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 돌라와 야일, 그리고 암몬의 압제[삿 10장]
[내용개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폭정으로 다스리던 아비멜렉이 죽은 후에도 계속 해서 사사들이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 당시에 활약하던 사사로는 부아의 아들 돌라와 길르앗 사람 야일이 있었다(1-5절). 그런데 본장에서는 이들에 대해 이름과 통치 기간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기록을 남기고 있지 않다. 이것은 이들이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암울했던 기간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사사를 통해 계속되었음을 말하고자 하는 본장의 기록 의도 때문이다. 그러나 사사들로 인해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던 이스라엘은 또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 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이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블레셋으로 하여금 십팔 년 동안 압제하게 하셨다(6-9절).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죄악을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구원을 간청하였다(10-16절). 이때 마침 길르앗에서 암몬 족속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17-18절).
[강 해]
이스라엘은 비록 인간의 실수와 허물로 인해 매순간 큰 위기를 만나야만 했지만, 그러한 와중에서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여상하였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본장에는 사사 돌라와 야일을 통해 이스라엘 을 도우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악에 심취해 갔던 이스라엘이 맞게 된 아픈 현실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정녕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
1. 사사 돌라와 야일의 활약상
1) 사사 돌라의 활약상
자기 형제 70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왕권을 쟁탈했던 아비멜렉의 철권 통치가 그의 처참한 죽음을 끝으로 종막을 고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비멜렉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약 45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에 평화와 번영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돌라와 야일이라는 두 사사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평화롭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호시탐탐 괴롭혀 왔던 대적을 물리침으로써 전쟁으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이 땅에 거하는 당신의 백성에게 날마다 평안과 복을 허락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이 그것들을 얻어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들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덧입기 위해, 날마다 죄를 청산하고 참회하는 성결의 작업을 진행해 가야만 합니다.
a. 하나님 앞에서의 참회(시51:1-2)
b. 참으로 복된 인생(시32:1)
2) 사사 야일의 활약상
사사 돌라가 죽은 이후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의 끈을 늦추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돌라의 뒤를 이어 길르앗 사람 야일을 새로운 사사로 세워 이스라엘을 치리하게 만드셨습니다. 한편 본문에서는 그의 선한 행적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사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여전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a. 함께 하시는 하나님(수1:5)
b.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요1:14)
2. 또다시 이방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1) 죄악의 노예로 전락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완악한 통치자 아비멜렉의 통치에서 벗어나 무려 45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태평한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평안한 때에 그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점차 잊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을 숭배하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조금만 육신이 편하여지고 사는 것이 넉넉해지면,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죄악에 심취하는 악한 경향을 나타내곤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죄의 노예요, 습관적인 악의 종이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모습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과 동떨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실 우리들도 육신적으로 편하고 물질적으로 넉넉할 때에 신앙의 열도가 높아 지기보다는 도리어 영적으로 게을러지고 세속에 쉽게 빠져드는 악한 경향을 띠고 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a. 세상과 벗 된 영혼(약4:4)
b. 미련한 자의 특징(잠24:9)
2) 고통 중에 부르짖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과 우상 숭배에 심취하게 되자, 그것을 참아 보고 지나칠 수 없으셨던 하나님은 블레셋과 암몬 족속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약 18년 동안 외세의 탄압 아내서 신음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절망 중에 있을 때, 이스라엘은 또다시 눈을 하나님께로 돌려 그분의 도움을 간구하게 됩니다. 그들은 채찍을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그야말로 짐승같이 미련한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a. 환난 날에 부를 주님(시50:15)
b.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렘33:3)
3. 블레셋과 암몬의 압제
1) 습관적인 범죄자로 전락한 이스라엘
하나님은 블레셋과 암몬의 압제 아래서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뒤늦게 발견하고 당신께 부르짖어 구원을 호소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돕기를 거절하셨습니다. 그 이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위기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보호해 주었지만, 이스라엘은 평화의 때가 찾아들면, 또다시 죄악과 타락으로 달려나가는 습관적인 범죄자였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그렇게도 흠모하는 아른 신들에게서 구원을 얻어 보라고 명하시게 됩니다. 진정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화로울 때에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일도 창으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인생이 죄악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계속 그 악순환에 빠져든다면 그 인생은 마침내 절망과 탄식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정녕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며 또 그분 앞에서 늘상 진실하고 경건하기를 힘쓰는 자에게는 더 이상 죄악이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a.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시2:12)
b. 참된 안전을 얻는 방법(잠29:25)
2) 자비와 긍휼이 충만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어려운 형편을 더 이상 돌보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근심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애타게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가 없었고,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월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사랑하신 자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a. 사랑이신 하나님(요일4:10)
b.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요3:16)
결론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대해서는 단호히 심판하시기를 마지않으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당신 백성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지니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고하고 끈질긴 사랑은, 당신의 백성이 범죄하고 허물을 범할 때에는 슬픔과 근심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바로 이 같은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바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단어해설]
1절. 돌라. 이름 '돌라'는 '벌레'를 뜻하나 그가 속한 잇사갈 지파의 한 족속을 나타냄.
3절. 야일. '빛을 비추는 자'를 뜻. 길르앗 땅을 기업으로 물려받은 므낫세 지파의 후손으로 추측됨.
4절. 아들 삼십. 고대 근동에서 유행한 축첩 제도의 결과. 이처럼 많은 아들을 소유하려면 매우 높은 지위의 신분과 위엄을 가져야 함.
7절. 진노하사. 원 뜻은 '얼굴이 빨갛게 타오르다'인데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로 하나님께서 매우 진노하심을 보여 줌.
[신학주제]
이스라엘의 구원 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거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고 블레셋과 암몬 족속에게 핍박을 당하던 이스라엘은 마침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구원 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예상외로 부정적인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들을 도우시고 적들을 물리쳐 주시던 하나님이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구원 요청을 거절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로 하여금 심판의 자리에서 벗어나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이스라엘이 현재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변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스스로의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하 는 것이다. 그런데도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랑 숭배의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만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본성에 의해 죄의 문제를 청산하지 못한 이스라엘을 도우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냉정한 거절로 인해 이스라엘은 비로소 자신들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우상을 제하여 어리고 철저하게 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마침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본장은 하나님의 구원이 물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더불어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영적교훈]
암몬의 침공을 받은 이스라엘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하시지 않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진심으로 회개하자 곧 응답하시고 그들을 구원 하고자 하셨다. 이와 같이 참된 회개는 결코 말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행동으로 드러나야 함을 교훈해 준다. 말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도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알아갈 때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정욕에 빠지고 죄악을 범한다면 그것은 참된 회개가 될 수 없다. 진정으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과거의 죄 된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특히 과거의 어두운 생활에서 이제는 빛의 자녀답게 생활해야 하며 세상의 고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
출처: 주님의 시선 글쓴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