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비코스...ㅋㅋㅋ 언제 : 2013.03.02(토) 어디로 : 경남 거창 보해산 누구랑 : 산마루 따라 아내랑 거창이라면 당장에 생각나는 것이 국민학교때 부터 들어온 "거창 양민 학살 사건" 과 산마루 산악회의 숨은 일꾼 "반딧불이" 님의 안태본이라는 것 뿐인데?... 거창양민학살사건은 한국전쟁 때인 1951년 2월9일부터 사흘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무장공비 소탕에 나선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이 14세 이하 어린이 385명을 포함한 양민 719명을 한 곳에 모아놓고 총살한 사건이다. 당초 산행계획은 원거기 마을 사과 과수단지 방향이었으나 오늘 산행은 거리2리 외장포에서 시작되었다.
07:10 안성 롯데마트 → 10:23 거기2리 내장포(산행시작) → 11:25 지능선 도착 → 11:58 주능선 도착(진양기맥) → 12:01 너럭바위 → 12:13 점심 → 12:38 보해산 정상 → 13:55 암릉(계단) → 14:07 고대마을 삼거리 이정표(하산) → 14:37 보림사 → 14:45 고대 마을 회관 → 15:02 외장포 산행끝(4시간 39분) → 07:10 뒤풀이후 평택으로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1,000미터급 봉우리가 스물다섯개가 된다는 거창의 산들... 10:23 거기2리 마을 입구에 버스가 멈추자 우선 문화 류씨 아무개의 공적비가 눈에 들어온다. "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라!.....남이사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갓 쓰고 박치기를 하든 말든 신경쓸 일이 아니건만 마을 입구에 이렇게 대단한 석물을 만들었다면 인품과 덕망이 꽤나 이름 있는 사람이거나 높은 관직의 벼슬했던 사람일텐데 짧은 내 식견으로는 아무개라는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별일도 아닌것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문화 류씨 대종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역대 인물을 찾아 보았으나 류심이란 이름은 없었고 단지 왜 그네들은 버들(柳)를 두음법칙에 따라 "유"라고 읽지 않고 굳이 "류"라고 읽는지 궁금했는데 성씨를 호칭하는 문제를 대법원에 헌법소원까지 해서 승소했다니 그네들의 선조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한거 아닌가?.... 문화류씨 대종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10:25 왼쪽으로 가면 보해산에 이르는 외장포 마을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금귀봉에 이르는 내장포 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이름에 걸맞게 그럴싸한 내력이 있기 마련인데 심심산골 벽촌에 쌩뚱맞게 물이 드나 든다는 뜻의 개포(浦) 자(字)가 마을 이름으로 붙은 것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지고 뒤져봐도 마을 이름의 연혁을 찾을수 없으니 답답하고 깝깝하여라!.... 선두는 이미 현지 답사라도 다녀온 듯 거리낌없이 앞으로 치고 달리고 나는 오늘도 맨 꼴찌가 되어 느릿한 걸음을 옮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치고 달리는 산마루 산행 스타일에 대해 산마루를 처음 찾아온 회원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듯 다른 산악회는 몸풀기 워밈업 체조도 하고 단체 기념사진도 찍고 하는데 우리는 뭐 어쩌고 저쩌고....황대장님의 사과성 멘트가 입에 발린 소리는 아닌성 싶은데 어짜피 조직에는 색깔과 향기가 있기 마련이니 기냥 지네들 하고 싶은대로 빨리 가면 빨리 가는 대로 늦게 가면 늦게 가는 대로 냅더유!...