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집보살학론 제16권
12. 치심품 ③
또 다음에 진실한 행위와 삿되고 허망한 행위란, 말하자면 지혜 없는 무명이다.
이 무명으로 말미암아 세 가지 행위를 일으킨다.
말하자면 복ㆍ복이 아닌 것[비복]ㆍ흔들리지 않는 행위[부동행] 등이다.
이것을 무명이 행을 연한다고 말한다.
또 이 복이 되는 행위ㆍ복이 되지 않는 행위[비복행]ㆍ흔들리지 않는 행위[부동행] 등이 얻는 바인 식(지)이 보이는 것에 따라서 이것을 행이 식을 연한다
고 말한다. 지금 상세하게 이곳에서 식(지)을 연하여 명색이 있다는 것을 합하는데, 이 일단의 경문은 범본에는 원래 결여되어 있다.
이와 같이 명색 및 명색이 증장한 육체의 부분에 대하여 조작을 일으키는 바, 이것을 명색이 육처를 연한다고 말한다.
또 이 육처가 육 촉 신을 전전시키는 이것을 육체가 촉을 연한다고 말한다.
만약 촉이 생할 때 수를 일으키게 하면, 이것을 촉이 수를 연한다고 말한다.
만약 수가 맛있는 맛에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집착하면, 이것을 수가 애를 연한다고 말한다.
맛에 기뻐하여 탐닉하기 때문에 만약 좋아하는 색에 처하다가 색과 떨어질 때에는 거듭 추구하여 버리지 않는데, 이것을 애가 추이를 연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추구하여 나중에 유로 하여금 신업ㆍ어업ㆍ의업을 일으키게 하는데, 이것을 취가 유를 연한다고 말한다.
만약 업이 변천하면 온을 생겨나게 하는데, 이것을 유가 생을 연한다고 말한다.
또 만약 생겨나고 나서 변이하여 성숙하게 하고 또 파괴되어 소멸시킬 때에는 이것을 생이 노사를 연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 중에서 식 등의 자체를 종자로 삼고, 업의 자체를 좋은 전답으로 삼고, 무명과 애 등의 자체를 번뇌로 삼는다.
업과 번뇌 등으로써 식의 종자를 생겨나게 한다.
말하자면, 이 업은 식의 종자를 뿌리는 전답의 역할을 하고, 애는 식의 종자에 물을 뿌려 윤택하게 하며, 무명은 식의 종자를 싹트게 한다.
그렇지만 업은 자신이 식의 종자를 뿌리는 전답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애도 또한 자신이 종의 종자에 물을 뿌려 윤택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무명은 자신이 식의 종자를 싹트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식의 종자도 역시 또한 자신이 뭇 인연으로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식의 종자는 업의 토지에 머물러서 애가 물을 뿌려 윤택하게 하는 것과 무명이 양분을 주어 자라나게 하는 것으로써 명색의 싹을 생겨나게
한다. 이 명색의 싹은 자신이 만드는 것[자작]이 아니며, 다른 것이 만드는 것[타작]이 아니며, 자신과 다른 것의 둘이 함께 만드는 것[이구작]이 아니며, 자재천(자재천)의 변화로 된 것이 아니며, 시절의 변화[시변]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한 가지 원인으로 생긴 것이 아니며, 원인이 없이 생긴 것이 아니다.
부모로부터 인연이 화합하여 탐욕의 오염이 상속되는 것에 계박되지 않음이 없는데, 이 식의 종자는 어머니의 태내 중에서 명색의 싹을 생기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그러하여 주재가 있지 않고, 자아가 없고, 취함 [취] 등이 없어 허공과 같다.
자체의 모습이 환상으로 화한 것에는 인연이 결여되지 않는다.
다섯 가지의 연으로 말미암아 안식을 발생한다.
어떠한 것들이 그 다섯인가? 말하자면, 안식이 생길 때는 눈과 물질[색]과 허공[공] 등의 연과 밝음 [명]의 연과 생각하는 것[작의]의 연 등을 의지한다.
이 가운데 안식에 있어서 눈을 의지하는바 [소의]로 하고, 물질을 의지하는 연[소연]으로 하고, 밝음을 비추어 주시하는 것으로 하고, 허공을 장애가 없게 하는 것으로 하며, 동시에 생각하는 것을 그것이 놀라 발생하는 것으로 한다. 이 연을 빠뜨리면 안식은 생기지 않는다.
말하자면, 만약 안의 안 근처를 빠뜨리지 않으며, 이와 같이 물질 및 허공과 밝음과 생각하는 것 등을 빠뜨리지 않고, 그러므로 그 일체가 화합하면, 곧
능히 안식을 일으킨다. 그렇지만 눈은 자신이 안식을 위하여 의지하는 바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질도 또한 자신이 안식을 위하여 의지하는 연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허공도 또한 자신이 안식을 위하여 장애가 없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밝음도 또한 자신이 안식을 위하여 비추어 주시함을 짓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안식을 위하여 놀라 발생하는 것으로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안식은 자신이 연으로부터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안식이 생길 때는, 실로 뭇 연을 의지하여 화합하여 생긴다.
그와 같이 차례로 모든 감각기관이 식(지)을 생기게 하는 것을 응당 설명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에 이르는 법이 있지 않으며, 다만 업의 과보와 인연이 결여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건립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땔감이 없으면 불이 곧 생겨나지 않는 것처럼 이 업의 번뇌에서 생기는 식의 종자도 역시 또한 그와 같다.
그것들이 생기는 곳에서 상속하고 화합하여 명색의 싹을 생기게 한다.
이와 같이 원래 그러하여 주재가 있지 않고, 자아가 없고 취함이 없어 허공 등과 같다.
자체의 모습이 환상으로 화한 것에는 인연이 결여되지 않는다.
응당 안으로 연하여 생기는 법[내연생법]에서 그 다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떠한 것들이 그 다섯인가? 말하자면, 항상하지 않음 [불상]ㆍ단절되지 않음 [부단]ㆍ지향하는 바가 없음 [무소지향]ㆍ원인은 적고 과보는 많음 [인소과다상사하게 상속함 [상사상속]이다. 어떠한 것이 항상 하지 않음인가? 말하자면, 만약 이 변두리의 온[변온]이 죽어서 저 변두리의 온이 생기면, 바로
죽음의 변두리의 온이 저 태어남의 변두리의 온인 것은 아니다. 이것을 항상 하지 않음이라고 말한다. 죽음의 변두리의 온을 소멸시키지 않고 태어남의 변두리의 온을 일으키며, 또 죽음의 변두리의 온을 소멸시키지 않고서 태어남의 변두리의 성온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면 저울추와 저울대가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때 등과 같다. 이것을 단절되지 않음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부류의 중생의 몸 자리에서 중동분이 태어남의 변두리의 온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지향하는 바가 없음이라고 말한다.
또 지금 조금 선하거나 악한 업의 인연을 지어 미래의 세상에서 큰 과보를 얻는 것, 이것을 원인은 적고 과보는 많음이라고 말한다.
또 만약 이 생애에서 업을 지으면 곧 미래에 과보를 받는 것, 이것을 상사하게 상속함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이 인연으로 생기는 것을 여실하고 바른 지혜로써 자아가 없고 사람이 없고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다고 항상 닦는다.
전도되지 않은 바와 같이 곧 생함이 없고 멸함이 없어 지음이 없고 [무작] 함이 없고 [무위]ㆍ상대가 없고 [무대] 장애가 없고 [무애] 두려움이 없고 [무포]ㆍ빼앗김이 없고 [무탈] 힘씀이 없고 [무근] 게으름이 없다 [무해]. 그 자성이 견고하고 진실한 것이 없어 질병과 같고 악성 종기와 같고 고통과 같고 해침과 같으며, 이것은 괴로움[고] 공함[공] 항상 하지 않음 [무상] 자아가 없음 [무아] 등의 성품이라고 관찰한다.
그는 다시 전제(전제:어떤 것의 시초와 처음에서 유전하지 않는다고 관찰한다.
말하자면, 내가 과거 세상에서 일찍이 존재하였던가, 누가 내가 과거 세상에서 일찍이 존재하였다고 말하는가? 내가 과거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았던가, 누가 내가 과거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다시 후제(후제:어떤 것의 나중과 끝)에서 유전하지 않는다.
내가 마땅히 미래 세상에서 존재할 것인가, 누가 내가 마땅히 미래 세상에서 존재할 것이라고 말하는가? 내가 마땅히 미래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누가 내가 마땅히 미래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가? 다시 현재 세상에서 유전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존재하는가, 누가 내가 지금 존재한다고 말하는가, 어떻게 내가 지금 존재한다고 하겠는가?’”
또 십지경에서 말한다.
“이 중에서 무명과 취와 애, 이것이 번뇌로서 유전하여 단절되지 않는다.
행과 유, 이것이 업으로서 유전하여 단절되지 않는다.
나머지 부분, 이것이 괴로움으로서 유전하여 단절되지 않는다.
다시 무명이 행을 연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전제를 관찰하여 상대한다.
[전제관대]고 말한다. 식(지)과 수 등 이것을 현재를 관찰하여 상대한다.고 말한다.
애(애)와 유등 이것을 후제를 관찰하여 상대한다[후제관대]고 말한다. 이렇게 위에서 말한 것은 모두 유전이라고 한다.
나아가 이와 같이 계박되어 속함으로 말미암아 곧 유전하며, 만약 계박되어 속함을 여의면 곧 유전하지 않는다.
화합으로 말미암아 곧 유전하며, 만약
화합을 여의면 곧 유전하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유위 속에는 많은 종류의 과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마땅히 계박되어 속함과 그것의 화합을 단절해야 한다.
그렇지만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기 위해서 필경에 모든 유위의 행위를 단절하지 않는 것이다.”
13. 염처품
그 마음을 대치하는 업에 대해서는 대략 연기하여 생기는 것으로써 어리석음을 대치하는 것을 해명하였다.
다음에는 마땅히 깨끗하지 못한 신념처에 이해하여 들어가야 한다. 이제 마땅히 설명하겠다.
법집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또 다음에 선남자야, 보살은 이와 같이 신념처에 머무른다. 말하자면, 나의 이 몸은 발[족] 발가락[족지] 발꿈치 복사뼈 장딴지 정강이 무릎[슬]넓적다리사타구니 뼈[골] 허리[요] 척추[척] 배[복] 늑골[륵] 가슴[흉] 겨드랑이[협] 손[수] 손가락[지] 팔꿈치 손목[완] 어깨[견] 팔 목[경] 목덜미[항] 머리[두] 뺨 해골 등의 형상으로부터 여러 부분이 모여 쌓인 것이다.
이에 곧 업이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갖가지 번뇌와 수번뇌를 조작하며, 백천 가지의 삿됨과 바름을 분별한다.
이 몸에는 오직 머리카락손톱ㆍ이빨ㆍ피ㆍ살집ㆍ피부ㆍ뼈ㆍ간ㆍ쓸개ㆍ지라ㆍ콩팥ㆍ심장ㆍ허파ㆍ창자ㆍ위장ㆍ생장ㆍ숙장ㆍ지방ㆍ뇌막ㆍ눈곱ㆍ
눈물ㆍ침ㆍ대소변ㆍ깨끗하지 못한 여러 사물이 쌓여 모인 것일 뿐이다.
무엇으로써 몸이라 하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몸이 허공과 같음을 관찰하여 곧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공함을 보는 것을 공념처라고 한다.
이 몸은 두 가지의 사념으로 말미암는 것임을 안다. 말하자면 유전하여 흩어지는 것과 유전하여 흩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몸이 오는 것은 전제로부터가 아니며, 가는 것은 후제에 이르지 않으며, 또한 그 두 시기[제] 중간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오직 전도되어 화합으로부터 조작되고, 이로 말미암아 받아들이며, 이 중에 기거하는 처소를 근본으로 삼는다.
그렇지만 실로 주재가 있지 않고, 또한 거두어 귀속됨도 없다.
다만 객진으로 이전에 지은 일에 따라, 신체의 형모와 수용과 의지를 의지하는 처소로 삼는다.
그렇지만 이 몸은 오직 아버지와 어머니의 적과 백의 화합이 있을 뿐이며, 깨끗하지 못하고 악취가 나는 것을 잡아서 자체로 삼아 세 가지 독[삼독]의
근심과 번뇌에 항상 해침을 받는다. 이것은 흩어져 허물어지는 법이며, 갖가지 백천의 질병의 고뇌가 깃든 굴택이다.
보계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이 몸은 항상 하지 않아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하고 죽음을 끝으로 한다. 이것을 알고 나서 응당 육체에 대하여 삿된 생활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응당 몸으로써 세 가지 청정한 보시를 수행해야 한다.
어떠한 것들이 그 셋인가? 말하자면, 몸의 청정한 보시, 수명의 청정한 보시, 수용의 청정한 보시이다.
이 몸은 항상 하지 않아 응당 일체 중생의 처소에 찾아 가서 가까이 일을 받들어야 하며, 무엇을 하고자 하든지, 혹은 노복이나 고용인처럼, 혹은 제자처럼 하며, 모든 아첨과 기만 등 몸의 과실을 여읜다.
이 몸은 항상하지 않아 오직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수명의 원인으로 할 뿐이거늘, 오히려 죄악을 짓겠는가?
이 몸은 항상하지 않아 응당 애락의 수용에 대하여 탐착 하지 말아야 하며, 그 일체를 마땅히 버려야 한다.
또 마음에 선남자야, 보살은 신체를 관찰하는 신념처를 가지고, 응당 자신과 일체중생의 몸이 부처님의 몸과 동등하다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
위신력이 가지 되어 번뇌의 결박을 여의게 된다.
자신과 일체중생의 몸이 여래 몸[여래신]의 무루 법성과 그 모습[상]에 다름이 없다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응당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또 무외수소문경에서 말한다.
“말하자면, 나의 이 몸은 이전에 모인 것이 아니다. 점차 흩어져 소멸하는 것이 비유하면 미진과 같고, 아홉 구멍에서 오물이 흘러넘치는 것이 창포의
문과 같고, 또 모든 털구멍에 박라미가 있는 것이 마치 독사가 의지하여 기거하는 것과 같다.
몸은 모여 있는 물거품이 모인 것처럼 자체의 성품이 약한 것과 같고, 물 위의 거품이 잠시 생겼다가 곧 소멸하는 것과 같다.
또한 양염이 본래 자체가 있지 않은 것과 같다. 몸은 파초가 그 속에 참된 것이 없는 것과 같다. 몸은 환상의 사물이 타인에게 다스려지는 것과 같다.
몸은 나쁜 친구에게 여러 가지 다툼이 많다. 이 몸은 원숭이가 성질이 오직 경박하고 조급한 것과 같단다.
이 몸은 원수가 항상 그 단점을 엿보는 것과 같다.
이 몸은 도적이 기교하게 탐욕을 취하는 것과 같다. 이 몸은 죄수가 항상 속박되어 치욕을 받는 것과 같다.
이 몸은 원수진 것을 좋아할 수 없는 것과 같고, 또한 기회가 능히 그 목숨을 단절하는 것과 같다.
또다시 이 몸은 텅 빈 취락처럼 그 속에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 도예가의 바퀴가 잠시도 정지하지 않는 것과 같고, 더러운 찌꺼기를 담는 병에 깨끗하지 못한 것이 가득한 것과 같다. 몸은 악성 종기를 때리면 오직 고통만이 있는 것과 같다.
몸은 낡아빠진 주택이 오래가지 못하고 변천하여 허물어지는 것과 같다.
몸은 물이 새는 선박이 능히 건너지 못하는 것과 같다. 몸은 배기가 잠시 있다가 마땅히 새어 파괴되는 것과 같다.
또다시 이 몸은 물가 언덕의 나무가 반드시 급류에 쓸려 요동하는 것과 같다. 몸은 여행 도중 숙박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과 괴로움이 많은 것과 같다. 몸은 저택[저사]에 대하여 망령되게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것과 같고, 도둑질하려고 엿보는 자가 항상 포악한 것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나아가 이 몸은 어리석은 어린아이와 같다. 요컨대 마땅히 수호해야 한다.
그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깨끗하지 못한 몸을 아만과 우치로 말미암아 망령되이 빛나고 청결하다고 한다. 지혜로운 자가 관찰하기에는 오히려 더러운 병처럼 눈과 코 등에서 눈곱과 콧물이 흘러나오는데, 어찌하여 이에 대하여 크게 탐욕과 자만을 일으키는가?”
또 그 게송에서 말한다.
어리석은 아이가 재[탄]를 씻어서
하얗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설사 이 생애를 다하여서
하얗게 됨을 추구하여도 얻을 수 없다.
또한 지혜가 없는 사람이
몸을 씻어 청결해지려고 하는 것처럼
자주 목욕을 하여서
죽음에 이르러도 깨끗해지지 않는다.
보살이 몸을 관찰하니
아홉 구멍에 창포의 문이 있어
팔만 호[팔십천 호]의 벌레가
몸에 의지하여 기거하는 바이다.
보살이 몸을 관찰하니
나무로 뭇 형상을 조각한 것처럼
근육과 뼈로 이어져 지탱하는 것이라
응당 주재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보살이 몸을 관찰하니
혹은 타인의 음식을 받는 것이
응당 여우나 이리 와 같아
자신의 살점을 와서 먹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음식으로 말미암아 자량이 보조되어 광대한 행위를 성취한다.
이와 같이 곳곳에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념처라는 것은 보계경(보계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선남자야, 보살이 감수[수]를 관찰하는 수념처로써 중생을 알고, 큰 자비에 의지하여 이와 같은 즐거움을 얻는다.
만약 일체중생에게 해탈이 있지 않으면, 감수를 관찰하는 수념처로써 응당 닦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큰 자비의 갑옷을 입고 일체중생을 거두어들여
조복 시키고, 전부 그 즐거움으로써 뭇 괴로움을 소멸시켜 버리게 한다. 나는 큰 자비로써 탐욕을 행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움의 감수[락수]를 알게 하여 탐욕의 오염을 여의게 한다.
나는 큰 자비로써 성냄을 행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괴로움의 감수[고수]를 알게 하여 모든 잘못을 여의게 한다. 나는 큰 자비로써 어리석음을 행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수[부고부락수]를 알게 하여 함께 일어나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한다.
또 그 즐거움의 감수가 파괴되지 않고, 괴로움의 감수가 감소되지 않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수가 대치를 여의게 되면, 곧 무명(무명)이 없게 된다. 만약 무명이 없으면 그것을 어떻게 감수라고 하겠으며, 어떻게 일체가 항상 하지 않고 또자아가 없는 것 등을 알겠는가? 그러나 이 즐거움의 감수는 곧 항상하지 않은 성품이며, 괴로움의 감수는 곧 핍박하는 성품이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수는 곧 적정한 성품이다.
이로 말미암아 혹은 즐겁고 혹은 괴롭고 항상하지 않고 자아가 없는 것 등을 알게 된다.
또 무진의경에서 말한다.
만약 괴로움을 감수할 때에는 마땅히 일체의 나쁜 세계에 있는 중생을 생각하여 큰 자비심을 일으키며, 성냄을 거두어 버리고, 전도되어 분별하는 감수 등을 여의어야 한다.”
또 법집경의 게송에서 말한다.
감수를 받아들임 [영납]이라고 말하는데
받아들이는 것은 다시 누구라고 하랴.
감수하는 자가 감수를 여의면
차별을 얻을 수 없다.
지혜로운 자는 감수를 관찰하여
이와 같이 사념하는 처소[염처]에 머무르는데,
그 모습은 보리와 같아
광명이 두루 하며 적정하다.
대승집보살학론 제17권
13. 염치품 ②
여기에서 대략 수념처(수염처)를 설명하였다. 다음에는 심념처를 밝힌다.
보적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간섭파여, 말하자면, 이 마음에 대하여 혹은 애락을 일으키고, 혹은 혐오하여 걱정을 일으키며, 혹은 많이 집착한다.
그 세 가지 시제[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살펴보는가? 가령 과거는 곧 이미 소멸하였고, 현재는 머무르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또한 중간도 아니라서 모두 얻을 수 없다.
또 이 마음은 그 색을 볼 수 없고,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대치되지 않으며, 관찰하지 못하고, 조명하지 못하고, 머무르지 않고, 고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마음을 일체의 여래조차 오히려 보는 바가 없으니, 그 외에 어떻게 능히 관찰하겠는가? 별다른 경계가 없으며, 오직 법에 대한 생각[법상]만이 구를 뿐이다.
가섭파여, 이 마음은 환상처럼 두루 헤아려 진실하지 않으며, 취해지는 것으로 말미암아 갖가지로 생기게 된다.
마음은 허공처럼 모든 번뇌와 수번뇌의 객진에 덮여 있다. 마음은 하천이 흐르는 것처럼 생겨나고 소멸하여 머무르지 않는다.
마음은 등불의 빛처럼 인연으로 일어나는 바이다. 마음은 번개를 잡아매는 것처럼 찰나 동안이라도 머무르지 않는다. 마음은 나쁜 친구처럼 능히 모든 괴로움을 일으킨다. 마음은 고기 잡는 사람처럼 괴로움을 즐겁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도깨비처럼 모든 번거로운 고뇌를 짓는다.
마음은 야차[약차]처럼 정기를 엿보아 빨아먹는다. 마음은 광란한 도적처럼 모든 선근을 파괴한다. 마음은 불나방처럼 항상 그 색을 곁눈질한다.
마음은 비고처럼 오직 전투를 경고한다. 마음은 비천한 노복처럼 찌꺼기 맛[잔미]을 탐내어 좋아한다.
이 마음은 파리처럼 누린내 나고 기름진 기물[전니기]을 접촉한다.
이 마음은 돼지처럼 깨끗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향기롭고 청결하다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간섭파여, 이 마음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고, 얻을 수 없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바가 없다.
과거ㆍ현재ㆍ미래에서 모두 얻을 수 없으니, 곧 능히 삼세의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을 초월한다.’”
또 보계경에서 말한다.
“그런데 이 마음은 외부에 존재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볼 수가 없고, 온ㆍ처ㆍ계에서도 또한 볼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볼 수 없는 것을 탐구하여서 어떠한 대상으로 말미암아 자주 일어나게 되는가? 말하자면 그 각각의 마음이 이와 같은 일을 반연 한다.
어찌하여 마음을 볼 수 없다고 말하는가?
응당 알아야 한다. 이 마음은 날카로운 칼과 같으니, 그 칼이 어떻게 능히 스스로를 절단하겠는가? 또다시 이 마음은 또한 손가락 끝과 같으니, 그 손가락이 어찌 능히 스스로를 가리키겠는가? 마음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역시 또한 이와 같다.
혹은 사람이 멀리 가는데 그 몸이 가뿐하게 전진하여 신속한 것이 바람과 같아 도달하는 경계에 능히 장애가 없다.
선남자야, 만약 사람이 이 육체의 경계가 자신이나 타인에게 계박되어 속함에 대하여, 마음이 애착하지 않고 몸이 산란하지 않으면, 곧 사파타의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무르는 성품에 있어서 장애가 없게 된다. 이것이 심념처이다.”
또 무진의경에서 말한다.
“상응하는 행위로써 수습하고, 법의 성품의 마음[법성심]을 장엄하여도 감소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 법의 성품의 마음을 장엄하며 환상으로 변화한 것과 동일한가? 말하자면, 만약 스스로 일체의 소유를 버리고, 능히 그 법의 성품의 마음으로 회향한다면,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며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법념처(법염처)라는 것은, 또한 거기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보살은 법에 대하여 법의 행위를 관찰하지 않는다. 법을 관찰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불법이 아니고, 보리도가 아니다. 곧 일체의 법이 모두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알고 나서 크게 자비로운 삼마지를 얻는다. 일체의 법에 대하여 번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번뇌가 없는 것도 아니며, 삼륜의 상념이 없게 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모든 법의 성품에 두 가지 모습이 있지 않음을 안다.
그 모든 번뇌는 쌓이는 성품이 없고, 탐욕의 성품이 없고, 성내는 성품이 없고, 어리석은 성품이 없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보리를 깨달으면, 번뇌의 성품이 곧 보리의 성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법념처이다.”
또 보계경에서 말한다.
“선남자야, 보살은 법으로써 법념처를 관찰한다. 만약 법이 일어나면 곧 생기고, 법이 쓰러지면 곧 소멸한다. 말하자면, 법이 그러함에 있어서 자아[아]ㆍ인간ㆍ중생ㆍ수자ㆍ양자ㆍ사부ㆍ보특가라ㆍ의생ㆍ아이[유동]ㆍ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생로사] 등이 만약 모이면 곧 행을 모으고, 만약 모이지 않으면 곧 행을 모으지 않는다.
혹은 선한 행위와 선하지 않은 행위와 동요되지 않는 행위는 조금의 법이라도 그 인연이 없는데도 생기하게 되는 것은 없다.
이 법서에 대하여 깊이 살펴보는 바이니, 일체지와 보리심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대희락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이 유위의 행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다. 마치 배병이 항상 하지 않아 흩어져 허물어지는 것과 같다.
행은 비어 있는 성[공성]이 비에 젖어 허물어지고, 진흙으로 바른 것이 견고하지 못하여 점차 마땅히 마멸되는 것과 같다.
또한 하천의 둔덕[하안]이 모래가 쌓여 성립된 것이라서 자성이 약하여 물에 씻겨 탕진되는 것과 같다.
행은 바람 앞의 등불이 생겨나고 소멸하여 머무르지 않는 것과 같다.
행은 모여 있는 물거품이 잡히지 않는 것과 같다. 행은 파초 가운데 진실한 것이 없는 것과 같다.
다시 빈주먹으로 어리석고 험하게 거짓으로 시위하는 것과 같다.
혹은 초갈등을 손으로 비벼 꼬아 노끈이 되게 하고, 병과 녹로에 의하여 능히 흡인하여도 일찍이 홀로 그 작용이 있지 않는 것과 같다.
일체의 유지는 서로 의지하고 모여서 구른다. 그 전제와 후제도 또한 얻을 수 없다.
