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황금과 물과 숲의 도시였다.
신라는 당시 최강의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세계 4대 도시인 서라벌을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천년동안 단 한번도 수도를 옮기지 않았다!"
경주로 가기 위해 통도사휴게소 상행 SK·LPG충전소 간이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우리동네 뒷산 영축산을 보니 멋진 풍경화를 그려놓는다.
역시 성성한 기운이 있는 산이 틀림없다.
경주야경투어 대상지는 당연히 여러 번 가본 곳들이다.
올가을에도 탐방할 4곳의 일정을 이미 짜 두었다.
하지만 그때는 5060몰랐을 때이니 또 같이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절묘하게 지난밤 비가 내렸다.
속으로 웃고 있었다. 으흐흐흐
몇 년 만에 비 젖은 그 석불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첨성대도 비 맞으면 더 멋지다.
야외의 석조문화재는 비 맞은 다음날 보는 게 최고다.
물기 젖은 1000년 전 작품은 모습도 향기도 다르다.
햇볕이 너무 강하면 반사되어 조각의 선이 선명하질 않다.
1. 미륵곡석조여래좌상
솔뫼대장님에게 보고하고 버스에 내리지 마자 비 맞은 석불을 보러 뛰었다.
1시간 만에 보고 오라하니 바쁘다.
한옥카페가 멋지다.
기특하게 경주를 대표하는 황금치미를 장식해놓았다.
차 한 잔은 시간이 없어서 통과!!
바빠도 길가에 보이는 꽃은 한 컷!
나를 오래 기다렸을지도 모른다.ㅎ
3가지 종류의 꽃이 한꺼번에....
석불이 있는 절 입구는 오르막길 ㅠㅠㅠ
열심히 올라간다.
이럴 땐 그래도 군대생활 야무지게 한 게 도움이 된다.
지금은 시원찮지만 수색대 분대장으로 무장공비 토벌도 했었고
4명의 전우를 국립묘지로 보낸 아픔도 있다.
해마다 살아남은 자의 도리를 하기 위해 그놈들 제사를 지낸다.
다음 달 시월의 마지막 밤이 제삿날이다.
엉뚱한 데로 갔다
아무튼 이 절은 보리사란 절로 비구니스님이 있어 그런지 작은 절이 아주 정갈하다.
이번이 3번째 온 셈이다.
석조불상이 보인다.
이 불상은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36)”이다.
경주 남산지역 미남불상 4개 중의 하나다.
3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석굴암 불상과 같은 시기의 불상으로 본다.
청와대 개방되면서 미남불상으로 소문난 불상도 고향은 경주다.
필가 직접 청와대 가 봤는데 이 불상에 비하면 미남 아니더라.ㅎ
유일신의 종교는 모델이 하나뿐이지만
불교의 부처는 다양한 모델이 있다.
누구나 불성이 있고, 부처가 될 수 있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 모델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 모습의 불상으로 표현되었다.
신라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이런 모습이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역시 물에 스며든 불상은 느낌이 다르다.
대좌의 연꽃도 선명하다.
밝은 날에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면 다름을 느낀다.
아래 사진은 2017.9.1.에 찍은 것이다.
앞을 보니 조금 있다가 볼 첨성대를 만든 선덕여왕 능이 있는
낭산이 보인다.
이제 부리나케 천년 숲으로 가야한다.
15분 정도 시간 여유가 있다.
가다가 문득 문에 띈 게 있다.
망덕사지다.
저 숲이 망덕사가 있었던 절터로 당나라 사신을 속이기 위해 지은
절인데 이야기가 길어서 생략한다.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을!!!^*^
그리고 박제상과 부인의 이야기가 있는 ‘장사벌지지’를 생각했다.
만고의 충신 박제상이야기는 대부분 알 것이다.
예전에 이 물길은 동해로 가는 뱃길이 있었다.
증거는 지금 이 동네 입구에 비석이다.
갯마을이었던 곳이다.
박제상이 일본으로 왕자를 구하기 위해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부인이 이곳까지 뛰어왔다.
그러나 배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이 모래밭에서 통곡하다가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그 처절한 이별의 현장이다.
그후 박제상이 일본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인은 죽어 새가 되어 날아갔다.
부인이 새가 되어 숨은 울주의 은을암
박제상의 충절을 기리는 양산의 효충사
위 이야기 지점을 지도에서 한눈에 보자!
