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온휴장으로 간 왕거지파
"형님, 다녀왔습니다. 너무 좋아하던데요."
마른 멸치가 밝은 표정으로 종이를 내밀며 양정에게 말했다.
"그래? 일이 아주 쉽게 풀리는구나."
양정은 서신을 받아 들도 들뜬 표정으로 글을 읽어 나갔다. 서신의 내용은
대충 이런것이었다.
특별서신
온휴장의 우종은 들으라. 냑양의 왕개촌 거지들을 위해 특별히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도록 하라. 이것은 감찰부주로서 내리는 명령이니 일체의
거슬림이 없어야 할것이다. 냑양의 질서와 청결을 위해 내리는 조처이니 온
힘을 다해 응하도록 하라.
냑양대
인 노류
인장이 또렷하게 새겨진 서신이었다.
온휴장의 우종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낙양의 변두리에서 공중목욕탕을 운영
하는 이로 바로 며칠전 양정에게 단단히 혼쭐이 난 그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른 멸치가 노유의 서신을 받아 오게 된것일까?
사실 양정이 우종을 혼내 주기 위해서 두 번째 계략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
다.
그 계략의 핵심은 우종이 운영하는 목욕탕에서 때를 벗기는 일이었다. 그러
나 거지를 받아 줄리가 만무했기 때문에 감찰부사로 낙양에 있는 노유대인
에게 특별히 부탁하게 되었던 것이고 노유대인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마
른 멸치가 이렇게 친필 서한을 가지고 오게 된 것이엇다.
노대인은 왕개촌 거지들의 추접스러움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는데 목욕
을 하러 가겠다고 하자 뛸 듯이 기뻐하며 서둘러 서신을 써 준것이엇다. 하
지만 꼭 그런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런 바로
노 대인이 개를 아주 좋아해서 장원에 많은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개들
이 왕거지파의 말 한마디에 생사가 왔다갔다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왕개촌의 위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았어. 자, 내일은 새벽에 일찍 목욕하러 가자."
하지만 그말에 왕개촌의 거지들은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말은 하지 않
았지만 그들의 모습속에는 뭔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모은 때들인데 이것을 벗겨 낸단 말인가!'
대충 이런식의 생각들이었다.
그런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양정이 일갈했다.
"이런 쪼잔한 거지 새끼들을 봤나! 너희들은 진정한 거지가 되기엔 아직
멀었다."
"형님,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거지는 늘 거지 다워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셧습니까?"
거지들중에서 가장 많은 때를 보유하고 있는 순두부가 격분하여 말했다.
그는 개방 거지들 앞에서 신검출현을 보여줄 만큼 때에 관한 상식밖의 인간
이었기에 더욱 목소리는 격앙되어있었다. 단 한번도 양정에게 대든 적이 없
는 그였던것을 감안한다면 그가 이 일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를 가늠해 볼수있었다.
"쯧쯧, 잘들어라. 그렇게 그릇이 적어서야 전중원의 거지들 중에 으뜸이라
고 말할수 있겠느냐? 뭐든지 한 단계 더 진보하기 위해서는 그 틀을 깨지
않으면 안된다. 알 속에 든 병아리가 닭이 되려면 그 알을 깨야 하지 않겠
느냐. 알 안에서 닭이 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 알을 깨뜨
린 후에야 비로소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
이라도, 그것이 비록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그 벽을 허물었을 때에야 더 크
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비를 보아라.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기
위해서 번데기가 되지 않더냐! 번데기 속에만 있으면 더 이상의 발전이란
기대할 수 없겠지. 과감하게 벗어 던져야 한단 말이다. 그러니 이번 목욕은
왕개촌의 도약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것이다. 알겠느냐?"
단호하게 외치는 양정의 말을 듣고 모든 거지들은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사정없이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 더큰 발전을 위해 벽을 허문다.
그런 깊은 뜻이 숨어 있는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형님"
순두부를 비롯하여 모두는 머리를 조아렸다.
양정은 그런 모습을 보자 가슴이 뭉클해져서 고개를 쳐들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저지의 세계는 끝이 없는 법이다. 알았느냐, 거지 새끼들아."
"네! 형님."
모두의 목소리에는 깊은 존경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대장님, 저도 가는 거죠?"
초운이 촐ㄷ랑되며 말했다.
"음, 너 , 너는 험험, 여기에 있는 것이 좋을것 같은데....."
아무래도 여자이기 때문에 목욕탕에 함께 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
다.
"대장! 내 제자도 함꼐 가야지. 아마 여자들만 들어가는데가 따로 있을 거
야."
주유생이 얼른 나서며 말했다. 그의 말투는 아주 충직한 부하의 말투였다.
"할아버지 ~, 제발 대장이라고 좀 하지 마세요."
