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3시경. 1,232 파운드의 호박이 1등 자리에 앉혀져있다.
본 영화보다 예고편이 잘된 작품들이 있을 수 있다.
“호박 축제” 보고서를 쓰려고 하니, 이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기대를 아예 접지는 마시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지, 그랬다는 건 아니다.
지난번 올린 호박 사진만을 놓고 보면 그런 면도 있다. 풍성한 호박들의 파티에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예고편이 약간의 히트를 했고, 지금도 그 호박사진들을 나는 좋아한다.
그만 사설을 접고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짜임새가 차고 넘치는 축제였다. 도로 한가운데를 막고 벌이는 행사라 차가 접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근방에 셔틀버스가 운행되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해석했는데, 우리는 갈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셔틀버스 주차장을 지나쳐서 행사장 근처로 향했다. 메인 도로만 막았을뿐 아랫길, 윗길은 터놓았고, 주변에 주차할 수 있었다. 마치 온 마을이 이 행사를 위해 계획된 것마냥, 그 많은 인파를 소화할 주차 공간이 곳곳에 있었다.
잘 차려진 정식요리의 전채(요리)로 입맛을 당기는 귀한 음식이 나오는데, “호박 축제”의 전채는 오히려 본론보다 더 거창하달 수 있는 “앤틱 카 쇼”였다. "Cinderella's Carriage Antique & Classic Car Show"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행사장에 요정이 나타나 아름다운 차를 신데렐라가 타는 호박마차로 변형시킬 것 같은 옛스럽고 신비스런 분위기가 어른거리기도 했다.
1920년대의 포드 자동차들은 영화에서 보던 그것들로 내부를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견고하게 만들어진 가죽의자가 눈길을 끌었다. 차 주인이 만인에게 선보이는 이런 날을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 짐작이 갔다. 본품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낡은 것을 보수한 그 숨은 손길이 차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내게도 읽혀졌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입장료를 지불하고 봐야 하는 “본 행사장”에서보다 이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다.
왼쪽에 세워진 앤틱 차들이 보인다.
1928년형 포드차
자전거 바퀴같은 타이어를 달고 거리를 질주할 수 있을런지.
이 차의 오리지날 주인은 이미 이 세상에 없기가 십상일텐데..
차의 연세가 90을 향해 가는 차들도 많았다.
일부러 그렇게 보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옛 사람들이 현대인들보다 품격이 더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한 대의 차에 입혀진 고상함이 “대량 생산”과 “싼 값”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이 넘볼 수 없는 고고함을 풍긴다. 곡선을 최대한 살린 미적 감각, 볼상 사나운 것은 다 가리겠다는 듯이 거진 바퀴를 덮는 듯이 디자인된 차체는, 최대한 폼나게 뽑아입은 옛 여인의 품위를 떠올리게 한다.
어쨌든 이런 차들이 한두대도 아니고 온 거리에 전시되어 있다. 차 주인은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개중에는 "For Sale" 차도 있다. 가격은 그다지 비싸 보이지 않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고물차”니, 차를 고치면서 탈수 있는 이들이 아니면 언감생심 꿈도 못꿔볼 일이다. 흥미로운 차 구경을 멈추고 그래도 메인 요리를 맛봐야 하지 않을까 하며 발길을 돌렸다.
고등학교 전체가 펌킨 빌리지(호박 동네)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곳에 가면 마침내 입장료(어른 6달러)를 내야 한다.
농부들이 실어온 호박의 무게를 재고 있는 텐트에 들렸다. 호박은 몇 명의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특별히 고안된 장비로 움직였다. 말하자면 호박을 들만한 장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400kg 정도의 호박은 사람들의 관심도 끌지 못할 만큼 작은 크기의 호박이다. 500kg의 무게쯤 되어야 명함 한 장 내밀 수 있는 것 같았다. 토요일 오후, 그때까지 잰 호박중에서 1등은 1200파운드, 즉 600kg 정도의 것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번 호박 1등상은 온타리오주 메릭빌(Merrickville)의 데이브 피추라(Dave Pitura)씨가 키운 1378파운드의 호박에게 안겨졌단다. 그의 수고하고 흘린 땀에 대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흠, 올해는 누구의 호박이 챔피온이 될지....