사람이 불을 지피는 것처럼 두 손과 나무를 마찰시키며 부지런히 쉬지 않아야 불이 이에 생기게 되지만, 뭇 인연이 만약 여의게 되면 불기운도 따라서
소멸한다. 이와 같은 행에 대하여 인가[인]할 바를 인가하고 나서, 혹은 자신이든 혹은 타인이든 곧 능히 단절과 항상 함 등의 행을 초월한다.
지혜로운 상인이 모든 험한 길에서 이르고자 하는 곳에 이를 수 있는 것과 같다.”
4. 자성청정품
염처를 설명하였다. 다음으로 보특가라가 반드시 상응하는 공성을 성취하여 근본을 단절하고 나서 그 밖의 번뇌들이 다시는 모여 행해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이해하게 한다.
또 여래비밀경에서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적혜요, 비유하면 발라사라고 하는 나무가 있는데, 만약 그 뿌리를 절단하면 곧 일체의 가지와 잎이 모두 다 말라 야위는 것처럼 적혜여, 이것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신 겸을 단절하면 곧 능히 일체의 번뇌를 제거하여 소멸한다.’”
공성을 분별하는 데에는 한량없는 행상이 있다.
월등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만약 사람이 여래의 가르침을 믿고 이해하며
부처님이 계학에 대하여 훼손하여 범하지 않고
전부 능히 모든 여인을 멀리 여의면,
법의 자성을 알아 항상 공적 하다.
일체의 근심과 괴로움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혹은 의약을 보시하여 안온하게 하면,
속히 이 양족존[이족존]을 성취하게 되며
법의 자성을 알아 항상 공적 하다.
만약 신명에 대하여 마디마디를 끊고
나무 몽둥이로 치고 때려도 성내어 고뇌하지 않으면,
인욕 하는 힘이 뛰어나 사람 가운데 달[인중월]이 되매
법의 자성을 알아 항상 공적 하다.
설사 백 번의 생애 동안 나쁜 세계에 떨어져도
항상 미묘한 색상을 유지하게 되고
역시 또한 이 다섯 가지 신통을 획득하며
항상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안주한다.
또 반야경에서 말한다.
“또 다음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몸[불신]과 서른두 가지 대인의 모습[대인상]과 여든 가지의 좋은 특징[팔십종호]을 성취하고자 하면, 일체의 생애 중에서 마땅히 보리심을 사념하여 훼손되지 않게 하여야 한다.
보살행에 대하여 잊어버림이 없게 하고, 악지식과 모든 과오를 여의고, 일체의 부처님과 보살 등 선지식들을 가까이하고, 모든 천마의 무리들을 항복시키고자 하고, 모든 업장을 깨끗하게 하여 일체의 법에 대하여 장애가 없게 하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한다.
또 다음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한 생각의 마음을 일으키고, 전부 능히 동방의 항하사와 같은 세계의 일체 방소를 초월하여 마땅히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한다. 또 다음에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은 설사 시방의 불국토에 머무르더라도 마땅히 반야바라밀다를 배워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이 말한다.
모든 법에는 자아가 없으며, 업장의 결박을 소멸하려면 곧 모든 법의 자성이 소멸함이 없음을 보라는 것이다.”
부자합집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여섯 가지 요소[육계]와 여섯 가지 촉처 [육 촉 처], 열여덟 가지 마음으로 살피는 것[십팔의 소사찰]이, 이 보로사의 인연이 되어
생기게 되오. 어떠한 것이 여섯 가지 요소인가? 말하자면 지계ㆍ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이오. 어떠한 것이 여섯 가지 촉처인가? 말하자면, 안촉처로서는 색을 보고, 이 촉 처라면 그 소리를 듣게 되고, 치복처라면 능히 향기를 맡고, 서록처라면 모든 맛을 맛보고, 신촉처라면 친히 그 감촉을 느끼며, 이 촉 처라면 곧 법을 알게 되오. 어떠한 것이 열여덟 가지 마음으로 살피는 것인가? 말하자면, 눈이 색을 보고 나서는, 혹은 열락을 생하고, 혹은 걱정과 고뇌를 일으키고, 혹은 그 두 가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인 것[사]에 머물기도 하오. 이와 같이 여섯 감각 기관[육 근]이 각각 그 열락 등의 세 가지를 반연 하오. 이것을 열여덟 가지 마음으로 살피는 것이라고 하오. 대왕이여, 어떠한 것이 내면의 지계[내 지계]인가? 말하자면, 안의 몸에서 생겨나는 딱딱하고 가는 머리카락ㆍ손톱ㆍ발톱ㆍ이빨 등이오. 만약 안의 지계가 생기지 않고 또한 소멸하지 않는다면, 곧 모여 행함이 없을 것이오.
대왕이여 만약 그때 여인이 있어서 안의 몸에 대하여 그 보고사를 사유하는 바와 같이 그 보로사도 또한 애락을 일으키며, 그 둘이 화합함으로 말미암아 갈라감이 생기오. 또다시 사유하는 바와 같이 비슷하게 화합하여서 생기게 되는 자, 이런 일은 있지 않소. 혹은 두 여인이 있는 이런 일은 있지 않으며, 두 보로사라도 이런 일은 있지 않소. 만약 그 각각이 사유하여서 생기게 되는 자, 또한 이런 일이 없소. 자체가 진실하지 않아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오. 어찌하여 이것을 견고하고 딱딱한 성질[견경성]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대왕이여, 이 견고하고 딱딱한 성질은 비슷하게 세워져도 필경에 이 몸은 썩어 문드러지고 흩어져 소멸하며, 오직 무덤 가운데를 그 돌아갈 곳으로 삼을 뿐이오. 그 견고하고 딱딱한 성질은 어느 곳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네 방향이나 위와 아래로 가는 것도 아니오. 대왕이여, 이 안의 지계를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오.”
대승집보살학론 제18권
자성청정품
대왕이여, 이것은 밖의 지계[외지계]의 견고하고 딱딱한 성질[견경성]이오. 그때 세간에서 범천이 거처하는 궁전을 최초로 건설하였는데, 큰 보배로써
성립되었소. 다시 타화자재천 등 여러 하늘이 거처하는 궁전이 생겨났는데, 모두 일곱 가지 보배로써 성립되었소. 대왕이여, 만약 지계의 견고하고 딱딱한 성질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그것이 어느 곳으로부터 오겠소? 다시 대지의 두께가 8만 4천 유선나를 이루고, 너비는 육만 유선나를 이루었소. 다시 바퀴처럼 둘러싸는 대륜위산이 생겨났는데, 견고하게 안주하여 하나의 금강과 동일하였소. 다시 소미로산ㆍ유건타산ㆍ영민타산ㆍ이사타산 내지 흑산이 생겨났소. 이와 같이 삼천대천세계가 차례로 성립되고 나서 견고하게 안주하였소. 만약 지계의 견고하고 딱딱한 성질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그것이 어느 곳으로부터 오겠소?
대왕이여, 또 이 세계가 파괴되어 소멸하려고 할 때,
혹은 불에 태워지고
혹은 물에 떠내려가고,
혹은 바람에 날리기도 하오.
그리하여 이 대지가 불에 태워질 때에는 비유하면 소유를 태우는 것처럼 그 불꽃이 더욱 치성해지고 이에 그을음과 타고 남은 나머지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오. 만약 물에 떠내려가게 되면 소금을 물속에 넣는 것처럼 찾아도 곧 소멸하여 버리오.
만약 비람풍에 날릴 때에는 그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다 흩어져 파괴되어 깨끗하게 사라져서 남는 것이 없소. 대왕이 여, 이러한 밖의 지계[외지계]가
생길 때에도 본래 공하고, 소멸할 때에도 또한 공하니,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오. 남자의 모습도 있지 않고 또한 여자의 모습도 없소. 다만 오직 언설이
나타내는 바가 있을 뿐이오. 이와 같이 지계와 지계의 성질은 모두 얻을 수가 없으니, 여실하고 바른 지혜로써 능히 알 것이오.
어떠한 것이 안의 수계[내수계]인가? 이 몸이 안으로 소유해서 보존하여 지니는 축축함 [습윤] 등의 성질이오.
그것은 또 무슨 뜻인가? 말하자면, 점액ㆍ땀ㆍ눈물ㆍ침ㆍ지방ㆍ골수ㆍ피고름ㆍ오줌 등의 사물을 안의 수계라고 하오.
대왕이여, 어떤 때는 문득 친애하는 사람 등을 보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혹은 고뇌에 핍박되어 눈물이 흐르고, 혹은 심원한 법을 듣고 믿음이 깊어져서 눈물이 흐르고, 혹은 차가운 바람을 맞고 눈물이 흐르오. 이와 같은 수계는 어느 곳으로부터
오고, 물기의 모습이 마를 때에는 다시 어느 곳으로 가겠소?
나아가 이 세계가 파괴될 때, 두루 검은 구름이 일어나서 서른두 겹으로 삼천대천세계를 가득히 덮고, 허공에서는 큰 비가 쏟아지는데 빗방울의 크기가 코끼리와 같소. 밤낮으로 계속 쏟아져 오중겁동안 그치지 않는데, 그 물이 가득히 쌓여 위로는 범천의 세계에 도달하오. 대왕이여, 이 큰 수계가 어느
곳으로부터 오겠소?
또 이 세계가 장차 파괴되려고 할 때, 두 개의 해가 나타나오. 두 개의 해가 나타나면 작은 하천의 원류가 모두 다 말라버리오.
세 개의 해가 나타날 때에는 무열 뇌지에서 흘러나오는 네 개의 하류가 또한 모두 고갈하오.
네 개의 해가 나타날 때에는 큰 바다의 물이 일 유선나감소하고, 혹은 이 혹은 삼 유선나로 감소하고, 점차로 감소하여 십 유선나 혹은 이십 유선나에
이르고, 차례로 고갈하여 80 유선나에 도달하오.
남은 물은 혹은 깊이가 일 다라수 혹은 가슴에 이르고, 혹은 소 발자국 정도이며, 나아가 물이 적게 남은 경우는 깊이가 손가락 하나정도[일지면]가 되오.
그때는 큰 바닷속의 물이 모두 다 말라버리고 깨끗하게 다하여서 남음이 없소. 대왕이여, 이 수계의 모습[수계상]은 생겨나도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하여도 가는 곳이 없소. 생기는 때에도 본래 공하고, 소멸하는 때에도 또한 공하니,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오.
남자의 모습도 있지 않고 또한 여자의 모습도 없소. 다만 오직 언설이 나타내는 바가 있을 뿐이오.
이와 같이 수계와 수계의 성질은 모두 얻을 수가 없소. 어떠한 것이 몸 안의 화계[내화계]인가? 이 몸이 안으로 소유해서 보존하여 지니는 따뜻함 [온열] 등의 성질이오.
그것은 또 무슨 뜻인가? 말하자면 따뜻하고 더운 음식을 입에 넣고 씹어서 성숙시키고 부수어서 안락하게 따뜻한 부류[열수]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안의 화계[내화계]라고 하오.
어떠한 것이 밖의 화계[외화계]인가? 말하자면 보존하여 지니지 않고서 따뜻함이 서로 생기는 것이오.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광야에서 불의 인연을 찾아서 혹은 고애(호애:잡초)로, 혹은 소의 분뇨가루[우분설]로, 혹은 도라면으로 불을 생기게 하고 나서, 혹은 초목ㆍ산림ㆍ취락을 태우고 또 그 밖의 처소를 모두 태우게 한다면, 대왕이여, 이와 같이 화계는 생겨도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하여도 가는 곳이 없소. 본래부터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요.
어떠한 것이 몸 안의 풍계[내풍계]인가? 가벼운 움직임[경동] 등의 성질이오.
그것은 또 무슨 뜻인가? 말하자면 이러한 안의 바람[내풍]은 어떤 때는 위로 가고 어떤 때는 아래로 가며, 혹은 복부 사이에 혹은 겨드랑이 혹은 등에 머무르오. 혹은 드러나지 않는 종양을 발생하고, 혹은 모여서 덩어리를 이루고, 혹은 칼로 찢는 것과 같고, 혹은 침으로 찌르는 것과 같으며, 내쉬고 들이쉬는 숨 등 몸의 지체에 두루 충만하오.
밖의 풍계[외풍계]를 말하겠소. 만약 이 바람이 사방으로부터 불어오면, 혹은 화살처럼 긴박하고, 혹은 칼처럼 날카롭소. 만약 광폭하게 일어나면 목재를 꺾어버리고 산봉우리를 무너뜨려 파열시키며, 만약 미세하게 일어나면 몸의 옷을 나부끼게 하고 다라수를 흔들리게 하오.
이것을 밖의 풍계라고 하오.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소. 어떠한 것이 안의 공계[내공계]인가? 이 몸 안의 피부와 살과 피 등이 나타나고 증장하여 걸리적거리는 성질[질애성]을 여의오.
그것은 또 무슨 뜻인가? 말하자면, 혹은 눈구멍ㆍ귓구멍ㆍ얼굴ㆍ목구멍 등이오.
음식을 먹어서 흡수되는 맛있는 음식이 창자와 위장 사이에서 막힘없이 통하여 나오오.
만약 그때 업의 인연이 육처를 이끌어 생기게 하고 육체가 생기고 나서 공계를 둘러싸면, 이것을 안의 공계의 수량[내공계수]에 들어간다고 하오.
그렇지만 그 공계가 어느 곳으로부터 오겠소?
혹은 다시 밖으로 나타내는 걸리적거리는 성질을 여의는 것을 밖의 공계[외공계]라고 하오.
대왕이여, 만약 색이 변이 하여 파괴되면 일체가 모두 공하오. 왜냐하면 이 허공계는 본래 다함이 없기 때문이오.
요동하지 않음에 안주하는 것이 마치 열반과 갈아서 일체의 처소에 두루 하여 장애가 없소. 대왕이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저 고원에서 연못과 우물을 파는 것과 같소.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이 연못과 우물 중에 존재하는 허공의 모습이어느 곳으로부터 오겠소?’
왕이 대답하였다.
‘오는 곳이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령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흙으로 그곳을 메우게 하면, 허공은 어느 곳으로 가겠소?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왕이 대답하였다.
‘허공은 가는 곳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이 허공계는 가고 옴이 없기 때문이오. 남자의 모습에도 머무르지 않고 여자의 모습에도 머무르지 않소. 대왕이여, 밖의 허공계는 본래 동요함이 없소. 왜냐하면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오. 여실하고 바른 지혜로써 능히 알 것이오.
또 다음에 대왕이여, 어떠한 것이 식 계인가? 말하자면, 만약 안근이 주체가 되어 각각 다르게 혈색과 형색 및 표색을 반연 한다면 안식계라고 하며, 만약 육근이 주체가 되어 육경을 반연하여 각각 다르게 건립한다면 육식계라고 하오.
또 이 시계는 근에 집착하지도 않고 경계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그 둘의 중간도 아니오.
그렇지만 이 식계는 각각 그 각각의 사물을 요별하고 나서는 문득 소멸하오.
생겨나서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하여 가는 곳이 없소. 대왕이여, 식(지)이 생겨날 때에도 공하고 소멸할 때에도 또한 공하니,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오.
남자의 모습에도 머무르지 않고 또한 여자의 모습에도 머무르지 않소. 다만 오직 언설이 나타내는 바가 있을 뿐이오.
이와 같이 식계(지계)와 시구계의 성질은 모두 얻을 수가 없으며, 여실하고 바른 지혜로써 능히 알 것이오.
대왕이여, 어떠한 것이 안처인가? 말하자면, 네 가지 대종[사대종]인 지계ㆍ수계ㆍ화계ㆍ풍계로 조성된 청정한 색[정색]이오.
만약 지계가 청정하면 곧 안처가 청정하고, 만약 수계ㆍ화계ㆍ풍계가 청정하면 곧 안처가 청정하오.
왜냐하면 지계가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안처가 생기게 되는데, 이 중에는 법을 얻는 일이 조금도 없소. 왜냐하면 주재가 없기 때문이며, 조작이 없기 때문이며, 오히려 열반처럼 자성이 청정하기 때문이오.
대왕이여, 이와 같이 아처를 각각 구하여도 모두 얻을 수가 없소. 왜냐하면 지계가 공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곧 지계가 청정하고, 나아가 풍계가 공하기 때문에 곧 풍계가 청정하오. 만약 모든 법의 자성이 본래 공하면, 곧 그 계가 어찌 청정함이 있겠소. 또한 분쟁도 없을 것이오.
혹은 청정하거나 혹은 분쟁하거나 모두 얻을 수 없으니, 다시 어떠한 색이 있어 볼 수 있겠소. 마땅히 알아야 하오.
아처는 필경에 공하기 때문에 자성도 또한 공하고, 전제와 후제를 모두 얻을 수 없으며, 미래에 조작되는 바도 또한 얻을 수 없소. 왜냐하면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오.
만약 자성이 없다면, 곧 남자의 모습도 없고 여자의 모습도 없으니, 어떻게 애락이 존재하겠소. 만약 애락이 생긴다면 이것은 악마의 경계이며, 만약
애락이 없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이오.
왜냐하면 만약 애락이 없다면 곧 능히 일체의 모든 법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오.
대왕이여, 어떠한 것이 이처인가? 말하자면, 네 가지 대종으로 조성된 청정한 색이오.
나아가 대왕이여, 모든 법은 해탈함에 결정적으로 현전 하는데, 법계가 공한 것처럼 시설할 수 없고, 나타날 수 없고, 기별할 수 없고, 희망하는 바가
없소. 대왕이여, 모든 감각기관은 각각 경계를 애착하며, 눈이 색을 반연 할 때에도 애착을 일으키오.
그러므로 색을 눈의 경계라고 말하는 것이오.
또 이 안근이 색의 경계를 반연 하는 데에는 세 가지의 모습을 주시함이 있소. 애락할 만한 색은 탐욕의 생각을 일으키고, 애락할 만하지 않은 색은 성내는 생각을 일으키며, 애락할 만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색은 중성적인 생각을 일으키오.
이와 같이 나아가 마음이 법처(법처)에 집착하면 마음[의]의 경계가 되오.
만약 그 의처가 애락할 만한 색을 반연하면 극심하게 애착을 일으키고, 그 때문에 이끌리어 탐욕의 행위를 일으키오.
애락할 만하지 않은 색은 성내는 행위를 일으키며, 애락할 만한 것도 아니고 애락할 만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리석은 행위를 일으키오.
이와 같이 소리 등이 세 가지의 반연을 받아들이는 모습 등은 앞에 의거하여 응당 말할 것이오.
대왕이여, 마땅히 모든 감각기관은 환상의 경계와 같고 꿈과 같음을 알아야 하오.
가령 어떤 사람이 잠자다가 꿈속에서 여러 채녀들과 함께 즐겼다고 합시다.
대왕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가 꿈을 깨고 나서 꿈속에서 채녀들과 즐긴 것을 기억하여 실제로 있었다고 하겠소?’
왕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대왕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이 사람이 꿈을 꾼 것에 집착하여 실제로 있었다고 말한다면 지혜로운 자라고 하겠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꿈속에서 본 뭇사람과 채녀들도 필경에 있었던 것이 아닌데,
어찌 하물며 그들과 더불어 서로 즐겼겠나이까?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다만 스스로 피로하게 할 뿐이며 꿈속의 경계를 생각하여도 다시는 얻을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러하고 그러하오. 우치한 이생(이 눈으로 색을 보고 나서는 마음으로 애락을 일으키고 다시 집착을 일으키오.
그 때문에 이끌리어 탐욕의 업의 행위를 짓는데, 몸으로 짓는 업이 세 가지, 말로 짓는 업이 네 가지, 마음으로 짓는 업이 세 가지요.
업을 처음 지으면 찰나에 소멸하여 버리는데,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과 사유와 위ㆍ아래ㆍ중간에 의거하지 않으면서도 머무르오.
그러다가 죽음의 한계에서 목숨이 소멸할 때, 자신의 업보를 모두 다 현전 시키는 것이 마치 꿈속에서 깨어나 꿈속의 일을 생각하는 것과 같소.
대왕이여, 식이 그 주체가 되고 업이 반연이 되어 두 가지가 서로 원인이 되어 최초의 식이 일어나오.
혹은 지옥에 처하고, 혹은 축생과 염마라의 세계, 또는 아소라 혹은 인간, 혹은 하늘에 떨어지오.
최초의 식이 일어나서 각각 그 과보를 받아 같은 부분의 마음의 성품이 상속하여 따라서 유전하오.
최후의 식이 소멸하는 것을 사온이라고 하고, 최초의 식이 일어나는 것을 생 온이라고 하오. 대왕이여, 마땅히 알아야 하오.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도달하게 되는 법은 조금도 없소. 왜냐하면 성품이 생겨나고 소멸하기 때문이오.
대왕이여, 몸의 식이 생길 때에도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할 때에도 가는 곳이 없소. 그 업이 생길 때에도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할 때에도 가는 곳이 없소.
최초의 식이 생길 때에도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할 때에도 가는 곳이 없소. 왜냐하면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요.
이와 같이 몸의 식은 몸의 식이 공하고, 자신의 업은 자신의 업이 공하고, 최초의 식은 최초의 식이 공하며, 혹은 소멸하는 것은 소멸하는 것이 공하고,
혹은 생겨나는 것은 생겨나는 것이 공하다고 깨닫게 되오. 업의 결박에는 조작하는 자가 있지 않고, 또한 받는 자도 없으며, 다만 이름의 상념[명상]뿐이라고 깨닫게 되오.
또 다음에 대왕이여, 가령 어떤 사람이 잠자다가 꿈속에서 모든 원수진 자들과 상대하며 서로 전투한다고 합시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이 사람이 깨어나서 꿈속의 전투 등의 사건을 기억하여 사념하는 것이 실제로 있었다고 하겠소?’
왕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이 사람이 꿈을 꾼 것에 집착하여 실제로 있었다고 말한다면, 지혜로운 자라고 하겠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꿈속에는 필경 상대할 원수진 자들도 있지 않은데, 어찌 하물며 그들과 더불어 서로 전투하겠나이까?
이 사람은 다만 스스로 근심하고 괴로워할 뿐이며 도무지 실제로 있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러하고 그러하오. 우치한 이생이 눈으로 나쁜 색을 보고는 곧 번뇌를 일으켜 혐오하여 버리고 파괴하고 훼손하여 잘못을 저지르며, 성내는 업의 행위를 짓는 것이오.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소.
또 다음에 대왕이여, 가령 어떤 사람이 잠자다가 꿈속에서 비사차에게 희롱을 당하여 마음으로 두려움을 내고 어리석고 혼미하여 기절하였다고 합시다. 대왕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이 사람이 깨어나서 꿈속에서 귀신에게 희롱당한 것을 기억하여 실제로 그러하였다고 하겠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꿈속에는 필경 귀신이 해친 번뇌도 없는데, 하물며 어리석어 미혹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러하고 그러하오. 우치한 이생이 눈으로 이 색을 보고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고 어리석은 업의 행위를 짓는 것이오.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소.
또 다음에 대왕이여, 가령 꿈속에서 뭇 사람들의 미묘한 노랫소리와 공후와 현악기 관악기의 여러 음악 등을 듣게 되었다고 합시다.
대왕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이 사람이 깨어나서 꿈 속에서 소유한 노래와 음악을 기억하여 사념하는 것이 실제로 있었다고 하겠소?’
왕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이 사람이 꿈을 꾼 것에 집착하여 실제로 있었다고 하면, 이것을 지혜롭다고 하겠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꿈속의 뭇사람들조차 오히려 얻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어찌 미묘한 여러 음악의 소리이겠나이까?
이 사람은 다만 스스로 피로하게 할 뿐이며 필경에 존재하는 것이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러하고 그러하오. 우치한 이생이 마음에 드는 소리를 듣고, 듣고 나서는 기뻐하여 다시 좋아하여 집착을 일으키고 탐욕의 업의 행위를 짓는 것이오. 이와 같이 향기 등의 각각에 세 가지가 있으니, 앞에 의거하여 응당 알아야 하오.
대왕이여, 이 법 중에서 스스로 마음을 잘 안온하게 하여 응당 이렇게 생각해야 하오.
나는 마땅히 어떻게 하여야 사람과 하늘 중에서 안목이 되고, 큰 등불과 횃불이 되어 조명을 비추고, 배를 조정하는 사람[선사]이 되어 저 언덕으로
건너게 하고, 큰 상인[상주]이 되어 보배가 있는 곳으로 이끌어 도달하게 하고, 아직 해탈하지 못한 자는 해탈을 얻게 하고, 아직 안온하지 못한 자는 그로 하여금 안온하게 하고, 아직 열반하지 못한 자는 열반을 증득하게 할 것인가?
대왕이여, 마땅히 알아야 하오. 모든 감각기관은 환상의 경계와 같고 꿈과 같아 범부가 결박되어 집착하여도 싫어함이 있지 않소.
이에 과거 한량없는
세상에 한량없는 칭호[무양칭]라고 하는 전륜왕이 있었소.
위덕과 명성과 부귀가 자제하고, 사대주를 통치하여 홀로 존귀하고 수승하였으며,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에 따라 수용을 얻었고, 모든 숲에 항상 꽃과 열매가 있었소.
그때 세상 사람들은 안온하여 번뇌가 없었고, 또 능히 뭇 미묘한 향수를 비 오듯 내리게 하였으며, 금ㆍ은ㆍ진기한 보배ㆍ갖가지의 도구ㆍ모든 필요한 것이 두루 모두 충족되었소.
그러다가 한때에 도리천으로 홀연히 승천하였소.
제석천주가 자리를 나누어 앉게 하였는데, 탐욕으로 싫어함이 없어 그 지위를 침탈하고자 하였소
이러한 생각을 하자 곧 퇴보하여 몰락하였소.
군신이 둘러싸고 다 함께 그를 보았는데, 생소를 뜨거운 모래 속에 둔 것처럼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장차 목숨이 끝마치게 되었소.
그때 자기애라고 하는 왕이 있었소. 이 일을 보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소.
그때 무량칭전륜왕이 자애에게 말하였소.
