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밤
아마 분명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무논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으며 길을 걸었으니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로 집을 나섰다. 마침 고향 쪽으로 가는 버스가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님이 지척의 거리에 사시는데도 자주 못 찾아 뵈 온 것이 죄스러웠다. 전번에는 문 밖 출입을 통 못하셨는데…. 날씨만 차면 기동을 거의 못하신 지가 벌써 여러 해째 되신다.
차가 마을 앞 정류장에 이르렀을 때에는 날은 이미 어둠의 장막에 깔려 있었다. 거기서부터 어머님이 사시는 집까지는 초간한 거리다. 소로(小路)를 한식경 걸어야 한다.
도랑길을 지나면 외나무다리가 나서고 그 다리를 건너면 또 냇가의 모래밭이 이어진다. 그 모래밭 길의 끝닿는 곳이 마을의 어귀다. 어디서나 흔하게 보는 시골길이다. 그런데도 이 길은 언제 걸어도 내 마음에 드는 길이다.
발에 익은 길이지만 나는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도랑가에 우뚝우뚝 솟은 미루나무들은 어둠 속에서도 훈훈한 바람을 일으키며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나무들 사이를 따라서 한동안 도랑길을 걸었다. 길가의 무논에서는 개구리 떼들이 서로 경연이라도 하듯이 목청을 돋구어서 울어대고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농촌의 조용한 정취를 맛보는 것이 마음에 흡족했다. 별로 서두를 것도 없는 길이다. 그래서 시골길이 더 좋은지도 모른다. 풀섶에서 쉬고 있던 개구리가 몇 마리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텀벙텀벙 논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낮 같으면 앞 뒷다리를 쪽 뻗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이 귀여운 다이빙 선수들의 애교 있는 폼을 즐길 수가 있을 터인데 어둠 속에서는 그저 소리만 들릴 뿐이다.
초여름의 총아는 역시 개구리다. 봄과 여름은 그 철바꿈이 싱겁다. 인사성 없는 나그네들처럼 가는 줄 모르게 떠나고 오는 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 봄과 여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실상 늦봄과 초여름은 거기가 거기다. 달이나 날을 따져서 금을 긋듯이 봄 · 여름을 가리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그저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면 봄이 가고 여름이 온 것으로 생각하면 틀림없다. 개구리 울음소리마저 들을 수 없는 도시생활에서는 늦봄과 초여름을 선뜻 분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정말 여름은 개구리 울음소리에서 시작해서 매미 울음소리로 절정에 이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봄의 꿀벌, 한여름의 매미, 가을의 뀌뚜라미 그리고 겨울의 기러기를 한몫 주듯이 초여름의 개구리를 놓고 다툴 미련한 친구는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신록의 짙은 가지사이로 훈훈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보리이삭이 익어갈 무렵이면 바로 초여름이자 개구리의 계절이다. 논마다에는 물이 그득하게 고인다. 제철 만난 개구리들은 이때를 놓칠세라 물속을 헤치고 다닌다. 그리고 세상의 한(恨)을 도맡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껏 울음통을 터뜨린다. 그러나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결코 슬퍼서 우는 것은 아니다. 신록의 계절을 즐겨 노래하는 것이 울음소리로 들리는 것뿐이다.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결코 아름다운 가락 속에는 들지 못한다. 그러나 어린아기 보채듯이 성급하게 울어대는 그 귀염스러운 가락은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를 않는다. 거기에 가끔 맹꽁이라도 끼어들어 한몫을 맡고 나서면 이것은 소박한 자연의 교향곡이 아니면 풍물시(風物詩)가 될 수도 있다.
“개골 개골 개골 맹--꽁! 개골 개골 개골 맹--꽁 개골 개골 개골 맹--꽁….”
나는 길을 걷는 동안 어느새 정신없이 개구리소리에 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밤과 나는 하나가 되어 주위는 한결 호젓하게 느껴졌다.
마을의 농군들은 다 집으로 들어갔는지 인기척 하나 없다. 넓은 들판에는 여기저기 온통 개구리 소리만이 밤의 공간을 메운다. 일자리에서 돌아간 농군들은 아마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서 지금쯤은 곤한 잠에 떨어졌으리라. 어쩌면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더욱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 걸어도 즐겁기만 하던 이 길이 이제 나에게는 덧없이 슬프고 먼 길이 되고 말았다.
작년 겨울이었다. 어머님이 자리에 누우신 것은. 가벼운 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며칠만이면 일어나시려니 했는데 병세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며칠 사이에 의식을 잃으시고 혼수상태에 빠지셨다. 약석(藥石)의 효과도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워낙 쇠진하신 때문이었다. 읍에서 모시고 나온 의사 선생님에게 희망을 걸어 보았지만 그분의 고명한 의술로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한동안 진찰을 한 뒤에 절망적인 선언을 하고 돌아갔다.
