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개를 때려잡는 법(法) 1 한정낭낭은 분노했다. 그녀는 정녕 사상 최대로 대노했다. 그녀가 오늘처럼 분노한 것은, 아마도 그녀의 부친이 죽은 이래 처음일 것이다. "크으, 불영. 감히 그 발칙한 것이 날 배반하고 도망치다니……." 한정낭낭은 정녕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의 하얀 머리칼은 허공까지 붕 치솟았다. 미루어 그녀가 얼마만큼 분노했는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애절령. 그는 허탈하게 누워 한정낭낭을 올려다보며 있었다. "낭낭! 후배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부디 분노를 푸십시오." 애절령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하되 한정낭낭은 한눈에 애절령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일신내공과 마지막 한숨의 진기마저 빼앗겼다.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 고작 그까짓 계집을 살리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내주다니…….' 그녀는 다분히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한정낭낭은 애절령에 대해 연민의 정을 감출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 모든 불행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그녀가 아니던가. '내가 지닌 영단과 힘으로는 저 아이의 상실된 내공 가운데 일성(一成) 이상을 되살리지 못한다.' 한정낭낭은 애절령의 손을 움켜쥐었다. 너무도 힘이 없어 아예 차갑게 느껴질 정도의 손이다. 이어, 괴로운 탄식성이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아아……, 아이야. 내가 너에게 큰 죄를 지었구나. 널 정녕 천하제일인으로 키워주고자 하였거늘, 제자 하나를 잘못 두어 오히려 널 망치다니……." 한정낭낭은 정녕 괴로워하는 표정이었다. 무척 괴로운 듯 그녀는 애절령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얼마 후, 그녀는 괴로움을 이기려는 듯 품안으로 손을 뻗쳤다. 그녀는 품에 안고 있던 비파(琵琶)를 튕겨가기 시작했다. 띠잉! 띠이― 잉! 격렬한 비파음이 흘러나왔다. 섬섬옥수가 튕겨내는 비파음은 괴로운 그녀의 심사를 나타내는 듯 처량하고 구슬펐다. 일컬어 낙조만강월곡(落照滿江月曲). 그렇게 한참동안 비파를 튕길 무렵이었다. 돌연 밖에서 시녀 한 명이 다급하게 달려 들어왔다. "낭낭이시여, 급보입니다." 시녀는 다급하게 한정낭낭에게 보고하는데, 보고의 내용인즉, 유불영이 동쪽의 연화봉(蓮花峯)으로 사라져 간 것을 본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찰나 한정낭낭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피어났다. "불영, 고연 년! 감히 본녀를 배반하고 도망가다니……. 더욱이 마검파천황까지 훔쳐 달아나다니…… 좋아, 날 배반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 주겠다." 한정낭낭이 애절령을 돌아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빛은 자애로운 빛으로 화했다. 항상 냉정한 눈빛이다가도 애절령을 보는 순간 인자하게 화해 버리는 것이다. "아이야, 난 불영을 추적하러 갈 것이다. 그 동안 몸조리 잘하고 있거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돌아와서 널 원 상태대로 치료시켜 주마." 흡사 자식을 보는 듯한 모정(母情)의 눈빛이랄까? 그것은 한정낭낭이 진정 애절령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애절령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시고 다녀오도록 하세요. 후배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한정낭낭은 그윽히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도망간 유불영의 뒤를 추적하려는 것이다. 밖으로 나간 그녀는 시녀들을 불러 애절령을 잘 간호하라는 당부를 한 후, 급히 유불영을 추적해 갔다. 연후, 애절령은 다시 혼미한 의식으로 빠져들었다. 2 혼절속으로 빠져들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 과정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어느 순간, 애절령은 문득 정신이 맑아져 옴을 느꼈다. 