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70s] 13
씬8 국수집, 안(아침)
빈: 나, 너하고...연애하고 싶다..
더미: 씨이! 또 장난친다. (흘기고 국수 먹고)
빈: 너...그 남자 잊고, 나랑 연애하자.
더미: !
빈: 그 남자 나보다 멋있냐?
더미: ..(국수 먹는다)
빈: 너 버리구 서울로 도망친 놈 말야. 나보다 멋있냐구?
더미: 그 사람 얘기 하지 마요.
빈: 잊어. 나쁜 새끼니까. 그 자식 잊어 버리구.. 날 봐.
더미: 그만하라니까!! (젓가락 탁! 놓고 벌떡 일어난다)
씬12 거리(아침)
더미, 씩씩- 거리고 걸어간다.
빈, 따라와서 더미의 손목을 잡는다.
더미: 왜 또 그래요! (손 빼낸다)
빈: 내가 그 놈 찾아줄까? 이름만 말해봐. 찾아줄 테니까.
찾아서 물어보자. 널 사랑한 건지, 만만한 섬처녀
잠깐 데리구 논 건지, 확인해 보자.
더미: 야!! 장빈! 너, 그만 안하면 죽어!!
빈: 적어두 남자가 진짜 사랑하면, 그렇겐 안해. 자기가 죽어두,
사랑하는 여잘 울리지 않는다.
더미: (노려본다) 진짜든 가짜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빈: 널, 사랑하게 됐으니까..
더미: !
빈: 니 가슴에 안기는 게..나 하나여야 하니까.
더미: ..
빈: ..(강렬한 시선으로 더미를 본다)
더미: ..나 그럴 마음 전혀 없어요. 아까 한 번 안아줬다구 오해하나
본데요. 그런거 아니에요..
빈: 그러니까 지금부터 그 오핼, 진짜로 만들어 볼라구.
더미: 술 덜 깬 거라 생각할께요. 들아 가서 국수나 마저 먹어요.
더미, 돌아서서 걸어간다. 빈, 그런 더미의 뒷모습을 뜨겁게 바라본다.
동영: 그만 집에 가.
준희: 나, 집요한 거 알죠?
그냥 한 마디만 하면 되잖아.
맹골도, 한 더미다. 아니다. 한더미야?
동영: ..
준희: 아니야?
동영: ..
대문 열리고, 출근복 차림의 김홍석, 나온다. 두 사람, 김홍석을 본다.
준희: (당황스럽지만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김홍석: (반갑게) 오. 그래. 준희 왔구나.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준희: 동영씨한테 궁금한 게 있어서요. 출근하세요? 이렇게 일찍?
김홍석: 응. 회의가 있다. (동영에게) 왜 문 밖에 세워 놓고 얘길 해.
들어가서 같이 아침 먹어.
씬5 김홍석 장군의 집, 주방(아침)
동영, 프라이팬에 식빵을 굽고 있다.
씬6 동영의 방(아침)
준희, 무심히 둘러보고 있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파일들.
준희, 정리나 해줄 생각으로, 서류들을 집어 한쪽에 쌓는데,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자료.
(인서트) 대구 8사단 한국인 근무자 현황
준희: 대구...8사단 한국인..근무자 현황? (한 장 펴본다)
1951년..대구 팔사단? 오십 일년..? (고개를 갸웃-거린다)
준희, 관심이 간다. 다음 장을 펴서 들고 읽으려는데.
문 열리고, ‘아침 먹자’ 하면서 동영 들어온다.
준희: ..(읽던 자료를 들고 다가온다)
동영: ! (순간 표정 굳는다)
준희: 이게 뭐야? 오십 일년이믄...일사 후퇴 때잖아? 나, 대구 있을 때?
동영: 응..
준희: 이걸 왜 보구 있어?
동영: ..
준희: 무슨 일이야? 왜 새삼..그때 걸...
동영: (말해야 할 것 같다) 준희야.. 그게 말이다..
준희: 응..
(김홍석 장군의 소리) 강희 입장을 생각해 봤니?
십수 년을 고사장 친 딸로 살아온 아이다.
준희가 입을 상처도 생각해야지.
준희: 동영씨 정말 왜 그래? 불안하게. 무슨 일인지...말해줘.
동영: (정신 차리고) 아냐, 그냥 자료야. 이리 줘.
준희: (안 믿는) 동영씨!
동영: 논문 자료야. 전쟁 당시 노무자들 환경하고,
지금하고 비교해 보는 거야. (손 내민다)
준희: (내미는) 난, 또. (웃고) 대한상사 일 한다더니..가발회사
직원이 무슨 군사자룔 봐. 나한테 딱 들켰지?
모른 체 해 달라. 입 다물어라. 그 얘기지?
동영: (애써 미소) 응. 그만 아침 먹자.
동영, 준희에게서 받은 파일을 서랍에 넣는다.
동영, 문 쪽으로 가는 준희의
뒷모습을 편치 않은 시선으로 본다.
씬13 서울 흥신소 앞
더미, 신문사에서 얻은 주소를 확인 한다.
씬14 서울 흥신소, 안
더미, 형사 출신의 박학기(50대, 오경사의 선배)와 이야기 하고 있다.
더미: 이름은 김동영이구요.. 좋은 남자에요..
박학기: 좋은 남자, 그런 거 말고. 특징 말야.
생각나는 거 없어?
더미: (생각하다) 잘 생겼어요. 진짜 진짜 멋있게 생겼어요.
박학기: 하하- 이 아가씨 귀엽네. (이제까지 자신이 메모한 것을 보며,
확인한다) 키는 대충 나보다 (손으로 한 뼘 재고)
이만큼 더 크고. 나이는 이십대 후반 정도. 헬리콥터
타고 맹골도에 왔다. 권총도 갖고 있다.
(놀리듯) 잘 생겼다. 끝?
더미: 네.(고개 끄덕이고, 가방에서 월급봉투를 꺼내서,
잘 세려서 반을 내밀다가, 다시 몇 장 더 빼고 준다)
우리 엄마한테두...보내야 되거든요.
박학기: (몇 장 더 준다) 선수금은 이거면 됐어.
나중에 그 잘생긴 친구 찾으면 그때 주면 돼.
더미: 고맙습니다!! 꼭 찾아주세요!! (인사하고, 문 쪽으로)
더미, 문 열고 밖으로 나가는데, 안으로 들어오는 오경사.
두 사람, 서로 스치듯 지나쳐버려 알아보지 못하고, 더미 나간다.
오경사: 아따, 덥네. 선배님아, 씨원한 냉커피 한 잔 시켜주소.