그러므로 대왕이여, 모든 감각기관은 환상의 경계와 같고 꿈과 같으니, 마땅히 스스로 안심하여 믿거나 수순 하지 말아야 하오. 몸은 아지랑이와 같아
자성이 없으며, 색ㆍ수ㆍ상ㆍ행의 자성이 진실하지 않은 것도 또한 이와 같소.’
대승집보살학론 제19권
14. 자성청정품
이것은 세속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며, 승의에서 건립한 모든 법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일체지로써 세간을 관찰하여 현장하고 깨달아 아셨다.
세속에 의하면 곧 육취가 있으니, 하늘ㆍ인간ㆍ아소라ㆍ지옥ㆍ아귀ㆍ방생이다. 상부와 하부의 종족, 과보를 받는 데 있어서 가난함과 부유함,
쇠퇴함과 흥성함, 괴로움과 즐거움, 훼손과 명예, 색과 무색 등의 갖가지 모습이 생겨났다.
어느 때 여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모든 중생들은 선서(선서)의 처소에서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고 승의의 설명을 좋아하였다.
그때 여래께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시기 위하여 증득한 바와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실은 조작이 있지 않고, 분별이 있지 않고, 지각이 있지 않고, 현시가 있지 않으며, 또한 언설도 없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은 일체가 모두 공하다. 만약 이와 같다면, 어찌하여 세존은 다시 위없는 바른 보리를 수기하는 것을 말하는가? 이 법 중에서 어떠한 것이 색이며, 다시 어떠한 것을 수ㆍ상ㆍ행ㆍ식이라고 하여 능히 위없는 바른 보리를 기별하는가? 이로 말미암아 색이 본래 없음을 알기 때문에 곧 보리는 생겨남이 없으며, 나아가 식이 본래 없기 때문에 또한 이와 동일하게 설한다. 모든 법 중에서 모두 얻을 바가 없으니, 무엇을 부처님이라고 하며, 무엇을 보리라고 하며, 무엇을 보살이라고 이름하며, 무엇을 수기라고 하는가? 혹은 색은 색이 공하고, 나아가 식은 식이 공하다. 다만 세속에 의거하여 찰나에 건립한다.
이와 같이 언설은 다만 이름과 생각[명상] 일뿐이라서 지혜로운 자는 이에 대하여 성내는 번뇌를 일으키지 말 것이다. 세존께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법의 실제는 필경에 다함이 없다. 그 낙변화천은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여 자아가 있다 하여도 또한 장애가 없다고 집착한다.’
세존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보리의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에 만약 능히 깨닫는다면 곧 한량없는 보리에 가까이하게 된다.
왜냐하면 만약 보리를 여의면 곧 열반이 없고, 만약 열반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이 없으면 곧 윤회에 대하여 두려워할 만한 것이 없다.
세존은 낙변화천이 집착하는 바인 자아가 있다는 것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거늘, 하물며 다시 실제 에 대하여 얻을 수 있겠는가?’
그때 사바세계의 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곧 이해하게 되었으며, 가타를 설하여 말하였다.”
마치 사람이 꿈속에서 배고픔에 시달려
마음껏 온갖 음식을 먹어도 어찌 배부른 일이 있으리오.
그 꿈의 모습이 본래 공함을 알며
모든 법의 자성도 역시 이와 같다.
마치 사람이 모든 언론을 잘 설하고
듣고 나서 모두 애락을 일으켜도
말하는 것이든 애락이든 둘 다 없으며
이 가운데 의혹을 일으킬 수 없다.
비유하면 금슬이 미묘한 소리를 일으켜도
그 소리의 자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온을 이락 함 [온애]을 깨닫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묘한 지혜로 추구하여도 얻을 수 없다.
비유하면 상가의 큰 음향처럼
듣고 나서 어디에서 생기는가 찾으면,
그 소리의 자성은 본래 공하여
곧 큰 선인[대선]의 일체법을 깨닫는다.
비유하면 가장 맛있는 모든 음식처럼
먹고 나면 몸에 자양 되어 충실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신미는 본래 없으니,
곧 큰 선인의 일체법을 깨닫는다.
비유하면 제석천이 보배 당기[보당]를 나타내는 것처럼
모든 하늘이 다 보고 애락을 일으켜도
이 모습이 본래 공함을 알면
곧 큰 선인의 일체법을 깨닫는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대지의 경계를 나누는 것처럼
강제로 성읍이라고 하여도 본래 없으며,
또한 만약 몸의 성[신성]의 자성이 공하다면
곧 큰 선인의 일체법을 깨닫는다.
비유하면 모인 사람이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대중이 함께 듣고 나서 흔쾌하게 기뻐하여도
그 소리의 자성은 본래 공하니,
곧 큰 선인의 일체법을 깨닫는다.
또 북을 두드리는 인연으로 생기는 것처럼
만약 물기가 없으면 소리가 널리 진동하는데,
이 모습이 어느 곳에서 오는가를 찾는다면
곧 큰 선인의 일체법을 깨닫는다.
다시 북을 두드려 큰 소리를 내는 것처럼
그것은 사려와 호소가 없으며,
이와 같이 분별하여 본래 없으면
곧 큰 선인의 일체법을 깨닫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일체의 법은 자성이 청정하여 법계가 본래 공하다. 마치 거울 속에 그 영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고, 수레바퀴를 조립하는 조각들이 모여 바퀴가 드러나는 것과 같이 내가 작업의 자성을 설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또 수림이 바람에 날리어 양자가 서로 마찰하여 불이 발생하는데 불이 어느 곳으로부터 일어났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작업을 설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이 백 살을 채웠다고 말하지만, 응당 모아져 볼 수 있는 나이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법집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눈과 더불어 색은 본래 다툼이 있지 않고 이와 같이 귀와 소리 나아가 마음과 법도 또한 다툼이 있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눈과 색이 다투는 바가 있지 않은가? 그 둘이 화합하여 서로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며, 나아가 마음과 법의 둘이 서로 화합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만약 화합하지 않는다면 곧 다투는 바가 있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법에는 둘이 있지 않으며, 그 때문에 다투지 않습니다. 모든 법은 둘이 없어 각각 서로 알지 못하며, 서로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곧 분별이 없습니다. 만약 분별을 여의면 곧 생겨남과 소멸함이 없으며, 증가함과 감소함이 없으며, 애락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혐오하지도 않으며, 윤회에 머무르지도 않고 열반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법에 대하여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면, 응당 곧 오염되거나 청정하다는 등등의 모습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한다면, 모두가 허망하게 분별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다시 이 눈 등의 모든 법에 대하여 잘 알고 나면,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사물과 더불어 다투지 않으며, 곧 능히 사문의 도행에 수순하여 법을 보는 자이며, 부처님을 보는 자이며, 중생을 보는 자이며, 공성을 보는 자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으면, 이것을 모든 법은 보이지 않는다고 이름합니다.”
그 경전에서 또 말한다.
“무소발보살(무소발보살)이 여쭈었다.
‘여여한 공[여여공]이란, 법에 있어서 어떻게 말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여여한 공은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 만약 이와 같다면, 모든 법이 모두 공하다.’
그때 무소발보살이 말씀드렸다.
‘그러하고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일체법이 모두 생기고 소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다시 유위의 모든 법이 전부 다 생기고 소멸한다고 말씀하셨나이까? 만약 이와 같다면, 곧 부처님의 탑묘는 반드시 생기고 소멸할 것입니다.’
‘선남자야, 여래는 큰 자비로 세간의 중생이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수순하여 생기고 소멸하는 법을 잘 설하는 것이며, 이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법이 조금도 없거니와 하물며 생기고 소멸하는 것이랴.’”
반야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구수 수보리여, 생기지 않는 법이란, 무엇을 생기지 않는다고 하오?’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사리자여, 생기는 것은 생기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생기지 않는 법이오.’”
이것을 청정한 복의 행위를 모아서 보리를 성취한다고 한다. 청정한 자애로써 유정을 반연 하고, 잘 관찰하고 나면 중생의 모습이 없다.
만약 다시 시방의 선서를 공양하여도 그 양족존께서는 이미 때와 오염을 여의어서 또한 볼 수가 없다.
응당 고뇌하는 중생을 공양해야 하며, 이것이 조어사께서 가르치신 바이다.
사람 중에서 으뜸인 이에게 공양하고 그것을 보시하며, 큰 자비심을 가지고 뭇 고뇌를 뽑아 버리며, 안온한 즐거움을 얻고 청정한 지혜를 일으켜 번뇌를 끊어서 제거한다. 이 바른 도리에 대하여 잘 알고 나서 마땅히 의혹을 여의어야 한다. 이와 같이 공양하면 과보를 얻는 것이 어렵지 않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가르친 대로 알고, 몸에 대한 사념[신염]과 여덟 가지 성스런 도[팔성도]를 관찰하여 모든 어리석은 오염을 끊어 마땅히 자기의 몸을 버리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야 한다. 세간과 모든 하늘나라의 미묘한 즐거움을 희구하지 않고, 사마타와 비발사나 혹은 적정하고 두루 적정함 [적편적]을 수행하는 것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다.
어떻게 세속의 모든 법을 건립하는가? 말하자면, 허망한 데에서 화합하고 상응하여 범부가 미혹하고 전도되며 아들 생각을 하여 의지하고 성취한다고 말한다. 승의의 공[승의 공]을 말하는 데에서는 곧 이러한 모습이 없으니, 일체의 법이 본래 생김이 없기 때문이다.
무구칭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질문하였다.
‘허망한 분별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대답하였다.
‘전도된 생각을 근본으로 합니다.’
또 질문하였다.
‘전도된 생각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머무름이 없음 [무주]을 근본으로 합니다.’
‘머무름이 없음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머무름이 없음은 곧 본래 없습니다. 문수사리여, 머무름이 없는 근본으로부터 곧 일체의 모든 법을 건립합니다.’”
또 반야경에서 말한다.
“응당 집을 버리고 용맹하게 안주하여 번뇌를 단절해야 하며, 마음이 깨끗하고 평등하게 반야바라밀다를 닦아야 한다.”
또 법집경에서 말한다.
“공(공)을 잘 이해하는 자는 마음이 세간에 존재하는 이익과 쇠퇴, 칭찬과 기만, 기쁨과 슬픔, 훼손과 명예에 의지하지 않고, 모든 고뇌에 대하여 혐오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모든 쾌락에 대하여 애착하지 않으며, 세간의 법에 의하여 파괴되지 않는다. 공을 잘 이해하는 자는 곧 공성(공성)을 깨달아 조금도 법을 취하거나 버리는 일이 없다. 만약 취하거나 버리는 일이 없으면 곧 탐하거나 싫어함이 없으니, 이것을 곧 공을 잘 보는 자라고 한다.
공을 잘 아는 자는 일체의 법에 대하여 집착하는 일이 없다. 만약 집착하는 일이 없으면 곧 모든 법에 대하여 다투는 바가 없다.”
“말하자면, 아만으로 말미암아 중생을 경시하여 버리다가 아견(아현)이 본래 없음을 깨닫고, 그가 만약 한마음으로 오로지 마음을 모아 능히 단절하면, 이 사람은 신속하게 마음이 청정하게 된다.
이와 같이 관찰하여 일체의 처소, 모든 중생의 처소에서 항상 존중하기를 좋아하고 반연 하는 것과 분별하는 바를 여읜다면, 자신과 타인이 평등하여 어떠한 차이가 있겠는가? 이와 같이 행동하고 배운다면, 이것은 곤란하지 않은 것이다. 비유하면 여의마니 보주를 사람이 좋아하는 바와 같이 능히 스스로 고귀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하여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말하자면, 전도되어 분별하고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유정의 주변에서 인색하게
굴기도 하고 헐뜯으며 비방하기도 하는데, 그 모두가 아만에 묶인 것으로 말미암는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칭찬과 비방을 많이 하고 뜨거운 번뇌를 증장시키는 것이 아비지옥에서 불타는 것과 같다.
그 소리는 무심하게 찬탄한다. 어찌하여 이 망령된 지혜를 일으켜 그를 기쁘게 하고 어찌하여 타인의 말에 대하여 애락을 일으키겠는가? 설사 타인의
기쁨이 생겨도 나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평등함을 좋아하여 스스로 안정을 취하고 분별의 결박을 풀어서 칭찬과 비방의 모습을 버린다. 이와 같이 알면 도무지 과보의 이익이 없다.
또 재물의 이익에 대하여 기쁨과 번뇌를 많이 일으키고 관습적으로 질투와 기교를 희구하여 두 가지로 수순하고 거슬려서 구구하게 무거운 죄를 짓는다. 바른 이치에 수순하여 마땅히 대치하여야 한다.
아만의 봉우리를 부수어 마음을 속히 청정하게 하고, 언어의 허물을 버리고 전적으로 고요함을 즐긴다. 오직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을 계속 나타내는
것은 제외한다.
허망한 모든 법에는 견실함이 없다는 것을 알면, 괴로움이 생기는 근본이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하게 된다.”
15. 정명수용품
또 다음에 장자여, 만약 재가 보살이라면 마땅히 정명과 평등을 수용하는 것을 좋아해야 하며, 법이 아닌 것과 삿된 생활 등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보운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어떻게 보살이 시주의 처소에서 신업을 가지고 위의 를 잠시 나타낼 것인가?
만약 발을 들어 올릴 때에는 서서히 걷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만약 발을 내려놓을 때에는 바라보지 않고 사유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어떻게 보살이 교만하고 거짓되지 않게 말할 것인가? 이익의 양성을 위하여 미세한 말ㆍ유연한 말ㆍ좋아하는 말ㆍ수순 하는 말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떻게 보살이 마음으로 아첨하거나 왜곡하지 않을 것인가? 이익의 양성을 위하여 말로는 욕심이 적다고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널리 탐욕을 추구하여 내면으로 뜨거운 번뇌를 품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살이 이익의 양성을 위해 이상을 나타내는 것을 잘 버릴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시주를 보게 되더라도 끝내 스스로 나는 의복ㆍ눕는 도구ㆍ
음식ㆍ질병에 필요한 의약이 부족하니 시혜를 내려주기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살이 이익의 양성을 위해 허황한 말로 고무시켜 동요하는 것을 잘 버릴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시주를 보게 되더라도, 어떤 시주가 이와 같은
물건을 나에게 보시하였고, 나는 어떤 물건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였다는 허황한 말을 하지 않는다.
또 나는 욕심이 적고 계율을 지키며 많이 들었기 때문에 보시하고, 나는 자비심을 일으켜서 그것을 거두어들인다고 말한다.
또한 몸으로 나쁜 짓을 하는 자는 이익의 양성을 위하기 때문에 분주하게 가고 오면서 금지된 계율을 범하며, 만약 그 밖의 사람이 범행자가 얻는 이익의 양성과 동일한 것을 보게 되면 마음으로 비방한다. 이것을 보살이 험악한 것을 여의고도 이익의 양성을 추구한다고 한다.
어떻게 법에 맞지 않는 이익의 양성을 버릴 것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이 두칭을 가지고 기만을 행하지 않고, 타인에게 믿음을 저버리게 되어도 해치거나 비방하지 않는다.
어떻게 깨끗하지 못한 이익의 양성을 버릴 것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이 솔도파에서 혹은 법 혹은 승가의 소유물에 대하여 서로 사용을 하지 않고, 만약 얻는 바가 있어도 또한 수긍하여 받지 않는다. 어떻게 이익의 양성에 탐착 하는 것을 버릴 것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이 얻은 물건을 자신이 거두지 않고, 자신이 부유하다고 자랑하지 않고, 또한 쌓아 모으지도 않으며, 수시로 사문ㆍ범지ㆍ바라문 등에게 보시하고, 혹은 자신이 수용한다.
설사 자신이 수용하더라도 오염된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설사 보살이 이익의 양성을 얻지 못하여도 마음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또한 뜨거운 번뇌도 없다.
혹은 또한 시주가 보시하는 것이 없어도 보살은 그에 대하여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 무진의경에서 말한다.
“보시를 받는데 감당하지 못하는 중생이 없으며, 그 허용되는 바와 같이 가지고 사용하며 보시하라. 구걸자가 있으면, 번뇌를 일으키며 보시하지 않고, 타인에게 핍박되어 보시하지 않는다. 피곤한 보시가 없고, 이상한 보시가 없고, 가볍고 쉬운 보시가 없고, 얼굴을 등지는 보시가 없고, 던져 버리는 보시가 없고, 공경하지 않는 보시가 없고, 분별하는 보시가 없고, 자기 손으로 하지 않는 보시가 없고, 시기에 의거하지 않는 보시가 없고, 평등하지 않은
보시가 없고, 중생을 고뇌하게 하는 보시가 없다.”
또 최상수소문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보살이 보시바라밀다를 행할 때, 만약 어떤 사람이 필요한 물건을 구걸하면, 마땅히 내가 지은 것에 의거하여 그것을 주어야 한다.
만약 술을 좋아하는 자가 있으면, 바른 사념을 생기게 하고, 곧 그 마실 것을 준 후에 다시 단절하게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청정한 방편으로 중생을 거두어들인다. 만약 그 내면의 마음으로 좋아하여 버리지 않는다면, 보살은 곧 갖가지 꾸지람을 한다.
술의 잘못은 날카로운 도검과 같아서 결정코 멀리 여의어 상속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보시하는 자는 곧 잘못이 없다.”
허공장경에서 말하였다.
말하자면, 자아가 청정한 보시, 자아의 소유가 청정한 보시, 원인이 청정한 보시, 보는 것이 청정한 보시, 모습이 청정한 보시, 갖가지 성품이 청정한
보시, 찰나의 과보가 청정한 보시, 마음이 균등하여 허공처럼 청정한 보시이다.
나아가 비유하면 허공의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살이 보시를 행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비유하면 허공이 넓고 장애가 없는 것처럼 보살이 보시를 행하여 광대하게 회향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비유하면 허공은 색상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 그와 같이 색을 떠나 보시를 행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비유하면 허공이 생각이 없고 조작이 없고 표현이 없고 모습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 보시를 행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비유하면 허공이 모든 불찰에 두루 하는 것처럼 보살이 큰 자비로 모든 유정을 반연하여 광대하게 보시를 행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비유하면 허공이 일체를 포함하여 허용하는 것처럼 보살이 보시를 행하여 모든 유정을 받아들이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나아가 변화로 생긴 사람[변화인]이 변화된 것을 보시하는 것처럼 수용도 있지 않고 또한 분별도 없다.
마음은 모든 법에 통달하여 희구하는 바가 없으며, 자아와 자아의 소유를 여의어 자성이 청정하다.
수승한 지혜를 가지고 모든 번뇌를 단절하며, 방편의 지혜를 가지고 유정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마치 허공처럼 보시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다.”
대승집보살학론 제20권
15. 정명수용품
또 보계경에서 말한다.
“몸으로 정진하는 것은 청정하다. 말하자면, 이 몸은 마치 그림자가 진동하는 소리[영향]와 같고, 언설의 자성은 무기이며, 이 마음은 필경에 공적 하다고 안다. 마땅히 대비로써 자비의 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모든 행위를 구족 하여 깊이 선정을 수행한다.
공덕의 법에 대하여 부족함이 없게 한다. 보리심으로써 모든 중생을 관찰하여 부족함이 없고 보시를 즐거이 행한다.
나아가 방편에 있어 부족함이 없고, 자ㆍ비ㆍ희ㆍ사에 있어 깊은 마음으로 상응하여 부족함이 없고, 보시ㆍ애어ㆍ이행ㆍ동사에 있어 부족함이 없고,
바른 사념[정염]과 바른 지식[정지]에 있어 부족함이 없고, 염처ㆍ정근ㆍ신족ㆍ근ㆍ역ㆍ각지ㆍ성도에 있어 부족함이 없으며, 나아가 사마타ㆍ비발사나에 있어 결함이 없다.
업과 번뇌의 자성을 알지 못하는 것을 버리고, 그 몸을 수행하고 검증하여 방종하지 않게 하고, 항상 불사를 권하여 유정을 성숙시키며, 모두가 청량함을 얻어 적정에 안주하게 한다.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이 선바라밀다행을 수행하여 청정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나아가 지혜바라밀다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16. 증상승력품
또 여래비밀경에서 말한다.
“그때 아사세왕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몇 가지의 법을 갖추어 수행해야 곧 능히 이와 같이 수승한 힘을 획득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보살이 만약 열 가지 법을 수행하면 이렇게 수승한 이익을 획득하게 되오. 어떠한 것들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 보살은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위없는 바른 법을 포기하여 버리지 않소.
둘째, 일체중생에 대하여 겸손한 생각을 하고 자만한 마음을 증장하지 않소.
셋째, 그 열악한 중생에 대하여 연민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손해를 끼치지 않소.
넷째, 굶주리고 목마른 중생을 보면 미묘한 음식을 보시하오.
다섯째, 두려워하는 중생을 보면 그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오.
여섯째, 질병을 앓는 중생을 보면 약을 베풀어 구제하오.
일곱째, 궁핍한 중생을 보면 은혜를 베풀어 만족하게 하오.
여덟째, 부처님의 탑묘에 있는 형상과 그림을 보면 닦아서 원만하고 깨끗하게 하오.
아홉째, 환희하는 말을 하여 중생을 위안하오.
열째, 무거운 짐을 지고 피곤하여 괴로워하는 저 중생을 보면 그 무겁게 짊어진 것을 제거하오.
보살이 만약 이와 같은 열 가지 법을 구족 하면, 곧 능히 이렇게 가장 수승한 힘을 획득하오.’”
또 해의경에서 말한다.
“보살이 만약 능히 정진을 일으켜서 항상 견고하게 부지런히 수행하여 즐거워하고, 일으킨 정진에 대하여 휴식하는 일이 없으면, 모든 보살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하여 얻는 것이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해의여, 정진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이에 보리를 얻는 것이다.
만약 게으르면 부처님의 보리에 대하여 멀고 또다시 멀어진다. 게으름이 없는 자는 능히 보시를 행하고, 나아가 게으름이 없는 자는 능히 지혜를 모은다.”
월등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마치 물속에서 우발라화가 피어나는 것처럼 차례로 증장하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땅히 점차적으로 보시 등의 행위를 닦고 배워야 한다.
능단금강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만약 보살이 보시에 잘 머무르면, 얻게 되는 복덩어리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또 대반야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또 다음에 사리자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기꺼이 반야바라밀다를 닦고자 하면, 조금만 보시하여서는 원만함을 얻지 못하며, 응당 일체의 중생에게 금ㆍ은ㆍ진귀한 보배ㆍ원림ㆍ사택의 갖가지 필요한 것을 그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에 따라서 베풀어야 한다.
일체의 모습과 지혜와 훌륭한 방편을 가지고 능히 한량없는 아승기의 일체중생에게 회향하며 마땅히 반야바라밀다를 닦고 배워야 한다.”
여기에서 큰 자비의 공을 합장하여 [대비공장] 자성이 청정해지고 수용하는 복덩어리를 신속하게 증장시키는 것을 설명한다.
만약 큰 자비가 없다면 보살의 행실이 아니다. 모든 선을 건립함에 있어서는 이것이 근본이 된다.
이와 같이 깊은 마음으로 견고하게 큰 자비가 현전 하고, 상응하는 모든 행위를 용맹하게 닦으면, 곧 능히 시라가 청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게송에서 말한다.
사람이 잘 싸우기 위해서는
예리한 무기와 견고하고 용감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만약 조금이라도 게으른 일이 있으면
곧 그것에 붙잡히게 된다.
또 선재가 성스런 자비의 선지식[성자선지지, Maitreya:자씨보살ㆍ미륵보살]의 처소에 찾아가서 곧 스스로 생각한 것과 같다.
‘나의 이 몸은 과거 세상에서 용맹한 마음이 없고 견고한 의지가 없고 청정한 원인이 없어서 모든 윤회를 받아 마음이 탕탕하게 흐르는 것을 좋아하고
전도되어 분별하며, 스스로 삿되게 사유하고 기꺼이 탐욕의 행위를 익히며, 세간의 이롭지 않은 사업에 취착 하며, 혹은 자신이 획득한 의리에 대하여
불평등을 일으켜 모두 다 포기하여 버렸다.
현재 세상에서는 크게 용맹을 일으키고, 간택하고 분별하여 진실하게 사유하며, 모든 보살의 소행에 대하여 바르게 행하여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모든 중생에 대하여 증상 된 마음을 일으켜 많이 요익한 바가 있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큰 정진을 일으켜 크게 선한 이로움을 지으며,
모든 감각기관을 장엄하고 원력을 증장시키며 경전을 읽고 외우고 마음으로 청정하게 믿고 이해하며, 몸과 마음을 거두어 지녀 거만한 태도를 내지
않으며,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걱정하고 고뇌하는 괴로움의 바다[고해]를 항상 즐거이 벗어난다.
그리고 미래 세상에서는 기꺼이 보살이 수행하는 행위를 행하며, 마땅히 일체의 불찰에 참배하여 여래께서 가르쳐 타이르는 바를 공경하여 받으며,
설법을 잘하는 법사를 가까이하여 공양하며, 상응하는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기꺼이 추구하며, 모든 선지식을 받들어 공양하며, 모든 부처님 법을
나타내어 연설할 것이다.
보살이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사유하고 관찰하면, 곧 능히 원력과 지혜의 몸[원역지신]을 증장하여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고 뭇 덕의 근본을 심을 것이다.’
무진의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보살이 홀로 반려자 없이 용맹하고 견고하면 필경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거두어들인다. 깊은 마음으로 스스로 수행하여 타인이 짓는 것을 빌리지
않고 정진의 갑옷으로써 스스로 장엄한다. 모든 중생이 선한 업을 짓는 것처럼 나도 또한 그와 같이 전부 마땅히 지어야 하며, 더불어 모든 보살이 처음 발심한 이래로 수행한 모든 행위를 나도 또한 마땅히 행해야 한다.
보시가 나의 반려가 아니라 내가 보시의 반려이며, 계율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가 나의 반려가
아니라 내가 그것의 반려이다. 모든 바라밀이 능히 나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능히 모든 바라밀을 부리며, 일체의 선근도 모두 또한 이와 같다.
나아가 금강도량에 앉아서 모든 악마들을 허물어뜨리고 한 찰나 사이에 평등하게 상응하는 지혜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된다.
