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또 하나의 나
툭…
돌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다시 한 번, 작은 돌을 집어 들어 물속으로 던진다.
돌은 수면과의 짧은 마찰을 일으키며 다시 깊이 가라앉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빌어먹을, 어디서부터 어긋난 거지…?’
그렇게 물속으로 하염없이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은
한참을 연못 앞에 쪼그려 앉아있던 선호였다.
푸른 눈의 선호도 곧잘 산책을 나와 사색에 잠겨 있곤 하던 그곳,
용 모양의 석상이 자리한 산사 내 연못 앞에서
선호는 무언가 잔뜩 심란한 얼굴로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내가 왜 그 때…
박충재, 그 머저리를 구했을까.
선호는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극락으로 향하던 문이 열리던 날.
극락의 모든 악귀와 요괴를 이 세상으로 끌어오리라 마음먹었던 날,
그러나 모든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문을 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요조건’인
충재를 자신의 손으로 탈출 시켰기 때문에.
충재를 대신한 ‘자기희생’으로 신혜성이 그 문을 닫으며
극락 혹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에.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내가 그 때, 그 차원의 문 안에서 박충재를 빼내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극락을 열어두었더라면,
지금 이 세상은 수없이 죽고 죽이고, 온 천지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더할 나위 없는 아비규환으로 변해있었을 텐데.
내가 바라던 그 세상이 열렸을 텐데,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해오던 그 멸망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어째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흔들렸던 것인가.
그러다 선호는 문득 손을 들어 가만히 제 심장에 올려놓는다.
혹시… 이 녀석일까.
이놈이 그 순간 깨어나서 그랬던 건 아닐까.
그렇게 자신 안에 잠재운 푸른 눈의 선호가 순간 벌인 일은 아니었을까 의심해본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으니까.
나는 악인(惡人)이니까. 이놈을 대신해 나는 그 길을 택했으니까.
나에게 선의(善意) 따위는 없으니까.
내가 자의(自意)로 그랬을 리 없으니까.
내가 이런 멍청한 집단에게 그런 동정심을 발휘 할리 없으니까.
설마 내가 진심으로 박충재 그 녀석을… 살리고 싶었을 리 없으니까.
나는 절대 그럴 리 없으니까.
나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니까.
나는 악의 왕이 될 거니까.
그것만이 내가 바라 온 세상이니까.
그런데 왜‥ 대체 왜‥ 왜…!!
순간 선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진정 시키려는 듯 후…하고 심호흡을 한다.
아니야, 아니야… 침착하자.
순간… 분노해서 그런 거야.
그 자가 이집 놈들과 나를 똑같이 취급하며 그 순간 함께 쓸어버리려 했으니까.
그에 대한 내 분노를 신혜성 그 자가 교묘히 이용하고 조종했으니까,
그래서 순간 판단착오가 있었던 거야.
그 뿐이야… 그 뿐이야.
계획은 다시 짜면 돼. 그래, 다른 방법을 찾자.
나는 다시 일어설 거야. 반드시 복수할 거야.
나를 멸시하고 능욕했던 하찮은 인간들 따위 모조리 …죽일 거야. 모조리 멸하게 만들 거야.
그래, 그게 진짜 ‘나’야.
그래. 그럴 거야. 반드시 …그렇게 만들 거야.
그렇게 지독한 자기암시 속에, 선호가 초조한 듯 연못 앞을 서성이며 손톱을 물어뜯는다.
..........!!!
그 때 무심코 연못을 본 선호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바람 없이 잔잔하게 흔들리는 물결 위로 서서히 사람의 형체가 나타난다.
무언가 흐릿하다 점차 선명하게 어떠한 형상을 그려나간다.
‘뭐지…?’
선호의 능력인 곧 들이닥칠 미래에 대한 '예언'이 물결 위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지, 선호가 긴장감 어린 얼굴로 내려다본다.
그런데…!