박학기: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
오경사: 요새 밀수꾼 한 놈 잡을라꼬, 밤이나 낮이나 내가 생똥을
안 싸요. 거미 줄 다 쳐놨어. 이제 걸리기만 하믄 돼.
오경사, 부채 집어 들고 훽훽- 붙이다, 박학기가 메모해 놓은 것을 본다.
오경사: 김동영. 헬리꼽타 타고 댕긴다. 권총 들고 댕긴다.
잘 생??다? 이기 뭐꼬?
박학기: 뭐하는 놈 같냐? 경찰?
오경사: 체..우리 주제에 헬리꼽탄 무신. 정부 쪽 아이야? 중정??
씬15 대한상사, 해외영업2부 밀실
동영, 앉아 있다. 허진기, 슬라이드 필름을 하나 꽂는다.
벽 스크린에 사진이 한 장 뜬다.
(인서트) 김중린 대남 총책의 얼굴
허진기: 누군지 알겠나?
동영: 김..중린? 대남 총책입니까?
허진기: 그래. 지난번 김신조 난동으로, 저쪽 군 수뇌부에
대대적인 숙청이 있었다. 다소 온건파가 대남사업총국장이
된 것도, 어찌 보면 들끓는 국제사회 비난에 면피용이라고
볼 수 있겠지.
동영: 저 사람과 접촉해야 합니까?
허진기: (고개 끄덕이고) 그 전에 루트 개발부터 해야겠지.
(슬라이드 필름을 꺼내 라이터로 불붙인다)
동영, 일어나 커튼을 젖힌다. 쏟아져 들어오는 빛.
그 사이, 허진기 캐비넷 열고 두터운 파일을 꺼내 들고 와,
회의 테이블에 던지듯 놓는다.
파일 위에는 ‘대한상사, 해외개발부 직원 명부록’이라고 붙어 있다.
허진기: 홍콩, 아유마테이를 일차 접근 지점으로 한다.
아무래도 홍콩이 편해.
동영: 예.
허진기: 거기서 한 명 찍어봐. 너하고 선을 닿아줄 수
있는 인물들이야.
동영: (넘겨보기 시작한다)
허진기: 제대로 골라. 니 목숨 줄이니까. 괜히 내가 찍어줬다,
너 죽으면 니 아버지한테, 나까지 맞아 죽을 거 아냐.
동영, 파일을 보면 사진과 이름, 간단한 신상명세만 나와 있다.
누가 봐도 직원 명부 같이 위장된 서류다.
동영, 한 장 넘기다가 손이 멈춘다.
동영: !
동영, 다시 한번 서류를 본다. 분명히 빈의 사진이다.
(인서트) 빈의 사진과 이력.
성명: 장빈
1943년, 6월 28일 생
출생지: 일본 동경
母親 유명 디자이너 장봉실. 父親 알려진 바 없음.
학력: 1962년 서울대학교 화학과 입학/63년 자퇴.
군력: 해군 특수전대 수중파괴대 UDT 9기 수석 수료/전역
특기: 스킨스쿠버. 수영. 테니스
씬16 동, 해외영업2부 사무실
동영, 꿀꺽꿀꺽 물을 마신다. 속이 타는지,
물을 들이키는 동영. 허진기, 따라 나왔다.
허진기: 잘 찍었다. 장빈. 괜찮은 놈이지.
동영: 과장님이 그 친굴 어떻게 아십니까?
허진기: 재작년이지? 가을에 작업 한 번 같이 들어갔었어.
UDT 지원이 필요했거든.
잠수 실력 뛰어나고. 겁 없고. 제대하고 끌어올려 했는데
잘 안됐어.
동영: 이유가 뭡니까?
허진기: 내가 아나. 말 같지 않은 소릴 하는데,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
동영: 그래두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허진기: 훈련 받다 뛰쳐나갔어. 재미가 없다나? 하하- 참.
골 때리는 놈.
동영: ..
허진기: 요즘 뭐하고 사나 궁금하군. 장빈, 좋았어! 찾아보자.
동영: 그 친군 안 됩니다!
허진기: ? (본다)
동영: 본인이 싫다고 뛰쳐나간 사람입니다. 민간인으로
잘 살고 있을 텐데..
위험한 일에 끌어들일 순 없습니다.
허진기: 김동영..너도 느끼고 있겠지만.. 니 목숨 맡길 사람이야.
믿을 만한 놈 구하기가 쉽지 않아. 그 친구로 가.
동영: 안됩니다. 훈련 받다...뛰쳐나가기나 하는 친군..믿을 수가 없죠..
장빈...서륜 폐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씬17 공원, 입구(저녁)
빈의 윌리스 지프가 도착한다.
빈, 뛰어 내리듯 내려서 달려간다.
저만큼 동영, 빵과 우유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서서 빈을 기다리고 있다.
빈: 형! (손을 번쩍 든다)
씬18 공원, 일각(저녁)
동영과 빈, 빵과 우유를 먹고 있다.
빈: (한입 베물려다) 하하- 저녁 사준다더니,
(빵 흔들며) 이게 뭐야.
동영: 야근이라서, 다시 들어가 봐야 해.
빈: 그렇게 바쁜 사람이, 왜? 뭐 땜에 보쟀어?
동영: 그냥. 보고 싶어서.
빈: 몇 달씩 안보고도 잘 살다가, 왜 갑자기 하루건너,
한 번씩 보고 싶은데?
동영: 녀석, 형님이 동생 좀 보구 싶다는데, 이유가 필요해?
빈: 아...닭살 돋는다. (눈 맞추고, 픽- 웃는)
동영: 잘 살고 있지? 요즘 뭐하고, 어떻게 지내니?
빈: 알려고 하지 마. 빈들빈들 백수라. 딱히 할 말도 없고.
동영: 위험한 일 하지 마. 끼어들지도 말고. 어머니 생각해야지.
어머니한텐 너 하나밖에 없잖아.
빈: (표정 굳는) 여사님 얘긴 하지 마.
동영: ..(안타깝게 보고)
빈: ..
동영: 안기고 싶은 여자분 하군 잘 되가니?
빈: 글쎄, 뭐.
동영: 그런 사람이 생겼다니, 다행이다.. 난, 빈이
네가 장가갔음 좋겠다.
좋은 사람하고, 살면서..니 마음에 맺힌 응어리도 풀고.
빈: 아..참. 고리타분한 소리만 골라 하네.
형, 어디 죽으루 가냐?
씬20 앙상블 안(저녁)
장봉실, 마네킹에 천을 드레싱하고 있다. 차연과 방육성,
장봉실이 디자인 한 스케치와 비교해가면서 ‘이건 어때?
너무 무겁지 않아요?/ 무거운 게 아니구, 고상한 거지.’
