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장에서
천국에 가는 과정에 갖추어야 할 마음과 실천해야 할 것들(2)
2021년 2월 16일 / 누가복음 17:1-37
누가복음 17:5-10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것과 말씀하시는 것들을 보고 그동안 제자의 길을 걸어 어느 정도 사도로서의 자격을 갖춘 자신들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위해 ‘저희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요청하였다.
여기의 ‘믿음을 더하소서’는 원어로 ‘프로스데스 피스틴’인데 ‘믿음을 추가하다’라는 뜻이다. 제자들은 이미 소유한 믿음에 더해 달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믿음을 양적 개념으로 보았다. 자신들이 소유한 믿음보다 더 많은 믿음을 소유해야 예수님의 명령을 이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믿음을 더 요구했다.
▶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오병이어로서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빼고 남자만도 5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는 기적(마 14:15-21)과 칠병이어로서 4천 명이 먹고 7바구니가 남는 기적(마 15:32-38, 막 8:1-9)을 목격하고 이에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따라다닐 때에 제자들의 마음은 들떠있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악한 영에 들린 것도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자신들도 엘리사처럼 갑절의 능력을 받아 그렇게 하였으면 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자와 허약한 사람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마 10:1-8). 누가복음 10:1-16에서는 72제자들을 뽑아 방문하려고 계획한 동네와 마을로 둘씩 짝지어 앞서 보내셨다. 이에 72제자들이 선교를 마치고 기쁨에 넘친 모습으로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 드렸다.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자 귀신들이 다 저희에게 복종하였습니다.’(눅 10:17) 예수님도 기뻐하셨지만 한편으로는 충고적인 교훈도 잊지 않으셨다. “나는 사단이 번갯불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모든 원수의 세력을 꺾는 권세를 주었으니 뱀과 전갈도 짓밟을 수 있을 것이고 아무 것도 너희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복종한 사실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눅 10:18-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간질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아이를 고쳐주지 못해 부끄러움을 겪었다(마 17:14-18, 막 9:14-29, 눅 9:37-43). 이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물었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을 향하여 ‘옮겨지라’고 하여도 옮겨질 것이다. 그런 믿음(기도와 금식)만 있다면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마 17:19-21)
▶ 양적과 외적인 개념으로 기적을 보고 또 그러한 능력을 원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영적과 질적 개념으로 매번마다 교훈하셨다. 적은 믿음이라도 참된 믿음이라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하시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강조하셨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과 일치되는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간구하며 행하면 제자들이 본 기적을 그들도 행할 수 있거니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많은 기적을 베풀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교훈해 주셨다.
아울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겨자씨만한 크기의 믿음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자주 말씀해 주셨다. 3가지로 압축해 본다.
❶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 요한복음 6:22-59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떡이다.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고도 죽은 그런 떡이 아니다. 이 떡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도 해 주셨다.
❷ 베드로의 신앙고백(마 16:13-20) 후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일과 거기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그 일이란 예수께서 유대인 지도자들인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절히 말하였다. ‘주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주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인간 편에서만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 16:21-25)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은 신앙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❸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며,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누가복음 10:25-37에서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옳다. 너도 이제 가서 그와 같이 실천하라.’(눅 10:37)고 하셨다. 사실 이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과 더불어 앞으로 사도가 되어 성령의 권능이 임함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는 말씀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함이었다.
이에 누가복음 17장에서도 ‘저희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영적이면서 질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크기의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로 옮겨지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저들이 기적을 베풀 때 또는 성령의 권능으로 힘입고 복음을 전할 때에 갖추어야 할 자세에 가르쳐 주셨다. 이러한 자세는 사도가 될 제자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 봉사하며,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 이끌어야 할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었다.
‘너희가 단순히 내 말에 복종한 것을 가지고 너희 자신이 칭찬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하였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마 25:34-40 ; 계 4:10-11).
