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장 영웅과 영웅의 별리(別離) 흐르는 것이 있었다. 흐르는 것은 한곳 막힘이 없는 도도한 흐름이다. 장강(長江), 흘러서 좋은 강(江), 길이가 길어서 막힘이 없는 강(江), 장강(長江)이다. 십팔만 리(十八萬里) 광활한 중원대륙을 가로질러 도도한 맥(脈)을 지닌 장강(長江). 아……! 장강은 바로 중원천하의 혼(魂)이요, 심장이었으니…… 다리(橋), 언제부터인지 한 개 다리(橋)가 장강을 가로질러 젖줄인 듯 걸려 있었다. <생사교(生死橋)> 나무(木)로 된 다리(橋). 나무(木)는 인간(人間)과 같아 생(生), 사(死)를 갖는다. 생사교(生死橋)는 그런 다리이다. 석양(夕陽), 홍안(紅顔) 미소녀(美少女)의 보기좋은 혈색(血色)과 같은 석양이 걸렸다. 생사교는 석양을 입고 말없이 장강에 걸려 있었다. 조용하다. 소리없이 흐르는 장강의 물결이 생사교 목각(木脚)을 얼싸안고 있었다. 생사교의 북쪽, 만리장성(萬里長成)에서 뻗은 북쪽으로부터 문득 한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석양을 옆으로 비껴받고 있는 인영, 일신에 걸친 백의(白衣)가 유난히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 백무린 바로 그였다. 허리에 비껴찬 천무, 천강검의 수술이 석양 속에서 우아하게 흔들린다. 피곤한 모습, 그것은 그의 두 눈 깊은 곳에서 은밀히 피고 있는 고뇌의 빛 때문인가? "……" 백무린은 묵묵히 걸었다. '생사교……!' 그는 발치에 걸려 있는 생사교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좋은 생사교(生死橋), 말이 없어 좋은 생사교(生死橋), 천천히 생사교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헌데 문득, "……!" 백무린의 눈동자가 전면을 향해 조금씩 시공(視孔)을 넓히는 것이 아닌가? 그림자(影), 백무린의 확대된 동공(瞳孔)으로 서서히 확대되는 그림자가 있었다. '……!' 생사교의 남쪽, 한 명이 생사교로 들어서고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의 인물. 너무 매서워 날카로운 시선이 석양을 싸안고 신비를 깔고 있는 준수 미장부(美丈夫). 아…… 그는……? 생사교, 남북으로 걸쳐진 생사교에 남과 북에서 두 남아(男兒)가 나타났다. 북(北)에서 나타난 남아 백무린, 남(南)에서 나타난 남아 아찰극. 오오! 이들은 이렇게 생사교의 남과 북을 차지했다. 걷는다. 그들은 석양을 밟으며 침묵 속에 생사교를 걸었다. 생사교의 중앙(中央), "……!" "……!" 그들은 만났다. 그들이 마주선 장소는 생(生)의 위치인가? 사(死)의 위치인가? 어쨌든 그들은 생사교의 정 중앙에서 만났다. …… 석양은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생사교 아래로 석양을 입고 장강이 거침없는 도도한 흐름을 계속하고 있었다. "……!" "……!" 짧은 침묵이 억겁의 세월처럼 흘렀다. 미소, 누구의 입에서 먼저 시작되었는가? 그들은 마주보며 그냥 그렇게 미소를 교환했다. 그리고…… 먼저 아찰극이 백무린을 향해 포권을 했다. "백공(白公)! 오랜만이오." 잘 익어가는 석양(夕陽)과 같은 음성이었다. 백무린은 아찰극의 입에서 번지고 있는 미소를 바라보며 마주 답례했다. "태자(太子)……! 그러고 보니 진정 오랜만이군요." 그의 미소도 아찰극의 미소같이 잘 익어 있었다. 이렇게 그들은 만났다. 그들은 마주보며 앉았다. 격식(格式) 그것은 차리지 않아도 더 좋은 자리였다. 석양이 있고…… 장강이 흐르고…… 그들은 생사교 중앙에서 마주 대좌(對坐)했다. "하하하……! 오랜만에 지우(知友)를 만났는데 한 잔 술이 없어서야 되겠소?" 아찰극은 품에서 작은 술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는 먼저 술병을 치켜들고 몇 모금 벌컥! 벌컥! 들이켰다. "커어……! 주석(酒席)이 별주(別酒)라……! 자! 어디 백공도 마셔 보시오." 술병을 건네 주었다. "……!" 백무린은 술병을 받아들고 아찰극과 같이 목젖을 울리면서 들이켰다. 썩 좋은 술맛이었다. 