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관 수필데뷔작
짐덩이 유감 외 1편
9호선 지하철을 탔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았다. 염창역에서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인 두 명이 올라오더니 거침없이 경노석으로 가서 앉았다. 친구로 보이는 두 여인은 의상 경주하듯 화려한 옷에 귀걸이, 두 겹의 진주목걸이, 굵직한 반지 등으로 치장한 것으로 보아 돈도 좀 있고 젊어 한때 잘 나가던 중산층 이상의 귀부인들로 보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앉아 하는 얘기가 기가 막혔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달리 그녀들의 입에서는 구리내가 진동했다. 한마디 한마디 입에서 나오는 말은 넝마, 먼지, 쓰레기로 꽉 찬 정말 듣기 민망한 행동거지였다.
그녀들이 손사레 흔들어가며 하는 말은 이러했다. “벌어오지 않는 남편은 무거운 짐덩이 “라는 것이었다. 목소리의 바이브레이션을 높여가며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다 웃어대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메트로 안에서는 정숙을 요하는 공공장소다. 모두가 질서를 잘 지켜주어야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자기네 안방처럼 큰 소리로 전화한다거나,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는데 제지하지 않는다거나, 학생들의 지나친 장난, 젊은 연인들의 포옹 등은 꼴불견으로써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메트로 안에서 약간의 대화라든가 소음 정도를 이해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들의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그들의 하는 꼴이 가소로웠는지 매서운 눈초리로 수다에 참견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마치 다른 사람도 들으라는 듯 떠들어댔으니 시비해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이 그렇게도 보기 싫어요?”
“예, 돈 못 벌어 오면 싫어요. 돈 못 버는 남자 무슨 존재 가치가 있겠어요?”
체면이나 부끄럼은커녕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하는 당당함에 참으로 무례하고 막되먹은 여자들로 보였다. 노인은 더 이상 말해 봐야 본전도 못 찾겠다 생각했는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고 말았다.
그녀들의 말하는 솜씨나 색깔로 보아선 교양미라고는 전혀 없는 것이 젊어서 직업을 가졌던 직업여성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보여지는 화려한 그녀들의 삶이 남편 덕이었을지 싶은데, 저분과 같이 사는 남편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묻지 않아도 혼곤昏困한 삶의 연속일 것이라 생각하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측은함과 연민이 나의 뇌리를 헤집고 있었다.
젊어서 상사의 눈치 보아가며 가족의 생계를 평생 책임진다는 의식 하나로 한 눈 팔지 않고 죽살이 고생하면서 퇴직까지 견뎌온 온 것이 한국의 대부분의 샐러리맨 남성들일 것이다. 30년 넘게 일하고 퇴직해 집에서 쉬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는 눈이 한마디로 “짐덩이”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면 나는 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여성을 앞의 두 여성으로 대표하는 것은 아니나 여성들의 권한이 많이 커지고 달라진 것은 확실하다.
이 분들은 애정이나 사랑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고 남성의 월급봉투를 보고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역지사지로 남편이 늙은 부인을 “짐덩이”로 호도한다면 과연 어떤 감정으로 받아들일지 묻고 싶다. 서로가 차마 직접 듣는 데에서는 이런 막가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앙금은 일상에서 좋은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산다는 게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기에는 너무 짧은 인생이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함께할 시간에 감사합니다.”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그런 생각으로 산다면 얼마나 정겹고 포근한 삶일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사랑은 인생의 넓은 벌판에 핀 한 떨기 아름답고 향기 짙은 꽃이다. 사랑은 우리가 갖는 감정 중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이다.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참된 사랑은 찾기 힘든다, 말은 흔히 ‘사랑한다’ 말하지만 참된 모습은 아주 귀하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와 관용과 포용, 동화, 자기낮춤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슨 짓을 해도 부끄럽지 않는 나이를 먹어야 하고, 남의 눈치 살피지 않아도 되는 원숙의 경지에 서야한다. 더 이상 잘난 체, 아는 체, 가진 체 할 필요도 없이 마음 편히 멋을 사랑하고 살면 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면 어디서나 세상은 살만하고 즐거운 것이다. 스피노자는 “비웃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오직 이해하라”고 했다. 시인 백낙천은 “인생을 부귀로서 낙을 삼는다면 좀처럼 낙을 누리지 못한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사는 것에 대하여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 잘 산다는 것은 아름답게 사는 것이요, 바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복은 반드시 소유에 비례하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서로 머리 맞대고 등 긁어주며 이해하면서 즐겁게 사는 인생이 아쉽다.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라고 한다.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사람의 행위가 일반적으로 도덕적 성격을 가진다면 거기에는 가치의 문제가 등장한다. 무엇이 옳은 행위며 무엇이 그릇된 행위인가 하는 것을 판정하는 심판관은 가치의 표준이다. 가치의 표준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이 가치기준이 제대로 서 있지 않고 권리만 찾는다면 여성상위시대는 막되먹은 시대가 될 것이다.
