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두고 바로 군계일학이라고 하나 봄
성룡과 함께
이건 이 분이 은퇴 후인 30대 중반 가정주부 시절 한 영화행사에 참여한 모습인데 당시 20대 초반으로 한창 시절이던 강수연씨와 나란히 했는데도 비주얼 차이가
이런 게 바로 넘사벽 미모
<`알맞은 키에 알맞은 가슴과 바가지 두 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히프를 가진 여자.
360도 팬(회전)해 봐도 고르고 알맞게 살찐 여자.
어쩌면 작은 몸매에 그토록 알맞은 몸의 균형을 가지고 있을까?
장미희 주연의 겨울여자로 한국영화사상 최고흥행신기록을 수립했으며 영화 죽음보다 깊은 잠(윗 사진)에서 저 분 정윤희를 여주인공으로 기용했던 명장 김호선 감독이 정윤희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극찬하며 자작한 시 내용입니다
아마 미인을 보면 저런 강렬한 영감이 떠올라 주옥같은 시 한 편이 저렇게 절로 탄생되나 봅니다
김태희 얘기가 나오면 곧잘 비교되며 늘 김태희 연관검색어로 떠오르는 추억 속 전설의 미녀배우 정윤희
은퇴한지 무려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금도 수시로 대중들에게 회자되는 특이한 인물이기도 하죠
오죽하면 최근 이 분에 대한 특집방송이 제작 되었던 적이 있을만큼 끈질기고 특이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분이기도 한데 이 분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꽤 있어 이 분에 대한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 몇 가지를 들려 드릴게요
1. 한국의 손꼽히는 대표미항이 낳은 전설 두 가지
우리나라 대표미항 중 한 곳으로 알려진 경남 통영
이 통영은 예로부터 자랑하는 명물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맑고 수려한 바다풍경과 굴 등 각종 싱싱한 해산물의 본고장이라는 점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 한 시절 한국 연예계를 평정하고 사상최초 한류스타의 시초가 되기도 한 아시아의 대표미녀 정윤희를 탄생시킨 고장이라는 것이죠
정윤희는 1954년 경남 충무(95년 통영과 하나로 통합됨)에서 위로 두 언니를 둔 세 자매 중 막내딸로 태어납니다
태어난 직후부터 유별나게 뛰어난 용모로 늘 주변인들의 눈길을 끌었으며 유년시절 부산 당감동으로 전가족이 이사해서 그 곳의 당감초등학교와 혜화여중 그리고 같은 혜화여고를 다닙니다
2. 여고시절 부산의 명물이 되다
데뷔 전인 소녀시절부터 정윤희의 미모는 그 지역에서 명성이 자자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그 지역에서(부산 당감동과 과거 혜화여고가 있던 부산 진구 부전동, 원래는 이 곳에 학교건물이 있다가 87년 현재의 동래구 명장동으로 주소를 옮김) 오래 사신 연세 꽤 있는 분들은 6,70년대 소녀 시절 정윤희의 모습과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할 정도
학창시절부터 미모가 특출나 당시 혜화여고 주변에서 정윤희 이름 석자를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제가 이 분의 학창시절 친구였던 분과 개인적으로 좀 알게 됐는데 이 분이 정윤희를 처음 본 순간을 이렇게 묘사 했습니다
<`때는 1970년대 초반 부산의 어느 빵집, 당시는 고교생들의 빵집 미팅이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까까머리 남고생이었던 그 시절의 난 우리학교 친구들과 함께 혜화여고 여학생들과의 단체미팅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지금처럼 남녀관계가 편하고 자유로운 시절이 아니라서 수줍어하며 긴장감에 연신 우유만 들이키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 눈을 놀라게 만드는 상황이 펼쳐졌다
자리에 먼저 나온 여학생들은 인물이 그닥 아니어서 친구들과 실망감의 눈빛을 주고받고 있는데 눈이 튀어나올만한 여학생이 등장한 것
그녀가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와 친구들은 전부 경악했고 빵가게 주인과 다른 손님들 시선도 일제히 그 여학생에게로 쏠리며 놀라는 눈치인 게 느껴졌다
그 때 `세상에 저렇게 예쁜 여자가 있다니!` 하면서 날 놀라게 만든 여학생이 바로 훗날 영화배우가 된 정윤희, 당시 혜화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었다
