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07. 12.19(수) ○여 정 : 남원→전주→부여(신동엽 생가, 신동엽 시비, 궁남지)→홍성(홍주성, 만해 체험관, 만해 생가)→전주→남원 ○참 가 : 남원중 김연경 신봉옥 이정암, 운봉중 복효근, 하늘중 이지은 권하얀, 송동중 김명희, 남원용성고 김형근, 남원한빛중 김동규, 중앙초 박진영(10명) ○후 원 : 전라북도남원교육청 |
08:13 남원 출발(교사 6명). 야호! 우린 또 떠난다. 이제는 신동엽도 만난다.
09:13 전주역 도착(3명 합류)
09:35 동산역 도착(1명 합류). 차량 2대에 모두 10명. 대통령 선거를 위한 투표는 모두 하셨겠죠? 무전기를 준비하여 달리는 퀴즈방을 운영함. 김연경 선생님의 제안으로 ‘퐁당’ 퀴즈를 함. 힌트는 세 개까지 나갈 수 있음. 어쩜 그리도 잘 맞히는지. 무전기가 있어서 두 차량 간에 신속하게 전달을 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음.
10:35 신동엽 생가 도착(충남 부여읍 동남리 501-3). 생가에 이르기까지 표지판은 침묵하여 불친절하였음. 진입하는 곳에는 온갖 공사 자재가 많이 있어서 살풍경했음. 생가는 아무도 없어 썰렁하고 마루에는 먼지가, 뒤안에는 쓰레기가 많아 마음이 아팠음. 신동엽의 생가에 시인의 작품이라고는 눈 씻고 보아도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신동엽의 부인 인병선 여사의 「申東曄生家」라는 작품 하나만 목각하여 걸려 있을 뿐이다.
우리의 만남을
헛되이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있었던 일을
늘 있는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당신과 내가 처음 맺어진
이 자리를 새삼 꾸미는 뜻이라
우리는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
-인병선 「申東曄生家」
쓸쓸히 앉아있는 생가이지만 밝은 햇살에 위로를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일어나 출발. 신동엽 생가가 이렇게 홀대를 받는 것이 과연 부여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일차적으로는 부여 사람들의 잘못일 수 있지만 시인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준이 문제일 것 같다. 그러므로 이는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11:10 신동엽 시비 도착함. 원래는 부여읍내를 굽어볼 수 있는 부소산에 시비를 세우려고 했으나 우익 단체들의 반대로 여기 어정쩡한 야산에 세워졌다는데 역시 커다란 반공기념비가 버티고 있어서 야릇한 대조를 보임. 복효근 선생님의 안내로 인동초와 은수원사시나무, 소나무, 해송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음. 시인의 시작품들을 코팅하여 시비 철책에 빙 둘러 게시한 것이 눈길을 끌었음. 어느 초등학생의 나뭇잎과 풀꽃을 이용한 정성어린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11:30 신동엽 시비 출발
11:35 가까운 곳에 있는 양평해장국집(041-837-7774)에 들러 점심을 먹음. 해장국은 5천원, 특별은 6천원, 콩나물해장국은 4천원.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다.
12:20 출발. 김연경 선생님의 제안으로 ‘궁남지’로 향함
12:23 궁남지 도착. 연꽃대들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 피고 진 연꽃대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모다들 서 있는데 장관이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나 예전 예쁜 꽃을 피워 올린 적 있었다네.’ 수많은 연못들을 잘 조성해 놓았다. 오리들 몇 마리가 소리를 내며 헤엄치고 있고 잔잔한 수면에는 버드나무 가지들이 흐늘거리며 비쳐난다. 포룡정과 포룡정에 이르는 다리가 환상적이다. 파아란 하늘과 정자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한 컷. 다들 다음에는 그리운 님과 함께 여기는 꼭 다시 오고 싶어하는 표정들이 역력한데, 이번에 짝꿍이 함께 오신 효근-연경 커플은 정말 다정하시다.
