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범패수행과 사상
1)수행의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의식체계
중국에서는 역경사업으로 경전이 성립되고 조사들에 의한 게(偈)와 송(頌)이 지어지고, 게와 송은 범패의 가사가 되어 노래로 불리어졌는데 이러한 전통은 한국에서도 행해졌다. 한국적 범패의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알려진 『삼국유사』의 월명사 관련 기록에는 신라시대 도솔가ㆍ제망매가와 같은 향풍 불곡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균여대사(均如; 923~973)에 의해 향가로 된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가 만들어졌다. 또한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대규모 불교행사가 이어졌으므로 이 시기에 불교의식과 범패의 본격적인 발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무형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는 한국불교 전통의《영산재》와《수륙재》는 오랜 역사를 가진 범패의례로서 문화예술적 가치만이 아니라 불교수행의 철학원리 역시 폭넓게 내포하고 있어서 연구가치가 높은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중에 중국 기원으로 알려진 수륙재는 양무제(梁武帝; 464~549)에 의해서 최초로 창제되었음이 기정사실이지만 영산재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설들이 있다. 이능화와 홍윤식은 영산재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영산재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요건이 되는 범패와 영산재의 목적이 되는 영혼천도 등의 불교의례가 이미 신라시대부터 있어왔으므로 비록 오늘에 전하는 영산재의 구성요소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연원이 될 만한 것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고증할 수 있는 자료에 의하면 최소한 오늘에 전하는 영산재의 구성내용은 조선 중기에 증보(增補) 편찬된 『범음집(梵音集)』에 영산작법 절차가 수록되어 있고 그 내용들이 고려불적질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고려시대에도 영산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학설을 참고하면 신라시대부터 불교음악이 전승되기 시작해서 고려시대에 발전을 이룬 범패가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도 끊이지 않고 면면히 유전되면서 쇠락과 발전을 거듭한 결과가 오늘날의 범패 형태일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또 하동 쌍계사 「진감국사대공영탑비명」에 묘사된 내용과 같이 진감국사의 범패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준 것이 선종산문의 일파인 쌍계산문(雙溪山門 내지 慧昭門)의 특성으로 인식된 내용은 한국범패의 역사와 특성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또 일본 승려 원인(圓仁)이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 당(唐)의 산동(山東) 적산원(赤山院)에 머물던 신라인들이 현지의 승려와 함께 신라풍(향풍) 범패로 강경의식에 참여하고 향풍 이전인 고풍(古風) 범패까지 구사한 것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 범패는 이미 신라시대부터 많은 발전이 있었을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현재 한국불교에서 행하는 의식의 종류는 크게 일용의식(日用儀式), 상용의식(常用儀式), 제반의식(諸般儀式)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일용의식에는 도량석, 종송(鍾頌), 사물(四物), 불전예경, 중단예경, 각단예경 등의 예경의식과 삼보통청(三寶通請)을 비롯한 각청(各請) 등의 권공의식(勸供儀式)이 있고 상용의식에는 불공과 함께 전시식(奠施食), 관음시식(觀音施食), 상용영반(常用靈飯), 종사영반(宗師靈飯), 화엄시식(華嚴施食), 구병시식(救病施食)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불공과 시식만 잘 이해하고 습득하면 다른 의식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불공과 시식은 의식의 핵심원리를 담고 있다. 제반의식은 천도재를 비롯해서 예수재, 영산재, 수륙재 등이 있고, 이외에 방생(放生), 점안(點眼), 관불(灌佛), 통알(通謁; 구정에 불전에 올리는 신년하례식)과 같은 특별 의식도 있다.
