안으로 가서 마음대로 법을 설할 것이니라.’
그때 상참보살은 이 소리를 듣고 나서 지극한 즐거움과 적절하게 기쁜 뜻을 일으키고, 땅을 청소하여 엄정하게 하였다.
그때 장자의 여식은 5백의 권속과 함께 법좌 앞을 지혜로 교묘하게 일곱 가지 보배로써 섞어 장식하였다.
또 다음에 상참보살은 땅과 방소에 대하여 엄숙하게 지키며 먼지를 쓸고 물을 뿌리려고 주변에서 물을 구하였으나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음장이라고 하는 마군 파순이 있었다.
그는 모든 물을 숨겨 보살로 하여금 마음을 괴롭게 하여 도의를 물러나 잃게 하고 선하지 않은 근본을 증장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때 상참보살은 마군이 숨긴 것을 알고서 생각하였다.
‘나는 응당 몸을 찔러 피를 내어서 땅을 적셔야 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이 땅과 방소는 대개 진토로 되어 있어 법상보살의 몸에 혹시 먼지가 오염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법을 위하여 설사 내 몸을 파괴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어찌 아까우랴. 또 나는 옛적에 욕망을 인연으로 하였기 때문에 끝없이 왕복하여 윤회하며 태어나고 죽었지만, 일찍이 법을 위하여 자신의 신명을 바친 적이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예리한 칼을 집어 몸을 찔러서 피를 뽑아내어 두루 그 땅에 뿌렸다. 모든 여식과 권속도 또한 이와 같이 배웠다.
그때 마군 파순은 모두 마음대로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대승사법경에서 말한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그 모습과 수명을 다할 때까지, 나아가 혹은 목숨을 잃는 인연을 만나도 끝내 선지식을 버리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대승집보살학론 제4권
2. 호지정법계품 ②
이 경전에서는 자기 몸을 보호하듯이 모든 선지식을 저버리지 말라고 한다. 이 경전에서는 한 찰나의 순간에도 보살의 배움을 좋아한다.
이 경전에서는 보살의 행위를 모은다. 보살의 배움에 대하여 응당 그 말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므로 헤아려 살펴본다면 이 죄에 떨어지지 않으며, 지혜롭지 않은 처소에 대해서도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이 경전을 보고 항상 좋아하여 존중하고, 이 경전을 보는 자는 모든 선지식을 버리지 않고, 일체의 바른 법을 지킨다 [호지]고 말한다.
해의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그런데 선남자야, 말할 수 없다 [부가열]는 것은, 말하자면 문자와 언어로써는 생함이 없는 법[무생법] 중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문자와 언어로써 총 지문을 표현하고, 나아가 그것을 말함이 있다면, 이것을 곧 바른 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법을 설하는 스승이 이와 같은 매우 심원한 경전의 바다[경해]에서 말한 것처럼 수행한다면, 혹은 어떤 사람이 이 법사에게 친근하여 존중하고 받들며, 은밀하게 지키고, 음식ㆍ의복ㆍ앉고 눕는 도구ㆍ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등 갖가지를 공급하고, 모든 선한 품성을 보호하고 언어를 보호하며, 설사 비방하는 일이 있어도 또한 덮어 버린다.
이것을 곧 바른 법을 호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선남자야, 타인과 투쟁하여 이기고자 하는 일이 없고, 법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이 사람은
법과 더불어 함께 집착하는 일이 없다.
이것을 곧 바른 법을 호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모든 중생을 해탈시키는 지혜가운데 훼손하여 감소시키지 않고, 재물의 이익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타인에게 법을 베풀지 않는다.
이것을 곧 바른 법을 호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혹은 법을 들음으로 인하여, 혹은 법을 설함으로 인하여 나아가 한 걸음을 행하여 한 번 숨을 내쉬고 들이키는 동안에 한 곳에만 마음을 쓴다면, 이것을 곧 바른 법을 호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약하여 말한다. 또 선남자야, 만약 물질과 마음의 경계에 대하여 모든 반연이 없고, 오직 한 경계에 성품으로서 조복하고 그친다면, 이것을 곧 바른 법을 호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나아가 선남자야, 만약 이 법은 법에 있어 굴려야 하고, 이 법은 취착 하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면, 이것을 곧 바른 법을 호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법을 설하는 스승이 비록 선지식에게 친근하고 선지식을 저버리지 말라는 모습을 말하여도 만약 바른 법을 호지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수호하지
않는 것이며, 청정하지 않은 것이며, 증장하지 않는 것이다.
곧 보살은 결정코 이와 같은 일에 대하여 바른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사자후승만경에서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소유하는 항하사 수의 한량없는 행원은 모두 응당 하나의 커다란 서원 속에 들어가야 한다.
말하자면 바른 법을 지키는 것이다. 바른 법을 지키는 것이란 위대한 경계이다.
그 경전에서는 다시 말한다.
“비유하면 위대한 역사(역사)가 있어 신체의 부분을 조금만 접촉하여도 그 때문에 손해 보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승만(승췌)이여, 바른 법을 조금만 지키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 마군 파순으로 하여금 크게 번뇌가 일어나게 한다.
나는 그 밖의 어떠한 선한 법이 능히 악마로 하여금 이러한 근심과 번뇌가 일어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오직 바른 법을 조금이라도 지키는 것이다.
또 말한다.
비유하면 수미산왕이 단정하고 특수하여 모든 검은 산[흑산]5)에 대하여 가장 높고 거대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승만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대승에 머무르는 자는 신명과 재물을 포기하고 마음으로 바른 법을 지키는 것을 거두어들인다.
그 밖의 대승에 머무르는 자가 신명과 재물을 포기하지 않고 획득하는 일체의 선한 법보다 수승하기 때문이다.’
해의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여래의 바른 법을 지키는 자는
곧 수승한 세존에 의하여 거두어들여지고,
여러 하늘과 용의 왕과 긴나라의
복덕과 지혜를 모두 능히 거두어들인다.
마침내 여래의 바른 법을 지키는 자는
태어나는 찰토를 헛되이 지나지 않고
모든 생애에서 수승한 세존을 친견하고,
친견하고 나서 곧 마음의 청정을 얻는다.
여래의 바른 법을 지키는 자는
숙명의 위대한 자아의 법[대아법]을 얻으며
출가의 선한 이익[선이]을 자주 이루고
수행은 진실하고 청정하다.
또 말한다.
여래의 바른 법을 지키는 자는
위대한 총지와 선한 이익을 얻어
실로 백 겁을 지나도 다시 듣지 않아도 되며
변재를 구비하여 전부 걸림이 없다.
여래의 바른 법을 지키는 자는
나 아가제석ㆍ범천ㆍ호세등이 되고,
사람 중에서는 다시 전륜왕이 되며,
전부 보리를 깨달아 안온하게 누린다.
여래의 바른 법을 지키는 자는
서른두 가지 특이하고 미묘한 모습에
큰 지혜로 장엄한 기쁘고 즐거운 신체를 구족 하여
따라서 보는 자는 싫증을 내지 않는다.
여래의 바른 법을 지키는 자는
보리심을 여의지 않고,
바라밀의 행위를 버리지 않으며,
널리 여러 가지 선을 받아들인다.
3. 호법사품
바른 법을 호지하는 행자는 사유하여 수호하며, 타인으로 하여금 손해 보게 하지 않아 이러한 어려운 일을 여읜다.
허공장경에서 바른 법을 수호하는 보살들이 동일하게 게송으로 말하는 바와 같다.
최상의 양족존이시여,
이제 면도한 후에
모두 용맹한 마음을 내어
스스로 신명을 아끼지 않고
부처님의 바른 법을 지키겠나이다.
이익의 양성을 버리고,
모든 권속을 여의며,
부처님의 지혜를 증득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바른 법을 버리지 않겠나이다.
혹은 훼손하고 한탄하고 꾸짖고 욕하거나
나아가 나쁜 말이 가해져도
바른 법을 지키기 위하여
저희들은 모두 마땅히 인내하겠습니다.
혹은 희롱하고 조롱하고 경멸하고 천대하고,
비방하고 칭찬하지 않아도
바른 법을 호지하기 위하여
모두 마땅히 인내하겠습니다.
또 총체적으로 간략하게 말한다.
말법시대의 중생을 위하여
저희들은 마땅히 바른 법을 호지하겠습니다.
가령 세상의 나쁜 비구는
커다란 증상력이 있어
모든 미묘한 경전에 대하여
듣지도 않고 또한 읽지도 않으며,
오직 자기가 본 것만을 스승으로 삼아
다른 것을 집착하여 서로 그르다고 합니다.
또 매우 심원한 가르침이
모두 해탈의 과보를 수순 하는
이와 같은 바른 법 중에서
마음으로 즐겨 분별하지 않겠습니다.
중생을 자비롭게 생각함으로써
혹은 이 법에 머무르지 않아도
그를 위하여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리니,
이 경전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계율을 훼손하는 사람이
이익의 양성에 탐착 하는 것을 본다면,
나는 마땅히 연민의 마음으로
방편을 써서 버리게 하겠습니다.
만약 나쁜 마음을 가진 자가
바른 법을 훼방하는 것을 본다면,
나는 자비롭게 인내심을 가지고
바르게 보고 환희하게 하겠습니다.
힘이 그 사람을 보호하는 것처럼,
어업을 잘 성취하고,
혹은 다시 더불어 말하지 않으며,
그는 마땅히 스스로 안주할 것입니다.
그 뒤에 4 섭사로써
이와 같은 사람을 성숙시키고,
죄악의 행위에 대하여
가르쳐 지도하여 깨닫게 하겠습니다.
혹은 능히 심란하고 소란스러움을 버리고,
선한 경계에 적적하게 머물러
자제한 사슴의 왕[록왕]처럼
욕심이 적어 [소욕] 조금으로도 만족하게 [지족] 하겠습니다.
또한 게송에서 말한다.
만약 취락에 들어가
마음이 조유 정직하며
법을 구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위하여 깊고 미묘한 법을 설하겠습니다.
멀리 한적한 곳에 기거하게 하고
적정한 법을 즐기기를 원하여
그 선한 이익으로 말미암아
항상 법의 열락을 획득하게 하겠습니다.
만약 모든 미혹하여 잘못된 자들이
자주자주 그 앞에 나타나면,
법의 열락 속에 안주하여
마땅히 스스로 관찰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세상을 제도하는 스승이다.
세간의 법에 오염되지 않으며,
훼방과 칭찬 속에서도
수미산처럼 요동하지 않겠다.
계율을 훼손한 여러 비구가
설사 찾아와서 훼방을 증대시켜도
응당 스스로 이 일을 인내하여야 하며
삼가 그에게 가해하지 말 것이다.
나는 이 여러 법 가운데
무소유를 설하여
그 바른 법의 행위에 대하여
원통한 일의 갚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문의 모습을 가장하였어도
실로 사문의 덕이 없어
이 올타남을 듣고는
경전에 대하여 또한 훼방한다.
혹은 귀와 코를 절단하고,
기뻐하며 즐겁게 바라보지 않아서
이 올타남을 듣고는
바른 법을 전부 비방한다.
미래의 모든 비구로서
바른 법을 지키는 자는
그 때문에 어려움에 머물게 되어
이 법을 듣지 못하게 할 것이다.
혹은 왕이 집착하여
대중을 꾸짖고 처벌할지라도
나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널리 모두 이 법을 듣기를 원한다.
미래의 나쁜 세상에서
오히려 신명을 잃을지언정
바른 법을 지키기 때문에
중생에게 이익을 지을 것이다.’
묘법연화경에서도 또한 이렇게 말한다.
응당 수행하는 곳과
친근한 곳으로 들어가야 하며,
항상 국왕과
왕자를 여의라.
대신과 관장
흉험 하게 구는 자와
전다라
외도와 범지에게도
또한 친근하지 말라.
증상만에 빠진 사람,
소승의 삼장에
탐착 하는 학자,
계율을 어긴 비구,
이름뿐인 아라한,
비구니,
희희낙락하기를 즐기는 자,
모든 우바이와
모두 친근하지 말라.
만약 이러한 사람들이
좋은 마음을 가지고
보살의 처소에 찾아와서
불도에 대하여 질문하면,
보살은 곧
두려움이 없는 마음으로
바라는 것 없이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라.
과부와 처녀,
모든 남자 구실에 결핍이 있는 자[부남]에게
모두 친근하지 말고
친밀하게 후대하지 말라.
또한 고기를 팔아 살아가는 자와
여색을 자랑하여 파는 자,
이와 같은 사람을
모두 친근하지 말라.
흉험 하게 서로 때리고
갖가지로 희롱하는
모든 음탕한 여자들을
모두 친근하지 말라.
홀로 가려진 곳에 있으면서
여자를 위하여 법을 설하지 말 것이며,
만약 법을 설할 때에는
희롱하지 말라.
말하자면 악마 파순은 보살승에 머무른 지 오래되지 않은 자가 이 반야바라밀다를 수습할 때 큰 세력을 일으킨다.”
또 말한다.
또 다음에 아난다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수습할 때, 어떤 악마가 보살의 처소에 와서 요란한 의미를 일으키고 두려운 일을 나타내며, 번갯불을 나타내어 시방세계를 태워 보살로 하여금 공포에 떨어 온몸의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 생각 사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 물러나게 하고자 한다. 또 다음에 사람으로 하여금 쓰고 베끼고 나아가 읽고 외우게 하는데, 그 사람은 이익의 양성을 즐거이 포기하여 버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며, 이와 같이 광란하여 크게 희롱한다. 또 다음에 쓰고 베끼고 나아가 읽고 외우는 데 여러 마사를 일으킨다. 말하자면 성읍ㆍ취락ㆍ화상ㆍ아사리ㆍ부모ㆍ선지식ㆍ영도ㆍ친다(친다:친척ㆍ권속)을 찾아 이와 같은 뜻을 짓는다. 또다시 도둑맞은 의복과 재물을 생각한다.
또 다음에 법을 설하는 어떤 법사는 이와 같이 매우 심원한 반야바라밀다를 좋아하고 원하여 쓰고 베끼고 나아가 읽고 외우게 하는데, 그 법을 듣는 자는 혹은 싫증을 내어 법사의 처소에서 이와 같이 전도되어 즐겨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경전의 법을 듣는다.
또 법을 설하는 법사는 큰 그릇[대기]이 되기를 원하는데, 그 법을 듣는 자는 작은 부분이 되기를 희망한다.
혹은 법을 설하는 법사는 오직 간략한 설명을 좋아하는데, 그 법을 듣는 자는 다시 번잡힌 설명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일체를 마사라고 말한다.”
또 허공장경에서 말한다.
“내지 기꺼이 열 가지 선하지 않은 업을 행하고 선한 업을 버리는 이와 같은 일체를 전부 마사(마사)라고 한다.”
해의경에서 말한다.
“세존이시여, 또 다음에 보살은 아란야에 기거하며 한적한 곳에서 지내는 것을 즐기어 만족합니다.
비록 세속을 여의고 출가하여 욕심이 적어 만족한다고 하여도 미묘하고 즐거이 행하며 많이 듣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또한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지 않으며, 법을 강의하는 곳에서 청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중에서 편의에 따라 말한 모든 결정적인 의미는 응당 가까이해야 하는데도 물어보지 않고, 작은 선행에 대해서도 또한 구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도 한적한 곳에 머물며 대단히 요란함을 좋아하여 번뇌의 행위를 모아, 손가락을 튕기는 사이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수면이 해를 끼쳐 파괴하여야 하는데 그 도의 관문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자이]과 타인의 이로움 [이타]을 행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을 보살이 아란야에 기거하는 일곱 번째의 마사라고 이름합니다.”