물빛 위에 비친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곁에 서있는 것은 충재였다.
바로 이곳, 연못 앞에서 자신과 충재가 머리를 맞댄 채 따뜻하게 포옹을 나누고 있다.
그 모습에 선호가 경악 한다.
말도 안 돼! 그토록 마음을 다 잡았는데 왜‥ 도대체 왜…!
설마, 설마 곧 푸른 눈의 그 놈이 깨어나기라도 하는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왜 저 멍청한 놈과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단 말이지?
설마 그럴 리가... 절대 그럴 리 없어. 절대 그렇게 두지 않아!
그리고는 선호가 분노가 일렁이는 얼굴로 이를 꾹 깨물고는 주변에 놓인 커다란 돌덩이를 들어올려
풍덩! 다가 올 미래가 펼쳐지고 있는 물 한 가운데로 집어던진다.
순간 따뜻한 포옹을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의 형체가 순식간에 흩어진다.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 한 채, 선호가 그 앞에 서 씩씩 거린다.
그 때, 그런 선호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다가온 그림자.
그리고는 그의 등으로 꽂히는 나지막한 한마디.
“왜…? 혼란스러워‥?”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 했던 선호가 놀라 돌아본다.
그런 선호 앞에 담담한 얼굴로 마주선 것은 충재였다.
“다신 소리 없이 내 뒤로 다가오지 마라. ‥죽는 수가 있으니까.”
마치 자신의 초조함이 들키기라도 한 듯, 선호가 한껏 날카로운 얼굴로 경고를 한다.
충재는 동요 없이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이다.
“대답해. 혼란스럽냐고 묻잖아.”
“무엇이?”
“너 자신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싶어서 그래?”
“괴롭고 불안하잖아. 네가 …나를 구해서.”
충재가 정곡을 찌른다.
선호의 고뇌를 정확히 간파한다.
푸른 눈의 선호가 아닌, 붉은 눈의 선호가 자신을 구했다.
그것은 충재에게도 혼란이었다.
‘왜? 어째서? 나도, 사람들도, 세상도 모두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아이가 왜 그 순간 나를 구한 걸까?’
그 물음이 수도 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렴풋이나마 그 답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답을 붉은 눈의 선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충재는 선호와 마주 서 있다.
“기억 나? 어렸을 때는 말이야…
그때는 내가 아니라, 네가 나를 좋아했었던 거.”
“……”
“너는 이상하리만치 나에게 관대했었어.
너는 늘 방긋방긋 웃고 친절하다가도, 한 번씩 얼음처럼 차가워지곤 했었는데.
유독 나에겐 안 그랬었어. 추운 겨울엔 장갑을 나눠주고,
한 덩이 남은 주먹밥을 내게 내밀고, 돈을 빼앗겨서 내가 울고 있으면
네 몫을 나에게 주고 너는 수 키로가 넘는 거리를 걸어오기도 했었지.”
“…웬 역겨운 추억팔이냐.”
어린시절, 이선호는 그랬다. 마냥 밝고, 어설프고, 사고뭉치에 개구쟁이였던 나를,
그래서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받던 나를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게 품어주었었다.
나는 그런 선호를 처음엔 오히려 어려워했었다. 어딘가 두려웠었다.
귀머거리인 나를 동정하는 것일까 싶어 불편했었고, 언뜻언뜻 그가 무방비 상태일 때…
아이의 눈 안에 스치는 붉은 빛을 오로지 나만이 발견할 때면 조용히 그를 피해 달아나곤 했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나를 향한 너의 자애로움은 정말 지극하고 한결 같았어.
그 해바라기 같은 사랑 때문이었는지 사춘기를 겪으면서…내 마음이 훨씬 더 너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말이야.”
“……”
“그런데 말이야. 생각해보니까… 그 때의 너는… 지금의 너더라.”
“무슨 헛소리야, 계속?”