광야에서 40년을 지내게 하신 이유 /
이상인<異狀人-보통과는 다른 상태의 사람, 理想人-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 貳相人-조선 때, 삼정승(三政丞) 다음가는 관원으로, 좌우찬성(左右贊成)을 일컫던 말>을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❶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내어 저들과 만나시려는 곳 /
출애굽기 3:9-10, 12 / 이스라엘 사람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리고 애굽 사람들이 그들을 개 취급하듯 다루는 모습도 내가 보았다. 10) 그래서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낸다.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라. 12) 분명히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뒤에 너희가 이 산에서 너희의 하나님인 나를 섬기리라.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내는 표징이 되리라.
❷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강력한 의지 /
출 19:1-6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석 달이 되었을 때 그들은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2) 그들은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시내산 부근에 진을 쳤다. 3) 모세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산에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의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4) `내가 애굽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또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어떻게 내게로 데리고 왔는지 너희는 다 보았다. 5) 온 누리가 다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뭇 민족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되리라. 6) 너희야말로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러주어라.'
광야의 길을 걷게 하는 훈련을 통해 이상인(異狀人, 理想人, 貳相人)을 만드시려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 이들을 막론하고 어려운 일이 주어진다. 그러나 불신자와 믿는 이에게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게 되면 옆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나 약간의 도움 아니면 전혀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운 일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온 후 홍해를 기적으로 건너는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그 후로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되었다. 광야 길은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는 길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두 주간이면 갈 수 있는 것을 광야 길을 걸어가게 하신 것일까? 광야 길을 걷게 된 이유는 저들의 불순종 때문이었다. 12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들었을 때 저들은 불신앙의 보고를 한 10명의 정탐꾼 말을 들었기에 그로 인해 40일간 정탐한 날수대로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민13, 14장).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광야와 같은 길을 걸어갈 때가 있다. 우리들은 인생을 살면서 뜻하지 않는 여러 가지 고난을 만난다. 때때로 인생에서 광야 생활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광야 길을 걸어가며 힘들어하는 이유는 주어진 환경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우리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어려운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모른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가 주어진 인생 속에서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를 알게 되면 어려운 환경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잘 견딤으로 강인한 신앙인이 될 것이다. 우리로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목적을 알게 되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광야의 훈련을 잘 견디어 나아갈 수 있게 된다(읽을 말씀 히 12:1-13).
① 나를 연단하시고 낮추시기 위해서이다.
신 8:2 /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난 40년 동안 저 광야에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신 그 여정을 모두 돌아보십시오. 그 목적은 여러분의 고집을 꺾어 겸손하게 낮추어 놓는 한편, 여러분이 과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 여러분의 마음을 시험하여 알아보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종노릇했다고 하여 낮추어진 것은 아니다. 세상적으로는 낮추어졌는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낮추시려는 것은 세상에서 잘 살든 못 살든 하나님 앞에서의 낮아짐이었다. 즉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온유였다(마 11:29-30).
②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신 8:3 / 주께서 여러분의 고집을 꺾으실 때에 여러분을 굶주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여러분도 몰랐고 여러분의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주께서 여러분에게 먹여 주셨습니다. 그 목적은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주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하니님께서는 매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다. 그것도 광야의 길을 걷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최고급의 양식이었다. 만약 광야 길을 걸어가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었던 일 그것도 세상 어느 민족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저들은 매일 경험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다 광야의 40년 내내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저들을 인도하였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40년 동안 광야 길을 걸어가면서도 의복이 해어지지 않았고 신발이 해어지지 않았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면서도 의복으로 인하여 걱정하지 않고 지내게 하신 것이야말로 기적이었다. 하나님은 광야 길을 걸어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동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모든 필요를 친히 다 공급해 주셨다.
왜 예수님이 ‘그러므로 내가 전정으로 말한다.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것으로 염려하지 말라.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돌보아주시는데 하물며 너희야 더 잘 돌보아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음식과 의복을 쌓아 두려고 걱정하지 말라. 왜 그런 것에 마음을 쏟고 자랑을 늘어놓는 이방인처럼 되려고 하느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것으로 족하다.’(마 6:25-34)라고 하셨는지에 마태복음 6장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 오늘날에도 우리로 하여금 광야 40년의 걷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깨달아 우리로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를 확정해야 한다.
