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불교의 영향은 이런 유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그 오랜 역사답게 우리 생활 속으로 깊게 침투되어 있어 한국인들은 그 족적으로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흡사 서양인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기독교에 침윤되어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의 이름을 보십시오. 온통 기독교 이름입니다. 그 흔한 이름인 John은 ‘요한’이고, Paul은 ‘바울(바오로)’이고 Mary는 ‘마리아’니 말입니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기독교 용어로 나오는 천당이나 지옥, 장로, 영혼 등이 원래 불교 용어였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런 용어들은 모두 불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부’라는 용어 역시 불가에서 참선을 한다는 뜻으로 쓰던 용어입니다. 그 외에도 ‘이판사판’, ‘인연’, ‘찰나’, ‘이심전심’, ‘아비규환’, ‘야단법석’, ‘아수라장’, ‘면목’, ‘방편’, ‘삼매’, ‘업보’ 등등 도저히 이 작은 지면에서는 다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아니 불교적 용어가 없으면 의사소통이 안 될 지경입니다. 이 가운데 ‘아비규환’은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말하는데 심한 고통으로 마구 울부짖는 지옥을 말합니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요즘 말로 하면 야외법회이지요. 밖에다가 단을 만들어(야단) 붓다의 말씀을 듣는 자리(법석)를 마련한 것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시끄럽게 되어 그런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지요. ‘아수라장’의 아수라는 싸우기 좋아하는 신이라 하니 이 신이 있는 곳은 엉망이 되겠죠.
우리 일상에 깊이 침투해 있는 불교의 영향
일상용어뿐 아니라 지명에도 불교적인 자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안양시의 ‘안양’은 불교의 극락을 의미하고 서울의 보광동이나 미아동 역시 모두 불교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불광동도 그 이름이 그곳에 있었던 불광사라는 절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불광동성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름을 그대로 풀면 ‘부처님의 광휘(불광)가 빛나는 지역의 예수님 교회’가 되니 아주 멋있는 종교 화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산 이름에도 불교 용어가 넘쳐납니다. 좋은 산에는 반드시 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북한산 일원만 보십시오. 도선사니 승가사 같은 큰 사찰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보현봉, 문수봉, 원효봉 등 불교적 이름들이 많습니다. 또 전국적으로 관음봉이나 미륵봉, 비로봉도 많습니다. 이 가운데 비로봉(비봉)은 불교의 비로자나불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그 중에서도 금강산은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금강산의 ‘금강’은 “금강경”에서 나온 것이니까 말입니다.
이 정도면 불교가 우리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 문화 속에는 불교라는 큰 기둥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이 기둥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근세에 들어와 한국인들은 한국형의 새로운 불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원불교가 그것으로 이 종교는 한국인이 만든 종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 불교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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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누가 뭐래도 글로벌 시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외국인 친구를 절과 같은 유적지에 안내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럴 때 그들이 뜻밖의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왜 불상에 절을 하는지’ 라든가 ‘불상들은 왜 손 모양이 다 다른지’ 하는 것들이 그것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불상을 많이 보아 와서 익숙한 나머지 이런 질문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교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을 갖는 것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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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본존불상. 본래 붓다는 자신을 개인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초창기 불교에서는 불상이 없었으나 이후 그리스 문명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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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나는 불교도가 아닌데 왜 불교에 대해 알아야 하느냐’하고 자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 땅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우리 생활 속에 아주 깊게 침투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불교적인 요소를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우리들은 불교적인 영성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고 김수환 추기경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석굴암을 방문했을 때 본존불을 보고 경탄한 나머지 한 시간이나 쳐다봤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은 가톨릭 교도라 유럽에서 수많은 그리스도교의 성상을 봤지만 별 감동이 없었는데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는 진한 감동을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추기경은 자신의 핏속에는 한국 불교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라고 첨언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김 추기경의 말에 동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라도 불상을 위시한 불교문화에 대해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에는 문화재가 산재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번에는 불상을 보려 합니다. 불상 중에는 국보나 보물이 많습니다. 석굴암의 본존불을 비롯해 서산마애삼존불이나 경주 남산 골짜기에 가득 찬 불상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불상을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유럽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교의 성상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