부의 축적이나 향락의 추구, 명예욕의 만족이 반드시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바로 사는 것, 아름답게 사는 것, 진실하게 사는 것, 보람있게 사는 것, 알차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리라.
만족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해도 부자로 살 수 있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많이 가졌어도 마음은 가난하다.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 유일무이한 목숨까지 놓고 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다. 단지 잊고 사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북한산 둘레길
아침에 일어나면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오늘의 날씨’를 습관적으로 듣는다. 특히 외출할 계획이 있다든가 변덕이 심한 날씨에는 일과 시작 전에 필수라 하겠다.
오늘은 아침과 낮의 일교차가 심하기 때문에 겉옷을 하나 걸치고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기상캐스터의 멘트다. 나는 여기에 대비하고 문을 나섰다.
친구와 6호선 독바위역에서 만났다. 오늘은 종전과 달리 다른 코스로 변경하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북한산둘레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북한산둘레길”이라고 표시되어있는 안내 표지판을 보면서 걸었다.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앞서 가고 있었다.
근래에 와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걷기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는데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이 제주도 올레길이다. ‘올레’의 뜻은 집 대문에서 마을이나 인근에 ‘마실간다’ ‘놀러간다’ ‘아주 좁은 골목’을 뜻하는 것으로 정겨운 고향냄새가 풍기는 제주어이다. ‘올레’는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다. 제주 ‘올레길’은 서명숙씨가 스페인을 방문하여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돌아온 후에 고향 제주도에 ‘올레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뒤질세라 전국이 자연과 문화재를 함께 즐기며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열풍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됐다. 기존 산을 오르는 등산로 개념과는 달리, 곳곳에 평탄한 건강산책로와 명품 숲길인 둘레길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자연휴식공간을 제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부산에 해안 트레킹코스, 지리산 둘레길, 변산 마실길 등 그 뒤를 이어 2010년 9월 1일 북한산 둘레길을 개통했다. 북한산 둘레길은 1970년 1월 1일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후 최근 산행인구 급증과 북한산 주변에 대규모 주거단지 조성으로 산을 찾는 사람들의 증가로 자연훼손이 되었다. 공원 내 중요자원이 분포하고 있는 고지대 보호를 위하여 저지대 자갈길로 탐방객을 분산 유도하고 그간 이용에 어려움이 있었던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층에 공원이용의 편의성을 제공하면서 “역사, 문화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살아 숨쉬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길”이란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으며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산책로인 것이다.
북한산 둘레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나무데크와 목재펜스로 안내되어 있어 서울에서 새로운 걷기 코스로 지금 각광을 받고 있다. 나는 북한산을 많이 다녀봤지만 오늘 이 둘레길은 처음이다. 등산과는 달리 둘레길은 산책길이기 때문에 땀 흘리는 코스는 아니고 어려운 길도 아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걷기에 안성마춤이다. 요소요소에 쉼터도 만들어놓았다. 1시간 정도 걸어갔을 것이다. 계곡물이 흐르는 산굽이 늪지대에서 아주머니인지 학생인지 한분이 모자를 눌러쓰고 외진 곳에 함초롬하게 새악시처럼 피어있는 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꽃이 좋아, 꽃이 예뻐서 스쳐가면서 찍는 것이 아닌, 분명 전문가의 관찰용인 듯, 앞으로 뒤로 옆으로 렌즈를 당겼다 밀었다 하며 찍는 모습이 상당히 신중하고 진지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관찰하는 꽃이 처음 보는 꽃이어서 “이 꽃이 무슨 꽃입니까?” 하고 물었다.
“물봉선입니다” 그녀는 눈을 카메라에서 떼지도 않고 귀로 듣고 입으로만 대답하고 있었다. 그 태도가 아주 차갑고 냉혹하게 보였다. ‘물봉선’옆에는 하얀 싸락눈처럼 생긴 꽃도 있었다. 그 꽃 이름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녀의 진지한 모습과 냉정함에 기질려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섰다. 나중에 집에 와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물봉선’은 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로서 산지의 계곡이나 물가에, 축축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로 되어 있었다. 봉선화를 닮았는데 물을 좋아해서 ‘물봉선’이란 이름이 붙어지게 되었다.