술은 이름없는 주막에서나 팔고 있는 죽엽청. 허나 술맛은 진정 훌륭했다. "커어……! 과연…… 태자의 말씀대로 주석이 별주외다." 백무린은 다시 술병을 아찰극에게 건네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동안 술병을 건네 주고받았다. 술병, 유일하게 생사교의 생(生)과 사(死)를 건네 마셨다. "커어……!" 아찰극은 술병을 입에서 떼며 주먹으로 입술을 훔쳤다. "백공(白公)……! 아우는…… 죽었는가……?" 그의 주먹에 묻은 술 위로 한 점 석양이 내렸다. 아우는 죽었는가? 이미 황하(黃河)의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어버린 아극탈웅. "……" 백무린은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手), 술병을 잡고 있는 아찰극의 손이 미미한 떨림을 보였다. 한동안 그는 침묵을 지켰다. 물소리, 도도한 장가의 물소리가 그의 귀에 들린다. 결코 아극탈웅이 죽어간 물소린 아니다. 허나 그는 한 동안 귀를 기울였다. 무엇을 듣기 위해……? 문득, 아찰극은 재차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목젖을 울리는 술소리가 일었다. 술병을 입에서 떼며 주먹으로 입술을 훔쳤다. 입을 훔치는 주먹…… 눈물을 훔치는 주먹같이 그렇게 보였다. 눈물을 훔치는 주먹같이…… 그렇게 보였다. "으음…… 결국 아우는 그렇게 승천(昇天)했나?" "……" "아우는 행복하겠군…! 이 한(恨)많은 세상을… 훨훨 털어 버렸으니……" 그가 듣고 있었던 물소리. 아우가 떨쳐버린 한(恨)의 외침이었던가? 백무린은 내심 침음성을 터뜨렸다. '태자… 당신이 말하는 한(恨)이란… 대체 그 깊은 뿌리는 무엇이오?' 문득, 아찰극은 정면으로 백무린을 바라 보았다. "백공! 그대는 내 손과 발을 모두 잘랐소." "……!" "허허……! 내 손과 발…… 한(恨)을 자른 것이오?" "……!" "허허……!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쓸모없는 육신 뿐……" 아착극은 시선을 붉게타는 서천(西天)에 주었다. "이후… 대원(大元)은 저 스러지는 석양같이… 그렇데 스러지겠지……" 남(南)에서 온 사내, 지금 북으로 향하고 있는 사내 아극찰. 그는 거푸 술병을 기울였다. "……!" 북(北)에서 온 사내. 지금 남(南)으로 향하고 있는 사내 백무린, 그는 침묵 속에 눈 앞의 석양을 닮은 사내아찰극을 응시했다. "허나……" 아찰극은 석양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의 허리엔 한 주루 연도(軟刀)가 감겨 있었다. "백공……! 그냥…… 이대로 나를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치 않으시오?" 그의 음성. 잘 익은 석양이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치. 생사교 중앙에서 그들은 대치했다. 아찰극 그의 두 눈에서 매서운 신광이 소리치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백공! 이것은 대원(大元)의 태조(太祖)께서 남기신 용호패천도(龍虎覇天刀)라 하오." 연도(軟刀)의 이름은 용호패천도였다. "대원(大元)이 중원을 정복한 후… 칠기예전(七技藝殿)의 장인(匠人)이 선사한 것이더군……" "……!" "후후…! 결국 이 용호패천도는 중원(中原)의 것인 셈이지……!" "태자……! 도(刀)나 검(劍)을 쓰는 사람이 그 뿌리를 이루는 법이오." 백무린은 천천히 허리춤의 천무 천강도를 뽑아들었다. 그의 두 눈 깊은 곳에서 불씨가 담겼다. 짙어가는 석양빛을 담은 불씨였다. 생사교 위로…… 석양이 내리고,생사교 아래로 장강이 흐르다. ……! ……! 무섭게 눈길들이 부딪힌다. 이 순간 그들은 말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사내들이길 원했다. 생(生)과 사(死)의 대치인가? 석양이 숨을 죽였다. 흐르는 장강이 소리를 죽였다. 이곳은 생사교다. 뚝! 누군가의 이마에서 한방울 땀이 떨어졌다. 순간, 찰나, "천마파천황(泉魔破天荒)!" 팟! 백두린의 신형이 생사교를 박차며 섬전같이 도약을 일으켰다. 