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슈 섬 북단 아오모리 항
일본배낭 여행기( 9박10일) (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1 <도쿄의 밤>
"작년에 이어 이번 휴가에는 어느 곳을 다녀올 계획이세요. 배낭여행을 하실 건가요?" 방학에 즈음하여 선생님들이 물어왔다.
“일본 북쪽을 여행해볼까 해.”
“이번 여름 유달리 더울 것 같은데 좋지 않을까?‘
모두들 건강히 잘 다녀 오라한다. 바쁜 가운데도 틈을 내어 떠나보는 것 또한 일상의 탈출에서 새로운 환경과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되니 떠남을 생각하는 자체만으로 마음 한 켠이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나리타 공항을 오후 6시경에 내렸다. 수속을 밟고 공항을 빠져나오니 바깥에는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있다.
“여보세요. ‘에덴하우스’ 죠.”
“예, 그런데요.”
“민박 예약을 했는데 집을 찾고 있습니다. 길을 안내해 주세요.”
그런데 예약이 돼 있지 않다고 한다. 낭패다.
도쿄는 열흘 전 호텔을 예약하려 하니 쉽지가 않았다. 다행히 한국인 민박집이 있어서 계약금을 보내고 그곳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도착해 전화를 하니 무슨 착오가 생겼는지 예약이 되어있지 않다며 우리 방이 없다고 한다.
이 밤중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출발부터 일이 순조롭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일단 부딪혀 보자 마음먹고 민박집을 찾았다. 간신히 끼워
잘 방은 있었다. 우리는 2층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아내는 2층에 나는 1층에서 옆방은 한국 젊은이(대학생)
2명이서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작년 큐슈를 여행 할 때 현지 한국여행객을 만날 기회가 없어 아쉬움이 있었다.
민박촌은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장소여서 선택한 것이다.
젊은이들의 고향이 대전이라 한다. 형제간에 배낭여행을 하고 내일 귀국한다고 했다. 먼저 온 그들에게 도쿄의 가볼 만
한곳이나 좋은 곳 정보를 들으며 그들과 친해지게 된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덤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이후 일본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금년에는 방사능에 의한 여파가 일본 전역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방송 보도를 보면서 어떻게 할까. 간다면 어디가 괜찮을까 우려가 되었다. 민박집 주인의 말을 빌리면 “아직까진 동경에는
물이 괜찮아요, 우린 냉장고에 물을 저장하여 생수로 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태평하게 말한다.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하여 동경을 거쳐 날씨가 시원한 홋카이도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홋카이도를 거쳐 일본의 서쪽 아키타와 니가타로
내려와 도쿄로 돌아올 계획이다.
도쿄의 면적은 서울의 약 3배 크기지만 인구는 약 12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1000만인 서울과 비슷하여 면적에 비해
서울의 인구 밀도가 얼마나 높은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의 전세 값 집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은 이유를 여기와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도쿄도청에 있는 지상 45층 전망대 야경은 볼만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돌아오는 마지막 날 주간에 전망대에 올랐다.
여기에는 공간이 꽤 넓어서 식당과 특산물을 파는 가게가 있고 필요한 기념품을 살 수 있으며, 또한 웬만큼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산은 보이지 않고 그저 건물과 고층 빌딩이 촘촘히 서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없이 펼쳐지는 빼곡한 건물의 바다이다.
우리나라 서울의 한강과 남산은 이에 비해 보물과 다름없다. 시내 중심에 남산이 보이고 주변에 북한산 수락산 청계산 등
참 좋은 시민 휴식공간이 배치되어 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도쿄는 전망대에서 산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후지산이 있지만 차로 1시간 이상 교외로 나가야 한다. 도청 바로 옆에 공원이 있기에 가보았지만 작은 공간에다 삭막해 보인다.
