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강을 끼고 산과 강이 어우러진 이곳은 강원도 영월군 행정구역이다. 그렇지만 원주나 충북 제천에서 더 가까운 생활권이었다. 주천강이 흐르는 산골 마을에서도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서 박달재는 토지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이곳 경치는 산과 강을 끼고 자연 풍광이 최고의 입지였다.
이곳에서 제천과 충주 넘어가는 박달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안동근이란 본명 대신에 박달재라는 닉네임을 만들었다. 그런 곳에서 면적이 최소한 몇 천 평에서 몇 만평 되는 넓은 토지나 완만한 임야를 값싸게 매입하여 가공 후 분할해서 매각했다.
토지가공이란 농지전용허가나 산림형질변경허가를 득한 후 토목공사를 하는 작업을 말한다. 도로를 만들고 상하수도 개설 지하수 관정작업 등을 거쳐 단지를 조성하는 일이었다. 때마침 전원주택과 펜션의 열풍이 불기 시작해서 그의 사업은 순조로웠다. 부가가치도 엄청 커서 토지매입비와 공사비용과 세금을 공제하고도 솔솔찮게 남는 장사였다. 지방으로 다니며 토지매입과 현장공사는 박달재 자신이 직접 맡았다. 서울 사무실에는 분양팀 직원들이 고객을 유치하는 영업을 했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 그는 주로 지방 공사 현장에 내려와 있었다. 면소재지 주천에 그의 임시 숙소가 있었다. 숙소라고 해야 시골 농가주택 별채에 방 한 칸의 월세였다. 공사현장에 있다가 서울로 가지 않을 때는 가끔 한 번씩 잠만 자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대부분이 낮에는 현장에 있다가 저녁때 서울에 있는 집으로 갔다. 다시 아침에 사무실 들렀다가 현장으로 내려오곤 했다.
박달재는 하루 정도 있다가 저녁에 올라갈 예정으로 현장에 내려왔는데 며칠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군청에서 행정 처리해야 할 일도 있었다. 또 서울 사무실에서 답사할 고객이 내려가니까 대기하라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왔는데 살짝 걱정은 되었다.
내려 온 날부터 하루 종일 앞이 안보일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현장의 토목공사는 당연히 중단되었다. 땅이 마를 때까지 또 공사가 지연될 건 뻔했다. 그런 경우가 가장 힘들었다. 그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기 일쑤였다. 공사 기간이 지연되면 그만큼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사채며 금융기관의 이자 부담이 가장 컸다. 공사를 빨리 끝내고 신속히 분양을 끝내는 게 가장 좋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게다.
예전 같으면 초조함과 불안감으로 짜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을 게다. 그래서 술이나 퍼마시고 괴로워했을 게다. 하지만 댄스를 시작한 요즘은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졌고 그저 즐겁기만 했다. 사업이야 망하든 말든...
5월초인데 뉴스에도 떠들썩하게 전국이 하루 종일 장대 폭우가 쏟아졌다. 산림형질변경허가를 위해 군청에 갔으나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 바람맞고 온 박달재는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비도 계속 오고 기분도 그렇고 그랬다. 그래서 제천이나 원주시내로 나가서 술이나 한잔 빨면서 울적한 기분을 풀까. 아니면 홍천으로 가서 은밀히 알고 있는 그 곳으로 갈까 생각하며 혼자서 순간 키득거렸다. 홍천에 퇴폐업소를 지난번에 한 번 간 적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 나서였다.