전신에 힘은 하나도 없으되, 차츰 맑은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 그는 눈을 떠서 주위를 둘러봤다. 며칠이나 지난 것일까? 자신을 병간하던 시녀들의 모습도 오늘 따라 보이지 않았다. 한정낭낭은 유불영을 추적하러 간 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애절령은 전신으로 힘을 일으켜 보았다. 겨우 손발이나 간신히 움직일 수 있을 정도……. 애절령은 정녕 일푼무공도 일으킬 수 없는 완벽한 폐인이 된 것이다. 일순 그는 아득한 절망과 좌절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목표는 천하제일인 뇌정륭을 꺾는 것이었다. 하되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아아, 이제는 모두 틀려버린 것인가? 나의 꿈도, 승부도…….' 그러나 애절령은 특유의 투혼과 고집으로 좌절감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애써 태연하려 노력했다. '그래……, 어차피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으니 또다시 시작하면 그만…….' 그러나 그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애절령은 잘 알고 있었다. 애절령의 지금 상태는 도저히 무공을 연마할 수 없는 지경이다. 무공을 익히려 하다간 당장 주화입마(走火入魔)에 걸려 죽거나 손발도 움직일 수 없는 폐인이 될 것이다. 애절령은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벗어나서 생각하자…….'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절령은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 익! 휘파람 소리가 끝나기 얼마 후였다. 휘이익! 방안으로 하나의 금빛 그림자가 날렵하게 날아들었다. 애절령의 곁으로 떨어져 내리는 물체는 거대한 몸집의 금빛 이리였다. 바로 만수지왕인 낭왕이었다. 낭왕은 평소 애절령의 곁에서 수백 장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낭왕은 수척한 애절령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비벼댔다. 애절령은 힘겹게 손을 뻗어 낭왕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낭왕……!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자." 애절령은 낭왕의 등에 올라탔다. 찰나, 낭왕이 눈부시게 지면을 박찼다. 파팟! 낭왕은 찰나간에 십여 장을 허공으로 날았고, 애절령을 등에 태운 채 빠르게 금검화원에서 빠져나갔다. 그가 금검화원을 빠져나가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휘이익! 낭왕은 무서운 기세로 치달렸다. 애절령은 낭왕의 목덜미를 부여잡고 혼미한 의식 속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디로든 가자…… 일단은 멀리 가자꾸나……." 3 크르르……. 낭왕은 울고 있었다. 금수(禽獸)도 눈물을 흘리는가? 하되 분명 낭왕은 애절령의 폐인이 된 모습에 비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를 내지는 못한다. 쐐애액액! 낭왕은 계속 질풍처럼 치달렸다. 낭왕은 애절령을 등에 태운 채 이십여 리를 치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다만 북쪽으로 치달리고 있을 뿐이다. 막 낭왕이 비래관을 벗어난 지역의 야산 기슭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돌연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파― 악! 돌연 하나의 대나무 막대기가 날아와 낭왕의 앞길에 꽂혔다. 낭왕은 놀라 피하며 다시 달려가려 했다. 파악! 순간 또 하나의 대나무가 날아와 낭왕의 앞길을 막았다. 그와 함께, 저만큼에서 걸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헤헤……, 이 땡초는 지금 배가 고프단 말이야. 그런데 네놈이 도망가면 누구의 뒷다리를 뜯어먹는단 말이냐?" 장난기 가득한 음성이 들렸고, 한 명의 인물이 앞쪽에 나타났다. 일순 낭왕의 두 눈에 겁에 질린 표정이 떠올랐다. 낭왕의 앞쪽에 대나무 막대기를 던져 길을 가로막은 자, 그는 비래관 최고의 기승으로 일컬어지는 주육화상이었다. 홀연 주육화상이 수많은 대나무 막대기를 손에 들고 낭왕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최근 얼마 동안 주육화상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헌데, 그가 돌연 나타난 것이다. 크르르릉……. 낭왕은 경계의 눈빛으로 나직한 흉성을 발했다. 목숨으로 애절령을 사수하겠다는 결연한 태도였다. 