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월 27일(土) 서산 팔봉산

[유목민]

▣ 산의 기준은 굳이 높이에만 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山이자,
갖가지 동물 및 물고기 형상들과 어우러진 바위 전시장에서의 餘適 ▣ 
 
☆ 일시 : 2024년 1월 27일.
☆ 산행코스 : 팔봉면 양길리 주차장~제1봉,2봉,3봉,4봉,5봉,6봉,7봉,8봉~서태사~어송리 주차장.
☆ 산행거리 : 4.4km.

- 산행 들머리였던 양길리 주차장에서의 컷_전세버스와 제1봉 및 제3봉 -

겨울 아침에 산길을 나선다는 것은
아픈 그대를 두고 어두운 술집에 나와
빈 의자를 지키며 쓸쓸히 술잔을 기울이는 것과 같다.

하얀 불빛이 내 곁에 소리없이 내려앉고
바람이 파르라니 공중제비를 돌며 부는 날,
짭쪼름한 갯내음이 알싸하게 가슴을 후벼 파는 날,
나는 스산함과 황량함이 깃든 겨울산을 향한다.

- 멋진 산행과 오롯한 여행을 함께한 일행들과 단체 컷_물레방아 회장님 제공 -

겨울의 한 복판에서 마음껏 자유를 느낀다.
일찍이 맛보지 못한 것!
소중히 간직해 버리고 싶지 않는 것!!
내 살과 피와 영혼으로 바꾸고 싶은 것을 찾아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서 달려와
앵글앞에 서봤다.

- 팔봉산 표석 -

- 팔봉산 등산안내도 -

- 팔봉산자락은 서산이 자랑하는 '아라메길'에도 속한다 -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 '아라'와 산의 우릿말인 '메'를 합한 말이며,
바다와 산이 만나자는 서산지역의 특색을 갖춘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트래킹코스로
총 6개 구간, 4개 지선으로 총길이는 약 126km이다.

- 아라메길 전체 지도 -

- 산행 시작 후 200m지점 등산로에 세워진 여류시인 '오청취당' 詩碑 -

- 뒷면엔 오청취당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해 적혀져있다 -

비운의 여류시인 오청취당(吳淸翠堂, 1704~1732)은
해주 오씨 오기태의 딸로 남편은 한다리 김씨 김한량(1700~1752)이다.
문집은 [청취당집]이 있으나 역대 시화서나 문학사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여성 시인이다.
청취당은 당시 스물 둘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혼인하여 서산 음암면 유계리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두 자식을 낳자마자 잃었고 자신도 병고에 시달리다 스물아홉이라는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러한 자신의 짧은 삶속에서 술과 시는 맺힌 근심을 풀고, 고독과 우울한 심사를 덜어낼 수 있는 휴식처요 이상향이었다.
청취당은 자신의 삶에 대한 단상을 182수의 한시에 담아내었다.
[청취당집]은 조선후기 한 여성 지식인의 일상과 고뇌, 문학적 성과를 추적할 수 있는 보고이다.
청취당은 다른 명문가 여성들의 문학환경과는 달리 그녀 개인의 타고난 재주와 독학으로 학문적 경지를 이루었다.
게다가 스물아홉이라는 짧은 생애를 통해 가난과 병마,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감내하면서
자신만의 색깔로 다양한 영역의 시세계를 구축하였다.
청취당의 문학은 고독과 동경, 일상과 일탈, 욕망과 좌절, 꿈과 환상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청취당은 자신에게 맞닥뜨려진 삶의 고난과 역경을 한시 창작으로 승화시켰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짧은 생애를 회고하고, 갓 태어난 어린 아들이 잠룡이 비를 만난 하늘로 오르듯이
그렇게 성장해 주기를 염원하는 시를 써 모성의 피맺힌 절규를 토해냈다
청취당의 문학 작품은 여기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은 맑은 대나무 잎처럼 빛을 낸다'고
청취당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어 불렀다.

