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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을 토대로 한 모의 재판 교육 연극
♣ 모의 재판을 통한『허생전(許生傳)』의 또 다른 수업 국어 교과를 지도함에 있어서 우리는 글의 종류(갈래)에 맞게, 그 독특한 특성에 맞는 수업을 하고자 늘 고민을 하게 된다. 시는 시대로, 수필은 수필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그 고유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수업 모형을 찾고자 한다. 소설 수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학습 목표는 줄거리 요약과 주제 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인공을 피고로 하는 모의 재판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에『허생전(許生傳)』의 모의 재판을 통한 수업이 학생들의 흥미와 효과적인 수업의 측면에서 나름대로의 성과가 있었다고 판단되어『허생전』의 또 다른 수업 유형으로 소개한다. 학습 대본을 쓸 때에 가능한 한『허생전』에서 강조되는 바를 모두 삽입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를테면 연암의 사상, 당시의 시대적 배경, 등장 인물의 역할과 성격, 허생의 행적과 사상, 주제 등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자연스럽게 학습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재판의 말미에서 배심원들의 의견 개진이라는 이색적인 시간을 통해 허생의 사상에 대하여 학생들의 토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허생에게 부여된 죄목은 가정 파괴죄, 국가 경제 질서 교란죄, 공정 거래 위반죄, 미풍 양속 저해죄, 국가 원수 모독죄, 내란죄, 공무 집행 방해죄, 살인 미수죄 등이었는데,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은 배심원이 되어 각각의 죄에 대하여 유·무죄를 판단하고 그 이유를 밝히도록 하고, 서기의 사회로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이때 등장 인물들의 의상(판사복, 검사복 및 전통 의상)에 신경을 쓰면 더욱 효과적인 수업이 된다. 대본은 아래와 같다. 1. 학습 제목 : 『허생전(許生傳)』 2. 지도 방법 : 주인공 허생을 피고로 하는 모의 재판을 통해 배경 사상인 실학과 연암의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 정신, 그리고『허생전』속에 반영된 당대의 현실 모습을 살펴 본다. 또한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는 학습자들이 허생의 행위에 대한 비판을 통해 스스로 비판 정신을 갖게 한다. 3. 학습 목표 1) 이야기의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다. 2)『허생전』에 반영된 시대적 배경을 말할 수 있다. 3)『허생전』의 주제를 파악한다. 4. 지도 과정 ▶『허생전(許生傳)』모의 재판 대본 1) 때 : 1895년 7월 12일 2) 곳 : 제11호 법정 3) 등장 인물 : 판사, 검사, 변호사, 서기, 허생, 허생의 아내, 변씨, 변씨 아들, 이완, 연암 (방청석과 배심원이 자리하면 서기가 무대 중앙으로 나오며) 서 기 : 일동 기립!(재판장 등장) 뒤에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뭡니까? 이것은 이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는 행위로써 최고 징역 3년, 벌금 800냥 이하에 해당됨을 알려드립니다. 일동 착석!(서기 자리에 앉는다.) 재판장 : 에, 갑오 개혁이 있은 지도 1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근대적 개혁 속에서 사법 제도 또한 근대적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오늘 근대적 재판인 '11호 재판'을 함에 있어서 허생에 대한 재판을 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피고 허생에 대한 '국가 반란 및 살인 미수죄'에 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땅 땅 땅) 검사 논고 하시오. 검 사 :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만장하신 신사 숙녀 여러분! 