이때 주육화상은 낭왕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나무막대기를 마구 던져내기 시작했다. 팍! 파― 악! 팍! 순식간에 여러 개의 대나무 막대기가 도망가려는 낭왕 주위에 빽빽이 꽂혔다. 나무막대기의 수효는 도합 백팔개(白八個). 그것은 얼핏 보니 한없이 무질서한 듯했다. 하되 어찌된 일인가? 대나무를 피해 낭왕이 혼신의 힘으로 치달려도 결코 그 범위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캬오오오오! 낭왕은 흉성을 내지르며 마구 땅을 박찼다. 그러나 원(圓)을 그리며 꽂힌 대나무 막대기의 포진(布陣)을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주육화상이 낭왕을 보며 낄낄댔다. "헤헤……, 네까짓 놈이 어찌 이 땡초의 미리팔진도(迷離八陳圖)를 벗어날 수 있겠느냐?" 그렇다. 낭왕의 주위에 무질서하게 꽂혀 있는 대나무들, 그것들은 바로 현묘하기 이를 데 없는 진세(眞勢)였다. 하기에 낭왕은 힘을 다해도 결코 그 진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체 주육화상은 왜 애절령의 앞길을 가로막았단 말인가. 사방이 완벽하게 막힌 낭왕. 낭왕은 한동안 대나무 막대기를 벗어나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낭왕은 곧 자신이 주육화상이 펼친 진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크르르르……. 낭왕은 으르렁거림을 발하며 주육화상을 향해 공격자세를 취했다. 주육화상은 호로병을 한 손에 들고 술을 마시다 낭왕을 보고 웃었다. "우헤헤……! 가만 보니 네놈이 충성심 하나는 천하제일이라 할만하군. 네놈의 충성심을 보아 잡아먹지는 않겠다. 하지만 네놈의 주인은 땡초에게 건네 주어야 해. 난 그 놈을 이제 사십구 일 동안 잡아먹어야 한단 말이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크아― 앙! 낭왕은 사납게 주육화상에게 덮쳐들었다. 그 움직임은 바람이 무색할 만큼 쾌속했다. 순간 주육화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낭왕을 향해 재채기를 해댔다. "에취―!" 순간 낭왕은 주육화상을 향해 달려들다가 재채기에 사정없이 솟아올라 날아갔다. 주육화상의 재채기에는 막강한 진기가 실리어 있기 때문이었다. 주육화상은 천하에 다시없는 고승. 비록 낭왕이 무공절기를 익힌 뛰어난 영물이라 하되 주육화상을 당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번의 실패에 낭왕은 당장 주눅이 든 듯했다. 이때 주육화상이 애절령을 향해 다가들며 말했다. "이 녀석, 어디에서 코가 비틀어지게 마셨느냐? 헤헤……." "……." 애절령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도 없었다. 그는 말을 잇기에도 힘든 폐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수척한 애절령을 바라보던 주육화상의 두 눈이 일순 커졌다. "호오라……, 이제 보니 네놈은 계집질을 심하게 한 모양이로구나. 네놈의 몸에서는 지분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으니……." 주육화상의 말은 다분히 익살스러웠다. 아마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그는 놀라게 할 일은 없을 듯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애절령을 살피던 그의 얼굴에 점차 웃음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대신 심각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제 보니 네놈은 계집질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일신의 진원지기까지 모조리 빼앗겼구나. 누구냐? 네놈의 모든 정혈(精血)을 앗아가 버린 천하에 다시없는 음녀(淫女)가……." 주육화상은 상당히 분노한 듯했다. "네가 금검화원 쪽에서 왔으니 분명 거기 있는 두 마리 암컷 중 하나렷다. 아무래도 나이 먹은 큰 암컷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눈빛 속에 항상 음흉함을 감추고 있던 작은 암컷에 의해 당했단 말이냐?" 주육화상. 과연 기인은 기인이었다. 그는 애절령을 보는 것만으로 단숨에 모든 상황을 추측해 냈다. 애절령은 애써 미소를 담고 대답했다. "별 것 아닙니다. 전륜철왕부의 독문절기인 봉비황무접천신공에 당했을 뿐입니다. 머지않아 완쾌될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뭐라고? 봉비황무접천신공에 정혈을 빼앗겼다고……?" 주육화상은 순간적으로 기가 막힌 눈치였다. 아마 주육화상이 이처럼 심각한 얼굴을 한 것은 수십 년 이래 처음일지도 모른다. 그는 다급히 소리쳤다. "어떻게 당한 것인지 상황을 이야기해 봐라. 