양정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이젠 신격쇠약증에 걸릴 것 같은 상황이
었다.
말할떄마다 대장이라고 불러 대니 보통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던것이다.
제발 무공을 할 줄아는 고수라고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해서 그말은 하지
않는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수 있엇다.
"알았어, 알았다구. 화내지마 대장. 하하하하."
"음, 쩝 그럼 내일은 모두 함꼐 가도록 하자."
양정은 모든 거지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고 모든 거지들은 목욕이라는 새로
운 경험에 기대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온휴장의 점원인 군소충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경악할 수밖에 없
었다.
소문으로 들어 왔던 왕개촌의 거지들이 목욕을 하러 온것이다. 그것도 새벽
에 문을 열자마자...... 점원들끼리 농담 삼아 주고 받았던 이야기가 현실
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 이보게 . 온휴장이 망하는 날이 온다면 아마 그건 왕개촌의 거지들이 목
욕하러 오는 날이 될걸세.
- 하하. 맞네 . 맞아.
지난날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곳에서 십 년동안
이나 일해 온 군소충은 거지들이 내민 서신을 확인하고 심한 갈등에 휩싸였
다.
이대로 그냥 들여보내자니 나중에 문책을 피할 수 없을것 같았고 그렇다고
돌려보내자니 노 대인의 인장이 확실했던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 보게나. 내가 주인님을 뵙고 오겠네."
군소충은 서신을 손에 쥐고 식은땀을 흘리며 온휴장의 주인인 우종의 거처
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인님! 긴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요."
사실 우종은 양정에게 얻어 터진 이후로 몸져누워 누구도 만나지 않고 일
체 요양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군소충의 목소리를 듣고 우종의 아내 구주려가 나왔다.
"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어르신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 말씀을 나
눌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이리 소란을
피우는건가?"
구주려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질책의 뜻을 노골적으로 담겨있엇다. 그녀는
이제껏 남편이 밖에 나가 이렇게 심하게 얻어터진일을 본적이 없엇던 터라
아직까지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고있었따.
게다가 누구에게도 맞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엇던 터라
요즘 몹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것이다.
"네, 마님. 이걸 좀 보십시오."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는 서신을 보여드리는것이 백배 나을 것 같아 그는
손을 내밀었다. 구주려는 낚아채듯이 그것을 받아 쥐고는 천천히 읽어 나
갔다.
그녀의 얼굴은 처음에는 약간 상기되어 있었으나 한글자 한글자 읽어 나감
에 따라 점차 어두워지더니 끝에 가서는 아예 흙빛으로 변해 버리고야 말았
다.
- 비틀 ~.
다리에 힘이 쭉 빠져 몸을 비틀 거렸는데 옆에 기둥이 없었다면 아마 자빠
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왕개촌의 거지들이 막무가내라고는 해도 관원의 서신을 위조 할 리
는 없을 것이기에 가슴이 답답해졋다. 그녀는 힘 빠진 목소리로 낮게 중얼
거렸다.
"들여보내게나. 아 ! 이건 하늘의 저주로구나."
나중에 내뱉은 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았는데 그것은 그녀가 순
식간에 탈진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군소충은 고개를 숙이고 망연자실한 채 먼산만 바라보고 있는 주인마님을
뒤로 하고 거지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 들어가도록 하시오."
양정과 주유생 그리고 왕개촌의 거지들은 모두 다 기븜의 함성을 질러 댔
다.
"와아, 가자 거듭나야지."
"오호, 새사람이 되자."
양정은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서도 점원에게 속삭였다.
"여기 이 친구는 여자 거지이니 따로 탕에 들어가도록 해주십시오. 헤헤."
그 말을 들은 군소충은 양정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고는 놀란눈이 되었다
.
"여.. 여자엿구나."
초운은 도저히 여자라고는 믿기지않은 추접스러움으로 무장되어 있었던것
이다.
"낄낄낄. 저 여자예요. 예쁘게 봐 주세요. 빵긋 ."
초운의 애교스러운(?) 모습을 바라보자 군소충은 어젯밤에 먹은 만두국이
통쨰로 넘어오려 하는 것을 느꼇다. 신물이 입안에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거
지들도 손님이니 만큼 그앞에서 뱉어 낼수는 없는지라 간신히 삼키며 대답
했다
"네네 . 빵긋."
군소충의 안내를 받아 초운은 따로가고 나머지는 한곳으로 들어갔다.
"이 탕에서 일차로 몸을 씻고 그후에 다시 이쪽 탕으로 들어가서 확실하게
씻어 내면 됩니다."