7시경 일찌감치 거리를 걸어 보려고 무작정 시부야역에서 내렸다. 정보가 부족했다. 알고 보니 그곳에 긴자거리는 없고
약 20분 이상 지하철을 이용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할 수 없이 행인을 붙잡고 긴자 가는 곳을 물어 볼 수밖에.
한 젊은이가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다. 작은 키에 학생 같았다.
“스미마생, 긴자를 가려는데 어떻게 가야 할까요?”
손으로 역을 가리킨다. 가르쳐 준 곳은 시부야 역이다. 역무원에게 몇 가지 묻고 있는데 그런데 잠시 후에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던 젊은 친구가 땀을 흘리며 나타났다. 가던 길을 중단하고 지하철까지 다시 찾아 온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같이 지하철을 탔다. 그의 친절함에 할 말을 잃었다. 여행 중 이렇게 친절한 사람을
몇 만났었다. 기억에 남는다. 그들을 보면서 각성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내가 물었다. “학생이세요?”
“나는 홋카이도 시내 고등학교 선생입니다. 영어를 전공하고 있어요.”
“도쿄에 볼일이 있어 올라왔습니다.” 아내가 화들짝 놀랬다.
키가 작고 동안으로 보여 학생인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잠시 후 다음 역에서 우리를 안내해주고 젊은 선생은 내렸다.
참 기분이 좋다. 그의 친절함에.
긴자거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깃들어있는 백화점과 격조 높은 고급 부티크들이 줄지어 있는 곳, 패션 리더들이 모여드는
패션거리이며 쇼핑거리이다. 마침 무슨 행사가 있는지 아침부터 큰길 옆 골목길가에는 부스들이 세워지고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고급 상가 옆을 지나간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물건을 만지고 열심히 무언가를 보고 있어 들어가 보았다.
그곳은 휴대폰 상가였다. 휴대폰하면 삼성일텐데 여기서 삼성의 갤럭시를 보겠다싶어 들여다보니
아이폰5가 출시되어 사람들이 상품을 구경하고 있었다.
일본의 전자산업이 사양화 되어 가는 원인중 하나가 우리나라 전자상품의 도약이 있었기에 그러하건데 그들이 세계제일의
우리 휴대폰에 매장을 순순히 열어줄리 없다.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빗장을 걸었던 일본인도 휴대폰만큼은 어쩔 수 없이
우리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우리의 판매량을 잡기위해 애쓰는 미국 아이폰 회사를 일본 긴자거리에서 보았다.
저녁이 되면 신쥬쿠의 가부키쵸는 환락가로 바뀐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거리이다. 건넛방 여대생들에게 가부키쵸를
구경가자 했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유흥가라서 겁이나는 모양이다.
신주쿠 거리에서 가장 번화가이며 환락가 음식점 바 극장 전자오락실 노래방등 오락시설들이 밤을 밝히고 있다.
주인아주머니가 신주쿠에 왔으면 한 번쯤 가봐야 되지 않겠냐며 길을 가르쳐 준다. 삐끼들이 접근하며 흥정을 하는데
혼자서 이곳을 걸으면 목표물이 된다. 나는 아내 손을 꼭 잡고 거리를 활보했다. 흑인들도 보이고 거리의 여자들, 홍등
안에서는 수많은 여자 사진을 붙여놓고 흥정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도쿄의 젊은이 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휘황한 네온사인과 인파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는 가부키쵸, 오늘도 신주쿠는 밤이 짧을 것 같다.
내가 머문 신오쿠보 역 주변은 신쥬쿠와 인접하여 이웃집처럼 가까워 한울타리와 같다. 이곳에 코리아타운이 있다.
늦은 시간 저녁을 먹기 위해 거리로 나왔더니 한국어 간판이 많이 보이고 음식 역시 한국과 다를 바 없다.
배는 고프고 밥이 먹고 싶어 한식당에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카운터에 앉은 주인 아주머니가 반긴다.
차림표에 비빔밥이 보였다. 1000엔 하는 비빔밥은 어떨지 맛이 궁금하다.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었지만 정말 식당
아주머니의 솜씨가 예사가 아니었다.
