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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가의도
옛날 중국의 가의라는 사람이 이 섬에 피신하여 살았으므로 가의도라고 하였다는 설과 이 섬이 신진도에서 볼 때 서쪽의 가장자리에 있어 가의섬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장벌 해수욕장은 기암괴석이 많으며 경관이 아름답다.
가의도는 안흥 신진항으로부터 5km 정도 떨어져 있어 배를 타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안흥-신진도 간을 연결하는 신진대교가 완공되면서 가의도는 육지와 더 가까워졌다. 40명이 정원인 여객선을 타고 가다 보면 가의도 주변에 펼쳐진 무인도들을 볼 수 있다. 죽도, 부엌도, 목개도, 정족도, 사자바위, 독립문바위, 거북바위 등이 그것이다. 이 무수한 무인도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여행객들은 가슴이 벅차오른다. 사자처럼 생긴 사자바위는 웅크린 채 포효하는 듯 서 있다. 중국을 향하여 있는 이 사자 형상은 우리 바다를 지키는 모습이다.배가 출발한 지 30분 후 가의도의 북항에 닿았다. 선착장은 다른 섬과 비교해 볼 때 짧아도 너무 짧았다. 북항의 방파제는 북풍의 거센 파도와 성난 파도를 힘겹게 막아 내고 있다.4륜오토바이가 있는 선착장으로 여러 사람들이 내려와 배를 타고 가기도 하고 물건을 가지러 나오기도 한다. 선착장 옆에는 작은 몽돌해변이 하나 있는데 어찌나 맑은지 작은 물고기들의 노는 모습이 선명하다. 마을 입구 길은 약간의 경사로인데 옆으로는 대부분 마늘밭이다. 간판을 보니 '육쪽마늘의 원산지 가의도'라고 쓰여 있다. 이 섬의 마늘은 맛과 향이 좋은 6쪽마늘로 품종이 우수하다.
선착장과의 거리가 유난히 짧은 가의도길을 따라 올라가면 '굿두말'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마을 중앙에는 큰 은행나무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다. 관광지도에는 '노거수(老巨樹)'라고 표기되어 있다. 지난 1996년 5월 태안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높이 40m, 둘레 7m의 이 나무의 수령은 450년으로 추정되었다 한다. 그 밑으로 주황색과 원색의 지붕을 이고 있는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굿두말 바로 옆 마을인 '큰말'은 동쪽으로 이어진다.
큰말 위를 지나가면 마을 아래 조그만 해변이 보이는데 큰말장벌해수욕장이라 부른다. 해안가의 암벽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다. 신장벌을 향해 동쪽으로 가는데 활처럼 휘어진 아름다운 해안선이 계속 펼쳐진다.
가의도 북동쪽 산등성이를 타고 가면 가의도 신장벌 해수욕장이 나온다. 이 해수욕장은 생각하였던 것보다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래알은 인절미의 떡가루만큼이나 고왔다. 해수욕장 앞 해변에는 사자바위, 독립문바위('아기업은 코끼리바위'라고도 함)와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다. 수정바위는 홍도나 백도처럼 경관이 아름답다.
보는 각도에 따라 독립문을 닮았다고도 하고, 코끼리바위라 부르기도 하는 이 바위.다른 이름으로는 '마귀할멈바위'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오래전에 마귀할멈이 조류가 거세기로 악명 높은 부근의 '간장목'을 건너다 속곳이 젖자 홧김에 소변을 봤는데, 그때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는 얘기이다.독립문바위 우편에 나란히 붙어 있는 '돛단바위'가 있다. 바위의 생김새가 돛을 단 풍선을 닮아서라고 한다. 수평선 너머로 고기를 잡으려고 달려가는 어선과 고기를 잡아서 돌아오는 작은 어선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가의도해수욕장은 가의도가 '서해의 하와이'라는 별명을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가의도의 '흔장벌해수욕장' 좌우로 희한한 괴석들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서 있다.지도에는 '신장벌'이라 되어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흔장벌'이라 부른다. 몽돌이 많은 이곳을 사투리로 '장부리'라고 부르는데, 그 앞에 '흐옇다'는 뜻의 '흔'이 붙어 이뤄진 지명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아서 그런지 때 묻지 않는 자연 그대로이다. 신장벌 해변의 고운 모래가 300m 정도 되는데 파도를 벗 삼아 천천히 걷기 좋은 곳이다. 섬을 한 바퀴 둘러보기 위해 해수욕장에서 나왔다. 경사가 심한 동쪽 방면만 빼고 세 방향에서 섬을 돌아본다. 굿두말에서 조그만 재를 넘어가면 남항이 나온다. 가의도의 남쪽항 왼편 바다 위에 떠 있는 목개도와 정족도의 무인도가 서 있다. 남항 항구 앞의 솔섬바위, 방파제 바로 앞에 서 있는 멋진 모습이 솔섬의 특징이다. 솔섬은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다.
