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강/요7:37-44
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37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은 초막절을 말합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3대 명절 가운데 하나로 조상들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뒤 풍성한 추수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종의 맥추 감사절입니다. 이 초막절은 8일간 거행되었습니다. 이 초막절 의식 가운데 물을 제단에 붓은 “물 예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제사장들은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떠다 성전 제단에 부었습니다. 이 때 제사장들이 앞 장을 서고 예루살렘에 올라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이 예식을 일곱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 목마름에 허덕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저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기적의 생수를 마셨습니다. 그 생수로 육적인 목마름을 해갈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또 다른 목마름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영적인 목마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때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고 기다리던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9절에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영적인 목마름은 바로 성령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인 목마름은 물을 마시면 해결됩니다. 그런데 영적인 목마름은 바로 성령을 통해서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 강이 흘러 그곳에 생명들이 목마름을 해결하고 풍성한 생명이 역사가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메마른 심령 속에 성령이 임하셔서 영적 목마름이 해결되고 또한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생수의 강이 흐르면?
38절을 보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수라는 말은 생명이 있는 물이라는 뜻으로 그 물을 마시는 자들이 생명을 얻게 되는 그런 물을 말합니다. 그리고 배라는 말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 또는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 그 메말랐던 심령 속에 생명의 강이 흘러 풍성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중해성 기후라서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집니다. 우기에는 비가 와서 강에 물이 흐릅니다. 그러나 건기 때는 비가 오지 않아서 강에 물이 말라있습니다. 강에 물이 흘렀던 흔적은 남아있는데 물이 없습니다. 이렇게 물이 흐르지 않는 강을 “와디”라고 부릅니다. 이 와디에는 물론 물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와디 주변에 나무나 풀들이 우거질 수 없습니다. 그저 풀도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가시덤불이 고작이고, 나무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는 아카시아과 싯딤 나무 정도입니다. 저들은 목마름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와디에 물이 흐르겠다는 것입니다. 강이 되어 다시는 마르지 않게 계속해서 물이 흐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생은 마치 와디와 같습니다. 영적인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와디 같은 심령 속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심령 속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심령 속에 생수의 강이 흐르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우선 영적인 목마름이 해갈됩니다.
우리 몸에 수분이 모자라게 되면 목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난 심령들 속에 영적인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 목마름은 대표적으로 다음 몇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째, 두려움입니다. 하나님 떠나 홀로 인생길을 걷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마치 엄마 손을 잡고 놀이동산에 갔다가 엄마를 잃어버려 미아가 된 아이가 두려워 우는 것처럼 하나님 없이 인생길을 걷는 심령 속에 깊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나면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에 한숨 변하여 내 기도 되였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험악하여도 나 주님 만 따라가리.
둘째,죄책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늘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무엇인가 알 지 못하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다고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나 때문에 일이 잘못됐다고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셋째,외로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지 못해서 늘 외롭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이 외로움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내와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 외로움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그 외로움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런 영적 목마름은 마치 메마른 대지 위에 단비가 내려 해갈되듯이 성령이 우리 심령 속에 충만히 임하시면 해결됩니다. 우리 심령 속에 생수의 강이 흐르면 해결됩니다.
3.생수의 강은 어떻게?
그러면 생수의 강은 어떻게 하면 우리 심령 속에서 흐르게 될까요? 본문 3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생수의 강의 발원지가 예수라는 것입니다. 예수로부터 생수의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긴강도 발원지가 있습니다. 그 발원지로부터 강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 강은 나일강이냐 아마존강이냐 논쟁이 있었지만 리마 지리학회가 정밀하게 조사해 보니까 아마존이 나일강보다 391키로가 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면밀하게 조사해 보니까 아마존 강의 발원지는 페루 아레키파 주 케후이샤 산 기슭의 해발 5150미터에 위치한 아파셰타 계곡의 한 웅덩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긴 강도 발원지가 있습니다. 그 발원지로부터 강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심령 속에 흐르는 생수의 강은 그 발원지가 예수입니다. 오직 예수로부터 흐르는 강만이 생수의 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야만 우리 심령에 생수의 강이 흐르기 시작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에스겔 47:9-12절을 보면 생수의 강은 치료하는 능력, 변화시키고 소성케 하는 능력 역할을 합니다. 생수가 아라바 황무지에 흘러 내리니 박토가 변하여서 옥토가 되고 바다물이 소생하고 만물이 새로워집니다. 사해가 어떤 곳입니까?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묻혀있는 곳입니다. 어두운 역사가 있는 곳, 절망의 자리, 죽음의 장소, 어떤 생물도 살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식물이 급성장하고 많은 수확이 있고 약효가 뛰어난 나무들이 그 강물이 닿는 곳에 쑥쑥 자라나고 저주받은 사해의 짠물에 고기떼가 가득 차게 됩니다. 우선순위가 바로 되면 영 육이 함께 살아나고 재기하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