봉비황무접천신공은 천하에 다시없을 마공인지라 치료법이 거의 없다. 으음……." 주육화상의 얼굴에 떠오르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미루어 애절령의 상세는 심각한 정도를 이미 넘어선 듯했다. 하지만 애절령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스님께선 상관하지 마십시오. 절……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도와주는 일입니다." 순간 주육화상이 세차게 애절령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는 정녕 분노한 듯 애절령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뭐라고……, 고약한 놈! 그래, 네놈에게 대소림(大少林)의 장래를 맡기려고 작정했었거늘 상관 말라고……?" 얼마나 강하게 움켜쥐었는가? 애절령은 숨이 막힐 듯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주육화상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 대소림사라고요?" 아아, 그가 어찌 모르겠는가. 천하의 하늘 아래 숨을 쉬고 있는 자라면 대소림의 위대함과 거대한 저력에 경외의 빛을 떠올릴 것이다. 수천 년 무림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집단으로 불리는 구파일방의 수뇌, 바로 정도무림의 하늘(天)이 그곳이었다. 주육화상은 애절령을 붙잡고 흔들다가는 거칠게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이런 멍청한 놈, 그러기에 두 마리의 암컷들이 있는 남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하였거늘,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 쯧쯧!" "……." 애절령은 일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모든 일은 자신의 부주의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육화상의 얼굴이 서서히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고연 놈! 널 절대무성(絶代武聖)으로 키울 수 있는 금강부동관(金剛不動關)을 만들고자 한동안 이곳을 떠났었거늘……. 그래, 그 동안 이 지경이 되다니……. 하여간 너는 전에 이 땡초에게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약속이오……?" "그렇다. 넌 과거 노납에게 사십구 일을 맡긴다고 하지 않았더냐? 설마 약속을 지키지 않을 셈이냐?" 과연 애절령은 과거 주육화상과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술잔을 빼앗는 내기를 하여 패했을 때, 그는 향후 사십구 일간을 맡겠노라고 했던 것이다. 애절령은 거부할 수도 없었다. 거부할 힘도 없었다. 주육화상은 애절령을 대뜸 들어 어깨 위에 들쳐 매었다. 그리고는 낭왕을 손짓으로 불렀다. "이리 오너라, 멍청한 녀석!" 낭왕이 꼬리를 말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주육화상은 대뜸 낭왕의 등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힘차게 낭왕의 엉덩짝을 후려쳤다. "이 놈, 빨리 석고봉(石高峰)으로 가자." 4 석고봉(石高峰). 황산의 수많은 봉우리 중 하나이다. 비래관에서는 약 백여 리쯤 떨어진 곳. 크지는 않되 험준하고 드높아 세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이 석고봉에 두 사람이 찾아 들었다. 석고봉을 찾아든 자들은 주육화상과 애절령이었다. 주육화상은 애절령을 하나의 석동(石洞)으로 데리고 갔다. 주육화상은 애절령을 석동으로 데리고 가서 대뜸 천장 위에 매달았다. "무엇 때문에 절 매다는 것입니까? 아무리 뛰어난 의신(醫神)이라 해도 저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애절령은 차라리 담담했다. 모든 것을 포기했기에,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일까? 주육화상은 눈을 부릅떴다. "닥쳐라. 똥대가리 같은 녀석, 이제 네놈은 사십구 일을 노납에게 맡겼으니 그 동안 아무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다." 애절령은 꽁지 빠진 개처럼 대롱대롱 매어 달렸다. 이어 주육화상은 한 자루 단단한 타구봉(打拘棒)을 들고 애절령의 앞에 섰다. "헤헤……." 괴이한 웃음을 흘려내던 주육화상. 그가 대뜸 타구봉을 들어 애절령을 후려쳤다. 퍼― 억! '허억!' 애절령은 하마터면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후려 패는 타구봉이 너무도 극심한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등뼈가 전부 으스러지는 듯했다. 