솔섬 정상 부근 양쪽에서 자라고 있는 두 개의 소나무가 매우 인상적이다. 파도와 해풍을 맞으면서 그래도 끈질기게 견뎌내고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남항 남쪽에는 손바닥만 한 몽돌해변에 배들이 올라와 있다. 파도가 거세 배를 보호하기 위해 미리 안전하게 육지로 올려놓았다가 필요할 때 바다에 띄워서 사용한다.몽돌해변에서 운동화를 벗어 던지고 지압을 겸해서 몽돌 위를 거닐어 본다. 발밑에 밟히면서 나는 소리는 작은 몽돌들의 외침이었다. 탁 트인 서해의 특성상 늘 바다는 거칠어서 남항도 연이어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남항은 불과 3-4가구가 사는 곳으로 본 마을과 약간 떨어져 있다. 겨울에는 남향이지만 태풍이 오면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곳이다. 겨울에 북풍이 불면 북항에 배를 대지 못하고 남항으로 온다. 파도가 거세어 방파제가 부서진 상태였다. 남항은 북항과 작은 고개를 사이에 두고 있다. 여기다 객선을 대면 주민들은 매우 불편해 한다.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약간 높은 산길을 넘어와 짐과 사람을 싣고 올라간다. 다시 여객선을 타기 위하여 북항으로 향했다. 이제 막배가 올 시간이 되어 그런지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가의도는 육지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교통이 불편한 섬이다. 서해의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불면 배가 출항하지 못한다. 또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기 때문에 정기여객선의 혜택을 보지 못하다가 늦게야 국가지정항로가 되었다.
가의도는 논이 한 평도 없다. 섬이 적고 교통의 불편 때문에 신진도가 연륙되기 이전에는 안흥으로 이사를 많이 갔다. 60-70년대 가의도 사람들은 육지 나들이를 위해 마을에서 1년 계약으로 뱃사공을 정해놓고 나룻배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 당시 서해안의 빠른 조류 때문에 물때에 맞추어 노를 저어서 다녀야만 했다. 바람이 불거나 안개가 끼는 날이면 몇 날이고 안흥에서 기다려야 했다. 특히 겨울에 고생이 많아 아예 안흥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정말 섬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교통수단인 나룻배에는 숱한 사연들이 있다. 많은 이야기 소재를 만들어 줬던 돛단배가 통통배로 바뀌고 지금은 낙도보조항로로 배정된 여객선이 섬 주민들의 발 노릇을 하고 있다. 배를 타고 떠나가는 자식을 보내며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시던 섬 어머니들, 그리고 명절 같은 날에는 행여나 뭍으로 떠났던 자식들이 오지나 않을까 해서 종일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모습을 어렵잖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연락선으로 인한 수많은 사연들은 섬사람들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산물이다. 이제 그 배는 수많은 사건과 추억을 간직한 채 안흥항에서 신진항으로 옮겨와서 하루에 세 번씩 오가면서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가의도에는 36가구 72명의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가의도 주민들의 성씨 분포가 다소 특이해 보였다. 중국의 가의(賈誼)란 사람이 이 섬에 피신해 왔다가 가(賈)씨는 곧 떠나고 그를 수행했던 주(朱)씨만이 남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것처럼 섬에는 가씨 성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고, 주씨, 김씨, 고씨만이 13대째 살고 있었다.
유서 깊은 섬 마을답게 지금도 해마다 당제를 지내고 있다. 가의도는 90%가 산지이기 때문에 경작지가 부족하여 농사는 어렵고, 멸치잡이와 해삼, 전복 양식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또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랫녘 사람들이 멸치잡이를 하면서 그 일을 도와 돈을 벌기도 했으나 지금은 멸치공장을 하던 이가 육지로 이사를 가면서 고기잡이와 홍합 채취 외에는 다른 소득 수단이 없어졌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섬과 바다가 지난 2007년 12월 7일,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로 서남해안의 청청해역, 천혜의 황금어장이 검게 물들게 되었다. 이 사고로 충남은 물론 전북과 전남 지방, 심지어 제주도에 속한 추자도까지 타르가 밀려갔다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겠다. 서남해 곳곳의 리아스식 해안의 섬과 후미진 절벽 바위틈엔 많은 기름이 남아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했었다.
그 당시 자원봉사자들이 찾기 힘든 섬 지역을 방제하는 것은 멀고 험난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해안선과 해수욕장들이 모두 제 모습을 찾아서 지금은 피서객이 마음 놓고 피서를 즐긴다. 자연의 치유 능력과 복원은 놀랍기만 하다. 섬사람들이 겪은 원유 유출 사고는 육지보다 더 심각하다. 섬사람들에게는 바다가 논이고 밭이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에게 바다 오염은 살 길이 막힌다는 의미이다. 주민들의 생계 수단은 바다에서 홍합과 미역, 톳을 따고 물고기를 잡는 것인데 기름 유출 등의 사고가 생기면 손을 놓아야 한다. 이제 다 잊힌 이야기이지만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심 산
가의도선착장
솔섬
독립문바위
가마우지
사자바위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