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의 후예들 ① - 전주내과의원 원장 이동호 거사
【전 문】 선종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연원이라 할 수 있는 『유마경』을 보면, 부처님의 10대 제자는 물론 여러 보살들이 유마 거사(維摩居士)와 문답하면서 쩔쩔 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유마 거사의 실존 여부를 떠나, 인도에서 이미 비구, 비구니, 우바새(남 신도), 우바이(여 신도)가 동등한 사부대중으로 인정받고, 일부 거사들 가운데서는 탁월한 안목과 법력을 갖춘 인물들이 많았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불교사에서도 유명한 거사가 종종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인도에 유마 거사가 있었다면 중국에는 방거사(龐居士), 한국에는 부설거사(浮雪居士)가 3대 거사로 유명하다.
딸 영조를 비롯해 가족 모두 선의 안목을 갖추도록 한 방 거사는 당나라 때 활동한 인물로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의 법을 이었다고 전해진다. 한국에서는 신라시대 변산의 월명암(月明庵)에서 경론을 연구하며 수도한 부설거사가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부설거사는 이른바 ‘패밀리 도통’으로, 부인 묘화(妙花), 아들 등운(登雲), 딸 월명(月明)이 모두 도통했다.
고려시대에는 이자현(李資玄) 거사가 유명하다. 높은 벼슬자리에 있다가 부인이 죽자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춘천의 청평사(淸平寺)로 들어가서 ‘능엄경(楞嚴經)’의 이근원통(耳根圓通·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을 깊이 연구했다. 조선시대에는 추사 김정희(金正喜)를 꼽을 수 있다. 외형적으론 명문가에서 태어난 유학자였지만 그는 내면적으로 불교에 심취했다. 주머니에 ‘금강경’을 휴대하고 다녔으며 초의(草衣)선사를 비롯한 당대의 고승들과도 교류가 깊었다.
현대에도 백봉 김기추(1908~1985) 거사를 비롯한 여러 거사들이 재가선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유마 거사의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도 수행과 보살행에 매진하는 거사들을 만나 재가 수행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아프다’는 대승의 메시지를 남긴 유마 거사의 정신을 오롯이 이어가고 있는 거사가 있었다. 전주 이동호내과의원 원장으로서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한편, 대한태극권협회 회장으로서 국민들의 심신(心身) 건강을 위해 촌음을 아끼고 있는 월담(月潭) 이동호(李東豪ㆍ68) 거사.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에 위치한 내과의원 원장실에서 만난 월담 거사는 오랜 수행에서 우러나오는 선기(禪機)를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서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병원 진료실과 태극권 수련실, 병원내에 설립한 한국동양학연구원을 월담 거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특히 불교, 유교, 도교 등 동양학 관련 5만권의 장서를 갖춘 연구원의 규모에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동국대 등 종립대학 어디에서도 갖추지 못한 방대한 규모였다. ‘고려대장경’ ‘한글대장경’ ‘중국만속대장경’ ‘일본국역대장경’ ‘일본신수대장경’ ‘일본신참대장경’ ‘일본남전대장경’ ‘인도프라트리카대장경’ ‘티베트대장경북경판’ ‘티베트대장경나사판’ ‘미얀마대장경’ ‘세이론스리랑카대장경’ ‘베트남대장경’ ‘몽골대장경’ ‘캄보디아대장경’ ‘영국대장경’ ‘러시아장경’ 등 대장경은 세계에서 유일의 장서를 갖추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이러한 도서관을 갖춘다는 것은 초인적인 노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로만 여겨졌다. 게다가 월담 거사가 맡은 공식직함은 국민생활체육전국무술연합회 회장, 인상학원ㆍ인상무술고등학교 이사장, 원각정사 선원장, 전북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한국차문화협회 전북지부 고문 등 10여개가 넘는다. 진료 시간 틈틈이 인터뷰를 하는데도, 대화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어졌다. 내방한 손님을 맞고 전화받고, 회의하고, 진료하는 그 바쁜 시간들이 무심(無心)으로 이어지면서도 활발발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아무 것도 한 것 같지 않다”는 월담 거사의 말을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 졌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일없이 한가한[無事閑] 도인’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듯했다.
19살 때, 아름다운 동네 누나를 짝사랑하면서 그 열병으로 도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월담 거사. 서양철학과, 기독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를 탐구하다가 한계를 느끼다 비로소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전남대 의대본과 1학년에 재학당시 광주 동광사(東光寺)에서 현공(玄空) 윤주일(尹柱逸·1895∼1969) 법사를 만나면서 부터였다.
