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지훈이랑 은이성지로 미사를 갔다.
수녀님과 미사봉헌을 한 후
신부님께서 지훈이에게 사탕 하나를 주신 까닭에
흔쾌히 따라 나선 것이다.
그날 지훈이는 빨간색 막대사탕을 받았고 얼마나 좋았는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입에 넣을 때마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는 행복해 했다.
내친 김에 지난 주에
"안젤로! 성당에 갈까? 신부님께서 또 사탕을 주실 것 같지 않니?"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주황색 사탕을 주라고 하자!"
하면서....
성당에 간 안젤로는 얼마나 지루했겠나마는
미사중에 기도손도 해 보고
섰다가 앉기를 따라해 보기도 하고
의자에서 몸서리를 치면서도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미사후에 또 신부님은 사탕을 주셨는데
이번엔 레몬맛 막대사탕이었다.
그러니 노랑색이다.
안젤로는 못내 아쉬웠는지
"주황색 사탕이면 좋은데..."
하다가
사무실로 가시는 신부님께 쫓아가
"주황색 사탕을 주세요."
했지만 다음주에 또 오면 주겠다는 말을 듣고 돌아섰다.
신부님께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해
사탕의 상표명을 "주파춥스"
하는 바람에 섭섭함을 다 잊고는 집에 오는 동안
"할머니! 주황색이라 주파춥스인가봐.
빨간색이면 빨파춥스, 노랑색이면 노파춥스,초록색이면 초파춥스..."
하고는 무지개색을 다 대입하고 수다를 떨고는 재밌어 하는 것이다.
"근데 안젤로 신부님은 왜 안젤로에게 사탕을 주셨을까?"
했더니
"내가 시끄럽게 안하고 잘해서..."
하고는 우쭐해한다.
요즘 나는 안젤로에게 갈비를 먹이는 기쁨으로 산다.
자주 가는 갈비집에서 유아기때는 청포묵을 좋아해서
그 다음엔 가지위에 다진 새우를 얹어 튀기는 가지 튀김을 좋아하더니
요즘엔 그집의 메인 메뉴인 양념갈비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육아하러 가는 화요일마다 그곳에 가서 아들 손자 며느리에게 갈비를 사 주는 것이다.
입이 짧은 우리 며느리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갈비와 양념게장을 먹는 걸 보는 것도 기쁘고
손자가 일 인분 이상을 먹고 냉면까지 먹는 걸 보면
옛어른들의 말씀에
'내 논에 물대는 거랑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것처럼 좋은 게 없다'더니
마음이 오지고 오진 것이다.
몇 주째 이어오는 화요일의 갈비집 만찬이 끝나면
안젤로가 식사후에 제 아빠차를 타고 집에 안가고
할머니차를 타고 가겠다고 우긴다.
그래서 안젤로를 아들집 주차장까지 다시 가서 내려주고 돌아오게 된다.
그게 몇 주째 이어지자 며느리와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제 갈비집에 가는 길에
"안젤로! 할머니 차가 왜 좋아?"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 차는 크고 넓어."
"아하~ 그랬구나"
"근데 할머니~ 할머니차는 크고 넓고 할머니가 있잖아."
이러는 게 아닌가!
"안젤로는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해?"
했더니
"난 할머니는 천장만큼 땅만큼 천 백만큼 사랑해."
"할머니는 우리 안젤로 천,백, 만만큼 사랑해."
하고 며느리랑 감동해서 웃었더니
"할머니 난 천,백,만, 쉰 오백,오백,오백만큼 사랑해."
하는 것이다.
제가 아는 모든 숫자를 다 더하고 싶은가 보다.
뼛속까지 행복한 사랑고백이다.
아기가 영어 유치원에 입학한 직후
아들이 토요일 육아를 맡기며 안젤로가 배우는 영어숙제를 들고 왔었다.
"가브리엘!
다음부턴 아기 숙제 가져 오지마라.
아기 교육은 너희가 시켜.
난 조기교육에 동의 안하고
무엇보다 할머니로서 아기가 힘들 때 기댈 언덕이 되고 싶어.
난 사랑을 가르칠거야.
노인네가 시대에 안맞게 무슨 공부겠니?"
했었다.
아기가 집에 오면 난 신나게 놀아주고
꼭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사랑을 표현하는 많은 손동작으로 아기랑 웃으며 사랑을 표현한다.
"안젤로! 할머니가 우리 안젤로 사랑하는 거 알아?"
하면 아기는
"알지~~"
하고 퇴근한 아빠가 데려갈 때면
"아빠 할머니집에서 더 놀다 가자."
하고 떼를 쓰기도 한다.
언제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에게야 말해 뭐할까!
예순여섯 나이가 너무 들어 안타까웠는지
나라에서 만나이를 쓰자고 한 까닭에 다시 예순넷이 되었지만
이젠 노년기에 접어든 걸 부인할 수 없다.
꽉 깨물고 싶도록 예쁜 손자가 생겼고
그 손자와 사랑을 나누는 행복한 할머니로 시작되는 노년기.
또 다른 은총의 통로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