요약하여 말한다.
“세존이시여, 또 다음에 보살은 악지식을 가까이하여 받드는 일이 있습니다. 그는 선지식과 더불어 체상이 다름이 없으며, 나아가 4 섭사까지도 단절하고, 복된 업을 닦는 것을 단절하고, 바른 법을 지키는 것을 단절하며, 오직 협소한 지혜와 욕망이 적고 만족하는 것을 수습하며, 가르쳐 성문과 연각을 말합니다.
혹은 때로 보살이 그러한 것을 떠나서 대승을 행하고, 여기에서 보살은 경영의 의무를 정하여 작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헤아리기를 좋아하여 오직 협소한 지혜를 닦습니다. 어떤 곳에서 말하기를, ‘보살이 보리도에서 용맹하게 정진하여 잠시라도 게을러 쉬는 일이 없다면, 혹은 8, 9겁 동안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보리의 과보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 바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이 용맹하게 정진하여 여기에 머물러 교착하는 일이 결정코 있지 않을 것이니, 오직 한적한 곳에 기거하여 이 과보를 얻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을 보살이 선지식의 체상에 대한 열 번째의 마사라고 이름합니다.
혹은 사람이 이 보살승에 대하여 악마의 갈고리에 제압되어 다른 법을 반연하여 행하고 함께 수습하는 것을 즐기며, 그 따라서 유전하는 것과 같이 한열 한 자가 수습하여 짓는 것에 가까이하여 한열 한 행위에 몰두하니, 말하자면 혼미하여 지향하는 것이 무지하여 마치 말 못 하는 벙어리 양과 같습니다. 내지 이것을 열한 번째의 마사라고 이름합니다.”
“말하자면 모든 보살이 모든 위의의 진지에 있어서 정진하는 행위를 발하여, 혹은 몸 혹은 마음에 대하여 일찍이 게을러 태만함이 없다면, 이것을 보살이 끝내 정진한다고 한다. 어떻게 이 정진에 대하여 게을러 태만함을 일으킬 수 있는가?
혹은 때가 아닌 시기에 지극히 비중 있는 일을 수습하여 놀라서 겁이 나고, 오히려 믿고 이해하는 난행과 고행을 성숙하지 못한다.
그리고는 곧 ‘자기의 육신을 보시하고, 어떻게 때가 아닌 시기에 이 수용을 유지하여 모든 중생에게 보시하겠는가?’라고 말한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에게서 게을러 태만함을 일으키고는, 즉시 쌓아 모은 큰 과보인 보리심의 종자를 훼손하여 버린다.
또 허공장경에서 말한다.
때가 아닌 시기에 억지로 구하는 것을 마사라고 한다. 말하자면 때가 아닌 시기에 육신에 대하여 홀연히 이와 같이 버리려는 마음을 일으키는데, 이전에 수습하지 않은 것과 같이 또한 조금도 보시하지 말라고 한다. 이러한 생각에 머무르는 자는 어리석어 스스로 해친다. 보리심을 잘 성숙시키는 것 등에 위배되고, 그러므로 자기 육신 등을 보시한다. 응당 잘 수호해야 한다. 잘 드러난 약나무[약수]의 근원[근종]을 때가 아닌 시기에 보시하여 수용하는 것
과 같다. 응당 이 바른 깨달음의 약나무를 잘 수호하는 것도 역시 또한 그와 같다.”
“부처님께서 선남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모든 마사를 여의고 선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이 보살이 언제 어디서나 응당 먼저 모든 악지식을 멀리 여의어야 하고, 또한
그 부류를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의 처소에 찾아가서 세속의 말[세 속어]을 논의하고, 친근ㆍ이익의 양성ㆍ공양ㆍ공경, 이와 같은 여러 종류를 언제 어디서나 모두 멀리 여읜다.
또 만약 미세한 번뇌가 능히 보리도를 장애 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또한 모두 멀리 여읜다. 이와 같이 대치하는 바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 경전에서 다시 악지식의 모습을 말한다.
“‘바른 계율을 훼손하는 자가 악지식이다.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바른 견해ㆍ바른 행위ㆍ바른생활을 훼손하는 자는 모두 멀리 여의어야 한다. 요란함을 좋아하는 자, 매우 게으른 자, 나고 죽음에 집착하는 자, 보리의 문에 위배되는 자, 집안의 권속을 좋아하는 자, 마땅히 이와 같은 모든 악지식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선남자야, 비록 기꺼이 이러한 악지식을 멀리 여읜다고 하여도 그에 대하여 나쁜 마음과 손해 끼치는 뜻을 이를키지 말고, 응당 이와 같은 마음에 머물러야 한다.’
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의 세계에 처하여 모은 것을 깨뜨려 버린다. 그러므로 나는 응당 이것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또 다음에, 가섭이여,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보리심을 잃어버린다. 어떠한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말하자면 아사리와 그 밖의 사장에 대하여 존중하지 않고, 반대로 속이는 것이다.
둘째는 의심이 없는 것에 타인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대승에 머무르는 자를 칭찬하지 않고 도리어 매도하는 것이다.
넷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면서 마음으로 아첨하고 속이며 정직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음에 가섭이여,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모든 태어나는 곳에서 보리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얻으며, 나아가 보리의 도량에 앉아 계속하여
나타난다. 어떠한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설사 목숨을 잃어버리는 인연을 만나도 망령된 말[망어]로써 친근하며 희롱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면서 마음으로 정직하게 행하며 모든 아첨과속임을 여의는 것이다.
셋째는 모든 보살에 대하여 논의[의론]를 생각하고 그 비구는 이러한 말을 좋아하지 않고, 나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솥을 부숴버리고 가버렸다.
그 업보로 육체가 솥이 되는 괴로움을 받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치지 않고 있다.
또 그대가 보는, 중간 혹은 단절되어 오직 조금만 연결되어 유지되는 자는 지옥 사람이다.
옛날에 어떤 비구가 이익의 양성만을 도모함으로 말미암아 인색하였기 때문에 여러 사물을 주었다가 다시 회수하여 교환하게 하여 동절기[동시]나
우기[우시]에 서로 바꾸어 주었다.
그 업보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받아 그치지 않고 있다.’”
4. 공 품(공 품) ①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관정한 찰제리왕에게는 다섯 가지의 근본 죄가 있다. 만약 이것을 범하면 일체의 숙세에 심은 선근을 태워 소멸하고, 나쁜 세계로 향하게 되며, 타인보다 파멸이 심한 곳으로 떨어지고, 모든 하늘과 사람들의 즐거움을 멀리 여의게 된다.
어떠한 것이 그 다섯인가? 선남자야, 관정 한 찰제리의 왕으로서 고의로 불탑의 기물과 사방승물을 취하는데, 스스로 짓기도 하고 타인에게 시키기도
한다면, 이것을 첫 번째의 근본죄라 한다. 만약 성문승의 법과 연각승의 법을 비방하고 대승의 법을 비방하며, 은폐하고 어려움에 처하게 한다면, 이것을 두 번째의 근본죄라 한다. 만약 나의 법에 의거하여 출가한 자가 수염과 머리털을 깎고 가사를 입고, 배움이 있거나 배움이 없거나 계율을 지키거나 계율을 훼손하거나, 그 가사를 벗겨 괴롭혀서 환속시키고, 혹은 종아리를 치고 감옥에 가두어 폐쇄시키며, 혹은 목숨을 절단한다면, 이것을 세 번째의 근본죄라고 한다. 부모를 살해하고, 아라한을 살해하고, 화합하는 승가를 파괴하고, 나쁜 마음을 가짐으로써 부처님의 몸에서 피가 나게 하는 것 가운데 한 가지 일을 행함에 따라서 무간지옥에 빠질 다섯 업이 생한다면, 이것을 네 번째의 근본죄라고 한다. 만약
원인과 결과가 없다고 비방하고 다른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스스로 열 가지 선하지 않은 업을 행하고 혹은 전하여 많은 사람을 가르쳐서 자신도
열 가지 선하지 않은 업에 견고하게 머물고 타인도 열 가지 선하지 않은 업에 견고하게 머물게 한다면, 이것을 다섯 번째의 근본죄라고 한다.
총체적으로 생략한다. 만약 나라의 성읍ㆍ취락ㆍ사택ㆍ인민을 파괴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것을 근본죄라고 한다. 요약하여 말한다.
또 다음에 선남자ㆍ선여인아, 처음 수행하여 대승에 머무는 자에게는 여덟 가지 근본죄가 있다. 이 처음 수행하여 대승에 머무는 자로서 근본죄에 대하여 잘못함이 있으면, 일체의 숙세에 심은 선근을 태워 소멸하고, 나쁜 세계로 향하게 되고, 타인보다 파멸이 심한 곳으로 떨어지고, 하늘과 인간과 대승 등의 즐거움을 멀리 여의며, 오래도록 윤회하게 되어 선지식을 여읜다. 어떠한 것이 그 여덟인가? 이 모든 중생은 옛 적의 악한 행위로 인하여 험난한
오탁악세에 태어나서, 작은 선근으로써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매우 심원한 대승경전을 듣게 되어 그 사람의 지혜가 얕아도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한다. 그런데 처음 수행하는 보살은 매우 심원한 법공을 설하는 경전을 듣고는, 그 들은 바와 같이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앞에서 말한 대로 지혜가 얕아도 여실하게 교묘한 구문의 의미와 광대한 경계를 열어 보인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범부와 이생은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을 듣고는 마음으로 두려움을 생하고, 마음으로 두려워하기 때문에 곧 문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 잃어버리며, 성문승의 마음을 발한다.
이것을 처음 수행하는 보살의 첫 번째 근본죄라고 한다.
선남자야, 죄를 범하기 때문에 일체의 숙세에 심은 선근을 태워 소멸하고, 나쁜 세계로 향하게 되고, 타인보다 파멸이 심한 곳으로 떨어지고, 하늘과
인간과 대승 등의 즐거움을 멀리 여의며, 보리심을 훼손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다른 유정 보특가라의 깊은 마음의 의지와 서원에 대하여 응당 먼저 알고 나서 마음이 행하는 바와 같이 그에 따라서 점차 법을 설한다.
비유하면 점차 큰 바다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요약하여 말한다.
또 다음에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 이와 같이 말을 한다.
이것을 처음 수행하는 보살의 두 번째의 근본죄라고 한다.’”
대승집보살학론 제5권
4. 공 품 ②
“또 다음에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 이와 같이 말을 한다.
‘그대는 어떻게 바라제목차및 율의와 계를 견고히 지니고 수호하는가? 응당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고 대승경전을 읽고 외워야 한다. 혹은 몸[신]과 말[어]과 뜻[의]으로 모은 번뇌와 선하지 않은 업보가 전부 청정해진다.’
이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것을 처음 수행하는 보살의 세 번째 근본죄라고 한다.
또 다음에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 이와 같이 말을 한다.
‘선남자야, 능히 성문승의 법을 듣고 지니며 읽고 외우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처럼,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 성문승의 법을 설하지 않는다. 큰 과보를 얻을 수도 없고, 영원히 번뇌를 끊을 수 없다. 마땅히 대승경전을 믿어 듣고 지니며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 대승경전의 법을 설해야 한다.
능히 일체의 나쁜 세상에 태어나는 죄의 과보를 참회하여 제거하고,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바와 같은 이러한 견해를 취하면, 두 사람이 모두 죄를 짓는다. 이것을 처음 수행하는 보살의 네 번째 근본죄라고 한다.
또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 두 가지의 말을 한다. 그렇게 보는 바와 같이 이양을 위하여 대승경전을 광대하게 칭찬하고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며, 그 의미의 이치를 듣고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명하며, 문득 말하기를, ‘나는 대승을 수행하는 자이다’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는 질투를 품고, 또 다른 사람이 얻은 전체 혹은 일부에 대하여 문득 기만ㆍ비방ㆍ경시ㆍ훼손ㆍ능멸을 한다. 질투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몸을 높이고 문득 말하기를, 나는 사람을 초과하는 법[과인법]을 얻었으며, 대승 중에 그 미묘한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이 사람은 재물의 이익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크고 무거운 죄를 얻어 나쁜 세상으로 향하게 되고 다른 사람보다 파멸이 심한 곳으로 떨어진다.
비유하면, 어떤사람이 큰 바다에 들어가고자 하여 배를 수리하고, 장차 보배가 있는 물가에 이르러 스스로 그 배를 파괴하여 목숨을 잃는 것과 같다.
처음 수행하는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다. 대승의 바닷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면서도 질투 때문에 망령된 말을 하는 인연을 지어 믿음의 배를 파괴하고 지혜의 목숨을 단절한다.
이 처음 수행하는 어리석고 어린 모든 작은 보살은 질투를 하기 때문에 크고 무거운 죄를 짓는다. 이것을 다섯 번째의 근본죄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미래의 세상에는 마땅히 재가와 출가 가운데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 있을 것이다. 매우 심원한 공의 의미[공의]에 관계되는 경전ㆍ삼매ㆍ총지와 모든 인[제인], 모든 지[제지], 위대하고 장엄한 일[대장엄사], 선한 사람과 사문 및 보살행에 대하여 이 대승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널리
사람을 위하여 설할 것이다.
‘이 법에 대하여 나는 스스로 증득하였다. 연민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위하여 설하니 응당 수습해야 한다.
그대도 또한 이 매우 심원한 법을 증득하여 나의 지견과 같아질 것이다.’
그는 실로 다만 이 매우 심원한 법을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할 수 있어도, 이 심원한 법에 대하여 실제로 증득하지 못하였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익의 양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망령되이 ‘나는 3세의 모든 부처님이 증득한 법을 얻었으며, 보살과 성인으로서 나보다 더 뛰어난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여 크고 무거운 죄를 짓는다. 곧 이것은 모든 하늘과 세상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성문승조차도 오히려 능히 얻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대승의
수승한 행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해하겠느냐?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넓은 벌판에 있었는데, 큰 과실이 나무 아래에서 배고프고 목마름에 시달려 음식을 찾았다. 그 큰 과실은 색깔ㆍ향기ㆍ모양ㆍ맛을 전부 갖추었다. 그런데 그 나무를 떠나 스스로 독약이 나는 나무 아래에 이르러, 독약이 든 과실을 먹고 곧 목숨을 잃었다. 내가 이 사람을 말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 얻기 어려운 것 중에서도 사람의 몸을 얻어 선지식에 의거하여 대승의 법을
만났는데도 이익의 양성을 탐하기 때문에 자기의 덕을 헛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비천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행실은 무거운 죄를 짓고, 무거운 죄로 말미암기 때문에 반드시 나쁜 세계에 태어난다. 이 사람은 일체의 찰제리ㆍ바라문ㆍ폐사ㆍ수타 및
모든 지혜로운 자가 배척하여 모두 가까이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의 여섯 번째 근본죄라고 한다.