의식을 행할 때 취하는 행법으로는 좌립진퇴(坐立進退)와 절, 합장, 장괘(長跪)와 호궤(護跪), 우요삼잡(右繞三匝), 안행(雁行) 등이 있다. 좌립진퇴는 의식을 행할 때 앉고 서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행위, 절은 일배, 삼배, 반배 등이 있다. 장궤합장은 수계나 포살에서 무릎으로 상체를 세우고 합장하는 자세를, 호궤는 어른께 공양이나 물건을 드리거나 받을 때 한쪽 무릎은 꿇고 한쪽 무릎을 세우는 자세를 일컫는다. 우요삼잡(右繞三匝)은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며 공경 및 기원ㆍ명상하는 법으로 탑 주위나 본당을 시계방향으로 돈다. 안행(雁行)은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듯 대중이 일렬로 이동하는 법이다.
한국불교 사원에서 의식을 집행하는 승려는 이러한 행법에 대해서 숙지하고 목탁의 박과 범패의 운곡 및 제반의례의 절차를 잘 숙지하고 있어야 의식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식을 맡는 병법소임(秉法所任)은 교단수행의 원리와 절차를 잘 이해하고 있는 구참승(舊參僧)이 맡아서 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또한 선원 결제에 삼동결제방(三冬結制榜; 일명 용상방)이라 하여 조실, 선덕(禪德), 유나(維那), 입승(立繩), 청중(淸衆) 등의 체계가 있다면 수륙재 같은 재회에도 재시용상방(齋時龍象房)이라는 체계를 구성한다. 한편, 어산방(魚山傍)이라는 명칭도 있는데 이는 범패를 지도하는 강당에 걸던 것으로 어산(魚山), 상강(上講), 중강(中講), 말강(末講)으로 구성된다. 그 중 어산은 짓소리, 상강은 영산(靈山), 중강은 각배(各拜), 말강은 권공(勸供)을 가르쳤다.
재공의식에서 사용되는 범패율조를 보면 크게는 안채비소리와 바깥채비소리로 나누게 된다. 안채비는 공간적으로는 주로 법당 안에서 사용되며 그 형태는 평염불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염불조를 기본으로 유치성, 착어성, 편게성, 게탁성, 게탁성 및 소성(疏 聲)으로 구성된다. 이들 안채비는 주로 의식의 취지, 법리의 요약, 삼보를 향한 축원 및 영혼의 정화, 시식, 봉송 등 천도(遷度)에 필요한 내밀한 절차에 편성된다. 바깥채비는 주로 법당 밖에서 이루어지는 범음과 범패로서 선 자세나 이동하면서 장쾌한 통성을 사용하는 독창과 합창형식이 대부분이다. 바깥채비의 율조형식은 짓소리와 홋소리 및 화청(회심곡)이 있다.
2)짓소리와 홑소리
짓소리는 범패 중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발달한 분야로서 정신적 감흥을 느끼게 하는 특성이 있으며 범패를 전승하는 분야에서도 전통적으로 매우 존중받았던 곡들로서 별도로 범음(梵音)이라는 명칭을 갖는다. 범음이란 불교 전적을 통해 부처님의 음성, 부처님의 설법, 진리의 소리, 우주의 소리 등으로 사용되는 심오한 의미의 명칭이다. 짓소리의 악상은 엄숙, 장엄, 웅장하며 음률의 변화는 장인, 굴곡, 미묘, 변화무쌍하므로 배우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짓소리는 원숙한 어장들에 의해서 전승되고 평범한 재회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종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록 노련한 어장이 아니더라도 범패에 재능이 있고 이를 통한 수행에 확신이 있다면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가 짓소리 수련이라고 사료된다. 자신의 해탈(解脫)과 중생을 위한 일이라면 고행도 불사하는 것이 수도인의 자세이기 때문일 것이다.
짓소리는 해방 전 시기까지 73곡이 전승되고 있었으나 현재는 15곡만이 전승되고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손으로 꼽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해방 전 일제의 사찰령 시행에도 불구하고 범패는 민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던 분야였다. 해방기 전후에 출생해서 지금까지 활동해 온 원로급 어장스님들의 고증에 의하면 당시 서울 장안에서 열리곤 하던 어회(魚會)의 모습은 매우 장엄하고 웅장하여서 지금처럼 촉급한 의례만을 보아온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고 한다.