당시 정윤희는 키는 작았지만 유난히 작은 얼굴과 약간 까무잡잡하고 탄력 넘치는 고운 피부를 지녔고 인형처럼 예쁜 얼굴에 유난히 큰 눈과 맑고 까만 눈동자 그리고 속삭이는듯 붉고 도톰한 앵두같은 입술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늘에서 별이 내려와 앉는다`는 외국 시인의 구절이 문득 떠오른 순간
얼굴도 얼굴이지만 각선미
당시 여자들은 무다리가 많았는데 정윤희는 교복치마 밑으로 곧게 뻗은 종아리를 지녔고 내가 살면서 지금 현재까지 정윤희의 각선미를 능가하는 여자다리를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수십년 전 보았던 너무나도 예뻤던 단발머리 여고생 정윤희의 모습을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하며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여태 이 땅에서 본 경험이 없을만큼 너무나도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다`>
이게 그 분의 당시 회상이며 정윤희 이 분은 이렇게 꾸밈없는 단발머리 쌩얼 여고 시절부터 그 지역의 스타로 날렸다고 합니다
이 분이 덧붙이길 당시 정윤희를 보려고 편지나 선물 들고 여고 교문 앞에 진 치고 기다리던 남학생들도 있었고 학교 근처 어딜 가도 정윤희 이름 석자만 대면 그 존재를 인근 주민들이나 상인들도 대번 알았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즉 부산 혜화여고 주변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
3. 부산 미니스커트 서울 명동의 명물이 되다
2번 글에서 나온 그 분은 정윤희를 미팅 때 이후 친한 사이가 돼 몇 번 더 본 적 있는데 여고졸업 후 그녀가 서울로 떠나면서 소식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여고졸업 후 재수를 하기 위해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언니네에서 함께 살게 된 정윤희
여기서부터는 정윤희 활동 당시 그녀의 인터뷰 회고록 등에 소개된 내용들입니다
정윤희는 서울로 오게 된 후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당시 부산은 직할시로 한국 제 2의 대도시이긴 했지만 서울로 처음 와 보니 규모나 문화 등 여러 면에서 부산과의 격차가 너무 심해 당사자로서는 강한 문화적 차이를 느꼈나 봅니다
점점 서울의 마력에 빠져들었고 재수를 위해 학원을 다니는 틈틈이 당시 서울 최대번화가인 명동에 나갔다가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그 때도 미모와 몸매가 남달라 당시 유행하던 미니스커트 차림에 한껏 멋을 부리고 명동에 뜨면 `부산 미니스커트 떴다`며 옷가게 구두가게 화장품가게 등 명동 상인들이 일손을 멈춘 채 문을 열고 지나가는 정윤희의 모습을 내다봤다는 전설이
당시 일반인 시절이었음에도 비주얼이 튀어서 정윤희의 존재를 명동 상인들도 잘 알아 당시 `부산 미니스커트`라는 별명으로 명동에서 통했다고 전해지죠
역시 미인은 어딜 가나 눈에 띈다더니 인터넷은커녕 이렇다할 소식통도 어둡던 그 시절 비주얼 하나로 명동 번화가에서 명성을 날리다니 ㅎㄷㄷ
그리고 여기서 자신의 매력을 절실히 깨달은 정윤희는 원래 지망하던 미술 대신 배우의 꿈을 갖게 되고 그 결과 배우오디션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지망한 건 당시 한국영화사상 최대흥행기록을 수립한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여기서 여주인공 경아 역
당시 영화제작사는 기존 여배우들 대신 신인공모를 통해 여주인공을 물색 했는데 정윤희도 그 중 하나였고 결과는 낙방
이유는 온갖 풍파를 겪는 비련의 여주인공 경아 역에 연기경력이 전무한 신인을 쓴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애초 신인을 쓰려던 계획 전면 백지화하고 결국 아역배우 출신 안인숙이 역할을 맡아 대박이 터짐
4. 드디어 열린 스타탄생의 문
이후 정윤희는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오디션에 응모해 이번에는 합격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강한 반대로 역할을 고사하죠
이 영화는 결국 이영옥이라는 신인여배우가 맡아 공전의 힛트를 기록
그러다 그 직후 오디션장에서 그녀를 눈여겨본 이경태 감독의 눈에 띄어 이 감독의 신작영화 `욕망`(윗 스크린 캡쳐, 화질은 좋지 못 하지만 21세 꽃 같은 시절 햇병아리 시절의 모습이 담겨있음)의 출연제의를 받습니다
당시 청춘스타로 부상하던 노주현과 은막의 샛별로 날리던 정소녀와 함께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멜로물로 최불암 남궁원 반효정 등 중견배우들도 출연 했으며 이 영화로 드디어 배우데뷔를 하게 된 것
