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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자 눈에 잘 띄는 곳에 도서관 축소 모형이 놓여 있다. 가까이 가서 보자 히야,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사람들과 가로수가 옹기종기 서 있고, 들어오면서 본 벽면 나무판자의 여닫힌 모습도 제각기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한참을 뚫어져라 구경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다. 절제된 열람실과는 달리 복작복작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자연스러워 보여 좋다.
도서관 한쪽에 마련된 안내용 컴퓨터로 도서관 개요를 살펴보면서 궁금했던 ‘X’에 대해 알아냈다. 과거에 금서로 지정되었던 책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특별전 홍보 문구였다. 이곳에서는 이런 전시가 주제를 바꿔가며 상시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위치별 장서와 프랑스 국립도서관끼리 연결망을 갖춘 컴퓨터는 복도 곳곳에 설치돼 있어 부족함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다양한 인종이 사는 나라라 그런지 국가대표 도서관이라 그런지 다국어가 지원되어 좋다. 공식 방문 일행인 우리가 그 정도의 피상적 지식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터. 때마침 등장한 안내 사서 선생님을 만나 본격적인 미테랑 도서관 탐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프랑스어로 도서관은 ‘비블리오테크(Bibliotheque)’다. 수집을 좋아한 샤를 5세가 자신의 수집서들이 있던 거처 루브르를 만인에게 처음으로 개방하면서(한마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출발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때부터 비블리오테크로 불렀다고 한다. 이를 시초로 실현된 정보의 대중화는 17세기 들어 왕의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나눠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법으로까지 제정되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일명 프랑수아 1세의 납본법 또한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왕립으로 시작된 도서관은 프랑스혁명 이후 국립으로 탈바꿈하였고, 1990년대 미테랑 대통령의 프로젝트에 의해 1조 20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들인 후 지금과 같은 모습의 미테랑 도서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도서관 건물은 루브르 앞 피라미드를 세운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작품이라는데, 그 무지막지한 규모와 유리 재질의 초현대식 외형 때문에 당시에는 상당히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도서관 안내 사서의 설명은 프랑스어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말투에서 자부심만큼은 확실히 느껴졌다. 우리의 질문 욕구를 어르고 달래가며 15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모조리 설명한 카트린 사서, 그녀의 뿌듯한 얼굴이 나를 반하게 했다.
구석구석 살펴보니 도서관 자체가 이런 ‘자부심’에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다. 반대쪽 벽면에는 B-I-B-L-I-O-T-H-E-Q-U-E 철자의 첫머리를 따 도서관의 특성을 설명한 표(E는 Encyclopedia; 집에 와 찾아보니 ‘The Encyclopedia’는 18세기에 출판된 프랑스의 백과전서를 뜻한다)가 있고, 그 밑 구석진 곳에는 도서관에 보관해놓은 오래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돋보기를 써야만 보이는 아주 작은 책부터 금화에 미니어처 술까지, 대단함을 넘어 ‘풋!’ 헛웃음이 나기까지 하는 컬렉션들이었다. 그렇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도서관이라는 것이 단순한 ‘도서’ 이상의 지식기반 전반을 포괄하는 장소로 쓰인다는 점과 도서관의 주 역할을 기부와 정보 공유의 바탕이 되는 지식의 집대성지로 꼽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도서관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 우리는 드디어 공식 방문객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도서관 내 도서 이동 절차를 보기 위해서다. 규모가 큰 도서관에서는 흔히 이용하는 시스템인 듯한데,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조용한 열람실의 레드 카펫을 통과한 후 천장 높은 복도를 지나자 문제의 ‘비밀의 방’이 나타났다. 그 방은 단순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멋스러웠다. 케이블을 타고 움직이는 곤돌라 모양의 책수레는 서양의 침대 머리맡 동화에 나오는 아기 요람을 문 황새처럼 보였다. 커다란 네 개의 건물을 잇는 케이블 수레의 움직임은 「가위손」에서 에드워드가 태어나기 직전 굴러가던 컨베이어 벨트 같기도 하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바쁜 사탕 기계 같기도 하다. 한 마디로 영화 같은, 신기한 구경을 한 거다.
이 도서관은 한 편의 영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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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랑 국립도서관은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만큼 도서관의 출발과 기본 정신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곳이다. 지식이나 정보는 혼자 독점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 그 숙연하고도 엄중한 일을 도서관이 맡아야 한다는 것을.
여행을 마치면 꼭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을 견학 가리라 다짐하며 제법 굵어진 빗줄기를 헤치고 미테랑 도서관에 압도당하지 않으려고 재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송요(경기 백운고 2학년) / 2008년 05월29일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