- 임도길 사거리를 지나 제1봉으로 향하는 지점의 이정목 -

이번 산행길을 운영하는 山房에 공지하니
산쟁이들 曰
'내노라하는 유 대장도 그런 곳에 가냐고?' 해댄다!
하지만,
그런 너스레에는 관심이 없다.
왜냐고?
그 해답은 이어지는 그림과 나레이션에 있다.
 
비록 0.3km를 걸어와 만나는 이정목이지만
나름의 묘미가 솔찬한 것임에..
20여 년 전의 추억을 엷은 미소로 대신하면서 걸었다.

- 제1봉 뒷편 조망바위에 이르니 이원반도와 대산반도가 둘러싼 가로림만이 훤하게 바라보였다 -

산에 오르는 이유야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산행을 통해 각자의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一山一喜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 가로림만 안쪽과 태안지역, 그리고 흰연기가 오르는 태안화력 -

一山一喜
한번의 산행이 하나의 기쁨을 준다.
 
산을 오르는 자는 다 제각각의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산을 오르는 의미에 경중이 있을 수 없다.
 
백두대간의 장엄한 산길을 나선 자도
한잔의 술이 그리워 나선 자도
다 나름의 기쁨이 있다.
 
그러나 기쁨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산행이 다 무슨 소용이랴.
 
사진사가 빛을 찾듯
사랑하는 이가 사랑을 찾듯
기쁨을 찾아라.
 
발 아래에 기쁨이 있다.

- 산행 들머리였던 양길리 주차장 -

산행은 담백한 一味다
산은 산으로 萬法과 통한다.
그래야만 산행이 수행이 된다.
 
길이 소통을 의미하듯
진정한 산꾼들에게 길이란 소통이며, 無碍요 求道다.
궁극의 자유다.
 
산길을 걸으며 대자유를 얻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喜가 아닐까.

- 진행할 제2봉과 제3봉이 햇살과 함께하고 있다 -

자신에게 잘하는 삶이 오히려 쉬운 것이라는 걸
나는 산행을 통해 배웠다.
자신을 억누르기 보다는
스스로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 것에 눈떠야 한다.

세상사를 스스로 성숙할 수 있게 내버려 둬라.
오히려 그 속에서 리듬을 찾아라.

산에서 눈을 만나면 눈을 맞고
그치면 행복을 만나라.

산을 넘어오는 알싸한 찬바람은 산만 아니라
그 산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도
깨끗이 씻어준다.

- 지리산하 대장님께서 담아주신 컷_감사합니다^^ -

몸을 낮추어 세상을 본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는 뜻이다.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

몸을 세상의 높이에 맞추어 세상을 들여다본다.

마침내 겨울에 동화한 기분이다.

- 발빠른 산우님들이 제2봉으로 오르는 걸 zoom_in으로 담았다 -

내가 끊임없이 산에 오르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으로부터,내가 안은 고통으로부터의 도피일 수도 있다.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내 성격적인 탓도 있겠지만,
과거의 아픔을 떠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무의식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 산우애보다 더 빛나는 형제애가 발휘된 한 장의 컷 -

- 감투봉으로 칭하는 팔봉산 제1봉 -

- 제1봉과 제2봉 갈림점인 안부 이정목 -

- 지나온 안부 모습 -

르코르비제는
'비행기는 날기 위한 기계요
배는 항해를 위한 기계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했다'.
 
산을 기계라 표현할 수는 없다
산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산은 삶을 위한 도구는 될 수 있다.
 
세상 그 무엇도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동시에 치유할 수 있는 스포츠는 없다.
 

- 우럭바위 -

- 우럭바위와 거북바위 설명판 -

- 거북바위 -

- 제2봉으로 향함서 만난 제1봉 설명판과 뒷편의 제1봉 -

- 암릉을 직등하여 만난 고래바위(제2봉) -

- 코끼리바위 뒷모습(여자 코끼리)과 진행할 제3봉 -

봉우리를 바라본다는 것은
山에 내재된 특별한 존재감을 느끼는 일과 같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 행복의 단초이듯
一峰을 마주하며 一喜를 얻는다.

