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간 이어진 남미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는 멕시코.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3주인데 멕시코는 국토 면적이 넓다. 무려 한반도의 8배. 마야, 톨텍, 아스텍 문명과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멕시코에는 세계문화유산만 27곳이 있다. 욕심을 버리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수밖에. 쿠바에서 바로 들어오게 되는 칸쿤 주변과 꼭 가고 싶었던 와하카, 귀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는 멕시코시티 정도로만 일정을 잡는다. 그것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도중에 비행기를 두 번 타는 지출까지 감수하면서.
칸쿤의 물빛만큼은 정말 눈이 시릴 정도로 곱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칸쿤
멕시코 여행은 미국인이 신혼여행지로 가장 선호한다는 휴양지 칸쿤에서 시작되었다. 쿠바의 아바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넘어올 수 있는 제일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유카탄 반도의 카리브 해에 면한 휴양지 칸쿤은 마야어로 ‘뱀의 둥지’를 뜻한다. 1970년대 초 개발이 시작될 때만 해도 인구 100명에 불과한 어촌이었는데 이제 인구 50만에 해마다 400만 명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휴양지가 되었다. 카리브 해의 물빛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칸쿤은 두 개의 대조적인 지역으로 이루어져있다. 다운타운 구역과 이슬라 칸쿤 혹은 보통 ‘호텔 지역’으로 부르는 해변이다.
칸쿤의 모래사장을 걷고 있는 여인들
2005년 허리케인 윌마와 에밀리가 사납게 할퀴고 간 칸쿤의 해변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호텔이 파손되고, 해변의 모래가 쓸려나갔다. 멕시코 정부는 거의 2억 달러를 들인 대공사로 칸쿤 해변의 모래사장을 살려내는 듯 싶었지만 해변의 모래는 계속 쓸려나가고 있다. 그래서 찾아낸 대안이 이웃한 코즈멜 섬과 이슬라 무헤레스 섬의 모래를 퍼 와서 이곳에 쏟아 붓는 일이란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멕시코 정부의 어리석음도 정말 대단하다.
공항에서 호텔 지역으로 넘어오니 어리둥절할 정도로 풍경이 낯설다. 우리가 3주 동안 쿠바에 머물다 왔기 때문일 것이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건물만 보다가 번쩍번쩍 빛나는 화려한 호텔이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쿠바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서비스가 우리를 맞이한다. 친절한 말 한마디와 눈웃음 같은 기본적인 호텔의 서비스가 어마어마한 환대처럼 느껴진다.
칸쿤의 호텔은 ‘올 인클루시브’라는 정책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머무는 곳도 1년 동안 남미를 헤매느라 고생했다며 친구가 예약해준 ‘올 인클루시브’ 호텔이다. 몽땅 포함이라니, 도대체 뭘 포함한 걸까 들여다보니 놀랍다. 방의 미니바에는 맥주와 위스키, 럼을 비롯한 온갖 주류가 무한정 제공되고-심지어 하루에 두 번씩 새로 채워준다-, 24시간 룸서비스는 물론 바와 로비 라운지, 풀 사이드에서의 모든 음료와 식사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다. 이렇게 퍼주고 남는 게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게다가 호텔마다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무료로 운영한다. 살사나 요가를 가르쳐주는 클래스도 있고, 매일 밤 극장에서는 춤과 뮤지컬 공연이 펼쳐진다. 이건 정말 호텔 밖으로는 나가지도 말고, 이 안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다 가라는 게 아닌가.
