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 기적의 시작]
꽃동네의 작은 시작은 오웅진 신부와 최귀동 할아버지의 운명적인 만남에서부터 시작한다. 1976년 5월 3일 오웅진 신부는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같은 해 8월 20일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어느 날 오웅진 신부는 동네 사람들에 의해 다리 밑에서 쫓겨나 용담산 밑에 움막을 치고 생활하던 걸인들을 보게 되었다.
움막 안에는 얻어먹을 힘조차 없이 죽어가는 걸인들이 5가구 18명이 살고 있었는데, 최귀동 할아버지가 빌어온 음식을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그 헌신적인 베풂을 통해 오웅진 신부는 ‘얻어먹을 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임을 깨달았다.
다음날 오웅진 신부는 주머니 돈 1,300원을 몽땅 털어 시멘트 한 포대를 사서 손수 벽돌을 찍고 교우들의 협조를 얻어 1979년 11월 15일 방 다섯 칸, 부엌 다섯 칸 규모의 ‘사랑의 집’을 지어 최귀동 할아버지와 동료 걸인들을 입주시켰다. 이것이 꽃동네의 시작이다.
[확대되어 가는 사랑의 공동체]
‘사랑의 집’을 시작으로 오웅진 신부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이’ 길가나 다리 밑에서 추위와 배고픔, 질병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아 줄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오웅진 신부의 계획은 점차 교구장 주교와 동료 사제들의 공감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1980년 9월 청주교구 사제총회는 꽃동네 설립을 의결하였다.
1981년 부활 대축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꽃동네 회원 모집에 나섰고, 같은 해 예수성심시녀회 소속의 김인기[아셀라] 수녀가 파견되었다. 1982년 5월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 산1의 45번지 9,807평을 매입하였으며, 곧이어 익명의 독지가로부터 산 2만 평을 기증받았다. 그 후 꽃동네 본동(현 명칭 ‘사랑의 집’) 370평을 준공하여 모두 5개 동 건물에 270명이 입주하였다.
1983년 청주교구 사제총회에서 신순근(申順根)[비오] 신부와 장봉훈(張奉勳)[가브리엘, 현 천주교 청주교구 교구장 주교] 신부가 이사로 임명되었다. 1984년 3월에 사회 복지 시설로 인가를 받았으며, 11월에 서울사무소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1985년 10월에는 정신요양원(1,100평)과 결핵요양원(930평)을 준공하였고, 1986년 12월 27일 꽃동네에 자원하여 모인 봉사자들의 공동체가 청주교구장 정진석(鄭鎭奭)[니콜라오] 주교로부터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라는 명칭으로 정식 수도회 창설을 인가받았다.
1987년 1월에는 오웅진 신부가 그 동안 겸임해 온 금왕본당을 떠나 꽃동네 지도 신부만을 전담하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노인요양원(1,200평)을 준공하였고, 1988년 10월에는 알코올중독자요양원(1,200평)과 인곡자애병원(800평)을 준공하여 1989년 4월 개원하였다. 1989년 7월에는 수도권 지역의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산134-14번지 15,200평 부지에 제2의 꽃동네(가평 꽃동네)를 설립하여 수녀 1명을 파견하였다. 이어 1990년 5월 음성에 1,000평의 심신장애자요양원을 준공하였다.
1992년 9월에는 가평에 부랑인 시설(1,916평)을 준공하였으며, 1993년에는 같은 곳에 정신요양원(2,200평)과 노인요양원(2,100평)을 준공하였다. 1994년 5월에는 음성에 성 빈첸시오 천사의 집(800평)을 준공하였고, 같은 해 가평에서는 심신장애인 요양원(2,000평)과 노체리안드리자애병원(2,000평)을 건립하기 시작하여 1996년 3월에 개원하였다.
1996년에는 필리핀에 수도회 진출을 시작으로 세상 곳곳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다. 1997년에는 온 국민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불행한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려는 예방 복지의 취지에서 ‘사랑의 연수원’을 개원하여 매년 300,000명이 사랑과 행복의 가치를 새롭게 배우고 돌아가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1995년 11월에는 꽃동네 천사의 집이 국내 입양기관으로 허가되어, 어린이들에게는 가정의 품을, 가정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1999년에는 꽃동네 설립 정신에 입각하여, 사랑과 열정만으로 채워줄 수 없는 전문적 지식과 기술 뿐 아니라 영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4년제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를 개교하여, 사회복지 특성화 대학으로서 사회에 요긴한 인재를 배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6년부터 간호학과를 개설하여 사회복지와 긴밀히 연결된 영역의 전문 교육을 활성화하고 있으며, 대학원 과정도 개설되어 다수의 석사 학위 소지자를 배출하고 있다.
1999년 5월 12일 미국 꽃동네를 개원하여 남미 등 가난한 나라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고 가난의 영성과 사랑을 뿌리내리는 데 최선을 기울이고 있다. 이어 2000년 11월에는 꽃동네 아이들 가운데 중증 장애아들을 위한 꽃동네학교(특수학교) 설립을 인가받아 2001년 개원하여 헌신적인 교사들을 통한 양질의 교육과 가정적인 분위기 안에서 생활 능력과 학습능력의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2001년 8월에는 신축 정신요양원을 준공, 정신장애 가족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게 되었으며, 아동 시설도 준공하였다. 2002년에는 미국의 뉴저지 꽃동네와 테메큘라 꽃동네 축복식을, 2005년 10월에는 조지아 꽃동네 축복식을 각각 가졌다. 2002년 11월에는 청주 꽃동네회관 개관을 통해 지역사회에 사랑과 봉사, 기부 문화를 알리는데 단초를 마련하였다.
지속적이고 꾸준한 사랑을 전개해 온 꽃동네는 2006년 4월 26일 (재)청주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에서 (재)예수의 꽃동네 유지재단으로의 분리를 허가받고, 5월에 등기를 마침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2006년 7월에는 꽃동네 가족 뿐 아니라 길거리에서 돌아가신 행려 사망인을 위한 납골묘 조성을 시작하였다. 9월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꽃동네의 영성을 연구·심화시켜 가르쳐주고 체험시켜줄 꽃동네 사랑의 영성원 성부의 집을 준공하였으며, 11월에는 노인전문요양원을 준공하였다.
또한 해외 진출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설립 30주년을 기념하여 2006년 ‘제1회 세계 젊은이 성령대회’를 개최하여 전 세계 24개 국의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세계 복음화의 장을 열었고, 31주년을 맞은 2007년에는 우간다로의 진출을 포함하여 “꽃동네는 세계로, 세계는 꽃동네로”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며 세계 극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전할 소명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