이 사실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깨달아야 할 것은 부모가 자식을 옳게 가르치듯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가르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로만 걸어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된다.
③ 아름다운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리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7-10절).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물로 가나안 복지를 약속해 주셨다. 그 땅에서든 들녘에서든 산지에서든 똑같이 깊은 곳에서 샘물과 시냇물들이 솟아날 것이요, 그곳은 밀과 보리가 자라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열고 올리브기름과 꿀이 나는 땅으로 그 땅에서는 먹는 데에도 부족한 것이 없고 어느 것 하나 아쉬운 것이 없었다. 그 땅의 돌에는 철이 들어 있고 어느 산에서나 구리를 캘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은 거기서 풍족하게 먹고 행복해지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그 아름다운 땅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과 규정들을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하나님 여호와를 잠시도 잊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절대로 교만하여 ‘이 모든 재산은 내 손으로 일해서 모았고 내가 잘나서 부유하게 되었다.’ 하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저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그렇게 부강하게 해주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상인(異狀人, 理想人, 貳相人)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 이제는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었던 일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믿음의 사람 에스라를 소개하려고 한다. 에스라 8장을 보면 누가복음 17장에서 주는 교훈이 다 포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상인(異狀人, 理想人, 貳相人)의 믿음
1. 바벨론 포로와 귀환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 족보 제3기에 해당하는 시기에서 남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과정과 거기에서 돌아오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의 죄'(렘 2:28, 32:29-35), '안식일과 안식년을 이행하지 않은 죄'(대하 36:21, 렘 17:27, 34:8-22) 등 남 유다 전체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죄가 가득차자 '바벨론 포로생활'이라는 징계를 내리셨다. 3차에 걸친 포로 과정에서 성전이 파괴되고 왕궁을 비롯한 예루살렘성이 훼파되었으며 왕과 지도자들로부터 빈천한 자를 제외한 모든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럼에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70년 후에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셨다(렘 25:11-14).
제1차 귀환과 제2차 귀환 /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셨다. 주전 538년,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고레스(Cyrus)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는데 저들로 하여금 고국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도록 후원까지 했다. 느부갓네살이 약탈해 와서 창고에 보관해둔 예루살렘 성전의 금ㆍ은그릇들도 모두 돌려주었다. 이때 귀환자들은 노비와 노래하는 자까지 포함하여 모두 49,897명이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건축에 착수하였다. 백성들의 지도자인 스룹바벨, 대제사장 예수아가 앞장서서 이 일을 이끌었다.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어 16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 때 성전 재 착공을 독려한 예언자가 학개와 스가랴이다(스 5:1).
주전 516년,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제6년에 드디어 성전 공사가 끝났다. 이 성전을 보통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른다. 성경에는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의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신약의 헤롯 성전 셋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봉헌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켰다(스 1-6장).
에스라서의 후반부 7장은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 일 후에’라는 된 짧은 말이지만 여기에는 57년이라는 세월이 숨어 있다. 성경에는 이 페르시아가 바사라고 나오는데, 성전을 준공할 때 페르시아의 왕은 다리오였다. 그 다음 왕은 아하수에르 왕으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바로 그 왕이다. 그 다음 왕이 7장에 나오는 아닥사스다(Artaxexes)왕인데, 에스라를 뒷받침해 주었다.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뿐만 아니라 느헤미야의 활동도 뒷받침해 주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다(느 1-2장).
성전이 준공된 다리오 왕 6년에서 에스라 8장에 기록된 일들이 시작되는 아닥사스다 왕 7년(스 7:7)까지는 5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57년 동안 이스라엘은 그렇게 활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초기 귀환운동과 성전건축을 이끌었던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인 예수아는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이 시대의 예언자인 학개와 스가랴도 세상을 떠났거나 나이가 많아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도력의 공백상태로 정치적인 지도력도 공백이었고 영적인 지도력도 공백이었다. 백성들의 생활은 침체에 빠져 있었다. 이런 모습은 에스라와 거의 같은 시대의 일을 적은 느헤미야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성전은 지어졌는데 성전에서 조석으로 제사를 드린 기록과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친 기록도 없다. 성전은 건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전이 성전으로 쓰임 받는 것이다. 성전의 건물을 요즘 말로 하면 하드웨어로 소프트웨어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그 하드웨어는 제 값을 발휘하지 못한다.