그렇지만 멀찍이 떨어져서 관심만 가지고 지켜보면 돼유!...ㅋㅋㅋ 10:28 마을 안길 포장도로를 5분여 오르면 거기2리 마을에 이른다. 높게 쌓아올린 석축위에 팔각정과 느티나무, 비석이 눈에 들어오는데 비석의 지붕석에는 충효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요즘 보기 어려운 총효(忠孝)라는 글을 보니 꼬장꼬장한 경상도 양반 동네에 들어 왔음을 실감하는데 머리가 혀연 거시기님이 노인네 같은 걸음으로 올라간다. 인가를 벗어나도 세멘트 도로는 사과나무 밭길로 계속되고 넓은 사과밭은 밑둥이 잘린 나무들로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사과나무 처럼 늙은 할아버지가 쪼그려 앉아 톱으로 나무를 자르느라고 우리들이 올라가든 말든 쳐다보지도 않는다. 잘려나간 밑둥을 보니 전기톱으로 자른 것처럼 예리한 단면을 보이는데 거시기님은 굵은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있는 할배가 안타까운 듯 조용히 읇조린다. 거시기님 : 하아고! 할배요....전기톱이나 하나 사시지...그까이거 몇푼한다고... 맞은 편 사과 밭에는 할매가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잔가지들을 줏어 들고 있다. 잠시후 과수원 길은 Y자 형태로 이어지고 웃길은 세멘트 포장길이고 아랫길을 마른 풀들이 듬성듬성 누워있는 흙길이다. 선두가 원체 호호탕탕 거리낌없이 전진하고 있으니 나는 속으로 " 여기가 아닝개벼..." 하면서 빠꾸할거 같아 약간 불안한 생각마저 든다....ㅋㅋㅋ 10:54 부러진 잔솔기지와 솔방울이 널린 좁은 산길에 입산금지 금줄이 쳐있는거 보니 여기가 송이지역인 모양인데 길은 점점 희미해지고 붉은 비닐끈은 등로를 따라 이어진다. 11:25 지능선에 이르러 이제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희미하게 이어지던 등로는 아예 없어져 버렸고 솔갈비와 갈참나무 낙엽이 두껍게 깔린 지역을 지나니 코가 땅에 닿을만지 가파른 지역에서 최씨문중의 여인네 한 분이 다리에 쥐가 나는지 올라가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있으니 거시기님이 걸망을 내려 하얀 알약 2개를 여인에게 건네 주는데 그참에 나도 잠시 다리쉼을 한다.....역시 거시기 후미대장은 짱이여!!....간간이 미영누님의 맑은 웃음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거 보니 보나마나 거시기님은 미영누님에게 연방 단소리를 해댔을꺼다....사람은 안보여도 웃음소리를 따라 힘없는 나의 발걸음은 이어지고.... 가파른 오름길에서 잠시 잠시 뒤돌아본 덕유능선이 흐릿하게 보이다 11:58 비록 오르 내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산행은 주능선에만 달라 붙으면 먼산 조망으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그런데 회남재란 이정표가 낮설지 않다 싶었는데 양각지맥의 어느 구간인가 보다. 양각지맥은 수도지맥 수도산에서 분기한 1,237봉에서 양각산-흰대미산-회남령-보해산-큰재-금귀봉-살피재-박유산-일산봉-감토산-황강 가천교에 이르는 35.7km에 이르는 산줄기이다. 경북 김천시와 경계에 있는 수도산에서 남으로 뻗는 양각지맥은 동으로 가야산을 넘보며 단지봉, 의상봉, 비계산, 오두산으로 가는 수도지맥. 서로는 대덕산에서 남덕유로 내려오는 백두대간과 금원, 기백, 황매산으로 가는 진양기맥으로 둘러 싸여있어 사방팔방 눈길 가는대로 높고 큰 산들이 시야 가득 들어오는 곳이다. 12:01 범상치 않은 바위가 버티고 있어 올라가보니 너럭바위였더라... 우회길이 있었지만 로프를 잡고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오르면 쉽게 오를수 있다. 12:04 너럭바위에서는 골골에 흰눈을 안고 있는 덕유 주능선이 아스라히 보이고 수도산은 물론이고 황석산과 금원~ 기백까지 보인다는데 내 눈에는 다 그게 그산 같으니 원...
