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방법 : 홀로 조용한 곳을 찾아 예배(묵상) 순서대로 진행, 성경을 1~2회 읽고 잠시 묵상. 그리고 질문들을 다 읽고 묵상 그리고 질문과 말씀 중심으로 생각한 내용을 핸드폰에 저장(노트에 기록) 저장된 내용을 보며 묵상하고, 기도한 다음, 찬양 한 곡을 부르거나 듣거나 한 후 주기도문으로 마침.]
2023. 09. 03 주일 / 묵상예배
오늘 묵상할 말씀 제목 ‘하나님의 기다림’(언제까지...)입니다.
참고, 뜻 : 기다림이란,
[동사]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라다.
- 순서 -
묵상(예배 전 마음 다스림)
신앙고백(사도신경)
기도(예배와 자신을 위해서만)
말씀묵상 – 누가복음 6장 40~42절
묵상내용 - 1, 2, 3(읽고 묵상한 내용 메모지나 핸드폰에 저장)
기도(묵상 내용을 바탕으로)
주기도문
묵상내용(질문 앞에, ‘나는’)
1. 지금 당장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을까?
2. 내가 눈으로 보는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3. 새계명에 의미를 알고 실천하는 것에 차별이나 편견은 없을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
누가복음 6장 40~42절
[개역개정성경] 대한성서공회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 막, 계)
------------------------------
묵상 후 보세요^^
8월 마지막 주,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이 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감사하며,
다들 안녕들 하시죠?
오늘 묵상 제목을 ‘하나님의 기다림’으로 했는데 뒤에 ‘언제까지’라는 말이 덧 붙여져 있는데 보셨는가요? 매일 사람들을 만납니다. 매일 믿는다 말하는 사람 그리고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라 여러분들도 동일하게 그럴꺼라 생각합니다.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어떤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가요?
저는 이 사람이 오랜 만남을 가질 사람인가 아니면 오늘 아니면 한 번 더-와 같은 기준으로 대화를 할 때 얼굴을 보고 아니면 보지 않고 아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대화를 합니다. 지속적인 만남이 아니라면 집중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단, 그 사람을 위해 기도는 합니다. 믿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잘되기를... 바르게 살 수 있기를... 모난 사람이라면 둥글둥글한 사람이길... 깊음이 있다면 나눔이 있기를... 등등...
사람을 대면한다는 건 참 쉽지 않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신학을 하면서 아니 그전 청년 회장이나 교사를 앞장 서서 한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리더가 되면 앞에는 서되 앞장 설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리더를 선택했지요. 진두 지휘는 총무가 하면 되니까... 부장 교사가 하면 되니까... 조용히 묻혀 가는 걸 늘 선택을 했지요... ㅋ
과거 직장을 다닐 때도 매일 엄청난 사람들을 만났고, 신학을 하면서도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지금도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나 봅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지 않습니까. 그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며 지금까지 왔는데 참 많이 다치고 참 많이 눈물 흘리고 참 많이 내 살이 깎이는 고통을 감내했었던 과거가 생각이 납니다. 그 순간들 그 시간들에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길을 안내하셨고, 하나님은 위로해 주셨지요. 다들 그런 경험하면서 살고 계시죠?
오늘 당장 죽는 다면, 하나님의 기다림에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어쩔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때도 있었습니다. ‘준비’ 준비해야 한다-를 생각한건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리고 준비하며 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모난 삶이 아니기를... 오늘을 평화롭기를... 오늘을...
타인을 향한 베려를 한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타인을 향한 기브엔테이크 하지 않으려 하는 삶 쉽지 않았습니다.
타인을 향한 이해 이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타인을 향한 편애와 편견 노력은 할 수 있으나 쉽지 않습니다.
타인을 향한 사랑 이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타인을... 타인을... 타인을...
예수님께서는 타인을 이웃으로 보셨습니다. 그냥 이웃 아닌 벗과 같은 생명을 나눈 것같은 이웃 그래서 그 이웃을 위해 손을 내밀어 주셨고, 눈물을 흘려 주셨고, 말씀을 설명해주셨고, 분주한 이에게 불평 아닌 평안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타인을 이웃으로 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웃이 아닌 타인으로 대했습니다. 철천지 원수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모욕을 퍼 부었습니다. 돌을 던졌고, 욕을 던졌고, 매매로 하나님의 집을 악인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예수님을 극혐했습니다. 타인으로...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따라 걸어야 할까요 아님 예수님을 타인으로 본 사람들의 길을 따라 걸어야 할까요.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생활과 말은 예수님을 타인으로 내밀고 자신들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 말하는 사람들이 생활 속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님께 묻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헤쳐 나가려합니다. 모든 생활을 아니 모든 언행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타인으로 생각한 그들과 같은 언행을 사용합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쭉~ 보면, 사람들은 위급 상황에 하나님을 찾았다가 평화롭거나 자신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타협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는 온갖 잡신들을 숭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다시 하나님을 찾고 또 우상 숭배하고 이런걸 계속 반복하는걸 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도 같은 언행으로 되풀이가 됩니다. 왜 그러는걸까요...?
하나님께 평화를 평안을 달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면 타협으로 타락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게 맞나 요즘엔 잘 모르겠는데... 같은 어리석은 말들을 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살려는건지...
하나님의 기다림이 언제까지-라고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영원히-라고 보면 안됩니다. 우리는 각자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다 보면 또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아직 때가 아닌가, 듣기만 해야 하나, 존중이 보이지 않는 대화를 접할 때가 있습니다. 깍아내리는 말, 없으니 막말을 해도 된다는 말, 말로 사람을 죽이는 말 등
자신이 자신 됨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를 깨워줄 없음이 안타까워 그저 기도로 하나님... 하는 말을 아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게 되는 하루하루를 보낼때가 있습니다. 벽에 대고 말을 하는 기분이 들때도 있고,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타인이 아닌 이웃으로 만나는 사람을 대한다면 말씀에 실천으로 이어질텐데, 이웃을 타인으로 대하니 사람을 발에 밟히는 돌과 모래 같이 여기니 큰일입니다.
영적 장애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장애인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장애인이지만 재활을 통해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그 노력의 결과가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입니다. 우리는 노력이라는 것을 해야 합니다. 타인을 보는 시선에서 이웃이라는 시선으로...
하나님 앞에 영적 장애를 가지고 서는 것이 아닌 영적 비장애인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사람은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타인 보다 조금 나은 모습을 가졌다 생각든다면 그 타인을 위해 이웃이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타인의 부족함이 부족함으로만 보인다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또한 하나님께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외톨이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맡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감당한 일을 두고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라고 말씀하시길 원하십니다. 편애와 편견은 타인에게 하는게 아닌 나에게 하는 언행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점검하고 투영되어 보이는 불편함이 본인의 생활 학습을 돕기 위한 하나님의 보여주심인 것을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나 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길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길 바라며... 아무쪼록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 서로 해피엔딩합시다...... God bless you.
==============================
오늘 추천 찬양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올레이션스 경배와찬양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1K8DfzL2W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