“현공 법사님을 알게 된 것은 하숙집 친구 때문이였지요. 현공 법사님이 법문할 때면, 400명이 꽉 들어찰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그 분을 처음 본 순간 ‘현실 속에도 도인이 살아 계시구나’하고 확신했습니다. 유리 쟁반에 옥구슬 구르듯한 그 분의 법문은 당대의 설법제일이란 별칭에 걸맞게 활달한 기운이 철철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용운, 백용성 스님의 감화를 받고 수행해 온 노 법사의 탁월한 법문은 프린트물로 모아져 14년만에 『불교대성전』으로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현공 법사를 만나면서 월담 거사는 비로소 대신심, 대의심, 대분심이란 수행의 3요소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대신심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 그것을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이 얻었다는 믿음,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절대 확신을 말합니다. 대분심이란 불ㆍ보살은 항하사 수처럼 많건만, 이대로 중생으로 죽으면 얼마나 억울한가. 망아(妄我), 소아(小我)로 살다 죽어간다면 미생물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이렇게 분한 마음을 내어 수행에 매진하겠다는 각입니다. 대의심(의정)이란 무엇인가? 망상과 집착을 온통 태워버리는 화두 의심이 들면, 의정이 독로되는데, 이렇게 되면 성성적적한 화두는 눈만 뜨면 저절로 들어서 있게 됩니다. 잠잘 때도 마찬가지인데, 깊이 잠든 가운데도 깨어 있게 되어 오매일여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월담 거사는 매일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도 의정(어떤 화두인지는 일부러 언급을 생략함)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깊은 마음이 화두 의심이라면, 옅은 마음은 시험을 풀고 있는 것이다고 한다. 그래서 화두가 잡혔을 때는 학교 갈 때 이마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등하교 길에 전봇대나 장애물에 부딪히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두가 확실하게 들어서면 1주일이면 깨친다고 용성, 만공 스님은 말한 적이 있는데, 나도 이 말을 믿습니다. 늦어도 1~2달이면 해결이 된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 1년이 넘게 걸린다면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진다고 봐요.”
1958년 8월 선정삼매 중에서 결국 화두는 풀렸다. 그때를 월담 거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홀연히 풀렸다. 모든 의심이 다 사라졌다. 무엇이든 보고 들으면 곧 이해되었다. 삼라만상이 나와 부합했다.”
이때부터 월담 거사는 제방의 선지식을 참방하기 시작했다. 전강, 구산, 고암, 혜안, 청담, 서옹, 성철, 월산, 송담, 청화, 묵담, 일타, 법전 스님 등 당대의 선사들을 뵙고 가르침을 받았다. 63년에는 순천불교선우회를 창림, 이듬해는 남원불교선우회를 창립해 지도했다. 67년에는 한국대학생불교단체 지도교수회를 창립발기했으며, 75년에는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월담 거사는 39세 때, 간경삼매 중에 또 한번 돈오체험을 하게 된다. 어떤 불자가 병원으로 『보조어록(普照語錄)』을 가져 왔는데, 이전에 많이 본 책이지만 장정을 고급스럽게 꾸민 판본이라 다시 정독한 것. 책을 읽던 중 ‘성재하처(性在何處) 성재작용(性在作用)’이라는 대목에서 눈이 번쩍 뛰었다. ‘성품은 어느 곳에 있는가? 그 작용에 있다’는 뜻의 이 문구를 읽는 순간 머릿속의 의심과 번뇌가 모두 사라져 버리는 체험을 하였다. ‘마음의 본체를 따로 찾으려고 하지 말라,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들과 번뇌망상 속에 본체가 있다’니, 그동안 은연중에 본체가 현실 밖, 일상생활 밖의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했던 착각을 송두리째 부숴버리는 문구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대목을 읽고 나서 모든 것을 놓을 수 있었다. 어떤 할 일이 생각나더라도 마음이 달려가지 않았다. 하는 것과 안하는 것에 걸림이 없어졌다.
그러나 ‘도고마성(道高魔盛: 도가 높아지면 덩달아서 마장도 커진다)’이라 했던가. 이 체험 후 하루건너씩 곧 죽을 환자들이 병원에 들이닥치는 등 엄청난 마장이 들이닥쳤다. 경계가 크게 닥쳐오자 마음 한구석에서 미세한 감정의 흐름이 일었다. 다시 1년이 흐르자 그 미세한 감정의 흐름이 좀더 확대됐다. 마음의 균열이 더 벌어졌던 것이다.
