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벽당[環碧堂]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호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育英)에 힘쓰던 곳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며, 당호는 신잠(申潛)이 지었다. 송시열이 쓴 제액(題額)이 걸려 있고, 임억령(林億齡)·조자이(趙子以)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김윤제는 광주광역시 충효리 태생으로, 호는 사촌(沙村)이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그후 나주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다. 그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철(鄭徹)과 김성원(金成遠)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 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김윤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정철은 16세 때부터 27세에 관계에 나갈 때까지 환벽당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환벽당 아래에 있는 조대(釣臺)와 용소(龍沼)는 김윤제가 어린 정철을 처음 만난 사연이 전하는 곳이다. 환벽당 주인은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 그가 낮잠을 자다 바로 옆 연못에서 용이 놀고 있는 꿈을 꾼 후 달려가보니, 정철이었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옛날 화장실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산수유와 매화꽃이 환하게 환벽당을 감싸고 있었다. 옛 화장실이 남아 있다. 환벽당에서 바라본 창계천은 젊은 여행객의 낚시하는 모습에 더 운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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