석양 허공중에 숨을 끊고 있는 석양,번 쩍! 검(劍)이 빛을 뿌렸다. 번 쩍! 도(刀)가 빛을 뿌렸다. 십자(十字), 눈부신 빛은 허공중에 십자(十字)를 그리고 화려한 격돌을일으켰다. 아아! 베었다. 석양이 베어졌다. 십자형(十字形)으로 베어졌다. 그리고, 석양은 숨을 토했다. 장강은 소리치며 생사교 밑을 굽이쳐 흘렀다. 빛은 사라지고…… 자리, 그들은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남(南)과 북(北)의 자리, 사(死)와 생(生)의 자리, 서로 바꾸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백무린은 북쪽을 보고 아찰극은 남쪽을 보았다. 문득 아찰극이 말문을 열었다. "중원……!" 그리곤 말이 없었다. 빙글…… 백무린은 신형을 돌렸다. 그의 눈에 아찰극의 뒷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대초원(大草原)!' 아! 백무린은 아찰극의 뒷모습에서 끝닿은 데 없이 전개된 북방(北方)의 대초원을 보았다. "……!" 아찰극은 천천히 백무린을 향해 신형을 돌렸다. "백공! 나는 중원을 보았다." "……!" 아찰극의 눈 깊은 곳에서 굽이쳐 흐르는 장강이 보였다. "내가 본 중원은…… 내가 없어도 좋은 중원이오." 그의 가슴, 한 치 가량 검흔(劍痕)이 그어져 있었다. 옷깃만 베어졌을 뿐 피부는 상하지 않았다. 백무린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본 북방(北方) 역시 내가 없어도 좋은 곳이었소." 그의 왼쪽 소맷자락, 한 치 가량 도흔이 보이고 있었다. "……!" 그들은 한동안 시선을 주고 받았다. 이어 그들은 일제히 말문을 열었다. "백공! 그대는 중원의 태양(太陽)이오." "태자……! 당신은 대초원(大草原)의 빛(光)이오." 아아! 그들은 사내였다. 그들은 진정 영웅(英雄)이었다. 술병, 아직도 마실 술이 남았는가? 아찰극은 술병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허나 술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순, 백무린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술병, 바로 그것이었다. 술병을 아찰극에서 건네주었다. "……!" 아찰극은 술병을 받아 마셨다. '이것은 열화주(熱火酒)……' 열화주, 그것은 북방인(北方人)이면 누구나 즐겨 마시는 북방 고유의 술이 아닌가! "백공……!" 주먹으로 입술을 훔치며 아찰극은 백무린에게 시선을 주었다. 백무린은 술병을 받으며 말문을 열었다. "태자, 이 열화주는 중원의 술 죽엽청과 같소이다." "……!" "북방의 혼이 깃들어 있고… 북방의 숨결이 담겨 있는… 태자의 입에 딱맞는 술일 것이오." "보시오. 흐르는 장강을……" 백무린은 장강에 시선을 주었다. "중원엔…… 장강이 있어야만 하고……" 아찰극,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방엔 대초원이 있겠지……?" 아찰극 그는 볼 수 있었다. 대초원(大草原)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가? 광활한 대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두두두두……! 말(馬)! 갈색의 갈기털을 휘날리며 힘찬 근육의 박동으로 평원을 질주하는 야생마(野生馬)…… 아아! 그곳이 바로 대초원이 아닌가! 술병은 비었다. 죽엽청이 담긴 술병도…… 열화주가 담긴 술병도…… 두 젊은 영웅은 비웠다. "백공……!" "태자……!" 그들은 포옹했다. 마음과 마음이 뒤엉켜 소리치는 사내들의 포옹, 그것은 차라리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백공! 그대가 있는 한…… 중원은 영원한 중원이오." "태자, 북방은 넓소이다. 모두 태자의 것이오." "백공! 내 누이 아란…… 잘 부탁하오." "형님, 란매는 대초원의 여인이오. 또한 나의 여인이오." "백공……!" "형님……!" 말(馬)! 두두두두둑……! 한 필의 말(馬)이 남쪽으로부터 질주해다. 갈색의 말(馬), 네 발굽만이 유난히 순백의 털을 지닌 바로 북방특산(北方特産)의 천리백총(千里白총)이 아닌가! 