그때서야 그는 보임(保任)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옛날 선지식들이 돈오한 후 20∼30년 동안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보임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배경에는 다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보임이란 새싹이 돋아난 상태의 깨달음을 굳건하게 다지는 보강과정이다. 밥이 끓은 후 뜸을 들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화엄에서 말하는 ‘사사무애(事事無碍)’, 즉 일상생활에서 일을 처리할 때마다 일과 일 사이에 걸림이 없으면 보임이 제대로 된 것이고, 걸림이 있으면 안 된 것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행은 울컥 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는 안됩니다. 운동을 할 때도 반드시 준비운동이 필요하듯이 법에 맞는 예비단계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과정에서 가족이나 친구로부터의 인마(人魔), 잠잘 때 들이닥치는 천마(天魔)를 이겨낼 힘이 약합니다. 자칫하면 수행마저 포기할 수도 있죠. 수행의 단계가 깊어지면 하늘의 천녀라든지, 마왕으로부터의 유혹이나 공포가 들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팔상성도상(八相聖圖相)에 나오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이 이것입니다. 외경에 무심한 공부가 깊어지게 되면 반드시, 쾌락과 공포라는 시험단계가 나타나는데, 그런 경계에 빠지거나 두려움을 느낀다면 평상심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어떤 역경이나 환경에도 동요없이 순일하게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58년 화두가 타파되며 법안(法眼)이 열린 것이 이치에 걸림이 없는 ‘이무애(理無碍)’에 해당된다면, 78년의 개오(開悟)는 사무애(事無碍)에 해당된다는 게 월담 거사의 견해다. 즉 육조 스님이 깨달은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도리에 계합되어, 일체의 사물에 걸림없이 자연스럽게 응하게 되는 경지이다.
그렇다면 견성만 하면 무한한 우주의 자연현상과 소우주의 음양오행의 실체를 세세하게 알 수 있는가?
“깨달았다고 해서 세계와 인체의 비밀과 같은 기세간(器世間 :국토)적인 자연과학적 지식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견법성(見法性), 견자성(見自性)하여 견성오도 함으로써 생사대사를 해탈해도 중생 삶속의 지식과 지혜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심조만유(心造萬有)라 하지만, 현상계의 이치를 세밀하게 알기 위해서는 신통력과 같은 능력이 자연스럽게 구족되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신통만 나오면 외도라고 치부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과 10대 제자가 외도라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산, 사명 대사가 알게 모르게 신통을 닦은 것도 중생 제도를 위한 것입니다. 목련존자가 신족통을 얻고, 아나율이 천안통을 얻은 것은 각자의 인연과 근기에 따라 신통을 얻게 된 것입니다. 법화경 25품이 관음경으로 성립되었지만, 여기서 관음보살님은 33응신을 나투어 현실 속의 중생구제에 나서겠다는 발원을 하고 있습니다. 병이 나면 약을 먹어야 하고, 수학문제를 못풀면 배워야 합니다. 수행자가 견성한 후에도 보임공부를 통해 사무애를 닦아 대도사가 되는 과정에 숙명통을 비롯한 신통을 갖추게 되고 비로소 부처님과 같은 일체지(一切智)가 증득되는 것입니다.”
월담 거사는 1990년대부터 태극권 보급에 나서, 불교계 보다는 생활체육계에서 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는 예민한 문제를 물었다.
“태극권은 마음 밭을 갈아서 잡초를 없애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워킹 메디테이션( Walking Meditation: 행선), 무빙 메디테이션Moving Meditation: 동선)이라고 부릅니니다. 정신수양은 물론 오장육부를 조화롭게 하는 완전한 심신수련이지요. 면역력과 심폐기능을 강화하고 관절염과 류마티스를 예방하거나 치유ㆍ촉진하는 등 의학적으로도 탁월한 임상효과를 자랑합니다. 특히 양가 태극권은 몸과 마음을 느긋하고 고요하게 하고 잡념이 사라지게 하며, 성품을 부드럽고 포용력 있게 하는 장점이 있어서 보급에 나선 것입니다.”
월담 거사의 태극권 보급은 요익중생(饒益衆生)을 위한 길이다. 보시행을 통해 사무량심을 닦어 사무애를 통해 해탈하는 길이기도 하다. 사람이 아프면 공부라는 것 자체에 다가설 수 없다. 감기만 걸려도 꼼짝 못하는 게 사람이다. 병마에 대한 자연치유와 예방으로 수행의 길로 안내하려는 것이 월담 거사의 뜻이었다. 거사의 말에 따르면 투망으로 고기를 잡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준비된 수행자와 지도자가 부재한 오늘의 세태에서, 월담 거사는 더욱 깊고 넒은 지혜로 남모르게 전법에 나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