“아주머니, 음식이 아주 맛있는데요,”
“감사합니다.”
“이 부근에 한국식당이 참 많군요”
“그럼요. 이곳에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여 여기서 사는 우리도 한국으로 착각을 한답니다.”
참 친절하고 밝은 성격을 가진 50대 주인 아주머니다. 요즈음은 채소가 일본이 더 싸다며 한국에 가보면 물가가 많이
오른 느낌이라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일본이 훨씬 모든게 비싼데 말이다.
식당 벽면에 가득 적힌 소감을 보니 한국 여행객들이 다녀간 흔적으로 넘쳐났다. 음식이 맛있었다는 평이다.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젊은 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얘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한국 유학생들과 일본을 찾은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많아 이곳이 코리아타운임을 실감케 해주었다.
밤중에 소나기가 쏟아진다. 시커먼 구름과 함께 내린 소나기가 1시간가량을 퍼부어 물난리가 날 지경이다.
덕분에 시원한 저녁이 되었다. 큐슈지역은 홍수로 수많은 가옥이 파손되고 한국인 등산객 20명이 조난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후에 한국에 와서 들어보니 등반객 4명이 사망했다고 하였다.
일본의 보통 호텔에 숙박을 해보면 방이 매우 좁아서 한국의 숙박업소의 넓은 방을 떠오르게 한다. 이곳 민박집
또한 협소하여 결코 편안하지만은 않다. 여행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때론 힘든 경우를
경험해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뜻밖의 일들이 생겨 배낭여행의 묘미를 느끼고 터득해가며 여행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여행은 즐겁다.
2 <홋카이도 남항 하코다테>
-하코다테-
6시경, 나설 채비를 하고 밖을 나오니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올 것 같다. 배낭을 가볍게 하려고 신경을 썼지만 제법
무게가 있다.
모자 선글라스 우산 등 작은 가방까지 메고 거리로 나섰다. 오늘은 신간센으로 훌쩍 시공을 건너 뛰어볼 작정이다.
신오쿠보 역까지는 10분 정도의 거리인데 상쾌한 마음으로 오늘은 북쪽 아오모리를 향한다. 도쿄역에서 신간센으로
열차를 바꿔 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평온한 가운데 열차는 센다이를 거쳐 북쪽으로 내닫는다. 들판에는 제법자란 모가 푸르름을 자랑하고. 쭉 뻗은
삼나무(스기나무)가 울창하여 우리네 산림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선다. 위도에 따라 자라는 나무도 확연히 다른 것 같다.
키가 크고 침엽수림이 주로 보이고 우리와는 수종이 달라 모르는 나무들이 많았다.
역 매점에서 아침 도시락을 샀다. 일본은 도시락 문화가 발달하여 역에 나가면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좋다.
종류도 다양하여 초밥 돈까스 종합도시락 삼각 김밥 등 손님의 기호에 맞춰 먹도록 판매대에 진열돼 있다.
거기에다 큰 역에는 백화점까지 있어 물건을 구입하는데 애로사항이 없고 지하철 역이 아닌 일반 역의 규모는 이런 매점과
백화점이 한 지붕아래 있으므로 우리네 역과는 달리 규모가 매우 커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작년 남쪽 큐슈를 여행할 때 여행 중 시간이 맞지 않을 때에는 가져간 라면과 간식거리를 자주 먹었다. 배낭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에 좋아했었다. 페키지 여행과 달리 시시콜콜한 일들이 생겨 귀찮기도 하지만 이것만의 특이함이 있다.
열차가 출발하자 차내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내 먹는라 부스럭 거리며 아침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도 도시락을 꺼내에 일식을 함께 했다.
일본 혼슈 북쪽 끝 신아오모리가 신간센의 종점이다. 700여킬로에 이르는 길을 3시간 30분에 갈 수 있어 시간이 아깝지만
이른 아침을 이용하여 이동했다.