본 검사는 오늘 이 자리에서 피고 허생을 재판하게 된 것은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본 재판은 무능력한 양반에 대한 재판이며, 사회 질서 교란과 국가 전복을 꿈꾸는 많은 불순 세력에 대해 안보의 이름으로 단죄하는 재판이 될 것입니다. 피고 허생은 무능력한 양반의 전형으로서, 비바람도 막지 못할 정도로 폐허가 된 집에서 하루종일 글읽기만 좋아하고, 그 가족의 생계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변씨에게 일만 냥을 꾸어 삼남의 길목이며 오곡의 집산지인 안성에 내려가, 온갖 과일을 몽땅 사들여 나라에 잔치나 제사를 지낼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과일값의 폭등으로 만 냥을 벌었는데, 피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제주도에 가서 말총을 모조리 매점 매석하여 나라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역시 그로 인해 100만 냥을 손에 쥔 피고는 나라 안의 도적들과 짜고 빈섬으로 들어가 스스로 왕으로 군림하였으나, 뜻하는 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다시 나라로 들어와 육군 참모총장 이완을 능멸하고 살인 미수에 그치는 등 그 폐악이 극에 달해 죄상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이에 본 검사는 재판장님의 서리발같은 판결을 부탁드리며 이상 논고를 마치겠습니다. 재판장 : 그럼 순서에 따라 검사측부터 피고에 대한 신문을 시작하시오. 검 사 : 피고의 본격적인 신문에 앞서 증인을 신문하고자 합니다. 본 검사는 허생의 아내 천안댁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재판장 : 증인 나오시오. 검 사 : (논어(論語)를 주며) 선서하시오. 허생의 아내 : 증인 허생의 아내 천안댁은 공자님께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합니다. 재판장 : 검사! 신문하시오. 검 사 : 에, 증인은 피고와 연애 결혼했습니까? 허생의 아내 : 미쳤습니까? 중매를 했기에 저런 무능력한 사람과 속아서 결혼을 했지, 연애했다면 결혼했겠습니까? 검 사 : 증인은 피고와의 부부 생활에 있어서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피고인 남편 허생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허생의 아내 : 예, 그렇습니다. 검 사 :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허생의 아내 : 내가 저 인간만 보면 10년전 배가 고파서 구워 먹었던 지렁이가 거꾸러 넘어오는 것 같습니다. 예, 참으로 지긋지긋 했지요. 저이는 무능력의 극치였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폐가와 같은 집에서 한 겨울을 나도 집을 수리해 볼 생각도 못했고, 저의 삯바느질로 겨우 하루 한끼 입에 풀칠을 해도 스스로 뭔가 해 볼 엄두를 못냈으니까요.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란 게 책을 읽은 것뿐이었어요. 자는 시간 아니면 그저 공자왈, 맹자왈이었거든요. 이혼이란 게 합법화되었다면 100번이라도 더 했을 겁니다. 자그만치 7년이었어요. 참다 참다 못해서 어느 날은 제가 그랬지요. 여봇, 공장장이 일이라도 해보지 그래요? 옆 집 갖바치에게 가서 신발 만드는 좀 거들고 돈 좀 벌어와요. 허 생 : 갖바치 일은 본디 배우지 않은 걸 어떻게 하겠소. 허생의 아내 : 그럼 장사라도 해 보지 그래요? 허 생 : 장사 할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허생의 아내 : 아니,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이요? 공장장이 일도 못한다. 장사도 못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하시나요? 허 생 : 아깝다! 내가 글읽기로 십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7년인걸… 허생의 아내 : 글쎄, 저러더라니까요? 그리고는 휑하니 나가서 5년이나 소식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오더라니까요? 저는 죽은 줄만 알고 제사까지 지냈는데 말예요. 검 사 : 그렇다면 비록 돈은 못 벌어다 주었지만 잠자리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능력이 있었습니까? 변호사 : 재판장님! 검사는 지금 사건의 진위와 무관한 질문으로 피고를 욕보이고 나아가 법정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검 사 : 아닙니다. 피고의 무능력함을 드러내고자 할 뿐입니다. 재판장 : 인정합니다. 검사! 