당시 이경태 감독은 생짜신인 정윤희 기용에 대해 `현대미와 고전미를 두루 갖춘 완벽한 마스크와 균형잡힌 체격조건을 지닌 상당한 가능성의 대어급 신인`이라고 평가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처참히 실패해 정윤희 존재도 묻히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때 이미 스타탄생은 예고 되었으니 아까 2번 글에서 소개한 분의 회고를 옮겨 보겠습니다
<`때는 1975년 여름, 난 당시 군복무 중이었고 휴가를 맞아 집으로 가기 위해 부산역을 빠져나오던 중 시선을 멈추게 되었다
벽에 아주 낯 익은 여자의 얼굴이 붙어 있었던 것
바로 고교 시절 친구였던 정윤희였고 그녀 모습이 영화 욕망 홍보포스터 속에 있었던 것이다
난 그제서야 정윤희가 영화배우로 데뷔하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유별나게 예뻐서 평범하게 살 것 같지 않더니 역시나라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 난 동생과 함께 배우데뷔한 정윤희를 보기 위해 욕망이 개봉되는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내용은 진부한 멜로물이었지만 아는 사람이 화면에 나와 신기해 하면서 보았고 옆에 앉아있던 동생이 보고 나서 한다는 소리가 `처음 보는 신인여배우(정윤희)가 너무 예뻐서 옆에 있는 정소녀가 영화 보는 내내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
동생 뿐 아니라 다른 관객들도 영화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밖으로 나오면서 정윤희의 미모에 대한 얘기만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분명 여주인공은 정소녀고 정윤희는 준주연에다가 부잣집 딸로 나오는 정소녀에 비해 가난한 여성 역할이었지만 인물이 튀어서 정소녀가 순간 초라해 보였다
당시 정소녀는 청초하고 깜찍발랄한 미모와 분위기로 안방극장과 광고계 그리고 스크린의 신데렐라로 혜성처럼 부상 했는데 이 정윤희 등장 후 정윤희 인기에 밀려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이후 연기보다는 MC에 치중,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게 정윤희가 여주인공과 광고자리를 몽땅 접수했기 때문>
비록 흥행에는 실패 했지만 이 때부터 대형스타의 탄생이 예감 된 셈이죠
5. 나의 행운은 타인의 불행을 밟아서고 얻는 것이라더니
데뷔작 실패 후 그녀를 눈여겨 본 당시 TBC 동양방송(현 Jtbc)이 러브콜을 보내 쇼 프로그램 진행과 탤런트 특채의 기회를 잡았고 해태제과 전속모델의 기회도 주어진다
(지금도 해태의 상징적인 장수제품으로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브라보콘 바밤바 에이스 크래커 맛동산의 초기광고모델이 바로 이 분 정윤희라는 사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행운이 찾아온다
변장호 감독은 당시 대하물인 `청춘극장`을 기획 중이었는데 이순재 신성일 신영일 등 당대 최고의 남자배우들과 김창숙 박원숙 선우용여 등 인기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초호화 캐스팅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탄압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
이미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중반 두 차례 영화화 된 적 있으며 이 때가 3번째 제작되는 것인데 영화 히로인은 오유경 역
전작에서 각각 김지미와 윤정희가 역할을 맡아 성공한 사례가 있어 이번에도 기대 중이었고 당초 영화사 공개모집을 통해 오유경을 맡을 신인여배우로 강모씨가 낙점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명 `박동명 스캔들`에 이 강모 여인이 연루되면서 영화사로부터 전격해고를 당해 역할에서 자동하차
(정확한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강모씨는 당시 이 영화로 막 데뷔하려던 일명 예비영화배우, 하지만 당시 사건을 기록한 기사내용에 따르면 데뷔작을 위한 대본리딩까지 들어간 상태에서 사건이 터져 첫촬영을 앞두고 데뷔도 못 한 채 물거품처럼 사라짐, 이 분 사진을 옛날 신문에서 본 적 있는데 지금 봐도 상당히 매력적인 동양적 미모와 서구적 체형이었음)
그래서 다급해진 영화사는 긴급히 대타를 물색했고 정윤희가 대타로 기용돼 제작
그 해 추석에 개봉된 이 영화는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 했지만 정윤희의 이름과 얼굴만은 대중들에게 확실히 알렸는데 만일 이 때 강모 여인에게 불운이 닥치지 않았더라면 정윤희는 이 역할을 맡지 못 했을테고 그러면 결국?