마음이 뒤숭생숭 하고 갈등이 생겨서 흔들렸다. 그러다가 혼자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 딴 짓을 다 해봐야 쓰잘데기 없을 것 같았다. 술 마시고 나면 다음날 머리 아프고 속도 울렁거렸다. 돈만 깨지고 후회뿐인 걸 알면서도 유혹을 못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걸 용케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철이 들어가는 것 같아서 대견스러웠다. 자기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사실은 골방에 들어가서 왈츠의 기본인 박스 스텝을 연습할 계획이었다. 당연히 운동이 되어 몸도 개운할 것이고 기분도 상쾌해질 것을 이미 경험에 의해 알고 있었다. 그런 판단이 현명하고 그를 퇴폐적인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게 했다. 그래서 그는 방 주인댁 할머니가 차려준 저녁밥을 얻어먹고 나오면서 할아버지께 당부했다. 그의 방에 오지 말라고... 언제나처럼 "박사장 놀러와!"하고 방문을 왈칵 열까 봐서였다. 집주인 댁에서는 그의 본명 안동근을 모르고 박달재인줄 알고서 박사장이라고 불렀다. 처음에 인사하고 자신을 소개할 때 본명 대신에 그렇게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그의 숙소인 골방은 마당에서 바로 문을 열 수 있었다. 안에서 잠그는 고리도 없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구옥이었다. 주인댁 노부부는 자녀들이 다 출가해서 도시로 나가고 두 분만 살고 있었다. 외로우신지 그가 한 번씩 와서 자고 가는 걸 무척 좋아 하셨다. 그래서 그가 있는 날이면 밤에도 느닷없이 불쑥불쑥 문을 열고 부르러 오곤 했다. 고구마를 쪄놓았거나 할아버지가 소주라도 한 잔 할 때는 꼭 그를 불렀다.
저녁에도 비는 주룩주룩 끊임없이 내렸다. 박달재는 초저녁부터 시골 골방에 처박혀 있으려니 왠지 몸이 근질거렸다. 무엇보다 발목과 장딴지가 뻐근해서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댄스연습을 하다가 하루라도 빠뜨리고 안하면 이상하게 몸이 쑤시고 찌뿌둥했다. 특히 발목이 뻐근함을 느꼈다. 그는 이제 댄스연습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그만의 운동 방법으로 발전했다.
그는 비가 오는데도 찢어져서 펄럭거리는 우산을 쓰고 가게로 갔다. 그리고 캔 맥주 레몬 두 개 콜라 제크 크래커를 사왔다. 땀을 많이 흘린 운동 후에 먹기 위한 주전부리 감을 잔뜩 준비한 것이다. 가끔 빡센 박스 연습 후에 시원한 캔 맥주가 그리웠다. 미리 준비를 해놓지 않아서 운동 끝난 후에 사러 가기가 매번 귀찮아서 포기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 준비를 해놓고 시작할 생각이었다. 골방으로 들어온 그는 본격적으로 박스 연습을 시작할 태세를 갖추었다. 마치 전투에 임하는 병사처럼 비장한 각오를 하고서.
@청노루 아 ~ 그거여. 휴계소 사장넘이 절하나 져준다고 꼬셔서 성각스님 을 몇년 딥다 이용 해 거시기 보러 언냐들이 모이는 관광지가 돼니깐 성각스님을 쫏아내고.후에 목각깍는 사람써서 만들어 놓은 겁니다요. 그 못된 사장넘 살아온 역사를 지가 쪼매 알쥬. 지뿔도 읍는넘이 설서 빌빌되든게 장인이 죽을 고생해서 일켜놓은 휴계소를 장인이 딸 앞으로 해 낫드니만 . 마눌일찍 죽고 그 가계 지가 꿀꺽.... 함튼 그것도 복이라면 그 넘한텐 복이겠쥬 .....뭐
첫댓글 20 회 댄스 연습 일기가 펼쳐지는군요.
잘 읽겠습니다.
어제 꽤 아직 바람이 차겁드군요.
따뜻한 봄날이 오기까지
건강 조심하기~ 입니다.
어제는 아이리스로 수업받고 왔어요.
요즘은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입니다...ㅎ
옛가요에 흘러 나오던 박달재가
그쪽에 있군요?
내가 강원도 홍천에서
군생활을 하였었는데
군인이 많은지역이어서
퇴폐업소가 있었나 봐요.
외출을 나갈때 한번씩 먹던
군시절 배고플때여서 인지
홍천닭갈비도 엄청 맛있었는데~ㅋ
홍천서 군대생활 했군요..
박달재는 우리 가요로 많이 알려졌죠.
이제 시간도 자유로울텐데 자전거도 타고 여행도 많이 다니셔야죠...^^*
@청노루 오늘은 MTB 동호회
리더님께 MTB자전거
타는 방법을 배우러 갑니다~
@청개굴(온라인) 잘 하셨네요.
저는 요즘 자전거 타는것도 좀 시들 해졌어요. 따뜻해지면 좀 나가봐야겠어요.
