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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3일 인천 용현동 성당에서 부른 노래를
후배 박영대가 캠코더로 찍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외사랑을 통해 본 공동선
내 사랑.
외로운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인가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보고 싶지만
마음 하나로는 안 되나 봐요.
공장의 하얀 불빛은
오늘도 그렇게 쓸쓸했지요.
밤하늘에는 작은 별 하나가
내 마음같이 울고 있네요.
눈물고인 내 눈 속에
별 하나가 깜박이네요.
눈을 감으면 흘러내릴까봐
눈 못 감는 서글픈 사랑.
이룰 수 없는 내 사랑.
(한돌 사/곡 외사랑 전문)
1984년 신형원에 의해 발표된 이 노래는 1992년 김광석이 다시 부르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게 되었다. 김광석보다 한 해 먼저 양희경이 불렀고, 김광석 이후에도 여러 가수들이 불렀지만, 그래도 김광석의 애절한 음색과 창법이 각인되어 마치 그의 노래처럼 되었다.
이 노래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은 이렇다. 신형원에 의해 처음 발표될 즈음, 가난과 빚에 쪼들린 나는 돈암동 성신여대 근처에서 ‘공간 부름’이라는 음악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노래쟁이 손님들을 대상으로 부정기적인 가요제를 열고 있었는데 이름 하여 ‘부름가요제’이다. 촛불집회 주제가 ‘헌법 제1조’와 ‘서울에서 평양까지’라는 노래를 만들었던 민중가요 작곡자 윤민석(당시 대학생)도 친구와 함께 ‘해보라지’라는 팀으로 참가했었던, 언더 쪽에서는 나름 괜찮은 가요제였다.
3회 가요제를 진행하고 있는데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기간을 정해두고 신청자를 접수하여 예심까지 치렀는데, 난데없이 한 여학생이 접수도 안한 상태에서 꼭 참가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것이었다. 충분한 기간에 걸쳐 게시하였던 안내문을 못 보았다는 그녀의 눈빛은 간절하다 못해 ‘애절’에 가까웠다. 원칙적으로 안 되지만, 세상에 안 될 일이란 없는 법.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파리채는 걸리면 즉살이지만, 독일에서 보았던 파리채는 가운데가 하트(♡) 모양으로 뚫려있었다. 파리에게도 행운을 주자는 뜻에서라고 한다. 지구촌에 69억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는 그 종류가 69억 종류라는 것이지만, 그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크게 분류하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사람’과 ‘될 일도 안 되게 하는 사람’
기왕 말이 난 김에 한 가지 분류를 더 소개하자면, 내가 딱 한번 결혼식 주례를 서 보고나서 알아낸 분류로써, ‘결혼식 주례를 서본 사람’과 ‘안 서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녀에게 베푼 특혜의 결과는 독일에서 태어난 파리에 버금가는 행운이 되어 대상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참가자들은 물론 객석에서조차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술렁임이 있었다. 그러나 심사위원장을 맡은 나는 동료 심사위원들의 엄호를 방패삼아 단호하게 밀어붙였다.