금강당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일천자가 세간에 출현하면, 홀로 반려자 없이 지나는 경계에서 퇴전하는 일이 없고, 살아서 눈먼 자에 대하여 염오 하여 근심하지 않고, 나후
아수라왕에 대하여 염오하여 근심하지 않고, 건달바성에 대하여 염오하여 근심하지 않고, 염부제 방처의 더럽고 나쁜 것에 대하여 염오하여 근심하지 않고, 사천하 지계의 미진한 것에 대하여 근심하지 않고, 모든 높은 산의 연기와 구름 등의 장애에 대하여 모두 염오하여 근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세간에 출현하는 것도 역시 이와 같아 분별이 없는 지혜로써 바르게 생각하고 요별한다.
만약 중생에게 손해를 입어도 염오하여 근심하지 않고 마음으로 퇴전하지 않는다.
만약 보살의 광대한 선근에 대하여 질투를 하여도 보살은 그에 대하여 염오하여 근심하지 않고 마음으로 퇴전하지 않는다.
만약 다시 중생이 삿된 견해의 때에 오염되어도 보살은 그에 대하여 염오하여 근심하지 않고 마음으로 퇴전하지 않는다.
만약 중생이 항상 성냄에 결박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보살은 그에 대하여 또한 멀리 여의지 않는다.
만약 중생이 우치에 덮여 장애 받아 번뇌의 때가 무거워도, 다시 보리의 종자를 파괴하여 일체의 세간이 능히 구호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도 보살은 그에 대하여 경시하여 자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큰 자비로써 중생에게 잘못이 있는 것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일륜이 세간에 출현하여 모두 밝게 나타나서 음산한 장애가 없게 되는 것과 같다. 만약 또한 중생이 우치에 덮여 모든 부처님을 믿지 않고, 바른
법을 듣지 않고, 스님의 복전[승전]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조작한 갖가지 괴로움의 원인으로 인하여 혹은 지옥과 축생과 귀신 세계에 떨어지더라도 그때 보살은 그 중생이 이러한 업을 짓는 것을 보고 나서 마음으로 동요되어 혼란하지 않고, 또한 간택하지 않고, 놀라 두려워하지 않으며, 견고하고 용맹한 마음을 일으켜 퇴전하지 않고, 결정코 그를 대신하여 모든 고뇌를 받는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나는 마땅히 그 모든 중생을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간의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고뇌하는 난처함, 여덟 가지 한가함이 없는 난처함, 모든 윤회하는 난처함, 모든 나쁜 견해의 난처함, 선한 법을 파괴하는 난처함, 지혜가 없음을 일으키는 난처함 등에 대하여 나는 마땅히 필경에 이러한 난처함을 벗어나게 하겠다. 이 모든 중생은 무명에 가려지고 애욕의 그물에 집착되고 유결에 속박되고 모든 괴로움에 매어 있어 깨달음을 내지 못하고 벗어남을 구하지 못하고 항상 의혹을 품어 서원과 서로 어긋나며 윤회의 바다에서 한결같이 떴다 가라앉았다 한다. 나는 마땅히 일체지의 왕[일체지 왕]에 안주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의리를 성취하여 모두 해탈하게 하여야 한다.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능히 구호할 수 있다. 가령 모든 세계가 전부 나쁜 세상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 중생이 그 속에 가득 차도 내가 모은 일체 선근으로써 평등하게 회향하여 받지 않는 자가 없게 된다.
나아가 최후의 변제를 경과하는 시기에 낱낱의 나쁜 세상이 소멸하여 남음이 없고, 낱낱의 중생이 모두 해탈하게 된다.
만약 한 사람이더라도 아직 괴로움을 여의지 못하였다면, 나는 마땅히 몸으로써 그를 구해야 한다.
원하건대, 모든 중생이 나의 몸으로 인하여 괴로움의 한계를 다하게 되어 안온한 즐거움을 얻고, 각각 즐거이 진실한 언어를 말하며, 서로 기만하지 않고 손해 끼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마땅히 일체지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다섯 가지 욕망의 경계를 여의고, 보살행을 행하여 필경에 위없는 바른 보리에 안주하게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은 욕망에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때문에 악마의 경계에 포섭되니,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 꾸짖는 바이다. 마땅히 탐욕은 뭇 괴로움의 근본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혹은 송사를 하고 혹은 서로 싸우고 모든 번뇌를 일으키며 나중에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지고, 나아가 하늘에 태어나는 업을 단절하고 모든 부처님을 멀리 여의니, 무엇으로 말미암아 능히 위없는 지혜의 왕[무상지왕]을 세우겠는가? 이 모든 중생은 탐욕에 빠져 있어 맹렬하게 타서 녹아버리는 한량없는 잘못과 근심이 있으니, 나는 선근으로써 평등하게 회향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다 탐욕을 버리고 기꺼이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여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하여야 한다.
나는 마땅히 그를 위하여 큰 도사가 되어 방편지로써 저 언덕에 도달하게 하여야 한다.’
또 해가 떠서 사대주를 비추는 것처럼 모든 경계에서 모두가 드러나게 한다. 혹은 왕의 궁전과 취락과 성읍의 백성이 왕래하며 일하는 것과 곡식을 키우는 것과 초목을 무성하게 하는 것은 홀로 세간에서 뛰어나 결정코 둘이 없는 이 일천자 광명의 위덕이다.
이와 같이 보살이 처음 발심한 이래로 모든 중생이 선근을 심지 않은 것을 보고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마땅히 일체중생을 구호해야 한다.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해탈시켜야 한다.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비추어야 한다.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가르쳐 타일러야 한다.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성숙시켜 모두 안온하게 모든 의혹을 단절하게 하여야 한다.’
또 일륜이 세간에 출현하여 광명을 널리 비추어 타인이 구하는 것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다. 세간에 출현하여 괴로워하는 중생을 보고 타인의 요청을 기대하지 않고서 바야흐로 구호하며, 작은 선근이라도 회향하지 않음이 없으며, 모든 중생을 장엄하게 한다.”
또 무진의경에서 말한다.
“보살은 겁의 수효를 헤아리지 않고 보리를 추구한다. 나고 죽는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시간의 분량은 헤아릴 수 없으며, 혹은 겁
동안에 장엄을 짓는다. 나아가 모든 부처님을 한 번 보면 도심을 한 번 일으키는데 모신 모든 부처님의 수효가 항하의 모래수와 같고 받들어 공양하며
게으른 일이 없어야 바야흐로 능히 일체중생의 마음의 행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것을 보살의 다함이 없는 장엄[무진장엄]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단바라밀의 보리 분 법을 닦으면서도 능히 상호를 장엄하게 구족 한다.”
또 보운경에서 말한다.
“모든 중생이 장님으로 지혜의 눈이 없어 어긋나서 슬퍼하고 조절하기 어려워서 계율을 범하고 나태함에 떨어져서 뭇 악함을 전부 갖추고 있는 것을
보살이 보면, 그때 보살은 깊이 싫어하여 여의고 정토에 태어나기를 추구한다.
나는 모든 나쁜 것의 이름을 듣게 되지 않기를 원한다’라고 생각하고 나서, 다시 또 사유한다.
‘이 모든 중생은 어리석고 벙어리이므로 열반의 부분이 없으며 믿는 마음을 내지 않아 모든 부처님을 멀리 여의니, 나는 마땅히 조복 하여 그를 구제하여 건져내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을 일으킬 때 모든 악마의 궁전이 모두 다 진동하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한 목소리로 찬탄한다.
‘이 사람은 오래되지 않아 도량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법집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부처님의 법 중에서는 질직함을 근본으로 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질직한 마음이 없으면 곧 일체 부처님 법을 멀리 여읜다.
만약 깊은 마음으로 견고함을 구족 하면, 일찍이 듣지 못한 깊고 미묘한 법에 대하여 목마르게 우러르며, 혹은 공중이나 산림의 나무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깊고 미묘한 법의 소리를 내어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행해야 한다.
사람이 발이 있으면 곧 놀러 다니는 것처럼 보살이 만약 질직한 깊은 마음을 구족하면 능히 일체의 부처님 법을 수행한다.
사람이 몸이 있으면 곧 수명이 있는 것처럼 보살이 만약 질직한 깊은 마음을 구족하면 능히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획득한다.
사람이 생명이 있으면 곧 재물의 이익이 있는 것처럼 보살이 만약 질직한 깊은 마음을 구족하면 능히 모든 부처님의 성스런 재물을 획득한다.
비유하면 큰 횃불은 그 불꽃이 치성하게 타는 것처럼 보살이 만약 질직한 깊은 마음을 구족하면 모든 부처님의 법에 대하여 곧 능히 명료해진다.
비유하면 구름이 있으면 곧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살이 만약 질직한 깊은 마음을 구족하면 곧 능히 모든 부처님의 법의 비[법우]를 널리 뿌리게 된다.
그러므로 보살은 응당 질직한 깊은 마음을 스스로 잘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유하면 나무의 뿌리가 부패하면 능히 가지ㆍ잎ㆍ꽃ㆍ열매를 생기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살이 만약 질직한 깊은 마음이 없으면 모든 선한 법을 다시는 키우지 못하고, 또한 능히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취하지 못한다.”
대승집보살학론 제21권
16. 증상승력품 ②
무진의경에서 말했다.
또 마음에 이 마음은 모든 짓는 바에 대하여 사기[기사]를 여의기 때문이다. 사기를 여의는 것은 아첨[첨]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아첨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능히 결정하기 때문이다. 능히 결정하는 것은 기만적인 환상[광환]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기만적인 환상을 제거하는 것은 청정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청정에 머무르는 것은 항상 정직하기 때문이다. 항상 정직한 것은 삿된 왜곡[사곡]이 없기 때문이다. 삿된 왜곡이 없는 것은 성품이 명료하기 때문이다.
성품이 명료한 것은 잘 깨달아 이해하기 [오해] 때문이다. 잘 깨달아 이해하는 것은 진실을 얻기 때문이다.
진실을 얻는 것은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괴할 수 없는 것은 견고한 감옥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견고한 감옥을 획득하는 것은 요동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요동하지 않게 되는 것은 중생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깊은 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이 경전에서 다시 말했다.
“최상의 수승한 깊은 마음을 닦고, 고요하게 안주하여 중생을 자비롭게 덮어준다. 현명하고 선한 자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현명하고 선하지 않은 자를 자비로운 마음으로 구제하여 건져낸다. 구호받지 못하는 자는 구호하고, 귀의할 곳이 없는 자에게는 귀의처가 되고, 표류하는 자에게는 모래톱[주저]이 되고, 주재가 없는 자에게는 주재가 되고, 반려자가 없는 자에게는 반려가 되고, 삿되게 왜곡된 자는 정직하게 하고, 난폭한 자는 유순하게 하고, 아첨하는 자는 바르게 하고, 허망하게 기만하는 자는 성실하게 하고, 간악한 자는 순수하게 하고, 은혜를 모르는 자는 은혜를 알게 하고, 고뇌하는 자는 안온하게 하고, 요익하지 않은 자는 요익하게 하고, 아만이 있는 자는 겸손하게 하고, 비방하고 헐뜯는 자는 찬미하게 하고, 착각하여 잘못하는 자는 가르치고, 수호받지 못하는 자는 수호하고, 서로 어긋나는 자에 대하여 잘못을 보지 않고, 모든 스승과 존장에서 청정한 행위를 일으키고, 훌륭한 방편과 평등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가르쳐 타이른 것에 대하여 기억하여 잊지 않는다.”
법집경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때 관세음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수학하는 데에는 많은 법을 요구하지 않나이다. 만약 한 가지 법을 지니면 곧 능히 일체 부처님의 법을 잘 알게 됩니다.
이 한 가지 법이란, 말하자면 큰 자비입니다
. 만약 모든 보살이 능히 큰 자비를 행하면, 곧 능히 일체 부처님의 법을 손안에 있는 것과 같이 거두어 가집니다. 세존이시여, 전륜성왕이 소유하는 윤보가 그 도달하는 곳에 따라서 모두 다 순종하는 것처럼, 보살이 만약 큰 자비를 일으키면 곧 모든 부처님의 법을 자연스럽게 획득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태양이 떠서 세간을 밝게 비추면 모든 유정이 하는 일을 모두 성취하게 되는 것처럼, 보살이 만약 큰 자비로써 일체의 보리에 관계되는 법을 비추면 곧 수행이 쉬어지는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모든 감각기관이 마음을 근본으로 삼아 전부 능히 자기 부분의 경계로 취하는 것처럼, 보살이 큰 자비에 머무르면 곧 일체의 보리에 관계된 법을 각각 수행하여 이치대로 행합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그 명근에 의거하면 그 밖의 모든 감각기관이 있는 것처럼, 보살이 만약 큰 자비가 있으면 곧 능히 모든 보리에 관계된 법을 수행합니다.
또 무진의경에서 말했다.
“비유하면 사람의 명근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그 근본으로 삼는 것처럼, 보살이 대승을 수학하는 것은 곧 큰 자비를 그 근본으로 삼는다.
또 장자에게 오직 외아들이 있어 사랑하며 생각하는 정이 깊어 일찍이 잠시도 버리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큰 자비를 획득하여 모든 중생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지혜가 없어 어리석은 이생의 부류에는 헤아릴 수 없는 몸이 있어 이미 소멸하였고 현재 소멸하고 있으며 앞으로 소멸할 것이다.
이와 같이 소멸하고 나서도 몸에 대하여 싫어하지 않고, 전전하여 다시 뭇 괴로움의 기관을 증장하여 나고 죽는 흐름에 따라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온을 집착하고 갈무리한 것을 버리지 못하고, 대종의 독사를 멀리 여의지 못하고, 육처(육처)가 공한 무리임을 관찰하지 못하고, 자아와 자아의 소유를 단절하여 제거하지 못하고, 견해에 자만하는 독화살을 빼버리지 못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을 꺼버리지 못하고, 무명의 어두움을 파괴하지 못하고, 갈애의 거대한 물결을 말려버리지 못하고, 열 가지 힘[십역]을 구 족 한 큰 성인인 도사를 구하지 않고, 삿된 조림에 들어가 악마의 잔당을 따라다니고, 윤회의 바다에서 한결같이 뜨고 가라앉으며, 무명이라는 알의 껍데기가 두터워서 그 속에 묶여 있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에 항상 시달리고
있다. 나는 이제 모든 유정들을 연민하여 구호를 하며, 한량없는 복과 지혜의 자량을 쌓아서 이 선근으로써 모두 다 마침내 청정하게 할 것이다.
그 경전에서 다시 말했다.
“이 모든 유정은 나고 죽는 험난한 나쁜 세상인 지옥ㆍ축생ㆍ염마라의 세계에서 치달리고, 어리석은 어두움에 가려져 큰 도사를 뵙지 못하고, 나아가
애욕의 하천에 빠져 회류하며 유전하고, 탐내고 성내고 해침을 찾는 일을 소멸하는 것에 대해 성찰할 겨를이 없고, 탐욕의 습기를 버릴 인연이 없고,
신 겸의 나찰에 붙잡혀 매여 있고, 아만의 모래톱에서 의지하는 바가 없고, 육체의 취락을 초월하지 못하고, 능히 구제되고 제도될 작은 선근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큰 자비의 힘으로써 그 중생을 빼내어 고난을 벗어나고 때를 여의어 적정하게 하고 마땅히 일체지의 지혜라는 큰 보배 섬에 안주시켜야 한다. 이 모든 유정은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번뇌에 따라 유전하여 계속 묶이고 탐욕과 애욕의 수갑에 채워지고 무명의 아첨과 기만에 오랫동안
덮여 가리고, 삼계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을 구하지 못한다.
나는 갖가지 두려움이 현전 하는 고뇌로부터 그 모두를 벗어나게 하여 장애가 없는 안온한 즐거움을 얻게 하여야 한다.”
또 최상문경에서 말했다.
“밤낮 여섯 차례 새롭고 깨끗한 옷을 입고 모든 부처님을 예배하며 공경하고 항상 존중하며 차례로 닦아서 보현행을 성취한다.”
또 삼취경에서 말한다.
“얼굴을 발에 대고 모든 부처님을 예배하여 공경하면, 곧 능히 일체의 죄를 참회하여 제거하게 된다.
세 가지 모음[삼취]이란, 참회ㆍ권청ㆍ수희복 등을 말한다.”
또 우파리소문경 중에서는 다만 권청 한 가지 의리만을 해명한다.
모든 악마의 그물을 해체하는 것은 항상 하지 않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또 평등하게 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예배하여 공경함을 행한다.
무진의경에서 자신과 타인이 참회하여 얻는 복된 행위를 말하는 바와 같고, 보현행경의 네 가지 가타[사가타]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
따라서 기뻐하는 복된 행위는 월등경의 수희품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밖의 경전에서는 세 가지를 함께 설명한다.
다음에 광대하게 공양하여 회향하는 행상을 설명한다.
보운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혹은 모든 보살로서 생화와 모든 범향ㆍ전단향수ㆍ겁수ㆍ보수를 가지고 주재자가 없고 붙잡아 지닐 것이 없는 자는 밤낮 여섯 차례 마음을 운용하여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공양한다.”
또 삼삼 매 야경에서 말했다.
시방세계의 국토에 있는 땅에서 생기는 보물ㆍ산수에서 생기는 보물ㆍ산에서 나는 일체의 미묘한 약ㆍ모든 청정한 물ㆍ가장 미묘한 음식ㆍ모든 금과 보배, 나아가 북구로주의 숲에서 나는 등나무[임 등]ㆍ지미ㆍ자연적으로 생기는 향기로운 벼[향도] 최상으로 좋아하여 수용하는 것을 오랫동안 마음을 운용하여 앞에서처럼 공양한다.”
십지경에서 말했다.
또 다음에 보살마하살이 극의지에 머물러 열 가지 광대한 서원을 이끌어 세운다. 말하자면, 일체 여래를 받들어 공양하면서 능히 청정하고 수승한 이해를 성취하며, 이와 같은 행상으로 허공계를 다하여 법성과 동등하고 미래제를 다하여 일체 겁수 동안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셔도 크게 공양을 하여 쉼이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일체의 여래께서 설하신 법안을 받아 지녀서 능히 모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수호하고자 하여 허공계를 다하여 법성과 동등하고 미래제를 다하여
일체 겁수 동안 바른 법을 거두어들여 쉼이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매 처음에는 도솔천의 궁전에 안주하고, 강신하여 모태에 의탁하고, 태 안에 머무르고, 탄생하고, 나이가 들고, 출가하여 수행하고, 고행하고, 보리도량에 앉아서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바른 법의 바퀴를 굴리고, 열반의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하여 가장 먼저 가행하여 찾아가서 공양하고, 일체 처소에서 동시에 최상의 법의 바퀴를 굴리고자 허공계를 다하여 법성과 동등하고 미래제를 다하여 일체의 겁수 동안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법의 바퀴를 굴리시는 것을 청하여 쉼이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광대하고 한량없는 모든 보살행을 일으키고, 또 분별이 없는 모든 바라밀을 원만하고 청정하게 하고, 포섭하는 모든 지의 총상ㆍ별상ㆍ동상ㆍ이상ㆍ성상ㆍ괴상을 여실하게 전도되지 않고, 모든 보살행을 나타내어 가르쳐 훈계하고 발심하게 하려고 허공계를 다하여 법성과 동등하고 미래제를 다하여 일체 겁수 동안 바른 행위를 행하는 것에 쉼이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모든 유정세계를 성숙시키고, 유색ㆍ무색ㆍ유상ㆍ무상ㆍ비유상ㆍ비무상ㆍ난생ㆍ태생ㆍ습생ㆍ화생ㆍ삼계ㆍ육취에 계박되어 속하는 바, 명색에 포섭되는 바를 영원히 단절하게 하여 일체 취의 무리[취수]가 모두 다 모든 부처님의 법속으로 들어가서 필경에 일체지의 지혜에 안주하여 남음이 없게 하려고 허공계를 다하여 법성과 동등하고 미래제를 다하여 일체 겁수 동안 유정을 성숙시키는 것에 쉼이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시방세계에 이해하여 들어가고자 하여 혹은 넓고 혹은 좁게, 혹은 거칠고 혹은 미세하게, 혹은 엎드리고 혹은 우러르며 난잡하게 머무르는 것이 마치
제석 그물[제망]의 분위가 각각 다른 것처럼 상응하는 지혜로써 현전에 깨닫고자 허공계를 다하여 법성과 동등하고 미래제를 다하여 일체의 겁수 동안 전부 능히 이와 같은 세계에 이해하여 들어가며 쉼이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고자 하여 한 불찰에서 한 불찰에 이르러 모두 광명으로써 주변을 두루 빛나게 장식하고 모든 번뇌를 여의어 청정한 국토를 성취하고, 큰 지혜를 지닌 유정이 그 속에 가득하여 널리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경계에 들어가고, 모든 유정이 마음으로 좋아하여 귀향하는 바를 따라서 평등하게 나타내고 모두 환희하게 하여 허공계를 다하여 법성과 동등하고 미래제를 다하여 일체 겁수 동안, 또 불찰들을 널리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려고 쉼이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이 일곱 번째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모든 큰 보살들과 동일한 의욕으로 선근을 쌓아 모으고자 하여 동일하게 반연 하는 것에 평등한 성품으로 머무르고, 항상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을 만나게 되고, 그 욕망하는 바에 따라서 서로 여의지 않고, 부처님의 위력을 나타내어 동등하게 마음을 일으키고, 그리고 다시 퇴보하지 않는 신통을 얻어
곧 능히 모든 세계에 찾아가서 대중 속에서 같은 몸을 나타내어 기꺼이 보살이 행하는 바른 행위를 수행하고 불가사의한 대승의 미묘한 법을 깨달으며, 허공계를 다하여 법성과 동등하고 미래제를 다하여 일체 겁수 동안 모든 보살과 동등하게 대승을 깨닫기 위하여 쉼이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이 여덟 번째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퇴전하지 않는 바퀴인 모든 보살의 행위에 올라타 제어하고자 하여 신업ㆍ어업ㆍ의업을 모두 황당하게 훼손하지 않고, 만약 잠시 조작하는 것을 보아도 부처님 법 중에서 문득 결정하게 되고, 잠시 말하는 소리를 들어도 곧 청정한 믿음을 내어 능히 바른 지혜를 일으켜 영원히 번뇌를 단절하며, 이 몸으로 하여금 큰 약나무[대약수]처럼 모든 질병의 괴로움을 구제하기를 원하고, 여의보처럼 모든 빈궁함을 구제하기를 원하여 널리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보살행을 수행하며, 허공계를 다하여 법성과 동등하고 미래제를 다하여 일체 겁수 동안 행하는 바가 헛되지 않게 쉼이 없으리라고 하니,
이것이 아홉 번째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시방의 일체 세계에서 마땅히 위없는 바른 보리를 증득하고, 그 화현 한 털은 도 닦는 중생이 혹은 하나이든 혹은 많든, 강생ㆍ출가ㆍ바른 깨달음을 성취함ㆍ큰 법의 바퀴를 굴림ㆍ열반에 들어감을 모두 능히 나타내어 부처님의 경계와 지혜와 위력을 나타내고, 모든 유정이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찰나 사이에 깨닫게 하고, 중생 세계를 다하여 진실하게 회향하고, 유일한 보리와 광대한 열반이 함께 한 가지 소리로써 법의 요점을 잘 설하여 모든
유정이 마음으로 하여금 모두 기뻐하게 하고, 신통력으로써 전부 능히 일체 세계를 충만하고, 큰 지혜의 힘을 보여서 곧 능히 일체의 모든 법을 건립하고, 큰 열반을 보이면서도 일체의 모든 행위를 단절하지 않으며, 허공계를 다하여 법성과 동등하고 미래제를 다하여 일체 겁수 동안 삼보리: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여 쉼이 없으리라고 한다.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의 광대한 서원을 이끌어 세우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깊은 마음을 관찰하고 생각하며 정진하고, 일체 처소에서 이러한 회향을 한다.
관음해탈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내가 지은 일체 선근으로써 평등하게 회향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타락하는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권속의 은혜와 애욕의 공포를 벗어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우치한 공포를 소멸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계박되는 공포를 단절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목숨이 단절되는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빈궁한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요절하는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비방하는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는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대중 속에서 위덕을 잃어버리는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죽음의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나쁜 세계에 대한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깜깜하고 어두움에 대한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원망하고 증오하지만 만나야 하는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좋아하지만 이별해야 하는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증오하고 질투하는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핍박받아 고뇌하는 공포를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걱정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공포를 단절하여 제거하게 한다.”
또 여기에서 요약하여 회향을 설명한다.
보현행경에서 게송으로 말한 것과 같다.
청정하고 용맹한 문수 존 자[문수존]여,
보현의 수승한 덕도 또한 이와 같소.
그 두 대사께서 회향을 말씀하시니
나는 마땅히 수순하여 닦아야 하리라.
시방 삼세의 모든 여래께서
말씀하신 회향은 청정한 가르침으로
나는 이제 모든 선근을 쌓아 모으니
전부 최상의 보현행과 같아질지어다.
17. 공경작례품
관찰세간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만약 한 찰나 사이라도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면,
내가 얻게 되는 그 과보를 말하는데
여덟 가지 겨를이 없음 [팔무가]을 영원히 여읜다.
형상과 색깔이 지극히 수승하게 좋아
장엄한 모습을 성취하고,
부처님의 법 안에 안주하여
다시는 모든 게으름이 없다.
이 사람은 현재에는
수용이 모두 충족되어 있고,
항상 대중들이 존경하며
질병이 없고 몸에서 나는 빛이 깨끗하다.
나중에 장자의 집안에 태어나
존경받으매 비교될 자가 없고,
은혜로운 보시를 넓게 베풀되
진귀한 보배로써 하여 인색하지 않다.
다시 전륜왕이 되어
사천하를 통치하여 다스리며,
백성이 모두 잘 순종하고
국토는 모두 풍요를 즐긴다.
위엄과 덕망의 힘을 구족하고
일곱 가지 보배가 모두 수승하고 절묘하며,
일체 시기 중 내내
부지런히 수행하며 공양한다.