여기서 다시 바다건너 북해도(홋카이도)를 가려면 약 40분간 세이칸 해저터널을 통과한다.
3시간 30분간이면 하코다테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긴 54킬로에 이르는 터널이다.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해저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어떠시냐고, 아내도 해저를 통과하면서 색다른 것이나 바다풍경을
보려나 기대하는 눈치였다.
세이칸 터널은 수심에서 100미터 지하에 터널을 뚫었다.
그리고 해저터널만 23.3킬로 나머지는 지하터널로 총 54킬로에 이른다. 이유가 있겠지만 육지에도 꽤 긴 터널을
뚫어 놓은 것이다. 해저와 육지의 터널을 빠져나온 열차는 다시 산간으로 접어든다. 이제부터 북해도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기분이 약간 상기된다. 최북단 홋카이도를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실었으니...
홋카이도(북해도)에는 초특급 신간센이 아직 운행하지 않지만 우리로 보면 무궁화호나 새마을호가 대신 운행하며 북해도
전 지역을 가는데 가장 먼 곳은 9시간 이상 걸린다.
아늑하고 아름다운 항구를 낀 하코다테, 일찍이 홋카이도 최대 항구도시이자 국제항이다. 인구 약 30만 가량 되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지만 바닷가의 풍치와 도시의 미관이 오늘따라 흐린 날씨와 오버랩이 되어 운치 있어 보였다.
이렇게 북쪽으로 와 있는데 이곳도 구름이 끼면서 날씨가 고르지 못하다. 이러다 여행기간 동안 기상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한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목적지가 북쪽 홋카이도라서 자연스레 가장 우천지역에서 떨어져있어
안심은 된다.
하코다테역의 여행정보센터를 찾았다. 안내 여직원이 친절하게 맞이해준다. 우선 숙소부터 정해야하므로 호텔을 부탁했다.
요즘처럼 여행의 성수기에는 지방 도시에도 호텔 숙박요금이 바가지이다. 이미 2배 가까이 올라있었다.
그나마도 방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마침 전통 다다미 방으로 된 숙소가 있어 추천해 주었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기모노에 다다미방을 이용할 수 있어 안성맞춤이다. 역에서 가까운데다 숙소가 우리를 기다려 준 것 같아 고맙기만 하다.
짐을 내려놓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홋카이도 남쪽 바닷가의 이 도시는 역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시내 외곽에 터줏대감처럼 야마 하코다테 (하코다테 산 334m)가 자리잡고 있다.
하코다테는 지형적인 특징이 있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니 바다를 향해 육지가 자라목처럼 쭉 뻗어나가서 바다를
둘로 갈라놓은 형상으로 도시를 이루고 있다. 산 둘레에서 아래로 수많은 언덕길이 뻗어 내려가 해안가 거리에 다다를 수 있도록
길을 다듬어 놓았다. 한눈에 산 아래 바다와 도시를 볼 수 있게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메이지 시대에 만들었다는 바닷가에 지은 빨간 벽돌 창고군들이 줄지어 나란히 있다. 그 시절 창고는 배에 실을 물건을
쌓아 두었다가 배가 정박하면 물건을 실어냈다 한다. 관광객들이 줄줄이 창고로 들어가기에 ,뭐하나 싶어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레스토랑과 최신 유행 샵 등 백화점식 물건을 파는 가게로 변모되어 있었다. 아이디어를 개발해
옛 허름한 창고를 보존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역하다.
깨끗하고 아담한 항구에 석양 무렵 사람들이 바닷가를 거닐며 사진을 찍고 있다. 언덕길을 가로질러 노면 전차가
한가롭게 다니며 손님을 실어 나른다. 나는 바다를 거닐다 꽤 커보이는 건물 한 채를 발견하였다. 이곳도 역시 물건 저장
창고일까. 그런데 주부들이 시장을 보고 있다. 식품가게인데 드넓은 곳에 모두가 해산물로 이루어진 상품을 팔고 있었다.