검사는 사건의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 질문으로 피고의 인격 및 법정의 품위를 지켜 주십시오. 검 사 : 알겠습니다. 증인! 그러면 피고가 5년만에 돌아온 뒤의 생활을 어떠했습니까? 허생의 아내 : 초지일관, 시종여일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달라진 것이라곤 변씨라는 시중 상인이 가끔 내왕하여 술좌석을 가진 것뿐입니다. 검 사 : 이상 증인 신문을 마치겠습니다. 재판장 : 변호인측, 증인 신문할 내용 있습니까? 변호사 : 있습니다. 증인은 피고의 아내가 맞지요. 허생의 아내 : 맞습니다. 변호사 : 증인은 피고가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학문하는 것을 방해하고 급기야는 피고를 집에서 내쫓았지요? 허생의 아내 : 내쫓기보다는… 변호사 :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시오. 증인은 피고의 10년 학문 계획을 7년에 도중 하차시키고, 결과적으로 피고를 집에서 나가게 했지요? 허생의 아내 : (억울한 듯이) 예. 변호사 : 증인은 피고와의 혼례식에서 주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본 변호사가 입수한 두 사람의 당시 주례사에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남편의 뒷바라지에 희생과 정성을 다하겠다는 증인의 맹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증인은 피고의 학문을 돕기는 커녕, 바가지나 박박 긁어대고 급기야는 피고의 가출을 야기시켰습니다. 증인은 피고의 무능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의 아내된 도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증인은 피고에게 도둑질이라도 하라고 부추기지 않았습니까? 허생의 아내 : 그것은… 변호사 : 예, 아니오로만 답해 주세요. 허생의 아내 : 예 변호사 : 증인은 그것이 범죄 행위 방조 및 범죄 교사죄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또한 책읽는 양반보고 도둑질이라도 하라는 얘기는 당시 모든 양반들이 도둑보다도 못하다는 논리로 받아드려도 되겠습니까? 검 사 : 재판장님! 이의있습니다. 변호인은 지금 지나친 논리의 비약으로 증인을 마치 죄인 취급하고 있습니다. 재판장 : 그것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므로 검사의 의견은 기각합니다. 변호사 : 피고에게 묻겠습니다. 피고는 물론 가출하기 이전에는 무능력한 양반이었지요? 피 고 : 예, 그렇습니다. 변호사 : 그러면 가출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피 고 : 원래 저는 10년을 계획하고 학문을 연구했습니다. 물론 처음에야 공·맹에 빠져서 공자왈, 맹자왈 했지만 불세출의 스승, 연암 박지원 선생님께 사사한 후에 실학이라는 학문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변호사 : 피고가 사사한 연암 선생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피 고 : 연암 선생은 영, 정조 때 실학의 거두로서,『열하일기』와『과농소초』등 많은 저서를 내신 문학가이시며, 시대의 선각자이십니다. 그 분은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양반층의 무능과 허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당시 선비 계층이 나아가야 할 바를 밝히신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변호사 : 좋습니다. 재판장님, 다음 피고측 증인으로 연암 박지원을 신청합니다. 재판장 : 증인 나오시오.(증인 걸어나온다) 서 기 : (책을 주며) 선서하시오. 연 암 : 저는 공, 맹자에게 선서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책에 선서하겠습니다.(『북학의』에 손을 얹으며) 저는 법정에서 진실만을 말할 것을 실학 앞에 선서합니다. 검 사 : 증인이 피고를 만난 것은 언제였습니까? 연 암 : 1780년이니까 정조 5년이었습니다. 변호사 : 증인이 피고를 만나던 당시 피고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연 암 : 물론입니다. 무능력하고 몰락한 양반의 전형이었습니다. 독서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고 전부인양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저는 총기있는 피고의 눈망울에 반했었지요. 어쨌든 피고는 나를 만나고 혁명적으로 변했습니다. 피고의 학문이 워낙 뛰어났으므로 관념적인 유학자에서 실학자로 상당히 빠른 진척이 있었습니다. 