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이 궁예의 부하로서 군사를 거느리고 정주(경기도 덕풍) 지역을 지나다가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말을 쉬게하고 있는데 이고을 유장자의 딸 柳氏가 길옆 시냇가에 서 있었다. 그 날 왕건이 그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유장자는 그 딸로 하여금 왕건의 잠자리를 모시도록 하였다."
왕건이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쉬다가 길옆 시냇가에 서 있는 유씨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첫째 왕후로 맞이한다. '버드나무와 시냇가의 처녀'가 수신의 딸 유화를 연상한다. 성도 버들유로 유화와 같다.
고려사는 계속해서 적고 있다.
"궁예 말년에 유홍,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왕건을 추대하여 왕을 교체하려 하였으나, 왕건이 이를 거절하였다. 이 때 신혜왕후 유씨가
'대의를 내세우고 폭군을 갈아내는 것은 예로부터 있는 일이옵니다. 지금 여러 장수들의 의견을 들으니, 저도 의분을 참을 수 없는데 하물며 대장부라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라고 하며 손수 갑옷을 가져다가 남편(왕건)에게 입혀 주었으며, 여러 장수들이 그를 옹위하여 나아가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유씨는 왕건이 즉위 후에 신혜왕후가 되며, 그 후에는 후사도 없이 기록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러니 신혜왕후 유씨는 버드나무밑 물가에서 왕건을 만나 그로 하여금 고려를 열게 하고 자신은 영광을 멀리하고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