우리의 백화점에 해산물 코너가 있듯이 건물 전체가 대부분 수산물로 만든 제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가게 같았다.
하코다테 야경은 그들이 말하는 이 지역 제일의 관광코스이다. 나폴리, 홍콩야경과 함께 세계 3대 야경중 하나라고 자랑한다.
혹자는 부산의 야경이 오히려 더 낳다고 입을 모은 것으로 보아 그들만의 자랑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곳을 가려면
버스를 타거나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된다.
저녁 무렵, 산 정상을 살펴보니 운무에 가려 정상을 볼 수 없다. 케이블카로 올라간들 날씨가 궂어서 야경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으니. 결국 다음날도 이런 날씨가 계속되어 애만 태우다 포기하였다.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따끔거리고 통증과 함께 크기도 커져간다. 여행 전에 아내가 물었다.
“신발은 어떤 걸 신을 거예요?”
“트레킹화를 신고 싶은데. 왜?” “신발을 맞춰 신으려고 그래요.”
“산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평지를 걷는데 등산화는 좀 그렇지 않을까.”
“사놓은 트레킹화도 있으니 그걸 신을께.”
거리에서 등산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해서 이걸 신어보기로 한 것이다.
결국 종일 배낭을 메고 걷는 일정인데 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장거리 장시간 도보에는 등산화가 필수란 걸 가르쳐 준다. 여행기간동안 양쪽 4개의 발가락 물집으로 곤욕을 치르며
다닐 수밖에 없었다. 밤이면 주무르고 건조시켜 밴드를 감아주고 발을 달랬다. 모처럼 아픈 경험이다.
숙소 아주머니의 성격이 쾌활하고 싹싹한데다 인상이 좋아 보인다. 아내는 아주머니와 마음이 통했는지 웃고 떠들며
의사소통이 그런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시내를 구경하고 돌아와서 사고뭉치 발의 물집부터 살폈다. 보통은 물집에 실을 끼워 놓으면 진물이 빠져 상처가 커지지 않고
견딜 수 있다. 실을 알맞은 길이로 잘라야 하기에 손톱깍기를 빌리러갔던 아내가 돌아오자마자 배꼽을 잡고 들어온다.
아내는 한국으로 착각하고 혼자서 한참동안 얘기를 늘어놓았다한다. 주인이 일본사람이지만 친근감이 들다보니
우리말이 술술 나오더란다.
어찌됐든 우리말 중 스메끼리(손톱깎기)란 단어 한마디에 알아듣고 주기에 받아왔다. 시원한 다다미 방에서 밤이 깊어간다.
3 <동화의 나라 오타루>
최북단 삿포로. 겨울이면 눈의 고장으로 유명한 삿포로지만 여름 또한 다른 맛이 있다. 도시가 번잡하지 않고
우선 서늘해서 좋다.
위도 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최북단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 북위 43도 쯤으로 이곳에 도착하니 날씨가 서늘하여
마치 피서를 떠나온 느낌이 든다. 홋카이도에 있는 동안 평균기온 24도 정도여서 더운 줄을 몰랐다.
“더우면 이곳으로 피서 오면 제격이겠네. 여름 같지 않으니 말예요.” 아내의 말이다.
하긴 그냥 데려다 준다면야 좋겠지만 이 먼 곳까지 비싼 돈 줘가며 올 수 있겠는가?이에 비해 지금 일본남쪽에서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홍수를 겪으며 더위에 고생이 말이 아니다.
삿포로 역에서 서쪽으로 40분가량 열차를 타면 오타루 항이 있다. 하코다테 항과 함께 홋카이도 주요 항구이다.
오타루 역전에서 바라보면 1킬로 전방에 펼쳐진 바다와 거리를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항구에 다다른다.
