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로 / 김이듬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를 본 적 없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을 따라간 적 없지만 반시계 방향으로 태양 주위를 도는 나의 행성을 떠난 적 없지만
언젠가는 내 삶의 방향을 바꾸리라 문을 박차고 나가 극지 쪽으로 달음박질치리라 생각만으로 맥박이 빨리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극지의 눈보라를 미리 경험해보라는 듯 북극한파가 몰려온 날 아침이었다 북극과 남극을 잇는 선을 축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던 나의 행성이 멈추려고 했다
새벽녘부터 극심하게 두근거리던 심장이 조여왔고 어디 부딪쳤는지 모르는 멍처럼 얼굴이 새파래졌다
심장판막에 문제가 있습니다 혈액이 역류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어요 어려보이는 의사가 녹아가는 눈사람처럼 보였다 응급실 흰 침상 주변은 설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피도 지구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돈다 몸속의 피는 지구 세 바퀴 넘는 거리의 혈관을 순환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한다
내가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 알게 된 건 아니지만 항로를 거꾸로 가다가 침몰한 배에 탑승한 적은 없지만 심장의 문이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지만
당기라고 하는 문도 밀어야 열릴 때도 있지만 모든 문은 향방이 있다는 것 문을 부수고 역방향으로 가면 마지막 인사도 나눌 수 없다는 것 내 심장의 문이 열리고 내 혈액이 지구 세 바퀴 넘게 도는 방향으로 그 일방통행로를 나아가리라
북극여우도 살지 않는 설원에서 길은 끝나고 심장과 마음을 잇는 선이 사라질 즈음 나에게서 가장 멀리 떠나온 거기에서 그 극지의 눈보라 속에서 너에게 편지를 부칠 수 있다면
- 계간 《시하늘》 2024년 봄호 ----------------------
* 김이듬 시인 1969년 부산 출생. 부산대 독문과 졸업. 경상대 대학원 국문학박사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투명한 것과 없는 것』 등. <김달진 창원문학상> <22세기시인작품상> <올해의좋은시상> <김춘수시문학상> 등 수상
****************************************************************************
[아침숲길] 일방통행로 /김이듬 아주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볕을 쬐고 싶었으나 황사가 심하다. 도시 거리에나 있을법한 일방통행 표지판이 일산호수공원 숲길에도 설치돼 있다.
사람들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며 마스크를 끼고 걸어간다. 거의 모두가 다른 이의 뒷모습을 보며 걸어간다. 사람의 뒷모습은 언제나 슬픈 것 같다. 나는 세 걸음 걷다가 서고 다섯 걸음 걷다가 우두커니 서서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쳐다본다. 앞에 가던 이들이 나무와 꽃 사진을 찍느라 중간중간 멈춰 섰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매화와 산수유가 꽃을 가득 피우고 있다. 쭉 늘어선 벚나무 중에서 드문드문 몇 그루에는 벌써 흰색에 가까운 분홍색 꽃이 피어있다.
매화꽃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매화나무 한 가지에 꽃과 새가 있었다. 마치 한 가지에서 나온 기쁨과 슬픔 같았다.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기는 청각을 거의 상실한 이후였다. 암 수술을 받았지만 암은 몸 곳곳으로 전이되었고 나중에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고 걸어 다니실 수도 없었다. 그즈음 아버지는 수채화 물감으로 고향 마을을 그리셨다. 진주 대평면의 넓은 무밭과 작은 초가집을 그리셨는데 아버지의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밭고랑에 외로이 서 있는 풍경화였다. 나는 아버지가 화초 키우는 취미가 남다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림에 그토록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다. 소통 불능과 무능력에 이르러 아버지는 혼자 두려움을 달래신 걸까. 조촐한 칠순 생일상을 앞에 두고 아버지가 시를 낭독하실 때까지도 아버지가 시를 좋아하는 줄도 몰랐다. 아버지는 대다수의 아버지들이 그런 것처럼 평생 죽자사자 일하느라 변변한 음악회나 미술관에 가보지 못하셨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 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부분
나 또한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시를 ‘피워’낸 건 아닐까?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마감한답시고 밤을 지새우고 시답잖은 일을 한답시고 코피를 흘리느라 아버지 문병 가는 데 소홀했던 건 아닐까. 무엇이 가장 우선이며 무엇이 가장 최선인지 아버지가 초봄 저녁 무렵에 병상에서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우니? 나는 행복하다. 이제 여한 없이 죽을 날을 기다린다. 사랑한다. 울지 말고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알겠지?”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지만, 병원에서 돌아가시고 그 병원과 연결된 장례식장으로 이동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 기형도가 돌아간 날이라고 장례식장에 온 친구가 말했다. 그녀는 시를 쓰는 친구인데 문상 오는 길에 시를 썼다고 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 나는 죽으면 수목장을 하고 싶어.” 친구의 말을 들었지만 나는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방적으로 떠들어주는 친구가 있어 맘속 슬픔의 침전물이 아직 떠오르지 않았고 아무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으니까. 나날이 점점 슬픔과 그리움이 커질 뿐. 황사에 휩싸인 채 나는 떨며 메마른 나무에 기대어 있으니. 호숫가를 한 바퀴 돌면 출발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차가운 납골당에 모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는 고향 동산에 묻히고 싶어 하셨으나 그곳은 오래 전 수몰 지역이 되었고 인근에 작은 묘지조차 마련할 돈이 없었다. 나는 부친 여읜 죄인의 심정으로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넓은 땅이 있고 소시민은 몸 하나 뉠 자리조차 없다. 이 불행한 시절 또한 일방적이며 편파적이다.
- 국제신문 2021-03-30 / 김이듬 (시인·책방이듬 대표, 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