강모 여인의 불운이 엉뚱하게도 정윤희에게 절호의 기회를 안겨다준 아이러니한 사건
어쨌건 이 때를 기점으로 정윤희 이후 행보는 말그대로 승승장구
77년 당시 신인이던 장미희와 호흡을 맞춘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시청률 대박으로 안방극장 접수하고 최초 단독주연을 맡은 영화 `나는 77번 아가씨`의 30여만 관객동원에 힘 입어(당시 서울 시내 단일개봉관에서 30여만은 지금으로 추산하면 수백만명의 흥행대박) 유지인 장미희와 함께 일명 `2대 트로이카 3인방`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정윤희의 이 외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임권택 정일성 그리고 오래 전 타계하신 故 장석준 촬영감독 등 당대 명감독들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 미인배우이자 한국 여배우 전체 통털어 자다 깬 부스스한 맨얼굴을 아무렇게나 잡아도 카메라 사각이 없는 유일한 마스크`라고 극찬 했으며 일본 사극영화의 대가인 故 미조구치 겐치 감독이 생전 `일본 최고여배우 3명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합산해도 정윤희 1명을 능가하지 못 할 거다`라고 칭송
여기에 같은 시절 활동하던 남자배우들은 이 분 미모에 눈이 부셔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도 불편했다고 입을 모아 말 했다고 하며 <이상하게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영상으로 봐야 아름다움의 진가를 느낄 수 있으며 헤어나 메이컵 등을 완벽하게 셋팅한 잡지 화보 같은 모습보다는 막 자다깨거나 세수하고 나온 직후 맨얼굴이 더 예뻐 보였으며 이런 맨얼굴인채로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모습이 단정한 모습보다 더 예뻐 보이는 알 수 없는 신비함을 간직 했다>는 점이 보는 이들의 공통된 의견
이 외에 활동 전성기 시절 일본 현지에서 `아시아의 꽃`, `한국에서 환생한 양귀비`라는 타이틀도 얻게 됨
여기에 성룡이 이 분에게 반해서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고 또 한국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후문도 전해지고
<일본의 경우 이 분의 대표작 중 하나인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윗 사진)가 일본 공중파 방송사에서 한국영화특집으로 방영된 후 현지에서 열광적인 반응이 터져 곧바로 일본의 러브콜을 받게 돼 현지로 날아가 세계적인 스타들만 선다는 도쿄 국제가요제 시상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 때 정윤희는 아시아 스타로서는 처음 초청 되었으며 전설의 영화 `러브스토리` 히로인 알리 맥그로우와 공동시상을 맡음
또 초콜렛 CF 등 각종 일본 광고에도 출연
대만의 경우 81년작 `사랑하는 사람아`가 현지에서 개봉돼 당시 전세계적 힛트를 치던 ET나 레이더스 등 헐리우드 대작영화들 전부 물리치고 이 작품이 그 해 대만 극장가 흥행 1위 기록
이 영화로 대만인들을 사로잡은 정윤희는 현지 초청을 받아 국빈급 대접을 받고 현지 영화에도 출연하며 아시아 최고의 미인배우 타이틀을 얻게 됨>
이 정도로 한류라는 개념자체가 없던 시절에 일본 대만 홍콩 등지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각국을 방문해 극빈대접을 받았고 현지 영화와 광고에도 출연한 사실상 한류원조격 배우이자 두 장의 가요앨범까지 취입한 팔방미인 만능탤런트
또 특기할 점은 이 분이 헐리우드 진출할 기회도 있었는데 아깝게 날렸다는 것