항구 가까이에 운하가 있고 여기에 일본 사무라이같은 복장을 한 인력거꾼들이 삼삼오오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신발을 보니 돼지의 족발처럼 둘로 갈라진 신발을 신고 있었다. 쪽발이(족발)유래가 이것과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기념으로 인력거꾼 옆에서 아내가 길을 묻는 사진 한 컷 찍어주었다. 이들은 운하를 중심으로 오타루 시내관광을
담당하고 있는데 천천히 걸어서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를 인력거를 타고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즐기는 사람들도 꽤있다.
운하를 거닐다 관광객들이 몰려가는 곳이 있어 가보았다. 뜻밖에도 책자에 소개한 그들이 자랑하는 유리공예거리가 나왔다.
또한 일본 최대의 오르골 전문점이 자리해 오타루의 명물로 소개되고 있었다. 오르골 점은 1912년에 세워진 목골벽돌식의
건물이 상징적인 곳으로, 가수 조성모의 뮤직비디오가 이곳에서 촬영돼 한국관광객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오르골당에는 오르골의 천국답게 사방에서 이것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1층과 2층을 가득 메운 3000여종의 오르골이
조명에 반사되어 장관을 이루고 손님으로 만원이다.
선물용과 장식용으로 피아노 오르골 2개를 골랐다. 오르골마다 다른 음악을 새겨 넣어 맑고 고운 음색으로 튀어 나오게 하는
장인의 솜씨가 아름다웠다.
오르골의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만져보고 소리를 들어보고 선물을 고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무리의 한국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곳이 필수 관광 코스인지 구경하면서 한쪽에서는 물건을 주문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오르골 장인들의 바쁜 손놀림과 물건을 만들고 있을 모습이 상상된다.
오타루의 유리공예가 어떻게 발달하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19세기 후반에 석유램프와 어망 등을
제조하며 발달했다는 얘기가 있다. 지금은 우리의 인사동 거리처럼 유리공예의 거리로 자리 잡아 오타루의 명물이 되었다.
옛 소련 영토와 마주하고 있는 일본 북단의 도시 ‘오타루’를 이번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거리의 많은 관광객 중 한
팀이 사진을 찍는다. 옆에서 보고 있는데 웃으라며 ‘김치’ 한다. 우리말을 들으니 반가웠다.
하나 투어에서 온 한국 관광객이다. 홋카이도 3박 4일 일정으로 버스 3대에 나눠 싣고 온 사람들이었다.
안내원들에 이끌려 바삐 가는 모습이 촉박한 일정 같다. 바쁘지 않아서 좋고 느긋하게 걷다 쉬다 구경하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한나절을 기웃거리면서 가게며 공원이며 운하저편 항구를 둘러보다 물집 때문에
또 쉬다가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타루 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끝없는 수평선너머로 대양이 펼쳐진다. 방파제가 아스라이 바다를 가르듯 나아가 선으로
보일정도로 항구가 넓다. 이곳에 큰 배를 정박 시키고 운하에는 유람선들이 정박한다. 과거 바다를 매립해 만든
매립식 운하로서 배에 실을 물건 저장창고를 만들어놓고 거룻배가 짐을 실어 나르기 위해 운하가 건립되었다 한다.
한때 잘 나가던 운하가 쓸모없게 되자 지금은 관광용 운하로서 수많은 이들이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가이드를 따라 이곳을 다녀간다.
4 <노보리베츠와 어느 여행자>
햇볕은 어느 곳에서나 따가운가보다. 해풍이 불어와 비교적 시원한 날씨지만 바깥에 나서기만 하면 그래도 덥다.
도야호를 여행하다 이곳에서 친구로 보이는 30대 후반의 여자 2명을 만났다. 회사에 근무하다 휴가를 내 여행 중이라 했다.
그녀들은 북에서 남으로 나는 남쪽에서 북으로 같은 코스를 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미 노보리베츠를 거쳐서 왔노라고 한다. 그곳을 꼭 가보라고 권한다. 그렇지 않아도 그 지역을 둘러볼 계획이었다.