당시 봉은사 등의 대표적인 사찰에서 영산재를 모시게 되면 범패의 명문사찰인 개운사, 장안사, 청량사 등에 소속한 규모 있는 어산방 승려들이 초청을 받고 모여들어 연주단의 규모만 해도 족히 20~30이 넘었으며 인근의 주민들도 모여들어서 큰 도량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영산재는 다양한 구성으로 불자가 아닌 주민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행사였는데 특히 초청된 각 사찰의 범패승들에 의해 창화되는 짓소리가 당일 재회의 백미였다고 한다. 짓소리 순서가 되면 각 사찰의 어장승을 중심으로 사찰마다 둥그렇게 둘러서서 일명 '우물'을 만들어서 짓소리를 합창한다. 이렇게 되면 사찰별로 모인 대중의 합창대형이 여러 개의 우물을 이루는데 각각의 우물을 이룬 범패승들이 기량을 발휘하며 혼연일치된 범음성을 내면 마치 불음이 하늘로 오르는 듯한 범패의 삼매경이 이루어졌으며 참여한 승속의 대중들은 정신이 쾌락하고 신심이 오롯해지는 특별한 환희심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3)화엄자모 전통과 영산작법의 아아훔 소리
《영산재》를 크게 보면 시련(侍輦)ㆍ재대령(齋對靈)ㆍ관욕(灌浴)ㆍ조전점안(造錢點眼)ㆍ신중작법(神衆作法)ㆍ괘불이운(掛佛移運)ㆍ영산작법(靈山作法)ㆍ식당작법(食堂作法)ㆍ중단권공(中段勸供)ㆍ관음시식(觀音施食)ㆍ봉송의식(奉送儀式)으로 진행된다. 이 중에 영산작법에만 40여곡이 불리므로 모든 절차 중에 범패의 분량이 가장 큰 순서이다. 이 중에서 영산작법의 진행절차를 살펴보면 신촌 봉원사에는 설법의식을 포함시키고 식당작법이 독립된 절차로 비중이 큰데 이에 비해 《수륙재》에서는 영산작법과 설법의식을 독립시키거나 영산작법을 상단의식으로 행하기도 한다.
영산작법 절차에 포함되는 범패 곡목은 할향게(喝香偈)ㆍ연향게(烟香揭)ㆍ할등(喝燈)ㆍ연등게(燃燈偈)ㆍ할화(喝花)ㆍ서찬게(西讚偈)ㆍ불찬(佛讚)ㆍ대직찬(大直讚)ㆍ불찬게(佛讚偈)ㆍ중직찬(中直讚)ㆍ법찬게(法讚偈)ㆍ직찬(小直讚)ㆍ승찬게(僧讚偈)ㆍ개계소(開契疎)ㆍ합장게(合掌偈)ㆍ고향게(告香偈)ㆍ개게(開偈)ㆍ관음찬(觀音讚)ㆍ관음청(觀音請)ㆍ향화청(香花請)ㆍ산화락(散華落)ㆍ내림게(來臨偈)ㆍ가영(歌詠)ㆍ고아게(故我偈)ㆍ걸수게(乞水偈)ㆍ쇄수게(灑水揭)ㆍ복청게(伏請偈)ㆍ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ㆍ사방찬(四方讚)ㆍ도량게(道場偈)ㆍ대회소(大會疎)ㆍ육거불(六擧佛)ㆍ삼보소(三寶疎)ㆍ단청불(單請佛)ㆍ헌좌게(獻座偈)ㆍ다게(茶偈)ㆍ일체공경(一切恭敬)ㆍ향화게(香花偈)ㆍ정대게(頂帶偈) 등이 수록되어 있다.
