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해 보시지요 남궁대협!"
손자겸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궁혁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런 자리를 만들어 일사천리로 제왕성과의 결전을 획책하 는 것은 양패구상으로 백도무림의 힘을 꺾자는 것이 주 의도이 지만 아울러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비밀의 힘을 끌어내는 목적도 있었다. 어쩌면 남궁혁 저자로 인해 그 보이지 않는 세력 의 정체를 좀더 빨리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손자겸의 가슴 이 고동쳤다
"아무리 우리가 한 뜻으로 제왕성을 친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승 리할 수는 없는게 아니겠소?"
남궁혁이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손자겸을 바라보았다
"새삼스럽게 그건 왜 묻는 것이오?"
손자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손 장문인 께서는 제왕성과의 결전 후 우리 정파무림의 피해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시오?"
"정말 답답하시구려! 지금 우리가 피해정도를 따지자고 모인 것 이 아니지 않소? 모두 하나가 되어 어떤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치욕을 씻자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오?"
손자겸이 언성을 높였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남궁혁이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얘기했고 그와 반대로 손자겸의 코에서는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뭐가 어떻다는 거요?"
"우리 백도무림이 아무리 혼연일체로 싸워 제왕성을 꺾는다 하 더라도 우리의 힘 역시 칠할 이상을 잃고 말 것이...."
쾅-
남궁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낙월봉이 탁자를 두드리며 고함을 쳤다
"치욕의 사실을 몰랐으면 모르되 만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 된 이상 어떤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싸워야지요. 그래서 잃어버린 백 도의 혼을 되살려야지요!"
낙월봉의 기세가 하도 거세고 원칙적으로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에 아무도 대꾸하지 못하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 다
"그럼 묻겠소! 정파무림의 힘이 채 삼 할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혈영이 뒤통수를 친다면 어떻게 하겠소?"
남궁혁의 눈빛이 비수처럼 손자겸을 쏘아갔고 손자겸, 낙월봉, 등평부 등은 놀란 눈으로 벌떡 일어섰다
"혀. 혈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남궁대협!"
결코 이곳에서 거론되어서는 안될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리 였다
"혈영...?"
"무슨 말씀이시오?"
잠시 후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실내에 가득 찼다. 반면 손자겸등은 속으로는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지만 얼 른 표정을 지우고 서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조금 더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처음의 계 획대로 밀고 나가자는 무언의 신호였다. 그 신호를 교환한 혈영 의 간자들은 보일 듯 말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남궁혁을 바라 보았다
'저자는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혈영이란 이름은 자신들 조직에서도 수뇌급 소수만이 부르고 있 는 이름이었다. 그 보다 더 하위의 인원들은 자신이 몸담은 조직 이 혈영이란 것조차 알지 못한다.
'때로는 필요 없이 많이 아는 것이 명을 재촉할 수도 있는 법이 지!'
손자겸의 눈빛에 서서히 살기가 어렸다
"혈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지 않았소?"
"무슨 얘긴지는 손 장문인이 더 잘 알지 않소!"
남궁혁의 반문에 손자겸의 눈빛이 번뜩였지만 다시 평정을 되찾 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남궁대협! 무슨 농담을 그리 심하게 하시오! 그 동안 너무 댁에서만 계셔서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닌지요?"
"후후 그랬지요. 당신들이 천하 대란의 음모를 꾸미는 동안 날 그 음모에 희생되어 폐인이 되어 갔지"
낭궁혁의 얼굴에 비통함이 어렸다
"남궁대협!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오? 차분히 설명해 보시오! 혈 영은 무엇이고 또 천하대란의 음모는 무엇이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의 관심이 대번에 남궁혁에게 로 모여졌다. 남궁혁의 표정이 비분으로 얼룩졌고 손자겸등의 표정이 칼날처 럼 차가워졌다
"후후후!"
손자겸이 흉소를 터뜨렸다
"이렇게 된 이상 살인멸구 할 수밖에!"
쨍-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손자겸이 칼을 꺼내 들었다. 그 것을 신호로 등평부, 국상진, 낙월봉 등도 칼을 뽑았다
"대체 이게 무슨 짓들이오?"
계속된 돌발 상황에 완전히 얼이 빠진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다. 각 파를 대신하여 나온 자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칼부림이 일어 난다는 일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런 일은 곧 무림 대란으 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경악한 시선으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등평부가 기합과 함께 남궁혁을 찔러갔다
"죽엇-"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신속하고 독랄한 칼이 남궁혁의 가슴을 파 고들었다
"허억-"
놀람의 비명성이 여러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왔고 낙월봉의 칼이 남궁혁의 가슴을 뚫으려는 찰나 바닥을 걷어찬 남궁혁이 앉아있 던 의자와 함께 주르륵 뒤로 물러났다. 실로 눈 깜짝할 새 벌어 진 공격이었고 신속한 대응이었다
"모두 밖으로 피하시오! 저들은 혈영의 간자들이오!"
밀려나던 자세 그대로 철판교(鐵板橋)의 수법으로 상체를 눕혀 낙월봉의 칼을 뒤로 흘린 남궁혁이 반탄력으로 튀어 오르며 좌 중을 향해 소리쳤다. 그 소리를 신호로 낙월봉, 국상진 등이 모 인 사람 모두를 죽이겠다는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크윽-"
누군가가 답답한 음성을 터뜨렸고 그와 동시에 사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급히 몸을 날렸다
"그래봤자 독 안에 든 쥐지!"
손자겸이 느긋이 중얼거리며 밖으로 걸어나왔다
"이게 무슨 짓이오! 손장문인?"