또 다음에 선남자야, 미래의 세상에서 찰제리왕에게 전타라의 국사 등이 있는데, 실제로는 우매하지만 스스로 지혜가 밝다고 말하며 모든 교만을 부린다. 많은 재보와 많은 도구를 갖추고 갖가지로 보시하여 복된 업을 닦지만, 보시를 믿어 의지하기 때문에 아만을 증장한다.
찰제리왕에게 향하여 사문의 한량없는 잘못을 분별하고, 왕의 세력에 의거하여 이치에 맞지 않게 벌을 다스려 그것을 힐책하여 과세를 조정한
다. 그때 모든 비구들이 그에게 핍박되어 혹은 불탑의 사물ㆍ사방승물ㆍ현전승물을 취하여서 그에게 전하여 주고, 모든 전다라는 그것을 가지고 왕에게 바친다. 이와 같은 두 가지는 모두 무거운 죄를 짓는다.
선남자야, 이것을 처음 수행하는 보살의 일곱 번째 근본죄라고 한다.
또 다음에 찰제리왕과 전다라가 사문과 함께 제한을 두어 법이 아닌 것을 법이라 이르고 법을 법이 아니라고 말하며, 모든 계경(글경)과 비나야(비내야)의 배움을 버리고, 시기에 따라 설하는 것과 자세하게 설하는 것에 의하지 않으며, 대비의 눈[대비 안]과 반야바라밀다의 배움, 방편선교의 배움 및 그 밖의 계경에서 말하는 배움을 버린다.
이와 같은 행상을 버리고, 그 법을 행하는 비구는 먼저 수습한 것에서 극단적인 요란을 일으킨다. 요란하기 때문에 지혜의 목숨을 훼손하여 곧 사마타와 비발사나를 버리고, 다른 일을 권하여 얻는 바가 많게 된다. 그때 그 비구는 모든 결사와 번뇌를 제어하여 항복시키지 못한다.
또 모든 비구가 혹은 그때 심원한 마음을 훼손하여 버리며, 계견을 행하는 등 많은 잘못을 일으킨다. 실로 사문이 아닌데도 스스로 사문이라 이르고,
실로 청정한 행위가 아닌데도 스스로 청정한 행위라고 이른다.
법을 설하고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것이 소라고둥[라패]의 소리와 같아 왕과 대신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공양하게 한다. 백의인의 사택을 향해서는 이 법을 행하는 비구에게 한량없는 과실이 있다고 말하여 왕과 대신으로 하여금 제한을 두게 하며, 그 법을 행하는 비구가 좋아하는 도구와 생계의 도구를 취한다.
이와 같은 두 가지는 모두 무거운 죄를 짓는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선정을 하는 비구는 훌륭한 복전이며, 복된 업을 영위하는 자가 의지하는 바이다.
이것은 삼매ㆍ총지ㆍ모든 인ㆍ모든 지를 추구하는 그릇이며, 응당 그릇이라고 할 만한 것을 지니어 세상의 광명이 되어 바른 도를 열어 보이고, 업과
번뇌의 지위에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의 도에 머무르게 한다.
선남자야, 이것을 처음 수행하는 보살의 여덟 번째 근본죄라고 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허공장 보살의 이름을 듣고 나서 의혹 없이 바라보고자 한다면, 나쁜 세상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 지은 무거운 죄를 참회하고, 허공장보살에 대하여 그 이름을 부르고 생각하며 공경하고 예배한다. 선남자야, 그 복력과 같이 그 사람의 면전에 머무르고, 혹은 본래의 몸을 보고, 혹은 범천왕의 몸을 나타내고, 나아가 혹은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 등의 몸을 나타내며, 처음 수행하는 보살로 하여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범한 죄에 대하여 전부 모두 참회하게 하고, 또 매우 심원한 방편선교로 대승의 행을 연설하며, 나아가 불토방(부토방)에 머무르게 한다.
또 총체적으로 생략하여 말한다. 설사 그 처음 수행하는 보살의 면전에 나타나지 않아도, 동방의 아로나천자에 대하여 그 면전에 서서 향을 사루며 권청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 아로나천자여, 큰 자비가 있고 큰 위덕을 갖추어 염부제를 비추어 자비로 연민하여 덮어서 보호합니다.
속히 스스로 허공장보살에게 권청하여 큰 자비로 연민을 일으키어 저를 깨닫게 하라고 하시고, 그리고 꿈속에서 방편으로 범한 죄의 업보를 나타내
보이게 하시어, 저에게 참회와 성스런 대승의 지혜와 방편을 얻는 것을 가르치게 하소서.’
그 아로마천은 염부제에 출현할 때 허공장보살과 함께 와서 본래의 색상을 가지고 곧 꿈속에서 그 사람의 면전에 머물러 그의 무거운 죄를 참회하게
한다. 이와 같은 모습, 말하자면 대지방편ㆍ지견방편ㆍ선교지방편에 대하여 그 처음 수행하는 보살은 삼마지와 보리심을 잃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얻고, 이에 의하여 대승에 견고하게 머무르게 된다. 공적 한 곳이나 깊은 수풀, 먼 곳에서 침수향, 다 가라 향 견고하고 검은 여러향을 사루고, 시방세계에 두루 오륜으로 예경 드리고, 합장하며 이 진언을 외운다.
다냐 타 소마리 사사모리 사가 로니아자라자라미자라산 자라가
달절신타인소몰리이합 사소 몰리가 합사가인로니갈좌라좌라미좌라산좌라가인
로니아모로로 모라미아타 리마 자미모로 야마다가 로니아진다 마니
로니갈모로로모라미誐태인리마인좌미발로 이합야마다가인로니갈진다인마니
보 라아가 로니아살-바 사 미사타 바야라 야- 다 리 스
포인라갈가인로니갈살리부이합인사인미살타이합인파야아인예야절신인태인리인살
보 옹 스포 옹 로디미미아 옹 말- 띠- 미미아 옹 보보이합옹오공절살보이합옹상동로저미미갈옹상동 열 리 이합슬치이합미미 갈 옹 상동포인
라야가 라니아보 라라연도마마 사 살-바 바탐자아슈 아이디사바
라야가인로니갈포인라라연도마마인사인살리부이합발탐좌아수인갈誐저 살부이하합인하인
앞에서 의궤를 말하였다. 일체의 병의 괴로움, 일체의 두려움, 일체의 번뇌를 전부 남김없이 소멸시키고, 모든 희구하는 일을 또한 전부 성취시킨다.
혹은 계율을 지키는 자가 어떻게 죄를 말하고 어떻게 잘못을 행하는가? 말하자면 계율을 지키는 자와 잘못이 없는 자에 대해서는 많이 때리는 이름을
일으켜 자신의 소견이라 집착한다. 이로 말미암아 거듭 전이하여 두려움을 생하고 모든 죄를 소멸한다.
만약 이 큰 성품의 죄에 대하여 괴로움의 근본을 뽑아 버리고 끝내 짓지 않으면, 보리심의 계에 대하여 감당하게 된다.
여실하게 관찰하여 사유함을 상속하기 때문이다.
방편선교경에서 이 근본죄를 말한다.
선남자여, 보살이 별해탈계에 대하여 식차마나를 배우고, 백천 겁 동안에 오직 뿌리의 열매만을 먹으며, 일체의 중생을 해탈시켜 나쁜 말을 인내하여 감수한다. 만약 성문과 벽지불의 행위에 상응하여 뜻을 짓는다면, 이것을 보살의 근본적인 무거운 죄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 근본죄를 짓는 자는, 비유하면 성문처럼 유여의 열반에 대하여 감당하지 못한다.
선남자야, 여길에서 말하는 죄는, 성문과 연각의 뜻을 지어서는 벗어나지 못하며, 역시 그와 같이 불지의 열반에 있어서도 감당하지 못한다.”
“삼보의 물건을 혹시 겨자 분량만큼 파괴하고, 바른 법을 비방하는 두 가지의 죄는 모니(모니:석가모니)께서 말씀하신 바이다.
설사 계율을 지키지 않은 비구라도 가사를 걸침으로 말미암아 혹은 출가 쪽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종아리를 때리고 감옥에 감금한다면 죄를 범하는
것이다.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죄를 짓고, 또 혹은 삿된 견해에 집착하거나 취락을 파괴한다. 이것을 근본죄라고 하며, 수승한 존자께서 말씀하신 바이다.
다만 공성을 즐거이 담론 하여도 실제로 스스로는 지각하지 못한다. 설사 부처님의 지혜 속에 머물러도 바른 깨달음의 도[정각도]를 수행하지 못한다.
이 별해탈을 버리고 대승의 과보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또 모든 학인으로 하여금 탐욕의 집착을 단절하지 못하게 한다.
타인의 면전을 즐거이 향하여 자기의 덕을 칭찬하고, 그 후광으로 말미암아 타인에게서 널리 그 이익의 양성을 획득한다.
혹은 또 삿되고 망령되어 나는 매우 심원한 인을 얻었다고 말하고, 혹은 사문을 책망하고 처벌하여 고의로 삼보의 물건을 취한다.
이와 같이 취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사마타를 버리고, 혹은 법을 행하는 비구에게 애착하는 도구를 부여한다.
이것을 근본죄라고 한다. 그로 인하여 큰 지옥에 떨어진다. 또 허공장보살이 부처님 전에 서서 참회할 것을 꿈속에서 선언한다.
보리심을 버린다. 게송에서 말한다. 모든 구걸자가 찾아와도 인색하고 탐욕스러워 보시하지 않고, 참연하게 분노하여 모든 중생을 구타한다.
청정하여 한마음을 지닌 자를 또한 공경하지 않고, 다른 오염된 마음에 따라서 바른 법을 비방한다.”
“부처님께서 대범천[대범]에게 말씀하셨다.
‘혹은 나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출가한 자가 계율을 범하고 악행을 하여 오염된 달팽이나 소라같이 안으로 부패를 머금고 실로 사문이 아닌데도 스스로 사문이라 이르고, 실로 청정한 행위가 아닌데도 스스로 청정한 행위라고 청하며, 항상 갖가지 번뇌 때문에 승복당하고 패배하여 허물어지고 기울어져 뒤집힌다. 이와 같이 비구가 비록 금지한 계율을 깨뜨리고 모든 악행을 하여도 오히려 일체의 하늘ㆍ용ㆍ사람 등을 위하여 복덕의 행위를 열어보인다.
그러므로 이 선지식은 법의 그릇이 못 되지만,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 한량없는 중생에게 갖가지 선근을 위하여 교도 하며, 그로 인하여 좋은 세상에 태어나 바른 도를 나타나게 한다.
그러므로 만약 나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출가한 자가 계율을 지키거나 계율을 지키지 않더라도, 나는 오히려 전륜성왕이 세속의 바른 법에 의하여 그의 몸을 채찍으로 때리고 감옥에 감금하며 신체를 갈가리 찢어 그 목숨을 단절하는 것을 듣지 않고니와, 하물며 그 밖의 법답지 않은 것에 의함이랴.
이와 같은 비구는 그래도 나의 법에 의거하여 비나야 중에서 죽은 시체[사시]라고 한다.’”
또 말한다.
그 사람은 소에게 우황[황]이 있는 것과 같고, 사향노루에게 사향[향]이 있는 것과 같다.’”
또 말한다.
“만약 나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출가한 자는 법의 그릇이거나 법의 그릇이 못되어도 응당 괴롭히거나 해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곧 3세의 모든 부처님을 훼범하는 것으로서 큰 잘못을 지어 선근을 태워 소멸시키고 무간지옥으로 떨어진다.”
그 경전에서 또 말한다.
“‘그 가사를 걸치는 것은 해탈의 깃발 모습[당상]으로서 모든 여래께서 건립하신 바이다.’
그때 다시 한량없는 백천의 성문과 보살들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모두 옛적에 지은 업장의 죄를 참회하였다.
어떤 사람이 혹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옛적에 여래의 성언량과 부처님 제자 중에서 이는 법의 그릇이고 이는 법의 그릇이 못 된다는 것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고 한탄하고
꾸짖고 매도하고 욕하는 등 갖가지로 비방하여 업장의 죄를 지어 3악도에 떨어져서 감당하기 어렵고 인내하기 어려운 갖가지의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요약하여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은 업장을 지금 전부 참회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옛적에 성문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이는 법의 그릇이고, 이는 법의 그릇이 못 된다는 것에 대하여 두렵게 하고 나쁘게
매도하며 여러 가지 몽둥이질을 하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다시 어떤 사람이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제자로부터 의복과 발우를 빼앗고 그 도구를 단절하였습니다.’
다시 어떤 사람이 말씀드렸다.
‘출가자를 핍박하여 환속시키고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시켰습니다.’
다시 어떤 사람이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법의 그릇이거나 법의 그릇이 못 되거나, 죄가 있거나 죄가 없거나, 감옥에 가두고 목에다 칼[가]을 씌었습니다.
그 업장의 죄로 인하여 많은 겁 동안 여러 나쁜 세계에 떨어져서 감당하기 어렵고 인내하기 어려운 갖가지의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업장의 죄를 지금 전부 참회하며, 다시는 감히 죄를 짓지 않겠나이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거두어들이시고 가엾게 여기시어 저희들의 커다란 죄의 과보를 제거하여 구제하소서.’”
장애출가경에서도 또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사람이 네 가지 큰 사옥의 법[사대사법]을 성취한다면, 태어나는 곳에서 기거하며 이와 같은 난처함을 만나게 된다.
말하자면 태어나자마자 장님ㆍ백치ㆍ벙어리 혹은 전다라가 되고, 많은 훼방을 즐기며 여러 미묘한 즐거움을 모르고 항상 노복이 된다.
혹은 여인이나 선다방택가등이 되고, 낙타ㆍ당나귀ㆍ돼지ㆍ개 및 독사 등의 과보를 받는다. 어떠한 것들이 그 네 가지인가? 이 큰 사옥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증상력을 지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세속에서 벗어나는 마음, 출가하는 마음, 성스러운 도의 마음을 발생시키는 데 장애가 된다. 이것을 첫 번째라고 한다.
또 다음에 즐겨 재물을 탐하고 자식을 탐하며, 업보를 믿지 않고 말하기를, ‘많은 부귀와 즐거움에 자제하면서 남자와 여자, 처와 첩이 있는데도 출가하는 자는 난처함에 처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을 두 번째라고 한다. 나머지 두 가지는 바른 법을 비방하는 것과 사문과 바라문을 해치는 것이다.”
정법념처경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서, 그중에서 살생의 죄보에 대하여 이제 마땅히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지옥 중에 또 다음에 화정행(화정행)이라고 하는 새가 있다. 불 속에서도 타지 않으며, 지옥 사람을 보면 극히 환희하면서 먼저 그 사람의 머리를 부수고, 그다음에는 그 사람의 피를 마신다. 또 다음에 촉루행(촉루행)이라고 하는 새가 있다. 그 부리가 화염이 타는 듯한데 지옥 사람의 뇌의 지방과 골수를 먹는다. 또 다음에 혀를 먹는다 [식설]고 하는 새가 있다. 죄인의 혀를 먹고, 먹고 나면 혀가 다시 생기는데, 먼저 것보다 더 유연하여 연꽃의
잎과 같다. 이와 같은 일은 생각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 또 온갖 새가 있다. 혹은 이빨을 뽑는다 [발치]고 하며, 목구멍을 조인다 [집인후]고 하며, 털을 먹는다 [식모]고 하며, 허파를 먹는다 [식폐]고 하며, 날심장을 먹는다 [식생장]고 하며, 등뼈를 먹는다 [식 배골]고 하며, 은밀한 부분을 먹는다 [식은 밀]고 하는데 모든 뼛마디 사이를 깨부수어 골수를 마신다.