마상(馬上), 표표히 옷자락을 나부끼고 비단결같은 흑발을 햇살같이 뿌리는 여인(女人)이 있었다. '소란……!' 아찰극은 내심 목 뜨거운 외침을 터뜨렸다. 아! 말을 달리고 있는 여인은 바로 칠기예전 중 병기전(兵技殿)의 후예인 영소란이 아닌가! 두두두둑…… 말은 날 듯이 생사교 위로 힘찬 발굽을 디밀었다. 순간, "소란!" 아찰극의 신형이 도약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의 신형은 마상(馬上)으로 날아 내렸다. "대가!" 영소란의 떨리는 음성이 아찰극의 품에 묻혀 버렸다. 이히히히힝! 말(馬), 천리백총은 날개를 얻은 듯 갈기를 폭풍같이 휘날리며 질주를 계속했다. "하하핫…… 백공(白公)! 이만 작별이오!" 아찰극의 대소가 터졌다. 그리고, 천리백총 북방(北方)을 향해 바람같이 치달렸다. "……!" 백무린, 그는 석양을 꿰뚫고 질주하는 천리백총을 언제까지나 지켜보았다. 생사교, 그곳엔 이제 그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조금씩 석양이 스러지기 시작했다. 그 석양 속에서 백무린은 볼 수 있었다. 끝없이 넓은 대초원 지축을 울리며 호탕한 대소와 함께 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초원의 영웅 아찰극의 모습을… '대초원… 바로 그곳이 당신의 고향이오. 영원히… 평화롭게 가꾸어 갈 당신의 모든 것이오……' 그는 언제까지고 석양 저편 북방을 지켜보았다. 헌데 문득, 손(手)! 그의 등 뒤에서부터 그를 안아드는 한 쌍 섬세한 옥수(玉手)가 있었다. 품, 그의 등 뒤에서부터 부드럽고 포근히 안겨드는 품이 있었다. 여인의 손(手)과 품이다. "대가……!" 백무린은 그 여인이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란매!" 아아! 등 뒤에서 그를 안고 있는 여인은 바로 아찰극의 누이인 벽월공주 아란 바로 그녀였다. 아란, 그녀는 백무린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대가…… 당신을…… 사랑해요." 느낄 수 있다. 백무린은 등 뒤로부터 전신으로 전해드는 그녀의 터질 듯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란매… 그대로 영원히… 내 곁에 있게 될 것이오." 생사교(生死橋), 석양이 스러지고 있는 생사교, 흐르는 장강을 굽어보고 있는 생사교, 떠날 사람이 떠나고…… 돌아올 사람이 돌아오고…… 생사교! 그저 나무(木)로 된 다리(橋)였다. 후기<後記> 화천장(花天莊)… 또하나의… 소화(小花)… 종(終)! 사천장(四川省), 학강현(鶴江縣). 석년(蓆年)의 화천장(花天莊)이 서 있던 곳. 그곳에 언제 세워졌는지 모를 한 채의 장원이 우뚝 솟아 있었다. <화천장> 온갖 기화이초로 뒤덮여 있는 거대한 전각(殿閣). 아아! 이름 그대로 절대무제 백운천이 세웠던 그 옛날의 화천장이 아닌가! 화천장의 모습 또한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비(雨), 이슬비가 촉촉히 화천장의 화원을 적시고 있었다. 활짝 만개한 목련화의 꽃잎에 비가 이슬되어 맺히다 흘러내린다. 화원(花園), 그곳에는 무수한 꽃들이 초지(草地)를 메우고 있었다. 이백여 장 방원의 화원은 만화천생의 꽃들이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모란(牡丹), 작약, 목련화 등등…… 현세에 존재하는 꽃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는 듯했다. 헌데, 이 봄비가 내리는 화원 한가운데에 한 소동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십여 세 가량 되었을까……? 소동은 지면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매만지고 있었다. 새하얀 백의(白衣), 소동의 용모는 한 송이 작은 꽃을 연상케 했다. 상아처럼 투명한 피부, 영롱한 눈망울, 아아……! 소화(小花) 백무린, 바로 그의 어린시절 모습이 아닌가! 백무린의 어린시절 모습과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 용모의 이 소동, 누구란 말인가? 