삿포로에서 남쪽으로 1시간20분을 이동하면 노보리베츠가 있다. JR선을 타고 역에서 내리니 노보리베츠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온천으로 유명하다. 지형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겨울에는 온천을 하기에 알맞다.
협곡에 들어서면 길 양쪽으로 온천장이 늘어서 있다.
길을 걷다보니 신기하게 노면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마을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놀랍다. 하긴 온천지역 아닌가. 산 쪽을 향해 계속 걸어 올라갔다. 표지판하나가 눈에 띤다.
地獄谷이라 씌어있다. 지옥의 계곡이라는 의미인데 어찌하여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산과 계곡에는 노천에 불을 피워 놓은
것처럼 연기가 여기저기서 펴오르고 벌거벗겨진 산에 유황냄새가 진동하며 우윳빛 온천이 솟아 계곡을 덮고 흘렀다.
산과 계곡의 모양이 마치 온 산이 폭격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의 모습이다. 평화로운 온천마을을 지나 위쪽 계곡은
이처럼 딴 세상이다. 분화구 곳곳에서 모락모락 흰 연기가 끊임없이 오르고 있어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기념사진 찍기도 민망하다. 지옥에서 무슨 기념이 될 수 있는지 포즈를 잡는 것도 이상하여 그만 두었다.
북해도에는 옛부터 곰이 많아서 곰 사냥을 하며 원주민들(아이누 족)이 살았었다. 이곳의 산 이름도 쿠마산(곰산)이다.
현재 3만이 채 못 되는 아이누 원주민이 살고 있다. 쿠마산 정상에 곰 목장이 있다. 그곳에 목장을 만들어놓고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오르고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오늘따라 운무가 덮여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시관에는 아이누족들의 생활상과 장신구 생활용품 등을 전시해놓고 판매도 하고 있다. 쾌청한 날씨라면 산악의 전망이
수려하였을 텐데 안개 속에서 아래를 조망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심심찮게 우리처럼 자유여행 하는 사람들을 현지에서 만나곤 한다. 노보리베츠 온천에서 50후반의 남자 여행객을 만났다.
지역 문화에 관심이 많고 여행을 좋아 하지만 부인과 같이 다닐 수 없기에 한가한 날이면 혼자서 훌쩍 떠나온다고 했다.
중남미를 단신으로 3차례나 다녀왔다 하니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처음 본다.
이번에 12일 일정으로 일본에 온 그가 나름의 여행 비법을 공개하기에 들어보았다. 우리보다 긴 일정인데도 짊어지고
다니는 배낭은 4킬로가 될까 말까 작은 가방 하나이다. 혼자 다니면서 만일에 대비해 최소한으로 줄인 것 이라했다.
검정색 바지하나에 상의는 줄무늬 남색 남방이 전부다. 남의눈에 잘 띠지 않게 수수한 차림으로 다니는 것이 좋다며
우리처럼 주렁주렁 작은 가방(쌕)에 큰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면 여행객 표시가 나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돈과 여권은 속바지를 따로 더 입고 거기에 주머니를 만들어 몸에 착용해야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울긋불긋 티나게 다니면서 노출시켜 불의에 무슨 일을 겪을지 장담할 수 없을 노릇이다. 다행히 여기가 일본이라서
안심할 수 있지만 그야 모를 일이다. 그 나름의 여행 노하우가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옷 한 벌로 여행이 가능하다니.
옷을 빨아 마른 수건으로 꽉 짠 후 말리면 다음날 충분히 입고 다닐 수 있다고한다.
가고자하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딱 맞다.
“왜 혼자서 다니세요. 부인과 함께 다니면 좋을텐데.”
“집 사람은 건강이 좋지않아요. 휴일에는 교회를 나가기에 어쩔 수 없지요.”
“집에 있으면 친구들이 골프나 치자며 노는 시간이 아까워 이렇게 여행을 떠납니다.”