다음에 또 구멍에 침을 놓는다[침공]고 하는 새가 있다. 그 부리는 침처럼 날카로우며 오직 죄인의 피만 마신다. 또 온갖 새가 있다.
뼈 속에 머무른다 [골중주]고 하며, 손톱과 발톱을 뽑는다 [발조]고 하며, 힘줄과 혈맥을 먹는다 [식근맥]고 하며, 머리털을 뽑는다 [발발]고 하는데
오직 머리털의 뿌리만 먹는다. 이와 같이 아비대지옥중의 3천 유순은 악한 야차[악야차]라고 하는 나는 새가 기거하는 곳이다. 백천 년 동안 그런 것을 먹히고 나면 다시 생겨나서 커다란 괴로움을 받는다.”
그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일체의 괴로움의 그물이 두루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다시 험난한 단애에 떨어진다 [타험안]고 하는 지옥이 있다.
그곳에 처하여 속히 회귀하고자 희망하여 주위를 따라갈 때에 열하나의 불덩어리가 모여드는데, 홀로 반려자도 없이 오직 원한의 과보만이 남아 업의 밧줄에 포박되어 두루 항상 쫓겨 다닌다.
말하자면, 모든 대지옥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또 다음에 험난한 단애에서 떨어져 빠져 드는 곳이 있다.
죄인이 발을 내밀 때는 불타서 녹아 문드러지 고, 발을 들면 다시 발이 생겨나는데 그전보다 더 유연하다.
유연하기 때문에 지극히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받는다.
이와 같이 매우 두렵게 머리ㆍ눈ㆍ손ㆍ발 등 일체 신체의 마디 부분을 전부 녹여 문드러지게 한다. 이곳을 세상에서 보기 드문 곳이라고 말하며, 험난한 단애에서 떨어진다고 한다. 다시 떨어지는 곳을 말한다.
업의 바람에 실리어 하늘 높이 3천 유선나만큼 올라갔다가 나중에 땅에 떨어지고 나면, 독수리와 올빼미가 다투어 조각내어 먹는다. 업의 바람에 들어 올리고 나서 다시 떨어지는데, 백천 년이 지나도록 이와 같은 괴로움을 받는다.”
그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다음에 또 회전하는 바퀴[선윤]라고 하는 떨어지는 곳이 있다.
천 폭이나 되는 바퀴가 있는데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 맹렬하게 타오르며 대단히 날카로워 정녕 금강이라도 파괴할 수 없다.
이 바퀴가 신체에서 매우 신속하게 회전하며, 모든 신체의 모든 부분을 반연하여 모두 태워버린다. 발을 들어가는 곳마다 못에 찔린다.
이와 같이 하여 양고타산(상고타산)에 들어가게 되면 양고타라는 벌레가 있어 그 죄인을 잡아먹는다.
먹고 나면 죄인이 다시 생겨나는데, 그전보다 더 유연하다. 유연하기 때문에 지극히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받는다. 생겨나면 다시 먹히고, 먹히고 나면
다시 생겨난다.
이 육신은 그전보다 더 유연하며,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이 된다.
그의 유쾌한 의지로 말미암아 살생을 하는 자는 이와 같은 과보를 받는 것이다.”
“지옥 중에 큰 도구[대자고]가 있는데 회전하는 불의 바퀴와 같고, 건달바성이나 녹애(록애:아지랑이)와 비슷하다.
어리석고 악한 업으로 말미암아 구슬보배ㆍ의복ㆍ재물 등 갖가지가 약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리석은 업 때문에 맹렬한 화염 속에서 분주하게 그 물건을 가지려고 잡으면, 자신의 업이 만들어 낸 염마라의 졸개가 날카로운 도검을 쥐고 쇠로 만든 그물 속으로 찾아와서 불에 타는 신체의 일체 마디 부분을 쪼개고 베어내어 오직 뼈다귀만 남게 된다. 예전부터 재물의 이익을 버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이다.”
삿된 음욕[욕사]의 행위를 짓는 것을 나는 이제 마땅히 설명하겠다.
“이 죄를 짓는 자는 이전의 고통받는 곳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되지만, 악한 업이 오히려 증대하여 큰 불덩어리를 지나 다시 악한 삿된 견해[악사현]라고 하는 다른 곳으로 떨어진다.
업을 지은 바로 말미암아 여인이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전에 본 바와 같다.
그는 이미 보고 나서 예전부터의 탐욕의 불을 발생하여 곧 분주하게 그 여인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자신의 업으로 지어져서 모두 쇠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에게 잡히고 나면, 그 입술을 깨물고 그 신체의 부분을 먹어 버리어 겨자만큼도 남지 않게 된다.
먹고 나면 죄인이 다시 생겨나고, 생겨나면 다시 먹는다. 그 사람은 이와 같이 탐욕의 불에 태워지며, 감당하기 어렵고 인내하기 어려운 지극히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받는다.
이와 같이 음욕의 불에 태워져도 그 여인에 대하여 고뇌를 품지 못한다.
그 여인은 모두 쇠로 구성되어 있어 견고하기가 금강과 같으며, 몸에서 불이 활활 타올라 그 죄인을 잡아서 모래 누에고치[사견]를 부숴버리듯이 신체의
모든 부분을 활활 태워 흩어져 없어지게 한다.
흩어지고 나면 다시 앞에서 설명한 것보다 더한 것이 생겨난다.
그 게송에서 요약하여 말한다.
여인은 죄의 근본이라
능히 모든 재물의 이익을 파괴한다.
만약 사람이 여색을 좋아하면
어떻게 미묘한 즐거움을 얻으리오.
이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여인에 대한 실책이 첫 번째 실책이다.
여색을 멀리 여의는 자는
몸이 안온한 즐거움을 얻으리.
“대단히 힘이 센 염마라의 졸개가 그 죄인을 붙잡아 칼로 입을 자르고 혓바닥을 찍어 뽑아낸다.
이것이 망령된 말을 하는 과보이다.
악한 업력 때문에 혀의 너비가 오백 유선나가 되고, 혓바닥을 뽑을 때에 염마라의 졸개가 곧 함께 펼쳐서 뜨거운 쇠로 만들어진 땅 위에 놓아둔다.
그러면 자신의 업으로 만들어진 백천 개의 쇠로 된 쟁기가 생기는데, 쟁기에서 타오르는 불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이다.
지극히 힘이 센 소가 그 쟁기를 끌며 혓바닥 주위를 두루 오고 가며 그 혀를 경작하면 피가 흘러넘쳐 나오고, 경작하고 나면 혀가 다시 들어간다.
요약하여 말한다.
다시 그 혀를 뽑아내는데, 그전보다 더 유연하여 하늘 사람의 혀와 같다.
그것을 경작하면 외마디를 지르고 통곡하는데, 한량없는 백천 년이 지나도록 감당하기 어렵고 인내하기 어려운 큰 고뇌를 받는다.
그리하여 그 지옥 사람이 혀를 잠시 동안 입에 넣으면 극심한 공포가 생겨나서 이 험악한 상황에서 여러 곳으로 달음박질치지만, 맹렬한 불덩어리에
떨어져 혹은 녹아 문드러져서 그 고뇌에서 구제되기를 희망한다.
다시 염마라의 졸개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칼과 몽둥이를 잡고서 죄인을 불러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먼지가루처럼 부숴버린다.”
혀를 잡아 뽑으면 3백 유선나가 되는데, 그 염마라의 졸개가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칼을 쥐고 죄인의 혀를 절단하면, 여우와 늑대 등이 따라다니며 그것을 먹어버린다. 죄인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받으며 외마디를 지르고 통곡한다.
혀를 절단하면 다시 생겨나는데 그 전보다 더한 것이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염마라의 졸개가 그 죄인을 붙잡아 칼로 입을 자르고 그 혀를 절단하여 취한다.
그가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말미암아 음식을 구하니, 스스로 자신의 혀를 먹고 자신의 피를 마시게 한다.
악한 업력 때문에 혀를 절단하고 나면 다시 생겨나서 땅에 엎어져 구르며 외마디를 지르고 통곡하는데,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지극히 고통스런 괴로움을 받는다. 염마라의 졸개가 꾸짖어 책망하며 교훈을 내린다.
‘자신이 지은 죄로 말미암으니, 누가 그대를 대신하여 벌을 받겠는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혀는 견고한 활을 발사하며
날카로운 말은 독이 있는 불화살이 된다.
만약 사람이 나쁜 말을 하면
여기에 와서 커다란 과보를 겪게 된다.
“염마라의 졸개가 칼로 입을 자르고 맹렬하게 타올라 붉게 끓어 넘치는 구리물을 부어 넣는다.
먼저 그 혀를 태우고, 그다음에는 목구멍을 태우고, 그다음에는 그 심장을 태우고, 그 다음에는 그 창자를 태우고, 그 다음에는 창자를 태워 익힌다.
창자를 태워 익히고 나서는 아래로 빠져나온다.”
염마왕의 졸개가 게송을 읊어 말한다.
앞뒤의 말이 연관되지 않아
의미가 없고 상응하지 않는다.
그대는 연관되지 않게 말하여
그 과보를 여기에 와서 받는다.
항상 불경을 읽지 않고
진실한 말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것은 이미 그 혀가 아니다.
어떻게 잘게 저민 고기[육련]와 다르리오.
“그 지옥 사람이 자신의 업으로 지은 성읍에 가득 찬 진귀한 보배를 타인이 수호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본다.
그 지옥 사람은 예로부터 어리석은 악업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말하자면 탐욕이 있어 선하지 않은 업을 즐겨 행하여 많이 지었으므로, 지옥에 떨어진
과보에 대하여 전도된 생각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보고 나서 많이 탐내어 취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보기 드문 예리한 칼을 손에 쥐고 신속하게 그 물건에 다가간다.
그 밖의 지옥 사람도 또한 예리한 칼을 쥐고 서로 다투어 노략질한다. 육신을 씹어 먹어 살점이 함께 다 없어져 겨자만큼도 남아 있지 않고 오직 뼈다
귀만이 존재할 뿐이라, 외마디를 지르며 통곡한다.”
염마라의 졸개가 게송으로 요약하여 말한다.
타인이 부유하여 만족한 것을 보고
내가 얻겠노라고 생각하고 희망하여
이 탐욕의 독이 든 과보를 일으키고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 오게 되었노라.
“성내는 업을 지었기 때문에 사자ㆍ뱀ㆍ호랑이가 그 사람의 면전에 머무른다.
커다란 두려움에 떨며 여러 곳으로 달음박질치지만, 선하지 않은 업 때문에 어떻게 능히 탈출하겠는가? 맹수들이 그를 붙잡아 먼저 그 머리를 먹고,
이어 두 겨드랑이에 이른다.
뱀은 어금니로 독을 뿜고 다투듯이 그것을 성내어 먹고, 호랑이는 그 등을 먹고, 불은 양쪽 발을 태우고, 염마라의 졸개는 멀리서 그를 찔러 맞춘다.”
이와 같이 광대하다.
말하자면 지옥 중에서 끝이 날카로운 검과 금강 같은 우박 등을 퍼붓고, 모든 돌 등을 퍼부어 절단하고 파괴한다.
다시 열하나의 불덩어리가 있다. 말하자면 배고프고 목마를 때 입에서 불이 나와 두루 주변을 태워버린다.
응당 이와 같이 참회하여야 한다. 또 경전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불타는 항아리[화옹]라고 하는 큰 지옥이 있다.
어떤 업을 지은 중생이 그곳에 떨어지는가?
말하자면 혹은 사실은 사문이 아닌데도 스스로 사문이라 칭하고, 혹은 여인의 노래와 춤과 장엄구의 소리를 듣고 깊이 마음으로 생각하여 반성하고
이해하는 일이 없으며, 노래와 춤과 희롱을 들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부정한 것을 흘려버린다. 요약하여 말한다.
그 지옥에 떨어지면 뜨거운 쇳덩어리가 쏟아져, 신체의 모든 마디 부분을 부수어서 티끌로 만든다.
또 끓는 물이 쏟아져 이와 같이 타서 익는다.
또 다음에 옛적에 삿된 음욕을 행한 것을 잊지 않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
발눌마라고 하는 지옥이 있다. 말하자면 꿈속에서 음욕의 일을 잊지 않고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이 지옥에 떨어져 불타는 가마솥 안에서 익어 녹으며,
염마왕의 졸개는 큰 쇠 작살을 가지고 죄인을 때리고 찌른다.”
거기에서 자세히 말하는 바와 같다.
“또 다음에 그래도 청정한 행위를 수행하고 회향하지만, 하늘나라 여인들 중에 태어나고자 원하여 큰 발굴마 [대발 눌마]라고 하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곳에 소금 하천[함하]이라고 하는 언덕이 있다.
그곳에서 솟아올라 태워져서 금물[김즙]처럼 용해된다.
육신을 녹여 문드러지게 하여 머리와 털은 풀과 같으며, 살 찌꺼기를 진흙으로 삼고, 뼈를 모은 것이 돌과 같으며, 창자를 물고기로 삼는 등 이 지옥에서 한량없는 시간을 지내야 한다.
또 다음에 삿된 음욕, 말하자면 두 남자가 바른 행위를 훼손하여 파괴하는 한량없는 모습이 있다.
그 경전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바른 행위를 훼손하는 자는 그 소금 하천에서 미묘한 어린아이가 그 속에서 출몰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옛적의 악한 업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좋아하게 되어 그 하천에 들어가고 나서 곧 근심과 괴로움에 묶여 핍박당한다.
또 다음에 삿된 음욕에는 지극히 악한과보가 따름을 말한다. 말하자면 짐승[방생]에게 커다란 성적인 죄[성죄]를 짓는다.
그러면 그 지옥 중에는 소와 사슴 등이 있는데, 뜨거운 쇠로 만들어져 지극히 좋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죄인이 그 축생에게 음욕의 마음을 일으켜 곁으로 접근하면, 치열한 불이 배에 가득히 타올라 그 때문에 타서 익으며 백천 년 동안 지낸다.
다음에 삿된 음욕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비구니 등을 강제로 핍박하여 바른 행위를 훼손하여 파괴하면 큰 지옥에 떨어지는데, 자세한 것은 거기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또 다음에 삿된 행위로 도에 맞지 않게 음욕을 행한다.
자신의 음욕이 맹렬하여 타인에 속한 것을 침입하여 폭행하고, 혹은 가까이 지냄으로 말미암아 혹은 스승의 가르침이라 칭하며, 바른 행위를 훼손하여 큰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이 극심한 괴로움을 받는데, 앞에서 말한 것보다 더 심하다.”
실종한집경 이와 같이 바라문이 한 부류의 같은 청정하게 행하는 자에 대하여, ‘나는 그와 이 부인[이사]의 두 성기[이근]가 화합하는 것을 안다’고 말한다.
혹은 그의 부인의 경계를 관찰하여 가고 오고 머물고 서며 애착을 일으킨다.
이것은 바라문의 청정한 행위로써 합하여 모으는 것이며, 화합하는 법을 여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청정한 행위를 수행하여도 청정하지 못하다.