- 팔봉산 제2봉 -

- (남자)코끼리바위 -

- 코끼리바위 설명판 -

- 팔봉산은 암릉미도 출중하지만 遊山客들이 酒遊(alcohol station)할 공간을 많이 꾸며놨다 -

'산정에 휴식이 있다' 라는 칸트(Kant)의 감성은
휴식을 갈망하며 힘들게 산정에 오르는 자의 그리움이리라!

- 음풍농월을 하면서 유유자적하는 산객들의 쉼터역활을 해 줄 수있는 사각정자도 만났다 -

- 해태(시비나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의 동물)을 그려놓은 바위_산울타리님 제공 -

산, 바위, 나무 개개의 정물로서의 가치보다
정물과 정물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대화 속에서
산을 걷는 의미가 오롯이 빛난다.
 
하나의 상황에 고착되는 사고는
산행의 가치를 축소시킨다.

- 헬기장에서 바라본 제3봉 -

시월의 노래처럼 
마음이 가볍다.
 
이런 날씨에 산의 품에 들어
가벼운 응석으로
달디단 노동을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이냐!
 
산에 몰입할수록
그 행복이 커져감을 느낀다
일종의 중독이다.

- 팔봉산 정상을 헬기장에서 바라보면 건장한 체구의 어깨가 닮았다고 하는 설명판 -

- 통천굴을 통과해야만 진행이 가능했다 -

- 용굴루트로 진행하면서 담은 입구 모습 -

- 용이 서식했다는 전설이 안내되는 판 -

- 용굴을 통과한 후 담은 모습 -

- 제3봉으로 오름서 용굴 내부 -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난 이름하여 용굴을 겨우 통과하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떠올린다.
 
세상 그 어디보다 생각의 즐거움을 주는 산길이다.

- 용굴을 지켜주고있는 암봉 -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은 
더 넓고 더 높은 것일수록 좋은 것이다.
 
협소한 시각은 편협한 판단을 만들고
관용의 삶을 위협한다.

- 팔봉산 안내판 -

- 제3봉으로 이어감서 바라본 제1봉과 제2봉, 그리고 사각정자 -

지나간 사랑을 소중히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지나온 산행길을 뒤돌아보면서 얻은 교훈이다.

인연의 미묘함은 인간의 뇌로는 깨닫을 수 없고
혀로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무릇 이 이치를 두려워하고 올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 가로림만엔 겨울임을 드러내는 얼음이 언 것이 zoom_in에 걸렸다 - 

餘白이 주는 아름다움.
산행의 묘미 중 하나는 발견의 기쁨이다.

이 가린것 없이 평화롭고도 고즈넉한 겨울 바닷가.
영락없이 고독한 현대인을 연상시킨다.

逆으로 고요함의 숨소리에 겨운 풍광을 바라보는 나야 말로
외로운 동시대인인지 모르겠다.

- 제4봉부터 제8봉까지 담은 컷 -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이 떠오르는 푸근한 풍경이다
짧디짧은 오늘의 산행길에서 이런 조망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거리낄 것 없는 자유란 이런 것이 아닐까?
 
사랑이 떠난 후에 그리움이 남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자유란 현재의 자유다
미래의 자유도 아닌
과거의 자유도 아닌
오직 현재의 자유만이 자유다.

- 제3봉을 이루는 암봉 -

- 제3봉 정상석에 인증 컷을 담느라 여념이 없는 일행들 -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흡족하지 않다는 것은
풍경 속에 흡족하지 않는 비장미(悲壯美)가 숨겨져 있기 떼문이다.
 
카메라는 내가 볼 수 있는 바를 보지 못한다.
 
카메라가 표현하지 못한 풍경의 뒤란은
부득이 마음으로 밖에 간직할 길이 없다.