도리천의 궁전에서 태어나
미로(미로, Meru:수미산)의 정상에서 자제하며
제석천주가 되고
청정한 가르침을 받들어 지닌다.
만약 사람이 불탑에 대하여
합장하고 오른쪽으로 돌면,
구지겁 중에서
복을 받아 다함이 없다.
또다시 불탑에 대하여
발심하여 지성으로 예배하면,
한량없는 겁 중에서
장님이나 절뚝발이ㆍ앉은뱅이로 태어나지 않으며,
모든 선근이 견고하고
용맹과 정진을 구비하여
신속하게 보리를 성취하게 되는데
이것은 불탑에 예배함으로 말미암는다.
만약 나쁜 세상 속에서
부처님을 향하여 잠시라도 귀의하면,
곧 이미 백천 굳이의
부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된다.
이 사람은 세간에서 가장 수승하여
그를 뛰어넘는 자가 없고
자제하여 사람 중에서 선인으로
단정하여 짝할 만한 무리가 없다.
만약 사람이 화만(화췌)을 가지고
불탑에 받들어 보시하면,
이러한 인간 세상에서 죽은 뒤
삼십삼천(삼십삼천)에 태어난다.
진귀한 보배로 장엄하게 장식한
손으로 끄는 매우 미묘한 수레[연여]를 타고,
궁전과 누각 가운데
하늘나라 여인에게 항상 둘러싸이고,
청정한 연못에서는
여덟 가지 공덕을 담은 물[팔덕수]이 넘쳐흐르는데,
밑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고
기슭은 유리와 파려로 되어 있다.
매우 미묘한 쾌락을 누리며
행복한 생활[혜명]이 모두 오래간다.
이 하늘에서 죽게 되면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게 되어
백천억 겁 동안에
끝없는 수승한 복을 받는다.
항상 미묘한 화만을 가지고
곳곳에서 공양을 하면,
전륜성왕과 제석천주
대자재천자와
세상의 주인 대범왕이 된다.
이 보시를 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위와 같은 공덕을 얻는 것이다.
매우 미묘하고 미세한 모직물을
큰 도사이신 부처님께 보시하면,
이 사람은 세간에서
이로움을 모두 성취한다.
또다시 의복과 화만을 가지고
불탑에 보시를 하면
하천한 종족을 멀리 여의고
영원히 거기에 태어나지 않는다.
권속에게 항상 둘러싸여
이별하는 고뇌가 없으며,
항상 큰 나라의 왕이 되어
공양받고 칭찬받는다.
혹은 하늘나라나 용 가운데
그리고 세간의 지혜로운 자로 태어나
용맹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구비하고
복의 과보가 동등한 자가 없다.
혹은 나라의 성[국성]과 종족 가운데
세존의 탑묘에 대하여
이 사람이 그 미미함이 겨자와 같은
적은 향을 가지고서
결정코 믿는 마음으로
공양을 흥하게 하면,
얻게 되는 공덕을 내가 말할 것이니
이제 마땅히 들어보아라.
영원히 모든 때와 오염을 여의어
청정한 마음이 견고하여
질병ㆍ고뇌ㆍ걱정ㆍ슬픔을 제거하고
용모와 위의 가 지극히 고귀하고 맑아
전륜성왕이 되어
큰 지혜와 위덕을 구족하고
도달하는 처소에 따라서
복과 힘을 모두 성취하며
혹은 왕이나 혹은 인민이
모두 즐거워하며 항상 존중하여 받든다.
매우 미묘한 의복을 가지고
불탑에 받들어 보시하면,
이 사람은 그 생애에서
신체의 수족이 지극히 빛나고 청결하며
가시가
의 하늘나라 옷이
때맞추어 나타나고
항상 마음에 흡족한 향기를 내어
냄새를 맡는 자는 환희를 일으킨다.
또다시 금실을 가지고
수승한 의복을 짜서 만들되
교묘하게 사자들의 형상을
잘 안배하여 진열해 놓으면,
다음에는 하늘에 태어나서
원하는 과보를 맺지 않음이 없으며,
진귀한 보배와 뭇 영락이
생각하는 대로 손안에 생겨난다.
만약 사람이 미묘한 변기 [번]를 가지고
불탑에 보시하여 매달면,
그가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에 따라서
모든 부처님의 나라에 가서 태어나며
마땅히 금색의 몸을 얻고
뭇 모습을 전부 구족 한다.
감미로운 훌륭한 음식들을
모두 기꺼이 가지고 봉헌하며,
또다시 견직물과 모직물
매우 가느다란 털과 모든 진귀한 의복과
도라(완라)와 가시가를 가지고
당기[당]를 만들어 부처님께 바치면,
이 사람은 그 생애에서
곳간이 모두 충만하여 넘치고
권속이 고뇌하며 해침을 받는 것을 여의며
한량없는 지혜가 견고하고
위아래가 전부 단정하고 엄숙하여
대중이 좋아하여 항상 우러러 받들며,
불에 태워지지 않고
또 칼과 몽둥이에 해침을 받지 않는다.
만약 하나의 밝은 등불을 가지고
불탑에 공양을 하면,
이 보시를 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수명이 장구하게 되고
청정한 마음이 명료해져서
형상과 색깔이 모두 원만해진다.
이 사람은 내생에는
금하의 청정한 차리토 [정찰]에 태어나
미묘한 팔에서 광명을 발산하고
대단히 견고한 힘이 있어
세간을 유행하여도 모든 공포가 없다.
가령 나유타
정도 불찰에 대해
겨자가 그 속을 채우더라도
측량하여 그 수를 알 수 있어도,
내가 이 복의 과보를 말하는 것은
겁을 다한다 하여도 다할 수 없다.
광대한 명주로 만든 덮개[개]를 가지고
불탑에 보시를 하면,
이 사람은 오래되지 않아
서른두 가지 모습을 구족 하게 되어
항상 미묘한 광명을 발생하는데
비교되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 광명은 항상 찬란하여
밝게 빛나는 것이 금하와 같고
마치 구소마화가
서로 섞여 장식하는 것과 같다.
이름이 주변에 두루 알려지고
특수한 신통력을 갖추고,
수용에 한계가 있지 않아
최상의 안온함을 얻으며,
항상 모든 하늘 사람이
가까이하여 받들게 된다.
욕망이 적어 위의 를 구족하고
청정한 계율을 견고하게 지키며,
적정한 수풀 속에 기거하여
모든 선정을 즐거이 수행하며,
지혜가 감소하는 일이 없고
보리심을 버리지 않으며,
만족할 줄 알아 희구하지 않고
평등하게 자비로운 행위를 행한다.
만약 사람이 음악을 연주하여
사람 가운데 존귀한 이에게 공양하면,
번뇌와 근심과 슬픔을 여의고
소리의 모습이 원만하게 된다.
안목이 지극히 밝아져서
자세히 보는 데에 난잡함이 없고,
귀는 항상 미묘한 소리를 들어
청정한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 같고,
코는 높고 길며 또한 곧아서
장엄한 모습을 모두 구족 하고,
그 혀는 항상 유연하고 미끄러워
붉게 윤택한 것이 산호와 같고,
음향은 하늘 사람의 소리 같아
일 굳이의 분량을 듣고
혀가 없는 추한 과보를 여의어
뱀[사] 가운데 영원히 태어나지 않고,
최상의 수승한 몸은
단정하고 곧아 절룩거리거나 굽지 않고,
항상 선하고 깨끗한 생각을 하여
잠시도 중단하는 일이 없고,
모든 하늘 사람[천인]ㆍ용신과
머플러가 등이
행하는 세간을 따라다니며
편안하게 위로하면서 수호한다.
이 보시를 함으로써
위와 같은 복된 과보를 얻는다.
대승집보살학론 제22권
17. 공경작례품
만약 사람이 내가 면도한 뒤에
능히 부처님의 탑묘를 수리하면,
백천의 나유타 겁 동안에
위엄 있는 모습이 모두 엄숙하여 좋고,
최상으로 마음에 드는 전단향은
궁전과 수레와 어울리고,
비록 수승한 과보를 얻어도 집착하는 일이 없으니
이것은 불탑을 수리함으로 말미암는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소멸하려고 할 때에는
염부제의 모든 국토에 태어나지 않고,
그 좋아하는 바에 따라서 하늘의 궁전에 기거하는데
이것은 불탑을 수리함으로 말미암는다.
다섯 가지 욕망과 모든 때 묻은 오염을 싫어하고
청량하고 깨끗한 계온에 안주하여
널리 범행을 수행하며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은 불탑에 향을 바름으로 말미암는다.
여기에서 입멸하고 나서 천상에 태어나며
쾌락이 풍요하여 헤아릴 수 없고
다시 능히 모든 하늘 사람을 교화하는데
이것은 불탑에 향을 바름으로 말미암는다.
얼굴의 용모가 원만하여 항상 기뻐하고
나오는 말소리는 뭇 선함을 일으키며
보는 자는 다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니
이것은 불탑에 향을 바름으로 말미암는다.
한계가 없는 나쁜 세상의 괴로움을 멀리 여의고
항상 모든 여래를 가까이하게 되어
널리 청정한 업을 수행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니
이것은 불탑에 향을 바름으로 말미암는다.
만약 사람이 찰나 동안이라도
능히 불탑에 대하여 진망(진망: 티끌 같은 이 세상)을 떨쳐버리면,
이 사람의 과보는 헤아리기 어려우며
영원히 여덟 가지 재난을 여의어 재난이 없는 곳에 태어나고,
용맹하고 총명하고 실로 명료하며
다섯 가지 욕망의 경계를 추구하지 않고
항상 능히 모든 윤회를 벗어나니
이것은 청정한 마음으로 불탑을 청소함으로 말미암는다.
금지한 계율을 구족 하여 범하지 않고
깊고 미묘한 법을 듣고서 흠모하여 우러르며
영원히 보리심을 퇴전하지 않으니
이것은 청정한 마음으로 불탑을 청소함으로 말미암는다.
이 사람이 능히 악한 세상 속에서
항상 비방하고 헐뜯는 모든 잘못을 여의고
광대하고 수승한 복과 지혜를 쌓아 모으니
이것은 청정한 마음으로 불탑을 청소함으로 말미암는다.
매우 맛있는 진귀한 모든 음식을 얻고
수승하고 깨끗한 의복으로 장엄되고
항상 미묘한 촉감이 모든 감각기관을 적절하게 자극하는데
이것은 청정한 마음으로 불탑을 청소함으로 말미암는다.
만약 불탑에 대하여 환희를 하고
능히 시들은 모든 꽃을 제거하면,
열 가지 힘을 갖춘 큰 도사에 의거함으로 말미암아
다섯 가지 욕망의 깊이 원수진 해침을 여의게 되고
형상과 위의 가 남보다 빼어나 세상에 드물어
대중이 즐거이 관찰하며 싫어하여 버림이 없고
왕은 항상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니
시들은 꽃을 불탑에서 제거함으로 말미암는다.
보살의 모든 계품(계품)을 구족하고
일체의 험악한 길을 제거하며
마음은 항상 명료하여 어리석은 미혹을 멀리하니
시들은 꽃을 불탑에서 제거함으로 말미암는다.
번뇌와 모든 장애의 오염을 버리고 등져서
영원히 질병의 괴로운 모습에 묶여 속박되지 않고
일체의 처소에서 가뿐한 평안을 얻는 것은
시들은 꽃을 불탑에서 제거함으로 말미암는다.
사람 중에서 제일가는 보시를 받게 되고
다시 가장 좋은 모든 공양으로써
청정한 복과 지혜로 몸을 장엄하는 것은
시들은 꽃을 불탑에서 제거함으로 말미암는다.
또다시 새롭고 미묘한 꽃이나
혹은 만다라나 발타라 가지고
불탑에서 시든 것과 바꾼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수승한 과보를 얻을 것이다.
만약 사람이 능히 모든 불탑에 대하여
정성 들여 부지런히 합장하고 예배하여 공경을 하면,
그는 부처님의 덕에 대하여 잘 찬탄하여
그 보는 자로 하여금 모두 머리를 숙이게 하니
모든 하늘과 용신과 머플러가와
왕 및 신하와 백성이 믿음을 깊이 일으킨다.
비유하면 미묘한 꽃이 세간에 피어나는 것처럼
능히 모든 법의 요점을 잘 설하고,
그 바른 법을 잘 설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혜에 안주하여 부족함이 없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나쁜 세계 속에서 떠나게 하여
사람과 하늘의 수승한 의리를 증장시키고,
복력과 염혜를 모두 구족 하여
권속이 매우 많고 항상 잘 수순 한다.
내가 말하는데, 이 사람은 세간에서
그 좋아하는 바에 따라서 마음이 안온하고
항상 유화하고 적정한 소리를 일으켜
군생을 가르치고 깨우쳐서 벗어나게 하고
그 부귀와 쾌락에 대하여 탐욕을 일으키지 않으니
이것은 합장하여 불탑에 예배함으로 말미암는다.
능히 보시와 애어를 행하고
이행이 평등한 것도 또한 그러하며
타인에게 비방받고 헐뜯음을 당해도 성내지 않으니
이것은 합장하여 불탑을 예배함으로 말미암는다.
혹은 하늘 가운데 가서 제석이 되고
혹은 세간에 머물러 사람의 왕이 되어
이르는 바가 자제하여 전부 마음에 따르니
이것은 합장하여 불탑에 예배함으로 말미암는다.
모든 욕망의 경계에 대하여 탐욕하여 오염되지 않고
세상의 부귀함에 처하여도 항상 만족을 하고
나쁜 세계 가운데 영원히 떨어지지 않으니
이것은 합장하여 불탑에 예배함으로 말미암는다.
발설하는 언사는 의미가 풍부하여
전부 경전과 잘 상응하고
항상 인간 세상의 상층의 종족 중에 태어나니
이것은 합장하여 불탑에 예배함으로 말미암는다.
만약 가장 뛰어난 청정한 마음으로
손에 꽃을 가득히 가지고 부처님 위에 뿌리면,
획득하는 과보로 왕이 되며
안주하여 앞에서처럼 선한 이익을 일으킨다.
그가 다섯 가지 욕망에 대하여 능히 깨달으면
곧 근심과 번뇌에 핍박당하지 않고
신체의 모습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대중이 즐겨 바라보며
자성이 적정하여 모든 두려움을 잊는다.
또 대비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아난아, 혹은 현재 나를 능히 공양하는 중생이 있고, 혹은 내가 면도한 뒤에 겨자만큼이라도 사리를 공양하는 자, 또는 능히 나를 위하여 형상과 탑묘를 건립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아난아, 이러한 일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설사 어떤 사람이 잠시라도 하나의 청정하게 믿는 마음의 인연을 일으켜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고, 한 송이 꽃을 가지고 공중에 흩뿌려서 공양을 하면, 이 사람은 마땅히 전륜성왕ㆍ제석천왕ㆍ대범천이 돼어 곧 능히 전제의 무지와 미래겁에 나고 죽음에 윤회하는 것을 초월할 것이다.
아난아, 다시 이러한 일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가령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능히 한 송이 꽃을 가지고 공중에 흩뿌려서 공양하면, 나는 이 사람이 이
선근으로써 얻게 되는 복된 과보는 그 한계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사가라용왕소문경에서 말한다.
만약 보살이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하면, 곧 능히 여덟 가지 증상의 법[증상지법]을 얻는다.
어떠한 것들이 그 여덟 가지인가?
첫째, 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미묘한 모습을 바라본다.
둘째, 여래의 처소에서 일을 받들며 공양한다.
셋째, 모인 대중 속에서 부처님의 수승한 덕을 찬탄한다.
넷째, 여래를 상념 하여 그 형상을 만들어 건립한다.
다섯째, 중생을 권유하여 감화시켜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않게 한다.
여섯째, 도달하는 처소에 따라서 항상 부처님의 이름을 듣는다.
일곱째, 항상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가서 태어나기를 기원한다.
여덟째, 의지가 겁약하지 않고 즐거이 부처님의 지혜를 추구한다. 이것이 여덟 가지 증상의 법이다.”
다시 어떻게 수승한 의리를 증장하는가? 말하자면, 부처님의 처소에서 일을 받들기 때문에 마땅히 보리를 얻는다.
화엄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한량없는 억천 겁에
부처님의 이름은 듣기가 어렵거니와
하물며 다시 가까이하여
영원히 모든 의혹을 단절함이랴.
여래는 세간의 빛으로서
일체의 법을 통달하고
널리 삼세의 복을 생기게 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전부 청정하게 한다.
여래는 세간에 출현하여
세상의 큰 복전이 되고
모든 의식이 있는 것[함지]을 널리 제도하여
그로 하여금 복된 행위를 모으게 한다.
만약 부처님께 공양하는 일이 있으면
나쁜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영원히 제거하고
일체의 괴로움을 소멸하여
지혜로운 몸을 성취한다.
만약 양족존을 보고서
능히 광대한 마음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항상 부처님을 만나서
지혜의 힘을 증장시킨다.
이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여래는 크게 자비로워서
세간에 출현하여
널리 모든 군생을 위하여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신다.
여래는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중생을 위하여 부지런히 고행하셨는데
어떻게 하여야 모든 세간이
능히 큰 스승[대사]의 은혜를 갚을 것인가?
차라리 한량없는 겁 동안
모든 나쁜 세계의 괴로움을 받을지언정
끝내 여래를 버리고서
벗어남을 구하지 말 것이다.
차라리 모든 나쁜 세계에 기거하며
항상 부처님의 이름을 들을지언정
좋은 세계에 태어나 잠시라도
부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함을 원하지 말 것이다.
어찌하여 일체의 나쁜 세계 속에
오래 머무르기를 소원하는가?
여래를 보게 됨으로써
지혜의 힘을 증장시키기 때문이다.
만약 부처님을 보게 되면
일체의 괴로움을 소멸하고
능히 모든 여래의
큰 지혜의 경계에 들어간다.
만약 부처님을 보게 되면
일체의 장애를 여의고
다함이 없는 복을 길이 기르며
보리의 도[보제도]를 성취할 것이다.
하물며 합장하여 한 송이 꽃이나, 혹은 하나의 향, 또는 바르는 향, 혹은 불 밝힌 하나의 등불을 가지고 공양하는 것임 이랴.
이 경우에 받는 복이 앞에서보다 수승하기가 한량없는 아승기나 된다.”
보살장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만약 능히 오래되어 낡은 불탑을 수리하면, 마땅히 네 가지 청정한 큰 서원을 얻는다.
첫째, 가장 뛰어난 색상으로서 더불어 동등한 것이 없다.
둘째, 경전을 받아 지니고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다.
셋째, 태어나는 곳에서 여래를 게 된다.
넷째, 그 생애에서 신체에 모든 모습을 구족 한다.”
그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만약 사람이 여래의 탑에 대하여 이름난 모든 꽃과 바르는 모든 향을 가지고 공경하며 공양하면, 또한 여덟 가지가 감소하지 않게 된다.
첫째, 색상이 감소하지 않는다.
둘째, 수용이 감소하지 않는다.
셋째, 권속이 감소하지 않는다.
넷째, 계품이 감소하지 않는다.
다섯째, 선정의 힘이 감소하지 않는다.
여섯째, 많이 듣는 것이 감소하지 않는다.
일곱째, 지혜가 감소하지 않는다.
여덟째, 수승한 서원이 감소하지 않는다.”
또 보적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가령 중생이 삼유에 충만하고 각각 그 분량이 수미산처럼 높고 넓은 여래의 탑묘를 만들고 항하사 겁 동안 각각 갖가지 매우 미묘한 것을 가지고 공양을 다고 하자. 만약 보살이 일체지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한 송이 꽃을 가지고 그 탑에 받들어 바치면, 얻게 되는 복덩어리[복온]는 또한 그것보다 더 뛰어나다.”
이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존재하는 중생이 낱낱이 모두 전륜성왕이 되어 대승에 안주하며, 낱낱의 전륜성왕이 큰 바다의 분량만 한 것을 등잔 그릇으로 삼고, 미로산만 한 것을 등잔 심지[등주]로 삼아 각각 이와 같은 것을 가지고 불탑에 공양한다고 만약 출가보살이 능히 적은 기름을 가지고 노끈에 발라서 등불로 삼아 례의 탑묘에 공양을 하면, 얻게 되는 공덕이 앞에서 등불을 보시한 것보다 수승하여 앞의 것이 백분 또는 가라 분, 나아가 오파니찰담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그 전륜성왕이 능히 현전의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모든 악구를 가지고 보시를 한다고 하자. 만약 출가보살이 항상 걸식을 하고, 혹은 보는 자마다 얻은 것을 나누어 주어 먹게 하면, 얻게 되는 공덕이 앞의 것보다 수승하여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그 전륜성왕이 가사복을 수미산만큼 쌓아 가지고 능히 현전의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보시를 한다고 하자. 만약 출가보살이 세 가지 의복 외에 소유하는 남는 건을 요구에 따라서 현전의 모든 부처님과 대승에 안주하는 모든 비구승 및 여래의 탑에 받들어 보시하면, 그 얻게 되는 복이 앞에서 보시한 것보다 갑절이나 된다.
또 그 전륜성왕이 낱낱이 각각 염부제를 가득 채우는 매우 미묘한 모든 꽃을 가지고 불탑에 공양한다고 하자. 만약 출가보살이 능히 한 송이 꽃을 가지고 여래의 탑에 보시를 하면, 앞의 공양보다 수승하여 앞의 것이 백분, 가라분, 나아가 오파니찰담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출가보살이 이와 같이 알고 나서 만약 능히 현전의 여래에게 공양을 하면, 곧 네 가지의 현명하고 좋은 공덕을 얻는다.
첫째, 항상 가장 뛰어난 공경과 공양을 얻는다.
둘째, 타인이 행실을 보고 나서 수순하여 의지해서 배운다.
셋째, 능히 큰 보리심을 견고하게 한다.
넷째, 선근을 증장하여 현전에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모습을 보게 된다.”
또 해의보살소문경에서 말한다.
“또 다음에 해의여, 세 가지 법이 있는데, 여래에게 공양하여 받든다고 한다.
어떠한 것들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 보리심을 발생하여 퇴전하지 않는다.
둘째, 모든 바른 법에 대하여 능히 거두어 지닌다.
셋째, 중생에 대하여 큰 자비를 일으킨다.”
또 보운경에서 말한다.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태장에 처하게 되어도 더러운 때에 오염되지 않는다.
어떠한 것들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 청정하게 믿는 마음으로 여래의 형상을 조성한다.
둘째, 모든 부처님의 오래된 탑묘를 수리한다.
셋째, 뭇 미묘한 향을 가지고 바르며 장식한다.
넷째, 모든 향수를 가지고 여래를 목욕시킨다.
다섯째, 불탑을 청소하고 땅에 물을 뿌린다.
여섯째, 낳아주신 부모님을 몸소 받든다.
일곱째, 화상과 아사리에게 몸소 공양한다.
여덟째, 동일한 범행자에게 항상 공급한다.
아홉째, 이행한 은혜로운 보시에 대하여 그 과보를 바라지 않는다.
열째, 이 선근으로써 모든 유정이 태장의 더러운 때에 오염되지 않고서 태어나게 한다.
선남자야, 만약 능히 이와 같은 열 가지 법을 구족 하면, 곧 능히 깊은 마음으로 따라서 기뻐함을 일으킨다.”
반야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안주하면, 마땅히 마음을 처음 일으키고 따라서 기뻐해야 한다.
이 모든 보살이 능히 이 행위를 하면, 곧 대승에 있어서 퇴전하지 않게 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가령 어떤 사람이 능히 삼천세계를 헤아려 그 수를 알 수 있다고 하여도 이 모든 보살이 마음을 일으키고 따라서 기뻐하여 얻는 공덕은 헤아리지 못한다.’
그때 제석천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보살이 마음을 처음 일으킨 것으로부터 이에 정등정각을 성취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지은 한량없는 따라서 기뻐하는 선근에 대하여 혹은 모든 보살이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또한 거두어 지니지 못하면, 마땅히 이 사람은 악마에게 붙잡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속히 여래ㆍ응공의 정등정각을 증득하고자 하면, 응당 대승에 대하여 마음을 일으키고 따라서 기뻐해야 한다.
그렇지만 성문승과 벽지불승에 대해서는 또한 좋아하지도 않고 또한 버리지도 않으면서 능히 그와 함께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이 태어난 처소에 머물면서 항상 열 가지 선[십선]을 지니면, 곧 능히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얻고, 보게 되는 색ㆍ성ㆍ향ㆍ미ㆍ촉에 대하여 마음에 들지 않음이 없으며, 영원히 나쁜 세계를 여의고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지은 바는 그 이익처럼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쾌락을 얻게 하고, 이 선근으로써 능히 한량없는 아승기의 사람으로 하여금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한다.’
이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수보리야, 가령 항하사 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의 일체중생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낱낱이 각각 항하사 겁 동안 네 가지 선정을 수행하여 적정함에 안주하고 요동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여읜다고 하자.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닦아서 능히 훌륭한 방편으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수행하는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을 거두어 지니고, 연각승과 성문승이 소유하는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에 대하여 이와 같은 등등의 갖가지 선근을 합쳐 모아 헤아리며, 가장 뛰어나고 가장 지극하고 가장 수승하고 가장 미묘하고 광대하여 한량이 없고 대등함이 없는 평등한 마음으로써 모두 다 따라서 기뻐하며, 다시 이와 같이 따라서 기뻐하는 선근을 가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면, 수보리야, 그 얻게 되는 복은 앞의 보살이 선정을 수행하는 공덕보다 수승하여 비교할 수 없으니, 앞의 것은 백분, 가라 분 내지 오파니찰담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만약 능히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면, 곧 이미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서 부처님의 수명을 수호하는 것이 된다.”