이와 같이 부인과 혹은 함께 희롱하고 혹은 마음으로 좋아하여 애착하면, 이러한 행위도 청정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부인이 애호하여 좋아하는 것을 받들어 장엄구나 노래와 춤 등의 소리가 나서 양쪽 벽 사이에서 들려오면, 좋아하여 애착을 일으킨다.
이것을 화합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욕망의 즐거움 가운데 타인을 관찰하고 좋아하여 애착을 일으키고, 청정한 행위를 회향하여 하늘나라에 태어나기를 기원한다.
이것을 합하여 모으는 것이며, 화합하는 법을 여의지 않는다고 한다.”.
가욕경에서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고요, 응당 이 도를 두려워하고 그 음욕의 마음을 단절해야 한다.
극심한 두려움을 일으키기를 저 가시나무에 가시 돋친 것처럼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도는 지극히 험악하다. 그 선하지 않은 사람은 이와 같은 도에 가까이하는 바, 모든 바른 인사[정사]가 멀리 여의는 것이다.
그대는 이와 같이 사유하여 조금도 음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세존께서는 여기에 많은 괴로움과 많은 난처함 및 많은 죄ㆍ속임ㆍ비방ㆍ능멸ㆍ매도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고요, 또 이 음욕은 병든 악성 종양 속에 독소가 함유되어 있는 것처럼, 재물의 이익에 관한 갈고리처럼 모든 죄의 근본이다.
음욕은 침상에서 꿈꾸는 것처럼 허망한 법이고, 죽음이고, 공하고, 무상하며 잘못인데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을 좋아하여 집착하는가?
사슴이 주위에 포위되어 있는 것처럼,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있는 것처럼, 나방이 불꽃 속에 빠져 있는 것처럼, 원숭이가 분뇨에 빠져 있는 것처럼, 바라문이 온갖 계율에 묶여 있는 것처럼, 그 음욕은 이와 같다.’
또 총체적으로 요약하여 말한다. 음욕을 탐구하는 자는, 비유하면 혹은 짐승의 무리가 기나긴 밤에 행진하여 사자의 입에 이르도록 한량을 알지 못하고, 소가 호랑이의 입에 물려 죽도록 한량을 모르며, 두꺼비가 백 마리의 뱀의 입에 이르도록 한량을 모른다. 또 긴 밤중에 음욕의 일에 접근하여 열중하는 것은 길을 가던 도둑이 결박되어 머리가 절단되는 것처럼 한량을 모른다.
타인에 속하는 것을 강제로 침입하고 취락을 공격하고 인민을 살해하며, 나아가 체포해서 결박하여 머리가 절단되도록 한량을 모르며, 지극히 어려운 괴로움을 받아 솟구치는 피가 넘쳐흐르는데, 네 곳의 큰 바다의 물이 오히려 그에 비하여 부족할 정도이다.
요약하여 말한다. 하물며 이 육신은 기만하고 훼손함이 많음에랴. 근육과 뼈가 묶여 모이고, 피부와 속살이 겉을 포장하여 두르며, 털구멍에는 온갖 벌레가 있어 잡다한 것을 먹고, 커다란 악성 종양처럼 더럽고 좋지 않은 것으로 충만하다.
또 이 육신은 갖가지 병의 괴로움이 있으니, 말하자면 눈병ㆍ귓병 내지 치루ㆍ종기ㆍ옴 등이 있다.”
그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또 이 육신은 괴로움이며 번뇌이다. 늙음 때문에 핍박당하여 몸이 병들어 오그라들고 앉은뱅이가 되고 곱사등이가 되며, 굳세지도 못하고 힘도 없으며,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고 얼굴은 주름 잡히며, 모든 감각기관이 지나치게 노쇠하여 행동하는 게 고통스러워 기울어져 넘어진다.
이와 같이 노쇠하여 옛 것이 되어버리고 신속히 부패하는 법이 사람에게 있다.
이와 같은 육체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나고 훼손되어 혐오스러워 가까이 지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요약하여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고요, 어찌하여 음욕에 사로잡힌 생존[욕유]에 대하여 탐애 하여 거기에 묶이고 얽매여 기절하며 탐착하고 추구하는가?
만약 내가 입멸한 후에 바른 법이 장차 소멸하려고 한다면, 너희들은 음욕에 대하여 삼가고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그곳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늙고 죽음을 기다리며 내가 가르쳐 타이르는 것을 수용하겠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고 그만두어라. 비고요, 마땅히 욕심을 단절해야 한다.
말하자면 때가 아닌 시기에 음욕을 추구하는 것은 알맞은 시기에 법을 추구하는 것만 못하느니라.’”
또 최상수소문경(최상수소문경)에서 말한다.
“마땅히 그 삿된 음욕의 행위를 멀리 여의어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아내 등에게서는 기뻐하여 만족하고, 타인의 권속에서는 좋아하여 바라보지 않는 이러한 의식을 멈추어 그만두라. 오직 하나의 고뇌일 뿐이다.
이 음욕을 인내하여 항복시키고 상응하여 생각하라. 만약 음욕을 살피는 일이 일어나면 그에 따라서 청정하지 않다는 것을 관찰한다.
음욕에 친근하는 자는, 응당 염오 하다는 의식 중에서 자재를 얻기 때문에 항상 속박을 여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탐욕에 애착을 일으키지 말라. 항상 하지 않은 육신에 대하여 청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그와 같은 생각에 머물러 내가 행한 바와 같이 바르노
분별을 하여 음욕을 좋아하지 말 것이니, 하물며 악하게 드러난 것에 대하여 어찌 표시하여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그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보살은 자신의 권속에 대하여 마땅히 세 가지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어떠한 것들이 그 세 가지인가? 말하자면 잠시 유희하며 즐기는 것을 같이하지만 다른 세상에서도 함께 하지는 못하며, 오직 먹고 마시는 것을 같이하지만 업보를 함께 받아들이지는 못하며, 오직 쾌락을 같이하지만 고뇌를 함께 하지는 못한다.
여기에 다시 세 가지가 있다. 말하자면 계를 깨뜨리는 생각, 선정[정]을 깨뜨리는 생각, 지혜[혜]를 깨뜨리는 생각이다.
다시 세 가지가 있다.
말하자면 도적 생각, 원한 생각, 지옥 졸개의 생각이다.”
대승집보살학론 제6권
공 품
또한 월상동녀소문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그때 월상동녀는 여러 사람들이 음욕 때문에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즉시 허공으로 1 다라수높이만큼 올라가 여러 사람들을 위하여 가타(게송)로써
말하였다.”
그대는 마땅히 나의 몸을 관찰하라.
휘황하게 빛나는 것이 진짜 금색(진김색)이라.
오염된 음욕의 마음으로 인하지 않아야
이렇게 청정한 성질을 느낀다.
음욕은 경계에서 생하여
불구덩이처럼 타오른다.
음욕을 인내하여 여섯 감각기관[육 근]을 조절하고
모든 청정한 행위를 깨끗하게 수행하면,
설사 타인의 부녀를 보아도
모든 어머니나 누이라는 생각이 들며,
나중에 단정한 신체를 얻어
타인이 항상 기쁘게 바라본다.
내 신체의 모든 털구멍에서 나는
미묘한 향기는 성곽에 두루 퍼지는데,
그것은 탐욕에 물든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지 않고
이 선한 과보를 훈습하여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탐욕의 마음은 본래 생하지 않으며,
욕망이 없으면 어떻게 음욕을 생하리오.
모니는 바르게 증명하여
여실하여 허망되지 않다.
그대는 옛적에 혹은 나의 아버지였으며, 혹은 난 그대의 어머니였다.
서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이 되기도 하였으니,
인정상 어떻게 오염된 음욕을 생하겠는가.
나는 혹은 일찍이 그대를 해쳤고,
타인은 다시 나를 해치러 와서
원한 맺은 친구가 되어 서로 원수를 살해하였다.
인정상 어떻게 오염된 음욕을 생하겠는가.
단정한 신체는 탐욕으로부터 얻지 못하며,
탐욕은 좋은 세계[선취]에 태어나게 하지 못한다.
탐욕은 번뇌에서 벗어나는 원인이 못 된다.
그러므로 그것을 모두 버리라.
또 이 탐욕으로 인하여
빠르게 3 악도에 떨어진다.
야차ㆍ비사사와
그리고 아수라와
구반다귀 등은
모두 탐욕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다.
혹은 귀머거리ㆍ장님ㆍ벙어리와
비틀거리며 오그라진 몸ㆍ누추한 몸과
세간의 모든 심한 병은
모두 탐욕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다.
혹은 전륜성왕
및 제석천왕
범천왕이나 대자재천이 되는 것은
널리 청정한 행위를 수행함으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다.
혹은 코끼리ㆍ말ㆍ소ㆍ호랑이ㆍ
낙타ㆍ당나귀ㆍ돼지ㆍ개 등의
성품은 본래 어두워 친해지거나 멀어지지만
항상 오염된 욕망을 바란다.
찰제리 및 왕과 신하,
혹은 신사와 장자 등의
풍요하고 부귀하며 좋은 가문은
널리 청정한 행위를 수행함으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다.
혹은 목에 칼을 쓰고 감옥에 감금되고,
수재나 화재의 모든 고난을 당하며,
혹은 눈을 도려내고 귀를 절단하며
손과 발을 절단하거나
내지 노복이 되는 것은
모두 탐욕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또 일자왕소문경의 욕망을 꾸짖는 의미[간욕의]라는 대목의 게송에서 말한다.
이 탐욕에 집착하는 것을 말하면,
파리가 상처에서 나는 피를 보는 것 같고,
또한 돼지와 개 등이
냄새나는 고기가 깨끗하지 못한데도 달려드는 것과 같다.
알지 못하고 여인을 좋아하여
달려드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며
어리석은 아이가 명료하지 않아
혀로 더럽고 나쁜 것을 핥는 것과 같다.
미련하게 여인을 좋아하는 것처럼
모든 어두움[흑암]을
현세에서는 악마의 경계에서 기거하고
죽어서는 마땅히 나쁜 세계에 떨어질 것이다.
또는 변소의 벌레처럼
배설물의 맛에 집착하여 즐겁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그려놓은 대변 담는 병처럼
장엄하게 치장된 겉모습만 관찰한다.
또한 풀무 속처럼
여러 가지 더럽고 나쁜 것을 가득히 담고 있으니
말하자면 눈곱ㆍ콧물ㆍ침과
그리고 대변ㆍ소변 등 부정한 것이다.
육체는 냄새나는 주머니와 같은데도
어리석은 범부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하며
육신을 들추어내면 오직 뼈만 남는데,
그것이 피부와 살로 덮여 있다네.
오직 입 구멍[면문]만을 생겨나게 하나니
비유하면 큰 악성 종기와 같고,
또한 종기의 구멍 속과 같아
갖가지 모든 벌레가 가득하네.
그 밖의 깨끗하지 못한 기관이 있으니
이 육신의 모습도 또한 그러하다.
배[복]는 개의 천연두[견포]처럼
안에는 생장과 숙장이며
머리뼈ㆍ늑골ㆍ혈맥[맥],
오염된 여러 가지 피와 골수가 있고,
8만 가지 벌레가 있어
신체 안에 잠복하여 자리 잡고 있다.
어리석음의 그 울통[강롱] 속에 떨어져서
그 때문에 미련한 범부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또 아홉 구멍 속에서는
냄새 나쁜 깨끗하지 못한 것이 흐른다.
혹은 만약 보거나 만약 말하여도,
어리석은 범부는 취착 하는 모습을 일으켜
일체의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을
좋아함으로 말미암아 깨닫지 못하네.
침과 눈물을 양식으로 삼는 것이
어리석은 범부의 경계이다.
혹은 양쪽 겨드랑이에서는 땀이 흘러
더럽고 혐오스러워 실로 싫어할 만하다.
이 꾸짖어 싫어할 만한 일을 좋아하는 것이
마치 파리가 상처 등을 보는 것 같아
한열 한 법 중에서도
그 가장 한열 한 것을 즐기고자 한다.
이러한 악한 업을 짓는 자는
죽어서 마땅히 나쁜 세상에 떨어질 것이며,
무간지옥에 떨어지고 나서는
모든 커다란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인은
냄새나는 것 중에서도 극심한 악취가 난다.
그러므로 화합하는 데 있어서
이렇게 하열한 생각을 깨뜨려야 한다.
또 만약 집착을 일으키면,
오직 어리석은 자가 분주하게 다투며
이러한 악한 업을 짓기 때문에
마땅히 이와 같은 과보를 얻게 된다.
그 경전에서 또 말한다.
“이와 같은 행상은 괴로움으로써 필요한 것을 추구하여 자신의 살림살이를 가지고 단단히 집착하게 되어 의복이 남루하고 빈궁한 구걸자에게 음식을
베풀지 않고, 모든 여인에게 항복하고 의지하고 매료된다.
비유하면 하인처럼 자제하게 부려진다.
여인을 탐내어 좋아하고 양육함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능히 보시와 지계 및 그 밖의 선한 부분을 수행하지 않는다.
또다시 모든 여인을 위하여 나쁘게 매도되고 억제당하고 계박당하여도 마음으로 취착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것을 전부 능히 인내하여 굴복한다.
혹은 여인의 거처를 찾아가서 탐욕을 일으켜 난폭하게 성내며 자태를 상세히 관찰하고, 욕망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자제하게 뒹군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음욕을 즐기는 자는 청정하지 않고, 극심한 악취가 나고, 세간의 행실에 있어 오히려 잘못이 된다.’”
또한 게송에서 말한다.
여인과 화합함에 대하여
보고 함께 따라 기뻐함을 짓고
듣고 나서 마음으로 좋아하여 관찰하면
그 사람에게는 번뇌에서 벗어남이 없다.
모든 괴로움의 욕망에 가까이하여
여기에서 실로 염오 하여 천시함을 말한다.
이 법을 들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잘 설하는 것과 어리석게 설하는 것을 안다.
이 마음은 여인에게 분주하여
쥐가 고양이를 쫓는 것과 다름이 없다.
혹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잠시 반성하여 이해함을 얻어도
나중에 다시 이것을 탐욕하는 것이
갈라라의 독과 같다.
또 돼지가 분뇨를 보고
좋아함을 일으키는 것 같다.
잠시 얻어도 순식간에 바뀌어
다시 싫어하여 두려워한다.
즐거움에 집착하는 모든 어리석은 범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멀리 여읜다.
한열 한 음욕에 가까이하여
죽어서는 마땅히 나쁜 세상에 떨어질 것이요
술에 탐닉하여 빠지고 음욕에 취하여
계율을 훼손하고 깨끗한 살림살이를 파괴하리라.
모든 죄업을 지으면
죽어서는 마땅히 나쁜 세상에 떨어질 것이요
만약 이 바른 법에서
모든 음욕의 경계를 잘 알고
방일하는 마음을 생하지 않으면
항상 청정한 하늘나라에 태어나며
위없는 보리에 대해서도
이것을 얻는 것이 어렵지 않다.
만약 이 법을 듣고 나서
찰나에 바른 지혜를 얻으면
출가의 법문을 깨달아
모든 음욕의 일을 멀리 여읜다.
적정결정신변경에서 말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설사 어떤 사람이 염부제의 일체유정으로부터 모든 재물을 겁탈하고 모든 목숨을 끊는다고 하자. 문수사리여,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보살의 처소에서 하나의 선한 마음을 끊는다면, 곧 머지않아 축생의 세계에 떨어진다.