변호사 : 증인이 피고를 만나던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연 암 : 그러니까 제가 허생을 만났던 정조 5년은 역사적 전환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업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거부들이 출현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축척된 자본은 신분의 매매로 이어져 신분제의 동요를 가져왔고, 결국 무능력하거나 권력에서 밀려난 양반은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상적 기반은 유학이었으나 북벌론의 위기감과 무모함에 반기를 들고 실사구시 '실학'의 탄생이 있었습니다. 증인 역시 일찍 실학에 눈을 떠 후진 양성에 힘쓰던 중, 피고를 만나 저의 학문적 소신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변호사 : 그러면 증인은 피고의 스승으로서, 피고가 행한 매점 매석에 의한 치부나 이상 사회 건설, 북벌론 허위 공격에 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연 암 : 물론 저의 생각이 허생의 생각입니다. 허생은 나의 제자이지만 나의 분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얘기하자면 이러한 허생의 행적은 지금 비록 유죄로 인정될지라도 100년이 지난 미래에는 허생은 영웅이 될 것이고, 그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만큼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변호사 : 이상입니다. 재판장 : 원고측 반대 신문 있습니까? 검 사 : 있습니다. 증인은 피고의 행위가 그렇게 정당하다면 왜 처음부터 자신의 제자임을 떳떳이 밝히지 않고 윤영이라는 노인의 제자일 뿐 자신은 그저 안면만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까? 연 암 : 그것은 솔직히 당시 양반 계급의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학문과 사상이 매우 급진적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검 사 : 그렇다면 증인은 피고의 죄를 인정한다는 얘깁니까? 연 암 : 아닙니다. 죄를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검 사 : 증인! 증인은 피고와 함께 당시 금기시 하던 실학을 공부할 때 피고의 집 뒤 대나무 밭에서 비밀리에 했다지요? 연 암 : 예, 그렇습니다. 검 사 : 그것은 실학이라는 학문이 떳떳하지 못하였고, 실학 이외에 또다른 비밀스러운 일을 모의하기 위해서지요? 이를테면 사회 질서 교란 및 이씨왕조 체제 전복같은 것 말예요. 변호사 : 재판장님! 검사는 지금 증인을 유도 신문하고 있습니다. 검 사 : 아닙니다. 피고의 모든 범죄 행위는 연암 박지원에서 나왔으니, 증인은 배후 조종자임이 분명합니다. 연 암 : (책상을 탁 치며) 뭐라고? 배후 조종자라고? 말이면 단 줄 아시오? 재판장 : 아! 증인 조용히 하시오. 여기는 신성한 법정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소란하게 하면 퇴장시키겠소.. 연 암 : 퇴장요? 내 발로 스스로 나가겠소! 이런 구시대적 봉건 잔재가 남아있고, 새로운 사고와 질서를 거부하는 법정에서 더이상 죄인 취급받고 싶지 않소! 내가 배후 조종자라고 생각되면 정식으로 구속 영장을 청구하시오.(밖으로 퇴장한다) 재판장, 검사 : 저런, 저, 저 무식한 사람이 다 있나. 재판장 : 검사, 계속 신문하시오. 검 사 : 피고, 피고는 집에서 가출한 뒤 곧바로 어디로 갔습니까? 피 고 : 시중에서 제일 갑부인 변씨를 찾아갔습니다. 검 사 : 그래서 다짜고짜 일만 냥을 달라고 했습니까? 피 고 : 예. 검 사 : 재판장님, 증인으로 변씨를 신청합니다. 재판장 : 증인, 나오시오.(증인 나오고, 서기 책을 주며) 서 기 : 선서하시오. 변 씨 : 나는 돈 앞에 선서하겠소. 나는 오로지 돈밖에 믿지 못하니까 나는 이 돈 앞에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합니다. 서 기 : 아니, 이 서기 알기를 무어로 아는 게야! 다들 지 맘대로군. 내 참 더러워서. 검 사 : 증인, 피고가 돈을 꾸어 달라고 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무대는 변씨 집, 연극적 상황으로) 허 생 :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보려고 하니, 만 냥을 꾸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변 씨 : 그러시오. 변씨, 식솔 : (방청석에서) 아버님, 저이를 아십니까? 