■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 하나가 있다.
고레스 왕과 다리오 왕, 아닥사스다 왕이 유대인들의 귀환을 도와주었고 성전재건을 도와주었다. 이 왕들이 이런 일들을 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들은 이방나라의 왕들일 뿐이다. 점성술이라든가 말둑 신을 비롯한 우상들을 섬기던 왕들이었다.
이들은 왜 이런 일들을 했을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❶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스 1:1 / 바사 왕 고레스가 즉위한 그해(BC 538년)에, 여호와께서 이미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알려 주셨던 약속을 성취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세계의 통치권을 잡은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그가 자기의 온 제국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그것을 문서로도 적어 공포하였다.
❷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성전과 성곽, 예루살렘 성읍 재건을 시작하였으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공사가 중단된다. 16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미루어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들을 통해서 잠자고 있는 유다 백성들의 영혼을 깊은 잠에서 깨워주셨고,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성전이 다시 건축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 등의 관리들을 통하여 성전건축이 적법한 지 조사가 들어왔고, 유다의 장로들이 고레스왕이 허락 조서를 내렸기 때문에 성전건축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니, 그들은 페르시아왕 다리오에게 그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다리오왕은 편지를 받고서 왕실문서를 보관하는 보물전각(우리말로 규장각)을 조사하도록 했는데, 메대에 있는 악메다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발견했는데 고레스왕의 조서였다. 고레스왕의 조서를 확인한 다리오왕은 성전 짓는 일에 대하여 방해하지 말고 오히려 성전을 신속하게 잘 짓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하라는 명령과 세부적으로 규정해 두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말씀도 있다.
스 6:10-12 / 하늘의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제물을 유다인들이 모두 바치게 하고, 그 대신에 유다인들은 이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를 드려 이 나라의 왕조가 오래 계속되도록 하시오. 11) 끝으로 내가 엄하게 명합니다. 누구든지 위에서 말한 명령을 위반하면, 그 집의 대들보를 빼어 내다가 똑바로 세워 놓고 바로 그 기둥에 그를 못 박아 달겠소. 그러면 그의 집은 무너져서 쓰레기더미가 될 것이오. 12) 만일 어떤 왕이나 어떤 민족이 이 명령을 무시하고 예루살렘의 성전을 허물어뜨리려고 작정한다면, 그곳을 성소로 선택하고 사람들이 거기서 자기에게 기도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이 직접 그런 왕이나 백성을 멸망시키시기 바라오. 이것은 나 다리오가 직접 내리는 명령이니 글자 하나도 어김없이 신속하게 수행하도록 하시오.'
다리오 왕이 성전 재착공을 허락하고 성전공사와 제사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도록 한 것도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❸ 에스더 왕비의 의붓아들 아닥사스다 왕은 458년에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이 에스라와 함께 그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렸다. 아닥사스다 왕이 제2차 귀환을 허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하실 뜻을 두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상관하지 않고 세상의 통치자들, 왕들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그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역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성경들은 그 사실을 기초로 하고 기록되었다. 에스라서나 느헤미야서도 마찬가지이다.
스 7:27-28 / 에스라는 이제 히브리 말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것을 왕의 마음에 넣어 주셔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영화롭고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28) 내가 왕에게서 은총을 얻게 하시고 궁중의 모든 참모와 이 나라의 대신들에게서 총애를 받게 하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내 머리 위로 손을 펴서 도우시고 용기를 일으켜 주셨기 때문에 이토록 많은 이스라엘 가문의 어른들을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아하와 강가의 금식성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으로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이며, 당대의 페르시아 왕인 아닥사스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었던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게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닥사스다는 자신과 자신의 일곱 자문관의 이름으로 에스라를 유다로 보냈으며(스 7:14) 그를 보낼 때 하나님께 성심으로 금과 은을 보냈다(스 7:15). 그뿐 아니라 그는 바벨론의 온 도(都)와(스 7:16) 궁중창고(스 7:20)를 비롯하여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 지역의 모든 창고에서도(스 7:21) 예루살렘 성전과 거기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내다 쓸 수 있도록 조치해 주었다. 그리고 성전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일체의 조공, 관세와 통행세를 면제해 주도록 했다(스 7:24).