이런 이야기 나누며 다른 천을 고르고 있다.
장봉실, 가위로 천을 자르고 있다. 빈에 대한 생각에 빠져
무의식적으로 가위질한다. 위태해 보인다.
(빈의 소리) 쓰레기통에 날 처박은 건 여사님이잖아요!!
장봉실, 밑단을 올려 걷어내며 자른다.
빈: 날 기르는 게 힘든 게 아니었겠지!
포기 못한 꿈 때문에 괴로웠겠지!
장봉실: 빈아..엄마가(하는데)
빈: 그렇게 부르지 마! 당신은 절대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사람이야!! 당신은 당신 자신 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장봉실, 가위질을 한다. 사각..사각..소리가 불길하다.
차연과 방육성, 머리 맞대고 고르던 천을 놓고 장봉실을 본다.
장봉실, 혼이 반쯤 나가있는 듯 보인다.
장봉실에게는 방육성과 차연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빈: 내 마음은, 이미 그때 버려진 강가에서 얼어붙었어!
왜! 차라니 날 없애버리지 그랬어요! 뱃속에 있을 때
지워버리지 그랬어요!!
가위가, 장봉실의 왼손을 지나간다. 차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른다.
차연: 선생님!!!! (뛰어온다)
방육성: 여사님!!
장봉실: ..(멍하니 자신의 손을 본다)
장봉실의 손에서 뚝..뚝, 피가 흐른다. 떨어져 내린 흰 드레스
천에 피가 번져간다. 차연, 옆에 있는 천을 가져다 장봉실의
손을 감싸 쥔다.
차연: (방육성 보고) 뭐해요!! 얼른, 차요! 병원 가야죠!!
방육성: 어! 어! 알았어!! (허둥지둥, 뛰어 나간다)
씬21 앙상블, 앞(저녁)
빈의 차 멀리 주차되어 있다. 빈, 더미가 준 선물 상자를 들고 걸어온다.
장봉실의 차가 대기해 있고, 앙상블 문 열리면서, 장봉실과 방육성, 차연,
나온다. 장봉실의 손 천으로 싸매져 있지만, 피가 번져 나온다.
빈: ! (본다)
장봉실: ..(멈춰 서서 아들을 본다)
차연: (따라서 보고) 빈아!! 잘 왔다!! 얼른, 병원 가자!!
선생님 많이 다치셨어!! 가위에 찔리셨다!
빈: ..(장봉실의 손을 본다)
방육성: (빈에게) 뭐하냐! 임마! 얼른 안타고!
빈: (다가와서 힐긋 보고) 아프시겠는데요? 몇 바늘 꿰매야겠네..
장봉실: (아픈 시선으로 아들을 본다) 빈아..
빈: (시니컬한) 가위에 손 좀 찔린다구 죽나요.
마음을 찔려도 안 죽는데..
차연: 빈아, 너 무슨 말이 그래!
방육성: 보자보자 하니까! 이 놈이!
장봉실: 그만들 둬.
빈: 피 많이 나는데. 얼른 병원이나 모시고 가지 그래요.
빈, 돌아선다. 방육성,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다 차연과 함께,
장봉실을 차로 모신다. 이내, 차 출발한다.
빈, 돌아본다. 떠나는 차의 뒷 유리창으로 장봉실의 뒷모습이 보인다.
빈, 일순 아프게 보다, 무표정하게 표정 바꾼다.
씬22 빈의 방(저녁)
빈, 들어온다. 선물상자를 침대에 던진다.
빈, 수족관의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준다. 잠시, 물고기들을 바라보다
침대로 가, 털썩 주저앉는다.
빈, 더미가 준, 상자를 보다 북, 찢는다. 내복이 두 벌 들어있고,
그 위에 더미가 쓴 촌스러운 카드가 있다.
빈: (카드를 읽는다) 생일 축하해요. 이젠 한 살 더 먹은 거니까,
밀수 같은 거 하지 말구요. 건전하게 살면 좋겠어요.
빈, 카드를 한 손에 쥐고 그대로 눕는다. 누워서 카드를 높이 들고 본다.
빈: 한더미, 내가 건전하게 살면 뭐해줄 건데? ...
한 번 더 안아줄래?
씬23 동양 상회(저녁)
사장과 허군, 한숨을 푹푹- 쉬고 있다.
더미, 목에 수건 두르고 지게 들고 들어온다.
더미: 이거 갔다 올께요!!
사장: 됐다. 고마 쉬라. 오늘은 시마이 하자.
더미: 아녜요, 후딱 갔다올께요. 저, 힘 안 들어요.
허군: 누가 너 힘들까봐 그러냐! 주문 취소 됐어.
더미: ...(지게 내려놓고,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 닦는다)
사장: 이래, 파리만 날리 갖고 우짜야스까.. 점포가 참말로 망쪼가 들었나..
허군: (더미를 밉게 쳐다보며) 원래 사람 잘못 들어오면 망한다잖아요.
더미: .. 다른걸, 취급해 보면 안 될까요?
사장: 메리야스 가게가, 메리야스 말고...또 뭐가 있겠노.
더미: 여름엔 속옷 잘 안 입는데요. 런닝두 잘 안 입구.
젊은 사람들은 겨울 돼두 내복두 잘 안 입구.
사장: 그러니 매상이 자꾸 떨어진다 아이가.
더미: 겉에 입을 수 있는 거요. 런닝보다 두껍구, 색깔두 있구,
그림두 있구. 뭐 그런 것두 좋구요. (목에 수건보다)
응. 목 이렇게 올라오는 거요. 겨울엔 그런 거 입음
따뜻해서 좋구요.
허군: 누가 몰라! 폴라틸 어떻게 만드냐!! 뭔 기술루 만들어!
더미: ...그래요...? 그래두 만들면 좋을 텐데..
씬24 앙상블, 마당(밤)
차연, 학생들 취침 점고 한다.
연경과 상희, 피에르 방을 비롯한 학생들 각자 자신의 방 앞에 서 있다.
차연: 다들 들어가, 자. 원장님, 상태 안 좋으시니까..
소란스럽게 굴지 말구.
학생들: 네...
차연: ..난 병원에, 원장님한테 갔다 올테니까. 선생님들 없다구,
신난다, 밖에 나가 놀구, 이러다 들키면 쫓아낸다. 알았어?
학생들: 네. 다녀오세요..
차연, 문 쪽으로 간다. 연경과 상희, 피에르 방, 그 모습을 본다.
연경, 상희를 살짝 꼬집으면 상희, ‘알았어..’하면서 피에르 방과
함께 살금살금, 창고 쪽으로 간다.