[표 4] 영산작법 중 삼귀의 절차에 불리는 악곡
절 차 | 해 당 악 곡 |
삼 귀 의 | (佛寶: 大直讚ㆍ至心信禮佛陀耶兩足尊ㆍ三覺圓) |
(法寶: 中直讚ㆍ至心信禮達磨耶離欲尊ㆍ寶藏聚) | |
(僧寶: 小直讚ㆍ至心信禮僧家耶重衆尊ㆍ五德師) |
위 표를 보면 불보, 법보, 승보를 모시는 각각의 구성에 대직찬, 중직찬, 소직찬이 있고 각 찬문에 이은 예경문이 있으며 다시 삼각원, 보장취, 오덕사의 가사가 있는데 이 과정을 삼귀절차(三歸節次)라고 부른다. 삼귀절차는 매우 체계적이면서도 장엄한 구성으로 인해 영산작법의 핵심 요소를 구성하고 있다. 순서로는 먼저 부처님을 찬탄하는 대직찬(大直讚)을 홋소리로 창화하고 지심신례불타야양족존(至心信禮佛陀耶兩足尊)은 짓소리로 봉행하고 삼각원(三覺圓) 가사는 작법으로 모신다. 이 짓소리는 허덜품과 사구성(四句聲)이 들어간 짓소리로 부르는데 이를 '두갑(頭甲) 혹은 두개비(頭蓋備)'라고 한다. 또 하나의 형식은 짓소리 형식으로 부르는 것인데 이를 지심(至心)이라 한다.
두갑은 곡이 길고 전반에 허덜품을 갖춘 형식으로 일반적인 짓소리와는 곡의 형식과 창법이 확연히 달라서 고난도의 홋소리로 보기도 한다. 지신신례불타야양족존의 이러한 방식은 본 영산작법 삼귀절차의 전체적 구성방식 및 창불형식과 함께 전승됐기 때문일 것으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다음에 나오는 보장취소리와 오덕사소리가 거의 유사한 형식으로 창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는 불보의 절차에서는 삼각원을 작법으로 모시기 때문에 지심신례불타야양족존을 사구성으로 봉행하는 형식으로 편성했을 것으로도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갑은 소리가 매우 길고 고음역의 운곡이 12번이나 반복되기 때문에 매우 숙련된 경우가 아니라면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하물며 이 곡은 독창으로 불러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래서인지 보통은 대중이 짓소리 형식으로 부르는데 이것을 분야에서는 약식으로 인식한다.
지심에 이어 찬문(讚文)인 '三覺圓 萬德具...(중략)'부분은 삼귀작법(三歸作法)이라고 하여 나비무작법으로 봉행한다. 특이한 점은 작법에 쓰는 범패를 삼각원 소리라고 하여 대부분 다게성(茶偈聲)으로 구성되는데 가사의 중간에 화엄42자모(華嚴四十二字母)의 첫 자인 아자(阿字)가 들어있고 아〜 아〜 아〜 흐으어〜 흐으어〜 흐으아〜 하는 소리에 맞춰서 착복하는 스님들이 세 번씩 서로 교차하며 자리를 바꾸는 형식이 있는데 이것을 자모 아자(阿字)를 강조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또 가사 아아훔(阿阿吘) 부분에서는 '일명 아아훔소리'를 창화하고 가사 능소멸(能消滅)의 멸(滅)자에서 '일명 막음성'이라는 소리를 창화하는 데 악상이 비장, 장엄하고 매우 특이하다. 또 그 소리에 얹어서 나비무로 미세한 움직임이 특징인 사방요신을 봉행할 때 마치 작법을 통해 선관을 행하는 듯 엄숙한 기품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인도, 중국을 통해서 한국불교로 전해졌을 자모수행의 한국적 표현이라고 사료된다. 이 순서들은《영산작법》중에서도 봉행시간이 가장 긴 삼귀작법(三歸作法)에 있어서 근래 일정이 짧아진 재회에서 갖추어 봉행하는 경우가 드물어졌으므로 갈수록 전승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언급한 부분들은 의식에 포함된 한국범패의 수행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어지는 법보와 승보의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찬문(중직찬, 대직찬)을 홋소리로 창화하고 귀의문(지심신례달마야이욕존, 지심신례승가야중중존)은 게탁성으로 간략하게 모시는데 분야에서는 쓸어 젓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또 법보, 승보의 절차에 있는 보장취, 오덕사에는 도합 3회의 사구성 악절이 구성되어 있다. 