변 씨 : 모르지. 변씨, 식솔 : 아니,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돈 만 냥을 그냥 주신단 말씀인가요? 변 씨 :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비굴한 빛으로 말을 중언부언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비록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안주면 모르되 줄 바에야 이름은 물어 무엇하겠느냐? 검 사 : (끼어들며) 여보시오. 증인, 말이 됩니까? 처음 만난 사람에게 돈 만냥을 주고, 게다가 이름도 묻지 않다니… 변 씨 : 그것은 첫 눈에 비친 사람 됨됨이가… 검 사 :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시오. 두 사람은 초면이라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소. 두 사람은 은밀히 내통하고 있었어요. 결국 허생의 행동 자금을 요구하자 자금책으로서 만 냥을 내놓은 것이요. 그 돈은 이씨 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작금이 아니었나요? 변 씨 : 아닙니다. 변호사 : 재판장님, 지금 검사의 논리는 지나치게 비약, 왜곡되었습니다. 재판장 : 인정합니다. 검사는 충분히 검증된 사실만을 신문하시오. 검 사 : 알겠습니다. 증인, 증인을 피고가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 했는지 사전에 알고 있었습니까? 변 씨 : 몰랐습니다. 몇 년 후에 다시 나타나서 그간 상황을 피고에게 들었을 뿐입니다. 검 사 : 증인은 피고가 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만 냥으로 나라의 경제를 어지럽히고, 질서를 교란시켰으며, 그 돈으로 왕정 자체를 부정하고 빈 섬에 이상 사회를 만들어 스스로 왕이라 칭했습니다. 그리고 반란과 살인 미수… 변호사 : 재판장님,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사는 피고의 죄를 단정짓고 있습니다. 재판장 : 인정합니다. 검사는 사실 신문만 하도록 하시오. 검 사 : 이상입니다. 재판장 : 피고측 반대 신문 없습니까? 변호사 : 있습니다. 증인은 피고에게 돈을 내어 주던 날 처음 보았지요? 증 인 : 예. 변호사 : 피고는 매점 매석으로 돈을 벌었는데, 증인은 이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증 인 : 피고는 단순히 개인 치부를 위해 매점 매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라의 경제를 시험해 보고자 했고, 그 결과 조선 경제의 얕음에 한탄하기까지 했습니다. 체제 전복의 의도가 있었다면 한탄했겠습니까? 그리고 매점 매석의 방법에 대해서도 그것은 백성을 해치고 나라의 경제를 병들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변호사 : 증인, 지금 원고측에서 피고의 가장 큰 죄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 왕정 체제의 전복과 함께 이완 대장에 대한 살인 미수죄입니다. 증인은 피고를 이완 대장에게 소개시켜 주었지요? 변 씨 : 예. 이완 대장이 북벌론에 쓸 훌륭한 인재를 찾는다기에 제가 허생씨를 소개해 주었죠. 변호사 : 증인으로 이완 대장을 신청합니다. 재판장 : 증인 나오시오.(증인 나온다.) 서 기 : 웬 증인이 이리 많아! 참내, 꽤나 귀찮군. (책을 던지며) 선서하시오. 이 완 : 나도 나의 신념 앞에 선서하겠소. 나 증인 이완은 북벌론 앞에서 항상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합니다. 변호사 : 증인은 체제 전복을 꿈꾸는 사람이 부국 강병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세 가지 부국 강병책은 무엇이었습니까? (무대는 허생의 집, 연극적 상황으로) 이 완 : 나라에서는 지금 청나라로부터 당한 치욕을 씻고자 인재를 널리 구하고 있습니다. 변씨로부터 듣건데, 선생님께서는 능히 그러한 분으로 사료되기에 찾아 뵈었습니다. 허 생 : 밤은 짧은데 말이 길구나. 네가 차고 온 술병이나 이리 다오. 이 완 : 지금 온 나라가 병자 호란의 원수를 갚고자 절치 부심하고 있는 이 때에 선생님께서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밝은 등불이 되어 주소서. 허 생 : 말이 번거롭다. 네 벼슬이 무엇이냐? 이 완 : 대장이오. 허 생 : 그렇다면 신임 받는 신하군. 이 완 :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렵다면 저에게 부국 강병에 관한 좋은 계책을 주셨으면 합니다. 허 생 : 좋다. 첫째. 이 완 : 첫째. 