12:52 궁남지를 출발한다. 아쉬운 마음 남긴 채. 홍주성을 향하여 가는데 청양을 지난다. 청양을 지나는데 청양 시인 이진수와 막역한 사이인 복효근 시인이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한다. 여기에 이진수 시인을 기념하여 그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손톱을 깎는다 손톱을 깎을 땐 손톱만이 아니라 손톱 밑에 낀 때를 함께 깎는다 그것이 손톱을 깎는 더 큰 이유이다
손톱 밑에는 나의 생활 나의 최근이 끼어 있다 그래서 깎은 손톱이 떨어질 때는 나의 최근도 떨어진다
손톱 밑에 낀 것들은 나를 알고 있다 나의 말과 행동의 축적물 그것들이 일순간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나의 일부였던 것들이 낱낱이 나를 증언하고 고발한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와 무례함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나를 올려다본다 그것들이 나를 추궁한다 이런 일도 가능한 것인가
잠시 손톱 깎기를 멈춰 보지만 그렇다고 나의 최근이 용서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손톱의 일이 아니다 나는 다만 남은 손톱을 마저 깎을 수 있을 뿐이다
내게서 떨어져 나간 것들이 바닥에 수북하다 냄새가 난다 나의 최근을 보고 구역질을 하는 내가 거기 있다
구역을 견디다가 손톱을 쓸어모아 쓰레기통에 넣는다 나의 최근은 이제 쓰레기통 속에나 있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아무 것도 없는 바닥처럼 다시 출발을 할 것이다 그리고 손톱 또한 자랄 것이다
손톱 밑에는 때가 낄 것이고 나는 또 손톱을 깎을 것이다 손톱을 깎은 이후부터 손톱을 깎기 이전까지의 그 단락들이 나를 이루고
그 단락과 단락의 경계에서 나는 늘 손톱 깎기를 하고 있다
-이진수 「손톱깎기」
시인 이진수 님은 1962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다. 대전충남민족작가회의 회원이다. 시집으로『그늘을 밀어내지 않는다』(시와시학사, 2002) 가 있다.
13:54 홍주성에 도착함. 40일만에 한건택 해설사를 다시 만남.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더 심도 깊은 해설을 해 주심. 전에 못 보았던 조양문(朝陽門)을 오늘은 볼 수 있었다. 동서방향으로 놓여 있는 문이다. 예전에는 이 문으로 차들이 다녔다고 한다. 홍주아문, 안회당(동헌), 여하정을 다시 만났다. 여하정에서 역사 공부를 많이 하였다. 충청도의 도명에 대해서도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충주와 청주를 따서 충청도라고 하는데 역사적으로는 공주, 홍주를 따서 공홍도, 홍공도라고도 하였다고 하니 참 귀설게 들리면서 새로웠다. 어느 것이든 익숙해지면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나 당연한 일들도 세상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밖에도 전패의 변, 강상의 죄, 기호학파, 영남학파, 홍주성 복원계획 등에 대해서 들었다. 또한 남당 한원진이라는 분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들려 주었다. 내포지역에서는 영향력이 지대한 분이었고, 경연관을 지낸 분이라고 한다. 위정척사파의 모태 역할을 하신 분, 남당의 제자 김복한의 제자가 바로 만해 한용운이라고 하면서 한용운의 성품이 바로 남당 선생한테서 연원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학과 홍주성은 악연이 있는데 기회주의자 이승우에 의하여 동학은 결정적 약세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이승우는 공신이 되어 관찰사로 승진. 만해가 17세경 의병에 가담하였으나 좌절하게 되고 가출(출가?). 1904년 아들 한보국 태어남. 한보국은 사회주의사상에 입각하여 독립운동을 함. 신간회 활동과 건준 활동을 함. 해방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서 6․25를 맞이함. 홍성인민위원장을 지냈으나 강경파에 밀려 9․28때 월북. 1976년에 죽음. 만해의 손녀가 북한에 5명 살고 있는 것으로 재미 언론인 윤명자 씨가 취재하여 『말』지에 기고한 내용임.