단 한 대만으로 애절령은 고통의 극치를 맛볼 수 있었다. 그의 전신은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헤헤……, 아프거든 비명을 지르도록 해라. 비명을 지르지 않는 놈은 천하에 다시없는 미련한 놈이지." 주육화상의 타구봉이 다시 애절령을 후리쳤다. 퍼억―! "우욱!" 이번에는 애절령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애절령은 전신이 갈가리 터져 나가는 듯한 고통에 그만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고만 것이다. 과거 아무리 혹독한 회혼의 매질에도 비명 한마디 없이 참아내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 주육화상의 매질은 그 채찍질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흡사 한 번의 매질로 영혼마저 파괴되는 듯했다. 퍼― 퍽! 퍽! 그의 매질은 신체의 어디든 가리는 곳이 없었다. 애절령은 눅신하도록 두들겨 맞았다. 금방 죽어갈 폐인을, 주육화상은 치료는커녕 천장에 매달아 놓고 무자비한 매질을 시작한 것이다. 혹시 그는 미친 것이 아닐까? 죽어가는 자를 매달아 개처럼 후려 패다니……. 그러나 주육화상의 얼굴은 태연하고도 느긋하기만 했다. "헤헤……, 네놈이 이제 보니 맷집이 상당히 좋은 편이로구나. 네놈처럼 맷집이 좋은 녀석에게는 특별한 수법이 있지. 일컬어 타구삼십육식(打拘三十六式)이라는 거야. 그것은 확실하게 개를 때려잡을 때 사용하는 수법이다." 타구삼십육식 ! 개를 때려잡는다는 서른여섯 가지에 걸친 몽둥이질. 끔찍하게도, 주육화상은 살아 있는 인간에게 개를 때려잡는 몽둥이질을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퍽― 퍽― 퍽― 퍽! 애절령은 그 날, 사백 대에 이르는 매질을 당하고 혼절해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혼절도 허락되지 않았다. 정신을 잃으면 물이 끼얹어졌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매질이 가해졌다. 주육화상은 무엇 때문에 애절령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후려 패는 것일까? 무슨 속셈인지 오직 주육화상만이 알 일이다. 단지 확실한 것은, 이제 애절령에게 사십구 일 동안의 처절한 지옥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5 주육화상. 그는 매일 애절령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매질을 계속했다. "으윽! 쿡……." 한번씩 매질을 가할 때마다, 애절령의 입에서는 고통의 신음성과 더불어 한 모금씩의 검붉은 피가 토해져 나왔다. 첫째날은 사백 대……. 둘째날은 오백 대……. 셋째날은 육백 대……. 날짜가 흐를수록 애절령에게 쏟아지는 몽둥이질 세례는 점차 횟수가 늘어갔다. 그만큼 애절령은 더욱 크나큰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그는 주육화상의 명령에 따라 마음껏 비명 지르고 마음껏 소리질렀다. "으아아악 ! 이 빌어먹을 화상 같으니……." "차라리 날 죽여, 그만 때리고 날 죽이란 말이야. 아아악―!" 소리를 지를 때마다 주육화상은 더욱 신나하는 표정으로 애절령을 두들겨 팼다. 퍽― 퍽― 퍽―! 그의 매질은 실로 절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장 치명적인 요혈을 골라서 후려 팼다. 그 가운데도 절대로 죽게 때리지 않았고, 한 번씩 때릴 때마다 가장 극심한 고통이 애절령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며칠일까? 매일 두들겨 맞는 가운데, 문득 애절령은 자신의 몸 속에 알 수 없는 묘한 기이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전신으로 흐르는 미미한 기운. 그것은 기이하게도 혈맥(血脈)의 흐름과는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기이한 한 줄기의 힘은 매질이 심해질수록 점차 강해졌고, 혈맥을 따라 거꾸로 흘렀다. 그것은 원래 애절령이 지녔던 진기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흐름이었다. 더불어, 애절령은 날짜가 흐를수록 매질의 고통에서 점차 면역이 되어갔다. 매질에 이골이 난 것이랄까? 그러나 아직 사십구 일이 다 지나가려면 아직도 한 달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6 옥자강. 그는 신분을 감춘 채 사천당가로 잠입했다. 그후 그는 사천당가주의 눈에 들었고, 결국 당가의 사위가 되는 데 성공했다. 백치미녀 당취적이 그의 부인이 된 여인이었다. 