18. 염삼보품
비밀대승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는 이제 마땅히 네 가지 법이 있음을 알아야 하오. 만약 능히 이에 대하여 이치답게 수행하면, 곧 대승에 안주하여 수승한 도[승도]에 나아가고 소유하는 선한 법이 파괴되어 소실되지 않소. 어떠한 것들이 그 네 가지인가? 대왕이여,
첫째, 말하자면 믿음은 능히 수승한 도에 나아가게 하오. 다시 무엇을 믿음이라고 하는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능히 모든 성스런 종류[성종유]를 수순하여 응당 짓지 말아야 할 바를 전부 짓지 않는 것이오
둘째, 존중은 능히 수승한 도에 나아가게 하오. 존중하기 때문에 모든 성자가 말한 미묘한 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살펴서 청문하여 받아들이는 것이오.
셋째, 자만이 없음 [무만]은 능히 수승한 도에 나아가게 하오. 자만이 없기 때문에 곧 능히 저 일체의 성스런 자들을 공경하여 믿고 머리 숙여 예배하는
것이오.
넷째, 정진은 능히 수승한 도에 나아가게 하오. 정진하기 때문에 몸이든 마음이든 전부 가뿐하고 평안하게 되어 짓는 선한 법이 모두 성취하게 되는 것이오.”
항상 믿음을 닦는 바가 이와 같음에 대하여 여기에서 설명한다. 별도로 믿음 등의 오 근을 해명한다. 무진의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어떠한 것이 다섯 가지뿌리[오근]인가? 말하자면, 신근ㆍ진근ㆍ염근ㆍ정근ㆍ혜근이다.
어떠한 것이 신근인가? 말하자면 네 가지 법에 대하여 깊이 인가하여 좋아하고자 한다.
첫째, 나고 죽는 가운데 세상의 바른 행위를 행하고, 업보에 대하여 업을 지음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가 결정코 존재한다고 믿으며, 나아가 목숨을 잃어 끝날 때까지 죄를 짓지 않는다.
둘째, 보살이 행하는 바른 행위를 믿고 좋아하여 그 밖의 승을 추구하지 않고 모든 견해를 따르지 않는다.
셋째, 승의 가운데 자아 중생 수자보특가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공 무상 무원의 모든 법에 대하여 깊이 능히 믿고 이해한다.
넷째, 부처님의 공덕인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이 없음 등에 대하여 결정적으로 믿음을 일으키고 의심의 그물을 끊어 제거한다.
이것을 신근이라고 한다. 어떠한 것이 진건가? 만약 법이 신근에 포섭되는 것이면, 이 법을 부지런하고 용맹하게 간단히 없게 닦는다.
이것을 진근이라고 한다. 어떠한 것이 염근인가? 만약 법이 진근에서 닦는 것이면, 이 법을 끝내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염근이라고 한다.
어떠한 것이 정근인가? 만약 법이 연근에 포섭되는 것이면, 이 법을 한마음으로 어지럽지 않게 한다. 이것을 정근이라고 한다.
어떠한 것이 혜근인가? 만약 법이 정근에 포섭되는 것이면, 이 법을 스스로 관조하며 타인의 견해에 따르지 않는다.
이것을 혜근이라고 한다. 이 다섯 가지 근은 상속하여 일어나서 곧 능히 일체 부처님의 법을 원만하게 한다.”
다시 믿는 힘[신역] 등의 법을 마땅히 닦아야 한다.
보계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선남자야, 어떠한 것이 보살이 힘써 행하여 청정한 것인가? 말하자면, 모든 근에 대하여 겁약하는 일이 없고, 일체의 악마가 능히 요동하여 어지럽히지 못하고, 성문과 연각이 능히 퇴전시키지 못하고, 일체의 번뇌가 능히 파괴하지 못하며, 능히 견고하게 대승에 안주하여 만족하는 마음이 청정하고 용맹하기를 일찍이 기원하며, 신근을 은밀하게 수호하여 수승한 청정을 얻는 것이다.”
월등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나유타 억 불찰가운데
부처님께 공양하는 갖가지 도구가 있어
전부 가지고 모든 여래에게 공양하여도
자애로운 마음의 일부분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승집보살학론 제23권
18. 염삼보품
호국존자소문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 조어는 진금색으로서
얼굴은 만월처럼 깨끗하여 때가 없고
공덕과 성스런 지혜는 실로 생각하기 어려워
삼유중에서 동등한 자가 없나이다.
모니의 난계는 감청색으로
높이 드러나 청정한 것이 수미산과 같으며,
미간의 백호는 널리 비추고
오슬니사 보는 자가 없나이다.
여래의 눈은 깨끗하기가 푸른 연꽃 같으며
군나화와 흰 마노로 된 달[가월]에 비견되고
모든 유정을 연민하여 관찰하시니
그러므로 저는 이제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
여래의 혀는 구리색[동색]과 비슷하고
길고 넓어서 능히 얼굴을 덮으며
감로법을 연설하여 군생을 윤택하게 하시니
그러므로 저는 이제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
여래의 마흔 개 치아는 가지런하고 치밀하며
청결하고 하얗고 견고하고 예리한 것이 금강 같으며
진실한 말을 하여 찬란한 빛을 내시니
그러므로 저는 이제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
여래의 색상은 가장 특수하여
위엄 있는 광명이 백천의 차리토 [백천찰]를 비추는데
제석 범천과 세상을 수호하는 자와 모든 하늘이
소유하는 광명은 다시 보이지 않나이다.
여래의 두 장딴지 싸이는 사슴왕[록왕]보다 더하고
가슴은 넓고 부드러워 사자와 같으며
굽어보며 안온하게 가는 것이 코끼리왕[상왕] 같아서
대지와 산천이 함께 진동합니다.
여래의 신상은 지극히 단정하고 엄숙하며
금빛처럼 찬란하고 윤택하여
모든 세간에서 비교될 자가 없으며
중생이 본다면 싫어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옛적에 백천 겁 동안
좋아하는 것을 모두 능히 보시하고
자비로써 모든 유정을 애처롭게 생각하셨으니
그러므로 저는 이제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
여래는 의지로써 즐거이 모든 도를 수행하여
지계[계]ㆍ보시[단]ㆍ인욕[인]ㆍ정진이 매우 견고하고
선정과 수승한 지혜가 전부 원만하고 밝아
그러므로 저는 이제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
여래는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하시어
용맹하게 능히 다른 모든 논의들을 꺾어버리고
세 가지 독[삼독]의 더러운 때가 다하여 남음이 없으니
그러므로 저는 이제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
모니의 세 가지 업[삼업]은 삼유를 초월하여
비유하면 연꽃처럼 물에 물들지 않고
가릉빈가의 깨끗하고 미묘한 소리가 있으니
그러므로 저는 이제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
세간은 모두 환상처럼 변화하여
연극하는 사람처럼 형태와 색을 바꾸고
또한 아지랑이나 꿈속의 일과 같아
자아[아]가 없고 사람이 없고 수명[수자]이 없음을 압니다.
법은 본래 공적 하여 생김이 있지 않은데
능히 깨달아 이해하지 못하여 따라서 유전하니
큰 자비로 모든 미혹한 군생을 널리 제도하고
방편으로 근기를 따라 바른 법을 선전합니다.
세간의 모든 고뇌와 탐욕 등의 뭇 질병이
누르고 서로 얽혀 있음을 관찰하고
여래는 위없는 큰 의왕으로서
각각에게 대치하여 해탈하게 합니다.
태어나서 늙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는 괴로움과
좋아하지만 이별해야 하는 등의 모든 환란을 보이고
모니는 세간을 구제하고 수호하여
다 싫어하여 여의게 하고 모두 제거하여 단절하게 합니다.
지옥ㆍ아귀ㆍ축생의 험악한 세계에서
모든 유정은 따라서 유전하는데
그에게 친한 이도 없고 이끌어주는 스승도 없음을 민망히 여겨
어리석어 미혹함을 가리켜 보이고 바른 길에 오르게 합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여
깊은 법의 의미를 자제하게 모두 알렸듯이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그와 동일하게 설하여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성스런 도를 증득하게 합니다.
부처님의 목소리는 깊고 멀리 퍼져 범천을 지나가는데
울리는 소리가 부드럽고 맑고 명철하여 뭇 선함을 일으키며
건달바와 긴나라가
내는 즐거운 소리는 모두 나타내지 못합니다.
청정한 모든 공덕을 모으고
한계가 없는 진실한 말을 연설하여
백천 나유타 중생이
듣고 나서 각각 삼승의 의미[삼승의]를 일으킵니다.
만약 능히 여래에게 공양을 하면
마땅히 수승하고 미묘한 모든 쾌락을 얻을 것이며
부귀하고 자제하여 대중이 흠모하는 바로서
나중에 세간에서 제왕이 됩니다.
혹은 전륜성왕이 되어 사주를 통치하며
일곱 가지 보배가 모두 특이함을 구족하고
항상 열 가지 선[십선]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은
여래에 대하여 청정한 업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습니다.
혹은 모든 도리천의 천주가 되고
혹은 야마천의 왕[야마왕]ㆍ도솔천의 천주[도사타]가 되며
나아가 타화자재천[타화]과 대범천이 되는데
모두 여래를 공양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을 보고 공양하고 나서
또 들은 법에 대하여 믿고 공경하고
모두 능히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영원히 단절하여
적정을 증득하고 티끌과 때를 여의게 됩니다.
세존은 도와 도가 아닌 것[비도]을 알고
능히 악함을 그치고 모두 선함으로 돌아가게 하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길상을 획득하게 하여
모두 다 성스런 도에 안주하게 합니다.
만약 사람이 복을 추구하여 부처님께 공양을 하면
항상 다함이 없는 수승한 복의 곳집[승복장]을 얻어
구지겁 동안에 헤아릴 수 없으며
나아가 마땅히 보리의 과보를 증득할 것입니다.
미묘한 찰토의 수승한 장엄은
타화자재천처럼 지극히 좋아할 만하고
그 원력에 따라서 그 속에 기거하며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업은 항상 청정합니다.
이와 같은 갖가지 미묘한 복의 과보는
모두 여래에게 공양함으로 말미암으며
이 사람은 비록 세간에 처하여도
용궁이나 천상의 즐거움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여래는 광대한 명칭을 구족하고
일체의 찰토에서 전부 듣고 알며
항상 한없는 대중 속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모두 칭찬하며,
영원히 세간의 모든 뜨거운 번뇌를 여의고
큰 자비를 나타내는 데에 동등한 자가 없으며
가장 뛰어나게 적정하여 사람 중에서 존귀하시니
그러므로 저는 이제 머리 숙여 예배하나이다.
저는 이제 다섯 가지 신통을 얻어
허공에 머물러 찬탄을 펼치며
용맹한 큰 도사[대도사]에게 머리 숙이고
모든 법을 분별하여도 청정하여 때가 없나이다.
이제 하늘 사람의 큰 집회에서
선서의 모든 공덕을 칭송하고
소유하는 광대하고 수승한 복전으로
중생과 더불어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여지이다.
또 법집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또 다음에 선남자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큰 복과 지혜를 구족 하여 장엄하고, 큰 자비로써 소행의 경계로 삼고, 모든 세간에 대하여 구호자가 되고, 큰 의왕이 되어 독 묻은 화살을 잘 빼내고, 항상 적정하고 미묘한 삼마지에 머물며, 나고 죽는 것과 열반에 집착하지 않으신다. 나아가 모든 유정에 대해서는 마치 부모와 같고, 큰 자비심으로써 평등하게 일체의 세간을 연민하게 여기시니, 이보다 더 뛰어난 자가 없다. 상응하는 지혜로써 세간의 조명으로 삼고, 큰 지혜로 유정에게 둘러싸이고, 모든 백성이 항상 기꺼이 일을 받들며, 자신의 즐거움을 멀리 여의고 타인의 괴로움을 그치게 하신다. 바른 법을 지니고, 법으로써 주체로 삼으며, 법의 자재를 얻고, 법으로써 식사로 삼고, 법으로써 약으로 삼고, 법으로써 보시로 삼아 일체를 모두 버리신다. 지혜로써 간택하여 항상 방일하지 않고, 험난한 처소에서는 교량이 되며, 왕자의 길처럼 평탄하여 장애가 없으며, 나아가 청정한 색신을 보는 자는 싫어함이 없다. 모든 부처님 세존에게는 이와 같은 등등의 한량없는 공덕이 있으며, 나는 마땅히 그 모든 의리를 성취하여야 한다.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부처님을 사념한다고 한다.
어떠한 것이 법을 사념하는 것인가? 보살이 아는 바 모든 부처님 세존의 끝이 없는 공덕은 모두 법으로부터 생기고, 법으로부터 화하고, 법으로부터 얻고, 법으로부터 증상 하고, 법으로부터 존재하고, 법으로부터 경계가 되고, 법으로부터 의지하고, 법으로부터 성취한다. 나아가 존재하는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쾌락의 일도 또한 법으로부터 생기고 법으로부터 성취한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추구하며, 응당 법을 존중해야 한다.
법에 의하는 경계, 법에 의하는 귀의, 법에 의하는 결정, 법에 의하는 견고함, 법에 의하는 수행,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법을 사념한다고 한다.
또 다음에 보살은 모든 중생에 대하여 응당 평등하게 대하면서 법을 설해야 한다.
법에는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사람이 보는 데서 복종하지 않아도 법을 잘 설한다.
법에는 상대하는 당파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법을 시절에 관계없이 잘 설한다.
법을 내면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법을 수승한 자에게 잘 설할 뿐 아니라 그 열등한 자에게도 잘 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을 각각 능히 이해하여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 법을 깨끗한 자에게 잘 설할 뿐 아니라 깨끗하지 못한 자에게도 잘 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은 오염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또 법을 성인에게 잘 설할 뿐 아니라, 범부에게도 잘 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은 모든 견해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법을 낮에만 설하고 밤에는 설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밤에만 설하고 낮에는 설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법은 항상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법은 다스려 항복시키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또한 거슬러 뛰어넘는 것도 아니다.
법은 취착 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법은 감소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또한 증장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법은 중생을 염오 하지 않고 중생이 능히 법을 보호해야 한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법은 귀의할 곳을 부여하여 추구할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귀의할 바가 되어야 한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법은 훼손하여 고뇌함이 없다. 법은 훼손되는 모습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법은 원망하여 질투함이 없다. 법은 모든 결사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법은 윤회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또한 열반을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법은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저 법과 동일하게 그 마음이 평등해야 한다
. 보살이 이와 같이 바른 사념을 쌓아 모으는 것이 법을 사념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승가[승]를 사념하는 것인가? 여기에서 다시 설명한다.
법을 설하는 자,
법을 행하는 자,
법을 사유하는 자,
법을 복전으로 삼는 자,
법을 유지하는 자,
법에 의지하는 자,
법을 공양하는 자,
법처럼 행하는 자,
법을 경계로 하는 자,
법을 행하는 처소로 삼는 자,
법을 성취하는 자,
자성이 솔직한 자,
자성이 청정한 자,
가르쳐 타이름에 수순 하는 자,
큰 자비를 발기하는 자,
지혜의 경계를 능히 간택하는 자,
희고 청정한 법을 항상 수습하는 자 등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승가를 사념하면, 곧 능히 일체중생의 진실한 공덕을 성취한다.
무구칭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혹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나타내어
모든 군생을 성취시키고,
환상으로 변화한 것처럼 깨닫고
통달하여 걸림이 없다.
혹은 겁의 불이 모두 불태우는 것을 나타내어
하늘과 땅이 모두 확연해져서
항상 함이 있다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조명하여 항상 하지 않음을 알게 한다.
헤아릴 수 없는 수억의 중생이
함께 와서 보살을 청하려고
일시에 그 거처에 도달하면
변화하여 부처님의 도로 향하게 한다.
경서와 금지된 주술과
공교한 모든 재주와 예능[기예]을
다 나타내어 이 일을 행하며
모든 군생을 요익하게 한다.
세간 대중의 도법으로부터
전부 그 속에서 출가하여
이로써 사람의 미혹을 해결하여야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는다.
혹은 해와 달과 하늘이 되고
범천왕[범왕]이나 세계의 주[세계주]가 되며
혹은 때로는 땅과 물이 되고
혹은 다시 바람이나 불이 된다.
겁 중에 질병이 있으면
나투어서 모든 약초를 만들어
만약 그것을 복용하는 자가 있으면
질병을 제거하고 뭇 독을 소멸한다.
겁 중에 기근이 있으면
몸을 나투어서 음식을 만들어
먼저 그 굶주림과 목마름을 구제하고
물러나 법에 의하여 사람에게 말한다.
겁 중에 전쟁이 있으면
그를 위하여 자비를 일으키고
그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투쟁이 없는 땅에 머무르게 한다.
만약 크게 전투하는 진영이 있으면
대등한 세력을 건립하고는
보살이 위세를 나타내어
항복시켜 화해하고 편안하게 한다.
일체의 국토 중에
모든 지옥의 처소가 있으면
문득 그곳에 도달하여
그 고뇌를 벗어나게 한다.
일체의 국토 중에
축생이 서로 잡아먹으면
모두 나투어 거기에 태어나서
그를 위하여 이익되게 행한다.
다섯 가지 욕망을 누림을 나타내어
또한 선정을 수행함을 나타내어도
악마의 마음을 시끄럽고 어지럽게 하여
능히 그 틈을 얻지 못하게 한다.
불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희유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욕망 속에 머무르며 선정을 행함이
희유한 것도 또한 이와 같다.
혹은 나투어 음탕한 여인이 되어
모든 호색한[호색자]을 이끌어 들여
먼저 욕망의 갈고리로 이끌고
나중에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가게 한다.
혹은 읍의 주체가 되고
혹은 상인의 지도자나
나라의 스승[국사] 및 대신이 되어
중생을 도와 이롭게 한다.
모든 빈궁한 자에게는
나투어 다함이 없는 곳간[무진장]이 되고
이로 인하여 그를 권고하고 지도하여
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
자신에 대하여 마음이 교만한 자를 위하여
큰 역사로 나투어
모든 교만함을 소멸시켜 항복받고
위없는 도에 머무르게 한다.
그 공포에 떠는 중생에게는
그 앞에 기거하면서 안온하게 위로하여
먼저 두려움이 없게 하고
마 중에 도심을 일으키게 한다.
혹은 음욕을 여의는 것을 나타내어
다섯 가지에 통달한 선인[오 통선인]이 되어
모든 군생을 개도하고
지계와 인욕과 자비에 머무르게 한다.
필수품을 공급하는 일을 하는 자를 보면
나투어 동복이 되고
이미 그 마음을 기쁘게 하였으면
이에 도심을 일으키게 한다.
그가 필요한 바에 수순하여
부처님의 도[불도]에 들어가게 하고
훌륭한 방편력으로써
모두 능히 공급하여 흡족하게 한다.
이와 같이 도는 한량이 없고
행하는 바에는 한계가 없으며
지혜는 제한이 없어서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킨다.
가령 일체의 부처님께서
헤아릴 수 없는 억겁 동안
그 공덕을 찬탄하여도
오히려 능히 다하지 못할 것이다.
보살이 공양하는 공덕을 닦는 것은 보광다라니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큰 광명을 비추어 만(췌)으로써 장엄하는데
갖가지 미묘한 만이 운해를 이룬다.
이와 같이 미묘한 만이 널리 주변에 두루 하며
광대하게 공양하여 불사를 한다.
큰 광명을 비추어 향으로써 장엄하는데
갖가지 미묘한 향이 운해를 이룬다.
이와 같이 미묘한 향이 널리 주변에 두루 하며
광대하게 공양하여 불사를 한다.
큰 광명을 비추어 꽃으로써 장엄하는데
갖가지 미묘한 꽃이 운해를 이룬다.
이와 같이 미묘한 꽃이 널리 주변에 두루 하며
광대하게 공양하여 불사를 한다.
큰 광명을 비추어 영락으로써 장엄하는데
갖가지 영락이 미묘한 운해를 이룬다.
이와 같이 영락이 널리 주변에 두루 하며
광대하게 공양하여 불사를 한다.
큰 광명을 비추어 보배 당기[보당]를 나타내는데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이 서로 섞여 장식하고
갖가지 진귀한 보배가 함께 이루어진 것을
사용하여 불찰을 장엄한다.
많이 보배[마니보]의 그물 색이 서로 섞여 비추고
뭇 비단으로 만든 변기 [번]를 걸어서 덮개[개]로 삼으며
수승한 영락을 늘어뜨려 부처님의 음성을 연주하여
장엄하면서 여래의 위를 덮는다.
한 분의 여래에게 공양을 바치며
손안에 있는 모든 장엄구를 왕성하게 보시하고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에게도 또한 그렇게 한다.
자제하게 삼마지를 변화하여 나타내고
신통과 지혜가 미묘하여 생각하기 어려우며
널리 능히 교화하여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가장 뛰어난 신통으로 변화시킨 삼마지로
백천 가지의 방편문을 나타낸다.
모든 여래에게 공양하는 문
일체를 능히 버리는 보시면
두타의 공덕이 되는 지계문
다함없이 요동하지 않는 인욕문
부지런히 수행하는 용맹한 정진문
적정에 안주하는 선정문
모든 의미를 통달하는 승혜문
청정하게 범행을 닦는 신통문
사 섭사를 행하는 환희문
복과 지혜를 쌓아 모으는 이타문
네 가지 진리[사체]와 인연으로 생기는 해탈문
근과 역을 닦는 승도문
성문승을 깨닫는 해탈문
연각승을 관하는 청정문
최상승을 닦는 신변문
혹은 항상 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고뇌문
자아와 수자가 없음을 깨닫는 문
부정관을 닦아 탐욕을 여의는 문
진실로 항상 즐거운 삼매를 증득하는 문
이와 같은 갖가지 방편문에 의하여
평등하게 널리 모든 중생과 함께
모두가 능히 그 해탈문을 증득한다.
모든 형태의 종류를 나타내어 군생의 근기에 적응하고
신통으로 법을 설하는 것이 생각하기 어렵다.
모든 유정을 수순하여 성숙시키고
각각 좋아하고 존경하여 모두가 안락하고
항상 세간을 벗어나는 원인을 생각하며
청정한 삼마지를 추구하여 증득한다.
만약 굶주림 등 뭇 어려운 때를 만나면
그 욕구하는 바에 따라 두루 공급하고
널리 능히 모든 유정을 연민하여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여의고 항상 안온하게 하며,
또 매우 맛있는 모든 음식과
갖가지 의복, 모든 곳간의 물건,
나라와 성에서 좋아하는 것을
전부 능히 지출하여
그 세간에서 큰 보시를 일으킨다.
혹은 특이한 신체의 모습을 나타내어
갖가지 장엄으로 위세를 갖추고
바르는 향과 교묘한 뭇 화만(화췌)으로 치장하여
매우 위엄 있는 색과 모습에 동등한 자가 없다.
이와 같은 형상과 색 및 위의 를
각각 보고 나서 좋아하여 우러러 받들면
그를 위하여 방편으로 법음을 연설하여
두루 군생으로 하여금 도에 대한 의지를 일으키게 한다.
혹은 가릉빈가의 소리와
구계라(새의 한 종류) 및 구나(새의 한 종류)의 소리와
긴나라들의 미묘한 북 치는 소리를 나타내어
모두 여래의 해탈의 의미를 연설한다.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잘 설하신
팔만 사천 가지의 진실한 법장,
이와 같은 모든 법문을 분별하여
전부 중생에게 베풀어 요익한 일을 짓는다.
혹은 고뇌 혹은 쾌락을 나타내고
또 의리와 의리가 아닌 것을 지어
적당하게 인도하여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모두 능히 그와 더불어 동일하게 닦는다.
혹은 어려운 장애와 모든 위태함,
갖가지 핍박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보면
마땅히 용감하게 큰 자비심으로써
그 중생을 대신하여 괴로움을 받는다.
만약 해탈의 법이 없는 데에 처하고
또한 아란야에서 벗어나는 길이 없으면
왕의 복과 힘으로써 흥성하게 숭배를 구족 하여
그로 하여금 모두 청정하게 믿게 한다.
만약 재가의 탐욕과 애락의 결박을 여의면
곧 세간의 원인을 초월하는 자이며
모든 욕망의 경계에 대하여 남김없이 제거하면
이는 세간을 조명하는 자이다.
만약 능히 모든 공덕을 구족 하면
이는 법을 행하는 대장부라고 하며
모니의 미묘한 행실을 전부 능히 수행하면
이 사람은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된다.
수명이 길어 끝이 없고
수승하고 미묘한 즐거움을 누리며 모든 미혹을 소멸하고
태어나고 늙고 병드는 괴로움이 침입할 수 없으며
항상 하지 않은 속에서 자제하게 된다.
탐욕과 성냄의 모든 과실이 치열하여
태워 익히며 잠시도 멈추는 일이 없음을 나타내고
이와 같이 네 가지 모습[사상]도 또한 그러하여
널리 미혹한 군생으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여래의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공덕을
나는 이제 칭송하고 맹세하여 귀의하며
항상 세간에서 의리를 짓는다.
비유하면 갖가지 여러 환사가
능히 뭇 형상을 변화시켜 나타내는 것처럼
여래가 세간에 출현하여
신통으로 교화를 보이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능히 권화 하여 훌륭한 방편으로써
널리 행하여 모든 유정을 요익하게 하고
청정하게 마음으로 즐기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우니
비유하면 연꽃이 더러운 물을 초월하는 것과 같다.
혹은 희론으로 모든 말과 글을 나타내고
영락으로 장엄하여 휘돌아 춤추고
갖가지 재주와 예능 등 대중이 관찰하는 바
모든 색상이 모두 환상과 같음을 나타낸다.
혹은 초영과 취락의 주인이 되고
혹은 장자 혹은 상인[상고]이 되고
혹은 보상(보상:임금을 보좌하는 재상) 및 재신(재신:대신ㆍ신하). 이 되어
변론에 견줄 자 없는 매우 지혜로운 자가 된다.
혹은 광야에서 큰 나무가 되고
혹은 다함이 없는 진귀한 보배창고가 되고
뜻대로 되는 마님보 [여의마니]로써 요구하는 대로
미혹한 방소에서 인도를 한다.