이에 에스라는 지금으로부터 약 2,478년 전 귀환을 앞두고 아하와 강가에 모여 사흘 동안 준비집회를 했는데(스 8장) 귀국 준비성회로 성전에 활기를 주려는 성전을 살리기 위한 성회였다. ‘아하와(Ahava)’라는 이름은 바벨론의 지명으로 성경에는 에스라 8장에만 3번 나올 뿐이다. 아하와 강은 아하와 지방을 흐르는 작은 강이었을 것이다.
에스라는 자기와 함께 유다 땅으로 돌아갈 백성을 아하와 강가로 모았다. 에스라는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을 치고 머물며 함께 돌아갈 백성들을 점검했다. 특히 그의 주된 임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바른 제사와 신앙의 회복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수행할 제사장들을 살폈다. 그 때 알게 된 사실이 같이 갈 일행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다(스 8:15). 그래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모으려고(스 8:16-20) 바벨론에서 길을 떠난 지 열하루 뒤인 첫째 달 십이일에야 아하와 강에서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스 8:31).
예루살렘을 향한 이주의 행진을 시작할 준비는 끝났지만 그 일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루살렘까지의 귀향길은 약 900마일(1,440km)였다. 군대가 행진한 것이 아니고 남녀노소와 함께 각 가정의 온갖 살림살이가 들어있는 이주이삿짐 외에도 성전을 위해 드려진 모든 예물을 끌고 가야 했다. 에스라 8:25-30에서 언급된 성전을 위하여 바쳐진 예물들은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성전 기명(器皿)들은 조심히 다루고 지켜져야 할 물건들이다. 에스라에게 왕과 방백과 바벨론에 남아있는 유다백성들이 준 물질이 ‘은이 육백 오십 달란트요 은 기명이 일백 달란트요 금이 일백 달란트며 또 금잔이 이십개라 중수는 일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 같이 보배로운 놋그릇이 두 개라’고 기록되었다. 놋그릇은 두 개 밖에 없고 전부다 은금인데 이것을 계산해보면 30톤이다. 머나먼 길을 이러한 물량을 운반한다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두 걸어서 넉 달이 걸려야 하는 먼 길이었다(스 7:9). 그 이주경로에는 떼강도들이 득실거리고 있었고 길도 매우 고되고 위험하였다. 게다가 어린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까지 있어 느리고, 숱한 귀한 물건들을 갖고 가는 이런 이주자의 무리는 강도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러한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되었을 것이다.
이 길고 험난한 길을 떠나기에 앞서 에스라가 선포한 것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실로 크다.
스 8:21 / 나는 거기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일을 선포하였다. 우리는 모두 우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우리들 모두와 우리 어린아이들과 우리가 가지고 가는 모든 재산을 위하여 그리고 무사히 고국에까지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하였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 전보다 후에 금식을 더 많이 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벨론에 잡혀가기 전에는 금식은 특별한 경우에만 행해졌고 온 백성이 다 하는 때는 1년에 1번 속죄일에 하곤 했지만 잡혀간 후로는 금식이 더 강조되었다(슥 8:18-19).
에스라가 금식을 선포했다는 것은 자기 혼자만 금식을 한 것이 아니라 온 일행이 다 같이 하게 했다는 말이다. 금식은 어려운 처지에 놓일수록 더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모으기에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쓴 것은 누가복음 17장에서 성도들이 갖춰야 할 믿음에 관해서 설명하려 함이다.