모든 생필품이 부족한 쿠바에서 넘어온 우리는 이 넘치는 풍요로움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기쁘다. 친구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미니바에서 럼주를 꺼내 마시는 걸로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다. 나는 룸서비스를 시켜 늦은 점심을 즐긴다. 퀸사이즈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인 방은 넓고 안락하다. 거실의 소파에 앉으면 에메랄드 그린의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꺼지지 않는 단단한 침대,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욕조, 여기저기 널렸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음식과 술들. 아, 이곳은 지루한 천국이 될 가능성이 크겠구나. 그간의 내 여행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이 호사스러움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여겨진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 머무는 4박 5일을 나는 매트리스의 성능을 시험하는 일로 다 보내고 만다. 마치 1년 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듯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의 피곤함으로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면서. 바다에는 딱 한 번 들어가고, 호텔의 자쿠지에 몇 번 들어가 몸을 푸는 정도를 겨우 했을 뿐. 영화 ‘마스크’에도 나왔다는 그 유명한 ‘코코방고’ 클럽, 밥은 안 먹어도 여기는 가야 한다는 워터파크 엑스칼렛 같은 곳은 가보지도 못한 채 호텔 안에서만 5일을 보내다니... 그간 쌓였던 몸의 긴장이 풀어진 탓이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나를 보는 친구의 눈빛에는 서운함이 담겨있다.
칸쿤의 해변은 호텔로 막혀 거의 호텔의 사적인 공간이 되었다.
호텔 안에서만 닷새를 보내다 딱 한 번 바깥으로 나간 적이 있다. 바다의 물빛에 취해 해변을 걷다가 너무 멀리 간 탓에 다른 호텔의 로비를 통해 되돌아왔다. 칸쿤의 해변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칸쿤의 길고 긴 해변은 호텔 성벽에 가로막혀 있다. 20킬로미터에 달한다는 해변의 모래사장은 150여개의 호텔과 리조트가 차지했다. 그래서 칸쿤의 해변은 고급 호텔의 로비를 통과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멕시코 법으로는 군사지역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모든 해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걸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외국인 여행자는 아무리 허름한 복장을 해도 호텔의 로비를 통과할 수 있지만, 현지인들 특히나 마야 원주민은 로비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가이드북에도 적혀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넓은 해변에 외국인만 바글거린다. 내가 누리는 칸쿤의 아름다움을 이 땅의 주인은 누리지 못한다니... 어떻게 이런 어이없는 일이 생겨났을까. 이곳은 원래 그들의 땅이었는데... 칸쿤의 고운 물빛과 새파란 하늘, 최고의 시설을 갖춘 호텔에 대한 애정이 급격히 떨어진다.
천국 같은 해변을 품고 있는 툴룸
시내 구경 한 번 하지 못한 채 칸쿤에서 오일을 보낸 후 코즈멜에 며칠을 머물며 스노클링을 즐기다가 툴룸으로 향한다. 툴룸은 고속도로 변에 자리 잡은 탓에 마을 전체가 어쩐지 휴게소 같다. 천국 같은 해변을 품고 있는 마을로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다. 동네의 선술집에서 그가 호기롭게 데킬라 마초를 주문했다. 매운 고추 하바네로를 듬뿍 썰어 넣은 데킬라다. 한 모금을 마신 그가 비명 소리와 함께 잔을 내려놓는다. 입안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다면서. 그 이름처럼 남자다움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나 시도해봐야 할 술인가 보다. 돌아오는 길, 보름달빛이 발밑을 비춰준다.
툴룸 유적에서는 해변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다
다음날 툴룸 유적지로 향한다. 마야어로 벽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툴룸은 성벽에 둘러싸인 옛 도시다. 툴룸은 벨리즈까지 오가던 마야인들의 무역선이 들르던 항구였다. 13세기에서 15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곳은 스페인 침략 후 75년 만에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유럽으로부터 들어온 질병에 원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야인들이 건설한 도시 중에서 툴룸은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은 도시였다.