보해산 하봉과 금귀봉이 멀리 보이고.... 12:13 이른 봄 햇살 가득 내려쬐는 너른 터에 이르자 네 사람은 선채로 팔뚝처럼 굵은 시커먼 김밥을 손에 들고 양볼이 미어져라 우물거리는 중이고 네 사람은 본격적으로 퍼질러 앉아 이른 점심을 먹으면서 나를 보며 반색을 한다. 미영누님 : 오라버님도 어여 앉으슈!.... 빵과버터 : 아니?...여기서부터 늘어지면 금귀봉은 안갈꺼여?..... 거시기님 : 앗따 성님!...이짤로 와서 언능 일잔 허시랑게!... 친구따라 강남 간다더니 내가 금귀봉을 포기하고 비코스로 내려간 것은 오로지 미영누님이 정성껏 준비해온 매콤 달콤한 그놈의 돼지 쪽갈비 때문이었더라!....점심이나 마나 나는 누룽지 한주먹 지고 왔으니 더운물만 부으면 땡이라 쪽갈비와 오가피주로 삭신은 녹작지근 흐물흐물해 지는데 한참 앞에 갔어야 할 불사초님과 아내가 길도 아닌 잡목 숲에서 불쑥 나타난다. 빵과버터 : (속으로 : 아니?...저 여자는 산행은 안하고 어디서 뭐하다가 인자 나타나는겨?...)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금귀봉이사 코를 땅에 쳐박고 올라 가봤자 볼껏도 없으니 더덕이나 보겠다고 불사초님과 함께 송이밭을 뒤지고 올라 오는 것이렸다. 어쨋거나 나는 남은 쪽갈비를 싹싹 발라 먹은후 누룽지를 훌훌 들여 마시고 입술에 벌겋게 달라붙은 고춧가루를 물수건으로 닦아낸후 서서히 일어선다. "자~ 이제부터 산행은 룰루랄라여!...ㅋㅋㅋ 점심 먹은 자리에서 몇걸을 걸어가자 오른편에 산길다운 산길에 표지기가 여러개 걸려있다. 미상불 사과밭에서 Y자로 갈리지는 웃길에서 올라오는 길이지 싶다. 12:38 내가 한걸음 늦게 도착한 보해산 정상석에는 미영누님과 도도님이 멋진 모습으로 사진 박히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소리치고 나서 서둘러 디카 모드롤 AV 모드로 돌리고 한방 눌렀는데 옴마!....평소 하던 대로 AUTO 모드로 찍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더 잘해볼려고 AV 모드로 돌려놓고 조리개 조정을 안하고 걍 눌러 버린 것이다....그렇지만 처음으로 이런 그림을 보니 신선하고 상큼한 느낌도 든다....아전인수라!...ㅋㅋㅋ 보해산 하봉과 그뒤 뽀쭉한 금귀봉
독특하게 불쑥 솓아 오른 우두봉은 알겠는데 다른 산들은 모르겠다... 푸른파도님이 얼추 1년만에 나타났다....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은 우두봉과 형제들.... 맨뒤에 봉긋하게 솥은 산은 가야산이란다. 왠일로 오늘은 아내가 토끼지 않고 모델이 되어준다....ㅋㅋㅋ
만물상은 가야산에만 있는게 아니었더라!....
옴마?....파인 온 더 락!....ㅋㅋㅋ
13:55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는데 계단이 설치되기 전에는 여기가 보해산의 하이라이트(암릉 줄타기)였단다. 너럭바위부터 여기까지 환상적인 산행은 이어졌다.
14:07 땅바닥에 놓여진 산마루 표지기는 금귀봉 쪽을 가르키고 아내를 포함한 비코스를 사랑한 사람들은 이미 여기서 다 내려갔을 텐데 나는 뒤에 있는 부부인듯한 처음 보는 남녀에게 신경이 쓰여 우선 표지기를 고대마을 쪽으로 돌려놓고 그네들이 오기를 기다려 이쪽으로 내려가야 된다고 알려준뒤 내려 가는데 황대장님으로부터 휴대폰이 온다. 황대장님 : 성님?...어디쯤 오고계슈?... 빵과버터 : 지금 고대마을로 내려가고 있오.... 황대장님 : 안성에서 탄 부부들은 만나셨우?.... 빵과버터 : 그래서 내가 그사람들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내려가는 중이오...나 잘했쭈?.... 나도 황대장님의 관심 종목중 하나 였더라!.....ㅋㅋㅋ 포근하고 아름답기까지한 송림길을 내려가니 널찍한 묘지에서 푸른파도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14:37 파전에 동동주나 팔음직한 초라한 건물은 보림사였다. 그러나 절터의 흔적으로 보아 지난날에는 제법 융성했던 절이었던 모양이다.
보림사 절터에서... 보림사 절터에서...