선호가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고,
그 모습에 충재는 따뜻하게, 하지만 제법 남자다운 미소를 짓는다.
“내가 사랑한 건 푸른 눈의 선호인데,
날 사랑해준 건 붉은 눈의 선호였다고.”
“……”
“바로 …너였다고.”
“하…!”
충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선호가 기가 찬 듯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손을 뻗어 그대로 충재의 몸을 허공으로 끌어당겨 멱살을 움켜쥔다.
“...봐라. 똑바로. 나를.”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듯 이를 드러내는 들짐승처럼, 그렇게 선호가 으르렁 거란다.
자신을 똑바로 보라며.자신의 붉디붉은 눈동자를 제대로 보라며. 자신이 누군지 똑바로 알라며.
“……!”
순간, 그런 선호의 두 볼을 충재가 느릿하게 감싸 쥔다.
“걱정 마. 난 늘 너를 똑바로 보고 있어. 언제나. …변함없이.”
“……? 아하, 알겠다. 네 얄팍한 수를. 푸른 눈의 그놈이 이러면 깨어나지 않을까 얕은 수를 쓰는 거지?
감히 나에게 그 따위 계략이 먹힐 것 같나.”
그러면서 잔뜩 날이 선 눈동자로 자신을 보는 선호의 두 볼을 쥔 자신의 손에 조금 더 힘을 싣는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봤어. 지금 이 난관을 헤쳐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혜성이 형을 되찾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수없이 생각 하다가… 너에게로 왔어. 먼저 너에게 말해줘야겠다고 결심했어.”
“……”
“네가 나를 구했어. 너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아주 많이 아끼니까.”
“…닥쳐.”
"네 마음 속 깊은 곳의 울림에, 너는 움직일 수 밖에 없었던 거야.
너는 잃고 싶지 않았던 거야. 나를, …우리를.”
“닥쳐.”
“선호야. 있잖아. 너는… 너는 악하지 않아.”
“입 다물어!”
처음이었다. 붉은 눈의 자신에게 충재가 다정하게 ‘선호야’하고 불러준 것은.
그것은 늘 푸른 눈의 선호를 향하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자신 안의 푸른 선호를 끌어내려는 간절함도 아니었다.
정말 있는 그대로, 자신을 향해 붉은 눈동자를 똑바로 보며 충재는 말하고 있었다.
“…한마디만 더 하면 죽여 버리겠어.”
충재의 옷깃을 쥔 선호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분노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모두가 엉터리 같은 소리다.
신혜성처럼 자신을 동요하게 만들려고,
그래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조종하려고,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속지 않는다. 나는 결코 지금의 나를 잃지 않는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는 선호를 한없이 안타깝게 바라보던 충재가
선호의 이마로 제 이마를 가져간다. 그리고는 그 작고 마른 어깨를 꼭 끌어안는다.
아까 물빛에 비친 그 예언처럼.
푸른 눈의 선호가 아닌, 붉은 눈의 선호를 위해서.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극락을 다시 열게. 누구도 아닌 너를 위해서.”
......
그러면 네가,
그 때 나를 구했던 것처럼 혜성이 형을 구할 테니까.
너는 반드시 그럴 거야. 너는 언제나 '이선호'니까. 그래서 나를 구했으니까.
그러니까 반드시 우리 함께, 극락을 열자.
나를 대신 해 지금 즘 낯선 곳을 헤매고 있을 혜성이 형을
우리 함께, 찾아 오자.
너는 이선호니까.
너의 모든 게 ‥이선호니까.
“짜식, 제법이네.”
먼발치서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정혁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충재가 제법 컸다. 아니, 이젠 완전한 어른이 되어 버렸다.
스스로 간파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고 있다.
충재가 붉은 눈의 선호를 움직이려 한다.
그 어떤 술수나 속임수도 아닌, ‘진심’이라는 가장 큰 무기로.
그 세계에 대한 지식도, 비밀도, 문을 여는 이치도 가장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분명 선호였다.
