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일영은 잠에서 깨어버렸다. 자리가 좋아서일까. 얼마 자지 않았는데도 정신이 금세 맑아진듯한 기분이 드는 일영이었다. 밖에서는 희미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는 대충 몸을 쓸어내리고는 문을 열고 방을 나왔다.
"히야... 공기 좋다."
이곳이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일영이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문명에 물들지 않은 맑고 깨끗한 공기가 깊숙하게 빨려들어왔따. 한껏 기분이 좋아진 그는 주변을 빙 돌아보았다. 확실히 규모는 작지만, 유서깊은 절 같기도 했다. 외부인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산책도 할 겸 절 내를 돌아다니던 그는 한 소년을 볼 수 있었다. 갈색과 주황색이 어우러져 있는, 보통과는 조금 다른 법의. 바람에 잔잔히 흩날리는 검고 긴 머릿결. 그리고 붉어져 있는 얼굴.
그 소년의 손에는 봉이 하나 들려있었다. 소년의 손에서 바람을 휘젓는 봉의 모습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봉술.... 인가?"
일영은 그 소년에게 다가갔다. 왠지 호기심이 일게 만드는 소년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생김새가 매우 곱상하게 생겼다. 맑은 눈빛, 오똑하게 서 있는 콧날, 작고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 그리고 하얀 피부. 이 모든것이 절묘하게 섞여 부드러운 인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석, 얼굴 하나로도 먹고 살수 있겠네.'
나쁜 생각을 하는 일영이였다. 일영은 그 소년을 불렀다.
"이봐요."
그의 말소리에 수직으로 내리쳐지던 봉이 움찔하면서 멈추었다. 소년은 이마에 흐르던 땀을 소매로 훔치고는 일영을 향해 돌아보았다. 소년은 어제 왔던 손님이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예의를 갖추어 인사했다.
"아. 어제 오신 손님분이시군요. 어떻게 잠자리는 편하셨는지요?"
어린 아이에게 깍듯한 존댓말을 들으니 일영은 기분이 묘해졌다.
"내 이름은 일영이라고 해. 너무 그렇게 깍듯한 존댓말은 이쪽에서 불편하니까, 그냥 간단히 일영 형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는데..."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년은 살짝 웃더니 말했다.
"제 이름은 수근이라고 해요. 형."
약간은 풀린듯한 말투에 일영은 안심하고 미소지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봉술 수련인거야?"
수근은 다시금 휘두르던 봉을 거두어들였다. 붉은색이 은은하게 도는 나무로 만들어진 봉이였다. 일영은 잠시 그 봉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신기(神氣)는 일영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일영이 신부가 되려고 마음먹기 전에는 무술수련도 했던 터라 좋은 무기들을 보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수근은 그런 일영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봉을 조금 앞으로 내보이면서 말했다.
"헤헤.. 벽조목으로 만든거에요."
일영은 탄성을 질렀다. 벽조목으로 만들었다면 그 강도는 물론 신력까지 담겨져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였다. 일영은 다시금 봉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문득 일영은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벽조목으로 만들었다는 건 역시 퇴마용인가?"
"네? 아하... 아니에요. 이건 그냥 단순한 수련용에 불과해요. 진짜 퇴마용은 저기 본당에 모셔져 있구요."
일영은 알았다는 듯 끄덕였다. 그리고 수근에게 그걸 보여줄 수 있겠나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수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본당으로 달려들어갔다. 잠시 뒤 수근이 본당에서 가지고 나온 것을 본 일영은 깜짝 놀랐다. 강력한 신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금강저(金剛杵)의 변형형이에요. 저는 이걸 금강귀저(金剛鬼沮)라고 하는데.."
아까의 봉처럼 긴 몸체에 날카롭게 벼려진 둥근 고리, 그리고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항마방울들... 확실한 신물이였다. 밀교에서나 볼법한 금강저를... 그것도 변형된 금강저를 이런 곳에서 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영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햇살에 비쳐 금빛을 뿜어내는 금강귀저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무렵, 커다란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수근이 네녀석! 누가 그걸 꺼내도 된다고 했느냐!"
"임 호법님."
뒤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일영은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백발 성한 노인이 얼굴을 잔뜩 구기고는 수근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보기에도 굉장히 화나 보이는듯 했다. 일영은 왠지 수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수근을 변명해 주었다.
"아..아니.. 이건 제가 보여달라고 해서 수근이가 꺼내온 것일 뿐, 수근이 잘못은 없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일영은 임 호법이라 불리우는 노인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자네는 어젯밤에 잠시 묵겠다고 했던 손님인가?"
"예."
임 호법은 구겼던 인상을 펴고서 고개를 든 일영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임 호법의 눈동자가 잠시 커지는가 싶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채 본당 뒷편으로 재빠르게 사라졌다. 일영은 다행이라는 듯 크게 숨을 내쉬고는 씨익 웃으면서 수근을 바라보았다. 안절부절 못하던 수근도 일영의 웃음을 보자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잠시 뒤, 다시 임 호법이 일영과 수근이 있는 쪽으로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이거 귀한 손님을 못알아 봤구만."
"에?"
"잠시.. 얘기좀 할 수 있겠나? 청년."
임 호법은 진지한 눈동자로 일영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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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하하하~~~~ 왔다왔다~~
첫댓글 수근하니까 개콘의 이수근 씨가 생각나버렸습니다 [퍽-!!!]
흐냐아앙~ 순수할 수(粹) 자에 부지런할 근(勤) 자란 말입니다.. 순수하고 부지런한 아이. 우잉.. 생각해내느라고 고생했는데..
함부로 꺼내면 안되는 귀중한 무기라면 함부로 못 꺼내도록 시건장치라도 해놓으시지....-ㅅ-;;
요즘 기분이 괜찮네요.고대하던 글들을 다시 보게 되어서 ㅎㅎ 시그님 글은 보고 싶은 글들이 많은데 제가 이런말씀 안하셔도 아시리라 봅니다.ㅎ 일영이가 귀빈대접을 받을 분위기처럼 보이는데 여의봉처럼 늘어나기라도 하는 것인지 엉뚱한 생각도 해봅니다.냐하하하~~~~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