- 팔봉산 정상인 제3봉 표지석 -

- 제3봉 정상의 암봉들 -

- 한 컷 한 컷에 심혈을 기울려서 담아내시느라 애써주시는 핫포테이토 작가님 -

빛을 빛으로 느끼는 일이 내게는 난해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빛을 빗댄 온갖 표현들을 생각해보다
갓 볶아낸 개암나무 열매 냄새를 떠올리는 그림이다.

- 제3봉 정상에서 물레방아 회장님과 산우님을 담아보는 기회도 갖었다 -

山行은 늘 본질적으로 아름답다는
내 평소의 신조 위에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그려내냐' 라는 작은 고민을 
단숨에 해갈하는 터치를 하고 만 컷!

- 제3봉을 지나 건너편의 암봉에서 함께한 일행들을 핫.포 작가님께서 챙겨주셨다 -

淸福이 꼭 먼 산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내 발이 닫는 곳 마다
내가 주인인 까닭에
오늘도 행복을 엮어내며
걷고 있는 한걸음 한걸음을 통해 청복을 얻는 순간이다.
 
산행이라는 비물질적 행위를 통해
이처럼 가슴을 꽉 채우고도 남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애의 큰 행운이다.

- 팔봉산 암봉군 끄트머리 바위에서 포즈를 잡아봤다_핫포 작가님 제공 -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조망이 없는 길을 걸어서 만난 제4봉 -

- 솔내음으로 힐링을 함서 만난 제5봉 -

- 제6봉으로 가는 등로에서 만난 볼거리(?) -

나는 무리이고
무리가 이루는 풍경이다.
 
세상은 나를 무리를 통해 이해하지만
나는 그 무리의 이해가 방해된다.
 

- 제6봉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제3봉과 제4봉 -

마음을 애써 비우려하는 것도 일종의 강박이요,
세상사 모든 일에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도 또다른 강박이다.

들고 남이 바다의 潮水처럼
자연스러워야한다.

자연스러움이란
있는 듯 없는 것, 없는 듯 있는 것..

또한 그것을 구별하지 않는 마음이다.

가을 산인들 어떠하며, 겨울 산이면 또 어떠랴.

滿山에 겨울이 집요하게 열려있다.

- 제6봉에다 유목민이 다녀간 걸 드러내는 낙서를 해놓았다 -

- 단 4분 만에 다다른 제7봉 -

- 마지막 봉우리로 이어감서 자일이 깔린 지극히 짧은루트로 진행했다 -

이 루트로 오르면 또다른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서!
아니나 다를까..
팔봉산의 우두머리가
마치 일천미터급의 고산의 암릉처럼 불끈 솟구쳐 있었다.

- 제8봉 전위봉에서 소나무가지 사이로 담아본 제3,제4,제5봉라인 -

좀 더 멀리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손에 닿을 수 없기에..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 하지 마라.
이별이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지는 것이다.

좀 더 멀리 보이는 산이기에 더 아름답다.

- 제8봉에 못 미친 지점의 이동통신기지국_A/S중이었다 -

- 제8봉과 삼각점 -

- 서태사를 지나 어송주차장으로 안내하는 이정목 -

- 아담한 사찰인 서태사 -

- 사찰에 보기드문 태극기가 휘날린다? -

- 산행 날머리인 어송리 주차장 -

풍경은 인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매 순간의 풍경 앞에 내가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내 마음속의 인상이 풍경 위에 꿈을 꾸듯 덧입혀진다.
 
더없이 감미로운 풍경이 아닌가.

- 주차장에서 담은 서산 9경 안내판 -

@ 이 팔봉산 後記에 이어서
간월암-안면암-꽃지해변에서 머문 餘適이 이어집니다...^^

[한나무]

한번의 산행이 하나의 기쁨을 준다는 말씀에 공감하며 멋진 산행기 잘 보고갑니다~^^

[유목민]

공감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서 같이해주심에 감사합니다,
한나무님!
이런 후기를 엮어내는 데에
기회를 준
희ㆍ토의 회장님을 비롯한 집행부와
찐 횐님들이 계심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고 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