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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연 작가 집에서 종종 여자 소설가들이 포트럭파티를 연다. 각자 들고 온 음식을 하나둘 펼쳐놓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 파티에서는 각자 정성껏 만들어온 음식을 맛보는 시간이 제일 중요한 순서다. 누구는 홍어를 무쳐오고, 누구는 케이크를 만들어오고, 누군가는 와인에 치즈를 들고 온다. 이 음식들이 상 위에 펼쳐지고 나면, 정길연 작가가 만든 메인 메뉴 ‘쇠고기배추전골’이 정중앙에 올라온다. 후루룩. 시원한 국물을 마시고, 맛있게 익은 배추를 씹고, 전골 안에 담긴 쇠고기를 먹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고향 생각이 난다. 누군가 정길연 작가에게 비결을 묻는다. “그런 것 몰라요. 그냥 수십 년 동안 계속 만들어왔어요. 이것도 비결이 되나요?” 요리를 좋아하는 혹은 잘하는 작가들이 많다. 조경란은 한식은 물론 이탈리아 요리에서 프랑스 요리까지 꿰고 있으며, 천운영은 공장장 부친을 둔 덕분에 공장 인부 식탁에 올라가는 메뉴란 메뉴는 안 해본 게 없다. 어렸을 때부터 오빠들 밥상 챙겨주는 게 일이었다는 신경숙은 낙지볶음에서 나물요리까지 못하는 게 없고, ‘뱀장어 스튜’라는 요리를 제목으로 작품을 쓰기도 했던 권지예는 프랑스에 유학하던 8년 동안 요리전집을 끼고 살았을 정도로 요리에 애착이 강하다. 김별아도 요리에 푹 빠져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요리를 좋아하는 작가들은 이루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도대체 작가들은 왜 이렇게 요리를 좋아하는 것일까? “남자 작가들의 경우는 잘 모르겠고, 여자 작가들은 자신이 먹을 것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 먹이는 것을 좋아해요. 특히 자취를 하거나 혼자 사는 작가들을 거둬 먹이면서 흡족해 합니다. 물론 자신을 위해서도 음식을 하지만, 대부분 누군가에게 줄 것을 생각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 같아요.” 지금이 전쟁통도 아니고,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요리를 만든다니, 이런 것도 모성애의 발로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무튼, 소설가 정길연도 자신의 요리를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을 때 기분이 굉장히 좋다고 말한다. 고급 음식을 부자에게 대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분 좋음이다. 정 작가 자신이 대접하는 상대 안에는 자신도 들어간다. 하루에 적어도 한 끼는 스스로를 위해서 요리를 한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살아가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 밥상을 준비하다 정길연 작가는 보통 늦은 밤까지 작업을 하고 새벽 3시쯤 잠자리에 든다.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숙면을 취하고 나서 주방으로 간다. 압력밥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찌개를 만들고, 하루 전날 챙겨두었던 밑반찬을 펼쳐놓으면 근사한 한정식백반이 만들어진다. 혼자 등장하는 식탁이지만, 대충 꾸미는 법은 없다. “혼자 먹는다고 대충 때우는 것은 싫더라고요. 자신을 귀한 손님이라 생각하고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 귀찮을 게 없어요. 제가 저를 사랑해주고 챙겨줘야죠. 그래야 다른 일도 잘 풀리는 것 같아요. 우리는 으레 그러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비싸고 맛좋은 것 해주고, 안 쓰던 그릇 내놓고, 혼자 있을 때는 라면 같은 것으로 대충 때우고…. 이게 제일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 대접하듯이 자신도 대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즐겨 먹는 밑반찬 중에 ‘콩잎장아찌’라는 것이 있다. 콩잎으로 만든 장아찌로 깻잎장아찌와 비슷한데, 된장이 들어가서 단맛이 덜한 대신 맛이 깊다. 경상도에서는 흔한 음식이나, 이상하게도 서울이나 경기도에서는 잘 볼 수 없다. 경상도 음식 중에는 된장이 들어간 것들이 많고, 장아찌에도 된장이 들어간다. 오후 5시에 시작하는 두 번째 식사는 일품요리다. 밑반찬을 이것저것 차리는 대신 덮밥, 비빔국수, 해물파전, 볶음밥 등 집중할 수 있는 음식을 한 가지 만들어 먹는다. 