씬25 앙상블, 창고(밤)
옷감을 넣어두는 곳이다. 상희와 피에르 방, 망가진 포터부인
드레스와 같은 감을 찾고 있다.
씬26 앙상블, 실습실 복도(밤)
더미, 가방 들고 눈치 보며 조심조심 걸어온다.
연경, 불쑥- 나타나서는 ‘왜 이제 오니!’
하면서 더미를 확- 당겨 끈다.
씬27 앙상블, 실습실 안(밤)
더미를 끌고 들어온 연경. 방에, 상희와 피에르 방이 기다리고 있고,
재단대 위에 포터부인과 똑같은 드레스 감이 놓여 있다.
연경: 자. 니 말대루 여기 똑같은 천 구했어.
더미: 와.. 잘됐네요! 못 구할까봐 걱정 됐는데! (만져보고) 감...좋다..
상희: (걱정스럽게 보다) 그니까... 너하구, 얘하구..원장님 드레슬
진짜루 만들겠다?
연경: 자신 있댔어. (더미에게) 그치?
더미: 자신 있는 건 아니구, 최선을 다해보는 거죠.
비슷하겐 할 수 있을 꺼에요.
피에르: 그냥..원장님 들어오시면 사실대루 이실직고 하는 게 어때?
상희: 그래. 무조건 잘못했다구, 석고대죌 하는 거야. 머리 풀구.
연경: 야아!! 나 진짜, 쫓겨나는 꼴 보구 싶어! 원장님, 선생님,
다들 기분 그렇구 그러신데. 그냥 넘어가시겠어!
더미: ..(본다)
연경: 오늘두...드레스 내놔라 그러실까봐..선생님들 피해다니느라구,
하루 종일 밥두 못 먹었는데.. 난, 얘가 콩으루 메주 쑨대두
일단 믿어 볼 꺼야..
더미: 원래 콩으루 메주 쑤는 게 맞아요. 기운내구요, 해보자구요.
더미, 가방에서 포터부인 드레스를 꺼낸다. 그 모습을 한심스럽게
보던 상희와 피에르 방.
상희: 우린 이제 손 뗄레. 옷감두 찾아다 줬으니까 이제 빼줘.
피에르: 연경 누나. 우리 우정은 여기까지다.
두 사람, 나간다. 연경, 입을 삐죽-거리며 흘겨본다.
‘치사한 것들..’
씬28 동 장소(시간경과)
옷감이 펼쳐져 있다. 그 위에, 드레스를 펴 놓고,
드레스 선을 따라 초크로,
그리는 더미. 그 모습을 인상 찌푸리며 보는 연경(Dis)
더미, 초크선 대로 가위로 자른다.
연경: 어머! 어머! 얘!, 이렇게 막 짤라두 되는 거니!! 이거 딱
요만큼 밖에 없는 거란 말야! 망치믄 어쩔라구!
이게 실크란 말야! 실크! 알아? 비단.
더미: 안 짜르구 그럼 옷을 어떻게 만들어요?
더미, 가위로 싹둑싹둑 자른다.
연경: (그 모습 보다) 아우..살 떨려..아우 미치겠다..
얼음물이라두..마셔야지..
연경, 밖으로 나간다.
더미, 안감을 재단하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가던, 연경이 후다닥- 뛰어 들어와 불을 톡, 꺼버린다.
캄캄해지는 실내.
더미: 왜 그래요?
연경: 숨어! 숨어, 숨어! 누가 오구 있어.
연경, 작업대 밑으로 더미를 끌고 들어가 숨는다.
연경: (소근거리는) 조용히 해.. 들키믄.. 난, 선생님
손에 죽구. 넌 내 손에 죽구.
더미: ..
발소리 나면서, 작업실에 들어오는 그림자.
불을 켠다. 더미, 고개를 살짝 빼고 보면 준희다.
준희, 걸어와 가방에서 장봉실의 옷을 만들 스케치와 감을 꺼낸다.
그러다 재단대 위에 놓인, 드레스를 본다. 하나는 만들어진 드레스고,
하나는 똑같은 감이다.
준희: (고개를 갸웃-거리며 드레스를 펴보면,
다리미 눌은 자국이 있다) !
연경, 내다 보다 ‘이제..죽었구나’ 싶어서 눈을 질근 감는다.
실수로, 작업대 아래 판에 머리를 부딪친다.
준희, 그 소리에 작업대 밑을 본다.
준희: 어머! (놀란다)
연경: ...안녕...하세요...흐흥..(어색하게 웃고)
더미: (고개 꾸벅하고,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준희씨?
준희: 거기서...뭐하는 거예요?
씬29 동 장소(시간경과)
더미와 연경, 준희 앞에 서 있다. 연경, 이미 준희에게
모든 걸 설명했다.
준희: 그러니까, 내일 대사 부인이 찾으루 오기 전까지
다 만들어야 한다?
더미: 안 그럼, 언니가 고향 내려가서 시집가든,
어디 버스 차장 같은 일 해야 된대요.
준희: (깔깔 소리 내 웃는다)
연경: 왜 웃어요?
준희: 미안, 미안. 딴 뜻 있어서 웃은 건 아니구요. 미안해요.
연경: 딴 뜻 없긴..비웃는 거지.(흘기고) 맘대루 해요.
원장님한테 꼬나 바치든지, 말든지.
준희: 내가 상관할 문제 아니네요. 내 일두 복잡한데요, 뭐.
나 신경 쓰지 말구, 하던 일 해요.
준희, 다른 작업대로 가려다가 ‘그거, 간단해 보여두..그렇게
쉽진 않을 거예요.’ 하고 간다.
더미: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준희씨.
준희: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어주는)
씬30 동영의 방(밤)
동영, ‘1951-53년 대구 8사단 노무자 현황’ 자료를 보고 있다.
마지막 장을 넘겨보던 동영, 우뚝 멈춰 선다. 뭔가 단서를 찾았다.
동영, 파일을 들고, 서둘러 책상으로 간다.
동영, 급히 전화번호 돌린다.
동영: 여보세요? 어, 선배. 나 동영입니다. 김동영. (사이)
미안해요, 밤늦게. 급한 일이라서. (사이)
형, 친구가 대구 경찰서에 있다고 했죠? (사이)
사람 한 명만 찾아줄래요?
동영, 파일을 보며 이야기 한다. (파일에 사진은 없다)
동영: 이름은 김판술. 남자죠. (사이) 1912년생이니까,
지금은 쉰여덟이네요. (사이)
51년도에, 대구 8사단에서 일했어요. (사이)
대구, 중구 장관동 16-34번지. 당시 주소에요. (사이)
부탁해요, 형. 내겐..너무 중요한 일이라서.