다만 그 선호의 눈이 지금 ‘붉다’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는데,
그것을 충재가 제법 지혜롭게 풀려한다. 그것도 정공법으로.
또 다시 교차하는 대견함과 씁쓸함.
너를 지키던 나였는데, 이젠 네가‥ 우릴 지켜주겠구나.
이젠 우리가 너를 의지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사부가 이걸 보셨다면 참 흐뭇해 하셨을 텐데.
그렇게 온갖 복잡한 심정이 엉켜들자, 정혁은 그것을 떨쳐 내려는지 고개를 도리질 치며 그런다.
“그럼 우리 애들은 잘 노는 것 같고… 다른 애들 좀 보러 가볼까?”
*
“어허! 또 안 먹었네? 다이어트 중이야?”
“……”
공간으로 들어서던 정혁은, 손도 안 된 식판을 보며 그런다.
밥과 국, 그리고 간단한 반찬을 담아 탁자 위에 두었지만 둘 다 전혀 손도 되지 않았다.
정혁의 등장에도 그다지 큰 동요 없이 두 눈을 감은 채 핏기 없는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끼니를 거른 며칠 사이 퍽 야위고 퍼석해진 낯빛으로 그들은 미동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죽을 거 아니면 먹어. 그래야 고향으로 돌아가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안 그래. 알바 1호, 2호? 아니지… 너바나가 개박살 났으니까 더는 알바가 아닌가. 안 그래, 리시언? 김수혁?”
“……”
소년들은 여전히 말이 없다.
이렇다 할 탈출시도도 어떠한 급습이나 공격도 없다.
모든 의욕과 동기를 상실한 쓸쓸하고 허망한 눈빛으로 온 종일 공간안에 머무를 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너바나가 무너지고 그 난리 통에 알바3호와 4호는 일이 어그러지자 그대로 달아났다.
하지만 시언과 수혁은 그 자리를 멍하니 지키고 있었다.
너바나의 증발과 함께 갈 곳을 잃은 그들이 사부가 계시던 산사로 떠나올 때도 이상하게 그들은 그 길을 따라왔다.
갈 곳이 없는 탓일까.
아직 우리를 모두 전멸시키려는 꿈을 이루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다 죽어가던 ‘천’과 ‘명’에 대한 의리라도 남아있는 걸까.
잦은 결투와 너바나의 파괴 속에
심한 내상을 입은 ‘천’과 ‘명’은 돌무더기 속에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민우와 동완이 구했고, 은신할 곳이 없어 산사로 함께 데려왔다.
목숨 줄만 겨우 붙어있는 걸, 설이와 성운이 살렸다.
자신들을 불타는 컨테이너에 가두고 죽이려 했던 자들을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살렸다.
그리고 바로 그 옆방에 수혁과 시언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다행이야. 너희가 같이 있으니까.
뭐라도 그쪽 세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겠지.
그래야 혜성이도 하루 빨리 돌아올 수 있을 테고.”
“하…!”
그 말에 수혁이 뭔가 조롱하듯 비웃음을 흘린다.
그 의도를 모를 리 없으면서도 정혁은 능청스럽게 묻는다.
“왜? 같이 으샤으샤 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나?”
그런 정혁을 수혁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다.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을 거라 믿습니까.”
“응. 믿는데?”
정혁은 천진하게 답한다.
그 도발에 수혁은 작게 으르렁 거리는 짐승의 경고처럼 한자 한자 힘을 주어 뱉는다.
“우리가 이 세계로 와서 가장 먼저 한 게 뭔 줄 아십니까.”
“……”
“…살인.”
“……?”
“우리는 이 세계에 오자마자 찾아내 죽여 버렸습니다. ......진짜 ‘리시언’과 ‘김수혁’을.”
……?
진짜‥? 진짜 리시언과 김수혁이라니. 누가 누구를 죽였단 말일까.