에스라는 또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했다’고 한다. 이 말은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했다는 말이다. 에스라나 유다 백성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지켜주셔야 할 일임을 잘 알아서 에스라와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믿음은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에스라 일행의 귀향길은 길고 고되고 위험한 길이었다. 호위하는 군대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에스라는 자기를 절대 신임하고 직접 자기를 명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며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페르시아 왕에게 호위군대를 요청할 수도 있었다.
느헤미야가 고국으로 돌아올 때는 왕이 보내준 군대 장관과 마병과 함께 왔다(느 2:8-9). 에스라가 요청하면 아닥사스다 왕은 허락했을 것이다. 그런데 에스라는 자기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아낌없는 후원까지 해준 왕에게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런 요청을 하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스 8:22 / 우리가 가는 먼 길에는 대적이나 강도의 위험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왕에게 그런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도록 기마병을 내어 달라는 간청은 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런 간청은 부끄러워서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왕에게 이미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나 당신을 버리고 멀리하는 이들에게는 무서운 분노를 내리십니다.’
에스라는 이미 페르시아 왕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드러내 놓고 말한 적이 있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실 것이므로 하나님을 믿고 가면 달리 도와줄 군대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 와서 막상 갈 길이 멀고 험해서 걱정이 된다고 호위해줄 군대를 요청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에스라의 일행 중에는 아무래도 군대의 호위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왕에게 호위군대를 요청하자는 제언을 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고 오로지 하나님의 보호에 의존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그래서 다 같이 금식하며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동행하시며 보호해주셔야만 할 것을 간구한 것이다. 사실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을 위한 다른 준비에 앞서 에스라가 원하며 실천하려는 것은 바로 이 영적 준비였다. 이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스 8:31 / 우리는 그해 1월 12일에 아하와 강가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오는 길은 멀고 험하였으나 항상 지키시는 여호와의 손이 위에서 우리들을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원수들의 공격에서도 무사히 벗어나고 매복하였다가 달려들던 강도떼의 손에서도 벗어났다.
이 말 속에서 실제로 에스라 일행을 대적하거나 매복했다가 공격을 감행한 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도우셨다는 것이다.
시편 23편과 잠언 3장 말씀이 새롭게 마음에 와 닿는다.
시편 23:4-6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잠언 3:5-6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5절에 ‘신뢰’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호와를 신뢰하라(trust)고 했다. 마음을 다하여(with all your heart)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했다. 여기에 우리 인생이 달려있다. 이 말씀만 붙잡으면, 폭풍 가운데도 지나갈 수 있다. 우리의 미래가 어렵고 불확실하고 어둡고 상황이 흔들려도 상관없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면 폭풍 가운데라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마음을 다하여’가 참 중요하다. 신뢰하되 어중간하게 신뢰해서는 안 된다. 약간 신뢰가 가는 곳에 100% 올인을 할까? 신뢰는 확률의 싸움이 아니다. 몇 % 확률에 따라 맡기는 것이 아니라 100%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4월 히틀러가 사망한 후 그해 8월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 긴 전쟁의 승리의 기회가 연합군 쪽으로 기운 것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1944년 6월 6일에 있었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다.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 이 작전을 이끌었는데, 독일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작전이었기에 준비 기간만 1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작전 바로 전날 밤, 폭우와 안개로 작전 실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전쟁이 길어지면 연합군에게 불리했기에 더 연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아이젠하워 장군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다. 놀랍게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성공했고, 이후 채 1년도 안 되어 독일은 연합군에 항복했다. 하나님만 의지했던 아이젠하워는 전쟁이 끝난 뒤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던 아비야 왕은 적군의 매복에 걸려 꼼짝 없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때 아비야 왕과 군인들은 여호와께 부르짖기 시작했다(역대하 13:14). 그러자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의 군인들을 직접 물리쳐 주셨고, 결국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에 항복하게 되었다. 성경은 이 기적 같은 승리의 원인을 아비야 왕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였다(역대하 13:18).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뜻을 우습게 여겼던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과 대조를 이루는 평가이다(대하 13:6-8).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의지했지만, 아비야 왕은 하나님을 선택했다.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인 에스라를 통해 우리는 귀한 깨달음을 받았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이외에 그 어느 것도 의지하지 말자.