취해지는 때에는 그것에 동일하게 떨어지는 것과 같으며, 선근을 끊기 때문에 그 죄는 이전보다 더하여 아승기를 헤아려야 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선근을 끊는 것은 곧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는 것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또 다른 종류가 보살의 처소에서 인색함과 질투를 일으킬 때에는 이러한 인연으로써 응당 곧 세 가지 공포를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떠한 것들이 그 세 가지인가? 말하자면 지옥에 떨어지는 공포와 장님으로 태어나는 공포, 변두리에 태어나 곤란하게 되는 공포이다.’
그 경전에서 또 말한다.
“만약 사람으로 태어나서 성실하지 않은 말을 하고 비방하기 좋아하며, 나쁜 말을 하고 성내며 사람을 번거롭게 괴롭히면, 나중에 다시 이 몸이 허물어져 목숨을 마치고 는 큰 지옥에 떨어진다.
그리고 다리가 없는 몸으로 태어나 온갖 고뇌를 받는다.
완연히 전이하여 5백 유선나의 분량이나 되는데, 모든 작은 벌레들이 그 육신을 입에 넣어 먹게 된다.
그 뱀은 가히 두려워할 만하며 5천 개의 머리를 갖고 있다.
비방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그 낱낱의 머리마다 5백 개의 혀가 있으며, 그 낱낱의 혀의 입구마다 5백 개의 맹렬히 불타는 쇠로 된 얼룩소를 뿜어낸다. 이것이 그렇게 말한 업의 죄로서 맹렬한 불덩어리가 활활 타올라 불타서 녹아버린다.
또 만약 조화롭게 유연하지 못한 것을 일으켜 보살을 핍박하여 괴롭히면, 그 사람은 축생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조차 오히려 어렵다.
큰 지옥에 떨어져 백천의 굳이 나유타 겁을 지내며, 거기에서 죽은 뒤 큰 독사가 되는데 처참하여 가히 두려워할 만하다.
배고프고 목마름에 핍박되어 모든 악한 업을 지으며, 설사 음식을 얻어도 포식할 정도가 못 된다.
다시 거기에서 죽은 뒤 설사 사람으로 태어나도 역시 장님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지혜가 없고 나쁜 마음이 그치지 않으며, 나쁜 말로 꾸짖고 훼손하며, 성현을 공경하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죽은 뒤 다시 나쁜 세상에 떨어져 천구지 겁을 지나서 태어나도 부처님을 만나 뵙지 못한다.”
그 경전에서 또 말한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보살의 처소에서 밝고 청정한 마음을 발할 때에 마음이 혹은 경미하게 바뀌면, 많은 겁 동안 큰 지옥에서 지내는데 갑옷을 걸친
것과 같다. 문수사리여, 이 보살의 업은 반드시 무너뜨리지 못한다. 오직 이 보살을 비방하는 자를 제외한다.
문수사리여, 비유하면 금강마니보같은 것은 나무나 돌로 능히 파괴하지 못한다.
문수사리여, 이 보살의 업도 역시 그와 같아 결코 무너뜨리지 못한다.
오직 이 보살을 비방하는 자를 제외한다.”
신력재입인경 중에서도 또한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시방의 일체 세계의 모든 중생들에게 성내는 결박을 일으키면, 어두운 곳에 떨어진다.
문수사리여, 만약 보살의 처소에서 멀리 그 앞에 머무르며 팔을 굽혔다가 펴는 사이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죄는 이전보다 더하여 아승기를 헤아리게 된다.
문수사리여, 또 만약 어떤 사람이 모든 염부제에서 일체의 재물을 협박하여 빼앗아 남김없이 다 가진다고 하자. 만약 보살의 처소에서 문득 매도하여
욕하면, 그 죄는 이전보다 더하여 아승기를 헤아리게 된다.’”
그 경전에서 또 말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설사 어떤 사람이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 탑묘를 전부 모두 불태워 훼손한다고 하자. 만약 대승을 믿고 이해하는 보살마하살에게 대하여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고, 모든 비방과 욕을 하거나 혹은 비방을 증대하면, 그 죄는 이전보다 더하여 아승기를 헤아리게 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모든 보살로부터 모든 부처님ㆍ세존이 출생하기 때문이며, 그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탑묘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모든 이로운 즐거움과 모든 하늘에 나는 것 등을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보살을 경시하고 훼손하면, 곧 모든 여래를 경시하고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보살을 공경하면, 곧 모든 여래를 공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수승한 공양을 하고자 하거든 모든 보살들을 공양할 것이니, 그것이 곧 모든 여래들을 공양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법을 보호하고 법을 설한다면, 곧 일체의 나쁜 세상을 멀리 여의고 제석천[천제석] 및 세상의 주인 범천[범세주]ㆍ야마천ㆍ도솔천ㆍ자재천 등으로 태어나고, 나중에 인간으로 태어나도 전륜성왕이나 장자와 거사가 되며, 많은 재보를 구족 하고, 생각과 지혜가 상응하여 안온하며 두려움이 없게 된다.”
“문수사리여, 설사 어떤 사람이 일체 세계의 미진수의 중생에게 날마다 하늘나라의 온갖 음식과 하늘나라의 의복으로써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김해 동안 이와 같이 보시한다고 하자.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열 가지 선한 업도를 성취한 한 명의 우바새에게 하루 동안 음식을 보시하면, 부처님의 제자에게 이와 같이 보시하는 것이 앞에서 받는 복의 과보보다 더하여 아승기를 헤아린다.
문수사리여, 또 만약 일체 세계의 미진수의 열 가지 선한 업도를 성취한 모든 우바새에게, 날마다 하늘나라의 온갖 음식과 하늘나라의 의복으로써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검해 동안 이와 같이 보시한다고 하자.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한 명의 비구에게 혹은 하루 동안 능히 음식을 보시하면, 앞에서 받는 복의 과보보다 더하여 아승기를 헤아린다.”
입정부정인경에서 말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시방의 일체 세계의 모든 유정에게 목도되어 한 겁을 채우기에 이른다고 하자. 다시 선남자와 선여인이 모든 유정에게 자비롭고 연민하는 마음을 일으켜 눈으로 하여금 평복 되게 하여 도리어 한 겁을 채운다고 하자. 문수사리여,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대승을 믿고 이해하는 보살의 처소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으로써 찾아가 우러러보면, 앞에서 받는 복의 과보보다 더하여 한량없는 아승기를 헤아린다.
문수사리여, 가령 어떤 사람이 능히 시방의 일체 감옥에 갇혀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벗어나게 하고 나서 다시 전륜성왕의 미묘한 약이나 혹은 범천의 약을 준다고 하자.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대승을 믿고 이해하는 보살의 처소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으로 우러러보고 찬탄하면, 앞에서 받는 복의 과보보다 더하여 한량없는 아승기를 헤아린다.”
“‘세존이시여, 만약 진실로 선한 찰제리왕, 진실로 선한 거사, 진실로 선한 재관 진실로 선한 사문, 진실로 선한 바라문 등이 스스로를 수호하고 타인을 수호하고 다른 세상을 수호하며, 부처님의 제자로서 법의 그릇이거나 법의 그릇이 못 되거나 수염과 머리를 깎고 작은 부분으로 만든 가사를 입은 자에 대하여, 모두 응당 수호하며, 이와 같이 성문을 말하는 자, 벽지불을 말하는 자, 대승을 말하는 자, 대승에 머무르는 사람으로 계율의 덕에 상응하고 법을 잘 설하는 재주가 있는 자, 그와 더불어 지혜가 없어 희롱을 하지만 설법에 대하여 질문하기도 하며 듣고 지니기도 하는 자를 모두 공양하면,얼마나 지은 죄를 소멸하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하루의 첫 부분[초일분] 동안 염부제를 채우는 모든 위대하고 진기한 보물을 가지고 부처님의 제자에게 보시하고, 하루의 중간 부분[중일분]과 하루의 나중 부분[후일분]에도 역시 그와 같이 하여 백천 년을 채워 이와 같이 보시한다고 하자. 이 사람이 얻는 그 복이 어찌 많지 않겠느냐?’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받는 복은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 없어 그 받는 복에 대하여 능히 측량하는 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여래만이 이에 능히 그것을 아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진실로 선한 찰제리왕이 있어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가 얻는 그 복이 어찌 많지 않겠냐?’
이와 같이 자세한 것을 생략한다.
‘앞에서 받는 복의 과보보다 더하여 한량없는 아승기를 헤아린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중의 5백 년[후오백연]에 바른 법의 눈[정법안]을 얻어 자신과 타인을 잘 수호하고 다른 세상을 수호하여 나의 가르침 중에서 제자가 된 자로서 법의 그릇이거나 법의 그릇이 못 되거나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이를 모두 응당 잘 수호하여 괴롭히거나 해치지 말아야 한다.
자신과 타인의 국토가 모두 풍요하게 좋아지고, 죄를 소멸하고, 모든 하늘과 모든 선인이 더 이롭게 수호하여 수명을 늘리게 된다.
자신과 타인의 번뇌도 또한 모두 남김없이 소멸하여 바르게 깨닫는 도[정각도]와 6 바라밀에 머러 모든 죄악을 여의고, 윤회의 바다에 오래도록 빠지지 않는다.
항상 나쁜 친구를 여의고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들과 일을 함께 하여 모든 불찰을 좋아하고, 오래지 않아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얻게 된다.’
그때 대중 가운데 일체의 천주 및 천주의 권속 내지 필사차주와 그 권속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여 공경하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미래의 세상이나 나아가 나중의 5백 년에 진실로 선한 찰제리왕,진실로 선한 거사, 진실로 선한 대신, 진실로 선한 사문, 진실로 선한 바라문 등이 이와 같이 바른 법을 수호하여 삼보의 종자를 도와 모두 매우 번성하게 한다면, 요약하여 말한다.
나의 모든 권속들은 진실로 선한 찰제리왕, 진실로 선한 거사, 진실로 선한 대신 등을 열 가지 사항에 관하여 수호하고 증장시키겠습니다.
어떠한 것들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수명을 늘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항상 병의 괴로움이 없는 것입니다.
셋째는 널리 바른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넷째는 권속이 매우 많은 것입니다.
다섯째는 창고가 풍족하여 넘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수명대로 사는 데에 모자람이 없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부유하고 존귀하여 자제한 것입니다.
여덟째는 그 명칭이 멀리까지 들리는 것입니다.
아홉째는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이를 얻는 것입니다.
열째는 지혜를 구족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열 가지라고 이름합니다.’
자세한 것은 거기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광대한 과보에 대하여 이와 같이 성스런 지위에 들어가는 자에 대하여 응당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관음경에서 말한다.
“바른 깨달음의 마음[정각심]을 일으키는 자는 일체중생을 잘 이롭게 하기 때문에 만약 오직 불탑을 오른쪽으로 돌기만 하여도 나는 오히려 이 공덕이
광대하다고 말한다.
그대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이여, 만약 사람이 모든 하늘을 좋아하지 않고 선한 사람을 멀리 여읜다면, 이것이 지옥의 경계이다.
자세한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정제업장경에서 말한다.
“무릇 장애를 말하여 모두 난처함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말하여 장애라고 하는가? 탐욕을 장애라고 하고, 성냄을 장애라고 하고, 어리석음을 장애라고 하며, 보시를 장애라고 하고,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모두 장애라고 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어리석은 범부와 중생이 보시를 할 때에 인색하여 아쉬워하는 경우, 청정한 믿음을 내지 않고, 청정하지 못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손해 보는 마음을 일으키며,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후회하여 괴로워하는 죄를 짓고는 큰 지옥에 떨어진다.
그 계율을 수호하는 자는 계율을 훼손한 자에게 모든 비방을 가하여 칭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잘못을 듣게 하고 나서 청정한 믿음을
내지 않고,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곧 나쁜 세상에 떨어진다.
그 인욕을 수행하는 자는 인욕으로 말미암아 거만하여 그 인욕에 혼미하게 취하여 마음이 혼탁해지고, 인욕에 혼미하여 취함으로 말미암아 방일하는
근본이 되어 곧 괴로운 곳으로 떨어진다.
정진을 일으키는 자는 문득 아만을 일으키고는 그 밖의 비구가 수행을 게을리한다고 말하면서 신자가 보시하는 음식과 물 마시는 도구를 함께 하지
않는다. 정진을 일으켜 아만을 일으킴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타인을 경시하여 천대하는 것이 저 어리석은 범부와 같다.
선정에 안주하는 자는 정려와 삼마발 저로 말미암아 애호하여 좋아함을 일으켜, 문득 ‘나는 삼마지의 행위를 얻었는데 그 밖의 모든 비구는 마음으로
산란하게 행하여 어떻게 부처가 되겠는가?’라고 말한다.
자세한 것은 거기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또 수전제법경에서 말한다.
“보살에게 가르쳐 보리를 얻는 것은 멀다고 하는 업장의 죄를 제거한다. 위의에 대하여 가르쳐 주어 보리를 얻는 것은 멀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위의 의 의식에 대하여 가르쳐 주어 보리를 얻는 것은 멀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럼에도 그 보살은 보살의 처소에서 한열 한 생각을 일으킨다. 자신의 몸이 지위가 높고 위대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나는 조금 업장을 제거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 보살은 그 보살에 대하여 혹은 설교하여 응당 부처님의 생각에 머무르게 한다.
보살은 보살의 처소에서 훼손하여 헐뜯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그는 보리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자여, 보살은 이와 같이 약간의 선근이라도 끊지 않는다. 가령 보살이 둘이 아니라는 행[부이행] 가운데 설사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아도 아래로는
총명하고 예민한 보살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능멸하여 천시하지 않거늘, 어찌 하물며 보리심을 일으킨 자에 있어서랴.’”
수능엄삼매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부처님께서 견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은 자에게도 수기를 주는가? 만약 사람이 다섯 세계[오취]에 윤회하거나, 혹은 천상ㆍ인간ㆍ축생ㆍ지옥ㆍ염마왕의 세계에 태어나게 되면, 이 사람은 모든 감각기관이 대단히 예민하여 광대하게 믿고 이해한다.
여래는 그것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느 정도의 백천 굳이 나유타 겁에 이르러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킬 것이며, 이와 같은 백천 아승기겁에 보리의 과보를 얻을 것인지를 잘 아신다.’
요약하여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견의여,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아직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수기를 준다고 한다.’
그때 존자 대가섭파가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후에는 마땅히 일체중생에 대하여 세존이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왜냐 하면 저희들에게는 이와 같은 지혜가 있지 않아 어떠한 중생이 이 보리를 성숙하는 근기를 갖고 있는 자이며, 어떠한 중생이 갖고 있지 않은 자인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와 같은 행상을 알지 못합니다.
만약 중생에 대하여 한열 한 생각을 일으키면 곧 스스로 손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대가성파여. 이 말을 잘 설명하였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자제하게 바르게 관찰하여 내가 말한 이와 같은 법에 대하여 망령되이 출가와 재가, 남자와 여자를 헤아리지 말라. 만약 망령되이
헤아리면, 곧 스스로 손상하게 된다. 오직 여래만이 응당 중생들을 헤아릴 수 있다.