우리가 가는 길가에는 자주색의 ‘물봉선’이 연달아 피어있었다. 꽃은 아름다운 것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제 목숨을 바쳐 한 송이 꽃을 피워냈기 때문일 것이다.
능선길을 빠져 나오니 도로가 나왔다. 비포장도로로 가로수까지 심어져 있어 시골길처럼 서정적이었다. 뙤약볕을 거닐며 혹 둘레길에서 일탈한 길이 아닌지 아리송했다. 가끔 승용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진관사 가는 길이면서 둘레길이란다. 왼쪽으로 새로 잘 지어진 건물이 보이는데 삼천사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이라 써있었다. 정문에는 수위가 통제를 하고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 학생이 앉아서 반기면서 방문하는 목적을 물었다. 이곳은 ‘노인전문요양원’인데 만 65세 이상 노인과 만65세 미만의 노인성 질병을 갖고 장기요양 등급 1~3등급 판정을 받은 분들을 대상으로 요양시키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시설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팜플렛을 하나 가지고 나왔다.
진관사 입구에 이르렀다. 삼거리에서 둘레길 표지판을 찾았지만 없어서 망설이다가 삼각산 진관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일반적으로 사찰은 입구에서부터 몇 백 년을 뿌리박고 살아온 노송이라든가 오래된 고목들이 숲을 이루며 사색의 길이 이어지는데 이 사찰은 삼거리에 근
접해 있으면서도 나무가 없고 공사 중이었다.
옛날에는 이 주위에 음식점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헐렁한 햇볕뿐이다. 다리를 건너니 진관사 영내다. 독경소리가 북한산을 울리고 나의 마음엔 “정숙”이 엄숙함을 속삭인다.
진관사는 천년의 역사가 깃든 고찰이다. 동으로는 불암사, 남으로는 삼막사, 북으로는 심원사와 함께 한양 근교의 4대 사찰로 일컬어질 만큼 이름난 사찰중의 하나이다.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코자 지은 절이라고 한다.
진관사를 뒤로하고 나와서 다시 둘레길을 찾아가니 지금까지 북한산 길은 위로 오르는 길만으로 되어 있었지 옆으로 가는 길은 연결되지 않았다. 의외로 평지길이 이어지니 당황하기도 하고 건너보이는 곳에 하나고등학교가 학교로 보이지 않을 만큼 모양이 돋보였다. 한참 햇볕 비포장 길을 걷다가 점심시간도 지나고 배도 고파서 둘레길을 이탈하여 입곡삼거리에서 버스 7211번을 타고 불광역에서 내려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오늘 우리가 간 길은 구정정원 길을 한참 걷다가 마실 길로 나와서 끝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했음을 알게 되었다.
기회가 되는대로 ‘북한산둘레길’을 다시 한 번 가볼 예정이다.
진솔하면서 숙성된 맛을 보여준다
신문예64호의 신인상 응모작품 중 유중관의 수필 「짐덩이 유감」과 「북한산 둘레길」 2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유중관의 글을 대한 첫 느낌은 수필을 창작함에 있어 퍽 사고를 깊이 하고 또 사물의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점이 돋보였다. 수필의 장르적인 특색이 진솔성과 자아(ego)성이란 점에서 본다면 사고의 깊이와 사물의 관찰력은 필수적인 부대요건으로 따라야 할 것이다.
「짐덩이 유감」을 전철에 있었던 단순한 사실이지면 퍽 충격을 주는 내용이다. 요사이 남편들의 권위상실의 시대라고 하지만 남편을 짐덩이로 치부하는 시대성을 고발하고, 수필의 뒷부문에 사랑과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방법을 논리 있게 또 감동 있게 써놓은 글이다.
「북한산 둘레길」은 수필의 전반 부문에는 올레길이 생긴 유래를 조리 있게 설명하고, 후반부에 북한산 둘레길을 답사하여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수필화한 체험수필로 퍽 다정다감하게 독자에게 다가오는 맛깔 나는 글이다.
두 편의 수필 모두 사고의 체계가 논리정연하게 진전되어 있고, 문장의 표현력도 달관되어 있어, 수필을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인정되고 또 추천하는 마음이 가볍다. 앞으로 소재와 주제의 개발에 힘쓰면 큰 별로 뜨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나태한 모습은 용서 못해
가끔,
피라미 낚는 재미로
즐겨 다녔던 낚시…
월척을 했으니 하늘이 열린 듯
즐거움 충천합니다
저의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노력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드리며
대단히 고맙습니다
시합평회의 ‘이목회’ 선생님들도 축하해 주세요
글 쓰는데 물심양면으로 협조를 해준
아내여!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전남 나주 출생.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졸업
월간 ������신문예������ 시로 데뷔. 열린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