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은 혈액형을 묻는 게 아니라 MBTI 성향을 묻거든요.”
아들이 친구들과 나누었던 얘기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겨우 4가지로 분석하는 혈액형보다 MBTI는 기준도 적절하고 16가지나 되니 훨씬 공감이 간다고 했다. MBTI는 내, 외향성, 감각과 직관형, 인식과 판단에 있어 감정과 이성 중 어느 쪽에 치우치는지의 기준에 선호도를 매겨서 16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성격유형검사이다. 검사의 정확도에 대해 논하다가 결론은 60갑자로 분석하는 우리 선조들의 사주가 제일이라고 결론지었다는 이야기였다. 중국에서 유래되었지만, 우리 조상들이 많이 써 온 것을 아이들이 농담이지만 은연중에 존중하는 것 같아 나도 웃음이 나면서 오래 전 처음 MBTI 검사를 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2. ‘자연의학센터’로 유명한 홍천의 힐리언스 선마을을 만든 이시형 박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인 이시형 박사는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우리에게 아직 생소했던 MBTI 검사부터 실시했다. 나를 잘 알고, 나와 다른 상대방의 성향을 이해하면 서로 간에 오해나 스트레스가 쌓일 일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성향분석은 끝났지만 조별로 짝지어진 상대방의 성향에 맞추어 어떻게 대화해야 할 지는 선뜻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간단한 다른 예시로 강의를 진행했는데, 먼저 우리는 질문을 받았다.
“가장 친한 사람이랑 다투었을 때 주로 누가 먼저 화해하며, 화해의 첫 문장이 무엇입니까?”
그때는 미혼이어서 단짝 친구를 대상으로 생각했는데, 공감보다는 재미가 컸다. 그런데 결혼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남편과의 대화에 꼭 들어맞는 경우라서 더 생각나고 와닿는 질문이었다.
“식사나 하러갈까?”
“커피어때?”
“쇼핑가자.”
“드라이브 갈래?”
“영화볼까?”
“우리 얘기 좀 하자.”
많은 재미있는 답변들이 있었지만 대략 위의 내용으로 요약되었다.
3. 사람은 머리형, 가슴형, 배형의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배형 사람은 일단 배가 불러야 만족감이 일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도 잘 먹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밥 먹자.’ 가 ‘화해하자.’ 라는 말이다. 잘 먹고 싶으면 이런 사람을 사귀라고 충고했다. 가슴형 사람은 앞뒤가 어긋나고 논리적이지 않아도 감성과 낭만에 호소하면 다 풀리는 유형이다. 영화를 보거나 드라이브를 하고 분위기가 좋으면 어느 새 사이좋은 커플이 되어 있다. 머리형 사람은 이성적으로 잘잘못을 따지고 이해가 되어야 풀리는 유형이다. 배형 사람으로부터 화해의 제의를 받았어도 머리형 사람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데 ‘이런 상황에 밥이 넘어가느냐?’ 는 생각을 하게 된다.
4. 우리는 여러 질문에 대해 머리형으로 대답하고 다시 가슴형으로, 배형으로 답하기를 연습해 보았다.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처럼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그룹으로 나누어 ‘소풍갈래?’ 라는 말을 비롯한 몇몇 질문에 그룹별로 답했다. 머리형 그룹은 언제, 어디로, 왜, 무엇을 타고 갈 지 등 현실적인 문제로 접근하며 답했다. 가슴형 그룹은 ‘어머나, 좋아!’ 같은 감탄사부터 시작해서 감수성이 풍부한 창의적인 답변이 많이 나왔고, 배형 그룹은 ‘뭐 싸갈까?’, ‘가서 무엇을 먹을까?’ 라는 반응이었다.
5. 실험을 해 보니 다름을 인정하더라도 이해하기까지는 더 노력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형, 가슴형, 배형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만 이야기하고 들을 때 상대방과 오해가 쌓이기 쉽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럴 때 상대방의 유형을 인지하고 있으면 ‘밥 먹자.’라는 말도 ‘잘 지내 보자.’ 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요즘은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들여다 보고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머리, 가슴, 배형 유형으로 나누는 것을 MBTI 검사의 이전 버전 쯤으로 생각하면 활용하기가 쉬울 것 같다. 각기 다른 유형에 대한 반응을 이해하면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더 수월해질 수 있다.
6. 그다음 시간 강의 주제는 화해에 관해서였다. 이렇게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부부가 되어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화해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니 서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잘못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깔끔하게 사과하고, 사과를 받아들이거나 말거나는 상대의 문제라고 했다.
덧붙여 생각해 볼 문제는, 어떤 사람은 잘잘못을 떠나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먼저 화해를 청하기도 한다. 남에게 냉정한 행동을 했다 싶으면 스스로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의 불편한 마음이 신경쓰여서일 수도 있다. 교통사고에서도 100% 과실로 보는 상황이 드문데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감정섞인 문제에 대한 잘잘못은 아무리 따져도 끝이 없게 마련이다.
7. 우리는 아이들에게 항상 마음을 크게 가지고 먼저 화해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실제로는 화해하자고 손 내미는 이미지가 잘못을 인정한다고 보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화해를 먼저 청하는 데에 자존심을 운운하기도 한다. 주변에서 저 사람이 뭔가 잘못했구나 하는 시선을 두기에 더 큰 마음과 용기를 내야 한다. 충돌로 문제를 인식했으면 서로가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고 개선하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데 이런 현상은 안타깝다. 성격유형에 대한 이해로 소통이 원할해서 화해를 하는 일이 훨씬 쉬워지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먼저 손 내미는 사람에게 지닌 시선과 인식에도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첫댓글 1학기 끝나기 전에 할당량을 채우느라 자꾸 올렸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원우님들 작품과 호흡 맞추어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