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2007년말 청사착공"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공공기관들, 이전에 소극적… 정부는 "계획대로 추진"
전북 전주시 만성동과 완주군 이서면 일대에 짓는 전북 혁신도시. 지난해 3월 부지 조성이 시작돼 1년6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공사진행률이 3%를 맴돌고 있다. 이곳으로 옮길 예정인 공공기관은 토지공사(토지주택공사로 통합), 농촌진흥청 등 14개 기관. 그러나 청사를 지을 땅을 산 기관은 전혀 없다. 현지 주민들은 "이래서야 앞으로 남은 3년 안에 이전할 수 있겠느냐"며 불안한 시선을 보낸다.
정부는 세종시와 달리 혁신도시만큼은 정권 출범 이후 일관되게 '원안 추진'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26일 이례적으로 전국 시·도 부지사 회의를 소집해 "혁신도시를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재천명했다. 최근 세종시 논란으로 일각에서 제기되는 혁신도시 백지화 우려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토지 보상 마무리… 공사 진척도는 낮아
혁신도시는 2003년 6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균형발전 명분으로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혁신도시계획을 발표하면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2007년 1월에는 혁신도시 건설 촉진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었고, 9월엔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혁신도시로 옮겨갈 공공기관은 모두 157개, 이전 인원만 4만여명에 달한다. 현 정부 들어와 계획이 수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대통령은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혁신도시 사업 속도는 정부의 의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혁신도시의 총 사업비는 토지보상비와 부지조성비, 청사신축비 등을 합쳐 약 16조원. 지난 2년 동안 4조80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지만, 아직 부지 조성공사 공정률은 10%대를 맴돌고 있다. 토지 보상(4조5000억원)은 최근에서야 겨우 마무리됐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그나마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는 지역은 제주(공정률 30%)와 경남(22%), 부산(15%) 등 3곳이다. 대구·강원·전북은 공정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고, 충북은 0.6%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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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 신축 전무
청사를 짓기 시작한 기관 역시 전무하다. 정부는 당초 2007년 말부터 사옥 건축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광주·전남으로 이전할 농수산물유통공사만 유일하게 사옥 부지 매입을 마쳤다. 질병관리본부·국립특수교육원 등 7개 기관은 부지 매입 계약만 맺은 상황이다. 혁신도시 건설을 맡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 관계자는 "이들 기관이 올해 예산이 없어서 부지 매각대금을 모두 납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지지부진한 것은 이전할 공공기관들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광주·전남으로 갈 한국전력은 우여곡절 끝에 최근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했지만, 아직 청사 설계는 착수하지 못했다. 당초 전북과 경남으로 각각 이전할 계획이던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도 통합되면서 갈 곳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경북으로 옮길 한국도로공사도 당초 지난 4월 완료 예정이던 사옥 설계를 내년 7월 말이나 돼야 끝낼 것으로 보여 당초 계획했던 2011년 말 이전은 물 건너갔다. 세종시로 옮겨갈 15개 기관의 경우, 세종시 계획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이전 계획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공공 기관은 이전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충북으로 이전할 법무연수원은 지난달 22일 지방 이전으로 업무 효율 저하 등이 우려되고, 경제적 파급 효과도 크지 않다며 이전 반대 입장을 비췄다. 충북도의 강한 반발로 입장을 번복하기는 했지만 다른 이전 대상 기관의 속내도 비슷하다.
전북으로 이전할 한 공기업 관계자는 "솔직히 거주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무조건 옮기는 게 걱정된다"면서 "다들 누가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서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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