씬31 김홍석 장군의 집, 마당(밤)
동영, 바람을 쐬러 나왔다. 김홍석, 마당을 거닐고 있다.
동영: 안 주무셨어요?
김홍석: (본다) 응. 더워서. 올 여름은..아주 지독할 모양이다.
너도 더워서 잠 못 잔거냐?
동영: 아뇨. (보다) 생각보다 빨리 준흴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김홍석: 그래!
동영: 브라운씨가 뒤처리를 맡겼다던 한국인 노무자가 파악이 됐어요.
김홍석: 잘 됐구나. 준희가..살아만 있다면, 곧 만날 수 있겠구나..
동영: 살아 있습니다.
김홍석: ..글쎄다..살아 있다면, 고 사장을 찾아 왔겠지..
고사장이, 보통 사람도 아니구, 신문에. 뉴스에 그토록
자주 오르는 사람인데..왜 아버질 안 찾았겠니?
동영: 뭔가..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도.. 준흰,
어렸잖아요. 아버지.
김홍석: 흠..
동영: 갈수록 제 안에 뭔가 확신이 생겨요. 준희가, 살아있다.
어디선가 자신을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다...그런 확신요.
씬32 앙상블, 실습실 안(밤)
준희와 더미, 각각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연경, 아예 의자를 쭉- 붙여 놓고 정신없이 자고 있다.
준희, 잠시 일손을 멈추고 더미가 옷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다.
더미, 드레스 앞가슴 주름을 잡고 있다. 천을 작업대에 눕혀 놓고,
양손으로 주름을 잡는 더미.
준희: 건 드레이핑(입체재단) 해야 되는 거예요.
더미: 에?
준희: (잠시 생각하다, 더미에게로 걸어온다) 여기 드레이프
(가슴과 등 부분에 잡는 느슨한 물결무늬 주름)는요.
이렇게 눕혀 놓구 평면재단하면 안 돼요.
그럼, 진짜 사람이 입었을 땐 절대 생각했던
그 모양이 안 나와요.
더미: ..(뭔 말인가?)
준희: 손재주는 좋은데, 디자인은 꽝이구나? 개념이 없네?
더미: 헤헤..그냥, 대충 대충 눈짐작으로만 만들어 입었걸랑요.
준희: (웃고, 더미의 젖가슴에 두 손을 댄다)
더미: 어머! 왜 이러세요!
준희: 하하- (웃고, 얼른 손떼고) 이렇게, 사람은 가슴이
나왔잖아. 굴곡이 있잖아요.
더미: 예.
준희: 그니깐, (손으로 가슴, 엉덩이 부분 가리키며) 이런 데,
이런 데 드레이핑을 할 땐, 이렇게 평평하게 펼쳐 놓구
잡음 질감이 안살아. (마네킹을 보고) 이런데 입혀 놓구
잡아서, 고정해 놓고, 마무릴 해야 되는 거예요.
더미: 아아...그렇구나.
준희: 수고해요.
더미: 가세요?
준희: 난 가봐야죠, 집에.
더미: (준희의 손을 덥석 잡는다) 저 좀 도와주세요.
준희: 내가 도울 게 뭐 있나?
더미: 진짜, 진짜 실롄 거 아는데요. 아침까지 만들어야 되는데...
겁나요. 실수할까봐. 망치면..안되는데.. 심장이 콩닥콩닥
콩 뽁는 거 같에요. 도와주세요~네? 네?
준희: (더미를 가만 보고 있으니, 귀여워서 미소가 나온다)
씬33 고창회의 집, 앞(밤)
준희의 차, 멎는다. 준희와 더미, 내린다.
더미: (입을 쩍- 벌리고) 와아....와아..
준희: 입으로 날벌레 들어간다, 이제.
더미: 서울 와서 집 구경 많이 했는데요,
이렇게 좋은 집은 첨 봤어요!!
준희: 푸~ (웃고) 그럼 자주 와요. 한번 구경하는데,
십 원만 받을께요.
더미: 쫌 비싸다.. 헤헤!~(웃는)
씬34 고창회의 집, 거실(밤)
준희와 더미, 들어와 있다. 더미, 사방을 둘러보고 있다.
준희, 일하는 아줌마에게 이야기한다.
준희: 간식만 좀 갖다 주시구. 들어가 주무세요.
우린 작업실에 있을 테니까.
아줌마: 예. (인사하고 간다)
준희: (살짝 흘기고) 이십 원 받아야겠다. 일 하겠다구
따라와선, 집 구경만 하네?
더미: 구경을 안 할 수가 없다구요... 눈 돌아갈라 그래요.
준희: (웃고)
씬35 고창회의 집, 작업실(밤)
재봉틀 두 대. 마네킹. 준희가 만든 옷들, 스케치들.
(가능하면 오버로크 기계도 있고) 다림질 대도 있고.
잠시 쉴 수 있도록 티 테이블도 놓여있다.
준희: 여기서 일해요. 편하게. 하다 모르는 거 있음 물어 보구.
더미: 고마워요..너무 너무..너무 고마워서,
고맙단 말두 안 나올라 그래요.
준희: 됐어요. 나두 졸린데. 같이 하믄 안 졸리구 좋지 뭐.
얼른 해요. 아침까지 할려면 빠듯하잖아.
더미: 네~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옷감을 꺼낸다)
씬36 고창회의 집, 거실(밤)
고창회, 아줌마와 이야기하고 있다. 아줌마, 작업실에 들여갈
간식을 들고 있다. 케이크와 쥬스 정도.
고창회: (반가운) 우리 준희가 친구를 데려왔다구요!
아줌마: 예. 회장님.
고창회: 하하.. 참. 이거 처음 있는 일이네. 이리 줘요.
내가 가져다 줄 테니까.
고창회, 아줌마에게 쟁반을 받아 든다.
씬37 고창회의 집, 작업실(밤)
더미와 준희, 재봉질을 하고 있다.
(소리) 똑똑..
(고창회의 소리) 아빠다, 좀 들어간다.
간식 쟁반을 든 고창회,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들어온다.
준희: 아빠, 아직 안 주무셨어요?
고창회: 준희가~ 친구를 데려왔다는데 인사하구 자야지~
(쟁반을 테이블에 놓고)
더미: 어! (본다) 회장님!
고창회: (보고, 놀란다) 어!! 아가씬...
준희: (어리둥절해서, 아버지와 더미를 번갈아 본다)
더미: 네, 저에요! 저! 태을방직에 취직하루 갔던 한더미요!
준희: (더미를 휙- 돌아본다)
고창회: 고향에 안내려갔네?
더미: 네! 저, 취직했어요! 회장님 회사 들어가기 전까지만요.