또한 악절마다 사구성 3회와 상사구성 1회가 있어서 3회의 악절을 빠짐없이 창화하면 모두 12회의 사구성이 되므로 이 부분을 제대로 창화하려면 20분이 넘는 대곡이 되므로 영산재의 스캐일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산작법 진행과정의 이와 같은 방법은 불ㆍ법ㆍ승 삼단의 범패⋅작법적 절차에 변화를 주어서 예술적인 조화라는 현상으로 의식을 장엄한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아아훔소리와 막음성소리가 나오는 삼귀작법 찬문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지극한 마음으로 복과 지혜를 갖추신 불타야 양족존 부처님께 믿음의 예경을 올립니다. 삼각(自覺, 覺他, 覺滿)이 원만하시고, 일체의 덕을 갖추시어 하늘과 사람을 [아] 해탈로 이끄시는 스승이시며[아아훔] 범부와 성인의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 진리의 세계로부터 오셔서 끝없는 방편을 두루 갖추셨으니 자비의 화신으로 [아] 중생들을 제도하기 끝없사오며 일체의 시공에 두루 불법의 우뢰를 떨치시고 진리의 북을 울리시며 권교(權敎)와 실교(實敎)[아아훔]를 베푸사 큰 방편의 길을 여시나니, 저희가 부처님께 귀의하오면 지옥의 고통을 능히 소멸하겠습니다.
위 가사 중 아자(阿字)가 가사 사이마다 있는데 현재의 전승형태에서는 아자(阿字)라는 자구(字句)를 별도로 창화하는 형식이 없다. 이것은 필시 그 전승의 과정에서 생략되고 실전되었을 것이 유추된다. 본 연구의 과정에서 방등부경전, 반야부경전, 밀교경전 등 현⋅밀(顯ㆍ密) 전반의 불전(佛典)에서 42자모의 의미와 원리 및 수행법이 강조되고 있으며 그 수행의 체계 역시 의괘(儀掛)로 정리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영산재》등 재회의 삼귀절차(三歸節次)에서 불보의 공덕을 찬탄하는 핵심적인 의식 속에 자모가 들어있다는 것은 의식의 설행의 중요한 의미와 원리가 전승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귀중한 유적이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추한 바와 같이 아자(阿字)를 범음으로 창화하는 형식이 아니라면 범패의 가사 역할을 하는 찬문에 아자가 표기된 특수한 가사표기를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자의 형태를 가늠할 수 있는 유사한 설행형태가 현재도 전승되고 있어서 아자 설행의 유무여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삼귀작법 가사 안에서 자모의 밀교적 전개로 보이는 아아훔(阿阿吘) 자구(字句)가 있는데 매우 특별한 범성과 작법이 함께 설행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체 문장으로 볼 때, 문장의 전반과 후반부에는 아아훔'이 구성된다. 아아훔의 구성을 보면 아자(阿字)는 42자모의 첫 자로서 그 소리 아(阿)는 제법의 공성(空性)을 상징하는 소리이며 42자 전체의 의미를 포함하는 소리임을 경전은 전하고 있다.
또한 아아훔(阿阿吽)의 훔(吽)자는 모든 진언의 의미를 맺는 위치의 진언으로 밀교적 강한 전통의식의 점안, 시식문 등에서 매우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따라서 가사 아아훔은 모든 자모의 처음과 모든 진언의 갈무리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자모수행 전체를 함축한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범패의 수행원리와 활용방안 연구/ 덕림(이병진)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