“네가 ‘김수혁’이고 얘가 ‘리시언’이잖아. 근데 뭘 죽여.”
“나는 ‘시호’이고 이 아이는 ‘기연’이요. 그게 우리 세계, 극락에서의 진짜 이름입니다.”
그 말에 정혁이 껌뻑 껌뻑 눈을 구르다, 알겠다는 듯 손뼉을 친다.
“아하, 거기 극락에선 보통 외자 이름을 쓰나보지? 그럼 신혜성도 뭔가 거기식 이름을 짓고 살고 있겠다.
여기로 치면 ‘호’ 같은 거네. 뭐가 좋을까. ‘지‥랄’? ‘불곰’? 뭘 쓰고 있을라나.”
그러면서 이죽거리는 정혁을 향해, 수혁은 분노를 담아 소리친다.
“죽었다고. 그 자는 벌써 죽었을 거라고 몇 번 말해!
자신이 죽지 않으면 상대를 죽여야 한다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세계의 이동’이야.
세상에 당신이란 존재가 당신 하나 뿐인 거 같아? 아니! ‘그 세계’에 존재하는 당신만이 하나일 뿐이야!”
그렇게 소리치는 수혁을 정혁이 빤히 본다. 그러다 묻는다.
“나는 머리가 나빠. 그러니까 무슨 얘긴지 똑바로 해볼래?”
“또 하나의 나. 그 세계의 또 다른 나! 그것이 있다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건… 그 모든 걸 감수해야 하는 거라고.”
...........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그 모든것을 감수하고 이 세계로 왔다.
천주각공을 모시고 극락으로 갈 수만 있다면. 그 소원 하나로.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문을 열고 이 세계로 넘어왔고,
넘어오자마자 자신들과 똑같은 모습, 똑같은 자아로 살고 있는 이 세계의 ‘김수혁’과 ‘리시언’을 찾아 죽였다.
다행이 그들이 유명인이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대의를 위해 망설임 없이 죽였다.
그리고 그들의 행세를 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단둘이 있을 때도, 혼자말을 할 때도
원래 세계의 이름 비슷한 것 조차 서로에게 부르지 않았다.
둘은 철저하게 이 세계의 '김수혁'과 '리시언'을 위장해 너바나로 침투했다.
그 모든 고초를 치르며 여기까지 온 자신들이었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이 세계간의 이동이다.
그러나 그것을 마냥 장난스럽고, 별거 아닌 듯 내뱉는 정혁의 태도에 수혁은 화가 났던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 주제에.
..........
나의 세계에선, 나 자신은 하나뿐이다.
그러나 우주에선, 나는 '많은 나'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세계에 살고 있는 자아가 하나일뿐.
모든 세상에는 또 다른 ‘나’가 그 세계마다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와 똑같은 내가 그 세계에도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극락에… 또 다른 신혜성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던 정혁이,
천천히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고는 짐짓 진지한 얼굴이 되어 묻는다.
“그래요. 그리고 그 자아들은 타고난 운명도 조금씩 닮아 있죠.
단, 그 운명이 실현되는 세계와 시대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를 뿐.”
곁에서 말없이 있던 시언이 그렇게 답했다.
그 말에 정혁이 언젠가 티비에서 봤던 뉴스를 떠올린다.
『 건강이 악화된 이후로 국내외 별장 등지에서 칩거해 온 L그룹의 리황 회장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7년 만에 일인데요.
그의 행보가 새삼 주목 받고 있는 것은 최근 후계자 승계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공식석상에 늘 함께 동행해온 장남, L전자 리철중 사장이 아닌,
단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었던 차남과 함께 계열사 파티에 참석한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
그렇게 경제프로그램의 한 장면으로 중절모에 고급스러운 코트를 입은 노년의 신사와,
곁에서 그 신사의 절둑이는 걸음에 맞추어 걸으며 부축을 하고 있는 교복차림의 한 소년.