동양 상회라구 메리야스 도매상에서 일해요!
고창회: 그렇게 됐구나. 아주 잘 됐네.
준희: 고향이...어딘데요...?
더미: 저어기. 무지 멀어요. 진도에서두 한참 배 타고 들어가야 해요.
맹골도.
준희: !! (얼굴에 핏기가 가신다)
고창회: 준희야? 왜 그러니?
준희: 아냐..아빠. 좀 피곤해서...세수..좀 할께요...
(휘청이듯 문 쪽으로)
씬38 준희의 방(밤)
문 열리고, 준희 들어온다.
준희, 불안하게 서성거린다.
준희: 맹골도... 한 더미....하하..(크게 숨을 몰아쉰다)
준희, 사이드 테이블의 동영 사진을 본다.
준희: 저 애였어요? 당신, 가슴에 담은 한더미가...
바로 저 애였어요?
준희, 쓰러지듯 침대에 털퍼덕- 앉는다.
씬39 동영의 방(밤)
동영, 서류를 정리한다.
책상 서랍의 서류 넣고 닫으려다 문득, 더미의 탄환을 본다.
동영, 탄환을 보며 더미를 생각한다.
(인서트) 12부, 서울에 온 더미를 발견한 동영.
명동 거리를 걸어가던 더미, 전화를 하던 더미.
동대문 동양상회로 들어가던 더미의 모습이 떠오른다.
동영: ..(탄환을 꺼내 손에 꽉- 쥔다)
씬40 고창회의 집, 작업실(새벽)
간식은 싹- 비워져 있다. 더미, 박음질을 다 끝냈다.
더미, 만족하듯 보고.. 온 몸으로 기지개 켠다.
문 열리고, 준희 들어온다.
더미: (입 크게 벌리고 하품하다, 얼른 입을 막는다)
준희: ..(물끄러미 더미를 본다)
더미: 세수하루 간다 그러군. 안와서 자는 줄 알았어요.
준희: 응.. 깜빡..잠이 들었네요.
더미: 보세요~ 저, 다 했어요. (옷을 펴 보이며)
어때요? 비슷해요?
준희: ..(복잡한 심정으로 더미를 본다)
더미: ..
준희: ..(본다)
더미: ..왜 그러세요...?
준희: ..
더미: 준희씨...
준희: 더미씨..너무 이쁘다. 사람이..참 맑구...밝네.
어쩜 그렇게 이쁘지? 나, 정말.. 자기가 마음에 드는데..
더미: 와~ 좋아라! 그럼 우리 친구할래요? 나두 준희씨가
너무 너무 좋거든요. 부자라서 그런 거 아니구요.
잘 갈쳐 주구 그래서 그런 것 만두 아니구요.
그냥, 준희씨가 좋아요. 첨 만났을 때부터 좋았어요.
준희: ..
더미: 친군..안될까요? 하긴..난, 준희씨한테 해줄 것두 없구..
내가 욕심이죠?
아구, 주책바가지..괜히 준희씨, 곤란하게 했다.
준희: .. (안타까운 표정으로 더미를 본다)
씬41 고창회의 집, 앞(아침)
준희, 더미를 배웅하고 있다.
준희: 미안해요. 데려다 줘야 되는데.
더미: 아니에요. 조기 내려가면 버스 타는 데 있잖아요.
어제 오면서 봤어요.
준희: 잘 가요.
더미: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우리..또 볼 수 있을까요?
친구 아니어두, 준희씨 보구 싶을 꺼 같애요.
준희: ..
더미: ..(난감하게 했구나. 더 조르지 않고) 나중에 봐요~~
더미, 돌아서 간다. 준희, 더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더미, 걸어가다 다시 돌아보고 ‘들어가세요~~’ 하면서 손을 흔든다.
준희, 그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씬42 앙상블 안
장봉실, 왼손에 붕대를 감고, 포터대사 부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차연, 안쪽에서 대사 부인의 드레스를 조심스럽게
양팔에 걸쳐 들고 나온다.
장봉실: (영어로) 제가 표현한 부인의 이메이지가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포터: (영어로) 나도 기대가 많이 돼요. 미스 장이 찾아낸
내 이미지가 정말 궁금하군요.
차연: 선생님, 여기.
포터: (일어난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영어로)
오우! 너무 멋지군요. 환타스틱해요!
장봉실: (미소 지으며 일어나) 피팅룸으로 안내해 드려.
차연: 네. (되지 않는, 영어로) 이리 오세요~
차연, 포터부인을 안내해 피팅 룸으로 가는데 미소 지으며 보던 장봉실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다.
장봉실: 차선생.
차연: 예?
장봉실: 그 드레스 이리 가져와봐.
차연: 예...(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장봉실, 차연의 팔에 걸쳐진 드레스를 두 손으로 내려 부채
펴듯 ?d- 내려서 펼쳐 본다. 꼼꼼히..살피는 장봉실.
차연과 포터부인,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장봉실을 본다.
차연: 왜..그러세요..? 선..생님..
장봉실: ! (미간에 주름을 잡는다)
씬43 장봉실의 방
장봉실, 훌쩍 훌쩍 우는 연경을 무서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 옆에, 차연과 방육성이 있다.
장봉실: (드레스를 연경 앞에 던진다) 누구 짓이니!! 누가 감히,
내 데자인을 훔쳤니!!
방육성: (장봉실이 던진 드레스를 집어 꼼꼼히 살펴본다)
장봉실: 저건 내가 데자인하고 가봉한 드레스가 아냐!!
대체 누구 짓이야!
연경: 흑흑.. (흐느껴 울기만 한다)
차연: 정말 연경이 니가 그랬어?
장봉실: (노엽다) 차연이, 넌 보구두 모르겠니! 그게 연경이 솜씨야!
저 아이가 감히, 저런 드레이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안감, 겉감을 저렇게 붙일 수가 있어!!
차연: 죄..송합니다..
장봉실: (위협적으로 연경의 앞에 한걸음 다가온다)
누구니! 누구냐니까!! 말해! 어서!
씬1 동대문, 시장 일각(밤)
이미 가게들 대부분 철시했다.
장봉실의 차가 도착해 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연경, 나와서 뒷좌석 문을 열면 장봉실과 차연이 내린다. 장봉실, 더미가 만든 드레스를 들고 있다.
장봉실: ..(시장 안을 흘깃 본다)
차연: (연경을 보며) 그 기집애가 일하는 데가, 여기 맞아?
연경: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저두...와보진..못했는데..말만 들었어요..방산시장 동양 상회라구..메리야스 파는 가게.
장봉실, 한쪽을 본다. 불 켜진 ‘동양 상회’ 간판이 보인다.