이때, 소동의 머리 위로 돌연 무더기 흑운(黑雲)이 몰려 들었다. 동시에, 부웅! 붕! 파다닥! 소동의 머리 위에서 기음이 터져 나왔다. "……!" 소동이 고개를 들어 머리 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귀여운 얼굴에 일순 반가워 하는 빛이 스쳤다. 허나, 소동은 짐짓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휴! 너희들 또 싸우는구나. 너희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려 드니……" 아! 소동의 머리 위에 검은 구름처럼 보이던 물체들, 그것은 바로 수 많은 벌떼와 나비들이었던 것이다. 바로 만독흑봉왕과 봉황칠채접이 수하들을 이끌고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호호호…… 그놈들이 또 싸우고 있느냐?" 어디선가 청아한 옥음(玉音)이 들려오며 한 명의 중년미부가 화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아(武兒)야! 이제 그만하고 어서 몸을 씻은 후 객청으로 가렴. 아버님이 찾고 계시단다." "어…… 어머님!" 소동은 그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환한 미소를 띄우고 서 있는 중년미부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헌데, 아름답기 이를 데 없고 고귀한 풍도가 풍기고 있는 중년미부, 그녀는 바로 주설평 경국공주 주설평이 아닌가! 그러했는데. 좀더 완숙하고 풍만한 몸매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녀는 분명 경국공주 주설평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훗! 무아야, 너 얼굴이며 손에 흙이 잔뜩 묻었구나." 주설평이 새삼 소동의 모습을 살피고 고소를 머금었다. "치이! 괜찮아." 소동은 자신의 손을 가슴에 닦으며 주설평의 품에 안겨왔다. 이때, "평매! 어서 무아를 데려오지 않고 무엇하시오." 화원의 끝에 있는 객청쪽에서 조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객청, 그곳에 백의장삼을 걸친 중년문사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헌데, 아……! 백무린이 아닌가, 그렇다! 중년문사는 바로 백무린이었고, 지금 주설평의 가슴에 안겨 있는 소동은 그와 주설평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던 것이다. 백천무! 이것이 소동의 이름이었다. "엄마! 아버님이 왜 나를 찾는 거야? 나는 아직 난초(蘭草)를 다 심지 못했단 말야." 백천무가 깜찍한 눈망울을 굴렸다. "호호호…… 무아야! 너는 꽃이 그렇게도 좋으냐?" "응!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꽃을 가꾸며 살고 싶어." 백천무의 대답에 주설평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호호호! 너는 어쩌면 그렇게 네 아버님을 닮았느냐?" "정말! 아버님이 그렇게 꽃을 좋아하셨어?" "호호호…… 그럼." 주설평이 웃으며 백천무를 꼭 끌어안았다. 이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무린의 눈에 감회의 빛이 일렁였다. "흠…… 그랬었지. 나도 무아처럼 꽃을 좋아했었지." 그의 눈에 회의의 빛이 언뜻 스치고 있었다. '이제는… 내 손에 장강(長江)만큼이나 많은 피가 스쳤지만……' 그가 감회에 젖어 있을 때, 돌연, 창노한 웃음이 울려퍼졌다. "허허허…… 무아야, 이 할아비가 왔단다." 동시에, 백무린의 뒤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대한 체구, 단전까지 늘어진 긴 검은 수염, 아! 바로 천마웅 뇌후가 아닌가? "어! 검은 수염 할아버지!" 