대가성파여, 만약 모든 성문과 보살이 설하면 마땅히 일체의 중생에 대하여 세존의 모습을 일으켜야 한다.’”
이와 같이 보면 중생이 반드시 보리를 얻는다는 것을 표방하기 때문에 그 불자에 대하여 응당 능멸하지 말고 응당 수호해야 한다.
묘법연화경에서 말한 것 같다.
혹은 석묘를 세우는 일이 있거나,
전단 및 침수,
목밀과 아울러 그 밖의 나무와
벽돌ㆍ기와ㆍ진흙 등으로,
혹은 광야에서
흙을 쌓아 부처님의 묘[불묘]를 조성하며,
나아가 동자가 장난으로
모래를 모아 부처님의 탑[불탑]으로 삼는다면
이와 같이 하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이미 부처님의 도[불도]를 성취한 것이다.
채색하여 부처님의 모습[불상]을 그리거나
부처님의 백 가지 복되고 장엄한 모습을
스스로 만들거나 혹은 타인을 시켜 만들면
모두 이미 부처님의 도를 성취한 것이다.
동자가 장난으로
혹은 풀과 나무 및 필기도구로
혹은 손톱으로
부처님의 모습을 그리면,
이와 같은 모든 사람들은
모두 이미 부처님의 도를 성취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탑묘나
보배로 만든 모습이나 그림으로 그린 모습에
꽃ㆍ향ㆍ번개로써
공경하는 마음으로 공양하거나,
만약 사람으로 하여금 음식을 연주하게 하여
북을 두드리고 뿔[각]과 소라[패]를 불며,
퉁소ㆍ거문고ㆍ공후ㆍ
비파ㆍ징ㆍ동발등
이와 같은 여러 악기의 미묘한 음성을
다하여 공양하거나, 혹은 환희하는 마음으로
노래와 범패로써 부처님의 덕을 칭송하여
한 마디 작은 소리에 이르러도
모두 이미 부처님의 도를 성취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산란한 마음이라도
나아가 한 송이 꽃으로써
그림으로 그린 모습에 공양하면,
점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을 뵙게 된다.
혹은 어떤 사람이 예배하고,
혹은 다시 다만 합장하거나
내지 한 손만을 세우고,
혹은 다시 조금만 머리를 숙이며,
이렇게 부처님의 모습에 공양하면
점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을 뵙게 된다.
또 말한다.
만약 사람이 산란한 마음이라도
탑묘 안으로 들어가
한 번이라도 나무불(남무불)이라고 부르면,
모두 이미 부처님의 도를 성취한 것이다.
모든 과거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나 혹은 입멸한 후에
만약 이 법을 듣는 일이 있다면,
모두 이미 부처님의 도를 성취한 것이다.
또 대비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하여 큰 연못 속에다 낚싯밥을 두어 물고기로 하여금 삼키게 하는 것과 같다.
물고기가 삼키고 나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 물고기가 여전히 연못 속에 있는 줄 알지만 오래지 않아 마땅히 떠오른다.
다시 이와 같은 것을 알고, 그 견고한 낚시를 장대에 줄로 엮어 언덕의 나무 위에 매어 둔다. 그때 어부는 이미 그곳에 도착하여 곧 장대의 줄을 시험하여 물고기가 잡혔다는 것을 알고, 문득 낚싯줄을 끌어당겨 언덕 위에 놓아두고, 그 원하는 바와 같이 수용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지금 역시 그와 같다.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ㆍ세존에 대하여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내어 모든 선한 근본을 심게 하고, 한 가닥 믿는 마음으로 그 모든 중생이 비록 그 밖의 악한 업에 가리어 장애를 받아 찰나에 타락하여도 부처님ㆍ세존이 그 중생에 대하여 보리의 지혜로써 일을 거두어들이는 줄을 잡아 윤회의 바다에서 모든 중생을 건져내어 열반의 언덕에 놓아둔다.
그러므로 모두 부처님의 모습을 만들어 예배하고 공경하는데, 응당 이것은 오히려 마음속으로 예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처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키는 자에게는 몸으로써 예배하고 공경한다.
선재동자가 보운대보살의 처소에서 처음으로 도의 마음[도의]을 일으켜 몸으로써 예배하고 공경한 것과 같다.
일체 이것은 의미가 분명한 것이다.
심심교계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모든 보살을 위하여 경과한 생애에 대하여 공경하여 예배를 하며, 그리고 혹은 말하는 바 어떻게 한 처소에서 예배하고 예배하지 않으므로 서로 어긋나지 않는가? 이렇게 예배하여 공경함에 대하여 전전하여 계박되고 속박된다.
이와 같이 예배하지 않는 자에게는 복된 과보가 없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한 번 예배하고서 모든 부처님을 보게 되겠는가?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집제법방광경 중에서 말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여래가 설한 적은 분량의 법 중에서, 혹은 청정한 생각 및 청정하지 않은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함께 바른 법을 비방하는 것인가?
바른 법을 비방하는 자는, 곧 모든 부처님ㆍ법ㆍ승가를 훼방하고 경시하는 것이다.
또 이것은 해탈이고 이것은 해탈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함께 바른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나는 별다른 법이 있어 성문승에 속하고 연각승에 속하고 대승에 속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저 어리석고 못난 자가 나의 이 법 중에서 갖가지로 시설하여 이것은 성문이고 이것은 연각이고 이것은 보살이라고 말하며 갖가지 생각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문득 바른 법을 비방한다.
이것은 보살이 배워야 할 것이고, 이것은 보살이 배워야 할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바른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것을 설하는 법사는 이 변재가 있다거나, 이 변재가 없다고 하는 것은, 또한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이것은 법을 설하는 것이고,이것은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함께 바른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과거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여도 총지를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도 또한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법을 설하는 법사에 대하여 또한 총지가 없다고 하는 것은, 전부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법을 설하는 법사에 대하여 이 잘못된 행위가 있다고 하는 것도, 또한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법을 설하는 법사에게 이러한 구족 된 변재가 없다고 하는 것은,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방일을 가르치는 것은,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위의도행을 가르치는 것도 또한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르지 못한 계율을 가르치는 것은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변재가 없는 것은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광명의 법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은 또한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명소청에 대하여 그 말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래의 가르침에 대하여 오직 문자만을 생각하고 이해하여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모두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승집보살학론 제7권
4. 공 품 ④
이 계경(경전)은 그 밖의 계경과 어긋난다고 하는 것은, 모두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가타는 그 밖의 가타와 어긋난다고 하는 것을 또한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떠한 것은 믿고 이해함을 일으키는 것이고, 어떠한 것은 그것을 일으키지 않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법사가 설법한 것에 대하여 다르게 이해하여 바꾸는 것은,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사업을 하며 눈으로 보는 것을 여의고 희롱하는 말을 하는 것은,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행함이 있고 저것은 행함이 없다
고 하는 것은, 함께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말한 일부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삼매에 대하여 해탈의 의미가 있고, 일부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삼매에 대하여 해탈의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은, 또한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에 대하여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은, 모두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 법을 설하는 법사에 대하여 이와 같이 행상하고 이와 같이 사유하는 일체가 모두 바른 법을 훼방하는 것이다.
그 경전에서 또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여래가 입멸한 뒤에 내가 이미 설한 법 중에서 좋아하는 바에 따라서 그 믿고 이해하는 바와 같이 중생을 위하여 말하여 그 모임 속에서 어떤 한 중생이 기뻐서 신체의 털이 서거나 혹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게 되면, 마땅히 그것은 모든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 이는 보살이고 이는 보살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마땅히 그것은 보살의 허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망령되이 3승의 법을 말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내가 말한 법에 대하여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깨달아 이해하겠느냐?
만약 보살에 대하여 능멸을 일으키는 자는, 나는 그 사람이 지옥에 빠져 지내는 기간의 한량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만약 보살로서 법을 설하는 법사에 대하여 비방을 일으킨다면, 곧 모든 부처님을 멀리 여의고 바른 법과 비구승을 헐뜯는 것이다.
또 만약 모든 법을 설하는 법사를 경시하여 존중하지 않는다면, 곧 부처님ㆍ여래에 대하여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법을 설하는 법사를 보고자 하지 않는다면, 곧 부처님ㆍ여래를 보고자 즐거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법을 설하는 법사에 대하여 칭찬하지 않는다면, 곧 부처님ㆍ여래에 대하여 칭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곧 부처님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 발심한 보살에 대하여 괴롭혀 해치려는 뜻을 일으킨다면.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만약 나의 6 바라밀을 모든 보살이 바르게 깨달아 행하는 것에 대하여 그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 망령되이 오직 반야바라밀다만을 응당 알아야 하며, 그것이 보살이 배워야 할 것이다.
어찌하여 그 밖의 바라밀다를 배우는가?라고 말하고, 그 밖의 바라밀다를 그는 잘못이라고 한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삭가시왕이 호랑이 새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육신을 보시한 것을 지혜가 없다고 하겠느냐?’
자씨보살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만약 보리행을 수행하고, 6 바라밀행에 상응하는 선한 마음을 일으킨다면, 많은 선근을 성숙시키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자씨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일다여, 그대도 또한 60겁 동안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반야바라밀다를 하였고, 모두 함께 하였다.
또 어리석고 못난 자는 말하기를, 오직 한 가지 바른 이치만이 보리도에서 하는 공성행이며, 이 바른 이치는 본연의 청정함을 얻는다고 한다. 고 하였다.
5. 십리난계학품
심심교계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이와 같은 종류의 난처함을 듣고 나서 두려워하며, 그 처음 수행하는 보살은 그와 같이 받아 지니며 이익되는 일을 말하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최초로 여래 앞에서 이와 같이 받아 지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지금부터 그 보살과 교화받은 사람에 대하여 그 죄의 허물을 말하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이것은 곧 여래ㆍ정변지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또 제가 지금부터 그 보살과 교화받은 사람에 대하여 기만하고 훼손하고 능멸하며, 혹은 재가자 혹은 출가자가 다섯 가지 욕망의 즐거움을 받으며 마음대로 자제한 것을 본 뒤 그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과 참괴심을 내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며 부처님을 생각하지 않아 신심을 핍박하여 괴롭히며, 지식 있는 가문을 교화하고 한열 한 종류의 보시를 받는 것을 본 뒤 만약 오직 한 번이라도 기뻐하여 아름다운 말을 하지 않으며, 밤낮으로 세 때에 귀의하여 회향하지 않으면, 이것은 곧 여래ㆍ정변지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지금부터 금지해야 할 계율을 받아 지니며, 혹은 모든 왕이되어 신명과 재물에 대하여 보시하지 않고, 성문과 연각 및 그 교화받은 사람을 능멸하며, 내가 가장 훌륭하다고 말하거나, 혹은 전다라처럼 마음먹고, 스스로 그 몸을 높이 치켜세우고 타인을 비하시키며, 혹은 투쟁에 직면하여도 두려워 도주하지 않으며, 1 유순 혹은 백 유순을 경과한다면, 이것은 곧 여래ㆍ정변지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가 지금부터 몸으로 계율을 다 지니면서 혹은 많이 들음으로써 달리 두타의 공덕 및 그 밖의 공덕을 나타내는 신체의 즐거운 행위를 알지 못하고, 타인의 선행을 덮어 버리고 타인의 악행을 드러내면, 이것은 곧 여래ㆍ정변지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미륵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모든 업장을 깨끗이 하고자 한다면, 응당 이 처음 수행하는 보살처럼 이와 같이 받아 지녀야 할 것이다.’”
또 수전제법경에서 말한다.
“말하자면, 만약 보살에 대하여 밤낮으로 세 때에 머리를 숙여 예배하며 공경하고, 이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를 행하면, 또한 조금도 잘못을 찾지 말아야
한다.
설사 항상 다섯 가지 욕망의 즐거움에 집착하는 것을 보아도, 또한 조금도 잘못을 찾지 말아야 한다. 보리를 행하는 자는 한량없는 공덕과 수승한 이익을 수행하여 때가 이르면 증득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점차로 수도하고 점차로 성불한다.
정녕 설사 1 바라분을 수행하여도 한량없는 백천 굳이 나유타 겁 동안 큰 지옥에서 지내며 서원의 갑옷을 입은 것과 같게 된다.”
그 경전에서 또 말한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행상은 죄업을 멀리 여의며, 그 보살은 일체의 행위 중에서 모두 둘이 아닌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응당 일체의 수행과 증득을 믿고 이해하여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타인의 마음에 대하여 아는 것이 어렵지 않아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이와 같은 행위를 하게 된다.
또 다음에 선남자야, 자제하게 두루 관찰하는 여래의 이와 같은 모든 법은, 어떤 사람이라도 그것을 응당 헤아릴 수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내가 말한
것을 이해한다면, 곧 나를 보는 것이다.
선남자야, 신체를 수호하고자 하는 자는 이 행위 중에서 거의 의혹이 없어야 하며, 그 행위하는 것과 같이 타인의 선행을 파괴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법을 추구하는 자는, 밤낮으로 법을 생각하고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지장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그때 다시 한량없는 백천의 현명한 중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여 공경하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덕 높으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제 현전에서 이와 같은 서원을 발하며 또한 영원토록 나고 죽음에 유전하며 아직 법의 인을 얻지 못한 동안에는 항상 모든 왕ㆍ대신ㆍ성읍ㆍ취락ㆍ보상ㆍ장수 등의 직위를 맡지 않고, 또한 상주ㆍ사장ㆍ거사주ㆍ사문ㆍ단사자ㆍ일체의 친족과 부귀하고 귀중한 지위를 맡지 않기를 서원합니다.
나아가 아직 법의 인을 얻지 못한 동안에 저희들이 만약 이와 같은 직위를 맡는다면, 이것은 어리석고 나쁜 일로서 곧 부처님ㆍ세존의 가르침에 대하여 능히 수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세하게 이와 같은 난처함을 여읠 것을 말한다.
월등삼매경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리석은 아이가 공경하지 않는 것은
응당 죄가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 어머니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너는 마땅히 나중에 하여야 한다.
필요한 것을 조금만 얻어도
나에 대하여 존중해야 하고
만약 위없는 도로 인하여
교화하여 제도하는 데 게을러 피곤하면
나이가 많거나 덕 높은 존자에게 질문하고
얼굴을 그들의 발에 대고 예배하며
이것을 위하여 존중해야 한다.
그의 잘못을 바라보지 말라.
오직 보리의 도량만을 관하고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내기를 좋아하며
또한 손해 끼치는 일을 하지 말고
또 설사 타인의 잘못을 보아도
신중하게 그의 잘못을 말하되
만약 그의 선한 업을 좋아하면
또한 도의 과보를 얻는다.
어린아이와 존장 앞에서는
얼굴빛을 달처럼 청량하게 하고
항상 이 말을 좋아하고 즐거워하여
용맹하게 아만을 제거하여 항복받는다.
만약 음식과 의복을
이것을 위하여 연민을 내어 보시하면
네가 이와 같은 마음으로
일체를 다스려 항복받을 것이다.
만약 보리심을 발하는데
혹은 굳센 믿음을 내지 않으면
그는 응당 스스로 수호해야 한다.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보고도 보지 않는 기쁨을 거두기 위하여,
스스로 탁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하기 위하여
마음으로 사유하여 분별하는 성품 때문에
감당하는 사업을 획득하기 위하여.