3. 경북천년숲 정원
이곳은 새싹 올라오는 4월이나 10월말∼11월초 단풍들 때 오면 좋다.
이제 시내로 가서 대릉원, 첨성대, 월정교, 동궁과 월지 야경을...
4. 대릉원
경주김씨들은 대릉원 들어가서 이곳 미추왕릉을 참배해야한다.
신라가 박,석,김씨가 왕을 했는데 김씨가 왕이 된 최초의인물이니까.
그래서 미추왕릉을 직선으로 보이는 곳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지금의 황남동 숭혜전이다.
그리고 봄에 최고 인기 있는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인증샷의 명소 백목련!
올 봄에 찍은 사진이다.
젊은이들이 줄을 섰다.
너무나 유명한 천마총!
본래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위해 작은 왕릉인 천마총을 ‘연습용 발굴’을 했는데 대박을 친 것이다.
천마도가 발견된 곳이라서 천마총이다.
이 천마도(국보 제207호)는 아래 사진의 말다래의 그림이다.
백화수 즉 자작나무에 그린 그림이다.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또 금관이 발견되었다.
신라는 전 세계 발견 된 10개의 금관 중 6개를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몇 개나 더 묻혀있는지 알 수 없다.
6개의 금관들!
5.첨성대
첨성대는 앞서 설명한 것으로 대체!
다만 저 창으로 들어갈 때 사다리를 이용했다.
그리고 창에서 꼭대기까지도 내부에 두 개의 사다리를 설치했다.
높이는 27개 단 - 27대 선덕여왕의 뜻
창 아래 12개 단. 창 위 12개 단
12개월과 24절기 뜻한다고 함!
창 아래는 흙과 잡석으로 채워져 있음.
꼭대기의 정자석아 아래의 튀어나온 장대석 그리고 창 아래 채우진 흙과 잡석이 지진을 막는 내진설계다.
꼭대기 정자석에 앉아서 천체를 관측했다.
1300년을 버텨낸 대단한 건축물이요, 문화재다.
그러고 보면 건축물에도 장수 팔자가 따로 있는지 모른다??
핑크뮬리가 아직 덜 피어서 사진 찍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10월에 들어가야 할 듯하다.
그래도 난 비에 젖은 첨성대를 잘 찍었다.ㅎ
작년 10.15 찍은 사진이다.
6. 월정교(月精橋)
신라 경덕왕 19년(景德王, 760)에 일정교와 같이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정교는 지금 경주박물관 쪽이다.
신라 최고의 건축공법이 현대 건축기술자들을 놀라게 한다.
약 500억원 들여 복원했다
다리길이 63m, 4개의 교각(교각사이 13m), 왕복 4차선
그런데 복원을 잘못했다.
그래서 복원하고도 말이 많다.
본래 이 다리는 홍예교였다.
무지개처럼 생긴 다리를 말한다.
기가차게 복원한 다리는 중국의 옛 다리를 모방했다고 한다.
이런 얼빠진!~ㅉㅉㅉ
석자자 4마리
다리 양 끝에 2마리씩, 4마리다.
발견된 것은 목이 떨어진 한 마리뿐이었다.
석사자는 훔쳐가는 이들이 많았다.
다보탑에도 3마리는 도난당해서 한 마리뿐이다.
석주는 일부분만 발견되어 새 부재에 이어서 세웠다.
잘 살펴 본 사람은 색깔이 다른 것을 봤을 것이다.
사자는 용맹과 지혜를 상징한다.
다리를 보호하는 광화문의 해태상과 같은 것이다.
이 사자석주는 인도의 아소카석주를 닮았다.
아소카석주는 인도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다.
아래 사진은 인도여행 때 직접 찍은 것이다.
다음에 경남방에서 여행가는 영광에 불교도래지에 가면 이 석주를 볼 수 있다.
월정교 아래 이 다리 이름은 옛 기록에 ‘유교(楡橋)’라 기록되어 있다.
즉 ‘느릅나무 다리’란 뜻이다.
나무로 만든 그 시절 다리가 지금 콘크리트 다리가 된 것이다.
바로 이 다리에서 원효대사가 물에 빠지고 요석공주가 건너서 옷 말리다가
설총을 낳았다.
이 모든 것은 기획된 일이었다!^*^
여기서 하나!
조선의 관점이 아니라 그 시대 관점으로 신라사회를 보면
신라는 개방사회요, 프리섹스의 사회였다.
