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 / Daisy Kim
아침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려온 여름은 고장 난 시간 쪽으로 자주 쓰러졌다 장애물은 꿈꾸기를 멈춰버린 이상기후 같아 넘는 자리마다 떨어져 멍든 낙과들 바닥이 높이뛰기를 주저하면 둥둥둥 무거워지는 구름들 개미가 기어가는 방향으로 여름 한철의 땡볕이 수평으로 눕는다 오래도록 외우지 못한 날씨는 잠시 머물다 떠나버린 간격과 간격을 이어주던 소나기 같아 태양의 보폭이 시간의 뒷모습을 밀며 달려가는 동안 건기의 여름은 푸른 멍 너머의 결승선을 향하고 다급해진 공중은 깨진 무릎을 넘어야만 착지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자세를 바꾸고 신발끈을 묶는다 장애물이라고 말하는 순간 장애물이 사라질 것을 믿으며 실패한 자리에서 의심하는 발목을 뛰어넘는다 하나의 장애물을 넘으면 다음 장애물이 궁금해진다
- 시집 『올리브 숲』 (미네르바, 2024.02)
* Daisy Kim 시인 2020년 <미네르바> 등단
***************************************************************************************************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에서 자랐고,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는 내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저는 지금의 삶에 완벽히 만족하지 않지만, 그래도 한반도의 북쪽이 아니라 남쪽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할 정도입니다. 물론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어서요, 하와이와 같은 태평양, 어느 섬에서의 삶도 꿈꿔 봅니다. 실제로 도전해 볼 용기는 없지만. 오늘 소개한 ‘데이지 김’ 시인은 하와이에 살고 계십니다. ‘하와이’라는 말만 들어도 부럽습니다. 제가 가본 하와이는 ‘부곡 하와이’ 뿐인데요. 시인은 너무 멀리 계셔서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알고 교류했던 시인입니다.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 미네르바 시선으로 출간되어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오늘 소개할 시를 읽으면서 ‘시시포스’를 떠올렸습니다.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힘들게, 힘들게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린 돌, 그러나 이 돌은 산 정상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바위는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복적인 노동, 시시포스의 노동을 보며, 인간이 가진 필연적인 노동의 굴레와 닮았다고 생각한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노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노동 그 자체에 함몰되어 버린다면, 삶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뫼비우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뫼비우스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밖에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노동 그 자체를 위하여 살아가지 않습니다. 카뮈는 이 노동을 ‘부조리’라고 얘기했는데요, 모든 문제에는 해답이 있듯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이 그 부조리 안에서 적극적으로 ‘삶의 가치’를 찾으려 노력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삶 가운데서 노동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찾고, 그것을 내 삶의 중심축으로 옮긴다면, 삶 속에서 부조리를 극복하고 있는 나와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볼까요. 고개를 넘어가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길을 잘 알고 다른 한 사람은 길을 모르는 초행입니다. 길을 모르는 사람이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언제쯤 저 고개를 다 넘어갈 수 있냐고요. 길을 잘 아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 고개만 넘으면 된다고요. 그러나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저 고개 뒤에도 여러 개의 고개가 더 있었으니까요. 그가 저 고개만 넘으면 된다고 얘기한 것은 ‘동기부여’를 위함 이었습니다. ‘힘을 내자’는 비유로 얘기한 것이죠.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수많은 장애물을 넘고 넘어, 오늘에 도착한 사람입니다. ‘내가 저 장애물을 어떻게 넘었지’라고 놀랄 정도의 장애물도 있었고, 넘고 넘다가 지쳐 쓰러졌던 장애물도 있었습니다. 저 장애물을 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었던 장애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장애물인데 나를 위기로 몰고 간 장애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같은 장애물이지만, 장애물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사람이 있지만,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계기로 만드는 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시포스의 바위를 굴리고 있지만, 그 돌을 굴리는 자세가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데이지 김의 시 「허들」에선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의 장애물을 넘으면 다음 장애물이 궁금해진다’라고요.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 자세가 이러한 것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마주하려는 노력일 테고요. 열심히 산다고 사람들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열심만으로 성공한다면,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 앞에 놓인 장애물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면, 삶의 후회가 더 적을 것이라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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