순간, 천마웅 뇌후의 모습을 발견한 백천무가 주설평의 품을 빠져나오며 쪼르르 천마웅 뇌후에게 달려갔다. "허허허……" 천마웅 뇌후가 백천무를 번쩍 안아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어쩌면 이렇게 린아의 어릴적 모습과 똑같으냐?" 천마웅 뇌후가 매우 기쁜 듯 연신 대소를 터뜨렸다. "린아……? 린아가 누군데?" 백천무가 앙증맞은 눈을 들어 천마웅 뇌후를 올려다 보았다. "허허허…… 이놈 무아야! 네 아버님의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천마웅 뇌후가 짐짓 눈을 부라렸다. "아…… 아버님 이름이 린아였지……" 백천무가 천진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때, 백무린이 천마웅 뇌후를 바라보았다. "할아버님, 웬일로 이 먼곳까지……?" "허허허… 글쎄 이놈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천마웅 뇌후는 여전히 백천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이야? 나도 검은 수염 할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백천무가 기뻐하며 천마웅 뇌후의 목에 매달렸다. 백무린은 그 광경에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문득, 천마웅 뇌후가 정색했다. "자네는…… 약속을 어기면 안 되네." "응? 아버님이 무슨 약속을 했는데?" 백천무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백무린이 백천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아야, 너는 이제 할아버님을 따라가야 한단다." "정말?" 백천무가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허나 그의 얼굴이 이내 굳어졌다.. "헌데 아버님과 어머님도 함께 가는 거야?" 백천무가 순식간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천마웅 뇌후가 대소를 터뜨렸다. "허허허…… 무아가 이렇게 나오니 할 수 없이 모두 천마도에 가야 하겠구나." "……" 백무린은 천마웅 뇌후의 의도를 짐작하고 미소를 머금었다. "아버님도 갈거지?" 백천무가 다짐받듯 물음을 던졌다. 백무린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의 내심은 알 수 없는 비애가 흐르고 있었다. '음… 결국 무아도 무인(武人)이 되어야할 운명이구나. 너의 소박한 꿈도 이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니……' 백무린의 얼굴에 우수가 내리자 주설평이 살며시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대가… 걱정하지 마세요. 무아 또한 당신의 길을 걷게 될 것이예요… 그의 작고… 소박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결국 당신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음… 나의 할아버님도 내가 무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지, 나 또한 무아가 무인이 길을 걷지 않기를 원했지만… 어쩔 수 없구료." "……!" "허나 만약 무아가 무공을 익힌다면… 나는 전력을 다해 무아에게 나의 모든 것을 물려 줄 것이오." 주설평이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어서 들어가세요. 모두들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백무린이 천천히 객청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가 사라진 화원, 그 위로…… 여전히 봄비가 흩어지고 있었다. - 완결 - |
첫댓글 그동안 잘 보았습니다. 감사.
잼 납니다 그동안 수고에 김사드립니다
즐독 ㄳ
잘보고갑니다 감사.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두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