즐라하세요...~^^
모처럼 읽어 봤어요
밑에거는.아직 못 읽었는데 ㅋ
박달재가 울고넘는 박달재
부동산 기획 업자 출신이구나
춤에 중독이 되는 중이네요
군에서 팀 스프리트훈련
청군 주력부대 불무리 부대
근무할때 한탕강근처 부대에서
기차타고 도하도 하고
숙영지 편성해서.야외에서
한달씩 훈련한 박달재 추억이
많았는데
박달재의 춤입문 잘 보겠습니다...
불무리부대 근무하셨군요.
26사단이었죠. 지금은 기계화 사단이라고 하는것 같던데요. 가래비 고개.,,.. 훈련소...그쪽으로는 오줌도 안누고 싶었던곳...ㅋ
박달재 성향으로 봐서
비도오고 습도 많아서 댄스연습중에
옷 다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박스연습 하지 않았을까~ ?
싶은 생각이,,, ㅋㅎ
이미 박달재의 섬향이며 모든걸 파악하신것 같군요.
봄이 오면 전원생활의 참맛을 만끽하겠네요... 봄처녀강되시겠다...~^^
예전 박달재에서 올라가면 주론산 산행하는데 취나물과 산딸기가
지천이어서 또 한번 가고싶은곳인데
박달재가 춤으로 발돋음 하던 시기군요
앞으로의 활약성이 많이 궁금해지네요
박달재 참죻죠.
또 가보고 싶은 정감어린 곳입니다. 글을 쓴다는건 글 쓰는 사람의 상상을 마음대로 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저 울고넘는 박달재라는 노래만 있고 별 볼일 없든 산골 박달재 고개마루 .
언날 성각이라는 스님이 흘러와서 목각으로 박달재를 관광지로 만들어 놓은
목각 깍는 성각스님 계시는데 아직도 거기 계시는지 디지게 궁굼하네요 ....?
청노루님 ~
혹시라도 그곳을 지나치시는 일이 계시다면 소식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
추천 꾸 ㅜ 욱 누르고 갑니다 ~ ㅎ^^;
멋진 조각들 많던데요.
작년 6월에 자전거 타고 다녀온 사진입니다.
@청노루
거 ~
남자 거시기만 글케 깍으십니까....
스님 왈
여기는 음이 쎄서리 남자 거시기로 음을 제압해야 한다나 뭐라나 하문서리 딥다 거시기만 ... ㅎ
이제 음이 많이 다스려으니 인젠 여자 거시기도 깍으라 했더니만 ........
얼마후에 이런건 어떠나고 내려와서 한번 보라고 해서 봐더니 ~
오 ~
마이 굿네스 ~ ㅎㅎㅎ
그 깍어놓은 목각은 여기서 말 못하는거 이해 부탁 드립니다 ~
나만 가면 가을엔 재천에 내려가서 송이버섯으로 목욕을 시켜주고
그런 버섯이 안나오는 계절엔 소주와 괴기로 목욕을 시켜주던.
재미있는 그 스님과 헤여진지 가 십여년이 흘러네요 ....
@그려느니 아, 글쿤요.
너무 잘 아신ㅡㄴ군요.
난 아무것도 모르고 조각이 재미있어서 사진 찍었는데...
조각도 서원휴게소 주인이 깎은 줄 알았는데....~^^
@청노루 아 ~
그거여.
휴계소 사장넘이 절하나 져준다고 꼬셔서 성각스님 을 몇년 딥다 이용 해 거시기 보러 언냐들이 모이는 관광지가
돼니깐
성각스님을 쫏아내고.후에 목각깍는 사람써서 만들어 놓은 겁니다요.
그 못된 사장넘 살아온 역사를 지가 쪼매 알쥬.
지뿔도 읍는넘이 설서 빌빌되든게 장인이 죽을 고생해서 일켜놓은 휴계소를 장인이 딸 앞으로 해 낫드니만 .
마눌일찍 죽고 그 가계 지가 꿀꺽....
함튼 그것도 복이라면 그 넘한텐 복이겠쥬 .....뭐
@그려느니 내용을 속속들이 아시는군요...~^^
20회까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박달재란 인물의 매력이 느껴지네요...
다음 21회를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끝까지 성원해주세요...~^^
한무제님 취임식 행사 참석하러 가는길에 고속도로 천둥산휴게소에서 청노루님의 댄스소설에 나오는 박달재 한컷
글 잘읽고 있습니다
추천은 꼭 잊지않고
꾹