가끔은 밖에서 뜯어온 상추로 비빔밥을 해먹기도 한다. 원래 많이 먹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두 번째 식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은 ‘과식 금물’이다. 이후 바로 독서를 하거나 집필을 해야 하는데, 식사량이 많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정식 대신 일품요리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낮 시간대가 중요한 것은 만족스런 하루였는지 아닌지가 바로 이 시간대에 결정되기 때문이에요.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내면 저녁 시간에 마음이 뿌듯합니다. 반대가 되면 마음이 무겁고, 그 여파가 밤까지 이어집니다. 진짜 글쓰기는 밤에 행해지는데, 쫓기듯 쓰게 되면 마음에 드는 글이 안 나옵니다.” 음식은 손맛이 아니라 재료맛 저녁시간에 종종 약속이 잡힐 때가 있다. 밖에서 저녁을 먹을 때에도 반드시 다음날 아침거리는 챙겨놓고 외출을 한다. 찬거리가 없으면 아침을 하기가 싫고, 아침을 대충 먹기 시작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이젠 아침 챙겨 먹기가 습관이 됐다. 낮이나 저녁에 손님이 오면, 꼭 내놓는 음식이 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쇠고기배추전골’이다. 전골냄비에 배추를 깔고, 그 위에 여러 종류의 버섯과 두부와 파를 덮고, 한우 육수를 부어 끓이다가 국간장으로 간을 내면, 아주 시원한 전골이 만들어진다. 간단한 음식이지만,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을 엄수해야 한다. 두 가지 원칙이란 반드시 한우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다. 수입 쇠고기로 국물을 내거나, 다른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시원한 맛이 사라진다. 전골이 아닌 게 된다. 정길연 작가가 쇠고기배추전골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벌써 20년이 됐다. 우연히 TV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머리에 익힌 것인데, 손님에게 내놓을 음식으로 괜찮다 싶어서 몇 번 시도했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흘렀고 스스로 응용도 했으니, 지금 작가가 만드는 쇠고기배추전골은 전형적인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지금까지 맛을 본 사람 중 칭찬의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손맛이 좋은가 봅니다”(기자) 소설가 정길연은 요즘 제2의 전성기다. 11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변명’이 국내소설 부문 판매 1, 2위를 다투고 있다. ‘변명’이 시청률 상위에 이름을 올려놓은 TV드라마 ‘두 아내’의 원작이라는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원래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평이 더 많다.
“이 책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1998년은 IMF 사태 여파로 출판시장이 완전히 가라앉아 있을 때였거든요. 저도 꽤나 힘이 들었는데, 이 책이 나를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지금까지 전업작가로 살 수 있게 해준 책입니다.”
소설 ‘변명’은 ‘세련된’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현강이 교통사고로 입원한 뒤, 병실을 ‘그의 여자’ 은묘와 함께 지키는 아내 태희의 이야기다. 이 남자는 사랑하는 착한 애인과 공정한 아내, 두 여자 중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못한다. 신기하게도, 분명히 삼각관계인데 큰 싸움이 벌어지지 않는다. 태희는 현강의 마음이 다른 여자를 향하고 있다는 현실을 있는 인정하고, 남편에 대한 기득권이 그 여자에게 있다고 수용해버린다.
혼자 남겨진 여인의 낮고 쓸쓸한 변명. 아, 이럴 수도 있구나. 11년 전에 나왔다고 하지만, 지금 읽어도 신선한 구도다. 이 소설의 카피 문구가 이들의 관계를 대변해준다. ‘그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나는 그의 사랑할 권리를 인정한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예의일 뿐이다.’