“노래경연대회(Contest)가 아닌 가요제(Song Festival)이기에 창작곡이 가산점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작품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창력이 우선시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요건들은 노래라는 표현예술이 주는 감동으로 귀결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예심도 치르지 못한 채 뒤늦게 참가했고, 다른 참가자에 비해 가창력도 뛰어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창작곡도 아닌 기성곡을 불렀던 손나연씨가 대상의 영예를 얻은 것은, 그녀가 우리에게 준 감동 때문입니다. 서투르게 연주하는 기타반주와 끊일 듯 이어질 듯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우리 모두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몰입되었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최고상을 받게 된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1978년 제 2회 MBC대학가요제 광주전남 지역예선 때 손나연씨와 똑 같은 행운을 만났던 적이 있으며, 내 생애를 통해 남의 노래를 듣고 그토록 깊은 감동을 느꼈던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그날 손나연씨가 불렀고 그래서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있는 노래가 바로 ‘외사랑’이다. 지난 가을 이 노래를 만든 한돌 형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 얘길 했더니 꼭 한 번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왜냐하면 여러 가수들이 불렀지만 제대로 감동해본 기억이 없었다고 한다. ‘외사랑’은 물론 ‘개똥벌레’ ‘불씨’ ‘유리벽’ 등, 이른바 그가 만들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노래들에 대해 그가 갖는 연민이 대부분 그러했다. ‘유리벽’은 인류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실제로는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UN본부 건물을 상징하며, ‘불씨’는 전두환 대통령의 무력통치하에서 꺼져갈듯 이어지는 민주화와 통일의 희망을 담고 있고, ‘개똥벌레’는 무시되고 천대받는 소외계층 삶의 애환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노래가 만든 사람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시시한 사랑이야기로 와전되거나 굳이 내용이 필요치 않는 캠프송 같은 것으로 수용될 때(심한 경우 노래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율동까지 곁들여) 너무 슬펐다고 한다. 삶이 논리보다 즉흥에 가까운 것이기에, 삶의 한 표현인 예술 혹은 노래 또한 설명보다는 영감이나 느낌, 즉 감동을 우선으로 하는 장르이다. 그래서 노래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것도 노래를 가지고 무얼 설명하는 것도 다 어쭙잖은 일이 되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수용자의 입장만 상업적으로 중시되는 왜곡된 노래문화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슬픔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외사랑’으로 돌아가 본다.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얘기가 ‘외사랑’이기 때문이다. 사전에도 없는 이 ‘외사랑’의 뜻은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가 알지만 응답이 없는 사랑’을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가 모르는 채 혼자서 하는 ‘짝사랑’보다 훨씬 가슴 아픈 사랑이다. 이 노래에 담긴 외사랑의 주인은 아마도 1970년대 ‘여공’ 혹은 속된 말로 ‘공순이’라고 불리었던 여성 공장노동자일 것이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은 아마도 공장의 간부 혹은 대학생이었을 수도 있겠다. 작곡가 한돌은 이런 작고 여린 소재를 통해 좀 더 깊고 간절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른바 그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상황과 사회상황에 관한 예리한 시선을 표현함으로써 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향점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 혹은 모든 사람이 희망하는 세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 이유가 바라는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어줄 수 있는 주체가 그것을 알면서도 이루어주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사랑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슬픔, 안타까움, 기다림, 외로움, 쓸쓸함의 사랑. ‘외사랑’.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서 왜곡되거나 단절된 것이 어찌 여공의 지순한 사랑이나 한돌의 노래뿐이겠는가. 이제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배운 ‘명제에 대한 역, 이, 대우’ 중 아마도 ‘대우’ 쯤에 해당될 것 같은 이야기로 가보고 싶다. ‘하느님의 외사랑’에 관한 얘기다. 대자대비하시고 무상, 무한, 무조건이라는 영원한 하느님의 사랑을 ‘외사랑’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가? 이를테면 그런 사랑의 내용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면 하느님께는 조금 죄송한 말씀이 되겠지만 ‘짝사랑’이 될 수도 있다(죄송하더라도 하느님 사정이야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 그러나 그런 하느님의 사랑을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다면 이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 되고 만다.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우주만물을 차별 없이 사랑하시고,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랑을 저버리지 않으시며, 끝날 일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의 끝날 까지 함께 하고 싶어 하시는 그 사랑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런데도 그 사랑이, 빤히 잘 알면서도 이루어주지 않거나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외사랑’이라니...