당시 헐리우드의 인기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아시아 여배우를 물색 중이었는데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각 지역 및 미국에 거주 중인 아시아인 여배우들까지 수많은 여배우들 데이터를 찾던 중 정윤희 자료를 보고 단번에 찍었고 곧바로 한국으로 초청장을 보냈지만 당시 정윤희는 이미 스케줄이 꽉 차 있어 할 수 없이 다른 여배우를 대신 보냈더니 `내가 지목한 인물이 아니다`라며 단박에 캔슬된 일화도 있음
만일 감독의 요구대로 이 분이 현장에 갔더라면 과연 어떤 결과가 생겼을지 참 궁금
눈가와 입술이 늘 촉촉히 젖어 있으며 화면 속 얼굴에 손을 대면 수분화장품 광고에서처럼 뭔가 물방울이 톡톡 일 것 같은 그런 매력을 지닌 분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탁월한 연기력은 아니지만 목소리가 섹시하고 발음이 정확하며 대사전달력이 뛰어남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 작은 체구와 요즘 대세인 시크하고 늘씬한 분위기가 부족한 점이 아쉬움으로 작용
아무래도 이 분 활동시대가 시대인만큼
은퇴한지 30년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적어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사회적 화제로 떠오를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이색적인 인물이자 최근 불행한 개인사를 겪은 후 조용히 지내고 계시는 중인데 많은 분들의 입을 모아 종합해 보면 `정윤희 이후 더는 그녀를 능가할 극강비주얼을 볼 수 없었다`는 전반적인 평가
흔히 여자의 아름다움에 있어서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여자의 미모란 얼굴형에서 출발해 입술모양에서 최종완성된다`
저 분은 선이 막힘없이 매끈하게 고운 얼굴윤곽 안에 크고 또렷한 눈과 앵두처럼 붉은 입술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루며 담겨 있어 이 조건에 정확히 부합되고 위 짤에서 보듯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요즘 최첨단 성형기술로도 만들어내기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한 황금비율 마스크를 지녔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죠
정윤희 모습을 사진으로 처음 본 요즘 젊은 세대들과 외국인들이 미모에 감탄하는 깨알같은 반응
다들 정윤희가 누군지도 모를텐데 사진만 보고 저런 반응이라니 역시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는 비주얼임을 새삼 입증
78년작 꽃순이를 아시나요 속 한송이 꽃 같은 모습, 뒷모습의 여성은 마지막 짤에서 보듯 젊은 시절의 박원숙씨
이 영화 속에서 정말 서프라이즈한 장면은 이 사진
지금 같으면 돈 주고 하래도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못 할 저런 촌스러운 쿤타킨테 꼬불이 파마머리에 어디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뽑기로 건진듯한 조잡한 장난감 같은 목걸이도 이 분이 하니까 그저 예쁘게만 보인다는 건데 이 분은 저런 머리와 액서서리를 해도 그리고 다른 사진에서 보듯 땟구정물 묻은 얼굴에 누더기를 몸에 걸치고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어도 그저 예쁘게만 보인다는 사실
진정한 미인은 머리빨도 옷빨도 안 통한다더니
더구나 저 얼굴은 100% 자연산 모태비주얼
여기에 또 이런 말도 있죠?
아름답거나 잘 생긴 사람끼리는 서로 닮는다는 속설
저 분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수많은 미녀스타들 얼굴이 오버랩 됩니다
수애도 닮았고 조은숙 느낌도 나고 강문영 성은 신세경 손태영 김혜수 등 수많은 얼굴들이 뇌리 속을 스친다는 것
이렇게 수많은 미녀들 얼굴이 한 얼굴 속에 담긴다는 건 아주 특별한 경우
이만하면 김태희와 비교해 여러 면에서 우위라고 봐도 전혀 무리가 없겠죠?