혹은 짓게 되는 모든 사업을 나타내고
갖가지 채색과 그림 및 공교 등
경영하고 파식하며 다투어 희구하는 것이
세간이 오래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혹은 원수나 친한 이에게 증오나 애락이 없음을 나타내어
다 안온하게 길상을 얻게 하고
처방과 약을 환히 통찰하여 군생을 제도하며
방편으로 모니의 도[모니도]를 교시한다.
혹은 가장 뛰어난 모니의 법을 연설하여 두루 사람과 하늘로 하여금 어리석은 의혹을 여의게 하고
모든 다른 도[이도]를 닦는 출가인으로 하여금 마음을 일으켜 일체지로 귀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고행을 하는 모든 외도는
말하지 않는 고 답마의 계율을 항상 지니고
벌거숭이로 계박을 여읜 사문이라고 호칭하며
각자 능히 스승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받든다.
혹은 몸을 버리는 수행[사신행]을 항상 유지하고
가장 수승하여 그 이상 뛰어난 것이 없다고 집착하며
변발ㆍ장계ㆍ동자계는
각자 능히 스승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받는다.
혹은 다섯 가지 열기[오열]에 몸을 굽고
혹은 개와 소 등에 관한 금지된 계율을 받고
혹은 항상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으며
각자 능히 스승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받든다.
혹은 항상 하늘나라 속의 지혜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거나 또 원인이 없는 것을 좋아하고
오직 뿌리와 열매 또 청정한 샘물을 먹으며
각자 능히 스승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받든다.
혹은 쭈그리고 앉거나 혹은 발돋움하고 바라보며
혹은 가시덤불에 눕거나 혹은 재[회]를 바르고
막대기를 잡고 마음으로 하여금 다른 것을 반연 하지 않게 하며
각자 능히 스승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받든다.
나아가 낱낱의 모든 외도는
능히 맹렬하고 예리하게 고행을 닦아
변화하여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영원히 끊으려고
전부 깊은 마음으로 해탈을 추구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세간의 모든 다른 견해는
모두 스승께 의지함으로 말미암는다.
나는 이제 그 삿된 교도들을 접하여
여래의 진실한 의미를 열어 보인다.
혹은 대승의 미묘함을 연설하는 구절
혹은 비밀한 진언을 알리는 구절
혹은 직접 설하여 드러냄을 나타내는 구절
혹은 하늘나라 말을 좋아하는 구절
혹은 문자로써 분별하는 구절
결정코 미묘한 의미의 금강 같은 구절
지혜로써 모든 다른 논의를 꺾어버리는 구절
법에 맞지 않는 언론을 내버리는 구절
혹은 사람 가운데 명주를 나타내는 구절
혹은 모든 하늘의 수승하게 미묘함을 나타내는 구절
모든 용ㆍ야차ㆍ건달바와
아소라 및 보다의 구절
긴나라와 아로나
머플러 등이 말하는 구절로
각각 능히 그 언어와 문장에 이해하여 들어가
여래의 해탈에 관한 법을 선양한다.
말하자면 진실한 의미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법 속에서 마음을 결정하며
언어와 지혜의 경계가 미묘하여 생각하기 어려우니
이것이 가장 뛰어난 삼마지이다.
말하자면 그 삼마지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능히 두루 청정한 광명을 내뿜으며
그 광명은 모든 알맞은 시기를 거두어 교화하여
가뿐하고 안온함을 얻어 항상 적정하게 한다.
혹은 잘 봄[선현]이라고 하는 광명을 내뿜는데
중생이 그 광명을 받으면 믿음을 일으키고
전부 능히 뭇 선함의 원인을 관찰하여
헛되지 않은 위없는 지혜를 구족 한다.
이 광명이 두루 조명함으로 말미암아
한계 없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을 보게 되고
여래의 탑묘를 비추는 영험한 종적에 의하여
낱낱이 칭송하여 공양을 편다.
또 수승한 등불[승등]이라고 하는 광명을 내뿜는데
그 광명이 휘황하게 빛나는 것이 능히 비교될 것이 없고
세간을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고자 하여
능히 미진 같은 모든 암흑을 파괴한다.
그 광명으로 중생을 비추어 보니
각각 등불을 가지고 받들어 바치며
여래에게 공양하는 것은 불가사의한데
다시 뭇 등불을 가지고 보시를 한다.
혹은 소등및 유등으로
혹은 소나무의 수지[송지] 및 대나무의 갈대[죽위]로
나아가 뭇 향기 나는 미묘한 보배 등으로
보시하고 나서 연등이 수기[연등기]를 내려주기 원한다.
또 끌어당겨 부름[구소]이라고 하는 광명을 내뿜는데
전부 능히 모든 유정을 놀라게 하여 모으고
이렇게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그 미혹한 군생을 타일러서
윤회하는 애욕의 바다를 해탈하게 한다.
이와 같이 자비로운 광명이 두루 비추고 나서
각 중생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열게 하고
마땅히 영원히 네 가지 폭류 [사폭유]를 여의어
현재에 근심과 고뇌를 제거하고 항상 안락하게 한다.
대승집보살학론 제24권
18. 염삼보품 ③
모든 도로와 하천이 있는 곳에서
능히 교량 및 선박과 뗏목을 건립하고
두루 모든 중생을 이롭고 즐겁게 하며
적정을 칭찬하여 흔쾌히 깨닫게 한다.
갈애를 제거함 [제갈애]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모든 함식(함지:중생)을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다섯 가지 욕망[오욕]을 버리어 여의게 하고
해탈하는 깊고 미묘한 법을 전적으로 추구하게 한다.
만약 능히 다섯 가지 욕망을 버리어 여의고
해탈하는 깊고 미묘한 법을 전적으로 추구한다.
만약 능히 다섯 가지 욕망을 버리어 여의고
해탈하는 깊고 미묘한 법을 전적으로 추구하면
곧 능히 부처님의 감로의 비로써
두루 세간의 모든 갈애를 소멸하고
연못과 우물 및 샘물의 흐름에 은혜를 주고
부지런히 위없는 보리도를 구하며
다섯 가지 욕망을 꾸짖고 선정을 칭찬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갈애를 제거함이라고 한다.
변화함 [작변]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모든 중생을 깨우쳐서
보는 자로 하여금 부처님의 보리를 흠모하게 한다.
마음을 내어 스승 없이 지혜를 증득하기 원하고
크게 자비로운 여래의 형상을 만들어 세우고
뭇 모습이 장엄하게 연화좌에 거처하여
항상 가장 수승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애락을 지음[작애]이라고 한다.
기뻐하고 좋아함 [흔락]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모든 중생을 깨우쳐서
그 마음으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을 좋아하고
또 법을 좋아하고 스님들을 좋아하게 한다.
만약 항상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을 좋아하고
또 법을 좋아하고 스님들을 좋아한다면
곧 여래의 성스런 모임 중에 머무르며
생김이 없는 깊은 법인을 체득하고
중생을 깨닫게 하는 데에 한량이 없고
두루 부처님과 법과 스님 등 삼보를 생각하게 하며
또 마음을 일으키는 공덕행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기뻐하고 좋아함이라고 한다.
복을 모음[복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모든 중생을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갖가지 보시를 닦게 하고
이로써 위없는 도를 구하기를 원하게 한다.
크게 보시하는 모임을 베풂에 금지하는 한도가 없어
찾아와 구걸하는 자가 모두 만족하여
그 마음으로 하여금 부족한 바가 없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복을 모음이라고 한다.
지혜를 구 족 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모든 중생을 깨우쳐서
하나의 법문(법문)에서 많은 법을 알고
많은 법문을 찰나에 이해하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분별해서 말하고
진실한 의미를 결정적으로 깨달아
잘 능히 자세히 설명하여 훼손되어 감소되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지혜를 구족함이라고 한다.
지혜의 등불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모든 중생을 깨우쳐서
중생의 성품이 공적 하여
일체의 모든 법을 소유함이 없고,
법은 주재가 없어 본래 공하여
환상ㆍ아지랑이ㆍ물속의 달과 같고
또한 꿈속의 경계 및 그림자의 모습과 같음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지혜의 등불이라고 한다.
법에 자제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모든 중생을 깨우쳐서
다함이 없는 다라니를 얻고
모두 일체의 여래장을 지니며
법을 지키는 자를 공경하고 공양하여
넉넉하게 모시고 수호하기를 모든 선인처럼 하며
갖가지 법으로써 중생에게 베풀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법에 자재함이라고 한다.
베풂을 갖춤 [구사]이라고 하는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인색한 중생을 깨우쳐서
재산의 부유함이 전부 항상 하지 않음을 알고
즐거이 은혜를 베풀어 아까워하지 않게 한다.
잘 능히 그 인색함을 조복 하는 자는
재물은 꿈과 같고 뜬 구름과 같다는 것을 알고
은혜를 베푸는 청정한 마음을 증장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베풂을 갖춤이라고 한다.
뜨거움을 제거함이라고 하는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계율을 훼손한 자를 깨우쳐서
두루 청정한 계율에 안주하고
마음을 내어 스승 없이 깨닫는 지혜를 증득하기를 원하며,
중생에게 장려하여 모두가 받들어 지니고
열 가지 선한 업도[십선업도]가 항상 청정하고
다시 보리심으로 나아가기를 발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뜨거움을 제거함이라고 한다.
인욕 하여 장엄함이라고 하는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크게 성내는 자를 깨우쳐서
성냄과 아만을 제거하고
즐거이 인욕을 수행하여 항상 유순하고 온화하며
중생이 사납고 악하여 인욕을 수행하기 어려워도
보리를 위하여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가장 뛰어난 인욕의 공덕을 칭찬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인욕으로 장엄함이라고 한다.
부지런하고 용감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나태한 자를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항상 삼보 가운데
공경하고 공양하며 피로하여 싫어하지 않게 한다.
만약 그가 항상 삼보 중에서
공경하고 공양하며 피로하여 싫어하지 않으면
곧 능히 네 가지 악마[사마]의 경계를 초월하여
위없는 부처님의 보리를 성취하고,
모든 중생에게 권하여 정진을 일으키며
항상 삼보에 대하여 공양을 펼치고
법이 소멸하려고 할 때는 전적으로 보호하여 지킨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부지런하고 용감함이라고 한다.
적정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마음이 어지러운 자를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멀리 여의게 하여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바른 선정에 머무르며
일체의 악지식과 의미 없는 담설과
난잡하게 오염된 행위를 버리고
선정과 아란야를 찬탄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적정이라고 한다.
지혜로 장엄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어리석어 미혹한 자를 깨우쳐서
그로 하여금 이치를 증득하여 연기를 이해하게 하고
모든 감각기관과 지혜가 전부 통달하게 한다.
만약 능히 이치를 증득하여 연기를 이해하고
모든 감각기관과 지혜가 전부 통달하면,
곧 일등삼마지를 얻어
지혜의 광명으로 부처님의 과보를 성취하고
나라와 재물 및 자기를 모두 능히 버리며
보리를 위하여 바른 법을 구하고
듣고 나서는 대중을 위하여 널리 연설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지혜로 장엄함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지혜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모든 함식을 깨우쳐서
한량없는 백천의 부처님이
각각 보배 연꽃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하여
부처님의 위덕과 해탈을 찬탄하고
부처님의 자제한 모든 신통을 말하며
부처님의 힘이 미묘하여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부처님의 지혜라고 한다.
두려워하지 않음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비추어 접촉하여 모든 공포를 제거하고
인간이 아닌 것[비인]에 종아리를 맞고 붙잡혀 결박되는
일체의 재난을 모두 소멸시키며,
모든 중생에게 두려워하지 않음을 베풀고
괴롭거나 해치는 일을 만나면 모두 능히 그치게 하고
재앙을 당하여 외롭고 곤궁한 자를 구제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두려워하지 않음이라고 한다.
안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질병이 있는 자를 비추어
일체의 모든 고통을 제거시켜서
전부가 수승한 선정 삼매[승정삼매]의 즐거움을 얻고
좋은 약을 베풀어 뭇 질환을 고치며
목숨을 연장시키는 미묘하고 보배로운 향을 신체에 발라서
손 안에서 모든 음식이 떠올라 나타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안온이라고 한다.
부처님을 봄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장차 임종할 자를 깨우쳐서
그 기억하는 바에 따라서 여래를 보고
목숨을 마치고 그 청정한 나라에 태어나게 되며,
임종할 때 부처님을 부르는 일을 권하고
또 세존의 형상을 나타내어 우러러 공경하는 일이 있음을 보면
복종하여 부처님의 처소에 대하여 깊이 귀의하여 신앙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부처님을 봄이라고 한다.
법을 좋아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모든 군생을 깨우쳐서
바른 법에 대하여 항상 흔쾌히 좋아하여
청문하고 읽고 외우며 또 글씨를 쓰게 하여
법이 다하려고 할 때에 능히 연설하여
법을 구하는 자로 하여금 마음을 충만하게 하고
법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닦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법을 좋아함이라고 한다.
미묘한 소리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모든 보살을 깨우쳐서
능히 삼계에 존재하는 소리를
듣는 자로 하여금 모두 여래의 음성으로 알게 하여
커다란 음성으로써 부처님을 칭찬하고
또 방울소리 등 모든 음악을 베풀어
두루 세간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음성을 듣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미묘한 소리라고 한다.
감로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모든 중생을 깨우쳐서
일체의 방일한 행위를 버리게 하고
모든 공덕을 구족 하여 닦게 한다.
유위법은 안온하지 않아서
한량없는 고뇌가 전부 충만하다고 말하며
항상 기꺼이 적멸의 즐거움을 칭찬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감로라고 한다.
가장 수승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모든 중생을 깨우쳐서
부처님의 처소에서 두루
계율ㆍ선정ㆍ지혜의 증상법을 청문하게 하여
항상 기꺼이 위대한 모니[대모니]의
수승한 계율ㆍ수승한 선정ㆍ수승한 지혜를 칭찬하고
이와 같이 되려고 위없는 도를 구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가장 수승함이라고 한다.
보배로 장엄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모든 군생을 깨우쳐서
보배 곳집[보장]이 무궁하여 다함이 없게 한다.
이것을 모든 여래에게 공양하는데
매우 미묘한 갖가지 보배로써
부처님과 부처님의 탑에 받들어 보시하고
또한 그것으로써 궁핍한 모든 자에게 보시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향으로 장엄함 [향엄]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이 광명은 능히 모든 중생을 깨우쳐서
그 냄새 맡는 자로 하여금 마음을 기쁘게 한다.
결정코 부처님의 공덕을 성취할 것이며
사람과 하늘의 미묘한 향을 발라서 치장하고
일체의 가장 수승한 주[최승주]에게 공양하고
또한 그것으로써 탑과 불상을 조성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미묘하게 장엄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보배로운 당ㆍ번ㆍ일산이 무앙수이며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뭇 음악을 연주하여
성읍의 안팎이 모두 충만하고
그로 말미암아 미묘한 기예의 음악,
뭇 향, 미묘한 꽃, 당과 일산 등
갖가지로 장엄하여 부처님을 공양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매우 청정함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땅을 손바닥처럼 평탄하게 하고
불탑과 그 처소를 장엄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큰 구름[대운]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능히 빈틈없이 향수를 비처럼 내려
그로 말미암아 향수로써 불탑을 씻는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장엄하게 갖춤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벌거벗은 자로 하여금 좋은 의복을 얻게 하고
몸을 장엄하는 미묘한 물건을 베푼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좋은 맛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능히 굶주린 자로 하여금 맛있는 음식을 얻게 하고
뭇 진귀한 음식을 베푼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수승한 재물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궁핍한 자로 하여금 보배 창고를 얻게 하고
다함이 없는 물건을 가지고 삼보께 보시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눈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능히 장님으로 하여금 뭇 색깔을 보게 하고
등불을 부처님과 불탑에 공양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귀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능히 귀머거리로 하여금 전부 잘 듣게 하고
음악을 지어 부처님과 불탑에 공양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코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예전에 맡지 못하던 향을 모두 맡게 하고
향을 가지고 부처님과 불탑에 공양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혀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능히 추악하고 좋지 않은 말[어]을 제거하고
그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소리로써 부처님을 칭찬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몸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감각기관이 결여된 자로 하여금 모두 구족 하게 하고
몸으로써 부처님과 불탑을 예배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뜻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상심한 자로 하여금 바른 생각을 얻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삼매의 자제한 힘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색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생각하기 어려운 미묘한 모습을 다 보게 하고
미묘한 꽃을 가지고 부처님과 불탑에 공양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소리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골짜기의 메아리처럼 소리가 연으로부터 일어남을 관찰하고
소리의 성품이 본래 공함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냄새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모든 불쾌한 냄새를 전부 향긋하고 청결하게 하고
향수를 가지고 부처님과 불탑을 목욕시킨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맛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능히 일체의 맛 속에 있는 독을 제거하고
항상 부처님과 스님 및 부모에게 공양한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감촉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능히 굳은 감촉을 모두 유연하게 하고
창ㆍ작은 창ㆍ칼ㆍ미륵창이 허공으로부터 비 오듯 내려도
모두 변화시켜 미묘한 화만으로 만들고
옛적에 일찍이 도로 중에서
향을 바르고 꽃을 뿌리고 의복을 펼쳐서
여래를 우러러 받들어 그 위를 답보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청정한 법이라고 하는 큰 광명을 내뿜는데
능히 신체의 모든 털구멍 속으로부터
생각하기 어려운 미묘한 법문을 전부 연설하게 하여
듣는 자가 다 기뻐하여 해탈하는 은혜를 입는다.
자성은 성품이 없어 연으로부터 일어나며
법성은 항상 머물러 허공과 같다.
부처님의 신체는 곧 법신이라고 깨달아 안다.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이와 같은 등등의 비유하는 광명문은
미진수와 같아서 한량이 없고
전부 큰 선인의 털구멍으로 나오며
이루는 일들은 각각 차별된다.
하나의 털구멍에서 나오는 광명이
허공의 미진수와 같음을 나타내는 것처럼
일체의 털구멍도 전부 또한 그러하니
이것은 큰 선인 삼매의 힘이다.
그가 수행하는 모든 공덕처럼
그 옛날의 인연을 따라 함께 범행하여
이제 광명을 내뿜기 때문에 이와 같으니
이것은 큰 선인의 지혜가 자제함이다.
지난 옛날 수승한 복된 업을 함께 수행하여
능히 애락을 일으키고 모두 따라서 기뻐하였는데
지금 이루는 바도 또한 그러하여
그러므로 이 광명을 성취하게 된다.
만약 뭇 복된 업을 스스로 수행하여
자주자주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다시 부처님의 덕에 대하여 항상 부지런히 추구함이 있으면
이 광명으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열게 된다.
비유하면 장님이 태양을 보지 못해도
태양이 세간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눈이 있는 자는 전부 알고서
각자의 임무에 따라서 수행을 한다.
대사의 광명도 또한 이와 같아
지혜가 있는 자는 모두 다 보는데
범부와 삿된 것을 믿거나 이해가 열등한 자는
이 광명에 대하여 능히 보지 못한다.
마니의 궁전과 수레는
미묘한 보배와 신령한 향으로써 꾸미고 빛내어
수승한 복을 구비한 자에게는 다 자연스러워도
덕이 없는 자는 능히 편안한 자리가 못 된다.
대사의 광명도 또한 이와 같아
지혜가 깊은 자는 다 비춤을 받아도
삿된 것을 믿거나 이해가 열등한 범부로 우매한 사람은
능히 이 광명을 보지 못한다.
만약 이 광명의 차별을 듣고
능히 청정하게 깊이 믿어 이해하여
영원히 일체의 모든 의혹의 그물을 단절하면
속히 위없는 공덕의 당기[공덕당]를 성취한다.
다시 가장 뛰어난 삼마지를 나타내면
권속과 장엄이 모두 자제하여
시방의 일체 국토 중의
불자들이 모여서 모두 둘러싼다.
미묘한 연화 광명의 장엄이 있어
그 분량이 삼천대천세계와 동등하고
그 몸이 단정하게 앉아서 전부 충만하여
이 삼매의 신통력을 나타낸다.
다시 열 불찰[십찰]의 미진수의
미묘한 보배 연화로 장엄하게 치장한 것이 있어
모든 불자들이 그 속에 머무르니
이것은 이 삼매의 위신력이다.
지난 세상에서 선한 인연을 성취하여
부처님의 공덕을 구족 하여 수행하고
이와 같은 우리의 모임에 둘러싸여
전부 함께 합장하여 바라보아도 싫어함이 없다.
동자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성년의 몸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성년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노년의 몸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노년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근사녀(여자 재가 신도)의 몸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근사녀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근사남(남자 재가 신도)의 몸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근사남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비구니의 몸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비구니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비구의 몸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비구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학ㆍ무학의 몸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학ㆍ무학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연각의 몸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연각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여래의 몸을 나타내어 삼매에서 깨어난다.
여래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모든 하늘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다.
모든 하늘 사람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큰 용[대용]의 몸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큰 용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야차의 몸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야차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부다의 몸[부다신]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부다의 몸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하나의 털구멍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하나의 털구멍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일체의 털구멍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일체의 털구멍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하나의 털끝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하나의 털끝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일체의 머리털 끝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일체의 머리털 끝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하나의 미진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하나의 미진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일체의 미진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일체의 미진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금강제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금강제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
마님보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만약 마니보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면
부처님의 광명 중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만약 부처님의 광명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면
수대 중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만약 수대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면
화대 중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만약 화대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면
풍대 중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만약 풍대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면
지대 중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만약 지대 중에서 삼매에 들어가면
하늘의 궁전에서 선정에서 깨어난다.
만약 하늘의 궁전에서 삼매에 들어가면
허공에서 선정에서 깨어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이것을 부사의 해탈
자재공덕 삼마지라고 한다.
시방에 존재하는 모든 여래가
한량없는 겁 동안 설하여도 다함이 없으며,
일체의 여래가 함께 잘 설하는
중생의 업보와 용의 변화와
모든 부처님의 자제한 큰 신통
및 선정에 들어가는 힘은 부사 의하다.
성문의 마음으로 팔해탈에 머무르면
능히 한 몸으로써 많은 몸을 나타내고
다시 많은 몸으로써 한 몸이 되어
허공에서 불의 선정[화정]에 들어간다.
그는 큰 자비를 구족 하지 않고
중생을 위하여 불도를 구하지 않고서도
오히려 능히 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을 나타내거니
어찌 하물며 광대하게 요익한 자임 이랴.
비유하면 해와 달이 허공을 유희하면
그 광명이 두루 시방의 처소에 퍼져
샘ㆍ연못ㆍ소택ㆍ그릇 안의 물과
뭇 보배로운 강과 바다가 나타나지 않음이 없듯이
보살의 색상도 역시 또한 그러하여
시방에 두루 부산의를 나타낸다.
이것은 모두 삼매의 자제한 힘이며
오직 여래만이 능히 현증한다.
바닷속에 선한 소리[선음]라고 하는 신이 있는데
그 소리는 널리 바다에 수순하여
중생이 소유하는 언어를 모두 분별하여
그 일체로 하여금 전부 환희하게 한다.
그 신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더불어 있어도
오히려 능히 모든 언설을 잘 이해하는데
하물며 다시 총지의 자제한 힘으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게 하지 못하랴.
비유하면 요술쟁이가 요술을 잘하여
능히 한없는 교묘한 사업을 나타내어
잠깐 동안에 일월의 세월을 지어 보여서
성읍이 풍요하고 크게 안락한 것과 같이,
요술쟁이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더불어 있어도
오히려 요술의 힘에 능숙하여 세간을 기쁘게 하는데
하물며 다시 해탈하는 모든 선정으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게 못하랴.
라후아수라가 변화로 나타내어
금강제를 밟고서 바닷속에 서는데
바닷물이 비록 깊어도 몸의 반만이 잠길 뿐
머리는 수미와 가지런하게 동등하다.
그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있어도
오히려 능히 이 큰 신통한 변화를 나타내는데
하물며 다시 악마를 항복시키고 세간을 비추는 등불로서
자제한 위신력이 없으랴.
천신과 아수라가 싸울 때에
제석의 신력이 자재를 얻어
그 군중의 수량에 수순하여
몸과 더불어 동등함을 나타내어 그에게는 적이 없으며,
모든 아수라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석제환인이 우리를 향하여 오는데
반드시 우리 몸을 잡아서 다섯 가지로 결박하리라.
이로 말미암아 그 무리는 전부 근심하여 두려워한다.
제석이 몸을 나타내면 천 개의 눈이 있고
손에는 금강을 잡고 불덩어리를 뿜으며
갑옷을 걸치고 병장기를 지니고 위엄을 갖추어
아수라는 멀리서 보고 다 물러나 항복한다.
그는 미미하고 작은 복의 힘으로
오히려 능히 큰 원수진 적을 무찔러 파괴하는데
하물며 일체를 구제하여 제도하는 자가
어찌 공덕에 대하여 자제하지 못하랴.
바람에 구름을 일으켜 큰 비를 내리고
또한 능히 모든 구름의 기운을 없애며
또한 능히 모든 곡식을 성숙시키고
또한 능히 모든 군생을 안락하게 하는 것과 같이
그는 능히 바라밀을 배우지 않고
또한 부처님의 모든 공덕을 배우지 않고서도
오히려 불가사의한 일을 성취하는데
하물며 모든 서원을 구 족 한 자임 이랴.
보운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만약 모든 보살이
향과 꽃을 엄숙하게 가지고
여래와 부처님의
탑묘에 봉헌하면
이로써 회향하기를,
모든 중생이
계율을 파괴하는 더러움을 여의고
부처님의 계향을 얻기 기원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청정한 향수로써
깨끗이 청소하고 땅에 뿌리면
이로써 회향하기를,
모든 중생이
나쁜 위의 를 여의고
선한 법식을 수습하여
정숙하고 원만하기를 기원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꽃과 일산을 엄숙하게 가지고 봉헌하면
이로써 회향하기를,
모든 중생이
번뇌의 뜨거움을 여의기를 기원한다.
만약 가람(가람:정사)에 들어가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의 성[열반성]에 들어가기를 기원하고
가람을 나갈 때에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음의 지옥을 초월하기를 기원한다.
만약 호유를 열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성스런 지혜의 문[성지문]을 열기를 기원하고,
만약 호유를 닫으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악취의 문[악취문]을 닫기를 기원한다.