그리고 그 아래 자막으로 쓰여지는 하나의 글귀.
공식석상에 최초로 동행하는 L그룹 리철중(69세) · 리시언(17세) 부자
『 항간에는 상당한 수재라는 소문이 있습니다만.』
『 네. 리회장의 일곱번째 아들로 알려진 리시언 군은 현재 XX민사고를 수석 입학한 수재로 언어와 경영 관련은 물론
모든 분야에 능통하며, 현재 후계자 수업을 착실하게 받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 L그룹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상대가 S철강일텐데요, 두 기업의 유착관계는 초대 회장 때부터 쭉 이어져 오지 않았습니까.
S철강의 주요 계보에도 최근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데요, 어떻습니까. 』
『 아시다시피 L그룹과 S철강의 관계는 업계에서도 흥미로운 케이스로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L그룹은 옛부터 흔히들 말하는 만석꾼의 가문으로 한때는 '함경도 리씨 집안 돈이면 조선땅을 다 사고도 남는다'라고 할 만큼
재력을 과시해 왔는데요, S철강이 바로 이런 L그룹 리씨 문가를 100년 가까이 최측근에서 경호 해하며 보필 · 보좌 해온 문가로,
‘리씨 문가를 해하려면 김준구의 숨통부터 끊어야 한다’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충성심이 대단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게 바로 S철강의 김준구 회장이고, 화면에 나오고 있는 이 소년이 김준구 회장의 손자 김수혁 군입니다. 』
『 김수혁군 역시 최근 공식석상에 모습을 많이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까. 』
그렇게 어느 정제계의 화려한 연회장에 돈독한 사이인 듯 귓속말을 주고받고
L그룹의 회장과 S철강의 회장, 그 곁으로 각각 모습을 드러낸 두 소년이.
바로 너바나의 알바 1호와 알바 2호였었다.
그것을 떠올린 정혁이, 느릿하게 시선을 옮겨 시언을 바라본다.
시언은 그가 짐작하는 것이 맞다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잖아요. 각 세계의 자아는 서로 닮아있다고.
극락을 지배하는 지도층의 첩실과 그 첩실의 서자인 나,
그 서자의 가문을 보필하고 수호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충신의 아들. 수호.
그런 운명을 이 세계의 ‘나’ 또한 꼭 빼닮아 있었다.
“근데 왜 꼭… 죽여야만 했지?”
모든 것을 이해한 듯한 정혁이 한동안 말이 없다, 문득 그렇게 묻는다.
“그럼 어떻게 공존합니까.”
오히려 수혁이 반문했다.
이들의 세상으로, 이들의 일상으로 흡수되어야 하는데
나와 똑같은 모습의 진짜 이 세상의 자아가 버젓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계획을 이행할 수 있겠는가.
이미 이곳의 내가 있는데, 또 하나의 내가 출연한다면
그것은 대혼란, 세상의 섭리를 거역하는 대충돌이 될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리고 본능적으로... '나'는 '나'를 죽이게 되어 있어요.
유일한 존재로서의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본능이에요."
점차 정혁의 표정이 무거워 진다.
반박할 수 없다. 짧게 상상해본다.
만약, 내가 느닷없이 또 하나의 문정혁을 눈 앞에 마주한다면?
스스로가 무슨 짓을 할 지 장담할 수 없다.
또 하나의 나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부정당하는 듯한 혼란에 휩싸일테니까.
"설사 극락에 무사히 도착했다 해도, 오래 살아남지는 못 할 겁니다.
싸워야 하는 건 악령뿐만이 아니니까요.
극락의 모든 인류는 극악무도 해요.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아마 신혜성 그분을 발견한다면, ......극락의 신혜성이 먼저 죽일겁니다."
그렇게 시언은 단언했다.
그리고 그 말에 정혁은 반박하지 못 했다.
..........
신혜성은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곳이 어디고, 그 어느와 대적하더라도 결코 지지 않을 거라 확신했었다.