툴룸 성벽의 길이는 남북으로 380미터, 동서로 170미터에 달한다. 벽의 두께는 8미터, 높이는 3-5미터. 바다를 낀 옛도시는 회색의 돌로 남아 파도소리에 낡아가고 있다. 성벽 너머 바다의 물빛은 서러울 정도로 곱다. 가이드북에서 집으로 가는 항공권을 찢어버리고 싶을 거라고 했는데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마야 유적지 중에서 툴룸은 그 규모나 질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지리적 세팅만큼은 최고가 아닐까. 유적지를 걷는 동안 내내 성벽 너머 바다를 힐끔거리게 된다. 뜨겁게 달구어진 돌 위로 지나가는 이구아나. 투명한 사파이어 빛깔의 바다. 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원주민들은 이곳은 ‘zama’ 새벽의 도시라 했다지. 이 도시의 주민들은 카리브 해로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으리라. 바람의 신전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전망은 발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툴룸 유적은 규모는 작지만 지리적 세팅만큼은 최고가 아닐까
유적지를 둘러보고 해변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간다. 해변의 그늘막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오후를 보낸다.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그 옆 카페에서 새우 파히타와 생선구이를 배달시켜 먹기도 하면서. 설탕처럼 부드러운 모래,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 빛나는 태양, 게다가 고개를 돌리면 절벽 너머 마야 유적지까지. 파라솔 아래에서 보내는 이 오후가 정말로 천국 같다.
성벽 도시 툴룸의 벽 두께는 8미터에 이른다
마야 유적지 치첸이사
툴룸을 떠난 우리는 메리다로 건너간다. 색색의 식민지풍 건물이 남은 메리다에서 이틀을 보낸다. 그리고 드디어 세계문화유산인 치첸이사 투어를 신청한다. 선정 과정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뽑힌 마야 유적지다. 울창한 정글 사이 푸른 초원 위의 옛 도시는 이들의 빼어난 건축과 천문학 기술을 보여준다. 농경 생활을 했던 마야인들에게 계절의 변화와 이에 따른 기후 예측은 필수적인 일이었기에 천문학이 발전할 수밖에. 이진법과 0을 사용하고, 완성된 문자 체계를 갖추었다는 마야인들의 기술이 놀랍기만 하다.
마야인들의 천문학적 기술을 보여주는 치첸이사의 피라미드
치첸이사는 5세기 중반 과테말라 지역에서 이주해 온 마야 족의 한 부족인 이사 족이 처음 건설했다. 이후 북부 고원 지역의 톨텍 족이 치첸이사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두 문명이 결합하게 된다. 멕시코에서 마야 문명과 톨텍 문명이 결합해 탄생한 유적지는 치첸이사가 유일하다.
구기 경기를 벌여 인신공양의 제물을 정했던 치첸이사의 구기장
가이드가 우리를 피라미드로 데려간다. 쿠클칸-깃털 달린 뱀-의 피라미드다. 스페인 침략자들은 이 피라미드에 엘카스티요(성채)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야의 역사 자료에 따르면, 쿠쿨칸이라는 인물이 서쪽에서 와서 유카탄 반도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9세기 초에 완성된 신전은 동서남북으로 늘어선 계단이 인상적이다. 25미터 높이의 피라미드는 마야인의 천문학 기술의 결정체다. 각각 91개로 된 4면의 계단에 정상 계단을 합하면 1년을 뜻하는 365일이 된다. 45도의 경사를 유지하는 피라미드의 난간 아래는 뱀의 머리를 하고 있다. 일 년에 두 차례 춘분과 추분이 오면 뱀의 그림자가 계단의 난간을 따라 길게 생겨난다. 사진으로만 봤을 뿐이지만 완벽하게 뱀의 형상이 만들어져 깜짝 놀랐다.
피라미드 근처의 구기장은 젊고 건강한 청년들을 두 팀으로 나눠 공으로 하는 경기를 치르게 한 후 우승자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던 곳이다. 가장 강인한 이를 바쳐야 했기에 이긴 자가 바쳐졌고, 그도 영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피라미드 북동쪽에 있는 전사의 신전에는 인간의 심장을 올려놓았을 거라 짐작되는 차끄몰 조각이 있다. 아즈텍 문명과 마야 문명의 인신공양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석과 가설이 있다. 태양신화에 기반한 심오한 우주관의 표현이라는 의견에서부터 부족한 단백질 공급이 목적이었다, 단순한 제의적인 폭력일 뿐이다,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공포 정치의 일부이다 등등. 어느 쪽이 진정한 유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인 침략자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부풀려진 면도 있는 것 같다.
치첸이사의 천문대라 불리는 카라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