만약 편안히 앉아 있을 때에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의 도량[보제장]에 앉기를 기원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누울 때에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에 안주하기를 기원하고
누웠다가 일어날 때에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전개(전개:번뇌)의 장애를 여의기를 기원한다.
만약 변리(편이)에 가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큰 깨달음의 길[대각로]에 들어가기를 기원하고
바로 변리를 볼 때에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세 가지 독의 화살[삼독 전]을 뽑아 버리기를 기원한다.
만약 깨끗이 씻을 때에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의 때를 씻기를 기원하고
만약 손을 씻을 때에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더럽고 혼탁한 업을 여의기를 기원하고
만약 발을 씻을 때에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장애의 먼지를 여의기를 기원하며,
이쑤시개를 사용할 때에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때와 오염을 버리기를 기원한다.
또 그 보살이
만약 몸으로 짓는
일체의 선한 업이 있으면
가지고서 회향하여
일체의 중생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한다.
만약 여래 및 부처님의
탑묘에 예배하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사람과 하늘로부터
예배받고 공경받기를 기원한다.
대승집보살학론 제25권
18. 염삼보품 ①
반야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또 다음에 사리자야, 혹은 보살마하살은 설사 악한 짐승을 만나는 재난 속에서도 놀라거나 괴로워하지도 않고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곧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는 마땅히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일체를 모두 버려야 한다.
만약 모든 악한 짐승이 나를 씹어 먹고자 하면, 나는 마땅히 베풀어 주어 속히 보시바라밀을 원만하게 하고, 나는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때에 국토가 청정하여 모든 악한 벌레와 짐승의 이름을 듣지 않기를 기원한다.
또 다음에 사리자야, 혹은 보살마하살은 원수진 도적을 만나는 재난 속에서도 놀라거나 괴로워하지도 않고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만약 자기가 소유한 것이 있으면 모두 다 능히 덜 어버이고 곧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만약 모든 원수진 도적이 와서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나는 마땅히 그것을 주어야 한다.
나아가 겁탈하여 나의 목숨을 끊어도 몸과 말과 입으로 짓는 업에 있어서 또한 성내거나 한탄하지 않는다.
속히 계바라밀을 원만하게 하고 또 인욕바라밀을 구족 하여 내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때에 국토가 청정하여 이와 같은 원수진 도적의 이름을 듣지 않기를 기원한다.’
또 다음에 사리자야, 혹은 보살마하살은 물이 고갈되는 재난 속에서도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법의 이익을 얻어서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으며, 곧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는 이제 마땅히 일체중생을 위하여 법의 요지를 잘 설하여 갈애를 끊어야 한다.
설사 나의 이 몸이 갈증에 핍박되어 목숨이 끝나게 되어도 다시 후세에 크게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킨다.
이 중생에게 복과 덕이 적음을 탄식하기 때문에 도리어 다시 이 물이 없는 재난 속에 태어나서 바른 행위를 수행하고 수승한 지혜를 구족 하여 능히 정진바라밀다를 원만하게 하고, 내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 국토가 청정하여 이와 같은 물의 부족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며, 그 가운데 중생은 복과 덕을 구족하여 자연히 여덟 가지 공덕의 물[팔공덕수]이 있기를 기원한다.’
또 다음에 사리자야, 혹은 보살마하살은 기근의 재난 속에서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정진의 갑옷을 입고 견고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지금 이 중생은 기근의 괴로움을 받아 매우 연민을 느낀다. 내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면, 국토에 기근이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고, 교화할 중생이 열락에 젖어 안온하여 도리천의 자연스러운 쾌락과 같고, 욕망하는 마음에 따라서 모든 것이 곧 나타나고, 수명이 견고하고 적정에 안주하기를 기원한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은 곧 능히 광대한 복의 요인을 최상의 경계로 증장하는 것이다.
또한 청정경 중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혹은 법의 보시[법시]로써는 얻게 되는 수승한 과보를 희망하지 않는다.
심심교계경을 보자.
만약 사람이 명성과 재물의 이익을 희구하지 않으면, 능히 법의 보시로써 스무 가지 자비로운 마음의 공덕을 얻는다.
첫째, 바른 사념에 안주한다.
둘째, 능히 깨닫게 된다.
셋째, 수승한 도로 나아간다.
넷째, 모든 선을 지닌다.
다섯째, 혜명을 증장시킨다.
여섯째, 출세간의 지혜를 통달한다.
일곱째, 탐욕의 과실을 제거한다.
여덟째, 성냄의 과실을 제거한다.
아홉째, 어리석음의 과실을 제거한다.
열째, 악마가 틈을 얻지 못한다.
열한째, 모든 부처님께서 가지 하신다.
열두째, 모든 하늘이 수호하고 용모와 안색에서 광택이 난다.
열셋째, 인간이 아닌 자와 나쁜 친구가 그 틈을 얻지 못한다.
열넷째, 좋은 친구와 선지식에게 항상 사랑받고 존경받는다.
열다섯째, 하는 말이 진실하다.
열여섯째,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열일곱째, 마음이 항상 기쁘고 즐겁다.
열여덟째, 좋은 이름이 유포된다.
열아홉째, 명백하게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는다.
스무째, 항상 법의 보시를 좋아한다.
이것을 자비로운 마음의 공덕이라고 한다.”
또 반야경에서 말한다.
또 다음에 아난아, 가령 성문인이 성문의 법으로써 널리 삼천대천세계의 일체중생을 위하여 그 증득하는 바와 같이 연설하여 전부 아라한의 과보를 얻게 한다고 하자. 아난아, 만약 보살마하살이 능히 반야바라밀다에 상응하는 구절의 의미를 한 중생을 위하여 열어 보이고 연설하면, 앞의 삼천대천세계의 일체중생이 아라한을 증득하여 얻는 공덕보다 뛰어나다. 또 그 모든 아라한에게서 보시와 지계의 공덕을 쌓아 모은다고 하자.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습니다,
선서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 복이 비록 많아도 보살이 이 반야바라밀다에 상응하는 법문을 가지고 타인을 위하여 연설하는 것만 못하니, 이 복이 그것보다 수승하다.
또 보살마하살이 이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깊은 법문에 대하여 능히 하루 동안 사람을 위하여 분별하고, 이와 같이 나아가 일시 일 각 일수유 동안 잘 설한다면, 아난아, 그 보살이 이와 같이 법을 보시하는 것은 성문과 연각의 선근으로써는 서로 비유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하여 퇴전하지 않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또 법으로써 보시하는 것은 묘법연화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보살이 겨를이 있어
고요한 방에 들어가
바르게 기억하여 사념함으로써
의미에 수순하여 법을 관찰한다.
보살은 항상 즐거이
안온하게 법을 설하고
청정한 땅에
평상과 자리[상좌]를 설치하고
기름을 몸에 발라
티끌과 때를 닦아내며
새롭고 깨끗한 옷을 입어서
안팎이 함께 청정하여
법좌에 편안히 처하여
질문에 따라서 설한다.
만약 비구
및 비구니가 있으면
나태한 마음과
게으른 생각을 제거하여
모든 근심과 고뇌를 여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법을 설한다.
밤낮으로 항상
위없는 도의 가르침을 설하여
모든 인연과
한량없는 비유로써
중생에게 열어 보여
모두 환희하게 한다.
의복ㆍ취침 도구ㆍ
음식ㆍ의약품
그중에 대하여
희망하는 바가 없이
다만 한마음으로
법을 설하는 인연을 생각하고
불도를 성취하기를 기원하며
중생들도 그렇게 되게 한다.
이것이 곧 크게 이로운
안락한 공양이다.
이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법에 수순 하기 때문에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으며, 나아가 법을 깊이 좋아하는 자도 또한 많이 설하지 않는다.”
또 월등경의 게송에서 말한다.
만약 기숙이 청하여 질문하며
법의 보시를 구하고자 하면
응당 먼저 그에게
나의 학습은 넓지 못하다고 말한다.
또다시 이렇게도 말한다.
존자께서는 매우 총명하고 지혜로우신데
어찌 대덕 앞에서
능히 문득 잘 설하겠습니까?
설할 때에는 허둥지둥하지 말며
마땅히 근기가 되는가 못 되는가 간택하고
그 근기를 살펴보았다면
그가 청하지 않아도 또한 설해야 한다.
만약 대중 속에서
계율을 파괴하는 자를 보면
다시 계율을 지킬 것을 한탄하지 말고
마땅히 보시 등의 행위를 찬탄해야 한다.
만약 욕심이 적은 자와
계율을 지키는 것과 상응하는 자를 보면
큰 자비심을 일으켜
욕심이 적고 계율을 지키는 것을 찬탄하며
그 수승한 주려(주려:동년배)를 얻어
곧 계율을 지키는 것을 찬탄해야 한다.
해의경의 다라니를 보라.
다냐 타 샤미 샤마바디 샤미 다샤도로 앙고라 마
달절신타인일설미인이 설마 부저얼삼설미다설돌로이합사앙고리인오마인
라이디 가라 니 기 유리 오갈바디 오호 가야지 미슈
라저륙갈라인니인칠지인유리인 팔오걸 부저구오호인 갈야 저 십미수인
다니 닐- 마 리 마라 바나예 오카리 카로 아라
타니십일니리마이합리인십이마나인발나예인십삼오갈리인십사갈로인誐라이
셰바라 사니 혜 목게 아 목케 샤예다 이 살
납세인십오발라이합살니인십륙 계인목계인십칠아인목계인 십팔설 예다인니살
- 바 다라 아라 하만 다나 니 하리 혜 다 살- 바 바라바라
리부이합달라이합誐라이합하만타나인니십구 흘리가 합계 린다살리부이합파라발라이
바 예나 미록 하다 마 라바 사 사타 바다 몯다모나라
합부인녜나이십미목흘다이합인마인라파인사 이십일새타이합인 필다인몰타 모날라
삼 모나가 디다살- 바 마라 아 도리다 바나
이합인이 십이 삼 모 날가이합인저다살리부이합마라이십삼아도다발날
바리슈제 미아 차디 살- 바 마 라갈- 마 니
발리수절신인 이십사 미誐차저살리부이합마인라갈리마이합인니이십오
그 설하는 법사는 이 진언을 지니어 외우고 나서 법좌에 앉아 두루 모인 대중을 관찰하고 널리 자비로운 마음을 운행한다.
마땅히 자기 몸에 대해서는 의왕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법에 대해서는 약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법을 듣는 자에 대해서는 병든 사람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모든 여래에 대해서는 바른 인사[정사]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바른 법의 눈[정법안]에 대해서는 영구히 머무르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 진언으로 말미암아 바른 이치의 법을 현전에서 시설하고 뜻에 맞게 설한다. 이때 주위 백 유순 안에는 모든 악마와 하늘 무리가 전부 능히 들어와 모든 마사를 짓지 못하며, 설사 모든 마왕이 법회 장소에 이르러도 또한 모든 장애의 재난을 짓지 못한다.
문수사리여, 비유하면 숲의 나무 가지와 잎이 무성한 것은 모두 사대로 인하여 생장하게 된 것과 같다. 문수사리여, 이와 같이 보살은 갖가지 문으로써 모든 선근을 모으고, 일체를 모두 거두어서 보리심에 머무르게 하고, 일체지의 회향으로 보리를 증장시킨다.”
만약 모든 보살이 부처님의 경계를 광대하게 나타내어 배우고자 하면, 바른 사념과 바른 앎[정지]에 먼저 안주한다. 이와 같이 하면 곧 바른 단절[정단] 및 방일하지 않음을 능히 성취한다. 말하자면 정진을 즐거이 하고자 함으로 말미암아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막아서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이미 생겨난 악하고 선하지 않은 그 법을 곧 능히 영원히 끊어 청정하게 하며, 아직 생기지 않은 선한 법은 일어나게 하고, 이미생겨난 선한 법을 또다시 증장시킨다. 방일하지 않음에 항상 안주하며, 모든 선한 법 중에서 이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월등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내가 말한 모든 선한 법과 같이
말하자면 계율[계]ㆍ들음 [문]ㆍ보시[사] 및 인욕은
방일하지 않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것을 선서의 가장 수승한 재물이라고 한다.
무엇을 방일이라고 하는가? 삿된 교리[사교] 및 나쁜 친구에게서 허망하게 추구하여 일으키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왕이 먹는 약을 그릇 속에 가득 채워서 험난하고 미끄러운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공포에 떨고 근심하여 괴로워하니, 어떻게 방일함이 있겠는가?
또 여래비밀경(여래비밀경)에서 말한다.
“무엇이 방일하지 않음인가? 말하자면, 최초에 모든 감각기관을 먼저 능히 다스려 거둔다.
눈이 색 등을 보고는 모습을 취하지 않고 좋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나아가 마음이 법을 대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이것을 알고 나서 모두 취착 하지 않고 오염된 애욕을 일으키지 않으며 항상 벗어남을 추구한다.
또 자신의 마음에 대하여 잘 조복하고 나서 또한 능히 합당하게 타인의 마음을 거두어 보호하고 그의 번뇌와 오염된 애욕을 잘 그치게 한다.
이것을 방일하지 않음이라고 한다.
만약 사람이 방일하지 않은 법을 믿고 이해하면, 곧 능히 모든 정진하는 일에 수순하고 또한 청정하게 믿는 공덕을 쌓는다.
청정한 믿음과 방일하지 않고 정진하는 법을 수행하기 때문에 곧 능히 바른 사념과 바른 앎을 닦는다.
바른 사념과 바른 앎으로써 곧 일체 보리분의 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만약 청정한 믿음ㆍ방일하지 않음ㆍ정진ㆍ바른 사념과 바른 앎을 구족 하면, 곧 능히 깊이 견고한 법을 부지런히 수행한다.
보살이 만약 깊이 견고한 법에 대하여 잘 알면, 곧 능히 있음 [유]과 없음 [무]에 대하여 여실하게 깨닫는다.
나아가 세속제 중에서 눈 등을 있음이라고 설한다.
그 경전의 게송에서 말한다.
항상 방일하지 않고 감로의 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보리심을 일으킨다.
깊고 견고한 적정한 마음도 또한 그러하여
모든 즐거움의 근본은 취하는 바가 없다.
자신과 타인의 평등을 배워
보리심을 견고하게 하고
자신에 대하여 타인을 성립하는 것은
전전하여 진실함이 있지 않다.
또한 오히려 저 언덕[피안]을 건립하는 것은
이 언덕으로 말미암아 상대하는데
저것이 이미 본래 없으니
자아의 성품이 어떻게 소유되리.
만약 괴로움울 막아 지키지 않으면
곧 괴로움에 붙잡히게 되니
이와 같이 법을 행하는 자가
어떻게 수호하지 않는가?
삿되고 허망한 분별을 일으켜서
자아가 항상 하다고 집착하는데
만약 자아가 본래 그러한 것이라면
어찌하여 현재에 생기고 소멸하는가?
그가 만약 별도로 생김이 있다면
누구를 위하여 복의 업을 수행하고
재물의 이익을 영위하여 추구하며
또 모든 쾌락을 받는가?
현재에 몸이 노쇠하는 것을 보며
오래지 않아 훼손되어 소멸하고
어린아이 동자 및 소년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찰나의 시간 속에서
신속히 부패하여 변해서 허물어지니
어떠한 것을 몸이라 하리오.
손톱과 머리카락이 모두 흩어져 버린다.
처음의 식[초지]이 모태[모태]에 기탁하고
태어나서는 어린아이가 되고
성년과 노쇠한 모습이 되며,
최후에는 재가 되어 없어진다.
이것이 몸의 자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상태에 따라 임시로 안배한 것이나
필경에는 한 티끌도 없으니
형상이 어떻게 오래도록 머무르리오.
또다시 이 몸은 말하지 않아도
마땅히 스스로 알 것이니
다른 모습이 되어 천류 하기에
자아를 사유하여도 어떻게 존재하리오.
상태가 화합하는
세속으로 말미암아 나타나지만
부처님의 바른 도리 중에서는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단절된다.
그가 만약 식(지)이 있지 않다면
곧 건립할 수 없으며
또한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도 없으리니
어떻게 공덕이 있으리오.
나머지 아홉 가지 세간도
각각 세 가지가 있으며
식(지)이 없다면 의복 등을 주어도
어떻게 능히 그에게 즐거움을 생기게 하리오.
의복은 즐거움을 생기게 할 수 없으며
마땅히 원인으로부터 생김을 알아야 한다.
만약 즐거움이 의복에서 생한다면
그의 모습이 어떻게 일찍이 있었으리오.
그러므로 바른 교리[정이교]에서는
모든 행은 항상 하지 않으며
현전의 증득[현증]과 사유(사유)는
인연의 화합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한다.
자기의 권속을 보고서
어떻게 항상 함 [상]이 있다고 말하리.
여러 방향에서 추구하여도
하나의 미진도 허용되지 않는다.
등불을 밝히매 기름이 소진되는 것처럼
그 기름이 관찰하고 나면
찰나도 머무를 수 없다.
모든 권속을 모집하여
장엄하게 치장하여 행렬하면서
허망하게 계도하여 자아가 있다 하여도
즐거움에 대하여 타인은 알 수 있으리.
그 중생은 쌓아 모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고
자신과 타인이 이미 다름이 있어
괴로움에 대하여 또한 얻을 바가 없다.
이와 같이 상응하지 않으니
그와 내가 어느 곳에 존재하리오.
혹은 자신의 힘으로
자주 나타내 보인다.
세간의 모든 중생은
많은 괴로움에 항상 핍박당하니
마땅히 크게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켜
그를 연민해야 한다.
이러한 관찰을 잘하고서
평등하게 구제하여 제도하고
가령 아비지옥에 들어가도
거위가 연못에 뜨는 것과 같다.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항상 환희의 바다에 거처하게 하고
스스로 해탈을 좋아하지 않고
그를 구제하는 데에 항상 싫증 내지 않는다.
이러한 이익을 짓고 나서도
그것을 믿어 의지하지 않고
또한 피로해하지도 않고
과보를 희구하지도 않는다.
만약 시방의 복덩어리를
그와 내가 반드시 얻어도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타인의 즐거움을 자기의 생각과 동일시한다.
또 혹은 자신과 타인이
함께 참회를 수행하고
부처님ㆍ세존을 권청하고
또 복된 업을 따라서 기뻐한다.
이와 같이 회향을 하고
평등하게 차별하지 않으며
다함이 없는 중생의 세계에
그 복을 따라서 보시하는 것이다.
보살이 이러한 행위를 행하면
곧 요익하는 바가 많으며
크게 자비로운 마음을 증장시키고
최상의 안온함을 얻는다.
그 금강수를 얻고
아울러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
항상 수호하여
악마의 무리가 다 놀라서 두근거린다.
이 법왕의 아들은
모든 하늘이 다 찬양하며
보리심의 수레에 머물러
수승한 도[승도]에 잘 유희하며 다닌다.
중생이 잘 닦아서
자신과 타인의 괴로움을 그치게 하고
그러므로 자아에 집착하는 일이 없이
일체를 모두 마땅히 베풀어야 한다.
만약 사람이 애욕에 묶이면
곧 괴로움이 다함이 없게 되고
번뇌가 그로 말미암아 생겨나서
훼손되고 파괴되어 다만 나중에 후회한다.
만약 괴로움의 불이 중생을 태우면
치성하게 타서 모두 두루 퍼져서
밑으로 손톱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기에 대해서도 또한 즐거움이 없다.
말하자면 일체 자아에 대한 애욕은
첫째가는 괴로움의 근본으로서
치성하게 태워서 남음이 없게 하여
모든 함식(함지)을 이롭게 한다.
처자식과 권속을 좋아하여도
필경에 모두 덜 어버이고
인연으로 생기는 것을 사유하며
몸에 대해서도 또한 애착하지 않는다.
지혜를 구 족 한 모든 사람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버리고
몸과 마음이 찰나에
차별되어 일어나는 것을 안다.
말하자면 항상 함은 항상 함이 있지 않고
더러움을 여의는 것은 본래 더러움이 없어서
스스로 보리를 얻고
그도 또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다.
세간의 법으로써 사유하지 않으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법의 약[법약] 및 불상에 대하여
이와 같이 나는 마땅히 베풀어야 한다.
지혜로써 스스로 해야 할 일과
상응하는 것을 간택하고
자기의 재산을 거두어 수호하고
모으고 나서 능히 흩어버린다.
혹은 자기의 몸과 타인의 몸에
혹은 괴로움이 적거나 괴로움이 많거나
이와 같은 모든 것이
매우 미묘한 모든 쾌락을 얻게 한다.
중생이 욕망의 경계에서
방어하고 보호하며 장애와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
마치 뱀이 동굴의 구멍에 거처하는 것과 같으니
마침내 청정하게 해야 한다.
마치 깨끗하고 좋은 전답이
모든 가색을 성숙시켜
능히 기갈의 뜨거운 고뇌를 제거하고
그 복의 과보를 만족시키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람이 명성과 이익
및 다섯 가지 욕망을 멀리 여의지 않으면
하는 말도 또한 성실하지 않아서
그에 대하여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이미 자신의 이익을 소실하여
그를 노여워하면 인욕이 어떻게 존재하리.
이에 대하여 성내지 말고
타인을 이롭게 하며 단절하지 않는다.
진실한 인욕을 잘 행하는 것은
사향노루에 향기가 있음을 관찰하는 것처럼
자기의 물건이 타인에게 침해되고
도리어 사냥꾼을 만나서 손해 본다.
방편으로써 사유하는데
주재의 쾌락이 없으며
스스로 이미 수용하지 않는데
그가 어떻게 가르쳐 타이르지 않으랴.
이와 같이 그 불자는
생각생각에 번뇌를 제거하며
모든 감각기관의 경계를 알기를
비유하면 큰 종양처럼 한다.
그 분하여 성내는 자를 생각하고
요익하게 하여 이끌고
자성이 부드러움을 여의면
괴로움과 즐거움에 처하여도 무엇을 얻으리오.
또 그 다섯 가지 대종을
나타내어 억지로 이름 붙이고
나아가 유정에 머무르며
모두 의리를 성취한다.
만약 이로움이 생기는 데 게으름이 없다면
곧 모든 악을 짓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부지런히 닦고 익혀
육계에서 약해지는 고뇌가 없다.
허공의 끝과
세간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나는 중생을 이롭게 함에 머물러
지혜로운 마음을 성숙하게 한다.
몸은 아란야가 되어
모든 괴로움을 여의는 것을 잘 배우고
스스로의 능력을 묻지 않고서
어떠한 처소에서 방어하며 수호하지 않으리.
만약 스스로 고뇌를 지으면
어떠한 원인으로 공포를 일으키는가?
자기의 스승을 수순하여
아만의 모든 과실을 깨닫는다.
크게 자비로운 경계에 머물러
과보를 탐내지 않고
항상 일을 가까이하여 닦고 배우며
평등하면 어떻게 자아가 존재하리오.
어리석고 미쳐서 장님인 자는
걷는 데 착오가 많아
혹은 험한 길 중에 떨어져
자신과 타인이 항상 근심하며 고뇌하는 것을 본다.
그를 찾아 구제하려고
어려움을 함께 하면서 구호하고
이와 같은 행위가 상응하면
곧 큰 공덕을 본다.
나의 잘못은 한 가지가 아니며
그 깊은 것이 거대한 바다와 같으니
만약 자신과 타인이 다시 잘못을 저지르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얻으리.
만약 그가 좋게 가르쳐 훈계하면
모든 잘못의 허물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항상 타인의 말을 머리 숙여 받들고
일체를 모두 마땅히 배워야 한다.
그가 잘못하여 공포에 떠는 것을 들으면
신중하여 남에게 말하지 말 것이니
그와 나의 마음과 목숨은 동일하여
만약 기뻐하면 곧 수치가 없음이다.
원한의 적인 모든 번뇌는
나 홀로 능히 싸울 수 있으며
만약 이것이 마음속에서
훼손하고 파괴하면 안온함이 없다.
관자재 보살님께 귀명 하오니
대자비하신 이로 동등한 자 없으니
검푸른 머리카락 뭉치가 소라처럼 감겨 있고
또한 만(췌)이 늘어뜨린 것과 같으며
시방의 찰토에서
손끝에서 바다처럼 우유가 흘러
지옥과 아귀에서 윤회하는
극심한 괴로움을 받는 이를 구제하며,
또 선한 중생에 대하여
역시 소리를 찾아서 구호하고
바치아수라로 하여금
그의 원한의 해침에서 벗어나게 하며,
가장 지극히 수승하게 장엄되어
세상에서 일찍이 못 보던 바이니
어리석거나 지혜로운 모든 유정이
우러러 받들며 다 기뻐합니다.
또다시 묘길상대사(묘길상대사:문수사리보살)에게
경건하게 믿으며 예배하오니
모집한 바른 법의 저장[정법장]으로
능히 세간을 이롭게 하며,
비교되지 않는 큰 의왕으로서
모든 독의 재난을 잘 소멸시키고
즐거움과 수명을 베푸시니
그러므로 저는 이제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끝이 없는 괴롭고 뜨거운 번뇌에
광대하고 청렴한 샘[청천]을 나타내어
중생으로 하여금 그 마음을 기쁘게 하고
마땅히 모든 갈애를 제거시키며
시방의 모든 세계에서
각각 겁라파를 나타내어
중생이 구하는 바를 만족시키고
푸른 연꽃 같은 눈[청연목]을 두루 나타내시니
한량없는 모든 보살이
몸의 털이 솟구치듯이 찬탄합니다.
가장 수승하여 그보다 뛰어난 자가 없는
문수보살님께 귀명 합니다.
일체의 희유한 보살의 행위로
소유하는 모든 공덕을 모아서
자신과 타인이 마땅히 무궁한 복을 얻게 함은
모두 문수보살의 참된 불자가 되는 것이라.
이 바른 법을 글로 써서
내가 소유한 미미한 선함이
유정을 연민하기 때문에
수승한 지혜를 증장시키리라.
모든 법은 연으로부터 생기며
연이 사라지면 법도 곧 소멸한다고
우리 스승 큰 사문께서는
마땅히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