드디어 그는 당가의 비전(秘殿)이라 알려진 지하무고(地下武庫)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었다. 지하무고는 오직 당가의 혈육만이 들어서는 곳이다. 사위라 해도 함부로 그곳을 들어서지는 못한다. 하되 당가주 당무룡은 옥자강이 일초식도 모르는 백면서생이라 여겼기에 흔쾌히 그의 지하무고에 출입을 허락했다. 아니 오히려 이년 동안 들어가 폐관수련하기를 권할 정도였다. 그의 속셈은 무공을 익혀 딸을 지켜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었다. 옥자강은 처음에는 사양하는 척했으되, 어쩔 수 없다는 듯 지하무고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기기― 깅! 지하무고의 문이 굉음과 함께 닫히는 것을 보며, 옥자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옥자강은 꿈에 바라마지 않던 그곳에 드디어 들어오게 된 것이다. '후훗……, 드디어 들어왔다. 몇 달 동안 벼르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옥자강은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암기(暗器)들이 수백 수천 종이나 진열되어 있고, 온갖 무서와 병장기들이 차곡차곡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사천당가의 지하무고는 가히 수백수천 권의 무공비급이 소장되어 있었고, 또한 당가가 만들어 낸 일천사백종(一千四百種)의 각종 암기가 사용법과 함께 놓여 있었다. 또한 그것을 만드는 자세한 제련법(製鍊法)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스물일곱 종에 달하는 암기(暗器)는 옥자강이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후훗, 이곳에서 이년을 폐관하라고? 어림없는 수작…… 이 따위의 기관진식이야 나의 능력으로 간단히 빠져나갈 수 있다.' 옥자강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 권의 책자를 빼어들었다. < 천수나타경(千手羅陀經)! > 사천당가의 가장 뛰어난 암기술(暗器術)이 수록되어 있다는 독문무공비서였다. 그와 함께, 옥자강은 하나의 암기를 집어들어 시험하듯 벽면을 향해 던졌다. 파파파― 팟! 찰나 작은 못(釘)처럼 생긴 암기는 유선형을 이루며 돌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놀라운 파괴력이었다. 옥자강은 사천당가의 뛰어난 암기술에 감탄하며, 다시 한 알의 화탄(火彈)을 집어들었다. 꽈꽈꽈― 꽝! 이어 소리는 크지 않았으되, 옥자강이 집어던진 화탄은 거듭해서 열 번을 연쇄폭발하면서 벽면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냈다. 바라보던 옥자강은 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핫……! 바로 이것이다. 이걸 얻기 위해 나는 지저분한 남창(男昌) 노릇까지도 서슴지 않고 개처럼 비굴하게 이곳에 들어왔다. 와하하핫! 두고 봐라. 향후 이 옥자강이 앞으로 어떻게 변신하는지를……." 옥자강의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 그것은 악마의 미소처럼 사이했다. '후후……, 열흘이면 이 안에 있는 비급을 전부 암기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암기를 챙긴 다음 석둔은비잠형공(石遁隱飛潛形功)으로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크ㅋ!' 옥자강이 사이한 악마의 미소를 흘리고 있는 그 시각, 지하무고의 밖이다. 언제부터인가? 한 명의 백치미녀(白痴美女)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문밖에 서 있었다. "랄랄라…… 랄라……." 무엇이 그리 유쾌한 것일까? 백치미녀는 마냥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인 듯했다. 사람들은 이 백치미녀를 잘 안다. 사천당가주 당무룡의 하나뿐인 무남독녀인 당취적이었다. 사람들은 왜 그녀가 지하무고 밖에서 기거하다시피 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안다. 당취적은 얼마 전 한 명의 뛰어난 문사(文士)와 전격적인 혼인식을 올렸는바, 그 문사는 바로 지하무고 속에서 폐관수련 중이라던가? 아마도 당취적은 폐관수련이 끝날 때까지 기꺼이 기다리리라. 그녀는 백치미녀가 아니던가. 백치는 모든 것을 참고 기다릴 수 있는 법이다. 그녀는 옥자강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혼(魂)까지도 바친 상태였다. 백치이기에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미 그녀의 뱃속에 그 누군가의 핏줄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