“제목이 변명인 것은, 주인공 태희의 변명이기도 하고, 내 삶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변명이기도 해요. 관계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리려고 했고, 공정한 시선을 빌려왔지만 내면을 드러내다 보면 한계가 있기 마련이어서 ‘변명’이라고 했습니다.”
경계 정길연은 특별한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여자 소설가들이 주로 건드리는 부분, 여자들의 예민한 감성을 섬세하게 묘사한다거나, 눈물샘을 자극한다거나, 사람을 아득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게 없다. 그렇다고 유머러스하거나 그로테스크하거나 엽기적인 것도 아니다. 매우 상식적인 테두리 안에서 정확한 문체로 사람 사이 관계를 이야기한다.
매우 일상적인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그래서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이런 느낌을 들게 하는 작품을 쓴다. 덕분에 다른 여자 소설가처럼 이름을 휘휘 날리는 일도 없지만, 그를 통속적이라 말하는 이도 없다.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작가’ 이렇게 표현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사람에 대해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좋은 게 좋은 거다’ 이렇게 타협이 안 돼요. 나쁜 것 그냥 두 눈으로 잘 못 보고, 그렇게 살아지지도 않아요. 글 쓰는 것도 그래요. 많이 팔릴 수 있는 작품을 쓰는 법이 분명히 있는데, 나는 그렇게는 안 돼요. 그래, 어떻게 합니까? 이게 팔자려니 하고 생긴 대로 살아야지요.”
정 작가는 지금까지 ‘내게 아름다운 시간이 있었던가’ ‘변명’ ‘사랑의 무게’ ‘가끔 자주 오래오래’ ‘그 여자, 무희’까지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다시 갈림길에서’ ‘종이꽃’ ‘쇠꽃’ ‘나의 은밀한 이름들’까지 네 편의 소설집, ‘정혜이모와 요술가방’ ‘외갓집에 가고 싶어요’ 등 두 편의 동화를 발표했다.
1984년에 등단한 사실을 감안하면, 작품이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집 ‘다시 갈림길에서’(1990년)를 제외하고는 등단 이후 1997년까지 발표한 작품이 없다. 그가 작품을 본격적으로 쓴 것은 12년 정도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런저런 부침도 심했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어요. 작품을 발표할 여건이 못 되었지요. 1997년 무렵, 모든 게 정리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썼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적은 편수는 아니에요.”
맞다. 적은 편수는 아니다. 어쨌든 그 작품들 모두 한결같이 ‘정길연스럽다’. 통속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예술적이지도 않고, 그 어떤 경계에 있다.
행복
“열일곱 살 때 굉장히 행복했고, 그 이후로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살아오면서 늘 열일곱 시절을 그리워했는데, 살다보니 그런 날이 오네요. 요즘은 삶에 대해 아주 편안해졌어요. 무던해지다 못해 시들해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예요. 편안하게 사는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정길연 작가는 열일곱 나이에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 일 년 동안 온전히 책만 읽으며 지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시간이 정말 행복했을 거라는 짐작이 가긴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거나,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거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거나… 이런 것 없이 그저 책만 읽으면서 보냈다. 지금은 물론, 살아가기 위해 일정한 돈은 벌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는 해결할 수 있고, 그 나머지는 열일곱 시절과 똑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렇게 보내고 있다.
“결국은 글 쓰는 것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나이 정도 되니 그런 깨달음이 들어요. 그래도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끼는 것은, 온전히 글을 쓰는 것만으로 수십 년을 버텨오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그렇다고 작가의 자존심을 버리지도 않고,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지키며 살아가고 있어요. 이게 가끔 참 대견스러워요.”
그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을 그래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고, 그 덕에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으레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에 욕심을 부리고, 그것을 쫓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정작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을 알게 됐다는 사실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였구나. 작가의 얼굴이 그렇게 편안하게 보였던 것이. 쇠고기배추전골이 그렇게 시원했던 것이.
쇠고기배추전골 만들기
●재료
●만드는 법
1 적어도 하루 전날 육수를 만든다.
반드시 들어가야 할 재료 배추
![]() ♬아름다운 영상시 모음과 감미로운 음악 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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