젊었을 때부터 늘 혼자 해온 생각이 하나 있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의 선택에 관한 것이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며,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내어주고, 내게 잘못한 사람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는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과연 예수께서 선택을 잘 하신 것인가? 하느님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삶의 실천으로 보여주면 사람들이 잘 알아듣고 행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갈 것이라고,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고 판단하였기에 선택한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결과론적으로 접근한다면 판단이나 선택이 잘못일 수도 있으며, 그렇게 가정하고 새롭게 접근한다면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2,000년 전쯤에 예수께서 하셨음 직한 다른 선택은 무엇이며, 만일 그랬다면 오늘날 기독교의 존재여부 혹은 실상여부는 어떠할까? 기독교리 대로라면 이 선택은 곧 하느님의 선택이 된다.(*하느님의 선택이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성서적 근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은 ‘노아의 방주’때 하느님께서 ‘사람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다’는 내용을 상기하시기 바란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다녔던 1970년대 초에는 ‘인문계’와 ‘실업계’라는 두 종류의 학교가 있었고, 세칭 일류학교라는 곳은 대부분 ‘인문계’였다. 이 말도 안 되는 제도를 근거로 유추해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엘리트란 인문학도들이라고 봐야한다. 그런데 이 엘리트들이 좋은 대학 나와서 대부분 우리 사회 안에서 기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인문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 실제로는 기능인처럼 살고 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나 연구보다 일하는 곳에서 살아남는 일을 우선으로 삼고 있다면 기능인이라고 봐야한다. 그래서 지난봄 내가 다녔던 학교 동문들을 대상으로 한 초청강의 때 독설에 가까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다녔던 학교가 인문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실업계였다’고. 이 말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실상을 표현한 것일 뿐, ‘실업계가 인문계보다 못하다’는 비하의 의미는 전혀 없음을 밝혀둔다.
모든 사람들이 꿈과 이상을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 그러나 그 이상과 실제가 얼마나 다른지, ‘자기인식이나 가치추구’와 ‘사회적응과 생존을 위한 기능’사이의 함수관계는 어떤 것인지, 조금 명료해진다. 이와 같이 이상과 실제기능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기독 교의나 교리는 물론(모든 종교가 다 그렇겠지만) 불변이라고 하는 본질적인 하느님의 사랑도 실제로는 엄청나게 다른 기능으로 왜곡되는 것이 현실이다.
‘신은 존재라기보다 과정이다’라는 화이트헤드의 견해, 그래서 ‘하느님은 누구?’보다는 ‘하느님은 무엇?’이어야 한다는 류상태 목사의 신선한 접근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잘 알고 있어도 삶으로 살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이기심에 따라 치우침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는 달리 하느님은 어떤 경우에도 공평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하느님을 공평한 채로 그냥 두지 않는다. 오히려 불공평하더라도 나만 사랑하길 바란다. 그래서 자기에게 유리한 하느님을 각자 만들어 갖거나, 그 전에 이미 잘 만들어진(*리처드 도키슨의 ‘만들어진 신’ 참고) 하느님이라고 해도 자신의 욕구대로 변절시켜 간다. 오래전 미국의 한 화장품회사가 몰락위기를 맞았을 때, 한 소녀가 광고 카피를 바꾸라고 제안했다. 그녀의 제안대로 ‘모두가 예뻐질 수 있는 비결’에서 ‘당신만이 예뻐질 수 있는 비결’로 바꾸었을 뿐인데, 일약 세계 굴지의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하느님은 이 화장품회사의 성공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의 한계를 예수께서 몰랐을 리 없다면, 다른 판단과 선택이 결코 무모한 추론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원죄는 이기심이며 이 이기심은 삶의 유한성에 닿아있다고 하지 않는가.
아! 하느님의 외사랑.
이 하느님의 외사랑은 모든 종교의 ‘외사랑 신드롬’ 중 하나일 뿐이다. 모든 종교가 다양성수용과 서로존중을 공통으로 신봉하지만 실제 기능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공동체의 최고 이상은 교회가 없어지는 것(부연하면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어 교회가 굳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종교를 통한 참된 공동선을 이루려면 모든 종교가 없어져야 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하느님만 영원하다’
사라지는 목록에도 순서가 있을 텐데, 교회나 종교가 최우선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안에 내재된 종교심과 참 하느님에 대한 기억만 남긴 채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하느님(사람만이 아니라 우주 만물에 깃든)만 계시는 세상을 만나고 싶다. 오늘도 하느님의 목소리로 ‘외사랑’을 듣고 있다.
(김정식 로제가 격월간 '공동선'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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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외사랑이 그런 의미였군요. 사랑이랑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