그것을 단 한 번도 의심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신혜성 자신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누구도 아닌 신혜성 그 자신이라면,
그 성격과 운명을 동일하게 지니고 있다면,
필시 영리하고, 잔인하며, 자비가 없는 자일 것이다.
그러한 시대, 그러한 세상의 '신혜성'이라면 더더욱.
.....
'신혜성'의 적수가 '신혜성'이라는 사실에.
정혁은 그를 잃고 처음으로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떤 놈일까. 그 세상의 '신혜성'은.
무사할 수 있을까, 우리의 신혜성은.
추운 날씨 잘 지내고 계신가요?
드디어 다음 에피에는 우리의 '미아' 혜성씨가 등장하겠네요.
가만 있어보자... 근데... 혜성 X 혜성을 내가... 감당할 수 있으려나...
뭐.. 닥치면 다 할 수 있고 그런 거니까.. 여러분 우리 함께
대한민국 신혜성 vs 극락 신혜성의 힘씬 기싸움+패악질+뿌셔뿌셔 당해봐요 (언니는 혼자 듁지않아 ^-^!!)
소~~~름 역시 사유님 필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혜성vs혜성의 싸움이라니 기대 되는데요? 대한민국의 신혜성이 제발 잘 싸워주기 바랍니다
어머나. 세상에 신혜성VS신혜성 이라니.....!! 난..... 신.음의 신혜성이 꼭 살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어요!!!!!
진짜... 최고..... 혜성vs혜성이라뇨!!!! 완전 기대됩니다!!!!
아 진짜 다음편이 너무너무 기대되는 와중에 이 말은 꼭 해야겠습니다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무려 극락의 신혜성과 우리의 신혜성인뎈ㅋㅋㅋ 중간에 문정혁리더의 다같이 으쌰으쌰하자에서 빵 터진 여운이 가시질 않네욬ㅋㅋㅋㅋㅋㅋㅋ 담주 콘서트에서 같이 으쌰으쌰할 기대에 부풀어있다가 빵터졌어욬ㅋㅋㅋㅋㅋㅋ 사유님 참... 대단하십니다...ㅋㅋㅋㅋ늘 재밌고 신선하기까지한 멋진 글... 정말 항상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
오호~~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왔으려나 들락거렸는데 드디어!♡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십니다~~♡♡
잘 보고 가요~
정말 기대됩니다~~ㅠ
어서 빨리 우리 혜성오빠를 구하러 갔으면 좋겠네요~~
충재도 너무 멋져졌어요ㅠㅠ
틀렷어 문리다 ㅋㅋㅋ 극락의 혜성의 이름은 필교야 ㅋㅋㅋㅋㅋㅋ 정말 기대됩니다 혜성과 혜성의 만남 두근두근 다른 세상의 6명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요 ㅜㅜ 시간나시면 외전으로 써주세요..
혜성이 이겨라...!!!
와 신혜성대 신혜성이라니 기대됩니다 사유님ㅠㅠ
ㅠㅠ 예상치 못한 전개...! 얼른 보고싶어요ㅠㅠ
와....진짜 상상도 못한 전개.....대박입니다ㅋㅋㅋ
사유님 덕분에 애간장이 타서 죽을것같은데
이번화를 보고나니 더 큰일나게 생겼네요~~~~~ㅋㅋㅋㅋ
항상 좋은글써주셔서 무한감사드리구,
얼른 다음에피소드가 보고싶습니다❤️
혜성x혜성 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 극락 너바나처럼 개박살날듯요 ㅋㅋㅋㅋㅋㅋ 3d안경과 팝콘챙겨서올게여!! 사유님 늘 감사해여
+ 어른진이의 말에 붉은 눈의 선호처럼 나도 심쿵했다고 한다... 붉선호 이 츤데레 시발데레...