이것들이 야채 맞는감? 키큰 절구공이, 그리고 수박만한 피망이 그 크기를 뽐내고 있다.
나는 호박이 아니고, 수박!! 150 kg 이상되는 수박들도 경연대회에 출연했다.
호박뿐 아니라, 거대한 수박, 양배추, 절구공이, 해바라기, 피망 등이 나와 있었다. “큰 사람”이 많은 나라라서 자이언트 야채가 생산되는 것인지..
“뭐 ‘생쇼’를 한다고?”
언니가 질문한다. 아니, 그게 아니고, “새쇼”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새쇼”를 위해 우리는 잠시 기다렸다. 호박 텐트 바깥에는 “먹자 광장(Food Court)"이 있었고, 코끼리 낙타가 아이들을 태우고 돌고 있는 곳 옆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가 빙빙 돌고 있었다.
“호박씨 멀리 뱉기”를 시합을 했다는 작은 무대가 있었는데, 흥미로왔을 그것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리진 못했다. 병영에서 갓 빠져나온 듯한 군인들이 훈련장을 만들어놓고, 아이들을 유격훈련을 시키고 있다. 터널 기어가기, 높은 볏짚넘기, 밧줄타고 도랑물 건너뛰기... 등등. 남자아이들은 군인처럼 얼굴에 흑칠을 하고, 이 유격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비실비실한 아이 하나가 열심히 마무리까지 하니, 그 엄마가 환하게 웃으면서 “내 아들 자랑스럽다”하면서 안아주는 것을 보면서 일어섰다.
“새쇼”는 거의 조련사의 입담 때문에 머물러 있었는데, 어린새, 가장 큰새, 가장 출연을 많이 한 새, 가장 작은 새 등의 묘기는 별볼일 없었다. 그래도, 땡볕에서 1초도 쉬지않고 새쇼를 연출한 조련사의 얼굴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언니는 “쌩쑈”에 가깝다고 했지만.
코끼리, 낙타의 잔등을 타며 축제를 즐기는 가족들.
이 새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침 튀기며 열연한 조련사.
이날 무척 더웠다. 더위에 약한 언니의 기운이 소진되어 가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실내에서 열리는 “예술가들의 마을”에서 공예품 전시회를 둘러보는 것으로 마감하기로 했다. “예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시중에서 보기 힘든 물건들이 있었다. 어둠속에서나 햇볕속에서 색이 변하는 티셔츠를 파는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행사장을 돌다 피곤해져서 돌아갈 곳이 가까운데 있다는 것이 우리 마음을 편하게 했다. 우리는 이 동네에 축제 전날 입성했다.
10월 첫주 주말은 “호박 축제” 이전에 “추수감사절(Thanksgiving)" 연휴라 많은 인파가 거리로 몰리는데, 우리도 그곳의 캠핑장을 이틀 예약했고, 올해의 마지막 트레일러 캠핑을 계획했던 것이다.
혹 우리팀의 면면을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소개한다면, 언니 둘과 남편, 그리고 나를 포함해 4명이었다. 환상적인 멤버가 아닐지. 3자매와 그들을 보호하고 보조할 건장한 남자 한명.. 흐흐흐.
올해의 호박축제는 완벽한 여름날씨와 6만명이 넘는 관람객, 그리고 봉사자들의 수고로 최고로 치러졌다는 소식을 오늘 아침 뉴스를 통해 들었다. 내게도 이번 행사는 이웃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넉넉하고, 풍성한 오렌지빛의 잔치라는 것을 확인한 뜻깊은 시간들이었다.
만남의광장 중국연변카페
첫댓글 아니 어쩌면 호박이나 수박이 그렇게 클수가 ...
200키로이상할머니드실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