허 생 : 내가 와룡 선생같은 이를 천거하고자 하니 임금으로 하여금 삼고 초려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 완 : 어렵습니다. 제 2계책을 듣고자 합니다. 허 생 : 나는 원래 제 2라는 걸 모른다. 이 완 : 듣고자 합니다. 허 생 : 둘째. 이 완 : 둘째. 허 생 : 지금 명의 멸망으로 명나라 왕실 자손이 나라 안에 떠돌고 있는데, 너는 조정에 청하여 조정의 종실 딸들을 시집 보내고, 세도 있는 자들의 집을 빼앗아 그들에게 줄 수 있겠느냐? 이 완 : 어렵습니다. 허 생 :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그럼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가장 쉬운 게 있는데 할 수 있겠느냐? 이 완 : 듣고자 합니다. 허 생 : 국중의 자제를 뽑아 되놈의 옷을 입혀 선비는 벼슬을 하게 하고 서민은 장사로써 청의 실정을 염탐하게 하여 중국의 호걸들과 결탁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 완 : 사대부들이 모두 예법만을 따르는데 누가 머리를 깎고 오랑캐 옷을 입겠습니까? 허 생 : 세 가지 중 한 가지도 못하면서 신임 받는 신하란 말이냐? 너같은 놈은 칼로 머리를 베어야 할 것이다. 칼이 어디 있던가? 검 사 : 그만 ! 피고는 증인에게 부국 강병책 세 가지를 제시했다고 하나 그 모든 것이 하나같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 이는 의도적으로 이완 대장을 능멸하고자 함이라. 피 고 :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사대부들이 대의 명분에만 빠져서 실리를 취하지 않음을 말하고자 함이지 체제 전복이나 이완 대장의 명예를 손상시키려 함이 아니었소. 검 사 : 좋소. 그런데 북벌 계획에 바쁜 이완 대장이 왜 피고를 찾아 왔다고 생각하시오? 피 고 : 그야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러 왔다지 않소. 검 사 : 인정하겠지요? 증인이 피고를 만나는 것은 공무 집행이었습니다. 그런데 피고는 그러한 증인을 칼로 찌르려 했습니다. 이는 살인 미수죄는 물론 공무 집행 방해죄에 해당됩니다. 알고 있습니까? 피 고 : 아니, 그것은… 검 사 :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시오. 피 고 : 아니오. 몰랐습니다. 검 사 : 게다가 임금님한테 삼고 초려를 하라고 했다니 이렇게 발칙할 데가 있나. 임금님의 지존하신 권위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것은 국가 원수 모독죄에 해당됨을 모르십니까? 피 고 : 어찌 제가 임금님을 모독… 검 사 : 피고, 북벌론이라 함은 효종 임금때 이완 대장과 송시열이 주축되고, 온 국민이 대동 단결하여 청나라 오랑캐에 당한 치욕을 씻고자 하는 국가적인 그레이트 이벤트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북벌론을 반대한 피고의 행위는 국가 통치권을 부정하고 청의 침략을 정당화시키는 매국적인 행위였음을 인정하시오? 피 고 : 아닙니다. 제가 북벌론을 반대한 것은 임진 왜란이 있은 지 40년도 채 안 되어 다시 정묘 호란, 병자 호란을 겪어서 온 나라의 농토는 황폐화되고, 백성들의 삶은 처절한 고통의 연속이었소. 이런 상황에서 다시 전쟁 준비를 한다고 세금을 징수하고 산업 일꾼인 장정들을 군대로 차출해 가니 나라 꼴이 어찌 되겠소? 검 사 : 그러면 피고는 오랑캐 당한 치욕이 안중에도 없단 말이요? 피 고 : 물론 그 치욕이야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날 정도로 분하지만, 우선은 청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 상업과 공업의 진흥을 통하여 국가 경제를 희생시켜 놓고 북벌을 해도 되지 않습니까? 며칠을 굶어 건들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이 천하 장사에게 싸움을 거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생각이 들었소. 그래서 우선 경제를 살리자는 뜻으로 실학을 주장한 겁니다. 검 사 : 이상, 증인 신문을 마치겠습니다. 재판장 : 변호인측 최후 변론하시오. 