사찰 밖으로 뛰어나온 사람들이 주변 숲 속을 가득 메운 포위망 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신형을 돌려 천천히 걸어 나오 는 손자겸 일행을 보고 소리쳤다
언제 그렇게 많은 인원들이 다가 들었는지 사찰 주변 사방팔방 으로 물샐 틈 없는 포위망이 쳐져 있었다. 그 포위망을 본 사람 들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그들의 신위에 음 하고 무거운 신 음을 토했다
어림잡아 수 십 명이 넘는 인원이었다 그 많은 인원들이 무림의 절정 고수들의 모임인 무림명숙 비밀 회동장소를 아무런 기색 없이 둘러쌌다. 그리고 숲의 일부인냥 숲에 동화되어 서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남궁혁과 등평부 등의 느닷없는 행동에 뭔가 엄 청난 음모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온통 흉중에 가득한 채 몸을 날린 곳에 또 다시 맞닥뜨린 이런 상황은 아무리 각 문파를 대 표하는 명숙들이라 할지라도 큰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결국 정체를 드러냈군! 혈영의 간자!"
남궁혁이 독기 오른 표정으로 손자겸을 바라보았다 이곳으로 오기 전 아들 낭궁우현을 통해 혈영의 간자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너무도 엄청나고 놀라운 사실들에 한참동안 말을 잃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번 회동에서 어떻게든 혼란을 야기할 것이고 자신은 그것을 방해함과 동시에 혈영의 간자들을 밖으로 드러나 게 할 심산이었다. 자신의 뜻대로 혈영의 간자들을 스스로 드러 나게 했지만 저들이 자신들 모두를 죽일 암계까지 꾸미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대체 인간의 욕심은 어디가 그 끝이란 말인가!'
남궁혁이 내심 치를 떨었다 무당의 장문인인 손자겸, 공동의 호법 등평부, 화산의 장로인 낙 월봉, 철가장의 집사 국상진.... 모두들 오를 만큼 오른 사람들이 었고 이룰 만큼 이룬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현재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배반할 만큼 탐욕을 느끼게 하는 것이 또 있단 말인가!
천하제일인의 자리!
그것이 도대체 어디에 소용되는 것이기에 저렇게 광분하는 것일까? 남궁혁이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손자겸등을 쳐다보던 눈길을 허공으로 돌렸다
"어떻게 혈영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 까지 한날 한시에 제사밥을 얻어먹게 생겼군! 왠만 하면 곱게 보내 줄 수도 있었는데...."
등평부가 포위망에 갇혀 당황해 하고 있는 사람들을 시체를 쳐 다보듯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제왕성과의 전쟁을 획책하고 그것이 무위 로 돌아갔을 때는 계곡 속에 숨겨둔 혈영의 척살대를 불러 이곳 에 모인 사람들을 살해하고 그것을 제왕성의 소행으로 온 무림 에 소문을 퍼뜨려 천하대란을 일으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되도록 이면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고 회동에서 의견 일치를 이루고 마무리하려는 순간 남궁혁이 모든 것을 뒤집어 엎어 버렸다. 저자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 지만 이젠 단 한 사람도 살려 보낼 수 없다!
"잘 가시오!"
등평부가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석상처럼 서 있던 포위망이 서서히 좁혀졌다
"차앗-!"
한소리 외침과 함께 포위망을 좁혀오던 사내 중 하나가 풀쩍 뛰 어올랐다 그리고 바위라도 부술 듯 점창의 장로인 태성목(台星 目)의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감히!"
태성목이 수염을 부르르 떨며 들고 있던 검을 마주해 갔다 떨어져 내리던 사내의 칼과 태성목의 칼이 마주하는 순간 사내 의 칼이 어지럽게 변화를 일으켰다
"어헉-"
태성목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저렇게 허공으로 도약하여 수직으로 내리찍는 칼은 중검(重劍) 일 수밖에 없었다. 떨어져 내리는 힘과 자신의 내력을 고스란히 칼에 모아 단번에 상대를 제압하려는 무지막지한 검격 이었다.
그런 칼에는 변초나 기교가 섞일 수 없었다. 허공에 뜬 상태로 변초를 구사하다가는 자칫 중심을 잃고 나뒹굴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그러기에 태성목은 떨어져 내리는 칼을 무겁게 쳐 올리며 내력 으로 부딪혀 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온 힘을 집중하는 찰나 사내의 칼은 거짓말처럼 방향을 바꾸고 가슴을 향해 찔러 들었 다.
가까스로 상체를 틀어 몸을 피했으나 가슴에서 옆구리까지의 옷 이 길게 잘려져 있었다
"이럴 수가!"
태성목의 입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육십 평생을 칼로 살아온 자신이 이름한번 듣지 못한 젊은이의 단 한칼에 이런 낭패를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비록 내공이야 어떠하던 방금 마주한 젊은이의 칼은 검초 만으 로 따진다면 경악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칼을 휘두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무서운 일이다!'
방금 전 칼을 나눈 저 젊은이만이 저런 칼을 휘두른다면 큰 문 제가 아니겠지만 같이 서 있는 무리들 전원이 저런 수준이라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당장은 자신이나 여기 모인 사 람들이 살아 나갈 수 없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무림의 안위가 심히 걱정되는 것이다
"하앗-"
태성목의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졌을 즈음 뒤쪽 한 곳에서 큰 기 합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수평으로 누인 칼을 바람을 가르듯이 휘둘러왔다 |
첫댓글 고맙습니다
ㅎ늘 감사 히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