만해 사상의 바탕은 성리학의 바탕인 의리론에 있다고 보임. 만해에게는 여인이 셋 있는데 본부인과 유숙원이라는 여자와 강릉에 살았던 젊어서 과부가 된 돈 많은 보살님. 이렇게 보면 만해의 시 속에 등장하는 님, 사랑도 어느 정도 구체성을 띤다고 볼 수 있음.
15:35 홍주성 출발
16:02 만해체험관 도착. 전하수 해설사님도 다시 만남. 영상자료 시청하고 음료(커피와 녹차) 대접받음. 만해의 수양독본에 나오는 “무슨 일이든지 성공이나 실패보다 올코 그른 것을 먼저 분변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 말씀이 오늘 대통령 선거일에 내 가슴을 친다. 동향집이 좋단다. 왜냐하면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지런하게 된다는 것이다. 춘천시 어느 면에 고시마을이 있는데 고시 합격자가 그 마을에는 90명이 넘는다 한다. 동향마을이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만해 생가가 석양빛을 받아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습이 황홀하다. 이 황홀한 지경에 우리는 곶감을 먹었다. 조소현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12월 12일에 보내주신 곶감을 드디어 먹는데 이건 그냥 곶감이 아니라 완전 꿀곶감이다.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리는데 몇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16:52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늘의 목적지를 다 둘러보고 이제 출발한다. 집 떠나온 자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네 인생도 이러할진저, 겸허히 돌아가야 한다.
18:30 1시간 30분만에 전주에 도착하였다. 아중역 부근의 ‘아사모(247-1515, 1516)’라고 하는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새싹비빔밥을 먹어보려고 하였으나 이 메뉴는 점심 때만 나온다고 하여 비빔밥, 쇠고기쌈밥 등을 먹었다. 밥이 나오기를 기다려 앉은 순서로 소감 나누기를 하였다.
○연경 - 홍주성이 참 인상적이었다.
○효근 - 여럿이 함께 다녀와서 좋았다. 정드는 게 무섭기도 하다.
○동규 - 해설사님들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곶감 먹은 일과 무전기를 사용한 일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진영 - 공문 보고 이름 들어 있는 것 보고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데이트 코스를 개발하게 되어 기쁘다.
○봉옥 - 우리 모임에서는 일을 찾아서 한다는 걸 알았다. 교육이 참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지난 번과는 달리 많은 걸 보고 배웠다.
○정암 - 연경 샘의 권유로 오게 되어 기뻤다. 좋은 분들 만나고 시인들의 생가가 좋았다. 옛날 사진들을 펼쳐 본 듯 했다. 반갑고 고맙다.
○지은 - 간식과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하얀 - 복효근, 김연경 두 분 선생님의 뒷모습이 재미있었다. 복샘께서 쩔쩔 매시는 모습도 좋았다.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고 보람있다.
○명희 - 사진 많이 찍었다. 학생들과 함께 보면 좋겠다.
○형근 - 신동엽 생가에 가 보고서 신동엽의 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웠다.
19:15 밥 다 먹고 남원으로 출발! 하려는데 김동규 차량이 펑크가 나서 주저앉은 걸 발견. 스패어 타이어로 어떻게 교체해보려다가 잘 안 되어 보험사로 연락하여 서비스 받음.
19:55 펑크를 수습하고 남원으로 출발
20:55 남원 도착하여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오늘 총주행거리 399.1km
아름다운 우리 사랑하는 우리 국어과 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오늘 정말 행복한 하루였소.
어느 해보다 올해 여행을 많이 함께 다녔군요. 주왕산과 주산지부터 말이죠.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더욱 건강하여 내년에 더욱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해요.
첫댓글 문자자료가 아니라 녹음, 녹화자료로 분류해야 할 것 같은 생각.^^*
그런가요? 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