변호사 :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 우리는 오늘 참으로 엄숙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피고 허생 개인을 단죄하는 자리가 아니라 도도히 흐르는 진보적 역사의 흐름을 거부하려는 무리들과 새시대의 진리를 밝히려는 선구자들과의 대결의 장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피고는 처음에 무능력한 양반의 전형이었으나, 실학에 입문한 후 실사 구시에 눈을 떠서 대의 명분에만 빠져있는 양반들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수립하고자 하였으나 당시로서는 워낙 선구적인 생각인지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이 세상에서 잠적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지니고 있었던 사농공상 구분 없는 평등한 인간성의 구현 및 실용적, 실질적 학문 연구와 당시 백성의 삶을 돌보지 않던 북벌론의 허위를 공박한 일 등은 진정으로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행해졌다고 믿어지며, 피고가 이완을 칼로 찌르려한 것은 단지 백성의 삶을 생각하지 않은 북벌론에 대한 경계였지, 실제로 살인할 의도는 아닌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므로 본 변호인은 피고의 무죄를 감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현명하신 재판장님의 판결을 기대하면서 최후 변론을 마칩니다. 재판장 : 검사, 구형하시오. 검 사 : 피고 허생은 가족의 생계를 돌보지 않는 파렴치하고 무능력한 가장으로서 변씨로부터 공작금 일만 냥을 받아 매점 매석을 통해 치부하는 등 국가 경제 질서를 심히 교란했으며, 과일을 독점해 제사를 못 지내게 하여 미풍 양속을 해쳤고, 나라의 도적들과 궁합을 맞춰 나라를 전복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그들을 빈 섬으로 데려가 스스로 왕이라 칭하는 등 온갖 방자한 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효종 임금과 국가의 숙원 사업이었던 북벌론에 대항함으로써 왕의 권위를 무시하고 반란을 획책하더니, 공무 집행 중인 이완 대장을 칼로 찔러 죽이려 하는 등 그 죄를 낱낱이 밝히는 것조차 불가할 정도의 중죄인으로 사료됩니다. 이에 본 검사는 피고를 마치 영웅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허생전』을 전량 폐기 처분하고 피고에게 무기 징역을 구형합니다. 판 사 : 피고, 마지막 진술하시오. 피 고 : 닭 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소. 도도히 흐르는 역사적 추이를 그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이오. 진리는 영원하고 사악함은 금새 드러나는 법입니다. 판 사 : 잠시 휴정한 후 판결에 들어 가겠습니다. 배심원 여러분께서는 각각 피고의 유죄, 무죄를 판단하여 서기에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휴정을 선언합니다. 땅 땅 땅(재판장 잠시 퇴장) 서 기 : 재판장님 말씀대로 배심원 여러분은 지금부터 자신의 소신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학생들은 배심원이 되어 손을 들어 자기의 의견을 말한다. 7∼8명의 의견 개진이 있고, 다시 재판부가 등장한다.) 판 사 : 재판을 속개합니다. 땅 땅 땅. 본 재판부는 배심원의 의견을 들어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본 재판부는 원고의 논고를 일일이 검토해 본 결과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다만 가장으로서의 무능력했던 점과 매점 매석으로 인한 공정 거래법 위반 건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그 죄가 인정되므로 피고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권고한다. 권고 1 : 피고는 노동의 참 뜻을 되새기는 의미로 한 달 간의 건축 공사장의 인부로 일할 것을 권고한다. 권고 2 : 피고는 매점 매석과 같은 불공정한 거래가 나타나지 않도록 소비자 고발 센터에서 일 년 간의 봉사 활동을 권고한다. 이상으로 피고 허생의 '국가 내란 및 살인 미수죄'에 관한 최종 공판을 마칩니다. 땅 땅 땅 -- {함께여는 국어수업}통권 제25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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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시한-허생전을 읽는 시각에 나오는 질문을 적절하게 활용하되, 당시 시대적 상황을 오늘에 비추어 판단한다.
*허생 독점의 사회 경제적인 의미? *허생이 양반 신분을 벗어나지 않고 상인을 무시한 내면적인 이유? *허생이 결국 사라져서 결말 처리가 완결성이 떨어진 이유?
*열하일기 옥갑야화 허생전 후지에 담긴 박지원의 집필 의도? *허생전에 나오는 가출->독과점 상행위->군도를 인솔하여 섬에 간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