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상경하여 돌아와 회상하니
아내제사를 서울아들이 모신지 벌써 세 번째이다. 명절 때는 조상님제사를 모시러 아들도 부산으로 오지만 수술일정 등에 억매이다 보니 어머니 기제사를 모신다고 매번 부산으로 온다는 것이 사정상 너무 어렵기도 하였다. 요즈음은 제사를 나누어 모시기도 한다기에 3년 전부터 서울에서 모시도록 하여 제사 때는 여식과 함께 내가 상경하고 있다.
여식이 마침 중간고사 중이라 조퇴 없이 오후 3:50분 SRT로 사위와 같이 갔었는데 그동안 훌쩍 더 커버린 손자 녀석의 영어스피치 솜씨에 십년간 영어교사를 한 적이 있는 본인도 감탄을 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손자가 보고 싶어 서울까지 혼자 왔다가 가기도 한다.” 고 들었던 얘기가 생각나서 내가 너무 인정머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도 해본다.
조상님 제사는 우리 집 고유방식대로 당일 새벽(0~1시)에 지내지만 세월의 변화에 순응하여 아내의 기제는 저녁 무렵에(20~23시)모시고 있다.
또한 지방(紙榜)과 제문은 종가집인 전통방식대로 아직은 한문식으로 본인이 독축하고 있지만 “維歲次..... 중략..... 尙饗” 이란 제문을 읽고 나서는 어머니께 아뢰고 싶은 내용을 제주가 스스로 고하는 형식으로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하였다.
음력 무술년 3월9일 아들 최선종은 어머님께 아룁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 해가 바뀌어서 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이해 지난날을 생각하니 어머니 은혜가 하늘같이 크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에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공손히 받들어 드리오니 그 마음을 살펴 주시옵소서.
꽃이 만발하는 찬란한 봄날에 태어나서 누구보다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따스한 봄날에 저 세상으로 떠나신 어머님, 아직 살아 계셨다면 이제 일흔이 되어 손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며 무척이나 좋아하셨을 거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저를 비롯해 아버지, 누나, 매형, 집사람, 재민이, 윤찬이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늘 힘든 일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럴 때 마다 강한 정신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시고 암 투병 중에서도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마지막 순간까지도 열심히 공부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어머니한테 배운 정신력과 치열함으로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인 재민이와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윤찬이가 사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잘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아들 최 선 종 올림
아직은 며늘아기가 덜 익숙하여 고맙게도 음식솜씨 좋은 서울 막내 제수가 동생과 합작으로 형수님을 생각하여(남동생이 같이 굽었다는) 준비하여 왔다는 생선류와 나물류를 제사 후에 멧밥으로 먹으면서 지난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여식과 사위는 제사모신 직후 밤 12:30분 고속버스로 하부하여 뒷날 직장근무에 별다른 어려움도 없이 보냈단다.
난 일 년 만에 상경한지라 부산에서 민영 친구에게 사전에 연락해본대로 제사파짓 날 마침 몇몇 친구들이(이제는 백수가 다된 과거에는 사회 중추적이었던)모여 한담을 나눈다는 경복궁역 옆 어느 유명한 식당에서 보통은 돌솥밥에 갈비탕으로 생탁 한두 잔으로 끝내지만 그날은 술통인 내가 왔다고(지금은 나도 반통으로 줄었지만)제법 주거니 받거니 한 것 같다.
자리를 옮겨 커피솦에서 진주고 졸업 50주년의 행사를 어쩌다 유야무야로 보낸 것을 아쉬워하며 부산지구 회장을 또 맡은 본인의 제의로 2년 후 55주년을 Home coming day로 전국의 친구들이 모교 진주고를 중심으로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락호야!(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를 외치며 노년의 즐거움을 한번 시도해 보자는 이야길 나누었다.
마침 또 다른 서울동기모임인 삼사년 전에 본인이 참석하여 미취하여 모자도 잃어버린 적이 있는 청목회(청계산을 등반하는 목요산악회)가 다음날 청계산 아래에서 모인다는데 참석해서 오랜만에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또한 재건축으로 삼호가든 멋진 집으로 다시 이사를 하였다는 누나와 곤지암 화담숲 입구에 커피숖을 시작하여 바빠서 틈내기도 어렵다는 여동생도 보고 싶었지만 부산의 다른 일정도 있고 하여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부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귀국하여(35년전) 속칭 보따리 장사(시간강사) 2년 만에 동의대에 조교수로 임용되고 나서 친구들의 권유로 맡겨 된 진주고 35기 회장 임기 중 하계 야유회를 부곡지서장인 동기(김명철)의 도움으로 온천지 부곡에서 개최할 때 부산 마산 울산 친구들 모두 초청하여 백여 명도 훨씬 넘는 친구들의 먹을 음식과 술안주를 몽탕 준비해주었고, 1985년 11월 11일 진주공설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65년 졸업한 진주시 3 개교(진주고, 진주농고, 동명고) 제11회 친선대회 주관기 회장 부인으로서 자동커피포트 등 손색없는 준비에 전력을 기울어서 내조해준 당신에 대한 고마움과 재발한 암투병중에도 가족에게 근심걱정을 기치지 아니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승천한 당신을 생각하면서 집안의 대소사 모든 행사 때마다 이벤트의 여왕이라는 별칭에 알맞게 마련해준 당신을 아직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하고 천국에서도 무슨 이벤트를 꾸미고 있나 궁금해 하면서 의붓자식 눈치 보듯 지금의 집사람 눈치 보는 나를 이해해 주시구려! 또한 2년후에 진주고 동기들의 재회의 기쁨을 나눌수 있는 Home coming day가 성사되기를 꿈에 부풀어 기대하면서 세월을 유수처럼 흘러보낼까 하오.
귀가하여 아들이 서울나들이 경비에 충당하라고 통장에 넣어준 성의에 감사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함께 장락만세(長樂萬歲)를 힘차게 불러봅니다.
무술년 만춘에, 옥당 삼가.
첫댓글 졸업기념 30주년 Home coming day를 성대하게 개최한 후 이건상 친구가 35주년 기념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도록 한다는 약속을 한후 운세와 타이밍이 맞지 아니하였고, 가끔 선배들이 행하기도 한 50주년도 우리는 유야무야로 보냈습니다.60주년 기념이 더 큰 의의가 있겠지만 더 늙기전에 2년후 55주년을 같이 모여 얼굴이나 모면서 추억에 젖어드는 행사를 하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한번 즐겁게 해보도록 뜻을 모아 노력해봅시다.
무술년 4월30일 옥당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