우와....ㅠㅠㅠㅠㅠㅠ너무 기대되요ㅠㅠㅠㅠㅠㅠ
신혜성 대 신혜성이라... 이 둘은 왠지 공존할거같은데 신혜성이 넘어가 있는 그 세계가 박살날거같아요 ㅋㅋㅋ 대한민국의 신혜성과 극락의 신혜성이라... 이 둘을 이민우씨께서 감당해야하는것도 잠시잠깐 상상해봤어요 ㅋㅋㅋ 다음편도 기다릴께요 애정해요 사유님 ^^♥
이 어마어마한 세계관과 소재!! 사유님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ㅠㅜㅜㅜ 어떻게 이렇게 매번 긴장의 끈을 놓지못하게 하는 이야기를 이어나가시는지 정말 너무 경의롭습니다!
한화 한화 사유님의 글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사유님! 어휴 바빠서 이제서야봣네요 ㅠㅠㅠㅠㅠ 사유님오랜만에 소식도 보니 많이바쁘시죠.. ㅠㅠ 저희에게 좋은소설 선물해주시느라 고생이많으십니당 ㅠㅠ 담편기다리겠습니다! 그때까지 힘내시구 애정합니다ㅎㅎㅎㅎㅎㅎ
힘겹게 시험 치르고 왔는데 선물같은 글이 딱 !!!! 사유님 고맙습니다 언제나!
아이고~ 사유님.. 우리의 신혜성이 한명더?! 라뇨.. 상상만으로 소름이..(오빠 미안요ㅠㅠ) 충재는 붉은 눈의 선호와 함께 어른이 되어가고.. 이번 화는 큰오빠가 씁쓸함과 혼란, 그리고 불안까지..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는 듯요~~~ㅎㅎ
진짜 최대, 최악적은 자기자신이겠지요 특히신혜성님이라면ㅜㅜ 이상하게 신혜성2이 있는 그 세상이 무사할지 걱정이네요.
멤버들 모두 극락으로 넘어가도 또 다른 나가 있다는건데 어떻게될지 정말 감도 안잡혀요ㅜㅜ사유님은 천재예요!!
대한민국 혜성이 화이티이이이잉이ㅣ잉ㅇ!!!!입니다아ㅜㅠㅠㅠ
"다른 세계에 있는 나"라니... 생각해본적도 없는 세계네요. 몹시 궁금하긴 하지만 그토록 극악한 곳이라면 상상할 엄두도 나지 않네요.;;;..
와...대박이다... 진짜 상상도 못한 콘티네요ㅠㅠ 극락의 또다른 나라... 신혜성 대 신혜성 진짜 불안하면서 기대되고ㅠㅠ
정말정말 댓글을 남기지않을수가없네요ㅜㅜ사유님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정말ㅜㅜ 너무너무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이런 어마무시한 전개라니ㅠㅠ 이렇게 흘러갈거라고는 또 생각을 못했어요..무섭네요 또다른 세계의 신혜성이라니 점덤 더 빠져들어가요 또ㅜㅜ최고에여 최고ㅜㅜ
우리 든든한 리더 정혁님이 불안해 하닌깐 저까지 더 불안해지네요 ㅜㅜ 반드시 살아서 돌아온다고 믿고 있었는데.. 자기자신과 마주친다니요 ㅠㅠ 신혜성이 신혜성을 만나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 ㅜ
벌써부터 기빨려요 ㅠㅠㅠㅠㅋㅋㅋㅋㅋ
헉 두명의 혜성오빠라니...! 세상에..
두명의 혜성이라니... 창과 방패겠네 거의 서로에대한 장점과 단점을 둘다 알고있으니...공존하면 좋으련만....
우리의 신혜성은 무사할겁니다ㅠㅠ
사유님.기다릴께요
키야아 짝짝짝
아… 이 쯤되면 한 자 한 자 소중하게 봐야합니다….ㅠ 보고 또 보고 또봐도 너무 아쉽고… 너무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