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데 모처럼 아무런 약속이 없다. 주말이면 집안의 행사나 친지들의 혼사 또는 각종모임 등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계속 있었다. 마침 오늘은 어린이날과 일요일이 겹친 연휴중 하루인데 아무런 계획이 없다. 아내마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 혼자서 맞는 홀가분한 시간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엇을 할까. 집안에만 있을 수 없으니 어디를 갈까. 오랜만에 낚시를 갈까. 지난해 사 놓고 망설이기만 하다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낚시 도구를 꺼내서 점검을 한다. 두 칸 반, 세 칸짜리를 차례로 꺼내서 당기면서 팽팽한 탄성을 느껴본다. 감각적인 손맛이 월척이라도 건지는 것 같아 작은 흥분과 희열을 느낀다. 영롱한 색깔의 형광 찌와 U 자로 굽은 바늘의 날렵한 모양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요즘의 장비는 예전과 달라서 물가에 대를 장착시키는 알루미늄 기구나 뒤 받침대하며 물고기가 낚싯대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까지 아주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미끼로 쓸 떡밥과 봉돌까지 확인하고 낚시가방을 챙겼다.
그런데 어디 마땅하게 갈 만한 곳이 없다. 낚시를 즐기던 70년대엔 팔당댐 상류로 올라가서 아무데나 던져도 월척 급에 상당하는 참붕어가 심심치 않게 올라왔지만 낚시 금지구역으로 지정된 지금은 생각조차 할 수없는 추억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좌대가 촘촘히 들어선 인공낚시터의 소란함 속에서 엉킨 낚싯줄로 인해 신경전을 벌리면서 하는 낚시는 즐기는 것이 아니라 피곤한 작업과도 같다. 낚시란 결국 미끼라는 속임수로 물고기를 유인해서 낚아 올리는 행위이지만 낚시터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심신을 맡기면 정신건강에도 유익한 대표적인 레저문화 이기도 하다.
춘천 호반 의암댐으로 가리라. 바다처럼 넓은 물 가운데에 좌대를 타고 대를 드리우던 그 옛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의암호는 46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춘천 초입의 의암교를 건너기 전에 다리 아래로 이어진 403번 지방도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아파트 뒤로 뚫린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야 한다. 얼른 일어나 뒤 베란다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평상시에는 볼 수 없던 자동차의 행렬이 심한 정체를 빚고 있다. 이런 정도라면 지금부터 수 시간을 달려가도 목적지에 닿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어린이 날인 관계로 많은 가장들이 자녀들과 자동차로 나들이를 나왔을 것이고 그 행렬이 저토록 막히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로 차를 몰고 들어간다면 길 위에서의 지루함으로 긴 시간을 허비할 것 같다
낚시 하고 싶은 의욕이 좀 더 간절하다면 교통문제로 구애받지는 않을 것이다. 젊어 한 때는 주변 환경과 처지에 대해서 깊은 생각도 안하고 거침없이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한 40년 가까이 쉬다보니 낚시의 순기능인 자연 속에서 휴식하는 즐거운 기억도 그만큼 무뎌진 것 같다. 낚시를 간다는 설렘과 정체되는 길에서의 불편함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중적 심리의 잣대를 갖게 된 것은 세월과 함께 열정도 그만큼 식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젊은 시절 낚시에 심취해 있을 무렵에는 연휴 때는 물론 명절도 낚시터에서 보낸 적이 있고 밤낚시를 하느라 여름휴가 사흘 밤을 연거푸 새운 적도 있었다.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산중의 호수에 앉아 밤 시간을 지내다 보면 산짐승 소리에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지고 온 식량이 떨어져 허기를 달래던 일은 다반사 이고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나 초겨울 살얼음이 잡히는 물속에도 낚싯대를 펼친 적도 있었다. 사위(四圍)가 고요한 가운데 밤 저수지에 내리는 새벽안개와 수면위에서 졸고 있는 야광찌의 날씬한 몸매를 보며 때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찌가 수면위로 얌전하게 눕는 입질의 절정으로 인한 기대감의 충족은 인생이 황혼녘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잊혀 지지 않는다. 릴낚시 끝에 방울을 달아 입질의 신호로 흔들리는 금속소리는 또 어떠하던가. 