“밖에 나오면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많아서 참 좋지요.”
이 남자는 여행에 일가견을 가지고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노보리베츠에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시간이 어느새 흘렀다.
5 <축제에서 있었던 일>
7월말 8월초가 되면 일본에는 축제들이 많다. 아키타는 8월 3일부터 6일까지 칸토 축제가 열린다. 역에 내리자마자
축제준비 모습이 보인다. 구내에 포스터와 프래카드가 걸려있고 다음 날 저녁에는 전야제가 있으니 가보라고 안내원이
귀뜸 해 주었다.
약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칸토 축제는 유명하다. 축제날 저녁 칸토(장대)에 수많은 등불을 매달고 거리를 행진한다.
이들은 축제 준비에 열을 올리는데 1년 동안 준비를 한다고 했다.
농사에 방해되는 병마와 잡귀를 쫓는 의식에서 유래해 축제 당일 아침, 무사기원을 위한 의식이 행해지는데
의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빛깔 고운 제사 떡! 이 떡을 갖고 돌아가, 마을에서 제사를 지낸다.
주요 쌀 생산지인 아키타 현. 깃발에도 그런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고, 하얀 종이와 볏짚으로 만든 깃발이,
벼 이삭을 상징하는데, 모든 등불 꼭대기에 이걸 달아 놓는다.
아키타 시청 광장에는 먹거리 장마당이 열리고 있었다. 부스를 줄줄이 세워놓고 축제 전야제가 오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지역의 특산물과 생맥주를 파는 부스 등 각종 전통음식을 만들어 팔고 지방 TV 방송사에서는 축제와 관련된 취재를 하느라
부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우리는 그곳에 들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취재팀이 다가와서 우리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놀라면서 몇 가지를 물었다. 서툰 일본어지만 부끄러워하면서 아내가 취재에 응하였다. 우리의 인터뷰장면이
저녁 방송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루 만 더 머물렀으면 이들의 축제를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 날 돌아오는 일정때문에
도쿄로 돌아오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한가로운 아오모리 항 전경
명치 신궁으로 그들이 자랑하는 신사 임
신사에서 전통 혼례식 장면임
한여름 땡볕아래 축제가 한창임
유주산 화산 분화구
the end
첫댓글 젊은이도 힘든 일정을 소화해 내셨네여!~동경으로시작해서 아오모리와 하코다테 그리고오타루와 노보리벳쯔까지!~..(교통비가만만치않으셨을텐데...)돌아보면 다 소중한추억인데 함께 나눠주심에 감사드립니다.
JR 패스권을 끊으면 교통비가 절약되는데 전체에서 보면그 비중이 만만치 않습죠. 그치만 자유롭잖아요.
좋습니다. 선생님같은 그런 삶을 살고싶습니다. 늘 배낭을 옆에 두고 살면서 언젠가는 훌훌 목적도없이 떠나보리라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지난주에 지리산 둘레길 어제는 백두대간 트레킹은 했습니다. 떠남은 영원한 삶의 에너지입니다.
형님!~ 지난주말에 그 테레일의 일부코스인 아침가리계곡에 트레킹하고 왔습니다. 베리굿!~...입니다.
역시 떠남에는 그 자체지요. 백두대간을 시작했군요.
시작도 아니고요 백두대간도 아닙니다.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걷는 트레일이 지금 조성되고있더군요. 그중 일부를 걸었습니다.
여름 여행을 못 갔는데.. 오늘 다녀오네요. 동경, 아오모리, 하코다테를..그 많은 일정을 단숨에 마음이 넉넉해 졌습니다..
휴가가 넉넉하겠는데요. 좋은 추억 만들어 오시도록...
안 갔어도 갔다온듯한 일본 여행기 재미 있게 두번 읽었읍니다 이번에 저희가족도 3박4일 여행을 했는데 저도 한번 정리해서 글로 남기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