또 화엄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그때 자씨보 살은 선재동자가 보리심을 발하는 공덕을 관찰하고,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하였다.
만약 모든 중생이
늙고 병드는 모든 괴로움에 핍박되고
나고 죽는 근심에 두려워함을 본다면
대비의 이로운 행위를 발한다.
세상이 괴로움에 핍박되어
다섯 세계[오취]에 항상 유전하는 것을 봄으로 말미암아
견고하고 이로운 지혜를 구하여
모든 세계의 괴로움의 바퀴를 깨뜨린다.
만약 즐거움에 탐착 하는 자에게
근심의 가시나무가 많은 것을 보면
그를 위하여 견고한 쟁기가 되어
중생의 자리를 청정하게 다스린다.
어리석어 세간의 밝음과
바른 도의 지혜의 눈을 파괴하면
뭇 장님들을 인도하는 스승이 되어
그 안온한 자리를 보여준다.
지혜의 검[지검]으로써 원한의 적을 항복시키고
해탈의 3 법인을 얻어
세간을 인도하는 스승이 되어
영원히 근심과 두려움을 여의게 한다.
혹은 법의 배[법강]의 주인이 되어
지혜의 바닷길을 거닐게 하고
3유를 인도하는 스승이 되어
수승한 법의 인[승인]의 보배 창고에 도달하게 한다.
지혜 광명의 큰 서원의 바퀴[대원윤]는
부처님의 해[불일]가 출현한 것처럼
그 빛이 법계의 허공을 포함하여
뭇 중생의 어두움을 두루 비춘다.
밝은 법[백법]의 원만한 바퀴는
부처님의 달[불월]이 출현한 것처럼
자애롭고 안정된 청량한 빛이 있어
평등하게 모든 존재를 비춘다.
또 수승한 지혜의 바다처럼
모든 법보를 출생하여
보리의 행위가 점차 고조되어
깊은 마음으로 견고하게 머무른다.
발심하는 것은 용왕과 같이
법계의 허공으로 솟아올라
감로의 법 구름[법운]을 뿌려
모든 밝은 과보의 싹을 자라게 한다.
또 법의 등불[법등]을 밝히는 것처럼
바른 생각이 견고한 그릇에는
자애롭고 더러움이 없는 빛이 있어
세 가지 독의 어두움을 깨끗하게 제거한다.
또 이 보리심은
비유하면 갈라라
비포ㆍ자폐시ㆍ
발라ㆍ건남위처럼
보리의 분량을 점차 생겨나게 하여
부처님의 곳간[불장]을 증장하게 한다.
복덕의 곳간[복덕장]도 또한 그러하며
지혜의 곳간[지장]이 청정하게 되고
또 지혜의 곳간[혜장]을 개발하여
서원의 곳간[원장]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이 자비의 법의 성품은
중생을 해탈시키기 때문에
세간의 하늘나라와 사람 중에서
청정한 의지[정의]는 얻기 어렵다.
희유한 지혜의 과실나무[지과수]는
미묘하며 매우 굳은 근본을 심어
여러 행위가 점차 증가하고 번영하여
널리 3유를 덮는다.
모든 공덕을 자라나게 하려면
일체의 법을 물어
일체의 의혹을 끊어 없애고
모든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번뇌의 악마를 파괴하고자 하면
티끌에 물든 견해를 깨끗하게 제거하고
모든 중생을 해탈시키는
이 큰 지혜[대지]를 구해야 한다.
나쁜 세계를 깨끗하게 제거하고자 하면
인간과 하늘나라의 길을 나타내고
해탈의 지혜의 문[지문]을 열어
공덕의 도에 안주해야 한다.
모든 세계의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면
마땅히 모든 존재의 끈을 끊어야 하며
모든 세계에서 안온함을 베풀어야
이 진실한 부처님의 자녀[진불자]에 접근하게 된다.
의미를 가지고 관찰하여 이와 같은 난처함을 멀리 여의는 것은 난처함이라고 하지 않는다.
심심교계경에서 이 난처함을 여의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그 보살과 교화받은 사람에 대하여 마땅히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야 한다.
5백 년 뒤에 바른 법이 소멸하려고 할 때, 파괴되거나 그것을 능멸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해탈한다.
어떠한 것들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자신의 허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 보살과 교화받은 사람에 대하여 타인의 단점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잘 아는 집안의 내막을 친하지 않은 곳에 가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네 가지라고 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또 네 가지가 있다.
어떠한 것들이 그 넷인가?
첫째는 들은 것이 적은 중생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둘째는 권속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항상 임야(임야)에 앉거나 눕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넷째는 스스로 사마타의 행위를 수습하여 이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것을 네 가지라고 한다.’”
그 경전에서 또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이 처음 수행하는 보살은 지혜의 힘[혜역]이라는 재물을 얻어, 합당하지 않은 명성과 이익의 양성 을 멀리 여읜다.
그 명성과 이익[명이]은 좋지 않은 것이다.
이롭지 못한 말을 보고, 세속의 말ㆍ세속의 수면ㆍ세속의 사업ㆍ세속의 희롱을 보고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한다. 그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요약하여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만약 보살마하살이라면, 응당 명성과 이익의 양성이 탐욕과 오염을 발생하고 바른 사념[정염]을 파괴한다는 것을 관찰해야 하며, 얻고 얻지 못한 자에 대하여 귀하고 천함을 짓지 말아야 한다. 또 응당 명성과 이익의 양성은 어리석고 못난 어두움을 일으키고, 인색한 부류를 만들고, 아첨과 사기를 발생하고 자기 몸을 이롭게 하고, 참괴함이 없으며, 네 가지 성자[사성]의 종자를 여읨을 관찰해야 한다.
모든 부처님께서 설한 것과 같이 명성과 이익의 양성을 응당 잘 관찰해야 한다.
모든 교만을 일으키고, 스승과 존장을 경시하며, 악마[마라]에 속한 것으로 오로지 방일하여 선근을 파괴하는 것이 금강으로 만들어진 우박과 같고 번갯불과 같다. 또 명성과 이익은, 잘 아는 집안의 내막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애호하고 좋아하며 친하지 않은 곳에 가서 말하게 하고, 다시 번뇌와 미혹을 일으켜 지각하는 것을 덮고, 좋아하는 일을 향하여 더욱 근심과 걱정을 일으킨다.
또 명성과 이익은 4념처 즐거움이 최상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이 한 구절의 의미를 오래도록 사유하고도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자아의 즐거움에 대하여 한량없는 구절의 의미를 얻었다고 말한다.
비유하면 감자의 딱딱한 껍질 속에는 그 맛이 얼마 없어 사람이 그 껍질을 먹고 나면 다시 능히 감자의 단맛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장황한 설명은 감자의 껍질처럼 오직 신기한 변화만을 좋아할 뿐이며, 의미의 이치를 헤아려 간택하는 자는 감자의 맛처럼 항상 혼미하여 취하지 않는다.
수면에 탐착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이른바 만약 수면을 좋아하면
여기에서 여러 가지 견해를 지어
그는 견해를 얻고는 의심을 하여
커다란 어리석음의 그물을 증장시킨다.
만약 혼수를 좋아한다면,
지혜가 모두 겁약하여
깨닫고 이해하는 속에서
항상 때와 더불어 잃어버린다.
만약 혼수를 좋아하면,
게을러서 지혜가 없고,
설사 깊은 수풀 속에서 기거하여도
사람이 아닌 것[비인]이 그 틈을 노린다.
만약 혼수를 좋아하면,
곧 법에 맞지 않는 욕망을 좋아하여
선한 마음이 항상 증장하지 않으니,
무엇으로 말미암아 법의 즐거움을 얻겠는가.
만약 혼수를 좋아하면,
어리석어 선한 법의 욕구를 은폐하고,
밝은 법의 공덕을 파괴하여
두루 모든 어두운 데로 들어간다.
만약 혼수를 좋아하면,
변재가 없는 것에 대하여 집착하고
항상 방일한 마음을 생하며,
근심이 얽히어 육체가 게으르고 피곤해진다.
만약 혼수를 좋아하면,
자신의 게으름을 알기 때문에
저 근면하게 힘쓰는 사람을 질투하며,
구족 하여 정진하는 것을 훼손한다.
만약 모든 괴로움의 어두움을 제거하면
곧 죄의 근본을 여의고,
항상 뛰어나게 근면하여
모든 부처님께 찬탄받는다.
스승의 가르침을 나쁜 말이라고 하고
가르쳐 훈계하는 것을 그릇되다고 집착하며
신속히 시라를 훼범하고
이 잘못된 일을 좋아한다.
매번 세속의 일을 생각하고
항상 갑작스럽게 일을 하며
모든 선정을 수행하지 않고
이 잘못된 일을 좋아한다.
탐욕을 생하는 것이 광대함으로 말미암아
맛있는 것에 얽혀 묶이고
하혈하여 만족할 줄 모르며
이 잘못된 일을 좋아한다.
대중 속에 처하여 크게 기뻐하고
모든 고뇌를 제거하였다고 말하며
당나귀가 험한 길을 가는 것처럼
이 잘못된 일을 좋아한다.
그 마음은 밤낮으로
모든 공덕을 좋아하지 않고
오직 입는 것과 먹는 것에 맹렬하게 이기적이며
이 잘못된 일을 좋아한다.
상응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고
오직 상응하지 않는 것을 따르며
세속에서 작업하는 것을 질문하고
이 잘못된 일을 좋아한다.
요약하여 말한다.
그때 자씨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지혜가 적으면, 최상의 법을 포기함으로 말미암아 수승한 지혜를 잃고 한열 한 일을 짓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그러하고 그러하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보살이 적은 지혜를 얻으면, 최상의 법을 포기함으로 말미암아 한열 한 일을 짓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또 그 보살은 여래의 가르침에 있어서 이미 출가하고 나서 선정과 바르게 끊음 [정단]과 바르게 근면함이 없고 많이 듣는 것도 없고, 희망을
품지도 않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여기에 다시 선정과 바르게 단절하는 것을 관찰하고, 여래의 가르침을 알고, 유이의 모습인 삼마 희다의 상응하는 바를 알며, 백의(백의)의 일을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한다. 마땅히 알라. 그 보살은 애락을 생사윤회하는 자이다.
말하자면, 세속에서 조작하여 경영하는 것은 법의 재물을 멀리 여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그 일을 경영하는 보살이 가령 일곱 가지 보배로 탑을 치장하여 삼천대천세계를 채워도 나도 또한 그에 대하여 공경하여 존중하고 찬탄하지
않는다.
염부제에 가득한 일체 모든 이 일을 경영하는 보살은, 한 사람이 읽고 외우며 말한 대로 수행하는 보살에게 받드는 행위를 하는 것만 못하다.
또 혹은 하나의 염부제의 분량만큼 읽고 외우며 말한 대로 수행하는 보살은, 한 사람이 각각 기거하는 곳에서 안온한 수행을 하는 보살에게 받드는 행위를 하는 것만 못하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말하자면 지혜의 업은 모든 삼세에 있어서 수승한 것이고 우수한 것이며, 가장 지극히 높고 수승하여 그 보다 더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씨여, 그러므로 보살이 정진에 상응하는 의미에 근면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수승한 지혜를 수습해야 한다.’”
이 희롱하는 행위는 항상 잘못된 것이라서 이와 같은 난처함을 얻는다. 말하자면 그 여덟 가지 난처함을 멀리 여일 수 없고, 역시 찰나에 수승한 것을
구족 할 수 없다.
지혜로운 자는 바르게 이해하여 모든 희롱을 여읜다. 이 희롱하는 행위는 신속하게 이 난처함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모두 함께 머물러서는 안 된다.
차라리 축적된 처자식의 죄악을 받아들여 백 유순을 지나갈지언정 타인의 의론에 대해서는 혹은 잠깐 동안이라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함께 머물지도 말아야 한다. 출가에 대하여 공덕의 이익과 재물을 구하고자 하면, 이것은 곧 나쁜 마음으로 모든 투쟁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전답을 운영하지 말아야 하며, 상품의 판매를 영위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재물과 이익을 추구하면, 이것은 곧 희론이다. 남녀ㆍ처첩ㆍ친구ㆍ노복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 부유함은 모든 투쟁을 일으킨다. 이미 출가하였으면 가사를 받아 걸치고, 믿음에 순종하여 적정하고 지극하게 적정해야 한다. 다시 이 적정[적]ㆍ수승한 적정[승적]ㆍ근접한 적정[근 적]을 관찰하여 희롱을 여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인내를 일으킨다.
희롱하는 행위를 멀리 여의지 못하는 자는, 비유하면 독사처럼 나쁜 마음을 안으로 저장하여 나중에 지옥ㆍ축생ㆍ염마왕의 세계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정진하여 이와 같은 인내를 일으켜야 한다.
이 보살승을 얻는 자는 모든 업장을 남김없이 깨끗이 하여 원수인 악마의 힘을 파괴한다. 모든 지혜로운 자는 이와 같은 인내를 일으켜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씨여, 그러므로 이 보살승이,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5백 년 후에 바른 법이 소멸할 때에 난처함에 머물지 않고 길상함을 획득하고, 모든 업장을 벗어나서 죄와 욕망을 전부 제거하게 하려면, 마땅히 남녀의 화합을 좋아하지 말고 아란야나 광야나 수풀 속에서 지내며 그것을 수행하며, 그 밖의 중생에 대해서는 혹은 멀리 여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자기의 허물을 반성하고 타인의 잘못을 찾지 않으며, 말없이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을 믿고 즐긴다.’”
그러므로 또 보운경에서도 또한 이렇게 말한다.
걸식을 할 때 이 일을 얻고 그 밖의 나쁜 처소를 제외한다.
말하자면 사나운 개가 있는 집[악구가], 새로 태어난 어린 젖소가 있는 집, 체성(체성)이 계율을 범한 집이다. 그 축생에 대해서도 오히려 손해 끼치는
것을 여의어야 하는데, 어찌 하물며 남자ㆍ여인ㆍ소년ㆍ소녀에게 염증을 일으켜 천시하랴. 언제 어디서나 모두 응당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은 종류의 모든 나쁜 행동을 본다면, 삼가서 가서 관찰하지 말아야 그 죄를 여읠 수 있다.
또 다음에 이와 같은 것들의 난처함을 여의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과보를 얻는가? 과보의 이익이 없음을 여의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의미를 성취한다.
응당 과보의 이익이 없음을 멀리 여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월등경에서 신체 계율[신계]의 의미를 말하는 바와 같다.
말하자면 수족을 은밀하게 보호하여 헛되게 움직이지 않게 한다.”
또 『십 법경에서 말한다.
“수족을 어지럽게 움직이고, 오고 가며 뛰고 머뭇거린다.
이것을 몸의 업이 크고 무겁다고 말한다.”
[논] 보살과 같은 사람은 타인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그 비추어 아는 것처럼 하면서도 그 밖의 업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집경에서 말한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들의 몸[신]과 말[구]과 마음[의]의 업은, 모두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큰 자비를 더욱 일으키어 중생을 안온하게 위로하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유쾌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깊은 마음으로 이와 같이 사유하며, 어떠한 행위를 따라서 수행하여도 평등을 행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안온한 즐거움을 얻게 합니다.
요약하여 말한다. 말하자면 보살은 12처를 관찰하여 공한 취락과 같다는 것을 알고, 이와 같은 처소에 대하여 기꺼이 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