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7일(월)
생명의 삶 Q.T. 묵상 - [주가 쓰시겠다]
●성경본문 : 누가복음 19:28~40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기는 할까요?
허물과 죄 뿐인데 감히 주님의 부름을 받을 수 있기는 한 걸까요?
돌들은 소리를 치는데, 왜 내 입술은 돌보다 더 무거워 거짓과 불의의 감옥에 갇혀 있는 걸까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시며,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서 끌고 오라고 명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귀 주인이 어째서 남의 나귀를 끌고 가려 하는지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주님이 쓰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주인은 나귀 새끼를 끌고 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제자들도 나귀 주인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심으로 스가랴 9:9의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왕으로 임하시되 겸손한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와 권력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이십니다.
그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겸손하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 길을 걸으신 것입니다.
초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The Passion of The Christ!
십자가를 향한 주님의 그 열정이 곧 나의 열정이 되고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어린 나귀 역시 주님께 순종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라 불리는 예수님을 태우고, 주님이 가시는 길을 동행합니다.
제자들은 겉옷을 벗어 나귀 새끼 위에 펴고 예수님이 타실 자리를 만들었고, 길에 겉옷을 깔았습니다. 자신들의 옷으로 양탄자를 대신했습니다.
무리의 외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는 아무도 예수님을 왕이나 메시아로 외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든 우리는 담대히 왕이신 주님을 높이고 선포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무리의 잠깐의 외침조차 불편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죄의 이유로든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외쳐대는 제자들을 꾸짖으라고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이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요, 인류의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음은 명명백백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세상 눈치를 보고, 시련과 고난을 두려워하면 우리의 찬양은 어느새 원망과 불평으로 변하곤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기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주께서 쓰시고자 할 때 언제든 어디에서든 순종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의 날까지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을 자랑하고 높이고 선포하고 전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