불상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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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좁은 의미로는 붓다의 상만을 이야기하지만 넓게는 보살상이나 사천왕상처럼 절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상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불상이 생기게 된 배경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원래 불교에서는 붓다의 유언에 따라 불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붓다는 자신을 개인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붓다 사후 수백 년 동안 불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기원 전후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중에 특히 간다라 지방에서 일어난 변화가 우리의 주목을 끕니다. 간다라 지방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인데 정확하게는 페샤와르 지역으로 이전에는 불교를 신봉했습니다. 불교도들은 이 지역에서 그리스 문명을 만납니다. 이곳은 기원전 4세기 초엽에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이래 그리스 문명이 진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때 불교도들은 제우스나 헤라클레스 같은 그리스 신들의 성상을 처음으로 접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고 자기들도 붓다를 상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눈으로 보고 기도할 수 있는 상(image)이 존재할 경우 종교적인 효과가 더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팽창하면서 숭배의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불교도들은 불상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던 터라 그리스의 성상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때 생겨난 어떤 불상은 그리스 조각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동양인이었던 붓다가 완전 서양인으로 탈바꿈한 것이지요. 제가 어떤 박물관에서 보았는데 어떤 불상은 아예 헤라클레스 상을 그대로 갖다 쓴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불상이 눈이 깊게 파이고 콧대가 오뚝하게 되는 등 서양인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에도 전달되었는데 석굴암의 본존불에서도 미약하지만 그런 모습이 보입니다. 본존불의 코 부분이 우리 동북아인보다는 서양인의 그것을 닮은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 |
불상의 특징과 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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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불교에서는 불상이 32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다 볼 수는 없고 간단히 보면, 큰 귀와 육계(肉髻)라 불리는 치솟은 정수리 부분, 평발, 이마에 있는 제3의 눈(백호-하얀 털) 등이 그것입니다. 또 불상의 머리카락을 보면 소라 모양으로 꼬여 있는데 이것 역시 전형적인 불상의 양식으로 보통 나발이라 불립니다. 이런 것들을 다 합하면 32 가지가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특징을 다 드러낸 불상은 없습니다. 다만 상징적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 |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상을 보고 식별하는 일입니다. 불상은 종류가 아주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입니다. 이 세 붓다에 관해서 아주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이중 석가불만이 유일하게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 불상은 석굴암 본존불에서처럼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깨닫기 직전의 모습으로 대지의 신에게 자신이 깨달았음을 증언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 아미타불은 상상 속의 붓다로 우리가 죽은 뒤에 가는 극락(천당)을 관장하는 붓다입니다. 이 불상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있는데 9가지로 구분하여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극락이 9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비로자나불은 기독교로 말하면 신에 해당되는 존재로 석가나 아미타불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근원적 존재입니다. 이 불상은 한쪽 손으로 다른 손의 집게손가락을 감아쥐고 있는 형태를 취합니다. 이것은 이 현상계와 현상계가 존재하게 만든 원리적인 세계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지요. 이 이외에도 약사불 같은 불상도 있는데 만일 손에 약병을 들고 있으면 무조건 약사불로 보면 됩니다. 또 우리와 친숙한 미륵불도 있습니다마는 미륵불은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라 한 마디로 무엇이라 말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불상은 많은 경우 보살들과 같이 나오는데 보통은 2명의 보살들과 짝을 이룹니다. 이른바 삼존불로 좌우에 보살들을 하나씩 거느리고 있지요. 보살과 불상의 차이는 거의 보살만이 머리에 관을 쓴다는 데에 있습니다. 보살이란 자신의 깨달음보다 중생 구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재들인데 사실은 이렇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일반신도들을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입니다. 역할로 보면 붓다의 비서라고나 할까요? 이 삼존불들은 그 조합이 조금씩 다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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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영산전의 아미타불(경북 영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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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석가불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대동하고 나타나는 게 규칙인데 나중이 되면 이런 조합은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삼존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서산에 있는 마애삼존불 아닌가 합니다. 가운데에 있는 불상의 미소가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천진난만하고 자애로운 미소가 일품입니다. 불상의 얼굴은 그 지역 사람들의 얼굴을 닮는다고 합니다. 경주 남산에도 이런 얼굴의 불상(배리 삼존불)이 있는데 아마 한국인들의 내면적인 모습은 바로 이 불상의 얼굴을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것을 통해 보면 한국인들은 아주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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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하고 자애로운 미소가 일품인 서산마애삼존불상. <출처: Brian Chandra at en.wikiep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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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산책] 석굴암, 중생의 해탈 염원 담긴 '대승불교의 꽃' | 한국경제 200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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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링크 : 네이버뮤지엄에서 '불상' 전시 보러가기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ncc.phinf.naver.net%2Fncc01%2F2012%2F5%2F9%2F57%2F%25B3%25D7%25C0%25CC%25B9%25F6%25B9%25C2%25C1%25F6%25BE%25F6.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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