늘 축제가 있었으며 그 축제의 숨은 목적은 백성의 숫자를
늘이는 것이었다.
전쟁이 계속되니 인구가 줄어들고 그럼 국력이 약해진다.
그래서 인구증가정책으로 축제를 자주 개최하였고
그 중심에 아이돌이 있었으니 바로 화랑이었다.
처녀들이 보따리 사서 화랑들과 하룻밤 사랑이라도 해볼라꼬
경주로 모여들었다.
그 증거??
현인이 부른 ‘신리의 달밤’에 나온다.
이 노래 작사가 유호는 신라의 역사를 꿰뚫고 있었다.
3절
아 신라의 밤이여
아름다운 궁녀들 그리웁구나
대궐 뒤에 숲 속에서
사랑을 맺었던가
님들의 치맛소리
귓속에 들으면서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님들의 치맛소리’ 이 구절에 모든 게 함축되어 있다.
이 ‘신라의 달밤’ 노래는 처음 ‘인도의 달밤’이었다는 것을 아실런지!^*^
이 노래 처음 작사가 북한으로 월북해서 문화성 부상이 되었다는....
그래서 작곡가 박시춘이 작사가 유호를 스카웃해서 고친 것이다.
월정교는 신라문화제 행사를 하는 곳이다.
작년 신라문화제 때 찍은 사진이다.
7. 동궁과 월지
동궁 즉 동쪽에 있는 궁은 세자나 태자가 거처한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니 다음 왕이 됨을 의미한다.
2011년 전 까지 안압지(雁鴨池)로 불렸고
우리는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운 세대다.
폐망한 나라의 연못에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나온 유물이 3만점이라 경주박물관에 따로 ‘월지관’이라는
전시관이 있다. 거기가면 천년이 된 나룻배가 있다.
여하튼 경주여행의 핫플로 등장한 동궁과 월지다.
특히 야경은 인기최고다.
경주여행 대표 인증샷!!
에피소드 하나!
월지를 발굴하다가 미혼인 여자학예사가 뭔가 본 것 같긴 하지만 뭔지를 몰라서
이 물건을 들고 유부남 학예사에게 찾아갔다.
남자 학예사는 말을 더듬거렸다. ㅋㅋㅋ
궁녀들이 사용하다가 월지에 버린 것이겠지.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과 욕정은 다를 리 있겠나.
황룡사터에서는 더 정교한 돌로 된 것도 발견되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지만 여기까지만!
쓰다 보니 또 길어졌네요.
한꺼번에 쓰다 보니 머리도 띵!
손가락도 아픕니다 ㅠㅠ
후기 절필을 해야 할지,
알고 싶어 하는 한 분을 위해서라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할 듯!
겐조방장님!
아이시스 총무님!
솔뫼대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회원 여러분들도 반가웠습니다.
강건하시고
다음 여행길에서 뵙겠습니다.
2023.9.18.
신기한 書
몇 장의 사진들!!
이분들 왜 이리 심각할까요?
첫댓글 정말 열심히
다니셨군요 ㅎ
자유매식 팀인지라
우리신기한님은
후기를 으짤란고
고민 했더랬습니다 ㅋㅋㅋ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열심히 후기
올려주셔서 수고에
박수 보냅니다~~♡
아름다운 경주
구석구석 잘 보고왔읍니다 ㅎ
부연한 설명
열심히 공부하고
갑니당~~~~♡
신기한님
덕분에
경주의
역사을
확실히
알게되었네요
상세한설명과
시진들~~
감동그자체입니다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행은 눈과 발로 하고 내용은 신기한님이 써주신 글로 다시 복습합니다.ㅎㅎㅎ
감사감사~
신기힌님
좋은 후기글에
감사드림니다
신기한님 엄지척 입니다ㆍ 몰랐던 많은지식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나두
신기한님 엄지척~ㅎ
잼나게 읽었어요^^
암튼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영축산서부터 경주의 구석구석의
얽힌 이야기 잘 봤네요
동궁과 월지가 신라가 패망하며
안압지로 불리웠던 애닳은 이야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주의 화려한 문화유적지 일일이 설명까지 곁들여
사적지를 다시한번 공부하는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박수 칩니다
많이 아시네요
고맙습니다
잘보았습니다
신기한님 덕분에
내고향 경주를 더 많이
공부하고갑니다
고맙습니다
늘 강건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