군소충의 목소리에는 염려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큰 탕이 두개가
있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기분까지 상쾌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나의 탕마다 약 서른명정도는 충분히 들어 갈수 있을만큼 컷기에 십여명
의 왕개촌 거지들이 모두 들어가기에는 넉넉했다.
"고맙습니다. 이제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가 보십시오."
"아. 네네. 그래야죠. "
'오늘은 일체 손님을 받지 말아야겠구나.'
군소충은 몹시 걱정되었지만 감시하고 있는다고 달라질것은 없을 것 같아
말을 더듬으며 물러 날 수밖에 없었다.
"자, 한번 들어가 보자구."
양정의 말에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풍덩풍덩 소리를 내며 모두 탕으로 들
어갔다.
시커문 물체들이 물 안으로 사라졌다.
"먼저 때를 불리도록 하자."
그말에 모두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약 한시진(두시간) 정도가 지나자 삼십명이 들어가도 될 만한 공간
이 빡빡해져 버렸다. 그 이유는 때가 불어나면서 거의 세베 가량 부피가 늘
어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정도 됐으면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았기
에 양정은 입을 열엇다.
"자, 이제 때들은 떨구어 내고 모두 자리를 옮기도록 하자."
"하하. 그럴까요. 형님."
모두는 때를 벗겨냈다. 아니 벗겨 냈다기 보다는 뜯어냈다고 하는 편이 옳
았다.
체형의 굴곡을 그대로 간직한 때들이 떼어지자 모두는 신속하게 첫 번째 탕
에서 빠져 나와 옆의 새로운 탕으로 모두 뛰어들어깟다.
- 첨벙 첨벙.
모두가 빠져 나온 첫 번째 탕은 처음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맑았던 물이 이제는 걸쭉한 죽처럼 변해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광영이 아닐수 없엇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옆탕으로 이동하면서 때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있었는데
그건 마치 검은콩으로 만든 두툼한 떡을 연상케했다.
두번째 탕에 들어가자 처음보다 훨씬 개운한 몸상태가 되었다.
두번째 탕에 들어가자 처음보다 훨씬 개운한 몸 상태가 되었다.
"야 , 얼굴도 조금씩 씻어 두어라."
그말에 각자 얼굴도 벗겨내느라 난리가 아니었다.
양정은 만족한듯 벗겨지는 때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생각
난듯 콩나물을 보고 말했다.
"야, 콩나물 ! 너는 저쪽에 있는 소금 바구니좀 가지고 와라."
양정의 말에 따라 콩나물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탕에서 나가 소금통을 들
고 들어왔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자 모두는 소금 한움큼씩 입에 머금고 입안의 때들도 벗겨 내도록 해라."
평범한 사람들이 치아를 청결케 하고자 소금물로 행구는 것에 비해 왕개촌
의 거지들은 그렇게 해서는 전혀 태가 나지 않기에 장시간 머금고 있어야
비로소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시진(두시간) 가량 흐르자 다시 때들이 불어났다. 처음보다
는 덜했지만 그래도 결코 만만치 않은 양이었다.
두번째 탕에서 첫번쨰 잇었던 탕을 바로보니 물기가 많이 증발되어서인지
걸쭉한것을 지나 이제 아예 도토리 묵처럼 굳어가고있었다.
"자, 이젠 확실히 벗겨내고 그만 나가자. 너무 갑자기 목욕을 오래하는것
도 좋지 않을거야."
그 말과 함께 다시 두번째 부풀어오른 때들을 뜯어낸 후 모두들 밖으로 나
왔다.
모습이 많이 변한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젠 어느정도 사람의 윤곽을 확
인 할수 있는 단계에까지는 이르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양정은 모든 거지들을 데리고 나와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개운한 마음으
로 왕개촌을 향햇다. 모두들 돌아간 이후에 군소충은 탕안을 들여다 보고
기절할 만큼 놀랐다. 한쪽은 도토리묵이 되어있엇는데 시장에 나가 묵이라
고 하며 팔아도 믿어줄것같앗다. 또 다른 한쪽은 옆의 탕보다 양호했는데
거의 늪지대를 방불케 할 정도의 광경이었다. 아마 한번 빠지게 되면 허우
적거리며 죽어 나갈 것 같이 보였다.
"오, 이것이 정녕 사람의 몸에서 나온것이란 말인가?"
그것 뿐만이 아니라 탕안 이곳 저곳에서 때들이 범벅이 되어있는탓에 이상
태로는더 이상 장사를 할 수없을 지경이 되었다. 뒷이야기이지만 우종은 이
사건을 하늘이 내린 천벌이 라고 생각하고 이후로 목욕탕을 깨긋이 보수한
다음 다른 이들에게 여유를 베푸는 삶을 살게되었다고하니 참으로 양정이
때를 벗긴일은 훌룡한일이라고 할수있을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