옛날 사진에 옛날 화장법 헤어 의상 이런 거라서 그 점이 다소 거슬리지만 가히 대한민국 전설의 독보적 비주얼 갑에 전문가들 의견대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미인`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
그리고 이건 다른 주제인데 이 분이 이토록 더 오래도록 강렬한 인상으로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기억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점기에 물러났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본의아니게 당시 세간을 발칵 뒤집으며 전격결혼과 함께 은퇴하긴 했지만 그 일로 인해 30세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대중들 앞에서 사라졌죠
그 결과 21세 때 데뷔 후 불과 만 9년간의 짧은 활동기간만의 추억만이 남은 상태
그러니 대중들은 이 분의 찬란히 빛나던 20대 시절 모습만을 오래도록 영원히 기억하게 될테고 그래서 더욱 신비하고 영롱한 추억으로만 간직할 수 밖에 없는 것
만일 지금까지 중견배우로 쭉 활동 해서 나이 든 모습 그래서 대부분의 중견급이 그렇듯 젊은 시절에는 주연만 독차지하고 청순미 지존에 아름답고 세련된 멋진 캐릭터만 독식 했어도 나이 들어 푼수 이미지의 조연으로 밀려나거나 망가지는 모습이 되듯 이 분 역시나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됐다면 과연 지금의 정윤희 신화는 존재할 수 있었을지 미지수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남자로 치면 노주현 한진희, 여자로 치면 유지인 금보라 이보희 이혜숙 이응경 이런 분들의 과거와 현재
지금의 현빈 송중기 김수현 김태희 한가인 손예진도 은퇴 안 하고 중년이 될 때까지 연기생활 계속 한다면 앞서 언급한 저 분들의 현재처럼 안 된다는 보장 없음 아니 그 누구에게나 불가피한 현실이 됨
마릴린 먼로나 제임스 딘 이런 이들이 세기를 넘어 불멸의 신화로 남은 데에는 물론 아우라와 매력 탓도 있지만 젊은 시절 모습만을 기억할 수 밖에 없게 된 현실도 분명 큰 몫을 함)
그리고 꼭 추가해야 할 이 분의 훈훈한 미담 비하인드 스토리
이건 이 분의 동료배우이자 무려 세 작품이나 함께 호흡을 맞춘 이대근씨가 인터뷰에서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진행자가 이대근씨에게 지금까지 함께 연기호흡을 맞춘 여배우들 중 누가 가장 인상적이었는가를 묻자 망설임없이 `정윤희였다`고 대답하며 이유를 이렇게 들려 주었습니다
<`나와 정윤희에게 각각 대종상 남녀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촬영 당시 극 중에 등장하는 산 속 오두막집은 셋트장이 아닌 실제 산골 오두막집이었다
노부부 단둘이서 사는 민가였는데 첫촬영 때 가 보니 이 노부부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전기라고는 달랑 전구 하나에 가전제품이라고는 낡은 라디오 하나가 전부, 이런 곳에서 식사라고는 보리밥에 김치 나물 뿐
이 모습을 본 정윤희는 저 분들이 너무 안 됐다면서 눈물을 글썽였고 마음이 여리고 동정심 많은 여자인가 싶었는데 얼마 뒤 일이다
한참동안 촬영을 하던 중 정윤희가 문득 그 부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소원이 뭔가요?`라고 묻자 부부는 `우리는 텔레비젼이라는 걸 가져보는 게 소원이야`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나서 얼마 뒤 촬영이 잠시 비는 동안 마을에 내려간 정윤희는 어디선가 텔레비젼 한 대를 사와서는 그 부부에게 선물이라며 주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와 스텝들은 `참 인정 많고 통 큰 여자구나`라며 감탄과 감동을 금치 못 했다`>
이 정도로 외모만큼이나 심성도 고운 여성이었고 이 외에도 벽지 나환자촌 마을에서 촬영할 때 나환자촌 방마다 텔레비젼 선물을 개인사비를 들여 한 일도 있고 정진우 감독이 `스텝들이 밤샘야외촬영으로 지쳐 있을 때 손수 찌개를 끓여 대접한 적도 있고 촬영이 아무리 고되고 피곤해도 짜증 한 번 내지 않을 정도로 구김살 없고 대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닌 여자다`라고 회고하기도
(참고로 당시는 텔레비젼이 지금처럼 흔해빠진 물건이 아닌 귀한 고가품이던 시절이라 한 대 가격이 그 시절 어지간한 직장인 몇 달치 월급 수준, 그러니까 지금으로 환산하면 몇 백만원대)
요즘에도 이런 기질과 행동을 지닌 여배우 과연 있을까?
첫댓글 이쁘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