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깨와 안반/고운박영규
어머니가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은 반죽덩어리를 안반 위에 올려놓고
나보다 더 키가 큰 홍두깨를 들고 밀가루반죽을 돌돌 감았다가
공중곡예를 하듯 펼쳤다가
밀가루를 훌훌뿌리면서
마술을 부리면
서울시내만큼 넓은 동그라미를 만들었지.
어머니가 동그라미를 포개고 접어 안반 위에 올려놓으면 안반보다 기다란 기찻길이 생겼지.
어머니의 칼이 리듬맞춰 칙칙폭폭 기찻길을 달리면 그 길이 서울까지 닿을 것만 같았지.
종점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한글인지 영어인지 지금도 알 수 없는 꼬부랑글씨를 쟁반가득 가지런히 올려놓았지.
어머니는 꼬부랑글씨들을 공중에 훌훌뿌리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가마솥으로 주문처럼 던졌고 여기에 애호박을 채썰어 넣었지.
나는 칼국수보다 어머니 옆에서 얻은 국시꼬랭이를 겉은 바삭하고 속은 벙그렇게 부풀어 오른 과자처럼 구워먹던 추억이 하얗게 묻은
홍두깨와 안반을 물려받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