씬2 빈의 차 안(밤)
빈의 차가 질주하고 있다.
빈, 상희의 말을 생각하고 있다.
(상희의 소리) 원장님, 지금 대사 부인 옷 때문에 엄청 화 나셨어요!
연경이 데리구요, 더미씨한테 갔어요!
빈: ..(차의 속도를 올린다)
씬3 동양 상회, 안(밤)
더미, 접이식 작은 나무 사다리를 타고 선반에 메리야스를 정리하고 있다.
장봉실과 차연, 연경이 들어온다.
더미,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에 ‘어서오세요~’ 하면서 돌아보면
장봉실 일행이다.더미와 장봉실, 시선이 부딪친다. 더미, 한눈에
사태파악이 됐다.
더미: ..(발이 굳은 듯 그대로 사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봉실: ..(올려다보는)
차연: 뭘 보구 섰어! 얼른 안내려와!
더미, 난처한 표정으로 사다리에서 내려온다. 장봉실 앞에 서는 더미.
장봉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땀 닦는 수건을 목에 인부처럼
걸고 있는 더미를 ‘정..저 애가 내 드레스를 만들었을까..’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본다.
차연: (더미의 꼴을 보다) 꼬락서니 진짜 가관이다..
(연경에게) 얘가 그런 게 맞긴 해?
연경: (고개를 끄덕인다)
더미: ...죄송해요..
장봉실: (분노로 차갑다)
더미: (장봉실이 손에 든 드레스를 본다) 정말 죄송해요. 원장님이
아심..너무 속상하실 것 같구.. 야단맞는 것두 겁나구..
그냥 잘 넘어갔음 했어요. 잘되믄 다, 좋겠다구..생각했어요..
장봉실: (더미의 뺨을 사정없이 때린다)
더미: !
연경: 헉! (놀라고)
장봉실: 니가 원숭이니! (더미의 얼굴에 왼손에 들고 있던
드레스를 집어 던진다) 이런 건 원숭이나 하는 짓이야!!
알량한 손재주 하나 믿구, 감히 내 작품을 망가트려!!
더미: (얼굴에 뒤집어 씌워진 드레스를 내리는 동안)
장봉실: (대사 끊기지 않고) 그 흉측한 걸 포터부인이 입구 가실 뻔 했어!!
내 앙상블에서! 내 숍에서!! 이런 모조품이 나오다니!!
넌, 날 모욕했어!!
더미: ..(화가 나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일단 참는다)
잘못했습니다..
장봉실: 흉내나 낸다구, 그냥 넘어가질 줄 알았니!!
아무리 똑같이 만든다 해두 가짜는 가짠 거야!
다 잘 될 줄 알았다구!! 원숭이두 가르치면 너 정돈 할 수 있다!!
더미: (울컥하는) 전, 원숭이가 아니에요!!
장봉실: 뭐...?
차연: 어머..뭘 잘했다구! 어디서 선생님한테 소릴 지르구 대들어!
더미: 잘못한 건, 알아요. 미리 말씀 드리구, 야단 맞구,
허락 받았어야 됐는데, 네, 제가 잘못했어요. 맞아두 당연해요.
그치만 전, 장터에서 약 파는 원숭인 아니에요.
장봉실: 무지한 줄은 알았지만 무례하기까지 하구나!
장봉실, 노여움에 파르르- 떨면서 더미를 본다.
씬4 동양 상회, 앞(밤)
빈, 뛰어온다. 빈, 보면 열린 문 안으로 더미와 장봉실 일행이 보인다.
씬5 동양 상회, 안(밤)
더미: (드레스를 내보이며) 애초에 원장님이 하신 디자인입니다.
바느질은 누가 하든 상관없잖아요? 똑같은 천에, 똑같은 모양에.
애초에 망친 옷이랑 이거랑 뭐가 다른가요?
장봉실: 이런, 건방진 것!! (빈 장봉실 여사의 손을 잡는다.)
빈: (뛰어 들어온) 그만 하시죠!
사람들, 빈을 본다.
빈: 얜 앙상블 디자이너도, 여사님 제자도 아녜요!
맞을 이유가 없죠!
차연: 너 무슨 말이 그래? 선생님 이러시는 거 당연한 거지!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이야!
장봉실: ..(속상해서, 눈꼬리가 떨린다)
빈: 앙상블이 뭔지. 장봉실 여사님 옷이 그렇게 대단한 건지.
저 앤 아무 것도 몰라요. 세상 사람들이, 다 여사님 명성에,
여사님이 만든 옷에 껌뻑 가는 거 아니거든요.
차연: 빈아!!
장봉실: ..그만..가자. 더..이상 아무 말두 하고 싶지 않다..
장봉실, 돌아서려는데 더미, 장봉실의 옷을 잡는다. 장봉실, 돌아본다.
더미: 얘기해 주세요. 그냥, 가심 저 너무 궁금해서 환장할 거예요.
때리신 건 괜찮은데요. 뭐가 틀린 진 얘기해 주구 가세요.
장봉실: ..
차연: 뭐 이런 게 다 있어! 정말! (장봉실 옷 잡은 더미 팔 떨쳐내고)
운 좋은 줄 알고 그만 입 다물어!
빈: (더미 팔 잡고) 그만해.
더미: (빈의 손 밀쳐내고) 나, 정말 이율 모르면 궁금해서 돌아버릴까
봐 그래요. (장봉실을 보고) 드레슨, 제가 물어 드릴께요.
월급 받아서, 제가 꼭, 드레스 값 물어 드릴께요.
연경: (기어 들어가는)...너가...못 물어...니..일년 치..월급 다
합해두..그 드레스..값 될까 말까..야.
더미: (장봉실에게, 드레스를 내보이며) 제가 만든 거랑..원래
거랑 뭐가 다른 건가요? (절박하게 잡고) 제발..말씀해 주세요..
장봉실: (손을 털어내고 본다)
더미: 선생님, 화내시는 거..가짜라는 거..어찌어찌 애써보면..
머리룬 이해가 될 것 같은데..마음으론..이해가 안돼요..
똑같은 건데..원래 선생님 디자인인데..뭐가 틀린가요..
장봉실: 거긴 마음이 없으니까. 장봉실의 혼이 담기지 않았으니까.
더미: ! 혼..요...?
장봉실: 세상엔 수많은 모작들이 있지. 가짜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니까.
선하나 틀리지 않고 원작을 베낀다고 베껴두,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게 있어.
더미: 그게..뭔가요?
장봉실: 옷에 대한 나의 생각. 예술에 대한 나의 생각.
포터부인을 바라보는 나의 느낌. 내 재단사 방선생은..