어머님의 여명(餘命)은 길어야 10일 정도라고. 뵙기에도 딱할 만큼 어머님은 날마다 신고(辛苦)만 계속하셨다. 무엇이 저렇게 어머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괴롭히는 것인가?
앙상한 어머님의 손을 잡고 체모도 없이 나는 어머니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어쩌면 어머님 생전에 마지막 불러 보는 일일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임종이 경각에 달려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심정으로는 어머님이 70고개만 넘기셔도 한이 없을 것만 같이 생각되었다. 나는 어머님을 부르고 있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님은 나의 애절한 기원을 알아들으셨는지 입술을 조금 움직이셨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물을 한 모금 잡수셨다. 이 정도의 호전도 며칠 만에 처음 있는 차도였다. 누구의 글이던가. 병에서 회복되는 때처럼 행복스러운 때가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어버이가 다시 살아나시는 때보다 더 감격스러운 때는 또 없을 것이다. 어머님은 기적처럼 차츰 회복단계에 들어가셨다.
그때부터 정확하게 1년하고 3개월 동안을 어머님은 인생의 여백처럼 더 사시고 올봄에 세상을 떠나가셨다. 70의 생신을 거의 혼수상태 속에서 넘기시고 꼭 사흘 만에 돌아가셨지만.
나는 한껏 바란다는 것이 겨운 1년3개월의 유예를 어머님께 빌어 드린 셈이었다. 그 순간에는 한 달만 서 사셔도 아니 열흘만 더 사셔도 한이 덜어질 것만 같았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가 되고 한다. 천수(天壽)가 그뿐이시라면 후회해서 무엇하고 한탄해서 무엇 하랴!
어머님은 그동안 어렵고 괴로운 연명(延命)을 하신 것이다. 마치 아들의 기원을 의무처럼 부담을 느끼며 억지로 사시려고 무한히 애쓰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어이 아들의 기원을 들어주시고 이 세상을 떠나셨는지도 모른다.
어머님은 봄볕이 쏟아지는 이른 봄날을 가려서 영생의 길을 조용히 떠나셨다. 그날은 지루하고 음산한 긴 겨울이 한꺼번에 풀린 것 같은 따뜻하고 맑은 날씨였다. 구름도 없고, 바람도 없이 개인 날이었다. 한 평생을 착하고 어질게만 사셨던 어머니― 나는 어머님의 아들로서보다도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 훌륭하신 생애 앞에 항상 고개를 숙인다. 어머님의 일생은 결코 화려하고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간구하고 외롭고 고단한 편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항상 바르고 성실하고 착하게만 한평생을 사신 분이셨다. 돌아가시고 나니 더욱 높은 덕이 우러러 뵈는 어머니!
어떻게 붓끝이 가는 대로 생각이 흘러가다 보니 여기까지 지나치고 말았다. 나는 지금 이 적막한 밤에 어머님을 조용히 불러보면서 언젠가 개구리 소리 들으며 도랑길을 걷던 초여름의 밤길을 다시 한 번 머리속에서 그려본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 동안에 자주 못 가 뵌 것이 한스럽고 죄스러울 따름이다.
(女性東亞 1972.6)
첫댓글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결코 슬퍼서 우는 것은 아니다. 신록의 계절을 즐겨 노래하는 것이 울음소리로 들리는 것뿐이다.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결코 아름다운 가락 속에는 들지 못한다. 그러나 어린아기 보채듯이 성급하게 울어대는 그 귀염스러운 가락은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를 않는다. 거기에 가끔 맹꽁이라도 끼어들어 한몫을 맡고 나서면 이것은 소박한 자연의 교향곡이 아니면 풍물시(風物詩)가 될 수도 있다.
“개골 개골 개골 맹--꽁! 개골 개골 개골 맹--꽁 개골 개골 개골 맹--꽁….”
어머님은 그동안 어렵고 괴로운 연명(延命)을 하신 것이다. 마치 아들의 기원을 의무처럼 부담을 느끼며 억지로 사시려고 무한히 애쓰시는 것 같았다...어머님은 봄볕이 쏟아지는 이른 봄날을 가려서 영생의 길을 조용히 떠나셨다..나는 지금 이 적막한 밤에 어머님을 조용히 불러보면서 언젠가 개구리 소리 들으며 도랑길을 걷던 초여름의 밤길을 다시 한 번 머리속에서 그려본다. (본문 부분 발췌)
개구리 울음 속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어요.
개구리 소리 들으며 걷던 초여름밤의 기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으셨을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