외장포 마을 오른편에 금귀봉 들머리가 있었다 15:03 산행을 마치고 문화 류씨 공적비에 이르니 비코스를 사랑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금귀봉까지 다녀온 발빠른 산돌대장, 파랑새님, 남1 여1 이 뒤풀이 상을 벌려놓고 있었다. 15:39 미적지근하게 데워진 두부에 막걸리 서너잔 걸치고 일어나 도로에 나오니 성황단 표지판이 눈에 띄어 가북리 쪽으로 십여메다 걸어가다가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 몰라 되돌아 오니 실제로 성황단을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성황단을 캡처해 왔다. 사람 머리 크기의 자연석을 돌무지무덤처럼 쌓아서 만든 돌탑으로 높이 4.6m, 윗 둘레가 4.4m, 밑 둘레가 24.3m이다. 돌무지 양옆에 큰 소나무가 하나씩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동제의 신체(神體)가 거목과 돌무지가 결합된 형태인 듯하다. 돌무지 뒤에 네 개의 돌기둥을 세워서 성소(聖所)의 경계와 비보(裨補)를 하고 있다.
유래에 관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마을 사람들은 500년 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말무덤이라 일컫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마을 여씨 집안에 보통 아이와 다른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어머니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아이가 선반에 날아올라가 있었다. 아이가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후에 역적이 되어 삼족이 멸족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아이를 다듬이돌로 눌러 죽였다.
그러자 별안간 천둥이 치고 무지개가 선 뒤에 뒷산 깃대봉에서 용마가 아우성치며 마을 앞으로 세 발자국만에 뛰어와서는 아이와 죽음을 같이했는데, 이 돌탑이 이 때 죽은 말의 무덤이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마을의 태평무사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 동제는 자정에 제주(옛날에는 생기복덕이 있고 깨끗한 사람을 선정했는데, 근년에는 이장, 새마을지도자 등 마을의 대표가 맡는다.)가 마을 뒷산의 상당, 그리고 마을 뒤편 밭 가운데 있는 중당에 지내고 마지막으로 하당인 이 말무덤에 조용히 유교식으로 거행한다.
이것은 민간신앙의 추이(推移)를 알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돌무지를 동제신의 신체로 삼은 것은 경상남도 일대에 보기 드문 사례이고, 유래설화로 아기장수 전설이 수반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15:40 금귀봉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다 내려왔는지 모르지만 뒷풀이는 아직 진행중이다. 무엇에 쓸려는지 모르지만 석수쟁이가 돌깨는 작업을 준비중이다. 돌깨는 작업을 하게 되면 돌가루가 날려 뒷풀이는 당근 깽판이 될거고.....금의환향은 아닐지라도 고향 땅 산에 올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지냈는데 마지막에 돌가루룰 뒤집어 쓰게 됐으니 반딧불이님이 득달같이 나선다. 나야 일찍 비코스로 내려온 덕분에 돼지고기 찌게에 막걸리도 몇잔 마셨으니 어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솔직히 놀부같은 심보가 되어 약간 즐기는(?) 기분으로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ㅋㅋㅋ. 반딧불이님은 처음에 좋은 말로 사정 했을꺼고 막걸리나 한잔 드시고 하라고 구슬려 보기도 했을꺼고 종당에는 언성을 높여 따지고 달라 들었을꺼다.... 구경중에서 재미난 구경은 싸움 구경이라고 우스개 소리도 있더라만 맹자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선하지만 나쁜 환경이나 그릇된 욕망 때문에 악하게 된다고 주장했고, 순자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악으로 보고, 도덕적 수양은 교육을 통한 후천적 습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니 나는 선과 악을 겸비한 카멜레온 같은 존재가 아닐까?....ㅋㅋㅋ 반디부라...석수쟁이도 낫살깨나 먹었을 텐데 외지것들이 놀러와서 밥을 먹고 있는데 저것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되나 말어야 되나 고민했을 꺼고 우리는 그저 재미삼아 왔다가 휭하니 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저 양반이사 일당 벌어 처자식 멕여 살려야 되니 그냥 내비둬...OK?.... 16:25 따~ 따~ 따~ 따~ 따~닥...... 석수쟁이의 돌깨는 소리만 이른 봄날 오후 한적한 시골마을 정적을 깨고..... 우리는 그렇게 평택으로 갔더라!.... (산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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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형님 글을 읽고서야 산행이 마무리 되는구만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산은 나에게... 안전하게 잘 다녀왔슴에 감사하라 하고 ~~~
형님의 글은 나에게 저 산을 잊지를 말라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_()_
보해산..! 갔다온것은 분명한데 고문님의 후기를 보기전에 누군가 그산 어때? 라고 묻는다면 전해줄말이 전혀 떠오르질 않았을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방금 공부를 했거든요 ㅋㅋㅋ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