그러나 낚시꾼을 위협하는 요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져서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고 가파르고 수심 깊은 곳에서는 예기치 않은 사고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창 낚시에 미처 살던 시절, 토요일 오후에 혼자서 낚시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가끔 나가던 팔당댐 상류 연꽃 숲이 건너다보이는 물가에 앉았다. 등 뒤로는 가파른 산언덕이 이어졌는데 낚시의자 하나 펼 만한 좁은 공간이 포인트로서 그만일 것 같았다. 세 칸 반 낚싯대를 던져 넣었더니 찌는 앉은 자리에서 멀지않은 곳까지 다가와 있다. 그 만큼 수심이 깊다는 의미다. 큰 고기는 깊은 곳에 산다는 통념으로 채비를 끝냈다. 근처에서 건져낸 민물새우와 지렁이를 번갈아 미끼로 사용했는데 밤이 깊도록 피라미 입질 몇 번을 받았을 뿐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여름철 깊은 밤, 국도를 달리는 화물차의 소음만 간간히 들려오고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낚시터 수면으로 물안개가 비단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물가의 새벽공기는 차갑다. 두터운 상의를 걸친 후 낚시 의자를 뒤로 젖치고 눕는다. 희미한 카바이트 불빛을 받으며 오색 빛깔로 떠있는 찌에서 눈을 뗄 수 없어 나른한 눈으로 주시하다가 잠속으로 빠지려 하는 순간, 찌가 물위로 솟는다 싶었는데 이내 가로 눕는다. 바로 그 때 낚싯대가 통째로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깊은 물이라 역시 큰 놈이 물었나보다. 삽시간에 닥친 일이라 경황없이 놓친 대를 잡으려 했으나 팔이 모자랐다. 한발을 물속으로 담그고 몸을 구부리는데 미끄러져 한쪽 발마저 빠지고 말았다. 낚싯대를 손으로 겨우 잡았나 싶은데 가슴 위 까지 물이 차올랐다. 손으로 전해오는 촉감으로 보아 걸려든 놈은 역시 월척이상의 대물인 것 같다. 마치 고음의 피아노 소리와도 흡사한 낚싯줄 튕겨지는 소리와 함께 팽팽하게 저항하는 감촉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느낌이다. 뜰채를 이용해 마무리하고 사이즈를 재 보았더니 35센티 황금색의 참붕어다. 드넓은 댐에서 월척을 걸어 올리는 손맛은 경험하지 못한 이에게 어떻게 설명하랴.
젖은 옷을 갈아입고서야 내가 큰 위험에 빠졌던 것을 알았다. 앞쪽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들어갔다면 키를 넘겼을 깊은 물속에서 무사히 나왔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대개의 낚시터 인명사고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발생한다고 하지 않던가. 삼십년도 더 지난 일이었어도 그날을 떠올리면 낚시터의 위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오늘도 낚시를 가고 싶은 마음과 번거롭고 불편한 현실의 이유로 선뜻 나서지 못하는 갈등 을 겪으며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 하는 사이에 오월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춘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는 정상을 되찾았어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은 이미 진정되었다. 몇 번이고 시도했던 낚시질은 오늘도 상상의 물속으로 대를 드리운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아내마저 출타중인 연휴 이틀간을 아끼며 보내겠다는 달콤한 상상속으로 한낱 낚시의 유혹이 다녀갔을 뿐이다. (끝)
2012.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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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글을 읽으니 저도 낚시가 하고 싶습니다. 낚시보다 즐거운 일도 없는 것 같아요.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으면 모든 시름이 다 사라지지요. 조만간 낚싯대를 하나 사서 집 가까이에 있는 맑은 개울에 가서 낚시를 해야겠습니다.
낚싯대가 준비되거든 어디든 한 번 떠나봅시다. 거기선 김포나 강화도 쪽이 좋을것 같은데...
김포나 강화 낚시 혹 잘 모르시면 제게 여쭈어 보시라 전해주.
저는 1인용 미제텐트와 오리발 , 손전등을 마련해놓고 있답니다.
낚싯대만 마련하믄 되겠어요!
정작 위험한 순간에는 위험을 감지할 수 없나봐요. 돌아봤을 때 아차 싶구. 35센티 황금색 참붕어라니 와! 용왕님의 따님이었나봐요. 동화대로라면 붕어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마음이 약해져 놓아주고 이후 서 선생님께는 상상도 못할 횡재들이 쏟아져야 하는데. ㅎㅎㅎㅎ 즐거운 글 잘 읽었습니다.
잡은고기를 방생해 줄껄... 왜 이제야 그 생각이...요즘은 잡은 고기를 다시 놓아주고 오는게 낚시질의 정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낚시바늘엔 미늘이 없지요. 미늘.
현장답사느낌인 선생님의 좋은 글에 마음 빼앗기다가 위기에 처할 찰나의 글에서, 문득
언젠가 화면보도에서 접한 바닷가낚시 중 불시에 덮친 파도에 당한 인명사고 생각에...
참으로 다행이십니다. 십 수 년 전 일이지만... 아,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