그걸 표현한 옷을 만들었고. 너는, 그냥 원숭이처럼
바느질만 했을 뿐이야.
더미: ..
장봉실, 더미를 강한 시선으로 한 번 바라보다 나간다.
차연과 연경, 따라 나간다. 차연, 나가다가 더미가 들고 있는
드레스를 휙- 낚아채서 들고 나간다.
더미, 떠나는 장봉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한다.
씬7 김홍석 장군의 집, 주방(아침)
식탁에 토스트와 우유, 커피가 놓여 있다.
준희와 동영, 마주 앉아있다.
동영, 빵을 먹는데.. 준희, 손도 안대고, 그런 동영을 빤히 본다.
동영: ..
준희: ..(눈도 안 깜박이고 보는)
동영: (그 시선에 담긴 물음에 답해야 한다고 느낀다.
빵 내려놓고) 그래..맞아.
준희: ..
동영: 내 마음 속에 있다는 여자...더미야. 한 더미.
준희: ! (짐작은 했지만)
씬7 동양 상회, 앞(밤)
빈, 덧문을 떼어 가게 문을 닫고 있다.
빈, 얼굴에 흐른 땀을 손으로 닦고 쪽문으로 들어간다.
씬8 동양 상회, 안(밤)
더미, 쭈그리고 의자 위에 올라앉아 있다.
더미, 고개를 푹..파묻고 기가 죽어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빈.
빈: 여사님 대신, 사과할께. 말했잖아. 여사님한텐
그게 인생의 다라고 자기 인생을 망쳤는데 따귀 정도면,
괜찮은 거야. 이해해라, 네가.
더미: ..
빈: 술 사줄까? 술 사주면 기분 풀래?
더미: .. 싫어요..
빈: 안아줄까? 그럼.
더미: 내가 지금 농담할 기분이에요!! (노려본다)
빈: (웃고) 기분 엿 같지? 이럴 땐, 꼭지가 돌게 한 잔 마시고,
잊어버리는 거야. 나가자. 죽이는 데 데려다 줄께.
더미: 죽이는 데 안 데려다 줘두,
지금 나 죽고 싶은 심정이에요. (일어난다)
씬9 더미의 골방(밤)
더미, 들어와 수건을 챙긴다. 빈, 따라 들어온다.
빈, 먹을 것을 사왔다.
더미: 안 갔어요? 여긴 왜 들어와요!
빈: (자리에 앉아, 봉지에서 빵하고, 초콜릿을 꺼낸다)
기분 나쁠 때, 여자들은 단 거 먹는다면서?
가게들 다 닫아서, 별 게 없다. 먹어봐.
더미: 난 기분 나쁘든 좋든 밥만 먹어요. 어쨌든 고마워요.
내일 먹을께요. 가요, 그만.
빈: 나, 안갈 건데. 여??을 건데. 니 옆에 있을 꺼야.
(한쪽에 깔아놓은 이불에 벌렁 눕는다)
더미: 빈씨!!
빈: 우리 연애하기로 했잖아.
더미: 하아..(숨을 몰아쉰다)
빈: 어~숨소리가 거친데? (일어나 앉아, 농담처럼)
왜? 나하구 둘이 있으니까 긴장 되냐? 가슴 떨려?
더미: 나...사랑하는 사람 있어요.
빈: (수정해준다) 사랑한다고 착각한 사람 있었어요.
더미: 그 사람 찾으려고, 여기까지 왔어요.
빈: 그 사람 잊고, 빈이씰 만나려고 여기까지 왔어요.
더미: 빈씨..이러지 마. 그..사람은요..나한테 전부예요..
빈: 널, 두구 떠난 놈이다. 전부로 삼지 마.
네, 일부도 아까워. 널 놀린 거야.
더미: 그 사람은요.. 나한테 분신 같은 걸 가져갔어요.
빈: 그게 뭔데!
더미: 어렸을 때부터 내 손에서 한 번두 안 놓은 거.
날 놀린 거라면, 그걸..가져가진 않았을 꺼야.
빈: 너한테 쇼했나 보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거라도 가져가면,
니가 그놈 덜 원망할 꺼라 생각했나? 비싼 거냐?
더미: 매일 생각해. 아저씨한테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거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렇게 날 버릴 사람이 아니다.
빈: ..(일어난다) 재미없다.
더미: 화...났어요?
빈: 그 정도로 화는 무슨. 그냥, 더 있다간 널 안고 싶어질 것 같아서.
(씨익-웃는다)
더미: 으이 씨!! 진짜아!!!
더미, 베게를 빈에게 던진다.
빈: (진지하게 본다) 과거에..니가 누굴 사랑했든.
현재, 지금 니 마음에 누가 들어있든 관심 없어.
니 가슴에 안길 수 있는 남잔 앞으로 장 빈. 나 하날 테니까.
빈, 더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나간다.
더미: ..
씬9 김홍석 장군의 집, 주방(아침)
준희: (고개 저으며) 사랑 아냐. 건 그냥 일탈이야.
동영: ..
준희: 몸두 마음두 완전히 지쳐버린 동영씨. 고립되구 막막한 섬.
아무 것도 모르는 건강한 섬 처녀. 그냥 상황이 그랬던 거야.
한더미 아니라 딴 여자라두 누구라도 그 때,
동영씬 사랑이라 착각했을 거야.
동영: ..
준희: 건.. 그냥..뭐랄까..(벌떡 일어나며)
그래! 한 여름 밤 꿈같은 거예요!
동영: 꿈이라면 평생 깨고 싶지 않았다.
준희: ..(서성거리다, 멈춰 서서 돌아본다)
한 더미를 그렇게 사랑했다구?
평생,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동영: 각하가 아니었다면.. 내가, 김홍석 장군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더미를...두고 오는 일은 없었을 거야.
준희: (노려본다) 그래. 그럼, 실컷 사랑해.
(동영을 쳐다보다, 휙- 몸 돌려, 나간다)
씬10 김홍석 장군의 집, 거실(아침)
준희, 나온다. 따라 나온 동영, 준희의 팔목을 잡는다.
준희: (손 털어내고, 매섭게 쳐다본다) 왜! 실컷 사랑하라잖아!
(동영의 가슴을 누르며) 거기 담아 놓고, 죽도록 사랑해!
누가 뭐래!
동영: 나한테 여자가 되려구 하지 마.. 준희 너도, 나도 힘들어져.
동영: 준희야.
준희: 자기 엄마, 얼굴두 세월 지나면. 생각 안 나는 게 현실이야.
동영: 더민, 내게 잊혀지는 사람이 아냐.
준희: 기다릴께. 당신이 실컷 자구 일어날 때까지.
<13회 내용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