▮ 인간의 지혜나 경험을 의지하려는 것에 대하여 :
잠 3:5-6 /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
자신의 지혜나 경험만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러한 인간의 태도는 미련한 것이다. 실제로는 할 수 없으면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좌충우돌하기 때문이다.
▮ 사람을 의지하려는 것에 대하여 :
렘 17:5-8 / 나 주가 말한다.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는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의지하다보면 곧 실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상처를 받게 될 때가 많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 재물을 의지하려는 것에 대하여 :
눅 12:16-20 /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는 혼자 말하였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재물을 의지하려는 인간의 마음도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Money가 최고다’라는 말이나 돈이면 다 통한다는 뜻의 “Money talks!”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로 그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돈이 최고가 아닐 때가 더 많고, 또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돈이라는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의식주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도록 힘쓰자.
■ 1967년 6월에 아랍과 이스라엘 간에 3차 중동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이스라엘 군을 이끌던 모세 다얀 장군은 이스라엘보다 100배나 더 많은 인구를 가진 아랍과 맞서면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새로운 무기가 있다고 선언하므로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스라엘 백성 유대민족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틀림없이 원자탄이나 수소탄이나 그보다 더 무서운 폭탄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다얀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승리하게 할 신병기는 바로 시편 121편 하나님 말씀이다.”라고 했다. 온 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단 6일 만에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점령하고 승리로 끝나면서 역사적인 ‘6일 전쟁’을 완결 짓게 된 것이다.
시 121:1-8 / 나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는가? 2)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여호와 주님만이 홀로 나를 도우시는구나. 3) 너를 쓰러지지 않게 하시려 주께서는 너를 지키시며 졸지도 아니하신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신다.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 5) 여호와 너를 지켜 주신다. 여호와 너를 구해 주신다. 네 곁에서 너를 보호하신다. 6) 낮 동안 해가 이글거리며 내리친다 해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밤이 되어도 달이 너를 다치지 못하리라. 7) 어떤 위험 닥쳐와도 여호와 너를 지키시리라. 너를 보호하시리라. 8) 네가 들어가도 나와도 주께서 너를 보호하시리라. 이제부터 영원히 영원토록.
결 론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과 시험을 이기신 마태복음 4장을 보며 예수님과 뜻을 함께 하려한다. 예수님과 같은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가는 길에 늘 함께 하실 것이다.
1.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자.
성경 말씀과 오늘 우리에게 성령님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들은 영적인 일용할 양식이 될 것이다.
마 4:2-4 /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이나 금식을 한 뒤였으므로 몹시 시장하셨다. 3) 그때 마귀가 와서 돌을 떡이 되게 해보라고 유혹하며 `그렇게 하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증명될 게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가르친다.”
2.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계명과 명령대로 순종하기 위해 힘쓰자.
메마른 광야(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은 세상, 사단이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는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 것이다.
마 4:5-7 /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지붕 위에 세워 놓고 6) 말하였다. `뛰어내리시오.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오. `주께서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님의 천사를 보내 보호하게 하시니 그들이 두 손으로 너를 꽉 붙잡으리라. 혹시나 돌부리에라도 채이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리라'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소?" 7)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도 성경에 있다."
3.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하신 일을 분명히 알자.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죗값을 치르기 위하여 목숨을 내주려고 오셨다. 그 큰 능력과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상을 취하여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 아니, 훨씬 더 자기를 낮추어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헛된 영광을 바라보거나 생각조차 하지 말자. 예수님의 마음을 품도록 기도하자.
마 4:8-11 / 마귀는 다시 예수를 이끌고 아주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9) `만일 내게 무릎을 꿇고 경배한다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때 예수께서 “사단아 물러가라. 성경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분만을 섬기라’고 이르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11) 그러자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물질적이든 또는 그 밖의 무엇이든 간에 욕망이 생길 때 그것에 응답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욕망이란 죄는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 제어되고 사라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사는 것이 신앙훈련의 목적이며 결론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